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블라인드 채용’이란 말이 있다.눈을 가린다는 영어 블라인드(Blind)와 채용을 합친 개념이다 채용할 때 학력, 경력 등의 흔히 스펙이라고 불리는 요소를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인성, 업무와의 적합성 등을 고려하여 채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학력이 철저히 배제된다.2017년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를 제시했으며, 소위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엄격히 말하면, 문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은 성별, 학벌, 출신지역 등에 대한 의무할당제를 포함한 채용이므로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블라인드 채용에는 스펙을 어필하려는 편법이 쓰일 수밖에 없다. 가령 이메일 주소 기재란에 대학 이름이 들어가는 도메인을 쓰면 대학을 표시할 수 있다. 동아리 활동 기재란에 학교의 이름을 알 수 있는 동아리를 적거나 주소지를 학교 기숙사 혹은 학교 인근의 주소지로 적는 방법 등이다. 그래서 2017년 하반기부터 채용을 진행하는 다수의 공공 기관에서는 해당 행위를 한 지원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를 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응시자는 어떻게 자기를 나타낼 수 있는지 방향을 잡기 힘들다. 블라인드 채용에 반대하는 심사자는 거꾸로 면접 대상자의 스펙을 유추해 보려고 애쓰는 현상도 나타난다.인성과 업무적합성을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완벽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짧은 시간에 오판을 하게 되면 오히려 그것이 공정을 해치는 것일 것이다.학력과 학점, 경력 모두 한 사람의 노력의 결과물이며 업무적합성에 대한 충분한 보조 자료인데 수십 년간의 노력을 모두 무시하고 짧은 시간에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정확한 평가인지 의심스럽다.학력과 경력이 자기가 쌓아올린 그간의 노력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인데, 이를 적지 말라는 건 말이 안 되며 그것은 공정이 아니라는 생각이다.대부분의 인사담당 임원들은 블라인드 채용에 찬성하지 않으며 공정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과학계에는 단시간의 면접으로는 업무적합도 판단이 힘들다고 보고 정부에 여러 차례 건의했고, 일부 의원들이 과학계 블라인드 채용을 완화하는 법안도 발의했었지만 정치적 논리에 밀렸다.해외 주요 국가 가운데 공공 부문 채용에서 지원자의 출신 학교·전공·학점이 드러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한 사례는 없다. 공정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필자는 그러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회사에 입사지원을 할 때 이력서에는 반드시 학력과 경력을 쓰게 되어 있다.미국에도 블라인드 채용(Blind Hiring)이란 제도가 있다. 이는 지원자의 이름이나 성별, 나이 등을 나타내지 못하게 하여 남녀 차별과 연령차별을 막자는 의도이다.지원자는 자기 능력을 표현하기 위해 모든 과거의 노력을 제출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지금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은 공정이기 보다는 노력한 자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일 뿐이다.블라인드 채용이 공정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재고를 해야 한다.
2021-12-30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오늘 포스텍 전화 추합 몇 시에 시작하는지 아실까요?”“카이스트 빠지는 분 계시면 빨리 알려주세요 ”요즘 유명 이공계 학생, 학부모 카페에는 이런 애타는 목소리로 가득하다.추합이란 ‘추가 합격’의 준말인데 한국 입시 시즌의 독특한 풍경이다.카페에는 ‘추합을 위한 빠져요’라는 보드가 따로 설치되어 있어 정보를 주고 받는다. 한마디로 교육부가 대학 정원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코미디 같은 풍경이다.학부모들과 학생들이 애간장을 태우면서 자기가 원하는 대학이 다른 수험생에 의해 ‘빠지기’를 눈에 빠지게 기다린다. ‘빠진다’는 말은 그 대학을 포기한다는 말이니까 지원자들에겐 정말 애타게 듣고 싶은 말이다.대학을 6개까지 지원할 수 있다고 하니까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긴 하다. 당시에는 대학을 단 한 개만 지원해 낙방하면 후기 대학을 가던가 아니면 재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에 비하면 여러 개의 대학을 동시에 지원해 원하는 대학을 고르는 현 상황은 한보 진보한 상황이긴 하다. 그러나 여전히 추합에 목매는 현 상황은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포스텍을 포함한 우수 대학들에서 합격을 포기한 학생이 수천 명이 된다는 것이 뉴스로 크게 올라온다. 포스텍·카이스트·서울대 동시 합격자가 어디를 선택하는가 하는 문제나 추가 합격자가 어디를 가는가 하는 것도 초관심사이기도 하다. 이공계는 주로 다른 대학 의대에 중복 합격한 수험생이 등록을 포기하면서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경쟁대학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미국대학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미국 명문 스탠퍼드 대학도 합격을 포기하고 다른 대학으로 간 학생들이 어떤 대학으로 갔는지 통계표를 작성하기도 한다.그러나 한국과 차이점은 스탠퍼드 대학은 정원이 없이 매년 2천500명 정도를 합격시켜 등록한 학생들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대강 1천500명 정도가 되는데 그 숫자는 매년 일정하지 않다. 정원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추합이라는 난리를 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최근 차기 정부에서 교육부 해체를 공학한림원 원탁 토론회에서 구체적으로 거론했다고 한다.대학 교무회의에 참석하면 대학에서 가장 골치 아픈 논의가 어떤 학과의 정원을 줄여서 어떤 학과의 정원을 늘리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한국대학에서만 빚어지고 있는 기현상이다.그동안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없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다”라는 자조적인 말이 있었다. 교육부가 대학지원을 무기로 입학정원에서부터 대학 구조조정까지 여러 가지로 대학을 규제하여 왔기 때문이다.추합으로 고생하고 있는 학생, 학부모를 볼 때마다 정원 자율화와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전가의 보도처럼 흔들면서 대학을 규제하는 상황에 마음이 편치 않다. 더 이상 추합으로 전화통을 붙잡고 애를 태우는 모습이 없었으면 한다. 자율은 당분간 혼란스러워도 결국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리를 잡게 된다.
