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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치열해지는 대학경쟁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최근 부산권의 모 대학이 한 세계대학평가기관이 발표한 랭킹에서 동남권 10위에 올랐다는 보도가 큰 주목을 끌었다. 영국의 글로벌 대학평가 기관인 QS가 최근 공식 발표한 ‘2020 세계대학평가’에 따르면 이 대학은 동남권 10위에 해당하는 대학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반면 이날 발표된 랭킹에서 전통적인 서열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랭킹도 발표됐다. SKY로 대변되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순서가 성균관대의 등장으로 크게 흔들렸다. 이번 발표에서는 ‘서고성’이 된 것이라는 보도도 눈길을 끈다. 벌어지는 카이스트와 포스텍의 간격도 화제로 떠올랐다. 이 지역의 자부심인 포스텍의 랭킹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포스텍은 최근 중앙일보 랭킹에서 카이스트를 누르고 국내 1위의 과기대로 등극한 것과 대조적으로 이 세계랭킹에서는 카이스트가 1위로 랭크된 반면 포스텍은 국내 7위로 랭크되면서 보는이로 하여금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들었다. 평가기관마다 들쭉날쭉한 기준과 기준의 비중으로 인해 랭킹은 수시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포스텍의 이번 결과는 개교 이래 가장 낮은 평가로 무엇이 문제인가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이런 가운데 경북대는 최근 대학 경쟁력 강화를 모색하기 위한 ‘제11회 한국대학랭킹포럼(URFK)’을 개최했다. 경북대가 주관하고, 한국대학랭킹포럼이 주최한 이번 포럼은 대학평가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국내·외 대학 평가 지표 및 방법론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학 발전과 경쟁력 향상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포럼은 2014년 필자를 비롯한 몇몇 평가 관련 교수들이 모여 만든 포럼이다.‘연구와 랭킹: 양인가 질인가?’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는 타임스고등교육(THE), QS코리아, 엘스비어, 네이처 인덱스 등 주요 해외 대학평가기관 관계자와 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등 30여 개 주요대학이 참가했다.대학평가 기관들의 들쭉날쭉한 대학평가 기준의 모순 그리고 이에 따른 상업적인 활동, 관련 보도기관들의 이권관계 등 여러 가지 모순에도 불구하고 대학간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당초 URFK의 목표는 “각종 평가지표를 통해 대학을 발전시키고 한국 대학의 경쟁력과 순위를 끌어올리는 동반자 관계”였다. 이 목표는 여전히 숭고한 목표이긴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대학간의 경쟁은 생존의 경쟁처럼 치열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이는 곧 밀어닥칠 인구감소에 따른 학생 수 하락으로 대학들의 상당수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유학생에 의지해야 하는 국내대학들의 재정과도 관련이 있다. 또 세계의 대학시장이 일방통행이 아닌 양방향 통행이라는 대학의 세계시장화와도 맞물려 있다.상위권이든 하위권이든 이제 한국 대학들은 치열한 환경 속에 쉽지 않은 경쟁에 내던져 지고 있고 이 경쟁에서 어떻게 생존할지는 각 대학의 몫이다. 대학 총장들의 어깨가 무거워 지고 있다.

2019-11-28

둔마장관과 벌거벗은 임금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1975년 관악신림 종합캠퍼스로 이주하기 전 마지막 동숭동 캠퍼스 졸업식은 유난히 추운 날씨였다. 이날 벌어진 서울대 29회 졸업식에선 기가찬 촌극이 벌어졌다. 교육부장관의 축사가 시작되자 가운을 입은 졸업생들이 난데없이 “둔마장관”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의자를 돌려 등을 단상에 대고 둘러앉는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1974년 9월 문교부 장관에 발탁된 유기춘 장관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이 둔한 말에 채찍질을 가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 ‘주마가편(走馬加鞭)’에서 주마가 둔마(鈍馬)로 바뀌었다. 이후 그는 ‘둔마 장관’으로 불리며 세간에 놀림거리가 됐다. 권력자에 아부하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두고두고 회자됐다.지금 벌어지고 있는 지소미아 폐기, 한미공조와 한일관계 악화, 특목고 폐지, 원전폐지, 4대강보 파괴 등등 이런 정책에서 청와대 눈치만 보면서 제대로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이 청와대 주변에 없다는 사실이 둔마장관의 에피소드를 생각나게 한다.정부 관계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현재 추진 중인 여러 가지 정책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정부 하급관료들은 현 정책에 대한 반론을 많이 가지고 있다.그런데 왜 권력에 아부하고 바른말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일까?오래전 한 동화가 생각난다. 사기꾼 2명이 궁궐 앞에서 “우리는 바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옷감을 짭니다”라고 외친다. 임금님은 귀가 솔깃하여 그 두 사람을 궁으로 불러들여 옷을 만들라고 명령을 했다. 사기꾼 두 사람은 베틀을 놓고 옷 짜는 시늉만 하다가 드디어 옷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임금 앞에서 옷을 입어보라는 것이다. 임금의 눈에는 옷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렇게 좋은 옷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싱글벙글 했고, 신하들은 보이지 않는 옷을 두고 온갖 아양을 떨며 색도 무늬도 이렇게 좋을 수 없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의기양양한 임금님은 거리를 활보하고 싶어 거리행진이 시작되었다. 옷에 대한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벌거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임금님을 보고도 모두가 하나같이 좋은 옷이라고 칭찬을 하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그러던 중 한 어린아이가 외쳤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그제야 백성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은 거의 200년 전인 1800년대 초 발표됐다. 약 50년 전의 ‘둔마장관’이나 200년 전의 ‘벌거벗은 임금님’의 모습은 지금 우리 정치 사회의 자화상이다.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합리적 사고에 의한 사회 경제, 정치상황을 판단하여 청와대에 직언을 할 수 있는 양심있는 관료가 절실히 요구된다.야당대표가 거리로 나와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을 비아냥 거리는 분들이 있다면 정말 단식을 해보았냐고 묻고 싶다. 과거 필자도 단식을 해보았다. 단식 정말 힘든다. 장난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죽 절실했으면 삭발과 단식을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우리 관료들은 둔마에게 채찍을 때려달라고 하고 벌거벗은 임금님을 바라보면서 옷이 멋있다고 박수를 치고 있을 것인가?

