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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망가지는 국가의료시스템… 이게 개혁인가

심충택 논설위원 진료와 교육, 임상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던 한국 의료시스템이 망가지고 있다. 대규모 의대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7개월째 지속되면서 환자와 수련병원, 의과대학 모두 패닉상태다. 중환자들은 생명을 위협받고, 병원과 학교를 떠난 전공의와 의대생 3만명은 돌아올 기미가 없다. 지친 의대교수들도 병원을 떠나고 있다. 입원·외래환자가 반토막난 수련병원들은 경영난으로 간호사 채용을 못하고 있다. 의대생, 전공의, 전문의로 이어지는 의사배출 시스템이 붕괴 직전인 시점에 경찰은 박단 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을 조사하기 위해 출석요구서까지 보내 의정갈등을 키우고 있다.지금 의료시스템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전공의들을 병원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현재 전공의들은 의대증원 철회 없이는 병원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의사들을 악마화 한다’면서 정부에 대한 감정도 지극히 좋지 않은 상태다. 수련병원들이 지난달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마감했지만, 지원자가 거의 없었다. 미복귀 전공의 대다수는 미용성형을 주로 하는 병의원, 요양병원 등의 일반의로 취업하거나 미국 의사 면허 취득 등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수련병원에서 전공의가 사라지면 전문의와 의대교수들도 배출될 수 없다. 내년 전문의 배출이 평소의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가 전공의에게 의존했던 수련병원을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의사 배출이 꽉 막힌 상황에서 실효성이 의문이다. 경북대병원의 경우, 올 상반기에만 의대교수 21명이 진료와 업무에 지쳐 사직했다.전국 의과대학 재학생들의 수업거부가 몰고 올 사회적 파장도 만만찮다. 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기준 전국 40개 의대 재학생 1만8217명 가운데 출석하고 있는 학생은 495명에 불과하다. 내년 1학기까지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유급이 확정된다면, 2025학년도에는 현재 1학년과 신규 입학생(7500명)이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동시에 진급하기 때문에 6년 내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다. 현 의대 교육여건상 수업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이와함께 의대 본과 4학년들이 의사 국가시험 지원을 계속 거부하게 되면, 내년에는 신규의사도 배출되지 않는다. 최근 마감한 의사 국시 실기시험 접수자는 364명으로 지난해(3212명)의 11.3%에 불과하다.국가 의료시스템 마비현상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전공의에 대해 “기계적으로 법을 집행할 것”이라며 강경방침을 고집하고 있다. 의료계에선 “내년도 의대 신입생이 전공의가 되는 2031년이 돼야 의료공백 사태가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란 말도 나온다. 문제는 현 정부입장으로선 전공의 복귀를 위해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만약 의사를 양성하는 국가 의료시스템이 지금처럼 서서히 붕괴돼 중환자들을 치료할 의사가 급격히 줄어든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2024-08-06

‘TK 3대정신’은 지역민의 자존심이다

심충택 논설위원 홍준표 대구시장이 최근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운동, 박정희 산업화를 ‘TK(대구경북) 3대정신’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이 지역은 역사적인 고비 때마다 항상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선거철만 되면 ‘올드한 보수도시’라는 정치적 프레임에 걸려, 자존심이 상하는 사례가 잦았기 때문이다.‘대한제국이 일본에 진 빚 1300만원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서 시작됐다. 1907년 1월 29일 대구 광문회를 이끌던 서상돈과 김광제가 불씨를 지폈고, 국민운동으로 확산됐다. 당시 의연금을 낸 상당수는 TK지역 서민들이었다. 대구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는 ‘여성도 남성과 다르지 않다’고 호소하며 은장도, 은비녀, 은가락지를 내놓았다. 1907년 2월 21일자 대한매일신보는 “이천만 민중이 3개월 기한으로 금연하고, 그 대금으로 매인(每人)에게서 매월 20전씩 거둔다면 1300만원이 된다”고 호소했다. 안중근 의사와 이준 열사도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다. 이 운동은 외신을 통해 해외에 알려졌고, 중국과 멕시코, 베트남 외채보상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대구시는 지난 3일 새로 단장한 두류공원 광장을 ‘2·28자유광장’으로 명명하는 행사를 열었다. 2·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 자유당 정권의 독재에 맞서 대구지역 8개 고교 학생들이 주도해 일으킨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운동이다. 마산 3·15의거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당시 영국의 더 타임스지는 2·28현장을 보도하면서, ‘대구는 일제 때부터 독립의 전통을 가지고 있고, 자유당 주도권에 제동을 걸어 왔으며, 저항의 역사를 기록하는 도시’라고 했다. 홍 시장은 “2·28자유광장 일대는 자유, 민주, 정의를 외친 대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리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대구시는 현재 동대구역 광장(박정희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상 제작과 설치를 위한 작가 공모에 들어갔다. 대구시의회는 지난달 본회의에서 관련 예산을 통과시켰다. 대구시는 남구 대명동 미군기지 반환 부지 내에 건립 중인 대구대표도서관 공원에도 박정희 동상을 건립한다.지금은 도시간의 경쟁이 국가간 경쟁 못지않다. 지방정부 역량에 따라 해당 도시의 품격과 경제적 수준이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벌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민선단체장들에겐 해당 도시를 대표하는 유무형의 자산에 대한 홍보작업이 중요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광주시가 오래전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 이름을 곳곳에 네이밍해 도시브랜드로 활용하고 있다.대구시가 홍 시장 취임 이후 관문(공항이나 역)이나 광장명칭을 새롭게 브랜드화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홍 시장은 그동안 공식석상에서 대구의 폐쇄성과 기득권 카르텔을 언급하면서, 대구사회가 외부세계와 단절돼 있다는 말을 자주 해 왔다. 앞으로 TK지역 이미지가 ‘보수꼴통 도시’가 아니라, 국채보상운동이나 1960년대 민주화운동, 1970년대 산업화의 주역도시로 대체되길 기대한다.