2021-12-23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2022학년도 수능을 치른 입시생 중에 생명과학Ⅱ를 선택한 수험생들은 과목 성적이 공란인 채 수능 성적표를 받았었다. 출제 오류 논란이 벌어진 한 문제를 놓고 수험생들이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에서 모두 정답 처리하라는 결정이 나왔다.이 상황으로 수능 최저학력 등급이 걸린 수시는 물론이고 정시모집 일정에도 혼란이 우려된다.입시 출제 논란의 효시는 1965년 중학 입시의 ‘무즙 파동’이다. 필자는 ‘무즙 파동’을 직접 겪은 세대이다.당시 ‘엿 만들 때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을 고르는 문제가 출제됐다. 발표한 정답은 디아스타아제였는데 무즙도 맞는다고 학부모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이듬해 무즙도 정답으로 됐고 추가 합격자들이 나왔다. 이 사건은 과열 경쟁의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는 한 실마리가 됐다. 3년 후 1968년 중학교 입시에서 ‘목판화를 새길 때 창칼을 바르게 쓴 그림은?’이란 미술 문제의 복수 정답 인정 여부를 놓고 ‘창칼 파동’이 일어났고 1969년 결국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었다.입시경쟁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다시 대학으로 옮겨갔다.2014학년도 대입 수능의 세계지리 출제 오류는 1년 만에 판가름이 났다. 교과서에는 EU(유럽연합)의 총생산액이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권역보다 크다고 되어 있다. 세계 금융 위기로 2010년 무렵부터 EU와 NAFTA 경제 규모가 역전됐다. 평가원은 교과서대로 정답을 발표했으나 소송이 진행되었다. 결국 전부 정답 처리하고 대학들도 입학 사정을 다시 해서 수백 명이 추가 합격하는 소동이 벌어졌다.이런 상황에서 금년도 또 대입 수능 오류가 발생했다.시험시간에 비행기의 이착륙을 금지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라는 외신 보도가 있듯이 한국의 대학 입시에 관한 관심은 절대적이다. 도대체 입학 시험문제로 소송을 거는 이러한 현상은 왜 자주 일어나는가? 이 현상은 절대적으로 대학 서열화 입시의 과열화에 있다. 대학이 서열화 되어 있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미국 입시가 다른 건 대학들이 클러스터(cluster), 집단화되어 서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미국에서는 대학에 갈 때 꼭 어느 특정 대학을 고집하지 않는다. 하버드, 스탠퍼드, MIT, 예일 등 소위 일류 사립대학은 하나의 거대한 클러스터를 형성하면서 어떤 대학을 가든 괜찮다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주립대학들도 버클리, 일리노이, 미시간 등 우수한 여러 개의 주립대학들이 클러스터를 형성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대학을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다.우리도 대학을 6개까지 지원해서 수험생이 골라서 가는 제도는 매우 잘한 제도이다. 그리고 이공계는 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등 몇 개의 대학들이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어 이공계 학생 지원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대입 수능 오류’가 반복되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물론 문제 출제를 오류 없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가진 실력으로 원하는 대학의 클러스터에 갈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은’ 풍토가 정립된다면 반복되는 ‘대입 수능 오류’는 막을 수 있다.
2021-12-16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존경하는 000 위원님”이런 명칭을 국회 청문회나 국회 본회의에서 자주 듣는다. 듣기에 따라서는 거북하기조차 하다. TV를 보면 국회 청문회에서도 사회자가 국회의원을 부를 때 “존경하는” 이란 말을 이름 앞에 붙여서 사용하는 것을 흔히 본다.시청자가 볼 떄 서로간에 별로 존경스럽지도 않은 분위기에서 이런 단어를 들으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영어에도 ‘Honorable’, ‘Excellency’ 라는 단어를 이름 앞에 붙여서 상대를 높혀서 쓰기도 한다. 상대 국가의 대사에게 편지를 쓸 때 자주 사용한다. 대부분은 서로 공식적인 국가나 행정 단위의 수반일 때 높혀서 쓰는 말이다.그러나 한국처럼 국회의원을 부를 때마다 사용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그러한 단어의 사용은 위선적으로 느껴진다. 실제로 존경도 하지 않으면서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발언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이재명 후보는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고 했다고 한다.앞서 이 후보는 지난주 전북 전주에서 진행한 청년들과 토크콘서트에서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힘들 때 대구 서문시장을 갔다”고 말해 좌중을 깜짝 놀라게 했다. 평소 보수정권을 그렇게 비판하고 보수정권의 대통령을 비웃던 그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기에 청중의 놀라움은 컸다.그런 ‘존경’이라는 단어가 논란이 되자 이 후보는 최근 서울대 세미나에서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고 말하여 좌중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결국 그는 존경하지도 않는 사람을 그저 장난으로 존경한다고 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의 말은 패러디가 되어 다양한 조크를 낳았다“문재인 존중한다 했더니 진짜 존중하는 줄 알더라” “특검하자 했더니 진짜 특검하는 줄 알더라” “조국 사과한다 했더니 진짜 사과한 줄 알더라” “국토세 철회한다 했더니 진짜 철회한 줄 알더라.” “한다면 합니다 했더니 진짜 하는 줄 알더라” 등 줄을 이어서 패러디가 양산됐다. 이러한 패러디에 피식 웃으면서도 안타까운 것은 결국 국회에서 위선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인 “존경”이라는 단어를 대통령 후보도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하고 이를 수습하는 모양새를 보고 있는 것이다.존경도 하지 않는 사람을 “존경하는”이라고 부르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걸 대중 앞에서 설명하려고 애쓰는 모양새도 딱하다. 마음속에 존경도 하지 않는 사람을 존경한다고 해놓고 존경도 하지 않는 사람을 그렇게 부른 거라고 설명하는 모습이 정말 딱하다.모두 가식을 벗었으면 한다.국회에서 “존경하는 000 의원님” 이런 말을 없애자. 호칭부터 가식적이니 국회에서 논의하는 내용이 가식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그런 가식에서 대통령 후보들은 벗어나야 한다.
2021-12-09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국민 98%는 종부세 청구서를 받지 않는다.” 정부가 크게 뛰어오른 종합부동산세(종부세)의 고지서를 받아들고 낙담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외친 말이다. 고지서를 받아든 국민이 약 100만이니까 5천만 인구의 2%라는 뜻이다. 일견 듣기에 “종부세 내는 사람은 2%밖에 안 되는구나. 많지 않네”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통계의 함정이다.거꾸로 이런 질문을 해보자. “종부세를 낼 사람의 모집단의 크기는 얼마인가?” 어린아이나 청소년 등 또한 자기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인구를 제외한다면 이 모집단의 크기는 1천만 이하일 수 있다. 1천만 이하라고 가정하면 종부세 내는 사람은 10% 이상이라는 통계가 나올 수 있다. 언론이 이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언론도 이런 종류의 통계의 오류에 빠져서 여론을 잘못 호도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코로나 중증환자 숫자가 매일 발표된다. 그런데 숫자가 얼마나 늘었는가보다는 현재의 중증환자 숫자만 발표하여 현 상황이 악화되어 있다고만 보도한다. 현재의 숫자보다 얼마나 중증환자가 늘어가는지를 보도하는게 중요하다. 중증환자의 증가 추세가 상황이 얼마나 악화되는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최근 65세 시니어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증가한다는 보도와 함께 시니어 운전자의 면허증 유효기간을 짧게 하고 검사를 엄격히 강화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전체 교통사고에 시니어 운전자의 비율이 매년 높아진다고 대서특필하는 언론도 있다. 의학상으로 시니어들의 노화 현상으로 운동감각이 저하되고 운전에 문제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시니어의 절대 숫자가 늘고 있다면 당연히 시니어의 교통사고가 느는 건 인구 고령화 시대에 당연한 것이다. 여기에는 인구 중 65세 시니어 비율이 늘어가는 통계와 시니어 운전자의 비율이 함께 고려되어야만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내년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여론조사도 들쭉날쭉하다. 조사방식과 조사대상의 표본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게 대통령 후보의 선호도에 따른 여론조사의 본질이다. 조사방식이 어떤 계층에 유리한가 조사대상이 누구인가가 엄청 중요하지만, 조사기관들은 그런걸 발표하지 않고 여론조사라는 명목으로 결과를 발표한다.이러한 오도된 결론을 “컨벤션 효과가 있다 없다”로 언론매체들은 그에 따른 해석을 내놓는다. 결국 2중의 오류가 빚어진다. 통계도 문제지만 거기에 해석을 맞추는 언론의 견강부회식 해석도 분석의 오류일 뿐이다.최근 끝난 야당후보 경쟁에서 ‘역선택’ 논란도 있었다. 한 후보는 민심이 자기를 지지한다는 여론조사를 인용했다. 그런데 그 통계를 들여다보면 여당 지지자들의 다수가 그를 지지했다. 그렇다면 그가 선출되면 그 지지자들이 그를 찍어 줄 것인가? 야당 후보 중 누가 제일 좋으냐고 물으면 여당 지지자들은 야당 후보를 약화시키기 위해 약한 후보를 지지한다고 역선택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통계의 오류, 해석의 오류를 이제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정부나 관계기관은 통계의 오류를 이용하여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해서도 안 되고 언론들은 해석의 오류를 범해서도 안 된다.