2019-11-21

학생이 실험 대상인가?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어제 수능이 치러졌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학생들이 실험대상이 되고 있다는 자괴감으로 괴롭다. 1973년에 주요 고교 입시가 폐지되기 시작했다. 각 시도별로 명문교들의 입시는 폐지되었다. 당시 대통령의 아들 입시 때문에 고교입시가 폐지된다는 루머가 있긴했지만, 시도별로 명문고교가 있어 고교입시가 너무도 치열하였기에 고교입시를 폐지하고 평준화시켜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겠다는 뜻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이후 4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창의적인 교육은 우리와 멀고 노벨상은 아직도 요원한 현실이다.정부는 지금 다시 평준화의 망령을 꺼내 들었다.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 등 특성화 고교를 없애겠다고 한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시발점이었다.이러한 마당에 대학에는 정시모집 비율을 늘리라고 압박을 가하고 또 강사 숫자를 늘리라고 하고 강사 숫자가 적은 대학은 지원을 제한한다고 한다.도대체 학생이 실험의 대상인가? 아니면 포퓰리즘의 희생자인가? 특성화 고교 폐지와 정시모집 증가는 상호 모순이지만 포퓰리즘 과정으로는 서로 호응이 된다. 강사 숫자를 줄여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라는 주문은 언제이고 다시 일자리 창설을 위해 강사 숫자를 늘리라고 한다. 교육부에서는 “강사 숫자가 이리 적으면 교육부 지원은 포기하는거죠?”라는 협박같은 말을 종종한다고 한다. 중고교생들의 갈팡질팡은 고사하고라도 대학도 갈팡질팡이다. 갑자기 강사 숫자를 늘린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자사고 등 특성화 고교가 학교서열화의 주범이라는 것인데 도대체 서열화를 거부한다면 어떤 발전이 있을 것인가? 강남의 명문고 학군이 부활할 것이고 또다른 서열이 생길 것이다. 학교 서열화의 득실은 무엇이고 서열화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고 그것이 고교만의 문제인가를 냉철히 살필 필요가 있다.평등교육이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이지 교육수준의 평등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수준은 각각의 수준과 다양한 능력에 맞게 제공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고교의 필요성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평등교육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한다면 자사고나 특목고 폐지가 우리 교육의 정답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올바른 평등교육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는 자사고 등 특목고 폐지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 선진국처럼 고교평준화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고교는 존재하여야 한다.정시모집 확대도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그동안 수시모집 확대를 강요하여 많은 대학들이 수시모집 위주로 편성되는 상황에서 다시 수능위주의 정시모집 확대는 대학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고교와 대학들은 정권에 따라 시류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정책에 신음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은 학생들이 불쌍하다고 말한다. 대학들도 고통에 헤매고 있다. 언제까지 학생들이 실험의 대상인가? 언제까지 교육이 정치적 논리의 희생양인가? 선거 때문에 교육정책을 만드는가?제발 자율시장에 맡겨라.