2024-07-30

‘교육·월급양극화’가 낳은 사회병리현상

심충택 논설위원 매일 막장드라마를 연출하는 정치권 영향 때문인지, 우리사회 모든 분야가 뒤숭숭하다. 법과 도덕, 규범이 무너지면서, 특히 사회 분위기에 민감한 고교생이나 청년들이 정상적인 일상생활에서 일탈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지난해 자퇴 등으로 학교를 떠난 고교생이 2만5792명(대구경북 2410명)에 달한다고 한다. 대부분 성적이나 교우관계, 규칙 적응 등에 어려움을 겪다가 학업 중단을 선택한 것으로 보여진다. 교사들은 “무리하게 설득하려다가 인권 침해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학부모가 ‘자퇴에 동의했다’고 하면 더는 말릴 수가 없다”고 했다.우리나라 대졸 청년 수백만명이 니트(NEET)족으로 살고 있다는 통계도 충격적이다. 니트족은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말한다.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1월부터 6월까지) 월평균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비경제활동인구가 405만8000명에 이른다. 대구의 경우 22만5000명이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만1000명이나 늘었다. 대구는 코로나가 대유행하던 2020년 상반기에 20만명을 넘어선 이후 계속 증가추세다.백수로도 불려지는 비경제활동인구는 통계상 실업자로도 분류되지 않는다. 이들이 취업이나 창업 준비를 하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자포자기한 상태로 놀고 있다면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을 낳을 수 있다.우리나라에서 고교생 자퇴나 니트족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회양극화 탓이 크다. 의대정원 확대 이후 서울 학원가를 중심으로 개설되고 있는 ‘초등 의대반’을 떠올려 보면 교육분야 양극화는 쉽게 이해될 것이다. 학생들이 중학교 때까지는 동급생과의 학력격차를 크게 인식하지 못하다가 고교에 진학하면 충격을 받는 케이스가 많다고 한다.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월 수백만원을 써가며 과외수업을 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간의 성적 격차는 줄이기가 어렵다.취업을 포기하는 대학 졸업생이 증가하는 이유는 아마 ‘월급 양극화’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의 억대급여나 성과급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보도되는데, 청년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중소기업에 취업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요즘은 대기업들이 수시·경력 채용을 확대하면서 대졸자들의 취업문은 더 좁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평균연봉 1억대인 현대차가 10년 만에 실시한 생산직 공채에 수만 명이 몰려 채용 사이트가 마비된 건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는 청년들의 기대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말해준다. 설상가상 올들어 내수와 건설경기 부진으로 청년층 고용시장의 찬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고 있다.사회 각 분야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것은 정부책임이 크다. 상속세나 종부세 개편과 같은 ‘부자 민원’에 민감한 정권이 들어설수록 양극화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학업이나 취업의욕은 한 번 떨어지면 여간해선 회복하기 어렵다. 사회양극화가 지금처럼 제동 없이 진행될 경우, 학교에 적응 못하는 고교생이나 백수로 살아가는 청년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2024-07-23

종부세 개편론은 ‘수도권 부자표’ 의식한 것

심충택 논설위원 울릉군의회는 최근 정치권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개편’ 논의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국세지만, 지방자치단체에 전액 교부되는 종부세는 그동안 울릉군 같은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시·군엔 재정 숨통을 트여주는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울릉군은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종부세 감면조치에 따라 올해 부동산 교부세가 98억원 감액돼 각종 사업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전국의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는 대부분 울릉군과 사정이 비슷하다. 지난해 종부세 감면조치로 국가재정수입(4조9609억 원)이 전해에 비해 2조6068억원이 감소해 자치단체 모두 재정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종부세는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사람에게 세금을 더 부과해 비생산적인 부동산 투기 수요를 억제한다는 취지로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부터 시행됐다. 현재 공시가격 9억원(1가구 1주택자는 12억원)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에게 부과된다.지난주에는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종부세와 관련, “불필요하게 과도한 갈등과 저항을 만들어 낸 측면이 있다. 개편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밝혀, 민주당 전당대회의 쟁점이 됐다.당 원로들이 “종부세를 근본적으로 건드리는 것은 민주당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는 모습이다. 종부세 개편론은 지난달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주택 가격 안정 효과는 미미한 반면 세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요소가 상당히 있어 폐지 내지는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며 불을 지폈다.이 전 대표의 종부세에 대한 입장변화는 수도권 표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부세에 민감한 수도권 화이트칼라 고소득층을 민주당 지지쪽으로 흡수하면 차기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을 하는 것이다. 서울의 중위 아파트 가격이 12억을 넘어가면서 종부세는 수도권 선거의 최대변수로 자리잡았다.종부세는 수도권에서 세금을 걷어 비수도권으로 분배하는 기능을 한다. 지난해 종부세 납부자 상위 1%(4951명)가 낸 금액은 2조8824억원이다. 대부분 수도권 거주자들이다. 전체 종부세 결정세액 4조1951억원의 68.7%에 해당한다. 종부세가 폐지되면 자산이 많은 소수 상위 계층에 감세 혜택이 집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종부세 세수 펑크’는 지방자치단체에 큰 충격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종부세가 경제활동을 왜곡하면서도 세수 효과는 크지 않은 대표적 세금”이라고 했지만, 뭘 모르고 한 소리다. 종부세는 어려운 지방 재정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한다. 오죽하면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이 “종부세 개편은 지방세수로 활용되므로 신중해야 한다”며 대통령실 결정에 반기를 들었겠는가.현재 부동산교부세는 살림이 빠듯한 시·군일수록 더 많이 배분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앞으로 종부세를 더 완화하거나 폐지한다면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지자체의 충격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가난한 자치단체에 대한 세수 보전 대책 없는 종부세 개편은 큰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다.

2024-07-16

‘부자감세’ 정부…양극화 그늘 안보이나

심충택 논설위원 정부가 내년부터 ‘기업주가 밸류업’과 법인·소득·상속세 감면을 추진한다고 최근 밝혔다. 모두 재계의 오래된 민원이다. 기업주가 밸류업은 배당과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환원을 늘린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깎아주고, 해당 기업 주주에게도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제도다.결국은 ‘부(富)의 집중’을 인정하자는 정책이다. 우리나라의 부의 집중도는 증시 시가총액을 보면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 증시에서 4대 대기업 가문(삼성, SK, LG, 현대자동차)이 보유한 주식의 시가총액은 전체의 70% 정도를 차지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드워드 로이스가 “정치권력이 부의 불평등을 만든다”고 한 말에 실감이 가는 감세정책이다. 로이스는 권력층에서 자본이 있는 쪽으로 자본을 더 쏠리게 하는 제도를 만든다고 했다. 로이스가 언급한 제도는 세금과 부동산, 상속, 교육제도다. 그는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는 책도 냈다. 그는 자본만큼이나 불평등하게 분배된 권력을 바로잡지 않고는 양극화를 몰아낼 수 없다고 했다.우리사회는 전 분야에서 양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선 소득이 상위 20%에게 집중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4년 1·4분기 ‘소득 5분위별 가계수지 조사’ 내용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월 평균소득이 1분위(하위 20%)가구는 115만7000원인데 비해 5분위(상위 20%)가구는 1125만 8000원이다. 부자와 빈곤가구의 소득이 평균 10배 정도 차이가 난다.교육양극화도 충격적인 수준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3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중3·고2대상)’를 보면, 부유층 아이들이 고가의 사교육 시장으로 몰려갈 동안 공교육에 의존해야 하는 가난한 아이들은 기초학력마저 무너지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고2 수학 과목 기초미달 비율은 계속 상승세를 타다 2022년에는 15.0%까지 올라갔다. 한글을 읽고 쓸 수는 있지만 해석력이 떨어지는 중·고생들도 증가하고 있다. 교육양극화는 졸업 후 직업과 소득의 격차로 이어진다.수도권·비수도권 간의 주택가격 양극화도 심각하다. 최근 수도권은 아파트 거래량이 늘어나고 일부 단지에서는 신고가(新高價)가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대구경북을 비롯한 비수도권에서는 여전히 청약이 미달되고 ‘악성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다. 빈부(貧富)를 가르는 주택가격 양극화는 앞으로 더 심화할 것이다.정부가 양극화의 심각성을 무시한 채 부자감세 정책에 몰두하는 모습은 국민 눈에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비친다. 부자감세 정책은 결국 ‘계층이동 사다리’를 차버리겠다는 발상이다. 권력의 주축을 이루는 정부 고위 정책입안자나 정치인이 재계의 민원에 종속되면, 한국사회는 희망이 없다. 양극화가 이대로 지속되면 결혼도, 자녀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민심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 그러려면 권력자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재산을 형성하고, 권력을 재생산하는지를 잘 감시해야 한다.