2021-12-02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미국 서북부에 캐나다 밴쿠버와 맞닿은 시애틀이란 도시가 있다. 도시 인구는 포항보다 약간 많고 메트로로 크게 확대하면 경북 인구 정도가 된다.어찌 보면 포항과 경북의 관계와 비슷하다. 1800년대 중반 목재집산지에 불과하였으나 타코마와의 사이에 철도가 개통되고, 1900년대 중반 비행기 제조업체 보잉이 들어서면서 이 지역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그러나 보잉으로 단순화된 산업구조는 다양화된 경제구조에 대응하지 못하고 고전하였다.그리고 1970년대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 소프트가 둥지를 틀면서 스타벅스 아마존 등 기업이 다양화되기 시작했다.지금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모여 있는 지식의 보고로 알려진 도시가 되었고, 워싱턴 주립대학이 지식을 공급하는 중심축으로 자리잡았다.이와 대조적인 도시가 미국 동부에 있다. 뉴헤이븐은 미국 동부 롱아일랜드해협의 북쪽 해안에 자리한다. 인구는 10만 남짓하지만 메트로는 50만 정도로 역시 포항과 비슷하다.아이비 리그이며 미국 정계를 이끄는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한 예일대학이 자리잡고 있는 대학도시이다.과거 뉴헤이븐의 주요산업은 화기제조였고 서부를 주름잡던 윈체스터 연발권총이 이곳에서 만들어졌으며, 윈체스터 권총박물관이 있다.그러나 아름다운 대학도시로서 명성이 압도하면서 산업도시로서의 명목은 크게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포항시가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역점 추진하고 있는 바이오·의료산업의 혁신 도약을 위해 연구중심 의과대학이 꼭 필요하고, 포스텍에 연구중심 의대 설립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선언했다.포항의 미래 신성장 동력인 바이오·의료 산업 육성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포스코를 필두로 철강 산업으로 성장한 포항은 이제 항공제조업을 넘어서 산업다각화와 IT 선두로 올라선 시애틀 모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필자가 80년대 박사학위를 받았던 일리노이 어바나 샴페인에 있는 일리노이 주립대(UIUC)는 2015년 새로운 의대를 설립했다.공학 분야 최정상의 UIUC는 칼 재단(Carle Foundation)과 손잡고 세계 최초 공학 기반 의대를 설립했다.정체 상태에 이른 의료기술에 도전하는 한편,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과 질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의료비용을 절감하는 새로운 길을 찾는 의학 혁신가(Physician-innovator)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대학이 선택한 것은 공학과 의학의 융합이다.이들은 의학자와 과학자, 공학자가 함께 공학과 의학을 융합한 커리큘럼을 개발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만성신장질환 진단키트, 코로나19 신속진단 시스템 등 다양한 시제품이 공학-의학의 융합에 의해 개발되었다.포항은 포스코의 경영다각화와 함께 이러한 공학형 의대 설립으로 바이오 쪽으로 포항이 발전해 나가야 한다.그건 포항이 뉴헤이븐이 아닌 시애틀로 가는 길이다.포항은 한국의 시애틀이 돼야 한다.
2021-11-25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최근 모 국회의원이 자기가 나온 대학을 “지방대”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세간의 비판을 받고 있다. 해당 대학 학생과 졸업생들은 모 의원의 사과를 요구하고 의원실로 연일 항의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그 대학은 사실 수도권에 있어서 지방이라고 말할 수 없는데도 소위 세간의 ‘인서울’에 대한 우열감으로 지방대로 분류하고 있는 모양새이다.해당 의원은 과거에도 ‘지방대 출신임에도 KBS 아나운서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취지의 표현을 사용한 사실이 있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SNS를 통해 ‘블라인드 채용법’ 발의를 예고하며 지방대를 졸업했지만 블라인드 채용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선의로 해석하면 ‘블라인드 채용법’의 취지를 강조하여 국회를 통과하기 위한 열성에서 나온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출신 대학을 낮추고 자신의 성취를 돋보이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해당 의원의 지방대 차별화는 그것이 현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당연시 받아들여져서도 안 되고 공개석상에서 비하 발언을 해서도 안 된다. 그러한 비하 발언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과거 모 대학 교수님도 국회 증언에서 “지잡대”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있어 큰 파문을 일으켰던 기억이 있다. 국회에서 이러한 단어가 나왔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었다. 우리는 사실 지방대는 물론 지방이란 단어 자체를 쓰지 않아야 한다. 한국에서 지방이란 단어는 열등하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지방’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지방정부, 지방공무원, 지방대학, 지방신문…. 지방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단어이다. 서울이라는 중앙에 대응하는 단어로서의 지방은 그 본래의 의미는 잘못된 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방이란 단어가 한국에서 중앙에 대한 대등한 개념이 아닌, 열등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방대’란 단어다.세계화 시대에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한국은 더 이상 서울과 지방으로 나눠져야 할 필요가 없는 나라이다.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거의 공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 국토에 걸쳐 사람들이 퍼져 살고 있다. 그만큼 좁은 나라다.좁은 나라의 미래의 번영은 세계화에 있다. 우리는 일체 ‘지방대’는 물론 ‘지방’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말아야 한다.지방에 있다고 열등한 것도 아니고 중앙에 있다고 우수한 것도 아니다. 각 지역의 객체들은 세계로 도약하며 각개 약진을 해야 한다.지방대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단어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파괴시키고 한국의 고절적인 이분법을 고착시킨다.한마디 묻고 싶다. 도대체 “지방대가 어때서?”
