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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 대통령과 그 측근부터 변해야 한다

심충택 논설위원 여권이 공멸 위기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간의 ‘독대신경전’이 진행 중인데다, 당내 친윤·친한계 내분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이 상태로 가면 당장 10·16 보궐선거가 위험하다. 전남 영광·곡성군수 선거는 둘째 치고라도, 보수 강세지역인 강화군수와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까지 위험한 모양이다. 보수세력이 여권에 등을 돌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의료사태와 김건희 여사 문제 때문이다. 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두 사안은 마치 블랙홀처럼 정부의 국정동력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여권은 이에 대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의 시각차가 큰 게 주요 원인이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이 직접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지만, 윤 대통령은 물러설 수 없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의대증원을 자신의 의료개혁 업적으로 여기고 있고, 김 여사 관련 문제에 대해서도 여당의 소극적 자세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민주당과 좌파세력은 김 여사에 대해 총공세를 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주 ‘김건희 국정농단 TF’까지 꾸렸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 재의를 요구할 경우, 토요일인 5일에라도 재표결을 위한 본회의를 연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도 김 여사 문제를 집중 파헤칠 움직임이다. 민주당이 다수인 상임위(법사위·교육위·국토교통위·외교통일위 등)에서는 김 여사 의혹 관련 인사들을 줄줄이 증인으로 채택했다. 특히 법사위는 김 여사와 김 여사 모친 최은순씨도 증인·참고인으로 신청했다. 민주당 강득구 의원 등 일부는 ‘탄핵준비의원’ 모임까지 결성한 상태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국면을 주도했던 사회단체들과 민주노총도 지난 주말부터 김 여사 관련 이슈를 거론하며 윤 대통령 탄핵공세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국가 미래를 어둡게 하는 김 여사 문제와 의료사태를 해결하려면 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윤 대통령은 과거 대선후보 시절, 특유의 친화력으로 민심을 사로잡았다. 특히 대구·경북 시도민은 그의 대중성에 열광했다. 윤 대통령은 그 당시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야당의 외면을 받더라도 끊임없이 설득하면서 꼬일 대로 꼬인 정국을 풀어나가야 한다. 싫든 좋든 야당은 대통령 국정운영의 중요한 파트너다. 한 대표와의 관계도 개선해야 한다. 대통령은 여당 위에서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다. 당·정은 수평적 관계가 돼야 한다. 특히 한 대표는 윤 대통령 본인이 키운 사람 아닌가. 이른 시일 내에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만나 두 쟁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면서 여론의 악순환을 끊을 해법을 찾아야 한다. 윤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며 권력을 누리는 대통령실과 친윤계 인사들도 바뀔 때가 됐다. 호가호위할 때가 아니다. 당·정이 더이상 내분에 빠지면 국정운영이 어렵다. 곧바로 레임덕이 온다. 국민은 지금 대통령 측근들이 한 대표 패싱 분위기를 유도하면서 대통령 ‘불통’을 강화한다고 의심한다.

2024-10-01

의대생 집단유급되면 의료시스템 망가진다

심충택 논설위원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2일 기준 전국 40개 의과대학에서 2학기 등록금을 낸 학생이 전체 1만9374명 중 653명(3.4%)에 불과하다. 의대생 대다수가 아예 등록 자체를 거부해 집단유급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재학생 중 일부는 다른 대학에 수시모집 원서를 내거나,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어렵게 자녀를 의대에 보낸 학부모들의 속이 어떨지는 짐작이 간다. 교육부는 지난 7월 의대생들의 유급 판단을 학기 말에서 학년 말로 미루고, F학점(낙제)을 주는 대신 추후 성적을 정정해주는 학점제도를 도입할 것을 대학에 권고했다. 통상의 학사운영 기준을 적용하면 대다수 의대생이 유급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라고 해서 등록도 안 하고 수업도 안 듣는 학생을 진급시킬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은 없다. 법령과 학칙에서 예외를 두는 것은 다른 학과 학생들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나 불가능하다. 만약 2학기에도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유급이 확정된다면, 2025학년도에는 현재 1학년·신규 입학생(7500명)이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들은 동시에 진급하기 때문에 6년 내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다. 현 의대 교육여건상 수업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이와함께 의대 본과 4학년들이 의사 국가시험 지원을 계속 거부하게 되면, 내년에는 신규의사도 배출되지 않는다. 진료와 교육, 임상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한국 의료시스템이 대학교육이라는 첫 단계에서부터 망가지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지금은 대규모 의대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8개월째 지속되면서 환자와 수련병원, 의과대학 모두 패닉상태다. 중환자들은 수술일정을 잡지못해 생명을 위협받고, 병원과 학교를 떠난 전공의 1만2000명은 돌아올 기미가 없다. 지친 의대교수들도 병원을 떠나고 있다. 입원·외래환자가 반토막 난 수련병원들은 심각한 경영난에 처해 있다. 의료시스템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전공의들의 병원 복귀다. 의사는 전공의 시절이 가장 중요하다. 인턴은 레지던트 1년 차한테, 레지던트 1년 차는 2년 차한테 배운다. 한 해라도 레지던트 정원에 결원이 생기면 이런 ‘도제식 교육’에 후유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수련병원에서 전공의가 사라지면 전문의와 의대교수들도 배출될 수 없다. 내년에는 전문의 배출이 평소의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2000년부터 8년간 삼성서울병원에서 4·5·6대 병원장을 지낸 이종철 서울 강남구 보건소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의료가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하는 전공의들의 노력 덕분에 열악한 환경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를 수 있었다”고 했다. 정부는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전공의들이 하루빨리 제자리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료대란으로 국가 의료시스템이 망가지고 국민이 생명을 잃으면, 의료개혁이 성공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한 여당 국회의원의 말에 공감이 간다.

2024-09-24

심각한 급여 양극화…그늘 짙어지는 청년들

심충택 논설위원 요즘 주변을 보면 현실에 강한 불만을 가진 청년들이 많아 안타깝다. 대부분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MZ세대 공무원들은 ‘필리핀 이모’보다 못한 박봉에 분개하고 있고, 회사원들은 평생 벌어도 내집마련이 불가능한 현실 때문에 삶의 의욕을 잃고 있다. 민주당 이강일 의원실이 한국신용정보원에서 받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 7월말 현재 신용유의자(신용불량자)로 등록된 20대가 6만5887명에 이르며, 매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10일자 조선일보를 보면, 빚더미에 눌려 생활고를 겪는 20대가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례도 증가하는 모양이다. 경마장을 찾는 2030세대가 지난 5년간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는 통계도 있다. 신문사에 다니는 한 후배는 여성가족부가 지난주말 발표한 ‘공시대상회사와 공공기관’ 직원의 평균임금을 보고 기사 쓸 마음이 싹 달아났다고 했다. 평균임금은 남성은 9857만원, 여성은 7259만원이었다. 여가부는 성별 임금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며 이 자료로 내놨지만, 공무원이나 회사원 대부분은 심한 피해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는 고임금이다. 공시대상회사는 시장경제 원리에 따르겠지만, 공공기관은 공무원과 비슷하게 정부가 투자하거나 지원을 하는 곳이다. 200만 원 정도의 첫 월급에서 시작해 10년이 지나야 300만원이 조금 넘어서는 급여를 손에 쥘 수 있는 공무원이나 중소기업 회사원들로선, 공시대상회사·공공기관 직원의 평균임금을 보면서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다. 이러니 공직사회 MZ세대 이탈이 가속화하고, 대기업 취업이 안 되면 차라리 백수로 살겠다는 청년이 느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월평균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비경제활동인구가 405만8000명에 이른다. 대구만 해도 22만5000명이나 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급여양극화 탓이 크다. ‘백수’로도 불리는 비경제활동인구는 통계상 실업자로도 분류되지 않는다. 이들이 취업이나 창업 준비를 하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자포자기한 상태로 놀고 있다면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을 낳을 수 있다. 공직자들의 조기이탈은 낮은 보수가 주된 이유다. 9급 초임의 기본급은 월 187만7000원이다. 최저임금(206만원)보다 작고, 내년엔 병장 월급(205만원)에도 역전당한다. 최근 이탈 러시가 이루어지는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연금메리트도 희석된데다, 교사들이 여가부가 밝힌 공공기관 직원 평균임금을 받자면 평생 근무해도 불가능하다. 교장급여가 그들의 평균임금과 비슷하거나 작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다양한 분야에서 양극화가 브레이크 장치 없이 진행되고 있다. 청년세대의 극단적인 급여양극화는 우리사회에 신용유의자, 도박중독자, 니트족 등을 양산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저임금으로 인한 취업포기·한탕주의는 결혼·출산율 저하와 직결돼 사회·경제적 손실이 크다. 급여양극화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 아니다. 대규모 공무원 조직의 보수를 짧은 시간에 개선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들에게 최저임금에 가까운 급여를 주면서 일하게 해선 안 된다.

