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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합의 애환

등록일 2021-12-23 19:52 게재일 2021-12-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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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오늘 포스텍 전화 추합 몇 시에 시작하는지 아실까요?”

“카이스트 빠지는 분 계시면 빨리 알려주세요 ”

요즘 유명 이공계 학생, 학부모 카페에는 이런 애타는 목소리로 가득하다.

추합이란 ‘추가 합격’의 준말인데 한국 입시 시즌의 독특한 풍경이다.

카페에는 ‘추합을 위한 빠져요’라는 보드가 따로 설치되어 있어 정보를 주고 받는다. 한마디로 교육부가 대학 정원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코미디 같은 풍경이다.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애간장을 태우면서 자기가 원하는 대학이 다른 수험생에 의해 ‘빠지기’를 눈에 빠지게 기다린다. ‘빠진다’는 말은 그 대학을 포기한다는 말이니까 지원자들에겐 정말 애타게 듣고 싶은 말이다.

대학을 6개까지 지원할 수 있다고 하니까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긴 하다. 당시에는 대학을 단 한 개만 지원해 낙방하면 후기 대학을 가던가 아니면 재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에 비하면 여러 개의 대학을 동시에 지원해 원하는 대학을 고르는 현 상황은 한보 진보한 상황이긴 하다. 그러나 여전히 추합에 목매는 현 상황은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

포스텍을 포함한 우수 대학들에서 합격을 포기한 학생이 수천 명이 된다는 것이 뉴스로 크게 올라온다. 포스텍·카이스트·서울대 동시 합격자가 어디를 선택하는가 하는 문제나 추가 합격자가 어디를 가는가 하는 것도 초관심사이기도 하다. 이공계는 주로 다른 대학 의대에 중복 합격한 수험생이 등록을 포기하면서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경쟁대학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미국대학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미국 명문 스탠퍼드 대학도 합격을 포기하고 다른 대학으로 간 학생들이 어떤 대학으로 갔는지 통계표를 작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과 차이점은 스탠퍼드 대학은 정원이 없이 매년 2천500명 정도를 합격시켜 등록한 학생들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대강 1천500명 정도가 되는데 그 숫자는 매년 일정하지 않다. 정원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추합이라는 난리를 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최근 차기 정부에서 교육부 해체를 공학한림원 원탁 토론회에서 구체적으로 거론했다고 한다.

대학 교무회의에 참석하면 대학에서 가장 골치 아픈 논의가 어떤 학과의 정원을 줄여서 어떤 학과의 정원을 늘리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한국대학에서만 빚어지고 있는 기현상이다.

그동안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없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다”라는 자조적인 말이 있었다. 교육부가 대학지원을 무기로 입학정원에서부터 대학 구조조정까지 여러 가지로 대학을 규제하여 왔기 때문이다.

추합으로 고생하고 있는 학생, 학부모를 볼 때마다 정원 자율화와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전가의 보도처럼 흔들면서 대학을 규제하는 상황에 마음이 편치 않다. 더 이상 추합으로 전화통을 붙잡고 애를 태우는 모습이 없었으면 한다. 자율은 당분간 혼란스러워도 결국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리를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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