2021-11-18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1968년 미국 하버드 대학의 로젠탈 교수는 상당히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지능측정 검사(IQ)를 실시한 후 결과에 상관없이 무작위로 뽑은 몇 명의 학생들에게 검사결과가 최상이라고 통지하고 선생님이 이들을 칭찬하게 하였다.그 결과는 놀라웠다. 1년 후 이 학생들의 학습효과는 현저히 증가하였고 성적은 물론 IQ도 향상되는 기적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이것이 그 유명한 로젠탈 효과이다. 남이 알아주고 칭찬해 주면 개인의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논리이다.포스텍은 지난 10일 발표된 중앙일보 대학 평가에서 이공계 분야 국내 1위를 카이스트에 내주고 2위로 내려왔다.국내 대학만 200개가 되는데 이공계 분야 2위란 대단한 것이고 여전히 포스텍은 최일류 대학이라고 부르는데 손색은 없을 것이다.그리고 1994년 처음 중앙일보 랭킹이 발표된 시절 포스텍은 첫해 1위를 한 후 카이스트와 1위 자리를 주고 받아 왔기에 카이스트에 1위를 내준 것이 큰 문제일 수는 없다.그런데 문제는 포스텍의 랭킹이 최근 전반적으로 고전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대학평가에서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두 개의 기관(QS, THE) 랭킹에서 포스텍은 크게 고전하고 있다.물론 이러한 대학평가들이 정확히 대학간의 위상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평가기준에 따라 대학의 랭킹들은 들쭉날쭉하여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그러나 이유가 어쨌든, 포스텍이 과거 QS 국내 3위, THE는 국내 1위를 하며 세계랭킹 28위까지 갔던 (2010년)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포스텍의 연구력이나 세계적 위상이 크게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해외의 경쟁 대학들, 국내의 경쟁대학들의 노력이 포스텍의 노력에 비하여 속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대학의 사명은 무엇인가? 훌륭한 졸업생을 사회에 배출하여 사회 발전에 공헌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은 우수한 학생들에게 매력적인 대학이 되어야 한다.87년 개교한 포스텍의 기세는 세계와 경쟁한다는 기개와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포스텍은 국내 1위라는 자부심이 확고했었다.포스텍은 10여 년 전 국제화 위원회와 경쟁력 위원회를 발족하면서 2010년 역사적인 영어공용화 캠퍼스 선언을 했다. 포스텍은 포스텍의 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기개로 전진했고, 세계 28위, 국내 1위라는 국내 어느 대학도 깨지 못한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이후 평가기준 등이 바뀐 탓도 있지만, 경쟁 대학들의 연구력과 평판도가 상승 하면서 포스텍은 국내 1위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최근 포스텍은 “어게인 2010”을 외치면서 국제 평가에서 반드시 과거의 명성을 찾아 국내 1위 대학으로 다시 도약하겠다는 결의를 확고히 하고 있다.로젠탈 효과와 비슷하게 “형식이 내용을 좋게 한다”는 논리가 있다.포스텍은 내용이 갖추어진 대학이다. 이제 형식을 잃어서는 안 된다. 한국대학이 세계 랭킹에서 이룬 최고 랭킹은 여전히 포스텍이 보유하고 있다.포스텍의 “어게인 2010”을 기대해 본다.
2021-11-11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얼마 전 백내장 수술을 하면서 너무 인상적인 의사를 만난 경험이 있다. 갓 의대를 졸업했지만 너무 총명하고 친절하여 너무 믿음직스러운 의사였다.미국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의사들의 총명성은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미국도 의대생들의 학력 수준이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한국에서도 의대생의 실력은 대학을 막론하고 최상위권 학생들이 가는 곳이다. 의과대학을 향한 학생들의 열기는 뜨겁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의대는 최상위권 대학의 이공계보다 그 합격선이 높다고 한다.그런데 한편 의대 광풍의 사회문제도 한번 짚어볼 만하다. 요즘 이공계 대학의 저학년에서 휴학을 하고 의대 진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로 학교를 못가고 비대면 수업을 하는 경우가 늘면서 이러한 현상은 가중되고 있다고 한다. 이공계 학생들은 친구들의 의대 입시 공부로 친구 만나기도 꺼려한다는 소문이다.의대에 최상위권 학생이 쏠리는 현상은 받아들인다 해도 그러한 배경에는 안정된 수입에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전문의 자격증을 가지고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의대 내의 세부 전공에 지망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환자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 보다는 수입이 보장되는 전공으로 몰리는 것은 장기적 의학발전 관점에서 큰 걱정이다. ‘수만 가지 의약품 중 한국이 개발한 건 하나도 없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의대 약대가 함께 관련된 문제이겠지만 한국의 의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신약개발 같은 분야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미국에는 의대 출신으로 신약개발에 종사하는 ‘의사과학자’가 많다고 한다. 의사과학자는 의사이면서 과학연구를 하는 과학자이다.포스텍, 카이스트 중심으로 의과학자 양성 방안으로 공과대가 주도하는 연구중심 의대 신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의미가 있어 보인다. 미국은 연구중심 의대를 별도로 운영한다. 이런 의대들은 공과대와 협업하거나 아예 공과대가 의대를 설치해서 신약 개발이나 바이오산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이러한 문제가 국회에서 토의된 적이 있다. 신약을 현장에서 직접 사용하는 것은 결국 의사이며 환자를 위해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고 의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취지이다. 의사들이 참여한 신약개발은 상용화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개진되었다.의대 열풍은 그 열풍이 단순히 개인의 수입과 영달이 모티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을 구한다는 사명감이 바탕이 된다면 의과학의 연구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또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돼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신약은 엄청난 숫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의대 열풍’은 그 자체가 이공계의 다른 학문에 위협이 된다. 그러나 의과학 발전이 병행된다면 그러한 위협은 상쇄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다.
2021-11-04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요즘 ‘깐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국영화 ‘오징어게임’에서 나오는 ‘깐부’라는 단어가 주는 친근감 때문이다.필자도 어려서 구슬치기, 딱지치기, 말타기 등의 놀이를 하면서 같은 편 친구를 ‘깜보’라고 부르던 기억이 난다.깐부는 깐보, 깜보, 깜부 등 여러 가지 변형되어 지역마다 다르게 불리운다.깐부의 어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영어의 ‘콤보(combo)’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늘 밖에서 같이 뛰어놀아 가무잡잡해진 친구를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이라는 설은 1986년 나온 까무잡잡한 장두이 주연의 ‘깜보’라는 영화에서 설명되기도 했다.혹시 일본이나 중국이 자기네 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는 근거는 중국의 고사성어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중국어 발음 ‘꽌보’나 일본어 발음 ‘깐보(かんぽう)’가 변해서 생긴 말이라는 설이 뒷받침 한다. 일본어 지분을 가르키는 ‘카부(株)’가 어원이라는 설까지 등장한다.어원이 무엇이든 간에, 재미있는 것은 ‘깐부치킨’이라는 치킨 프랜차이즈가 ‘오징어게임’ 이후 엄청난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깐부치킨 창업자가 어릴 때 고향에서 쓰던 말을 한번 써본 건데 ‘오징어게임’으로 대박을 친 것이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건 ‘오징어게임’ 영화에서 주역의 한 명으로 활약한 배우 오영수가 깐부치킨 광고모델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오영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깐부치킨 광고모델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한 이유에 대해 “‘깐부’는 ‘오징어 게임’의 주제에 가까운 단어”이며 영화 중에서 인간관계에서의 신뢰와 배신 등등이 함축된 단어인데 광고에서 이 깐부를 직접 언급하면 작품에서 연기한 장면의 의미가 흐려지지 않을까 우려되어 고사했다고 한다.광고모델은 곧 큰 수입을 의미하는데 광고모델이 되기 위해 애쓰는 연예계에서 신선한 충격이다. 예술을 존중하는 그런 모습이 남다르게 느껴진다.그렇게 ‘깐부’는 소중한 단어이고 영화 속에서 “우리는 깐부잖아. 깐부끼리는 니꺼 내꺼가 없는 거야.”라고 대화가 오고간다.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깐부정치’를 생각하게 된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 간의 거친 말로 상대를 연일 공격하고 있다. 아직 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야당의 예비후보들도 토론회에서 상대를 험한 말로 공격하는 게 다반사이다.최근 정치권에서도 깐부라는 말이 등장해 화제다. 야당의 어느 예비주자는 “우리 깐부 아닌가요? 치열한 경쟁은 하되 품격 있게, 동지임을 잊지 맙시다”라 했다고 한다.또 여당의 원내대표도 “오늘부터 우리 모두는 깐부, 네것 내것 없고 네편 내편도 없다, 우리만이 있을 뿐”이라고 맞장구를 쳤다.참 좋은 말이고 멋진 발언이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정치가 ‘깐부 정치’를 한다면 얼마나 멋있을까?CNN TV에 비추어진 정치 선진국의 국회의 청문회나 토론회를 보면 상대를 존중하면서 정제된 언어로 토론을 하는 ‘깐부정치’를 종종 보게 된다.험한 말과 인신 공격으로 점철된 한국정치에서 ‘깐부정치’를 언제쯤 보게 될까?