2024-09-10

응급실위기 심각…윤·한갈등론 ‘사치’ 맞다

심충택 논설위원 현 정권 기반인 TK(대구경북)에서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공개충돌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보면, 8월 마지막주(27~29일)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여론조사에서 TK응답자 절반이상(51%)이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잘하고 있다’는 37%에 그쳤다.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하는 이유는 상수(常數)로 꼽히는 경제·민생·물가(14%) 요인이 크지만, 의대 정원 확대(8%)와 소통 미흡(8%) 문제도 만만찮다.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한 부정평가는 직전조사에서 2%였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6%포인트나 상승했다. 한 대표가 ‘2026학년도 의대증원 유예’ 중재안을 들고 나온 것은 지난 총선 때부터 불거진 이러한 민심 때문이다. 한 대표가 박단 전공의 비대위원장을 비롯해 여러 전문가 의견을 듣고 만들어냈을 중재카드에 대해, 윤 대통령은 너무 가볍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불쾌하게 여기는 기색이 지난번 TV회견을 통해 여과없이 방영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총선 이후 두 번째 열린 기자회견을 하면서 집권여당 대표의 이름을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 기자가 “한 대표, 그리고 당과 소통은 잘 되느냐”고 질문하자, ‘한동훈 이름’은 쏙 빼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원활히 소통하고 있다. 우리 당 의원들, 당 관계자들과 수시로 전화 통화뿐 아니라 저한테 찾아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은 누구나 ‘당 대표 패싱’ 분위기를 감지했을 것이다. 한 대표는 지난 1일 열린 여야 대표회담에서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같이 “추석연휴 응급실 의료체계 구축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정부에 당부했다. 그 며칠 전 “응급실이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밝힌 윤 대통령으로선 또다시 얼굴을 붉힐 일이다. 앞으로도 윤 대통령이 의료대란을 막기 위한 당 대표의 의견을 ‘도발’로 받아들이면, 한 대표가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없어진다. 이러니 야당에서 한 대표를 아무 실권이 없는 ‘바지사장’이라고 하지 않는가. 지금 국민은 일반병원이 문을 닫는 추석연휴를 앞두고 가족 중 누가 아플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특히 중증환자가 있는 가족들은 수술날짜를 잡지 못해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 김혜란 대변인이 “대형병원 응급실 셧다운(완전폐쇄)으로 국민이 생명을 잃으면, 의료개혁이 성공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한 말에 백번 공감이 간다. 한 대표는 일각에서 자신의 의료대란 위기 발언을 ‘당정갈등’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사치스럽고 게으르다”고 비판했다. 의료대란 위기에 대한 정부 생각은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서 했다는,‘6개월만 버티면 이긴다’는 말에 함축된 것으로 보인다. 의료위기 대처를 둘러싼 정부태도에 의료계가 분개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실은 지금의 의료공백 위기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국민이 공감하는 해법을 하루빨리 만들어내야 한다. 버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2024-09-03

한동훈 리더십은 ‘용산’이 좌우한다

심충택 논설위원 취임 한 달을 넘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정치력과 리더십 성적은 어느 수준일까. 나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친정체제를 구축했고, 거대야당의 입법공세와 친윤(윤석열)계 견제에 맞서 ‘민생이슈’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우수한 점수를 주고 싶다. 정치 입문 8개월밖에 안 된 데다 원외 당대표라는 취약한 입지에서 ‘뇌관’이었던 당 지도부 구성을 속도감 있게 마무리한 것은 정치력과 리더십이 없으면 불가능했다.한 대표는 취임 이후 정치공학적 이슈보다는 정책에 올인했다. 정쟁(政爭)과는 일정부분 거리를 두고 우리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격차 해소’를 비롯해 민생문제에 이슈를 집중시킨 것은 ‘이재명 정치’와 차별화된다. 한 대표가 내건 민생이슈는 모두 시의성과 관심도가 높았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반도체특별법 제정, 간첩법 개정, 취약 계층 전기료 감면, 청년 고독사 문제, 티메프사태 대책, 전기차 안전 대책 등은 모두 민생문제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각종 특검법과 탄핵에 몰두한 민주당과 대비된다.한 대표를 비롯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오는 30일 윤석열 대통령과 만찬을 하면서 다양한 현안을 논의한다니 기대가 크다. 최대 민생현안인 의료공백 사태에 대해 당정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한 대표는 지난 20일 박단 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과 장시간 면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지금 추석연휴를 앞두고 대구·경북을 비롯해 전국 대형병원 응급실은 의료진 부족으로 언제 ‘셧다운’ 될지 모르는 상태에 있다. 만약 간호사·의료기사 등이 실제 총파업을 단행하면, 응급실 의료공백 사태는 어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정부가 대형병원 응급실 위기를 지금처럼 내버려두면, 자칫 정권위기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 현재 정부의 의대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병원을떠난 지 6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이번 당정회의는 반드시 의료공백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국민은 응급환자가 늘어날 추석 연휴를 앞두고, 끔찍했던 2020년 코로나 악몽을 되살리고 있다.한 대표가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는 윤 대통령과의 관계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곳곳에 지뢰가 널려 있다.대표적인 지뢰는 민주당이 ‘제3자 추천 채상병 특검법’을 고리로, 한 대표와 윤 대통령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한동훈 특검안’을 수용하겠다며 압박강도를 높이는 것도 여권분열을 노리는 포석이다. 한 대표로선 윤 대통령과 친윤계가 특검법 발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 운신의 폭이 그리 넓지 않은 상태다.한동훈 특검안에 대한 국민의힘 내부의 부정적 기류는 한 대표가 자신의 리더십으로 해결해야 한다. 한 대표의 리더십과 정치력은 윤 대통령의 신임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대표로선 용산과 소통을 자주하면서 현안을 풀어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윤 대통령도 건전한 당정관계를 위해 한 대표의 위상을 존중해 줘야 한다. 채상병 특검법으로 인해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갈등이 더 커지면 양측 모두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2024-08-27