2024-07-09

65세이상은 ‘운전금지·移民’ 요구하는 사회

심충택 논설위원 그저께 서울에서 역주행으로 9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교통사고의 운전자 나이가 68세로 알려지면서 고령자 운전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운전자는 급발진으로 인한 사고라고 주장하지만, 고령자 운전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강하게 형성되는 것 같다.이 사고로 최근 우리사회에 확산하고 있는 ‘노인 이지메(왕따) 풍조’가 더 심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지금도 찬반논란이 일고 있지만, 지난달 정부가 ‘65세 이상 노인들의 운전능력을 평가해 야간·고속도로 운전금지 등을 조건으로 면허를 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이 정부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8년 개띠’로 표현되는 베이비붐 세대가 지난해부터 노인 범주에 들어가면서 우리사회는 노인인구가 급증했다.이들 베이비붐 세대는 아직 노인이 됐다는 의식이 전혀 없이 열심히 사회·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다. 운전은 필수다. 그런데 갑자기 ‘조건부 운전면허 대상’으로 지명 당하니, 사회적으로 고려장을 당한다는 상실감을 지울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더 충격적인 것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다. 연구원이 매달 펴내는 간행물(재정포럼) 5월호에 실린 이 보고서에서 장우현 선임연구위원은 “노령층이 물가 저렴하고 기후가 온화한 국가로 이주하여 노후를 보내면 생산 가능 인구 비중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노인을 이민 보내면 ‘비(非)생산 인구’를 줄일 수 있다는 기가 막힌 보고서다.의식적이든 실수든, 정부와 공공기관이 내놓은 이러한 ‘노인 이지메’ 정책은 시민사회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최근 대구 수성구 한 4성급 호텔 헬스장에서 ‘만 76세 이상인 고객은 회원 등록과 일일 입장이 불가하다’는 글이 게시돼 논란이 됐다.정부보다는 연령을 10살 정도 올렸지만, 헬스장의 처사가 “상식이하의 노인차별”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지난달에는 개그맨 3명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경북 영양군을 소개하면서 “여기가 1만 5000명 장수 마을이다.들어본 적이 있냐. 중국인 줄 알았다”며 노인인구가 주류인 자치단체를 거리낌없이 조롱했다. 이 유튜브 출연자들은 영양군에서 젤리를 먹다가 “내가 할머니의 살을 뜯는 것 같다”는 섬뜩한 표현을 하기도 했다.우리 사회가 65세 이상 인구를 노인이라는 범주에 놓고 ‘님비(Not In My Backyard)’의 대상으로 삼는 경향은 오래됐다.최근에는 좌·우 진영싸움과 세대간의 갈등, 부양 부담 등이 이러한 님비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젊은층이 재미삼아 쓰는 실버존, 노인네, 틀딱충, 연금충과 같은 단어들도 노인혐오 분위기를 부추긴다. 정치권과 정부가 나서서 이러한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이 순리지만, 오히려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으니 상황이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모두가 늙어가는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간의 증오심과 갈등을 유발해 권력을 유지하거나 정치적 이익을 노리는 집단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2024-07-02

푸틴의 협박, ‘양치기소년’ 보듯 해도 되나

심충택 논설위원 지난주 야당 단독으로 연 국회법사위 청문회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증인으로 불려나온 전직 국방장관과 현역 해병대 장성을 상대로, 보기가 민망할 정도의 인격모독을 한 정청래 법사위원장의 언행은 많은 시청자를 분노케 했다. 박지원 의원은 정 위원장이 ‘10분간 증인 퇴장’ 명령을 반복하자 “한발 들고 두손 들고 서 있으라고 해야 되지 않느냐”며 조롱하기도 했다. 당장 전쟁이 나면 부하들과 함께 전쟁터에 나가야 할 현역 군인을 앉혀놓고 모욕과 협박을 하는 국회의원의 거친 태도는 충격적이었다.법사위 청문회가 열리기 하루 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을 겨냥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한다면, 러시아는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고 협박했다. ‘북·러간 파트너십 조약’체결에 대해 우리정부가 대응조치를 취하자, 즉각 “보복하겠다”고 나선 것이다.푸틴의 거침없는 협박을 듣는 우리 국민은 우크라이나의 전쟁참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린이들이 무차별 살육되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여성들이 집단 성폭행당하는 외신뉴스는 지구촌 전체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4월 “오늘의 우크라이나가 내일의 동아시아”라고 했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한반도나 대만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국내외에서 한국의 안보위기를 우려하는데도, 우리정치권은 ‘정쟁’에 여념이 없다.22대 국회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은 오히려 러시아 편을 드는 것처럼 비친다. 대통령실이 북·러 군사조약에 항의하며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하자 “한·러 관계를 파탄 내고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고조시키는 매우 잘못된 것”이라며 푸틴입장을 두둔했다.박찬대 원내대표는 과거 북한의 오물풍선 공격과 관련해 우리정부가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정지시키자 “휴전선에서 고사포탄 날아가던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거냐”며 빈정대기도 했다.국가안보마저 정쟁으로 몰아가는 민주당 행태를 보면서,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 정치상황이 오버랩된다. 조선은 연산군 이후 임란 직전까지 4대사화와 훈구·사림 세력간 당쟁, 관료들의 부정부패, 여진족과 왜구의 약탈사건 등으로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백성들은 당시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지만, 관료들은 당쟁으로 날을 지새웠다. 그러다가 1592년 4월 임란이 발생하자 관료와 정규군은 대부분 도망가고, 의병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조선을 유린한 임진왜란의 참혹함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다.러시아는 6·25전쟁 당시 북한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해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제 군사원조를 핵심으로 하는 북·러간의 조약체결로, 한반도 전쟁 시 러시아가 개입할 가능성이 아주 커졌다. 정치권은 푸틴의 협박을 ‘양치기 소년’ 보듯 해선 안 된다.국가 안보는 절대 정쟁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정치인들이 현역 해병대 장성을 국회에 불러 모욕을 주고, 북한과 러시아의 도발을 정쟁용으로 이용하는 모습은 임진왜란 전의 조선 정치상황과 흡사하다.

2024-06-25

이준석과 ‘보수 정체성’