2021-10-28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옛 중국에 전국에서 그의 그림을 구경하러 올 정도로 그림을 잘 그리는 고개지라는 사람이 있었다.그런데 그는 사탕수수를 늘 단맛이 적은 줄기부터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친구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고개지가 “갈수록 더 좋은 경치를 보고 싶은 것처럼, 갈수록 더 단맛을 느끼고 싶어서 그렇다네”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점입가경은 어떤 일이나 풍경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재미있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내년 3월 9일로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의 레이스가 점입가경의 맛을 주고 있다.이번 경기도 국정감사는 경기도지사인 이재명 여당의 대통령 후보를 놓고 흡사 대선 토론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설전을 벌이고 막을 내렸다.공익환수를 더 철저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타와 그 원인이 야당에게 있다는 방어로 불꽃 튀는 설전을 벌였다. 대장동 사업에 대한 이 후보의 역할에 대한 비난과 그에 대한 정당성 방어가 팽팽히 맞선 가운데 국민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는 결론으로 끝을 맺은 듯하다. 어쨌든 경기도 국정감사는 끝났고 여당의 최종 후보인 이 지사의 대선 행보는 많은 화제를 뿌리면서 본격화할 전망이다.이런 가운데 야당의 최종 후보 선발을 위한 긴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두 번에 걸친 압축과정을 겪어 최종 4명의 후보가 마지막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이 2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서 둘 중에 한 명이 최종 주자가 될 확률이 높은 상태에서 여론은 팽팽히 갈라지고 있다.윤 전 총장이 아직 정치 초보인 건 맞지만, 새로운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는 것은 과거 그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강직성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하는 실언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가 국회의원도 한번 해본 적 없는 신인이라는 점에 오히려 점수를 주고 있다.반면 홍준표 의원의 오랜 의원직 경험과 지사로서의 행정 경험을 높게 사는 사람들은 ‘홍카콜라’라는 별명처럼 바른말을 속 시원하게 잘 던지는 모습을 좋아한다. 정치 행정 경험이 풍부한 것도 그의 장점이 될 수 있다.그런 면에서 20, 30대 젊은 표가 행방을 가를 전망이라는 관측도 있다.점입가경인 것은 미세하지만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윤 전 총장이 그의 입지를 굳힐 수 있을지, 홍 의원 등 다른 후보들이 반전을 해낼 수 있을 지가 관전의 포인트다. 앞으로 다섯 번의 토론을 더 한다고 하고 그리고 11월 5일 전당대회를 열고 최종 대선 후보를 발표한다고 한다. 이후 4개월간의 여당, 야당 두 후보의 대결은 더 흥미로울 것이다. 이것은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민주주의를 가진 국가의 국민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이다.정정당당한 대결을 통해 국민의 결정이 내려지고 한국의 민주주의의 모습이 세계인에게 존경받는 그런 모습을 기대해 본다.
2021-10-21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뇌물과 관련해 30여 년 전 포스텍에 조교수로 부임 당시 당황했던 여러 기억들이 있다.
2021-10-14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필자가 어릴 적인 60년대에는 지금같이 오락 기구도 많지 않고 장난감도 많지 않던 가난하던 시절이라 몸으로 때우는 놀이를 많이 했다.골목길에서 친구들 등에 타는 말타기, 술래를 정해서 숨는 다방구, 다리를 들어올려 싸우는 닭싸움, 딱지 치기, 자치기, 팽이돌리기, 여자 아이들은 고무줄 놀이, 공기 놀이 등을 즐겼다. 사실 거의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는 놀이들이다. 학교 앞에는 해삼, 멍게를 엄마가 쓰는 핀으로 찍어먹는 장사꾼 옆에는 달고나 장사가 있어 입으로 별모양, 삼각형 모양 등을 잘 발라내면 한 개를 더주곤 하는 놀이도 있었다.최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오징어 게임, 이 두 개의 결정적인 게임을 모티브로 한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라는 영화 전문 채널에 소개 되면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오징어 게임’ 신드롬이 2주 전 개봉되자 마자 전 세계를 폭풍의 도가니로 넣어가고 있다. 넷플릭스 패트롤 집계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TV 프로그램(쇼)’부문에서 압도적인 기록으로 1위를 유지하고 있고 미국, 유럽, 아시아 국가 등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인기 1위를 달리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쇼가 될 것이라고 넷플릭스는 단언하고 있다.필자는 ‘오징어 게임’을 보다가 너무 잔인한 장면을 견디지 못하고 다 보지 못했다. 미국 방송들도 ‘Ultra-violent(도를 넘는 잔인함)’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방송에서는 못 보여 준다고 하면서도 ‘오징어 게임’을 연일 크게 보도하고 있다. 과거에도 ‘헝거 게임’같은 유사한 영화가 있었지만 ‘오징어 게임’의 돌풍에는 미치지 못한다.도대체 ‘오징어 게임’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그건 코로나 사태 이후 겪고 있는 부의 불균형과 관련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드라마 인물들은 모두 빚을 져서 내몰린 사람들이고 상금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내놓아야만 하는 그런 설정이 부의 불균형에 대한 사람들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했다는 것이다.그런데 또하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드라마에 나오는 게임들이 전 세계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에서는 ‘오징어게임’ 체험관의 줄이 몇 백미터가 된다고 한다.디지털 시대에 온갖 온라인 게임이 난무하고 있는데 아날로그 시대의 게임들이 신선하게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사실, 드라마 중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오징어 게임’ 등은 아무런 준비물이 필요없는 아날로그 시대의 대표적 게임이지만 디지털 게임과는 다른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연기가 재미있다.‘헝거게임’은 공포속에서 떨게 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공포속에서 아날로그 게임이 보여주는 게임의 신선함과 재미를 배우들이 재미있게 선사한다.최근 한류문화의 세계화는 강남스타일, K-팝, 방탄소년단의 인기를 몰아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에 이어 ‘오징어 게임’까지 왔다. 인구 수나 국토면적이 작은 한국이 전 세계 문화를 흔들고 있는 것은 신기할 정도이다.“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도 와 닿는다. 한국 문화의 계속적인 질주를 기대해 본다.