2019-11-14

언제까지 야유와 고함을 칠건가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최근 국회에서 벌어진 코미디를 보면서 참으로 암담한 한국의 의회 문화에 경악하게 된다. 국회 운영위의 청와대 대상 국정감사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한 ‘우기지 좀 마세요’라는 발언에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우기다’가 뭐냐”고 소리치고 반말을 하는 장면이 TV에 고스란히 담겼다. 고성이 오가자 여야 의원들이 가세하면서 결국 자정을 앞두고 운영위 국정감사는 정회되었다. 아마도 이번 경우는 “피장파장”이란 말이 어울릴 것 같다. “우기다”라는 표현 대신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와 같은 좀 더 품위있고 상대방을 고려하는 표현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그렇다고 하여도 피감 기관장 뒤에 앉아 있다가 반말로 끼어들면서 고함치는 모습도 결코 정상적이거나 보기 좋은 상황은 결코 아니다.사실 야유와 고함으로 늘 얼룩지는 국감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그러한 모습은 해가 지나도 하나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국회의원을 하던 사람이 피감기관장이 되면 국감모습의 폐혜를 절실히 느끼지만 다시 국회로 돌아가면 마찬가지 모습으로 다시 돌아간다. 피감 기관장도 국회의원이 되면 피감 기관장이던 시절을 금새 잊고 야유와 고함치는 국회의원으로 변하고 있다.지금 한국 국회의 국정감사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탄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감에서 의원들이 기관장에게 질문해 놓고 답변할 기회를 안주고 윽박지르거나 인격모독적인 공격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그런 일들이 결국 이번 강기정 사태까지 일어나게 하였다.강기정 수석의 자세를 변론할 마음은 없지만 우리나라 국회의 국감, 청문회 문화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미국에는 국감제도가 없지만 미국 국회의원들이 청문회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우리 국회는 절대 배울 필요가 있다. 미국의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정책과 운영방안, 업무효율과 낭비 등 정책적인 질문을 통해 감시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처럼 개인적인 신상문제나 인격살인적인 질문을 하고 야유하거나 고함을 치지 않는다. 미국처럼 차라리 국감 제도를 없애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실상 국감은 국회의원들의 과시를 위한 존재감 알리기의‘쇼’로 전락하고 있고 피감 기관들은 어떻게든 넘기고 보자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의 청문회에서 품격있고 예의있는 질문대답과 함께 느끼는 건 국회의원들의 질문 수준이다. 매우 수준높은 질문이 오가는 걸 흔히 볼 수 있어 의원들이 평소 많은 공부를 한다는 느낌을 준다.한번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국회의원들의 의회활동 평가에 ‘야유와 고함’항목을 넣으면 어떨까? 또 ‘비속어 사용’의 항목도 넣었으면 한다. 그런 항목을 통해 국회의원 활동을 평가한다면 국회의 국정감사나 청문회의 분위기가 나아지지 않을까? 언제까지 국회는 야유와 고함의 대명사가 될건가?

2019-11-07

도시의 얼굴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선진국과 후진국을 비교하는 여러 가지 잣대가 있다. 국민소득, 무역거래 규모나 교육수준 등은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지만 특이한 방법 중에 하나가 거리의 간판의 품격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은 거리의 간판이 간결하면서도 모양새가 있고 품격이 있는 반면 후진국들의 간판은 지저분하고 어지럽게 벽을 도배하다시피 뒤덮고 있어 품격이 떨어진다.포항도 예외가 아니다. 포항의 거리를 걸을 때면 어지럽고 요란스러운 간판으로 어지럼증을 느끼기 일쑤다. 벽을 뒤덮은 간판으로 인하여 도대체 도시의 품격을 찾아볼 수가 없다. 21세기 환동해권 중심도시, 세계적 대학과 기업이 있는 글로벌 도시의 얼굴은 간판으로 볼 때는 수준 이하이다.간판은 도시의 얼굴이다. 도시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거리의 간판이다. 간판은 회사명·상점명·상품 또는 서비스영업 종목 따위를 표시한 것으로, 광고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광고물이고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간판의 역사는 상거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인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그리고 로마 시대부터 사용됐다고 한다. 장사꾼들이 상품 안내를 위해 벽에 하얀 도료를 칠하고 게시판을 만든 것이고, 1400년대 영국 상인들은 자신들의 상점을 알리기 위해 고유한 간판을 달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간판에 대한 규제가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16세기부터 파리와 런던에서는 여행자의 편의를 제공하는 여인숙 간판을 제외하고는 모든 간판에 대해 건물 정면에 붙여 달도록 했다.우리나라에서는 세종실록에 보면 종루에서 광교통에 이르는 상점에 간판을 달아서 쉽게 알 수 있도록 할 것을 왕에게 건의했다고 나와 있다. 대한제국 말 개항 이후에 간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09년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기사를 보면 “상업에 제일 긴요한 것은 간판이라 고로 외국 상업인은 한 가옥상에 간판을 하나·둘·셋을 달았다”라고 되어 있다. 해방 후 명동 등 번화가에 간판이 난립하면서 간판규제의 개념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간판규제는 줄다리기식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도시의 미관을 더 해쳐왔다.어쨌든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간판이 이젠 한국에서는 도시 미관을 해치는 괴물로 변했다. 특히 포항에선 더 그 정도가 더 심하다.몇 년 전부터 서울 등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아름다운 간판’달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간결하고 깔끔한 간판들을 여러 지역에서 볼 수 있다.포항도 우선 시범적으로 한두개의 거리를 지정하여 정말 선진국 수준의 간판거리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일단 시범 거리를 통해 좋은 평을 받으면, 도시 전체로 확대하여 선진국형 도시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도시의 얼굴을 이토록 내버려 둘 것인가?