응급실 마비 직전인데 코로나까지 유행

심충택 논설위원 응급환자가 늘어나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끔찍했던 코로나19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지금은 대부분 대형병원이 의사가 부족해 응급실을 축소 운영하는 상태다. 대구·경북 지역민은 지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전염병으로 인한 응급의료시스템 붕괴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피부로 체험했다. 열이 펄펄 나는 코로나 환자 수천 명이 응급치료를 받지 못한 채 집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때,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은 “대구경북을 봉쇄하라”, “대구는 손절해도 된다”며 비수를 꽂는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질병관리청 집계에 의하면, 코로나 입원환자는 지금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여름철 유행 동향과 추세로 볼 때 8월 말이면 주당 35만명의 환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니 충격적이다. 대구·경북 지역도 감염자 수가 급증하고 있어 보건당국이 비상이다. 지난주에는 경북도내 노인요양시설과 요양병원 9곳에서 191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전염병 고위험군에 대한 보호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특히 개학을 코앞에 두고 어린이 환자가 속출해 걱정이다. 어린이들은 감염돼도 무증상·경증이 대부분이어서 코로나 팬데믹의 고리로 작용할 수 있다.대한아동병원협회가 소속병원 42곳의 코로나 아동 환자(16세 이하)를 조사했더니, 지난 7월 22~26일 387명에서 8월 5~9일 1080명으로 2주간 2.8배 늘었다. 초등학생·학부모 연쇄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이다.지금은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의 병원 이탈 사태가 6개월째 이어지면서 상급종합병원 대부분은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료진이 극도로 부족한 상황이라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면, ‘의료대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 대부분 상급종합병원은 전공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전문의나 간호사들을 통해 겨우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다.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대구지역 응급의료 대란설도 나와 시민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대구시는 해당 글이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이라고 하지만, 시민들의 걱정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충남·충북 쪽에서는 24시간 365일 가동돼야 할 응급실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는 때도 있는 모양이다. 동아일보 19일자 보도로는, 충북대병원은 지난 14일 오후∼15일 오전 분만과 심근경색 등 14가지 중증 응급질환 진료를 중단했다. 세종 충남대병원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족으로 이달부터 매주 목요일 응급실을 부분 폐쇄하고 있다.대학병원 교수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코로나 환자가 많이 늘어나면 중환자 대응이나 치료에 커다란 구멍이 뚫릴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최근 전국 수련병원이 하반기 전공의 추가모집을 마감한 결과, 대부분 지원자가 아예 없거나 한두 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지역 8개 수련병원도 추가모집 지원자가 전혀 없었다. 상급종합병원 의료공백의 장기화가 불가피해 진 것이다. 코로나 대유행에 대비해 대형병원의 응급의료체계를 하루빨리 정상화하지 않으면, 우리사회에 어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다.

2024-08-20

‘지방시대’ 말하면서 서울그린벨트 해제?

심충택 논설위원 정부가 최근 신혼부부 신규택지 공급을 위해 서울 서초·강남지역 그린벨트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충격적이다. 청년들의 수도권 집중을 오히려 지원하는 정책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해제 대상인 그린벨트가 ‘환경영향평가 3등급 이하’를 받으면 국회를 거치지 않아도 정부가 직권으로 해제할 수 있는 모양이다.서울지역 그린벨트는 국토균형발전의 상징이다. 지난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수도권에 그린벨트를 집중시킨 이유는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일자리가 많은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고, 곳곳에서 난개발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서울시도 이러한 취지에 동의하고 지금까지 그린벨트를 가급적 건드리지 않았다.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가 처음 강남·서초구 일부 그린벨트를 해제했을 때도 투기가 판치고 아파트 시세가 폭등해 국민적 원성을 샀다.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수도권 규제완화는 브레이크 장치 없이 진행돼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취임 직후 수도권 내 공장 신·증설 규제(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시행령)를 푼 것이다. 과거 수도권 경제자유구역에는 외국인 투자기업만 공장 신·증설이 가능했는데, 이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해외에 나가있는 ‘유(U)턴 기업’의 공장 신·증설도 허용됐다. 당시 유턴기업 유치에 총력을 쏟고 있던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조치”라며 반발했지만, 정부는 ‘풀 수 있는 것은 다 푼다’는 식으로 대처했다.정부는 올들어서도 “경기 남부를 관통하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에 5년 동안 158조원을 투자해 일자리 95만개를 새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비수도권으로서는 유일하게 지난해 첨단반도체 소재부품 특화단지로 지정된 구미와 비메모리 반도체 허브도시를 꿈꾸는 대구시로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일이었다.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는 앞으로 관련기업과 인력을 흡수하는 블랙홀이 될 게 뻔하다.정부 정책판단 우선순위에서 ‘국토균형발전’이 ‘수도권 중심주의’에 밀리는 것은 문제가 많다. 우리나라의 수도권 집중도는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결코 나타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모든 자원이 수도권에 몰림으로써 나타나는 부작용은 당연히 ‘비수도권 소멸’이다. 윤 대통령은 올 신년사에서 저출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불필요한 과잉 경쟁을 개선하고 국가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칼럼에서 몇 차례 강조했지만, 저출산 문제는 결국 수도권에 집중된 자원을 분산시키지 않고는 달리 해법이 없다. 서울에 몰려드는 청년들이 학교졸업 후 결혼하고 아이양육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니까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것이다.현 정부가 연이은 수도권 규제완화에 이어, 서울지역 그린벨트까지 풀겠다고 결정한 것은 국토균형발전을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특히 그린벨트 해제의 주된 목적이 ‘신혼부부 신규택지 공급’이라는 점에서 쇼크는 더 크다. 정부는 지금 대구·경북을 비롯해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이 청년들의 수도권 유출로 비상이 걸린 상태라는 것을 설마 모르고 있는가.

2024-08-13

망가지는 국가의료시스템… 이게 개혁인가

심충택 논설위원 진료와 교육, 임상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던 한국 의료시스템이 망가지고 있다. 대규모 의대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7개월째 지속되면서 환자와 수련병원, 의과대학 모두 패닉상태다. 중환자들은 생명을 위협받고, 병원과 학교를 떠난 전공의와 의대생 3만명은 돌아올 기미가 없다. 지친 의대교수들도 병원을 떠나고 있다. 입원·외래환자가 반토막난 수련병원들은 경영난으로 간호사 채용을 못하고 있다. 의대생, 전공의, 전문의로 이어지는 의사배출 시스템이 붕괴 직전인 시점에 경찰은 박단 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을 조사하기 위해 출석요구서까지 보내 의정갈등을 키우고 있다.지금 의료시스템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전공의들을 병원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현재 전공의들은 의대증원 철회 없이는 병원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의사들을 악마화 한다’면서 정부에 대한 감정도 지극히 좋지 않은 상태다. 수련병원들이 지난달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마감했지만, 지원자가 거의 없었다. 미복귀 전공의 대다수는 미용성형을 주로 하는 병의원, 요양병원 등의 일반의로 취업하거나 미국 의사 면허 취득 등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수련병원에서 전공의가 사라지면 전문의와 의대교수들도 배출될 수 없다. 내년 전문의 배출이 평소의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가 전공의에게 의존했던 수련병원을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의사 배출이 꽉 막힌 상황에서 실효성이 의문이다. 경북대병원의 경우, 올 상반기에만 의대교수 21명이 진료와 업무에 지쳐 사직했다.전국 의과대학 재학생들의 수업거부가 몰고 올 사회적 파장도 만만찮다. 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기준 전국 40개 의대 재학생 1만8217명 가운데 출석하고 있는 학생은 495명에 불과하다. 내년 1학기까지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유급이 확정된다면, 2025학년도에는 현재 1학년과 신규 입학생(7500명)이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동시에 진급하기 때문에 6년 내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다. 현 의대 교육여건상 수업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이와함께 의대 본과 4학년들이 의사 국가시험 지원을 계속 거부하게 되면, 내년에는 신규의사도 배출되지 않는다. 최근 마감한 의사 국시 실기시험 접수자는 364명으로 지난해(3212명)의 11.3%에 불과하다.국가 의료시스템 마비현상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전공의에 대해 “기계적으로 법을 집행할 것”이라며 강경방침을 고집하고 있다. 의료계에선 “내년도 의대 신입생이 전공의가 되는 2031년이 돼야 의료공백 사태가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란 말도 나온다. 문제는 현 정부입장으로선 전공의 복귀를 위해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만약 의사를 양성하는 국가 의료시스템이 지금처럼 서서히 붕괴돼 중환자들을 치료할 의사가 급격히 줄어든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2024-08-06