심충택 논설위원 3권분립을 뿌리째 흔드는 민주당의 각종 특검법안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재의결 될지가 22대 국회 최대 관심사다. 민주당은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김건희 특검법’과 ‘방송 3법’ 등 22개 법안을 이번 국회에서 중점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현재 사분오열된 국민의힘 상황으로 봤을 땐 ‘정쟁(政爭) 대상’인 법안 상당수는 재의결 될 소지가 다분하다.여권은 다음달 전당대회를 앞두고 주류인 친한(친한동훈)계를 비롯해 친윤(윤석열)·비윤·반윤계, 중진모임, 소장파모임(첫목회) 등으로 분열돼 있다. 일부 의원이 당론과는 달리 쟁점법안에 찬성표를 던지거나 아예 본회의에 불참하면 재의결에 필요한 정족수(재석의원 3분의 2)가 채워질 수 있다. 이미 조경태·안철수·김재섭·한지아(비례대표) 의원 등은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한다는 견해를 밝혔고, 당권도전이 유력한 김재섭 의원은 ‘김건희 특검법’에도 찬성하고 있다.최근에는 야권 6개 정당이 공동교섭단체 구성을 추진하고 있어 국민의힘으로선 상황이 더 나빠졌다. 6개 정당 의석수는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진보당 각각 3석, 새로운미래·새진보연합·사회민주당이 각각 1석이다. 의석수가 20석을 넘으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교섭단체를 구성하면 국회 의사일정 조정·상임위원회 구성 등 국회 전반의 활동에 관여할 수 있게 돼 의사 개진이 한층 폭넓어진다. 공동교섭단체 구성과 관련해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의 선택이다. 이 의원이 만약 교섭단체라는 눈앞의 이익에 매몰돼 조국혁신당과 손을 잡을 경우 그의 정치적 기반인 보수 지지세력과는 영원히 같이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이 의원이 앞으로 폭넓은 국민지지를 받으려면 어떤 정체성을 가지느냐가 중요하다. 1차 시험대는 지방선거다. 그가 언급한 대로 개혁신당이 정치적 소수자인 청년인재, 경력단절 여성 등을 중심으로 공천해서 광역·기초단체장을 배출할 경우, 정치적 위상이 한순간에 올라갈 수 있다. 이 의원은 지난 2021년 6·11 전당대회 당시 30대에 당대표에 당선된 성공경험도 있기 때문에 좋은 성적표를 낼 가능성이 있다. 다만, 공천과정에서 드러날 그의 정체성이 주요변수가 될 것이다. 이준석의 정치적 후견자인 김종인씨는 총선 당시 ‘이준석 대구 출마론’을 언급한 적이 있다. 이 의원이 보수텃밭인 TK(대구경북)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개혁신당은 지난달 25일 야권이 서울도심에서 연 ‘채상병 특검 촉구 장외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재명 대표가 너무 착하다’고 했던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악질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는 사람에 대해 눈살 찌푸리는 아첨을 그만두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일련의 개혁신당 언행이 이준석의 ‘보수정체성 콘텐츠’를 채워나간다고 본다. 이 의원은 4·10총선 과정에서 이낙연의 새로운미래 정당과 ‘빅텐트’를 쳤다가 실패한 악몽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2024-06-18

3권분립 뒤흔드는 ‘여의도 권력’

심충택 논설위원 포항 앞바다 가스·유전 개발을 위한 시추가 민주당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국회 동의 없는 시추예산 집행이 절대 불가하다는 게 민주당 주장이다. 이를 놓고 한 여당 의원은 “국민 1인당 25만 원씩 나눠주는 돈으로 시추 130번을 할 수 있다”고 비꼬았다. 민주당은 “20% 성공률은 액트지오의 주장일 뿐”이라며, 정부자료를 검토한 뒤 투입 예산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했다. 미국 액트지오사의 아브레우 대표는 “유전 가능성은 국가의 큰 경사인데, 한국처럼 논쟁이 뜨거운 것은 처음 본다”고 한탄했다.우리나라가 ‘산유국’이 될 수 있는 확률이 20%가 된다는 것은 축배를 들어야 할 일이다. 특히 포항을 비롯한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영일만 근해에서 ‘유전 대박’이 터지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민주당만은 액티지오사에 대한 의혹을 확산시키며 윤석열 정부의 유전 개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정쟁’ 앞에선 국익도 걸림돌이 되는 모양이다.국회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은 최근 민주주의의 근간인 ‘3권분립’을 위협하는 행위를 서슴없이 하고 있다. 전직 검사장 출신들이 주도하는 각종 특검법안을 만들어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 뒤흔들고 있다. 이제는 ‘판사탄핵’을 언급하는 단계까지 왔다.민주당은 행정부 장악을 위해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채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종합 특검법’을 발의했다. 행정부 수반인 윤 대통령과 영부인의 사법처리를 정조준하고 있는 법이다. 채상병 특검법은 대통령 격노설·이종섭 전 장관의 출국 과정·대통령실 직무 유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건희 특검법에서는 민주당 입맛대로 검사와 판사를 임명해 수사·재판을 하겠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민주당은 이와함께 쌍방울그룹의 불법 대북송금에 관여한 혐의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자, “검찰의 조작 수사”라며 ‘대북송금 관련 검찰 조작 특검법’ 처리를 당론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만약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관련 검사들의 탄핵소추를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민주당은 행정·입법·사법부에 이어 ‘제4부’로 불리는 언론장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는 것이 주요 사례다. 만약 탄핵소추가 이루어지면 김 위원장은 헌법재판소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직무가 정지되며, 방통위는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사실상 식물 상태가 된다.민주당은 KBS·MBC·EBS 등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회 이사진 추천권을 친야 성향 단체로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방송 3법’도 추진하고 있다.이번 국회에서는 두 번의 큰 선거를 치르게 된다. 2026년에 지방선거, 2027년에 대선이 있다. 민주당이 가속페달을 밟는 특검정국에 선거까지 겹치게 되면 정쟁은 더욱 격화될 것이다. 민주당은 ‘총선승리의 민의’를 정권타도나 대통령 탄핵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국가적 과제인 민생을 외면하고 3권분립까지 뒤흔드는 입법권력에 집착하면 반드시 민심의 역풍을 맞게 된다.

2024-06-11

‘보복정치’로는 民心 얻을 수 없다

심충택 논설위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22대 국회 문을 열자마자 윤석열 대통령 부부 등을 겨냥한 특검법 폭주에 나서 분위기가 살벌하다. 민주당은 가장 먼저 ‘채상병 특검법’을 재발의했다. 윤 대통령을 특검 표적으로 정조준하고 있다. 해병대 수사단이 채상병 사망 사건 조사 기록을 경찰에 이첩하던 날 윤 대통령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통화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권에서는 “탄핵까지 거의 온 것 아닌가”라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온다.중앙지검장 시절 윤 대통령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던 민주당 이성윤 의원은 최근 ‘김건희 종합 특검법’을 발의했다. 주가조작 의혹, 허위 경력 기재 사기, 뇌물성 전시회 후원, 대통령 공관 리모델링·인테리어 공사 특혜, 민간인의 대통령 부부 해외 순방 동행,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를 수사 대상으로 지목했다.법안 내용을 보면, 자신들 입맛대로 검사와 판사를 임명해 수사·재판을 하겠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검 후보 2명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이 중 1명을 임명하도록 했다. 더 기막힌 것은 압수 수색, 구속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영장 전담 법관을 따로 지정하고, 재판도 전담 재판부가 심리하도록 한 것이다. 수사와 재판의 공정성을 원천배제한 법안이다.조국혁신당은 1호 법안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했다. 한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법무장관 시절 자녀의 논문을 대필했다는 가족 관련 의혹과, 작년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설명 과정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를 수사 대상으로 명시했다. 일각에선 “조민 아빠의 복수극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온다.조국 대표 가족은 자녀 입시비리로 딸(조민)은 의사면허를 잃고 아내는 3년여 수형 생활을 했다. 조 대표도 유죄를 선고받고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조 대표는 “과거 검찰이 내 딸은 일기장과 고교 생활기록부, 체크카드, 신용카드 내역을 조사했다. 그러나 한동훈 딸 같은 경우, 소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압수수색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며 검찰의 불공정성을 제기했다.야권은 최근 윤 대통령 지지율이 21%까지 떨어진 한국갤럽 여론조사가 나오자 입법폭주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든, 민심은 자기편이라는 것을 자신하고 있는 듯하다.22대 국회가 시작부터 복수심과 증오심으로 가득 찬 장소로 변한 것 같아 충격적이다. 명색이 국민대의기관인 국회가 앞으로 ‘특검정치’라는 어둡고 파괴적인 어젠다를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존재이유가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많은 국민이 느끼고 있지만, 특검정국은 사법체계와 정부의 행정기능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다분하다.야권이 윤 대통령 부부와 한 전 위원장을 처단대상으로 규정하고, 국회를 ‘복수의 장’으로 만들면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일시적으로는 증오심에 가득 찬 보복정치가 민심을 얻는다는 착각을 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파멸을 불러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24-06-04