2019-10-31

대통령의 한마디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헌법이고 법률인가? 과거 왕권시대나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대통령의 한마디에 정책들이 수시로 바뀌는 모습을 보고 있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무슨 말을 또 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정책이 수시로 바뀐다.일관성이 결여된 정책들, 특히 교육정책이 그렇다. 대통령이 꺼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교육정책이 출렁거리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교육정책의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단편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내일이면 어떤 메시지가 나올지 몰라 교육 현장의 혼란은 극에 달하고 있다.대통령이 “대입제도 전반검토”하니까 대입제도를 다 뜯어고칠 듯이 북새통을 떨다가 “고교서열화 금지”하니까 당장 자사고, 외고, 국제고 등 특성화고교 모두를 일괄 없앤다는 발표가 있었다. 당초 단계적 폐지 정책은 대통령 한마디로 판이 뒤집혔다. 다시 정권이 바뀌면 폐지된 특성화 고교를 다시 부활시킬지도 모른다.특성화고와 자사고를 만들 때는 그만한 타당성이 있어 만든 것인데 그런 타당성을 외면한채 대통령 말 한마디로 고교의 폐지를 무슨 나무하나 베는 것으로 생각하니 참으로 개탄할 노릇이다. 또 “정시모집 확대”하니까 정시모집을 마지노선인 30% 이상으로 올리겠다는 정책이 발표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교육공정성 강화특위’를 만들어 11월께 ‘대입제도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도대체 이런 식의 조령모개식 교육정책이 있을 수 있는가? 내일이면 어찌될지도 모르는 정책을 그저 대통령의 한마디에 이리저리 좌우되는 형국은 정말로 개탄스럽다.교육정책만이 아니다. 과거 편의점 출점 규제도 대통령 지시로 뒤집혔다. 공정위는 새 편의점을 차릴 때 다른 편의점과 50∼100m 이상 거리를 두게 하는 ‘자율규약’을 승인해달라는 편의점산업협회 요청을 ‘담합’이라는 이유로 거절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편의점 과밀 문제를 해소하라”고 지시하자 갑자기 입장을 180도 바꿔 업계 요구를 받아들였다.원전정책도 그러했다. 대통령의 “원전폐기” 공약은 우리나라와 같이 자원이 없는 나라는 산업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원전이 필수적인 데, 나라를 혼란으로 몰고 있다. 우리가 발전시켜온 원전기술은 세계 원전수출이라는 블루오션을 맞을 수 있고 대체에너지의 현실적 타당성이 부족한데도 대통령 한마디가 원전정책을 좌우하고 있다. 말썽 많은 한전공대 설립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의 공약사업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외에는 아무런 정당성을 찾을 수가 없다.정부 정책은 무엇보다 공정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국민생활의 근간을 흔드는 정책이 언제 뒤집힐지 모르면 국민은 혼란스럽다. 이제 우리도 대통령 말 한마디로 주요 정책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그런 수준의 국가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 발전된 국민의 의견이 수렴되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그런 안정된 국가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다”는 참 멋진 말을 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과정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이고 결과는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2019-10-24

과학자의 은퇴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포스텍의 은퇴 과학자 교수는 이미 100명을 넘어섰다. 1986년 설립 초기 해외에서 귀국한 교수들의 대부분은 30대였고 그 교수들의 은퇴행렬이 절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한국의 산업 발전을 이끌어온 50년대와 60년대 초반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는 당시 초등학교 교실은 한 반에 90명이 공부를 했고 교실이 모자라 오전반, 오후반이 있을 정도로 붐비던 시절이었다. 이들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문제는 인문계도 문제이겠지만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인력·기술 공백 문제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내년까지 500여 명의 연구자가 정년퇴임하고 전국대학의 이공계 교수는 1천명이 넘는 과학자가 정년퇴임할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전국 4대 과학기술원 및 포스텍의 이공계특성화 대학은 10년 내 퇴직하는 교원이 30%에 달한다고 한다.해외에서 유치해 수십년간 연구비를 지원하여온 고경력 과학기술인들이 교육과 연구 현장을 떠나는 건 국가 인력 활용 면에서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최근 20년간 노벨과학자 수상자 중 60대가 80%에 달한다는 통계와 금년 노벨과학상 화학 부문에서 최고령 수상자(존 B. 굿이너프·97세)가 탄생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현재 60대 초중반으로 되어 있는 과학자와 교수들의 은퇴는 이른감이 있을 뿐만아니라 전문성을 도외시한 법이다.미국대학의 경우 교수와 과학자의 강제적인 은퇴가 없다. 스스로 은퇴시기를 결정할뿐 제도적으로 연구력이 왕성한 교수와 과학자를 강제로 은퇴시키지는 않는다. 얼마전 스탠포드 대학을 방문하니 80년대 필자를 가르쳤던 교수들이 지금도 70∼80대의 나이로 강의도 하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한국의 경우 대학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다. 특임교수나 연구교수로 남아 강의나 연구를 계속하거나 다른 대학이나 연구소로 가서 계속 강의와 연구를 하는 경우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 취업을 하거나 벤처회사를 창립하는 경우도 있다.반면 연구소에서 은퇴한 과학자들은 많은 경우 충분히 그 전문성이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과학자들이 최근 은퇴 후에도 연구 및 산업 현장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본다.은퇴 과학자들의 활용 방안을 장기투자가 절실한 부분에서의 RD(연구·개발)지원이나 자문, 고급인력이 기피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자문 등이 있다.대학에서는 기초과학과목에 대한 강의 등을 들 수 있고 학생들의 진로 및 미래상담 등에 오랜 경험과 경륜을 활용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인증 실사 업무 등에선 평가자를 못 구해 안달이라고 한다. 이런 곳에 은퇴 과학자들을 쓰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미국처럼 당장 은퇴나이를 없앨 수는 없다고 해도 퇴임 과학자, 교수의 전문성과 경험이 여러 가지 정책과 제도 수립을 통해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 전문성에 있어서 강제적 퇴임 자체의 개념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