‘TK 3대정신’은 지역민의 자존심이다

심충택 논설위원 홍준표 대구시장이 최근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운동, 박정희 산업화를 ‘TK(대구경북) 3대정신’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이 지역은 역사적인 고비 때마다 항상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선거철만 되면 ‘올드한 보수도시’라는 정치적 프레임에 걸려, 자존심이 상하는 사례가 잦았기 때문이다.‘대한제국이 일본에 진 빚 1300만원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서 시작됐다. 1907년 1월 29일 대구 광문회를 이끌던 서상돈과 김광제가 불씨를 지폈고, 국민운동으로 확산됐다. 당시 의연금을 낸 상당수는 TK지역 서민들이었다. 대구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는 ‘여성도 남성과 다르지 않다’고 호소하며 은장도, 은비녀, 은가락지를 내놓았다. 1907년 2월 21일자 대한매일신보는 “이천만 민중이 3개월 기한으로 금연하고, 그 대금으로 매인(每人)에게서 매월 20전씩 거둔다면 1300만원이 된다”고 호소했다. 안중근 의사와 이준 열사도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다. 이 운동은 외신을 통해 해외에 알려졌고, 중국과 멕시코, 베트남 외채보상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대구시는 지난 3일 새로 단장한 두류공원 광장을 ‘2·28자유광장’으로 명명하는 행사를 열었다. 2·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 자유당 정권의 독재에 맞서 대구지역 8개 고교 학생들이 주도해 일으킨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운동이다. 마산 3·15의거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당시 영국의 더 타임스지는 2·28현장을 보도하면서, ‘대구는 일제 때부터 독립의 전통을 가지고 있고, 자유당 주도권에 제동을 걸어 왔으며, 저항의 역사를 기록하는 도시’라고 했다. 홍 시장은 “2·28자유광장 일대는 자유, 민주, 정의를 외친 대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리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대구시는 현재 동대구역 광장(박정희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상 제작과 설치를 위한 작가 공모에 들어갔다. 대구시의회는 지난달 본회의에서 관련 예산을 통과시켰다. 대구시는 남구 대명동 미군기지 반환 부지 내에 건립 중인 대구대표도서관 공원에도 박정희 동상을 건립한다.지금은 도시간의 경쟁이 국가간 경쟁 못지않다. 지방정부 역량에 따라 해당 도시의 품격과 경제적 수준이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벌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민선단체장들에겐 해당 도시를 대표하는 유무형의 자산에 대한 홍보작업이 중요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광주시가 오래전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 이름을 곳곳에 네이밍해 도시브랜드로 활용하고 있다.대구시가 홍 시장 취임 이후 관문(공항이나 역)이나 광장명칭을 새롭게 브랜드화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홍 시장은 그동안 공식석상에서 대구의 폐쇄성과 기득권 카르텔을 언급하면서, 대구사회가 외부세계와 단절돼 있다는 말을 자주 해 왔다. 앞으로 TK지역 이미지가 ‘보수꼴통 도시’가 아니라, 국채보상운동이나 1960년대 민주화운동, 1970년대 산업화의 주역도시로 대체되길 기대한다.

2024-07-30

‘교육·월급양극화’가 낳은 사회병리현상

심충택 논설위원 매일 막장드라마를 연출하는 정치권 영향 때문인지, 우리사회 모든 분야가 뒤숭숭하다. 법과 도덕, 규범이 무너지면서, 특히 사회 분위기에 민감한 고교생이나 청년들이 정상적인 일상생활에서 일탈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지난해 자퇴 등으로 학교를 떠난 고교생이 2만5792명(대구경북 2410명)에 달한다고 한다. 대부분 성적이나 교우관계, 규칙 적응 등에 어려움을 겪다가 학업 중단을 선택한 것으로 보여진다. 교사들은 “무리하게 설득하려다가 인권 침해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학부모가 ‘자퇴에 동의했다’고 하면 더는 말릴 수가 없다”고 했다.우리나라 대졸 청년 수백만명이 니트(NEET)족으로 살고 있다는 통계도 충격적이다. 니트족은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말한다.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1월부터 6월까지) 월평균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비경제활동인구가 405만8000명에 이른다. 대구의 경우 22만5000명이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만1000명이나 늘었다. 대구는 코로나가 대유행하던 2020년 상반기에 20만명을 넘어선 이후 계속 증가추세다.백수로도 불려지는 비경제활동인구는 통계상 실업자로도 분류되지 않는다. 이들이 취업이나 창업 준비를 하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자포자기한 상태로 놀고 있다면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을 낳을 수 있다.우리나라에서 고교생 자퇴나 니트족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회양극화 탓이 크다. 의대정원 확대 이후 서울 학원가를 중심으로 개설되고 있는 ‘초등 의대반’을 떠올려 보면 교육분야 양극화는 쉽게 이해될 것이다. 학생들이 중학교 때까지는 동급생과의 학력격차를 크게 인식하지 못하다가 고교에 진학하면 충격을 받는 케이스가 많다고 한다.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월 수백만원을 써가며 과외수업을 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간의 성적 격차는 줄이기가 어렵다.취업을 포기하는 대학 졸업생이 증가하는 이유는 아마 ‘월급 양극화’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의 억대급여나 성과급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보도되는데, 청년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중소기업에 취업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요즘은 대기업들이 수시·경력 채용을 확대하면서 대졸자들의 취업문은 더 좁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평균연봉 1억대인 현대차가 10년 만에 실시한 생산직 공채에 수만 명이 몰려 채용 사이트가 마비된 건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는 청년들의 기대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말해준다. 설상가상 올들어 내수와 건설경기 부진으로 청년층 고용시장의 찬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고 있다.사회 각 분야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것은 정부책임이 크다. 상속세나 종부세 개편과 같은 ‘부자 민원’에 민감한 정권이 들어설수록 양극화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학업이나 취업의욕은 한 번 떨어지면 여간해선 회복하기 어렵다. 사회양극화가 지금처럼 제동 없이 진행될 경우, 학교에 적응 못하는 고교생이나 백수로 살아가는 청년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2024-07-23

