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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위축시키는 ‘언론중재법’ 살아나나

심충택 기자
등록일 2025-08-05 18:27 게재일 2025-08-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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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지난 4일 언론개혁을 주도할 특위 위원장에 ‘강성’ 최민희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임명했다. 정말 ‘전광석화’처럼 언론개혁을 추진할 모양이다. 최 의원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의 전신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가 1985년 창간한 월간 ‘말’의 1호 기자다.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 민언련 사무총장, 상임대표 등을 지내며 민언련의 ‘대모’로 불린 인물이다.

정 대표는 최근 “언론개혁은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과 언론중재법이 핵심”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21대 국회에서 유야무야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22대 국회 임기 시작 다음 날 곧바로 발의했다. 이 법안은 악의적인 언론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에 손해액의 3배 이내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 내용이다. ‘악의’는 “허위 사실을 인지하고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정의했다.

언론사 사회부에 오래 몸담은 기자들은 한 번씩 경험해 봤겠지만, 필자도 1980년대 경찰서를 출입하면서 언론중재위에 제소당한 적이 있다. 출입처 관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취재 과정에서 경찰이 확보한 피해자의 일기장 내용 일부를 기사에 언급한 것에 대해 유족 측이 명예훼손 혐의로 중재위에 제소한 것이다. 정정보도를 하는 선에서 매듭이 지어졌지만, 중재위의 조정과정을 뒤돌아보면 지금도 아찔하다.

만약 정 대표가 발의한 언론중재법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기자들의 취재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언론중재위는 지난 6월 13일 언론중재법 제정 20주년 학술세미나에서 “2010년부터 청구건수가 2000건을 넘었고, 2016년부터는 3000건을 넘어섰으며 2020년부터는 4000건 내외의 사건이 청구되고 있다”고 했다. 중재위 제소건수가 계속 늘고 있다는 말이다. 언론중재위의 ‘언론관련 판결분석보고서’에서도 2005년 30건에 불과했던 배상 건수가 매해 증가세를 보이다가 2022~2023년에는 각각 80건을 넘긴 것으로 기록돼 있다. 미디어오늘은 “손해배상 건수가 많아졌다는 것은 언론 상대 소송이 그만큼 빈번해진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신문협회는 지난 6월 1일 발행한 신문협회보에서 “언론에 대해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고, 정정보도 시 원 보도의 크기 및 분량으로 게재하도록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대표적인 언론 규제 법안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선 정 대표를 비롯해 언론개혁을 중대한 개혁 과제로 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철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에 “급한 일 아니니까 나중에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추진 의사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만약 권력을 견제해온 유일한 도구인 언론이 권력자들의 부정부패에 대해 ‘언론중재법’이 무서워 침묵을 선택하게 되면, 우리사회는 친여권 매체들이 매일 만들어 내는 ‘창문’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게 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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