2019-10-17

명예교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세월은 정말 빠른 것 같다. 필자가 포스텍을 정년퇴임하고 명예교수가 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퇴임강연, 퇴임식을 치루던 날이 어제 같은데 벌써 두 해가 흘렀다.1986년 개교한 포스텍에서 교수로 계시다가 정년 퇴임하고 명예교수로 임명된 교수는 현재 약 100명에 이른다. 그래서 명예교수님들의 모임인 APPE(Association of Postech Professors Emeriti)라고 하는 ‘포스텍 명예교수회’도 만들어졌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친목과 모교 발전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마도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명예교수회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어간다.통상 대학에서 퇴임한 교수를 명예교수로 부르긴 하지만 교육부의 명예교수규칙에 따르면, 명예교수로 추대될 수 있는 교수는 당해 대학에서 전임강사 이상의 교원으로 15년 이상 근무하고, 재직 중 교육 및 연구 업적이 현저하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그래서 최근 친일문제로 화제가 된 한 유명대학의 교수도 6개월 부족으로 명예교수가 아니라는 신문보도도 있었다.명예교수의 퇴임 후 삶은 100인 100색이라는 말도 있다. 해당 대학에 특임교수나 연구교수로 남아 강의나 연구를 계속 하는 일은 흔히 많은 경우이다. 또한 다른 대학이나 연구소로 가서 보직을 하거나 계속 강의와 연구를 하는 경우, 해외대학으로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한 벤처회사를 만들거나, 기업에 취업하여 일을 하시는 퇴임교수님들도 있고 특이하게 사회봉사에 몰입하시는 교수들도 있다. 과거 학문적으로 유명하셨던 교수가 퇴임 후 다문화가정의 돌봄으로 전국을 돌아다니시는 교수님도 보았고 특이하게도 농부로 변신하여 농사를 짓는 공학교수님도 보았다.필자도 포스텍 명예교수가 된 후 대구권의 특성화 과기대 본부 보직을 맡아서 있다가 최근 수도권의 한 대학의 학장직을 맡게 되었다. 거의 50명에 이르는 교수와 1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는 단과대를 경영해 나간다는 건 그리 쉽지는 않지만 나름 큰 보람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10명이 넘는 명예교수님이 계신데 원래 친분이 있는 선배님들이라 때로는 이런저런 충고와 자문을 해주신다. 이러한 자문을 듣고 학장으로서 필자는 항상 “감사합니다. 앞으로 많이 도와 주십시요”라고 반드시 말씀 드린다. 그리고 학교 세미나에도 초청을 하고 와서 좋은 말씀과 충언을 해달라고 부탁드리고 교수 워크숍에 명예교수님들을 초청해서 고견을 듣는다. 명예교수님들의 지혜를 높이 사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고, 또한 명예교수님들에게 모교를 위해 할 일이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해주어서 흐뭇해 하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분들의 건강에도 참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간다.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늙어간다. 그리고 현직에서 은퇴하는 날이 온다. 젊은 교수들도 언젠가는 명예교수가 된다. 그들이 명예교수가 되었을 때 그들이 갖고 있는 지헤와 경륜을 존경하는 후배교수가 있다는 사실, 또 그러한 지혜와 경륜의 자산을 대학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보람이 명예교수들의 삶의 보람과 건강을 지켜 주리라고 생각해 본다. 그건 또한 대학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기도 하다.