종부세 개편론은 ‘수도권 부자표’ 의식한 것

심충택 논설위원 울릉군의회는 최근 정치권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개편’ 논의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국세지만, 지방자치단체에 전액 교부되는 종부세는 그동안 울릉군 같은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시·군엔 재정 숨통을 트여주는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울릉군은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종부세 감면조치에 따라 올해 부동산 교부세가 98억원 감액돼 각종 사업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전국의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는 대부분 울릉군과 사정이 비슷하다. 지난해 종부세 감면조치로 국가재정수입(4조9609억 원)이 전해에 비해 2조6068억원이 감소해 자치단체 모두 재정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종부세는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사람에게 세금을 더 부과해 비생산적인 부동산 투기 수요를 억제한다는 취지로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부터 시행됐다. 현재 공시가격 9억원(1가구 1주택자는 12억원)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에게 부과된다.지난주에는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종부세와 관련, “불필요하게 과도한 갈등과 저항을 만들어 낸 측면이 있다. 개편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밝혀, 민주당 전당대회의 쟁점이 됐다.당 원로들이 “종부세를 근본적으로 건드리는 것은 민주당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는 모습이다. 종부세 개편론은 지난달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주택 가격 안정 효과는 미미한 반면 세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요소가 상당히 있어 폐지 내지는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며 불을 지폈다.이 전 대표의 종부세에 대한 입장변화는 수도권 표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부세에 민감한 수도권 화이트칼라 고소득층을 민주당 지지쪽으로 흡수하면 차기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을 하는 것이다. 서울의 중위 아파트 가격이 12억을 넘어가면서 종부세는 수도권 선거의 최대변수로 자리잡았다.종부세는 수도권에서 세금을 걷어 비수도권으로 분배하는 기능을 한다. 지난해 종부세 납부자 상위 1%(4951명)가 낸 금액은 2조8824억원이다. 대부분 수도권 거주자들이다. 전체 종부세 결정세액 4조1951억원의 68.7%에 해당한다. 종부세가 폐지되면 자산이 많은 소수 상위 계층에 감세 혜택이 집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종부세 세수 펑크’는 지방자치단체에 큰 충격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종부세가 경제활동을 왜곡하면서도 세수 효과는 크지 않은 대표적 세금”이라고 했지만, 뭘 모르고 한 소리다. 종부세는 어려운 지방 재정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한다. 오죽하면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이 “종부세 개편은 지방세수로 활용되므로 신중해야 한다”며 대통령실 결정에 반기를 들었겠는가.현재 부동산교부세는 살림이 빠듯한 시·군일수록 더 많이 배분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앞으로 종부세를 더 완화하거나 폐지한다면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지자체의 충격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가난한 자치단체에 대한 세수 보전 대책 없는 종부세 개편은 큰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다.

2024-07-16

‘부자감세’ 정부…양극화 그늘 안보이나

심충택 논설위원 정부가 내년부터 ‘기업주가 밸류업’과 법인·소득·상속세 감면을 추진한다고 최근 밝혔다. 모두 재계의 오래된 민원이다. 기업주가 밸류업은 배당과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환원을 늘린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깎아주고, 해당 기업 주주에게도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제도다.결국은 ‘부(富)의 집중’을 인정하자는 정책이다. 우리나라의 부의 집중도는 증시 시가총액을 보면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 증시에서 4대 대기업 가문(삼성, SK, LG, 현대자동차)이 보유한 주식의 시가총액은 전체의 70% 정도를 차지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드워드 로이스가 “정치권력이 부의 불평등을 만든다”고 한 말에 실감이 가는 감세정책이다. 로이스는 권력층에서 자본이 있는 쪽으로 자본을 더 쏠리게 하는 제도를 만든다고 했다. 로이스가 언급한 제도는 세금과 부동산, 상속, 교육제도다. 그는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는 책도 냈다. 그는 자본만큼이나 불평등하게 분배된 권력을 바로잡지 않고는 양극화를 몰아낼 수 없다고 했다.우리사회는 전 분야에서 양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선 소득이 상위 20%에게 집중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4년 1·4분기 ‘소득 5분위별 가계수지 조사’ 내용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월 평균소득이 1분위(하위 20%)가구는 115만7000원인데 비해 5분위(상위 20%)가구는 1125만 8000원이다. 부자와 빈곤가구의 소득이 평균 10배 정도 차이가 난다.교육양극화도 충격적인 수준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3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중3·고2대상)’를 보면, 부유층 아이들이 고가의 사교육 시장으로 몰려갈 동안 공교육에 의존해야 하는 가난한 아이들은 기초학력마저 무너지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고2 수학 과목 기초미달 비율은 계속 상승세를 타다 2022년에는 15.0%까지 올라갔다. 한글을 읽고 쓸 수는 있지만 해석력이 떨어지는 중·고생들도 증가하고 있다. 교육양극화는 졸업 후 직업과 소득의 격차로 이어진다.수도권·비수도권 간의 주택가격 양극화도 심각하다. 최근 수도권은 아파트 거래량이 늘어나고 일부 단지에서는 신고가(新高價)가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대구경북을 비롯한 비수도권에서는 여전히 청약이 미달되고 ‘악성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다. 빈부(貧富)를 가르는 주택가격 양극화는 앞으로 더 심화할 것이다.정부가 양극화의 심각성을 무시한 채 부자감세 정책에 몰두하는 모습은 국민 눈에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비친다. 부자감세 정책은 결국 ‘계층이동 사다리’를 차버리겠다는 발상이다. 권력의 주축을 이루는 정부 고위 정책입안자나 정치인이 재계의 민원에 종속되면, 한국사회는 희망이 없다. 양극화가 이대로 지속되면 결혼도, 자녀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민심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 그러려면 권력자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재산을 형성하고, 권력을 재생산하는지를 잘 감시해야 한다.

2024-07-09

65세이상은 ‘운전금지·移民’ 요구하는 사회

심충택 논설위원 그저께 서울에서 역주행으로 9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교통사고의 운전자 나이가 68세로 알려지면서 고령자 운전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운전자는 급발진으로 인한 사고라고 주장하지만, 고령자 운전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강하게 형성되는 것 같다.이 사고로 최근 우리사회에 확산하고 있는 ‘노인 이지메(왕따) 풍조’가 더 심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지금도 찬반논란이 일고 있지만, 지난달 정부가 ‘65세 이상 노인들의 운전능력을 평가해 야간·고속도로 운전금지 등을 조건으로 면허를 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이 정부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8년 개띠’로 표현되는 베이비붐 세대가 지난해부터 노인 범주에 들어가면서 우리사회는 노인인구가 급증했다.이들 베이비붐 세대는 아직 노인이 됐다는 의식이 전혀 없이 열심히 사회·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다. 운전은 필수다. 그런데 갑자기 ‘조건부 운전면허 대상’으로 지명 당하니, 사회적으로 고려장을 당한다는 상실감을 지울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더 충격적인 것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다. 연구원이 매달 펴내는 간행물(재정포럼) 5월호에 실린 이 보고서에서 장우현 선임연구위원은 “노령층이 물가 저렴하고 기후가 온화한 국가로 이주하여 노후를 보내면 생산 가능 인구 비중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노인을 이민 보내면 ‘비(非)생산 인구’를 줄일 수 있다는 기가 막힌 보고서다.의식적이든 실수든, 정부와 공공기관이 내놓은 이러한 ‘노인 이지메’ 정책은 시민사회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최근 대구 수성구 한 4성급 호텔 헬스장에서 ‘만 76세 이상인 고객은 회원 등록과 일일 입장이 불가하다’는 글이 게시돼 논란이 됐다.정부보다는 연령을 10살 정도 올렸지만, 헬스장의 처사가 “상식이하의 노인차별”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지난달에는 개그맨 3명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경북 영양군을 소개하면서 “여기가 1만 5000명 장수 마을이다.들어본 적이 있냐. 중국인 줄 알았다”며 노인인구가 주류인 자치단체를 거리낌없이 조롱했다. 이 유튜브 출연자들은 영양군에서 젤리를 먹다가 “내가 할머니의 살을 뜯는 것 같다”는 섬뜩한 표현을 하기도 했다.우리 사회가 65세 이상 인구를 노인이라는 범주에 놓고 ‘님비(Not In My Backyard)’의 대상으로 삼는 경향은 오래됐다.최근에는 좌·우 진영싸움과 세대간의 갈등, 부양 부담 등이 이러한 님비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젊은층이 재미삼아 쓰는 실버존, 노인네, 틀딱충, 연금충과 같은 단어들도 노인혐오 분위기를 부추긴다. 정치권과 정부가 나서서 이러한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이 순리지만, 오히려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으니 상황이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모두가 늙어가는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간의 증오심과 갈등을 유발해 권력을 유지하거나 정치적 이익을 노리는 집단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2024-07-02