2021-10-07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40여 년 전인 1978년 애플이란 회사는 애플2라는 인류 최초의 개인형 컴퓨터 PC를 만든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의 작품이다.그전까지 컴퓨터는 대형컴퓨터로 주로 데이터 관리에 사용되었고 경영 하부층에서만 상부 보고용으로 주로 사용됐다. 그러나 PC가 출현한 이후 의사결정에 컴퓨터가 활용되기 시작했고 경영 상부층에서도 그들의 데스크에 놓고 컴퓨터를 쓸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의사결정 시스템(DSS)이 출현한 것은 PC의 출현에 의해 가능했다.1981년 마이크로 소프트의 운용체제를 장착한 IBM PC에 밀려나긴 했어도 애플의 컴퓨터업계의 공헌은 엄청난 것이었다. 사실 IBM은 애플의 운용체제 개발장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에게 전화를 걸어 MS-DOS라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운용체제가 장착 되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그런 애플이 포항에 둥지를 튼다.최근 애플·경북도·포항시·포스텍은 ‘애플 제조업 R&D지원센터’ 및 ‘개발자 아카데미’ 설립·운영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애플은 포스텍 캠퍼스 내 국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스마트 공정과 친환경 제조기술을 지원하는 ‘제조업 R&D 지원센터’와 ‘개발자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수백억을 투자해 포스텍과 함께 운영한다고 한다.R&D 지원센터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조업에 특화해 운영할 예정이며 SW 핵심인력들을 양성하는 개발자 아카데미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설립된다고 한다.센터는 중소기업의 스마트 제조업 역량 강화를 위해 스마트 공정과 관련된 최신장비를 구축하고 애플의 전문인력이 상주하면서 지원대상에 선정된 전국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교육과 컨설팅 등을 진행하게 되고. 아카데미는 재능있는 개발자, 기업가, 디자이너를 육성하는 교육을 진행한다고 한다.캘리포니아의 스탠퍼드 대학과 실리콘 밸리는 그 발전에 있어서 궤를 같이한다. 스탠퍼드가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여 실리콘 밸리를 만들었고 역으로 실리콘 밸리는 스탠퍼드를 지원하고 있다.애플의 포항 입성은 포항이 ‘한국판 실리콘 밸리’가 되는 서막일 수 있다.포스텍은 기업가 정신에 기초해 애플과 협력으로 과거 스탠퍼드가 시작하여 실리콘 밸리의 초석이 된 휴렛팩커드 같은 제2의 애플을 여기 포항에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최근 몇 년간 각종 세계 랭킹에서 포스텍이 고전하고 있다. 포스텍은 순위 하락에도 그 입지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장담할지 모르지만 세계의 대학들은 순위에 의해 상대 대학을 판단한다. 특히 아시아 지역의 대학들은 구미대학들이 랭킹에 의지하여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애플의 포항 입성과 포스텍과의 연계가 포스텍의 세계적 위상을 높이는데 공헌 하길 기대해 본다.포스텍은 2010년 타임즈(THE TIMES)에 의해 세계 28위를 기록해 한국의 대학이 기록한 세계 최고 랭킹의 기록을 아직도 갖고 있다. 애플의 포항 입성이 포항, 포스텍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길 기대해 본다.
2021-09-30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의 수령자 대상의 90%가 벌써 수령을 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아직 신청까지는 한 달 여가 남아있지만 빠른 수령 속도이다. 개인당 25만원씩 지급되는 국민지원금의 효과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도 그렇게 하니까 우리도 그렇게 한다라고 정당화 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타이밍이 묘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 표를 의식한 선심이 아닌가라는 이야기도 있다. 나랏돈을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는 명제에는 진정한 애국심과 국민사랑, 나라사랑이 바탕이 돼야 한다. 정당이나 자신들의 표를 의식하여 선심 공세를 피하기 보다는 나랏돈 사용의 당당한 자세가 필요하다. 세금을 효과적으로 쓰지 못하고 매표행위에 쓰이는 것은 옳지 못한데도 그러한 문제가 계속 되고 있다.현재 대학 등록금은 13년째 동결되어 있고, 재정의 학생 일인당 지출이 대학의 경우 OECD 평균 대비 하위권이라고 한다. 대학평가 때문에 대학을 방문해 강연을 하거나 자문을 해보면 모든 대학들이 돈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인공지능의 4차 산업혁명시대의 대학들이 세계와 경쟁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니컬한 교수와 대학들의 대학 등록금을 올리는 건 표를 깍아 먹는 일일 지도 모른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풀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예비 타당성 면제라는 소위 예타면제로 효과가 떨어지는 사업에 돈을 쓰는 것도 매표 행위이다. 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면서까지 예산을 반영했다고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동네에 플래카드를 걸고 선전 홍보 하기에 바쁘다. 다음번에 또 찍어 달라는 매표 행위이다. 예타면제를 받은 프로젝트가 어떻게 되든 그건 그 다음 문제이다. 아이러니컬하게 그러한 프로젝트는 길게 오랫동안 끌어서 두고 두고 써먹으면 더 좋을 지도 모른다.최근 입원해 본 환자들은 의료시설 확충이 필요하다는데 입을 모은다. 특히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를 겪은 가족들은 억울한 죽음에 한숨짓는다. 의료시설 확충은 당장은 매표 행위에 효과적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큰 효과가 있을 꺼라는 걸 왜 모르는 걸까? 의료진의 파업을 막아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음지에서 일하는 간호사 의료진들을 위한 지원확대와 의료시설의 확대는 나랏돈을 효과적으로 쓰는 중요한 한 개의 축일 것이다.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극단적 선택도 큰 문제로 떠올랐다. 소상공인들의 극단적 선택을 보면서 근거 없는 정치 방역과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역지침은 하루빨리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국민들은 말한다. 사실상 진짜 어려운 사람을 돕지 않고 선거를 앞두고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라는 방식으로 매표 행위에만 골몰하는 정책을 야당은 비판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나랏돈 세금은 국민들의 혈세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올바르게 쓴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매표행위를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 국민지원금! 그 목적은 순수해야 한다.