2019-10-03

함박도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함박도를 아십니까?갑자기 함박도 라고 불리는 섬이 관심을 끌고 있다. 아마도 이런 섬이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된 국민들도 많을 것 같다. 조그만 한반도에 3천여 개의 섬이 있다고 하는데 독도의 10분의1 밖에 안 되는 작은 무인도 섬 함박도를 기억하긴 쉽지 않다.그런데 갑자기 이 함박도가 관심을 끄는 건 웬일일까?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함박도에 북한이 레이더 기지를 건설한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함박도 정상에는 감시소로 추정되는 2층 건물 위에 인공기가 펄럭이고 있고 이 건물 바로 옆 철탑에는 레이더 감시시설이 설치돼 있고 북한군 30명이 막사로 쓰는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2개도 포착되었다고 한다.국방부 관계자는 “이 레이더는 군사용 레이더가 아니라 일반 상선이나 어선에 달려있는 항해용 레이더”라며 “선박 감시만 가능한 것”이라고 애써 강조하고 있다. 함박도는 서해 연평 우도에서 북쪽으로 8㎞, 말도에서 서쪽으로 8㎞ 떨어진 1만9971㎡(6000평) 크기의 작은 섬이다. 대연평도와는 28㎞ 떨어져 있다. 섬의 모양이 함박(함지박)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섬의 주소는 공식적으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97번지이다. 함박도는 강화군 서도면 어민들이 오래전부터 갯벌에서 조개잡이 어업을 하던 무인도였으나 현재는 어로가 금지된 군(軍)의 작전구역이고 주소가 인천광역시라면, 북한군이 한국 땅에 무단 상륙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함박도가 대한민국 영토였다는 증거가 많이 있지만 1965년 10월 발생한 북한의 우리 어민집단 납치 사건을 보도한 당시 신문 기사를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1965년 10월30일자 주요 일간지들의 1면 기사의 큰 제목은 ‘서해 말도 근해서 북괴 무장선에 50여 명이 조개 캐다 집단 피랍’이었다. 이 신문 1면에 실린 지도에는 함박도가 휴전선 아래에 그러져 있다. 이들 신문 기사 어디에도 어민들이 NLL(북방한계선)을 ‘넘었다’거나 ‘침범했다’는 표현은 없었다.‘남방한계선 근처에서 조개잡이를 했다’는 기록뿐이었다. 또 함박도 인근을 ‘(조개잡이) 황금어장’으로 표현하기도 했다.현재 주소가 대한민국으로 되어 있는 섬이고 한국의 땅을 북한이 불법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주소 등록이 잘못되었다고 변명을 할 일이 아니라 명확히 함박도의 소유권을 규명해야 한다. 대한민국 땅을 북한이 장기간 실효 지배해온 것이라면 그렇게라도 발표하고 당장 찾지 못한다고 하여도 우리 땅임을 선언해야 한다.북한의 눈치를 보고 있는 정부의 대북정책의 모습이 이번 함박도 사태에서도 여실히 보여지고 있다. 함박도가 한국의 영토라고 선언하고 북한에게 철수하라고 왜 소리치지 못하는지 국민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정부가 앞장서서 북한 땅이라고 홍보하는 모양새는 국민으로서 너무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새이다. 그렇지 않아도 조국 사태로 어수선한 정국에 국민의 자존심이라도 세워주어야 하지 않을까?

2019-09-26

트위터(Twitter) 정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 대통령’이라고 불린다. 정책을 발표할 때 트위터를 종종 이용하기 때문이다. 참모진이나 장관들과 이야기되지 않은 것도 먼저 트위터로 발표하기도 한다. 심지어 장관의 해임이나 임명도 트위터로 하는 경우도 있어 정말 트위터광이라고 불릴만하다. 한국에서도 요즘 화제의 조국 법무부 장관이 과거 교수 시절 그 당시 정부나 여당을 공격하면서 주로 사용한 무기가 트위터였다. 그래서 수만개의 그의 메시지가 트위터에 남아있다고 한다. 트위터는 폐쇄하거나 트윗을 지워도 이미 리트윗된 메시지가 퍼져있어 주워 담기가 힘든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조국 교수가 조국 장관과 다투고 있다”라는 조크도 나온다. 과거 정부나 여당을 공격하기 위해 트위터에 올렸던 많은 글들이 지금 조국 장관 자신을 향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위터의 전신은 2005년 설립된 팟캐스트 서비스업체인 ‘오데오(Odeo)’다. 오데오는 초기 시장의 선구자 역할을 수행했지만 애플이 팟캐스트 분야에 진출하면서 당시 CEO였던 에번 윌리엄스는 다른 프로젝트들을 모색하기 시작하였고 임직원들이 내놓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트위터였다. 공원 어린이용 미끄럼틀에 앉아 멕시코 음식을 먹다가 ‘소그룹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주는 단문 문자메시지’ 서비스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한다.트위터는 2006년 본격적으로 서비스가 시작되었고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는 매년 대중음악과 영화 웹 등의 해당 분야에서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상을 수상해주는 SXSW(South by southwest Web)가 열리는데, 이듬해인 2007년 트위터가 웹부문에서 수상을 하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기존 서비스를 시작한 페이스북과 함께 사회연결망 서비스의 쌍두마차를 이루게 된다.근대 산업혁명을 1차에서 4차까지 분류하듯이 인간이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도 1차에서 4차까지 분류해 볼 수 있다. 1차는 광장이나 카페에 모여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2차는 벽보를 붙이거나 신문에 의견을 내던 방식이다. 3차는 방송이나 TV 등을 활용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4차는 트위터, 페이스북같은 SNS를 이용하는 방식일 것이다.그런데 트위터 정치는 던지는 트윗과 비야냥거리는 트윗으로, 어지롭고 매정하다. 인간미를 찾기가 쉽지 않다. 어떤 합의점을 찾기보다는 자기 주장만을 툭툭 내 던지는 그런 형태이다.광장이나 카페에 모여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하던 1차 의사표현 시대가 그리워지는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트위터 등 SNS 정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건 길거리에서나 전철 안에서도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고 SNS만 읽고 있는 ‘독선과 단절의 시대’의 상징일듯하다. 댓글들은 독설로 가득하다.조국 사태를 맞이하여 트위터 정치의 매정함을 보면서 또 하나의 옛것이 그리워지는건 웬 일일까? 가끔씩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2019-09-19

