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집회는 우리나라 보수·진보 이데올로기 전쟁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5·18 현장인 금남로에서는 지난 15일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 반대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경찰은 기동대 버스로 차벽을 설치해 양측의 충돌을 막았다. 경찰 차벽을 사이에 두고 보수·진보 집회가 동시에 열린 일은 지금 우리 사회의 분열이 얼마나 극단적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행히 집회는 큰 사고없이 끝났지만, 정치인들의 무차별적인 언어공격은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마디마디가 살벌하기 짝이 없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탄핵반대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전두환의 불법 계엄으로 계엄군 총칼에 수천 명이 죽고 다친 광주로 찾아가 불법 계엄 옹호 시위를 벌이는 그들이 사람인가”라며 탄핵반대 군중을 싸잡아 공격했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계엄을 옹호한 극우 집회는 주력이 광주시민이 아닌 외지인 집회, 떴다방 버스 동원 집회”라고 했다. 민주당은 더 나아가 그저께 최고위원 회의를 열고 “5·18을 왜곡, 폄훼하는 극우 사이비 세력에 대해 당 차원에서 법적(5·18민주화운동 특별법 위반혐의)인 조치를 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탄핵 찬·반집회에 참석한 국민은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대부분 나라를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런 군중을 싸잡아 “악마와 다를 게 무엇인가”라며 극단적인 비난을 하거나, 법적조치까지 하겠다는 발상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이념을 대표하는 도시인 대구와 광주는 해마다 GRDP(지역내 총생산)를 발표할 때면 나란히 꼴찌 성적표를 받으며 경제적인 소외의식을 공유해왔다. 이 때문에 행정기관끼리는 ‘달빛 동맹’을 맺어 우의도 다지고 수도권에 대해 투쟁도 하고 있다. 대구시장은 5·18 민주화운동 행사에, 광주시장은 2·28민주운동 행사에 매년 꼭꼭 참석하면서 양 도시의 정체성을 서로 존중해주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사태를 맞아 정치권이 거친 언어를 남발하며 국민 여론을 분열시키는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강성 지지층을 자극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정국이 점점 극단화로 치달으면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 나라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최근 정치권의 이데올로기 전쟁은 일상화되는 추세다. 도심 주요교차로와 가로수는 시민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정치현수막으로 얼룩져 있다. 경쟁하듯 자극적인 문구를 동원해 상대편을 비방하는 내용이 주류여서 출퇴근길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이런 식으로 정치권이 사생결단식의 이념대결을 펼치면 헌재가 대통령 탄핵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우리 사회는 견디기 어려운 후유증이 발생할 것이다.
정치권이 우리사회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국민은 자기와 이데올로기가 다른 상대까지도 감싸 안는 그런 정치인을 보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