2021-09-23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제3회 현은 강좌가 15일 포스텍에서 온라인으로 열렸다. 이번 강연은 김성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강사로 초청돼 ‘한반도의 평화 정착 방안’이라는 제목으로 펼쳐졌다. 36년간 외교통으로 경험한 김 장관의 식견은 이공계 학생들에게 적잖은 반향을 안겨줬다.현은 강좌는 이공계 학생들에게 인문사회학적 소양을 키우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산업경영공학과의 세미나의 일환으로 시작됐으며 3년 전 도입했다.2018년 1회는 최근 상지대 총장으로 임명된 전 홍석우 지경부 장관, 2019년 2회는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이 맡았고 작년에는 코로나로 열리지 못했다.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오후를 보낼 수 있다면 나의 모든 기술을 넘길 수 있다.”고 말하며 이공계의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했다. 그는 늘 애플 제품은 인문학과 기술의 융복합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애플 제품은 상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발전시키고 싶어했다.취업을 중요시하는 전공선택에서 인문학의 인기 추락이 최근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인문학 부침은 문학이나 역사, 철학을 전공해서는 취업이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대학평가에서 취업률이 중요 잣대가 된다고 하니 대학들은 앞다퉈 관련 학과를 통폐합하고 정원을 감축하고 있다.그런 측면에서 몇 년 전 포스텍의 인문사회학부 확대 발전은 주목된다. 포스텍은 인문사회학부 과정에 융합문명, 과학기술, 경제금융 3가지 정도 부전공을 만들고 대학원도 만들어 문화 데이터, 사회조사 데이터, 인터넷 데이터 이런 것을 분석해 사회적 추세나 인식구조를 잡아낼 수 있는 데이터 사이언스라는 전공 과정을 두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발표했고 실천해 가고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인문사회학에서 포스텍의 역할을 확대하고 과학도 등의 현실감각을 키우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이다.대학생이라면 자아와 세계를 보는 안목이 뚜렷해야 한다. 그들은 최고 학부를 다니는 지성인이며 미래 사회의 역군이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은 전공에 관계없이 사회를 이끄는 통합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 인문사회계 학생들도 이공계의 기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며 이공계 전공자도 마찬가지이다. 이공계 전공자들이 전문 지식만 갖춘 기술자로 도식화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문과, 이과 구분을 없애는 분위기도 이런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필자도 이공계 대학을 나와 산업공학과 경영학으로 대학원을 다니면서 이공, 인문사회계의 통합적 사고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20년 전부터 포스텍에서는 김영걸 명예교수께서 설치한 항오 강좌가 이러한 역할을 해왔다. 그동안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이석채 KT회장 등 주로 경제, 정치 전공자들의 강좌를 제공했다.현은 강좌가 기존의 항오 강좌와 함께 포스텍 학생뿐만 아니라 전국의 이공계 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 배양에 크게 기여하길 기대해 본다.
2021-09-16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미국 직장에서 나이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다. 입사 원서에도 나이를 쓰지 못하도록 되어 있고 나이가 승진 등에 기준이 되지 않는다.미국대학은 한국대학처럼 65세에 정년 퇴임하지 않는다. 각 교수가 판단하여 자기가 역할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다가 스스로 은퇴한다.지난주 한국에서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원로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향해 “너무 오래 살았다. 100세 정도에는 판단이 흐려진다.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는 옛말이 생겨난다. 약 80세 정도가 그런 적정 수명 한도선이 아닐까 생각한다”라는 취지로 발언한 변호사가 있었다. 김 교수가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친일적 발언을 했다는 주장으로 이런 발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덧붙여 존엄사의 적정 연령이 80세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곡기를 끊어 스스로 떠나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쳤다고 한다.필자는 그의 SNS에 “그 나이에 가보지 않고 그 나이 사람을 평가할 때(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으나) 나이를 언급하여 비판하는 것은 올바른 비판은 아닙니다. 20년쯤 후에 본인이 언급한 나이가 되었을 떄 하신 발언을 되돌아볼 때 아마도 깊이 사과하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그의 답은 “내가 무슨 말을 왜 했는지 알고나 아무 소리나 하시오”였다. 그래도 욕설이 없었으니 다행이었다.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는 누구든 비판할 수 있고 동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다. 그건 개인의 사고가 자유로운 민주국가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판을 하면서 상대의 나이를 거론하는 것이다. 젊은 사람도 사고가 잘못될 수 있고 나이 든 사람도 판단력이 정확할 수 있다. 매주 평균 한 개의 강연을 100세 나이에 전국을 누비면서 소화하고 있는 김 교수의 강연을 직접 들어본 적이 있는데 기억력이 뚜렷하고 사고가 정확했다. 소위 좌측 사람들의 대물림인지 사회의 어른을 공격하는 태도는 오래전에도 있었다. 이번 사건은 곰곰 생각해보니 그들이 떠받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이미 해봤던 경험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참 별 꼴 다 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2005년 모 국무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화를 터뜨리며 터뜨린 발언이다.80대 중반의 고령의 김수환 추기경이 “요즘 나라가 진보와 보수, 개혁과 반개혁으로 갈라져 있어 너무 걱정스럽다”고 우려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 친북 인사들을 싸고도는 데 대해 “우리가 간판만 대한민국이고 지배하는 사람들은 영 다른 생각을 가진 나라에 살고 있는 게 아닌지 분간하기 어렵다”고 한 발언에 대한 반응이었다.패륜이란 말이 있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하여야 할 도리에 어그러짐, 또는 그런 현상. 국어사전은 패륜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패륜적 발언을 즉시 멈추어야 한다. 누구든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나이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그 나이를 거론하면서 비판하는 건 옳지 않다.도대체 “나이가 어때서?” 젊은 당신의 사고가 훨씬 위태롭다.