진대제의 기업가 정신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지난 4일 한국 반도체 개발의 산역사이며, 삼성전자 대표이사, 정보통신부 장관 등을 지낸 진대제 전 장관이 포스텍에서 강연을 펼쳤다. 그는 ‘제2회 현은강좌’의 강사로 초대되었다. ‘현은강좌’는 필자가 제자들과 함께 조성한 ‘현은 기금’에 의해 매년 국가를 이끌어 가는 여러 분야의 주요 인사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프로그램이다.그의 훌륭한 업적과 경력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날 현장에서 카리스마 있는 강연을 들으며 강당을 가득 메운 학생, 교수, 직원 그리고 외부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는 순간을 경험했다. 한국인의 자부심을 가득 심어주는 시간이었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가 미묘하고 일본을 어떻게 넘을 수 있느냐는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열린 강연이었기에 의미가 있었다.진 전 장관은 필자와 함께 스탠포드대학 재학시에도 자전거, 자동차를 직접 고칠 정도로 손재주가 비상했다. 졸업 후 IBM연구소에 근무할 때도 4MD램 팀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여 귀국시 IBM 측은 귀국을 만류하면서 “IBM에 언제든지 돌아와도 좋다”라는 백지수표를 받았다고 한다.귀국하면서 그가 외친 말은 “Swallow Japan(일본을 삼키자)”이었고 그래서 주변에서는 “그렇게 입이 크냐”는 농담도 들었다고 했다.우리나라에서 더 좋은 반도체를 만들어 일본회사들 문을 닫게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귀국한 진 전 장관은 16MD램을 개발해 미국으로 들고 갔다고 한다.IBM이 “I Buy Memory(나는 메모리를 구입한다)”의 약자라고 농담을 곁들인 그는 16MD램을 내놓기 전까지 한마디로 그들에게 무시당했다고 한다. 일본과 한국을 차별하던 그들 앞에서 마지막 꺼낸 카드가 16MD램이라고 한다. 16MD램을 가방에서 내놓은 다음 그들의 안색이 변헀고, 자기들끼리 회의를 하면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미국신문에는 “삼성의 쿠데타”라고 헤드라인을 뽑고 삼성의 약진을 크게 보도했다고 한다. 어쨋든 짜릿한 순간이었고 일본의 히타치 도시바 NEC 반도체 등을 누르고 세계 정상에 서는 순간이었다고 한다.그는 실천적 엔지니어가 되는 기업가 정신을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소통과 실적의 두 개의 축으로 사람을 판단했지만 이제부터는 창의라고 하는 축을 만들어 3개의 축을 가진 3차원 공간에서 인재가 판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기업가 정신의 필수요소로 세가지를 꼽았다.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전문가가 되라”는 것이었고, “소통과 협력을 통해 남의 얘기를 경청하고 질문을 할 줄 알고 협업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변화를 두려워 말고 끝없이 도전하라. 꿈과 상상력, 호기심을 가져라”고 그는 말했다. KTX 포항역을 빠져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일본과의 갈등 속에 경제적 위기에 처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던진 그의 말이 전율을 타고 흘러왔다.“힘든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 힘든 시간을 견딘 이는 오래 간다.(Tough times never last, but, tough people do)”