포항시민사회의 ‘담론문화 확산’ 응원한다

심충택 논설위원 포항환경연대가 지난주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을 어젠다로 하는 지역사회 포럼 결성을 제안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많이 놀랐다. 포럼 의제에 우선 공감이 갔지만, 토론문화가 거의 실종되다시피한 대구경북(TK) 지역에서 어떻게 이런 담론을 제기할 결정을 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다.포항지역, 나아가서는 TK지역 발전에 꼭 필요한 개방성·다양성 확보를 위해서는 포항환경연대 같은 시민단체의 담론문화 확산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포스코그룹의 수소환원제철소 건립문제는 포항제철소가 포항에 남을지 떠날지를 결정하는 중대한 이슈이기 때문에, 포항뿐 아니라 TK지역사회 전체가 적극 나서서 해결해야 할 숙제다. 포항환경연대가 언급한 것처럼, 산·학·연과 시민사회, 노동계, 언론계 등 각계가 참여하는 포럼이 하루빨리 결성돼 수소환원 제철 프로젝트 추진과 관련한 다양한 해법이 나오길 기대한다. 포럼을 통한 시민사회의 제안은 정부나 포스코 그룹의 프로젝트 추진속도, 의사결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가 로드맵대로 진행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포항지역 일부 시민단체가 “바다를 메우면 해양생태계가 오염된다”며 반대하고 있고, 비용도 큰 부담이다. 해외 주요 철강강국들은 정부차원에서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에 천문학적인 지원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생색내기용 지원에 그치고 있다. ‘수소환원제철 포럼’은 이런 이슈를 심도 있게 토론하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TK지역에서 경험하기 힘든 것들 중의 하나는 토론문화다. 대신 이 지역은 계취문화와 저녁모임이 발달해 있다. 도시는 커졌지만 사회문화는 여전히 전통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도시에서는 보편화된 조찬기도회나 조찬세미나도 이 지역에선 찾아보기가 어렵다. 대신 동창회다 향우회다 해서 끼리끼리 모이는 저녁모임은 많다. 사적모임을 선호하는 이런 경향은 담론문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온라인 속에서도 TK지역은 폐쇄적이다.박한우 영남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스스로를 강자인 줄 알고 있지만, 온라인 속에서는 약자”라고 진단하고 있다. 온라인 공간을 만들어 낸 인터넷은 수평적이고 진보적이어서 위계적이고 보수적인 TK지역과는 화학적으로 잘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특히 이러한 온라인속의 폐쇄성이 지역경제에도 타격을 준다는 분석을 했다. 정치·사회·경제·문화 모든 분야에서 개방적이지 못한 지역이 외면당하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TK지역이 개방적이고 매력적인 도시가 되려면, 지역 현안을 다루는 ‘수소환원제철 포럼’ 같은 담론문화가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꽃을 피워야 한다. 그래야 사회전체가 폐쇄성에서 벗어나 광장처럼 열릴 수 있다. 한 가지 제언하고 싶은 것은 곧 출범할 ‘수소환원제철 포럼’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참여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들어 포럼 멤버 중에 수소환원제철소 건립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건강한 담론이 형성될 수 있다.

2024-05-28

MB의 포항방문에 대한 기자의 斷想

심충택 논설위원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고향인 포항시 흥해읍 덕실마을을 1박 2일 일정으로 방문했다. 유년시절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추억이 그리워 찾았다고 한다. 그의 고향집은 초가집 두 채가 있는 전형적인 옛날 시골가옥이다. MB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대통령 재임 중에도 ‘낙서를 하다가 무의식적으로 포항을 쓸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정은 늘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대통령 퇴임직후인 2013년 겨울 덕실마을을 찾은 후 11년 만의 고향 나들이다.MB의 고향방문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이강덕 포항시장, 백인규 포항시의회 의장, 김정재 국회의원, 이상휘·이달희 국회의원 당선인 등도 함께했다. 고향주민들은 덕실마을에 있는 경주이씨 재실(이상재) 기념식수와 풍물놀이 행사를 주최하면서 MB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MB도 주민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안부를 물으면서 향수를 달랬다. 고향방문 이틀째인 17일에는 자신이 어린시절 다녔던 교회를 둘러보고, 지역 경제인들과 점심을 같이했다. 그 후 친구인 천신일 세중그룹 회장의 박사학위(포스텍 명예공학박사) 수여식에 참석한 후 KTX를 타고 서울로 갔다.언론이 MB의 고향방문에 관심을 쏟은 것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행보와 비교가 되는 탓도 있다. 그가 사면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비춘 것은 지난 4·10 총선일 서울의 한 투표장을 찾은 이후 한 달이 넘었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역사에 맡긴 채 한 명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조용하게 지내는 것이다. 그는 이번 고향방문에서도 대통령 재임시절의 업적이나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다만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이강덕 포항시장이 4대강 사업을 비롯해 원전 수출, G20정상회의 개최, 영일만항 개항, KTX포항 노선 개통, 블루밸리국가산단 조성 등을 예로들며 고마움을 표시한 정도다. MB 재임시절인 2009년 9월 첫삽을 뜬 블루밸리국가산단(포항시 남구 구룡포읍·동해면·장기면일대)의 경우, 철강산업에 의존했던 포항을 신산업의 국제무대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가 된 곳이다. 포항은 현재 이곳을 이차전지·수소산업 중심의 미래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이차전지 산업의 대명사인 에코프로그룹은 이곳에 2028년까지 2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MB와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현대 정주영 회장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정 회장은 당시 “(이명박은) 평사원 일을 시켰는데 과장 일을 했고, 과장 일을 시켰는데 부장 일을 했다. 부장을 시켰는데 사장 일을 해 내더라”고 했다. 팔순이 넘긴 했지만, ‘샐러리맨의 신화’를 만들었던 MB가 국민과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많다. 예를들어 이번 고향방문에서 “의과대학과 종합병원이 들어서야 포항이 발전한다”고 한 말은 포항시민들에게 큰 힘이 됐다. 전직 국가원수가 정치적인 현안이 있을 때마다 개입하는 것은 문제가 많지만, 이번 MB의 포항방문처럼 여생을 고향사랑과 국민통합을 위해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다.

