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북구 청하면 청하초등학교 교가에는 ‘해아(신라 때 청하면 명칭) 땅 성터에 우뚝히 솟아’라는 구절이 있다. 21일 찾은 청하초 담벼락을 떠받치는 낡은 돌무더기가 눈에 띄었는데, 조선 세종 9년(1427년)에 쌓은 청하읍성의 성돌이다. 읍성 자리에 초등학교가 세워진 특이한 곳이다.
세종 9년에 쌓은 청하읍성 성돌
초교 담벼락 콘크리트에 파묻혀
고려 공양왕 석성 개축 흥해읍성
박물관 담장·개인 담벼락에 사용
사적 장기읍성 가장 온전히 보존
연일읍성은 국가유산 지정 추진
윤인백 마을 이장은 성벽 자리 풀숲을 가리키며 “이미 읍성 돌 절반이 훼손됐다. 복원 이야기가 잠시 나왔다가 주민 반발로 묻혔다“고 설명했다.
흥해읍 중심부인 성내리에서는 복원 중인 흥해읍성을 만날 수 있다.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토성으로 축조됐다가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고려 말 충정왕 2년(1350년), 공양왕 1년(1389년)에는 돌로 다시 쌓아 석성으로 개축됐다. 당시 성곽의 규모는 둘레 약 1493척(약 450m), 높이 13척(약 4m), 성내에는 우물 3곳과 남·북문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최근 조사에서는 고려시대 토성 해자와 후기 석축, ‘ㄷ’자형 치성 등이 확인돼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뒷받침했다. 남아 있는 성곽 일부는 영일만민속박물관 담장과 인근 마을의 개인 담벼락으로 사용돼 원형이 흩어져 있다.
반듯한 돌담과 조형물로 단장된 복원 구간에서 한 발 더 나아가면 풍경이 달라졌다. 방치된 성벽 바위 위에는 흙집을 지었던 흔적이 보였고, 주변에는 쓰레기와 담배꽁초가 널려 있었다. 한 주민은 “복원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지만, 제대로 복원되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2023년 포항시가 국비 14억 원을 투입해 ‘읍성테마로’를 조성하면서 정작 성곽의 원형은 사라지고 관광용 간판과 조형물만 남은 것이다.
그래도 남구 대송면 남성2리 연일읍성 안에는 연일정씨 시조 정습명의 묘와 재실 남성재가 남아 있는 등 유적이 아닌 삶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었다. 포항시는 학술 용역을 거쳐 경북도에 국가 유산 지정 추진을 요청할 방침이다.
장기읍성은 포항의 읍성 4곳 중에 가장 온전하다. 남구 장기면 읍내리 동악산 자락에 있는 이 성은 사적 제386호로 지정돼 있으며, 둘레는 약 1300m, 높이는 3.7~4.2m에 이른다. 평면은 말굽형 구조로 동해안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서문과 북문지, 수구, 치성 12곳, 우물과 연못의 흔적이 남아 옛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장기는 동해안 방어의 핵심 기지로 기능했고, 지금은 복원을 통해 역사교육 공간으로 활용된다. 다만 반듯하게 새로 쌓은 성돌은 옛 정취보다는 박물관 벽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민석규 지리학자는 “장기읍성 하나만 복원이 됐고, 흥해읍성은 일부 정비가 이뤄졌으나 전원주택 담장처럼 부끄러운 수준”이라면서 “복원이 아니라 원형을 없애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청하읍성은 터가 그대로 남아 있어 복원 가능성이 있고, 연일읍성은 구릉지대 덕분에 일부 성벽이 1.5m 높이로 잘 남아 있다”라면서 “4개 읍성 모두 마음만 먹으면 제대로 복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포항시 문화유산활용팀장은 “흥해와 청하읍성은 대부분 사유지에 걸쳐 있어 시에서 직접 관리하기 어렵다”며 “문화재 지정이 선행돼야 매입과 정비를 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예산 확보와 주민 협조가 뒷받침돼야 복원과 정비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