푸틴의 협박, ‘양치기소년’ 보듯 해도 되나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주 야당 단독으로 연 국회법사위 청문회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증인으로 불려나온 전직 국방장관과 현역 해병대 장성을 상대로, 보기가 민망할 정도의 인격모독을 한 정청래 법사위원장의 언행은 많은 시청자를 분노케 했다. 박지원 의원은 정 위원장이 ‘10분간 증인 퇴장’ 명령을 반복하자 “한발 들고 두손 들고 서 있으라고 해야 되지 않느냐”며 조롱하기도 했다. 당장 전쟁이 나면 부하들과 함께 전쟁터에 나가야 할 현역 군인을 앉혀놓고 모욕과 협박을 하는 국회의원의 거친 태도는 충격적이었다.법사위 청문회가 열리기 하루 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을 겨냥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한다면, 러시아는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고 협박했다. ‘북·러간 파트너십 조약’체결에 대해 우리정부가 대응조치를 취하자, 즉각 “보복하겠다”고 나선 것이다.푸틴의 거침없는 협박을 듣는 우리 국민은 우크라이나의 전쟁참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린이들이 무차별 살육되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여성들이 집단 성폭행당하는 외신뉴스는 지구촌 전체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4월 “오늘의 우크라이나가 내일의 동아시아”라고 했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한반도나 대만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국내외에서 한국의 안보위기를 우려하는데도, 우리정치권은 ‘정쟁’에 여념이 없다.22대 국회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은 오히려 러시아 편을 드는 것처럼 비친다. 대통령실이 북·러 군사조약에 항의하며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하자 “한·러 관계를 파탄 내고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고조시키는 매우 잘못된 것”이라며 푸틴입장을 두둔했다.박찬대 원내대표는 과거 북한의 오물풍선 공격과 관련해 우리정부가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정지시키자 “휴전선에서 고사포탄 날아가던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거냐”며 빈정대기도 했다.국가안보마저 정쟁으로 몰아가는 민주당 행태를 보면서,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 정치상황이 오버랩된다. 조선은 연산군 이후 임란 직전까지 4대사화와 훈구·사림 세력간 당쟁, 관료들의 부정부패, 여진족과 왜구의 약탈사건 등으로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백성들은 당시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지만, 관료들은 당쟁으로 날을 지새웠다. 그러다가 1592년 4월 임란이 발생하자 관료와 정규군은 대부분 도망가고, 의병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조선을 유린한 임진왜란의 참혹함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다.러시아는 6·25전쟁 당시 북한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해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제 군사원조를 핵심으로 하는 북·러간의 조약체결로, 한반도 전쟁 시 러시아가 개입할 가능성이 아주 커졌다. 정치권은 푸틴의 협박을 ‘양치기 소년’ 보듯 해선 안 된다.국가 안보는 절대 정쟁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정치인들이 현역 해병대 장성을 국회에 불러 모욕을 주고, 북한과 러시아의 도발을 정쟁용으로 이용하는 모습은 임진왜란 전의 조선 정치상황과 흡사하다.

2024-06-25

이준석과 ‘보수 정체성’

심충택 논설위원 3권분립을 뿌리째 흔드는 민주당의 각종 특검법안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재의결 될지가 22대 국회 최대 관심사다. 민주당은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김건희 특검법’과 ‘방송 3법’ 등 22개 법안을 이번 국회에서 중점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현재 사분오열된 국민의힘 상황으로 봤을 땐 ‘정쟁(政爭) 대상’인 법안 상당수는 재의결 될 소지가 다분하다.여권은 다음달 전당대회를 앞두고 주류인 친한(친한동훈)계를 비롯해 친윤(윤석열)·비윤·반윤계, 중진모임, 소장파모임(첫목회) 등으로 분열돼 있다. 일부 의원이 당론과는 달리 쟁점법안에 찬성표를 던지거나 아예 본회의에 불참하면 재의결에 필요한 정족수(재석의원 3분의 2)가 채워질 수 있다. 이미 조경태·안철수·김재섭·한지아(비례대표) 의원 등은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한다는 견해를 밝혔고, 당권도전이 유력한 김재섭 의원은 ‘김건희 특검법’에도 찬성하고 있다.최근에는 야권 6개 정당이 공동교섭단체 구성을 추진하고 있어 국민의힘으로선 상황이 더 나빠졌다. 6개 정당 의석수는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진보당 각각 3석, 새로운미래·새진보연합·사회민주당이 각각 1석이다. 의석수가 20석을 넘으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교섭단체를 구성하면 국회 의사일정 조정·상임위원회 구성 등 국회 전반의 활동에 관여할 수 있게 돼 의사 개진이 한층 폭넓어진다. 공동교섭단체 구성과 관련해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의 선택이다. 이 의원이 만약 교섭단체라는 눈앞의 이익에 매몰돼 조국혁신당과 손을 잡을 경우 그의 정치적 기반인 보수 지지세력과는 영원히 같이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이 의원이 앞으로 폭넓은 국민지지를 받으려면 어떤 정체성을 가지느냐가 중요하다. 1차 시험대는 지방선거다. 그가 언급한 대로 개혁신당이 정치적 소수자인 청년인재, 경력단절 여성 등을 중심으로 공천해서 광역·기초단체장을 배출할 경우, 정치적 위상이 한순간에 올라갈 수 있다. 이 의원은 지난 2021년 6·11 전당대회 당시 30대에 당대표에 당선된 성공경험도 있기 때문에 좋은 성적표를 낼 가능성이 있다. 다만, 공천과정에서 드러날 그의 정체성이 주요변수가 될 것이다. 이준석의 정치적 후견자인 김종인씨는 총선 당시 ‘이준석 대구 출마론’을 언급한 적이 있다. 이 의원이 보수텃밭인 TK(대구경북)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개혁신당은 지난달 25일 야권이 서울도심에서 연 ‘채상병 특검 촉구 장외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재명 대표가 너무 착하다’고 했던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악질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는 사람에 대해 눈살 찌푸리는 아첨을 그만두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일련의 개혁신당 언행이 이준석의 ‘보수정체성 콘텐츠’를 채워나간다고 본다. 이 의원은 4·10총선 과정에서 이낙연의 새로운미래 정당과 ‘빅텐트’를 쳤다가 실패한 악몽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2024-06-18

3권분립 뒤흔드는 ‘여의도 권력’

