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게시판(당게)’ 사태로 촉발된 국민의힘 내홍이 지난 18일 한동훈 전 대표의 사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한 전 대표는 이날 2분 5초 분량의 영상을 통해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국민과 당원께 걱정을 끼친 점에 대해서 당을 이끌었던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다. ‘사과’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지만, 사실상 고개를 숙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 2024년 11월 당게 사건이 불거진 지 14개월 만의 첫 사과다. 장동혁 대표가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대여 투쟁 방식까지 택한 상황에서 내분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주변의 조언을 수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당 주류 측에선 ‘반쪽사과’라는 말이 나오지만, 한 전 대표가 공식 사과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국민의힘은 내분을 잠재울 여지가 생겼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 전 대표가 용기를 내서 사과해 준 것은 다행”이라고 했고, 양향자 최고위원은 “사과조차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는 우리 당이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얻고 나라를 이끌 수 있겠나“라고 했다.
이제 당내 갈등을 풀 열쇠는 장 대표에게로 넘어갔다. 지난 15일 단식에 들어간 장 대표는 한 전 대표의 사과에 대해 공식 입장을 아직 내지 않았다. 그는 단식현장을 찾은 새미래민주당 전병헌 대표가 “정치력을 발휘해서 한 전 대표와 휴전하고 힘을 모았으면 한다”고 하자, 웃으며 “예”라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장 대표는 당게 사태를 징계가 아닌 정치적 해결로 풀어내야 한다는 조언을 들을 때마다 한 전 대표를 ‘걸림돌’에 비유하며 ‘제거해야 한다’는 식으로 언급했었다. 장 대표가 현재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징계 취소, 수위 조절, 제명 강행 3개 뿐이다. 오는 26일 당 최고위 회의에서 징계에 대한 최종 의결이 예정돼 있어, 장 대표는 남은 기간 여론 흐름을 보고 이 중 한 개의 카드를 선택해야 한다.
장 대표는 이 기회에 당게논란을 끝내야 내분을 추스르고 보수 야권 연대를 구축해 대여 투쟁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장 대표를 떠받치고 있는 강성 지지층들이다. ‘윤 어게인’ 스피커들이 주축을 이루는 이들이 한 전 대표 사과의 진정성을 계속 문제 삼을 경우 가뜩이나 정치적 기반이 넓지 않은 장 대표로선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지방선거 공천을 의식하며 단식현장을 방문하는 정치인 대부분도 장 대표의 판단을 흐리게 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지방선거가 불과 4개월 조금 더 남았다. 열흘쯤 뒤인 2월 3일부터는 시·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예비후보자들의 등록이 시작된다. 만약 한 전 대표 제명 논란으로 내홍이 더 커지게 되면 국민의힘은 선거 준비조차 힘들어진다. 당 내분은 여권발 악재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어떠한 선거 캠페인도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선거에 참패하면 그 책임은 오롯이 당 지도부에게로 돌아간다. 장 대표의 정치생명이 걸린 것이다. 장 대표는 당이 공멸의 길로 가지 않는 정치적 해법을 빨리 찾아야 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