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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어쩌다 마약조직의 거점이 됐나

등록일 2023-12-19 18:29 게재일 2023-12-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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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충택 논설위원
심충택 논설위원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가 마약치유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기사가 최근 언론에 보도됐다.

수차례 마약 투약을 한 혐의로 자식이 법정에 서야 하는 가슴아픈 일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 전 지사는 “국가 도움 없이 가족의 마약중독을 치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다”면서 “정부가 부처급 기관인 마약 컨트롤타워(마약청)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약 예방·방지와 수사·처벌, 재활 경로를 통합해 관리하는 국가기구 설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당시부터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겉으로 드러난 마약사범 적발 건수만 해도 급증하는 추세다. 올 1월부터 11월까지 검거된 누적 마약사범 수는 1만7천152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던 지난해 연간 검거 인원(1만2천387명)과 비교해서도 38.5%나 증가했다.

특히 올 하반기 검거된 10대 마약류 사범이 전년 동기보다 5배 넘게 급증했다는 통계는 충격적이다. 올봄에는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필로폰이 들어 있는 ‘마약음료’를 청소년들에게 나눠 주고 그 부모를 협박한 사건도 발생했다. SNS와 다크웹, 해외직구 같은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된 것이 원인이다. 10대 마약류 사범들은 투약뿐만 아니라 밀반입·유통 범죄에까지 가담하고 있어 심각성이 크다.

한국이 갑자기 해외 마약조직의 거점으로 부상했다는 섬뜩한 분석도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 나이지리아 등 다양한 나라 마약조직이 속속 국내로 활동 무대를 넓히고 있고, 최근에는 싱가포르 마약조직이 서울에 합숙소를 차려 2억원 상당의 마약류를 팔다가 적발되는 사건도 있었다.

최근 5년간 해외에서 국내로 밀반입하다 적발된 마약류가 시가 3조원(약 1억명 동시 투약 분량)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의 마약범죄가 이처럼 심각한 것은 ‘약한 처벌’과 ‘쉬운 판매’가 주원인이다. 싱가포르와 중국 등은 최근까지 마약사범을 사형 집행했다.

미국도 종신형을 집행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다. 국내 마약류관리법 위반 1심 사건 중 실형 선고는 2020년 53%였지만, 지난해부터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렇다 보니 국제 조직이 한국으로 무대를 옮겨 활동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한국 마약시장의 판매 여건이 좋은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 마약단가가 수익성이 높아 해외 마약상들이 한국을 노린다는 분석이다. 인터넷과 SNS 등 온라인 익명 거래가 활성화된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마약범죄 전문가들은 “혁신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한국이 마약거래의 국제적 거점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하고 있다.

현재의 수사체제(검찰, 경찰, 세관 합동)로는 마약범죄를 발본색원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마약시장은 제조와 유통 전 과정이 철저히 ‘점조직화’ 돼 있다. 남 전 지사가 말한 것처럼 정부부처수준의 컨트롤타워가 마련되지 않으면, 예방과 재활은 물론이고 장기수사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이제 마약청 신설에 대한 공론화를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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