2024-05-21

효도문화가 왜 ‘올드한 가치’로 취급받나

심충택 논설위원 1970년대 한국의 효도문화에 대해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에게 가장 훌륭한 사상”이라고 했다. 토인비는 1973년 런던을 방문한 한국 정치인에게 “만약 인류가 새로운 별로 이주해야 한다면 꼭 가져가야 할 제1의 문화가 한국의 효 문화”라며, 우리나라 가족제도를 극찬했다. 당시 서구사회는 보수주의에 대한 청년들의 급진적인 저항으로 히피문화와 무정부주의가 활개를 치던 시기였다. 서구 지식인의 눈으로 봤을 때, 자식이 늙은 부모를 봉양하고, 콩 한 쪽도 이웃끼리 나눠 먹은 한국문화가 신기하고 부럽게 느껴졌을 것이다.극심한 불경기로 인해 이번 어버이날(8일)에는 꽃시장에도 찬바람이 분다고 한다. 가정의 달 성수기 임에도 ‘카네이션 특수’가 사라지면서 화훼농가와 꽃집들이 어려움을 겪는 모양이다. 부모에게 꽃 한 송이를 선물하는 어버이날 문화를 ‘낡은 유교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보편화되는 추세가 아닌지 우려된다.부모세대를 경시하는 풍조는 우리나라 정치권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7월말 민주당 혁신위를 이끌었던 김은경 위원장은 “자기 나이로부터 여명(남은 생명)까지 비례적으로 투표해야 한다.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1로 표결해야 하느냐”는 기막힌 말을 했다. 20세 유권자 표는 60세 유권자의 세 배에 해당하는 표를 비례 행사해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사고방식이다. 지난 2004년 총선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60세 이상은 투표하지 말고 집에서 쉬시라”고 했고,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은 “50대에 접어들면 뇌세포가 변해 사람이 멍청해진다”는 발언을 해 비난을 받았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도시철도 무임승차 제도 폐지 공약을 내놨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어버이날 기념행사에 참석해 “부모님들께 효도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사이에서 우리나라 노인들의 빈곤율과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통계는 수년째 변하질 않는다. 간병과 가난에 대한 고통으로 아들이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는 비극이 줄이어 발생하는 나라는 아마 한국뿐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올해 약 950만명으로, 내년에는 1천만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100세를 넘기는 노인들 역시 해마다 늘어 올해는 10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해 노인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인터넷을 보니, 요즘에는 여러가지 ‘효도대행’ 상품도 나온다. 부모에게 단순하게 주기적인 문자를 보내주는 것부터 손 편지 쓰기, 함께 술 마시기, 같이 산책하기 등 상품내용이 다양하다. 1주일에 2~3번 안부문자 보내는 데는 5만 원, 선물 대리발송 옵션이 붙는 경우에는 5만 원이 추가되는 식이다. 토인비가 부러워했던 우리나라 효도문화가 점점 퇴색돼 가는 세태를 겪으면서 마음이 씁쓸해진다. 아무런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부모세대들의 희생과 가족문화가 바탕이 됐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2024-05-07

파국으로 가는 의료대란… 정치권이 나서라

심충택 논설위원 의료대란 사태가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여권 내에서도 “정부가 이제 고집을 내려놓으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정부가 필요한 의사 규모를 못박으면서 의료개혁을 다 망쳐놨다”고 비판했다. 안 의원 지적처럼, 윤석열 정부는 의대증원 숫자에 연연해하면서 의정(醫政)갈등은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수련병원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현재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를 둔 가족들은 불안감 때문에 좌불안석이다. 상태가 언제 심해질지 알 수 없는 중환자들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수술 날짜가 잡히지 않아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암환자권익협의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정부는 무용지물인 의료개혁특위 대신 환자 보호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의료공백 속에서 그나마 버팀목이 돼온 대학병원 교수들도 지금까지는 장시간 중증 환자를 돌보며 정신적으로 버티고 있는 중인데, 이젠 체력적인 한계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수술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암 환자에게도 수술 날짜를 못 잡아주는 상황이 된 병원이 많은 모양이다. 수도권 빅5 병원 교수들은 피로감에 지쳐 어제(30일)부터 급한 환자가 치료되는 대로 사직하겠다고 밝혔다. 사직하기 전까지는 주 1회 휴진한다고 한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은 어제부터,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은 오는 3일을 휴진일로 잡았다. 전국 19개 의대가 참여하는 의대교수비대위도 당직 후 24시간 휴식 보장을 위해 주 1회 휴진하겠다고 결의했다.의료공백이 재난수준인데도 불구하고 정부 입장은 여전히 강경하다. 정부는 대입 전형 일정상 내년도 의대 정원 문제를 다시 논의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전공의가 이탈한 후에도 비상진료체계를 보강하고 있고, 상급종합병원 입원환자 추이와 중환자실의 변화, 수술·외래 현황 등을 봤을 때 기존의 추이와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심각한 의료공백 사태가 없다는 진단이다. 전공의 집단 이탈과 의대교수 휴진에도 불구하고 상급종합병원 의료공백 현상이 아직까진 심각하지 않다니 놀랍다. 정부가 시급성을 강조하는 ‘의대 2천명 증원정책’과도 모순되는 말이다.의료시스템의 파국을 막을 시간이 이젠 별로 없다. 전국 각 대학은 이달 말까지 학과별 정원 등 모집 요강을 발표해야 한다. 늦어도 이달 중순엔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해야 한다.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 사태도 코앞에 다가왔다. 이달에도 수업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한 해 수업 일수를 채울 수 없어 자동 유급된다.그저께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영수회담에서 이 대표는 여야, 정부, 의료계가 참여하는 국회 공론화 특위에서 함께 논의한다면 좋은 해법이 마련될 것 같다고 했다. 여야 정치권이 의대 증원에 대한 큰 틀의 합의를 할 수 있다면 의료대란을 해결할 수 있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2024-04-30

보수정당 지상과제는 ‘중수청 외연확장’

심충택 논설위원 집권여당 사상 유례없는 총선 참패를 두고 빚어진 윤상현 의원과 권영진 당선인(대구 달서병) 간의 설전은 국민의힘 향후 진로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 의원은 여당의 험지인 인천 출신이며 이번에 5선고지에 올랐고, 권 당선인은 재선 대구시장 출신에다 이번에 재선 국회의원이 됐다. 둘 다 당의 미래를 이끌고 갈 중진이다.설전은 윤 의원이 지난주 “영남 중심당의 한계가 총선 참패의 구조적 원인이며, 이들이 공천에 매달릴 수밖에 없어 당 지도부나 대통령에게 바른 소리를 전달하지 못했다”고 언급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권 당선인은 “선거 때만 되면 영남에 와서 표 달라고 애걸복걸하고, 무슨 문제만 생기면 영남 탓을 한다. 참 경우도 없고 모욕적”이라고 반박했다. 권 당선인은 차기 당 대표를 노리는 윤 의원이 정치적 야심을 채우기 위해 ‘영남책임론’을 거론한 것으로 보고 있다.이번 총선에서 TK(대구경북)는 25석 전석을 석권하고 PK(부산울산경남)는 6석을 제외한 34석을 획득해 국민의힘이 개헌 저지선을 가까스로 지킬 수 있었다. 영남권 여당 정치인들은 윤 의원이 영남책임론을 거론한 데 대해 충분해 섭섭해할 수 있다. TK지역에서는 ‘우리가 동네북이냐’는 소리도 실제 나온다.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당 내분이 생겨 안타깝긴 하지만, 나는 윤 의원이 던진 메시지에 공감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인요한 혁신위’를 꾸려 다양한 혁신과제를 내놨지만, 당 주류인 영남권 중진들이 혁신 흐름을 끊어 놓은 건 사실이다. 혁신위가 ‘중진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공식 제안했지만, 영남중진들 중 이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층) 입장에서 보면, ‘영남정치세력의 당내 권력독점’은 보수정당을 비토할 만한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여권 지지자들은 다들 걱정이 많다. 야권이 정치권력을 입맛대로 행사하는 상황에서 집권당의 ‘영남 자민련화’는 당연히 TK와 PK지역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역감정이나 소외감 같은 감정적인 부분을 떠나 현실적인 지역현안 해결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지역구 전체를 석권하면서 TK지역은 수많은 현안을 직접 받아줄 입법창구가 사실상 없어져 버렸다.더 큰 문제는 국민의힘이 영남당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할 경우, 2026년부터 2028년까지 10개월 여의 간격으로 잇달아 치러지는 지방선거·대선·총선에서도 승산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보수정당의 ‘영남 자민련화’를 막기 위해 ‘영남보수당’과 ‘수도권보수당’을 따로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도권에서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루빨리 ‘중수청’ 위주의 지도부 체제를 구성해서 당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지 않으면 국민의힘은 재기할 동력을 아예 상실하게 된다.늘 강조하지만, TK정치권과 유권자들은 이제 보수정당의 건강성과 외연 확장을 위해 전략적 선택을 할 때가 됐다.