심충택 논설위원 포항 앞바다 가스·유전 개발을 위한 시추가 민주당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국회 동의 없는 시추예산 집행이 절대 불가하다는 게 민주당 주장이다. 이를 놓고 한 여당 의원은 “국민 1인당 25만 원씩 나눠주는 돈으로 시추 130번을 할 수 있다”고 비꼬았다. 민주당은 “20% 성공률은 액트지오의 주장일 뿐”이라며, 정부자료를 검토한 뒤 투입 예산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했다. 미국 액트지오사의 아브레우 대표는 “유전 가능성은 국가의 큰 경사인데, 한국처럼 논쟁이 뜨거운 것은 처음 본다”고 한탄했다.우리나라가 ‘산유국’이 될 수 있는 확률이 20%가 된다는 것은 축배를 들어야 할 일이다. 특히 포항을 비롯한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영일만 근해에서 ‘유전 대박’이 터지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민주당만은 액티지오사에 대한 의혹을 확산시키며 윤석열 정부의 유전 개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정쟁’ 앞에선 국익도 걸림돌이 되는 모양이다.국회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은 최근 민주주의의 근간인 ‘3권분립’을 위협하는 행위를 서슴없이 하고 있다. 전직 검사장 출신들이 주도하는 각종 특검법안을 만들어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 뒤흔들고 있다. 이제는 ‘판사탄핵’을 언급하는 단계까지 왔다.민주당은 행정부 장악을 위해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채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종합 특검법’을 발의했다. 행정부 수반인 윤 대통령과 영부인의 사법처리를 정조준하고 있는 법이다. 채상병 특검법은 대통령 격노설·이종섭 전 장관의 출국 과정·대통령실 직무 유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건희 특검법에서는 민주당 입맛대로 검사와 판사를 임명해 수사·재판을 하겠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민주당은 이와함께 쌍방울그룹의 불법 대북송금에 관여한 혐의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자, “검찰의 조작 수사”라며 ‘대북송금 관련 검찰 조작 특검법’ 처리를 당론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만약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관련 검사들의 탄핵소추를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민주당은 행정·입법·사법부에 이어 ‘제4부’로 불리는 언론장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는 것이 주요 사례다. 만약 탄핵소추가 이루어지면 김 위원장은 헌법재판소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직무가 정지되며, 방통위는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사실상 식물 상태가 된다.민주당은 KBS·MBC·EBS 등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회 이사진 추천권을 친야 성향 단체로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방송 3법’도 추진하고 있다.이번 국회에서는 두 번의 큰 선거를 치르게 된다. 2026년에 지방선거, 2027년에 대선이 있다. 민주당이 가속페달을 밟는 특검정국에 선거까지 겹치게 되면 정쟁은 더욱 격화될 것이다. 민주당은 ‘총선승리의 민의’를 정권타도나 대통령 탄핵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국가적 과제인 민생을 외면하고 3권분립까지 뒤흔드는 입법권력에 집착하면 반드시 민심의 역풍을 맞게 된다.

2024-06-11

‘보복정치’로는 民心 얻을 수 없다

심충택 논설위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22대 국회 문을 열자마자 윤석열 대통령 부부 등을 겨냥한 특검법 폭주에 나서 분위기가 살벌하다. 민주당은 가장 먼저 ‘채상병 특검법’을 재발의했다. 윤 대통령을 특검 표적으로 정조준하고 있다. 해병대 수사단이 채상병 사망 사건 조사 기록을 경찰에 이첩하던 날 윤 대통령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통화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권에서는 “탄핵까지 거의 온 것 아닌가”라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온다.중앙지검장 시절 윤 대통령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던 민주당 이성윤 의원은 최근 ‘김건희 종합 특검법’을 발의했다. 주가조작 의혹, 허위 경력 기재 사기, 뇌물성 전시회 후원, 대통령 공관 리모델링·인테리어 공사 특혜, 민간인의 대통령 부부 해외 순방 동행,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를 수사 대상으로 지목했다.법안 내용을 보면, 자신들 입맛대로 검사와 판사를 임명해 수사·재판을 하겠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검 후보 2명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이 중 1명을 임명하도록 했다. 더 기막힌 것은 압수 수색, 구속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영장 전담 법관을 따로 지정하고, 재판도 전담 재판부가 심리하도록 한 것이다. 수사와 재판의 공정성을 원천배제한 법안이다.조국혁신당은 1호 법안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했다. 한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법무장관 시절 자녀의 논문을 대필했다는 가족 관련 의혹과, 작년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설명 과정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를 수사 대상으로 명시했다. 일각에선 “조민 아빠의 복수극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온다.조국 대표 가족은 자녀 입시비리로 딸(조민)은 의사면허를 잃고 아내는 3년여 수형 생활을 했다. 조 대표도 유죄를 선고받고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조 대표는 “과거 검찰이 내 딸은 일기장과 고교 생활기록부, 체크카드, 신용카드 내역을 조사했다. 그러나 한동훈 딸 같은 경우, 소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압수수색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며 검찰의 불공정성을 제기했다.야권은 최근 윤 대통령 지지율이 21%까지 떨어진 한국갤럽 여론조사가 나오자 입법폭주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든, 민심은 자기편이라는 것을 자신하고 있는 듯하다.22대 국회가 시작부터 복수심과 증오심으로 가득 찬 장소로 변한 것 같아 충격적이다. 명색이 국민대의기관인 국회가 앞으로 ‘특검정치’라는 어둡고 파괴적인 어젠다를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존재이유가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많은 국민이 느끼고 있지만, 특검정국은 사법체계와 정부의 행정기능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다분하다.야권이 윤 대통령 부부와 한 전 위원장을 처단대상으로 규정하고, 국회를 ‘복수의 장’으로 만들면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일시적으로는 증오심에 가득 찬 보복정치가 민심을 얻는다는 착각을 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파멸을 불러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24-06-04

포항시민사회의 ‘담론문화 확산’ 응원한다

심충택 논설위원 포항환경연대가 지난주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을 어젠다로 하는 지역사회 포럼 결성을 제안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많이 놀랐다. 포럼 의제에 우선 공감이 갔지만, 토론문화가 거의 실종되다시피한 대구경북(TK) 지역에서 어떻게 이런 담론을 제기할 결정을 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다.포항지역, 나아가서는 TK지역 발전에 꼭 필요한 개방성·다양성 확보를 위해서는 포항환경연대 같은 시민단체의 담론문화 확산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포스코그룹의 수소환원제철소 건립문제는 포항제철소가 포항에 남을지 떠날지를 결정하는 중대한 이슈이기 때문에, 포항뿐 아니라 TK지역사회 전체가 적극 나서서 해결해야 할 숙제다. 포항환경연대가 언급한 것처럼, 산·학·연과 시민사회, 노동계, 언론계 등 각계가 참여하는 포럼이 하루빨리 결성돼 수소환원 제철 프로젝트 추진과 관련한 다양한 해법이 나오길 기대한다. 포럼을 통한 시민사회의 제안은 정부나 포스코 그룹의 프로젝트 추진속도, 의사결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가 로드맵대로 진행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포항지역 일부 시민단체가 “바다를 메우면 해양생태계가 오염된다”며 반대하고 있고, 비용도 큰 부담이다. 해외 주요 철강강국들은 정부차원에서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에 천문학적인 지원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생색내기용 지원에 그치고 있다. ‘수소환원제철 포럼’은 이런 이슈를 심도 있게 토론하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TK지역에서 경험하기 힘든 것들 중의 하나는 토론문화다. 대신 이 지역은 계취문화와 저녁모임이 발달해 있다. 도시는 커졌지만 사회문화는 여전히 전통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도시에서는 보편화된 조찬기도회나 조찬세미나도 이 지역에선 찾아보기가 어렵다. 대신 동창회다 향우회다 해서 끼리끼리 모이는 저녁모임은 많다. 사적모임을 선호하는 이런 경향은 담론문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온라인 속에서도 TK지역은 폐쇄적이다.박한우 영남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스스로를 강자인 줄 알고 있지만, 온라인 속에서는 약자”라고 진단하고 있다. 온라인 공간을 만들어 낸 인터넷은 수평적이고 진보적이어서 위계적이고 보수적인 TK지역과는 화학적으로 잘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특히 이러한 온라인속의 폐쇄성이 지역경제에도 타격을 준다는 분석을 했다. 정치·사회·경제·문화 모든 분야에서 개방적이지 못한 지역이 외면당하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TK지역이 개방적이고 매력적인 도시가 되려면, 지역 현안을 다루는 ‘수소환원제철 포럼’ 같은 담론문화가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꽃을 피워야 한다. 그래야 사회전체가 폐쇄성에서 벗어나 광장처럼 열릴 수 있다. 한 가지 제언하고 싶은 것은 곧 출범할 ‘수소환원제철 포럼’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참여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들어 포럼 멤버 중에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건강한 담론이 형성될 수 있다.