2021-09-09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회의가 일상화 되고 있다. 강의도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TV로 중계되는 연예행사들도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삶에 필수적인 것이 PC(개인용 컴퓨터)이다.필자가 PC를 처음 본 것은 미국 유학 초창기인 80년대 초반이다. 사실 애플은 1978년에 애플2라는 PC를 내놓기는 했으나 IBM이 1981년 PC를 만들어 빌 게이츠가 만든 MS-DOS라는 운용체제를 내놓은 것을 최초로 여긴다.유학생들은 80년대 중반 PC를 구입하여 숙제나 프로젝트에 사용했다. 당시 PC는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하는 방식이고 속도도 느렸지만 집에서 컴퓨터를 쓴다는 신기함으로 호기심의 상징이었다.사실 PC에 앞서서 1945년 미국에서 개발된 인류 최초의 컴퓨터 애니악(ENIAC)에서 진화된 IBM 대형컴퓨터를 도입한 건 1967년 경제기획원이다. 당시 컴퓨터를 옮기는 데에만 여러 대의 트럭이 동원될 만큼 대형 컴퓨터 시절이다. 한국에 이런 PC와 컴퓨터를 도입하고 정착한 선구자들이 있다.80년대 우리나라 최초로 PC 회사를 설립한 이용태 회장, 70년대 컴퓨터를 도입한 이주용 회장, 정보기술(IT) 서비스 회사를 창립한 김영태 이사장, 정보담당중역(CIO) 롤모델 이강태 명예회장이 그 주인공들이다.정부는 이들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4월 과학정보통신의 날에 IT 산업 분야에서 처음으로 특별공로상을 수여했다.필자가 30년 넘게 활동해온 한국경영정보학회(KMIS)에서 이들은 감동적인 기조연설, IT 서비스 비전 특강 등을 통해 우리 IT 산업 역사를 반추하는 계기를 주었다.IT 산업 태동기 때 시대를 앞서가는 생각으로 역경을 헤쳐나간 이런 선구자들은 지금과 같이 한국이 IT 글로벌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이 되었다.특히 이용태 회장에 주목한다. 얼마전 포스텍에서 강연하던 이 회장은 꼿꼿이 서서 내내 강연하면서 팔순의 노익장을 과시했다. 대한민국 벤처기업인 1호, 한국 PC의 아버지, 초고속인터넷의 선구자 등 이용태 회장에게 붙는 수식어는 다양하다.그럼에도 최근에는 ‘인성교육 전문가’이자 유학문화 연구단체인 박약회(博約會) 회장으로 활동을 하면서 구순(九旬)이 가까운 나이에도 직접 현장 강의를 위해 전국을 다니고 있다.정보기술 분야의 선구자였던 그가 인성교육에 빠진 이유는 “인성교육은 흔히 입에 올리면서도 누구 하나 제대로 실천하기 어렵다”며 “훌륭한 기술도 좋지만, 훌륭한 사람을 만든다는 일도 중요하다”고 거침없이 대답했다.사실 이 네분의 IT 선구자들은 은퇴 후에도 개발도상국의 IT 발전, 청소년 대상 무료 소프트웨어(SW) 교육 및 장학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또한 정보화 확산 및 IT 산업 발전을 위해 후학 양성과 저술 활동에 열중하면서 이 회장처럼 인성교육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IT 산업에서는 처음으로 특별공로상을 받은 이들 네 명의 선구자들에게 존경을 보내며 은퇴 후에도 사회에 보람있게 봉사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2021-09-02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캠퍼스에 학생이 사라진 지 2년째 되어온다.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친구들과 잔디밭에서 기타 치며 카드놀이 하던 생각, 체육대회 때 농구경기에서 부상당하던 일, 기숙사 파티에서 노래 부르던 기억들이 아름답게 추억과 함께 인생의 즐거운 편린으로 남아 있다.이제 캠퍼스에는 그런 모습이 없다.대학의 가을학기 개강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강의실 문은 여전히 닫혀 있다. 정부의 코로나19 4단계 방역시책이 계속되고 있으니, 이번 학기에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나기는 또 어려울 전망이다.필자도 2년째 비대면 강의를 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학생들의 얼굴으로 보긴 하지만 만나본 적은 없다. 물론, 온라인 강의의 장점도 적지 않다. 준비만 잘하면 교실의 대면 강의 못지않게 질 좋은 강의도 할 수 있고 토론 등도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다.또한 장소 시간을 가리지 않고 온라인으로 접속하여 강의를 들을 수 있으니 강의를 제공하는 교수나 듣는 학생들 모두 편리한 점도 많다.그러나 비대면 강의가 채워줄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다. 대학은 지식만을 얻는 장소는 아니다. 캠퍼스 생활을 통해 친구들을 사귀고 교수들과 대화를 직접 나누면서 그리고 각종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자기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 과정이 캠퍼스 생활이다. 그리고 문화를 공유하는 과정이다. 온라인 강의로 지식 전달은 가능하지만 문화의 공유는 어렵다. 문화의 공유는 교과서 학습만으로 되는게 아니며 직접 체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캠퍼스가 비대면 강의에 지쳐가고 있다. 교수회의 교무회의 등도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강의는 물론 졸업식, 입학식도 각종 세미나나 교내 집단 행사 등이 모두 비대면으로 이루어진다.학생들이 오가는 활기찬 모습이 캠퍼스의 모습이건만 지금 캠퍼스는 학생이 보이지 않는 썰렁한 캠퍼스로 변했다. 교수들도 비대면 강의의 여파로 연구실에 나오는 횟수가 줄어든다.일부 교수들은 불필요한 회의나 출장이 크게 줄어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교수와 학생, 교수와 교수 간의 대화도 사라지고 침묵이 감도는 것이 캠퍼스의 현실이다.이런 와중에 코로나 확진자 수는 연일 증가하고 있다. 싱가폴처럼 ‘위드 코로나(With Corona)’를 선언할 날은 언제 일까? 독감처럼 코로나와 동반하여 살아갈 수는 없을까?신규 감염자 제로의 시간이 언제 올 것인가? 꽃을 피우고 녹음이 푸르르고 싱그럽던 캠퍼스는 곧 낙엽이 쌓일 것이다.언제 학생들과 교수들이 캠퍼스로 돌아올지 기약은 없고 캠퍼스엔 적막이 감돈다.지쳐가는 캠퍼스는 언제 활기를 찾을 수 있을까? 학생없는 캠퍼스는 이제 막을 내리고 위드 코로나로 다시 캠퍼스의 문을 열 수는 없을까? 참으로 고통의 순간들이 지나고 있다.
2021-08-26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작고하신 부친의 가훈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였다. 글자를 새긴 명판을 거실에 걸어놓곤 하셨다.자기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자는 하늘도 돕지 않는다는 교훈은 어려서부터 귀에 박히도록 새기게 되었다.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으로 대혼란이 빚어지고 있다.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탈레반의 수도 카불 장악 이후 카불 탈출의 대혼란이 벌어지는 가운데서도 아프간 전쟁을 끝내기로 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1조 달러가 넘는 돈을 써가면서 30만 명의 아프간 정부군을 훈련시키고 무장시켰지만 탈레반에 무기력했는데, 미군이 더 남아 지원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며 “그들이 싸우려 하지 않는 전쟁에서 미군이 더이상 싸워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은 자국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는 국가를 위하여 싸우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자국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개입을 마다하지 않았던 냉전 시대의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점에서 미국은 초당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모양새이다.스스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울 의지가 없는 나라를 위해 미국이 언제까지라도 대신 싸워 주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동맹국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북한의 주한미군 철수는 단골 메뉴로 나오는 북한의 주장이다. 최근 김여정의 하명에 따른 한미군사훈련 축소가 실현화 되면서 주한미군 철수의 목소리는 높아질 조짐이다.북한이 주장하는 주한미군 철수의 핵심은 “우리끼리”를 앞세우지만, 침략전쟁의 발판을 마련하자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미국이 유럽과 한국에서 미군이 현 세력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여전히 북한의 주장에 흔들리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큰 근심거리다. 남북교류 건물을 폭파해도 한마디 항의도 못하는 상황은 한국이 과연 북한의 침략야욕과 싸울 의지가 있는지 의문케 한다. 남북 군사 합의 이후 북측이 말하는 것처럼 남측은 무엇을 배신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다.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 보듯이 싸울 의지가 없는 국가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원칙이 적용된다면 한국의 앞날은 위태롭다. 과거 김관진 국방 장관은 북한이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 계획에 대해 전단을 뿌리면 군사적으로 타격하겠다고 위협했다.북한은 우방과의 관계를 약화시키기 위해 늘 “우리끼리”라는 구호로 유혹한다. 그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대한민국의 대북 정책이 아니고 북의 대남, 대미 공작의 하청 용역이었다는 혹평들도 있다. 이제 하청업자 역할을 더이상 해서는 안 된다.이제는 강한 한미, 한일 공조를 통해 강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핵우산이든 자체 핵개발이든 강한 모습을 보여줄 때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다.미군의 주둔은 우리가 싸울 의지가 확고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통일을 구걸하지 않을 때 통일의 기회는 더 가까이 올 수 있다. 북한과의 평화는 우리가 싸울 의지의 강한 힘을 보여 줄 때에만 가능할 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울 뿐이다.
2021-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