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이 강도 높은 당무감사를 예고하면서 총선 공천작업이 사실상 시작된 분위기다. 당무감사에서는 공천에 직결되는 정보가 체크되기 때문에, 감사를 받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예민해 질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여의도 정가에서는 ‘총선 공천 부적격자’라는 출처 불명의 살생부가 당 내부 자료인 것처럼 떠돌고 있어 현역의원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총선때만 되면 물갈이 타깃이 됐던 TK(대구·경북) 현역들의 고심은 더 깊다. 역대 총선때마다 TK는 보수당의 텃밭인 탓에 오히려 물갈이 수준이 혹독했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TK현역 교체율은 64%에 달했다.국민의힘 당무감사위는 현재 전국 당협 실사를 앞두고 질의서를 준비 중이다. 부산출신이며 의사인 신의진 당무감사위원장은 “질의서를 논문처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경쟁력을 판단할 수 있는 항목들을 꼼꼼하게 질의서에 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질의서에는 현역의원과 원외위원장들의 당원 관리, 사고 여부, 평판, 도덕성, 인지도, SNS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현역 의원들의 경우, 점수화가 가능한 공천근거자료를 만들기 위해 의정 활동에 대한 깊이 있는 감사도 진행한다고 한다. 법안 실적, 출석률 등 정량적 평가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 국정 철학과 국정과제 등에 부합하는 의정 활동을 펼쳤느냐 여부도 들여다본다는 것이다.이번 총선에서 여당은 텃밭인 TK지역에서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경쟁력이 센 친박(친박근혜)계와 지명도 높은 무소속 인사들의 출마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TK 지역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내년 총선에서 대구 달서병 출마를 선언한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TK지역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제기했다. 최 전 부총리에 대해서는 “경산 출마가 유력시되는 데 무소속으로 출마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고, 영주·영양·봉화·울진 출마설이 있는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해선 “무소속으로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제외된 점을 지적하며, 박 전 대통령이 측근들의 총선 행보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함께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되는 일부 TK 다선의원들의 무소속 출마설도 있어 여당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최근 반윤·비윤계의 연대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이철규 사무총장이 지난 16일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데, 거꾸로 노를 젓는다든가, 배에 구멍을 낸다든가 해서 침몰하게 한다면 그 배에 함께 승선할 수 없다”며 경고성 발언을 한 배경도 이를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 있다. 국민의힘 당무감사는 사실상 공천심사와 다름없다. 당무감사가 내부분열이 아니라 다양성과 외연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23-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