2024-04-23

최악의 참패 분석할 ‘與총선백서’ 필요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 김재섭 당선자(서울 도봉갑)는 지난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총선 참패에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요인으로 ‘이종섭·황상무’를 꼽지만 이건 기폭제일 뿐이다. 정권 심판론은 2년 동안 축적됐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36세 청년인 김 당선자는 민주당 텃밭에서 49.05%를 얻어 당선됐다. 차기 당 대표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래 보수정당의 리더로 평가받는 인물이다.김 당선자의 언급처럼, 윤석열 정부는 지난 2년간 민심이반을 가져올 많은 정책을 고집스럽게 시행했다. 대표적인 게 서민과 청년들의 분노를 자극한 ‘대기업·부자 감세’ 정책이다.안 그래도 우리사회는 부모자산과 관계없이 개인이 노력하면 더 높은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층이동 사다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는 각종 지표(주택이나 금융소득과 같은 자산불평등)에서 쉽게 확인된다.이러한 불평등 사회변화 속에서 현 정부는 대표적인 부자세금인 금투세(금융투자소득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비롯해 상속세, 다주택자 양도세, 주주친화기업 상속세 등에 대한 폐지 또는 감면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서민과 청년들을 자극했다.총선이 임박해 ‘5년간 의대생 1만명 증원’ 정책을 발표한 것도 총선패배의 주요 원인이다. 의사나 의대생 가족들은 지금 “윤석열로 인해 멸문지화를 당했다”고 할 정도로 분노심에 가득 차 있다.대규모 증원이 가져올 후폭풍을 뻔히 알면서도 선거철에 불쑥 ‘2천명 증원’ 카드를 꺼내 든 발상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제 의사들의 적대감 해소보다, 국가 의료 시스템이 더는 망가지기 전에 의정갈등의 해법을 찾는 것이 급선무가 됐다. 지난해 4월 27일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이 정부가 간호사들의 지지를 잃은 것은 오래됐다.공무원들도 윤석열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다. 대기업이나 금융계 같은 타 직종에 비해 턱없이 급여가 낮은데다 현 정부 들어서는 연금개혁 움직임도 있어 특히 교사들이 반대세력으로 돌아섰다. 이 정부가 40~50대 노동계와 등을 진 지는 오래됐다.4·10총선 지역구 투표에서 국민의힘 득표수는 약 1천318만표(45.1%)다. 민주당과 대략 160만표 정도 차이가 난다.정부가 이번 총선에서 앞서 언급한 한두 가지 정책만 쓰지 않았어도 참패를 당하지 않았을 수 있다. 전통적인 보수지지 세력조차 적으로 만들었으니, 애초에 선거에서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앞으로도 윤 대통령이 이러한 스타일로 국정 운영을 할 경우 보수정당은 점점 지지세력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정부·여당이 2026년 지방선거와 차기대선(2027년 3월)에서 권력을 되찾아 오려면 가장 먼저 윤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 여당도 하루빨리 총선패배의 늪에서 벗어나 차기 선거 인재 발굴과 선거 전략 수립에 나서야겠지만, 윤 대통령의 ‘불통과 오만’ 통치 스타일이 변화하지 않으면 민심 회복이 어렵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백서가 필요하다”는 권성동 의원(강원 강릉)의 제안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2024-04-16

조국이 구상하는 22대 국회는 ‘막장드라마’

심충택 논설위원 오늘 총선에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포함한 야권이 200석을 확보하면 우리 사회는 극단의 분열과 증오사회로 치달을 수 있다.한 유력정치인은 “양 진영 간 내전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조국 대표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6월 국회가 개원하면 우선순위를 정해서 김건희 종합특검법이나 한동훈 특검법 같은 것을 민주당과 협의하겠다. 민주당도 동의할 것으로 보는데 빨리 합의할 수 있는 것이 최소 10가지는 된다”고 했다.조 대표는 그동안 “한 위원장의 딸이 논문대필로 스펙 부풀리기를 했다는 의혹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이 봐주기 수사를 했다”며 한동훈 특검법 발의를 공언해왔다.윤석열 대통령 탄핵이나 개헌은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10가지 중에 포함돼 있을 것이다.조 대표는 지난 3월 비례정당을 창당하면서 “우리가 건너야 할 강은 검찰독재의 강이고 윤석열의 강이다. 조국혁신당은 오물로 뒤덮인 ‘윤석열의 강’을 건너, 검찰독재를 조기에 종식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선 벌써 국회의장 자리에 강경성향인 추미애 후보를 내세워 그동안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제동이 걸렸던 법안들을 통과시켜야 한다며 맞장구를 치고 있다.아직 선거결과를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야권이 승리할 확률이 높다. 조국혁신당도 타 정당 의원들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법안을 제출할 수 있는 최소의석 10석 확보는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내 제3당 등극 이야기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조 대표가 구상하는 국회 개원 이후의 ‘윤석열·한동훈 탄핵 내지는 식물화’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다.리얼미터가 가장 최근 조사(2~3일)한 비례정당 지지율에서 조국혁신당은 30.3%로 1위를 차지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조 대표의 구상이 실현될지 여부는 오늘 유권자의 심판에 달렸다. 이번 총선의 특징은 법적·도덕적 흠결이 있거나 과거 망언을 일삼은 인물들이 여야 정당의 심사 단계에서 걸러지지 않고 버젓이 공천장을 받았다는 것이다.대표적인 정당이 조국혁신당이다. 조국혁신당 후보 상당수는 형을 선고받았거나 재판·수사 중인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우선 조 대표 자신이 자녀 입시 서류를 허위로 작성·위조한 혐의 등으로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범법자다.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고 교도소로 가야 한다. 비례 8번 황운하 의원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연루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비례 1번인 박은정 전 부장검사는 검찰에서 해임되기 직전인 최근 21개월 동안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1억여 원을 급여로 받아 논란이 됐다.범법자들이 즐비한 정당이 비례정당 지지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지만, 이는 여권이 자초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의료시스템 붕괴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현 정권의 독단적 의사결정에 대한 민심이반이 가속하면서 총선판세가 비정상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이제 유권자들이 정치권에서 걸러내지 못한 후보들을 투표를 통해 솎아내는 수밖에 없다.