2024-05-28

MB의 포항방문에 대한 기자의 斷想

심충택 논설위원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고향인 포항시 흥해읍 덕실마을을 1박 2일 일정으로 방문했다. 유년시절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추억이 그리워 찾았다고 한다. 그의 고향집은 초가집 두 채가 있는 전형적인 옛날 시골가옥이다. MB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대통령 재임 중에도 ‘낙서를 하다가 무의식적으로 포항을 쓸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정은 늘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대통령 퇴임직후인 2013년 겨울 덕실마을을 찾은 후 11년 만의 고향 나들이다.MB의 고향방문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이강덕 포항시장, 백인규 포항시의회 의장, 김정재 국회의원, 이상휘·이달희 국회의원 당선인 등도 함께했다. 고향주민들은 덕실마을에 있는 경주이씨 재실(이상재) 기념식수와 풍물놀이 행사를 주최하면서 MB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MB도 주민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안부를 물으면서 향수를 달랬다. 고향방문 이틀째인 17일에는 자신이 어린시절 다녔던 교회를 둘러보고, 지역 경제인들과 점심을 같이했다. 그 후 친구인 천신일 세중그룹 회장의 박사학위(포스텍 명예공학박사) 수여식에 참석한 후 KTX를 타고 서울로 갔다.언론이 MB의 고향방문에 관심을 쏟은 것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행보와 비교가 되는 탓도 있다. 그가 사면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비춘 것은 지난 4·10 총선일 서울의 한 투표장을 찾은 이후 한 달이 넘었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역사에 맡긴 채 한 명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조용하게 지내는 것이다. 그는 이번 고향방문에서도 대통령 재임시절의 업적이나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다만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이강덕 포항시장이 4대강 사업을 비롯해 원전 수출, G20정상회의 개최, 영일만항 개항, KTX포항 노선 개통, 블루밸리국가산단 조성 등을 예로들며 고마움을 표시한 정도다. MB 재임시절인 2009년 9월 첫삽을 뜬 블루밸리국가산단(포항시 남구 구룡포읍·동해면·장기면일대)의 경우, 철강산업에 의존했던 포항을 신산업의 국제무대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가 된 곳이다. 포항은 현재 이곳을 이차전지·수소산업 중심의 미래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이차전지 산업의 대명사인 에코프로그룹은 이곳에 2028년까지 2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MB와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현대 정주영 회장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정 회장은 당시 “(이명박은) 평사원 일을 시켰는데 과장 일을 했고, 과장 일을 시켰는데 부장 일을 했다. 부장을 시켰는데 사장 일을 해 내더라”고 했다. 팔순이 넘긴 했지만, ‘샐러리맨의 신화’를 만들었던 MB가 국민과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많다. 예를들어 이번 고향방문에서 “의과대학과 종합병원이 들어서야 포항이 발전한다”고 한 말은 포항시민들에게 큰 힘이 됐다. 전직 국가원수가 정치적인 현안이 있을 때마다 개입하는 것은 문제가 많지만, 이번 MB의 포항방문처럼 여생을 고향사랑과 국민통합을 위해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다.

2024-05-21

효도문화가 왜 ‘올드한 가치’로 취급받나

심충택 논설위원 1970년대 한국의 효도문화에 대해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에게 가장 훌륭한 사상”이라고 했다. 토인비는 1973년 런던을 방문한 한국 정치인에게 “만약 인류가 새로운 별로 이주해야 한다면 꼭 가져가야 할 제1의 문화가 한국의 효 문화”라며, 우리나라 가족제도를 극찬했다. 당시 서구사회는 보수주의에 대한 청년들의 급진적인 저항으로 히피문화와 무정부주의가 활개를 치던 시기였다. 서구 지식인의 눈으로 봤을 때, 자식이 늙은 부모를 봉양하고, 콩 한 쪽도 이웃끼리 나눠 먹은 한국문화가 신기하고 부럽게 느껴졌을 것이다.극심한 불경기로 인해 이번 어버이날(8일)에는 꽃시장에도 찬바람이 분다고 한다. 가정의 달 성수기 임에도 ‘카네이션 특수’가 사라지면서 화훼농가와 꽃집들이 어려움을 겪는 모양이다. 부모에게 꽃 한 송이를 선물하는 어버이날 문화를 ‘낡은 유교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보편화되는 추세가 아닌지 우려된다.부모세대를 경시하는 풍조는 우리나라 정치권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7월말 민주당 혁신위를 이끌었던 김은경 위원장은 “자기 나이로부터 여명(남은 생명)까지 비례적으로 투표해야 한다.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1로 표결해야 하느냐”는 기막힌 말을 했다. 20세 유권자 표는 60세 유권자의 세 배에 해당하는 표를 비례 행사해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사고방식이다. 지난 2004년 총선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60세 이상은 투표하지 말고 집에서 쉬시라”고 했고,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은 “50대에 접어들면 뇌세포가 변해 사람이 멍청해진다”는 발언을 해 비난을 받았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도시철도 무임승차 제도 폐지 공약을 내놨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어버이날 기념행사에 참석해 “부모님들께 효도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사이에서 우리나라 노인들의 빈곤율과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통계는 수년째 변하질 않는다. 간병과 가난에 대한 고통으로 아들이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는 비극이 줄이어 발생하는 나라는 아마 한국뿐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올해 약 950만명으로, 내년에는 1천만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100세를 넘기는 노인들 역시 해마다 늘어 올해는 10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해 노인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인터넷을 보니, 요즘에는 여러가지 ‘효도대행’ 상품도 나온다. 부모에게 단순하게 주기적인 문자를 보내주는 것부터 손 편지 쓰기, 함께 술 마시기, 같이 산책하기 등 상품내용이 다양하다. 1주일에 2~3번 안부문자 보내는 데는 5만 원, 선물 대리발송 옵션이 붙는 경우에는 5만 원이 추가되는 식이다. 토인비가 부러워했던 우리나라 효도문화가 점점 퇴색돼 가는 세태를 겪으면서 마음이 씁쓸해진다. 아무런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부모세대들의 희생과 가족문화가 바탕이 됐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2024-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