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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열풍

등록일 2021-11-04 18:19 게재일 2021-11-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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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얼마 전 백내장 수술을 하면서 너무 인상적인 의사를 만난 경험이 있다. 갓 의대를 졸업했지만 너무 총명하고 친절하여 너무 믿음직스러운 의사였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의사들의 총명성은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미국도 의대생들의 학력 수준이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의대생의 실력은 대학을 막론하고 최상위권 학생들이 가는 곳이다. 의과대학을 향한 학생들의 열기는 뜨겁다. 이제는 전국적으로 의대는 최상위권 대학의 이공계보다 그 합격선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한편 의대 광풍의 사회문제도 한번 짚어볼 만하다. 요즘 이공계 대학의 저학년에서 휴학을 하고 의대 진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로 학교를 못가고 비대면 수업을 하는 경우가 늘면서 이러한 현상은 가중되고 있다고 한다. 이공계 학생들은 친구들의 의대 입시 공부로 친구 만나기도 꺼려한다는 소문이다.

의대에 최상위권 학생이 쏠리는 현상은 받아들인다 해도 그러한 배경에는 안정된 수입에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전문의 자격증을 가지고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의대 내의 세부 전공에 지망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환자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 보다는 수입이 보장되는 전공으로 몰리는 것은 장기적 의학발전 관점에서 큰 걱정이다. ‘수만 가지 의약품 중 한국이 개발한 건 하나도 없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의대 약대가 함께 관련된 문제이겠지만 한국의 의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신약개발 같은 분야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미국에는 의대 출신으로 신약개발에 종사하는 ‘의사과학자’가 많다고 한다. 의사과학자는 의사이면서 과학연구를 하는 과학자이다.

포스텍, 카이스트 중심으로 의과학자 양성 방안으로 공과대가 주도하는 연구중심 의대 신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의미가 있어 보인다. 미국은 연구중심 의대를 별도로 운영한다. 이런 의대들은 공과대와 협업하거나 아예 공과대가 의대를 설치해서 신약 개발이나 바이오산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가 국회에서 토의된 적이 있다. 신약을 현장에서 직접 사용하는 것은 결국 의사이며 환자를 위해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고 의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취지이다. 의사들이 참여한 신약개발은 상용화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개진되었다.

의대 열풍은 그 열풍이 단순히 개인의 수입과 영달이 모티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을 구한다는 사명감이 바탕이 된다면 의과학의 연구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또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돼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신약은 엄청난 숫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대 열풍’은 그 자체가 이공계의 다른 학문에 위협이 된다. 그러나 의과학 발전이 병행된다면 그러한 위협은 상쇄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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