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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사각지대’가 된 선거관리위원회

등록일 2025-03-04 19:15 게재일 2025-03-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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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정치부기자 시절 대구지역 일부 선거구 총선후보자의 캠프를 출입하면서 일반인에겐 생소한 선거관리위원회의 파워가 엄청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각 선거캠프에서는 선관위직원을 저승사자처럼 두려워했다. 선거법이 워낙 까다롭고 복잡해 후보자 연설 발언이나 선거운동원 활동, 회계자료 체크 등을 조금만 소홀히 했다가는 페널티를 당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각 선거캠프는 보통 선관위 전담직원을 따로 뒀으며, 이 직원이 일일이 선관위에 질의한 후 선거자금을 쓰거나 선거운동을 했다. 선관위는 후보자의 선거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과태료 부과, 고발, 수사 의뢰 등을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주 “감사원은 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 권한이 없다”고 결정함으로써, 선관위는 이제 외부기관의 감시를 받지 않는 ‘사각(死角)지대’가 됐다.

헌재는 “감사원 감사가 아니더라도 국회의 국정조사나 수사기관을 통해 외부통제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장에서 사실상 ‘갑’의 위치에 있는 선관위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국회 출입기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실제 선관위는 국회의 자료 요구에 비협조적이거나 잘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사기관도 고소·고발이 없는 한, 판사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선관위를 조사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지난주 감사원이 공개한 감사결과에 따르면, 중앙선관위를 비롯해 전국 17개 시·도 선관위가 최근 10년간 291차례에 걸친 직원채용 과정에서 878건의 규정위반을 했다. 간부자녀와 친인척 특혜채용을 비롯해 면접 점수를 직접 조작하는 비리도 드러났다고 한다.

김세환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의 경우, 지난 2022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 연락 전용 휴대폰’을 사용했다는 감사결과가 발표돼 충격을 주고 있다. 공정한 선거관리를 맡은 선관위 총 책임자가 감시대상인 정치인과 몰래 소통했다는 의혹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김 전 총장이 휴대폰 데이터를 복구불능상태로 만든 뒤 감사원에 제출했기 때문에 그가 어느 정치인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감시사각지대에서 선관위가 각종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민주당은 지난주 선관위를 감사원 직무감찰 범위에서 제외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헌재의 결정에 힘을 실어주는 법안이다. 헌재와 선관위, 민주당의 카르텔을 의심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출신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최근 그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의 태도가 이상하다”는 글을 올렸다. 국회 입법권을 독점한 민주당이 선관위 비리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그는 “헌재의 판단으로 선관위 비리가 용인받는 것으로 호도된다면 그것은 국가에 위험하다”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공정한 선거관리를 해야 할 선관위의 상상을 초월한 비리행태는 국민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선관위가 앞으로 정파성이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투명하게 선거관리를 하려면 외부견제장치를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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