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지난 27일 대선 후보 경선에서 89.77%의 누적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6·3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득표율은 반올림하면 90%다. 진보대통령의 대명사 격인 김대중 전 대통령(새정치국민회의·77.53%)도 달성하지 못한 수치다. 민주 당원과 지지층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그만큼 똘똘 뭉쳤다는 방증이다.
국민의힘은 “조선 노동당에서 볼 수 있는 득표율”이라고 했지만, 이를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이 후보가 얻은 표 중에는 진보지지층 뿐만 아니라 중도층까지 포함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경선에서 권리당원·대의원·재외국민선거인단과 국민선거인단 투표율을 50%씩 반영하는 룰을 적용했다. 국민선거인단 투표에서 ‘역선택 방지조항’을 적용하긴 했지만, 중도층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90% 득표율이 나올 수 없다. 지난해 8월 당 대표에 연임된 이 후보는 핵심 과제로 ‘중도 공략’을 내걸었다. 진보층이 천박한 욕망이라고 비난했던 ‘먹사니즘(먹고사는 게 최고 가치)’을 그는 ‘유일한 이데올로기’라고 했다. 그는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후에는 통합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이 후보의 이러한 변신에 반신반의하는 시선이 많다. 민주당은 그동안 국회를 장악한 이후 사실상 국정을 마비시켰다. 재계가 반대하는 상법 개정안 등 셀 수 없는 많은 법안을 본회의에서 일방적으로 강행처리했다. 30번의 탄핵안과 33번의 특검법을 남발했다. 헌정사 초유의 감액 예산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제 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대통령실이 당권과 입법권에 이어 예산권까지 장악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은 2028년 4월 총선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재명 대세론 속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사실상 대선출마 뜻을 밝히면서 각 당의 대선 구도에 변수가 생긴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한 대행은 개헌에 동의하는 세력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는 대국민선언을 하면서 국민의힘 대선후보,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 이낙연 전 총리 등과 ‘반(反) 이재명 빅텐트’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이 이 빅텐트의 주축이 되려면 우선은 ‘계엄의 늪’에서 벗어나 미래를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주에는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윤희숙 원장이 ‘당을 떡 주무르듯 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러한 패권적 행태를 방관하거나 지지한 친윤 그룹의 책임’을 지적한 당의 정강·정책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윤 원장의 지적처럼 국민의힘은 지금 계엄과 탄핵이라는 ‘윤석열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어떤 공약도 빛을 발하지 못한다. 태연하게 탄핵정국에 머무르면서 중도층 민심 흐름을 외면하다가는 지난 4·2 재보궐선거에서 나타난 ‘TK지역만의 승리’라는 성적표를 또 받게 된다. 재보선에서는 TK(김천시장)를 비롯해 PK(거제시장), 서울(구로구청장), 충청(아산시장), 호남(담양군수) 5곳에서 기초단체장 선거가 치러졌는데, 국민의힘은 TK에서만 이겼다. 이게 불과 한 달 전의 민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