2024-04-09

여권에서 ‘윤석열 못 지켜준다’는 말 나온다

심충택 논설위원 민심이 등을 돌리자 여권 내부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PK(부산경남) 지역 총선 최전방인 낙동강벨트에 출마한 조해진 후보(김해을)는 지난주 “총선에서 참패하면 보수 세력도 야당의 공격에서 윤 대통령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국민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비친 것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지지기반인 PK지역 3선 중진의원의 입에서 ‘지켜주지 않겠다’는 험한 말을 들은 윤 대통령으로선 섬뜩한 기분이 들 것이다.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 혁신당 대표가 ‘윤 대통령 탄핵’을 언급한 것은 오래됐지만, 여권 내부에서 윤 대통령 신상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충격적이다. ‘대통령 탈당’ 얘기까지 거론되는 상태다. 윤상현 후보(인천)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하면 대통령 탈당 요구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여당 중진들의 거친 발언은 총선위기가 심각한 상황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만약 현 판세대로 범야권이 이번 총선에서 200석 이상 국회의석을 확보하면 대한민국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대표가 장악하게 되고, 국가 미래는 예상할 수 없는 혼란 상태로 가게 된다.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자신의 사저를 찾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윤 대통령과의 단합을 유난히 강조한 이유는 이러한 당정분열을 예감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여권의 ‘옥새파동’으로 당시 새누리당이 다 이긴 선거를 지고, 자신은 탄핵까지 당한 아픈 경험이 있다. ‘두 사람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 말고 원팀이 돼 총선위기를 극복하라’는 마음속 얘기를 특히 윤 대통령에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현재 당정 간 갈등을 더 악화시킬 첨예한 현안은 의료대란이다. 나는 그저께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대 2천명 증원’의 불가피성을 장시간 역설한 것은 오히려 의정갈등을 더 악화시켰다고 본다. 의료개혁은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현안이긴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환자들의 목숨이 걸린 사회혼란을 주도하고 있는 모습은 민심이반의 주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여권내에서는 최근 의대증원과 관련한 윤 대통령의 태도변화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정부 장관 출신인 권영세 후보(서울 용산)는 “2천명 증원은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고 했고, 안철수 공동선대위원장은 “2천명 증원을 성역으로 남기면서 대화하자고 하면 진정성이 없다고 다들 느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여당후보 지원에 나선 유승민 전 의원도 “2천명 숫자에 집착하고 고집하는 것은 국민들 눈에 오기로밖에 안 보인다”고 했다.여당 일각에서는 현 판세대로 선거일을 맞으면 100석 확보도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야권의 대통령 탄핵과 개헌 추진에 맞서기 위한 저지선이 붕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 대통령은 지금부터라도 독선적인 모습을 스스로 변화시켜야 한다. 본 선거일이 아직 일주일 남아있기 때문에 판세는 얼마든지 출렁일 수 있다.

2024-04-02

끝없는 醫政갈등, 대화의 끈은 놓지 말길

심충택 논설위원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갈수록 악화돼 환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26일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을 잠정 보류하면서 의료계에 대화의 손을 내밀었지만, 의대교수들은 ‘2천명 증원’ 철회 없이는 대화를 할 수 없다며 사직서 제출을 강행하고 있다. 정부가 공보의 등을 투입해 의료 공백에 대처하고 있지만, 전공의에 이은 교수 사직으로 의료시스템은 붕괴 직전이다.지난 일요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과 만나고, 윤석열 대통령이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처분 방침과 관련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했을 때만 해도, 의정갈등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이 나왔다.그러나 하루 만에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차가 여전히 크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협상테이블 마련이 어려워지게 됐다. 의대교수협의회는 25일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 및 배정’ 철회 없이는 현 사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했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7년 만에 이뤄진 의대 정원 확대를 기반으로 의료개혁 과제를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못박았다. 정부가 ‘의대 증원만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한 것이다.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간의 갈등은 지난주 정부가 향후 두 달 동안 ‘의약품·의료기기 불법 리베이트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더 악화됐다. 정부가 갑자기 의사들의 불법 리베이트 수수 사례를 꺼내들면서, 신고하면 최대 30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정부가 겉으로는 의료계를 향해 “모든 이슈에 대해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겁박하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윤 대통령이 전공의들의 파업과 관련해 유연한 입장으로 선회한 것은 앞으로 의료 공백이 더 심화되면 ‘정부 책임론’이 불붙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여권 내부에서도 의료공백 사태를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들어 정부의 강경한 의대증원 정책에 대해 민심이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지금 의정갈등은 중요한 고비에 있다. 정부가 일단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을 보류했지만 무기한 연기한 것은 아니다. 현재 전공의 90% 이상인 1만여 명이 면허정지 대상이다. 의대교수들도 사직서 제출과 함께 사실상의 준법투쟁에 들어가 외래진료와 수술·입원 병상도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정부와 의료계는 끝까지 협상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양측이 서로 2천명이라는 숫자에 얽매여 의료공백을 장기화하는 것에 대해 환자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이기고야 말겠다’는 양측의 치킨게임식 감정싸움은 부정적인 결말을 낳게 마련이다. 당장 타협점을 찾기가 어려울지라도 서로 절충할 수 있는 방안을 끈질기게 모색해 나가야 한다. 일단은 양측이 한 테이블에 앉아 협의를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대화를 하다보면 생각하지도 못한 대안이 나올 수 있다.

2024-03-26

‘의과학과 신설’로 醫政갈등 풀어보라

심충택 논설위원 의정(醫政)갈등의 핵심요인인 ‘2천명 의대증원 숫자’에 조금의 여지나마 줄 수 있는 대안이 나와 주목된다.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과학과 정원 등을 활용하면 의대 정원 2천명을 늘리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 보건의료분야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인물이다. 그의 제안은 전공의들의 반발을 해소하기 위해 내년에 바로 정원을 2천명 늘리는 대신, 2026학년도부터 국가현안인 의과학과 신설 등을 통해 의대 정원을 확대해 나가자는 내용이다.서울대가 최근 의정갈등을 감안해 내년도 의예과 증원인원을 15명만 신청하면서, 새로 신설할 의과학과에 50명을 따로 신청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동안 임상의사가 아닌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서울대는 “의과학과가 신설될 경우 서울대의 바이오·헬스 관련 학과 및 첨단융합학부와 연계하는 교육·연구를 통해 우수인력 양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박 교수는 서울대뿐만 아니라 카이스트와 포스텍(포항공대)에도 의과학과를 신설할 수 있도록 정원을 확대해줘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포스텍의 의과학과 신설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온 현안이다. 지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경북도와 포항시는 과학공학 분야 인재가 몰려있는 포스텍에서 의사과학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왔다. 의사과학자는 의사면허를 갖고 있지만 환자진료가 아니라 새로운 의료기술, 신약, 첨단의료장비 연구개발에 전념하는 사람들이다. 코로나 당시 백신이 빠른 속도로 개발된 배경에도 의사과학자의 역할이 컸다. 세계최고수준의 인프라를 갖춘 서울대나 카이스트, 포스텍에서 의사과학자가 배출된다면 한국의료계로서도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닌가.출구없이 격화하고 있는 의정갈등은 앞으로 현 정권에 엄청난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 중에는 ‘의대 정원 확대’가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의 한 치 양보 없는 강경자세가 대통령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외신에서도 한국정부가 의대증원을 밀어붙이면서 경제 분야, 특히 반도체산업이 타격을 입고 있다는 분석을 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한국의 많은 학생들이 (의대증원으로)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취업을 보장하는 한국 최고의 공과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거부하고, 의료 분야에서 더 나은 직업 안정성과 더 높은 급여를 받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다”고 했다.의대 증원을 두고 전공의가 지난달 19일 사직서를 내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갔다. 전공의의 90% 이상이 아직 복귀하지 않고 있어 대형병원 의료진의 피로가 극에 달하고 있다. 이 와중에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내고 진료 현장을 이탈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의료시스템이 더 망가지기 전에 정부는 2천명이라는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파국을 막을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2024-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