2019-09-05

지소미아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요즘 ‘지소미아’라는 생뚱맞은 단어가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필자도 처음 이 발음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있다. 지소미아는 GSOMIA(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로 국가 간에 군사기밀을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맺는 협정을 말한다. 사실 이 발음에는 문제가 있다. G만 알파벳으로 부르고 나머지는 한 개의 단어로 부르는데, 이런 예는 법학전문대 시험인 LSAT(Law School Admission Test) 을 ‘엘샛’이라고 부르는데 근거하지만 이 경우 L은 독립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데 반하여 General은 독립적 의미가 약하기 때문에 사실상 ‘지소미아’는 발음상 문제가 있다.어쨌든 한일간에 맺어진 지소미아를 한국측이 일방적으로 폐기함으로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소미아는 한국은 주로 탈북자, 북중 접경 지역의 인적 정보를 일본에 공유하고 일본은 첩보위성 및 이지스함 등에서 확보한 시긴트(sigint) 등 정보자산을 한국에 제공해 왔다. 그런데 지소미아 폐기는 한일 뿐만이 아니라 한미 동맹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파악된다. 애초에 지소미아는 미국이 제안하여 북한을 감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한일이 맺도록 한건데, 한국이 이에 반기를 드는 것은 미국에 반기를 드는 것으로 미국측이 이해할 가능성이 있다.트럼프 정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는 한·일 갈등에 대한 워싱턴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었다”고 주장했다.한국이 지소미아 파기로 미국을 일본 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한국을 편들어주던 미 정부내 인사들도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를 파기해버리는 것을 보고는 돌아섰다고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이들은 “지소미아 파기는 미국 안보, 미국 국익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문제이다”라고 말한다.일본의 극우 언론이긴 하지만 일본 산케이 신문은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방침이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이며 향후 한·미·일 3국 공조 체제에서 이탈하는 전조라는 주장을 했다. 이들은 극단적으로 “한국이 ‘자유진영’에 있는 시간이 앞으로 오래 남지 않았다”며 자유민주주의 동맹에서 빠져나갈 날이 가까워졌다고 주장했다.이러한 일본 극우의 주장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이들의 우려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한국은 한국-미국-일본의 삼각 동맹을 공고히 하고 안보에 관한한 한치의 의심도 없이 3개국 협력을 공고히 해야 한다. 지소미아는 북한과 중국이 싫어하는 협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협정이 더욱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다.워싱턴포스트는 최근 보도에서 “지소미아 폐기로 한국이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태가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실 이 보도에는 근거가 있다. 한국이 북한이 원하는대로 해주고 있지만 실제 북한은 한국 정부와 한국의 대통령을 경멸하고 깔보는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북한에 얕보이지 않으려면 한미일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여야 한다. 북한이 칭찬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칭찬 뒤에는 깔보임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힘의 균형은 상대의 전술에 말려들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2019-08-29

4대강보 철거와 탈원전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필자가 중고교를 다니던 1960년대 후반 서울의 종로거리는 일년내내 매일 공사가 진행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매일같이 거리가 파헤쳐지는 장면을 일년내내 목격했다.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로 거리는 복잡했다. 일관성 없는 계획으로 매몰된 수도관이나 하수관, 전기설치 등을 뜯었다 고쳤다 다시 설치했다 하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세금과 인력을 낭비했다.이러한 즉흥적인 계획과 집행의 폐해의 대표적 예를 우리는 반세기 후 또다시 목격하고 있다. 최근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4대강 보 처리와 관련해 이번 정권내에서 보 철거를 강행하지 않겠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했다.“선계획, 후조치가 돼야 하는데 필요한 계획을 세우는 데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하위 계획까지 다 수립하려면 최소 4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제야 무리한 보해체 계획을 자인한 셈이다.그동안 줄기차게 4대강보를 비난하고 해체를 강행하려고 했던 정부가 이러한 신중한 자세로 돌아섰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싶다.문재인 정권 들어서 나오고 있는 4대강보 해체 주장은 정말로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나라는 홍수기와 갈수기의 유량 차이가 최대 300(금강)~680배(영산강)나 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제방을 쌓아 홍수를 막고 댐을 지어 가뭄에 대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4대강 사업으로 강바닥을 깊게 파고 보를 쌓은 것도 그런 취약 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거기에 따른 환경적 생물학적 부작용이 있다면 그걸 수정하는 정책을 마련해야지 보해체가 능사가 아니다.정치적 논리로 과거 보수정권의 정책은 모두 잘못되었기에 4대강 반대론자들은 감성적 주장만 갖고 보 해체를 주장해왔다. 막대한 국민 세금을 들여 만들어 놓은 국가 시설물을 전 정권 것이라고 또 세금을 들여 파괴한다면 다시 정권이 바뀌면 또다시 건설해야 하는 70년대 종로거리의 재판이 될 것이다.말이 나온김에 4대강 보 해체만 아니라 탈원전도 정치적 논리로 만든 정책이다. 최근 비판을 받고 있는 한전공대 설립과 함께 현정권의 선거공약이었으므로 실행해야 한다는 것 이외에 타당한 이유를 찾기 힘들다. 전기요금 인상, 전력수급의 안정성 등 국민적 걱정이 많지만 선거공약이라는 이유로 강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탈원전을 선언한 일부 나라들도 모두 수정정책으로 전환하는 추세이다. 혹독한 원전 폐해를 입었던 일본조차도 다시 원전을 가동시키기 시작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점 때문이다.정부가 내세우는 대체 에너지란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국내 환경에서 풍력, 수력, 원자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채택하기는 열악하다. 미국의 셰일 가스 및 오일과 같은 새로운 에너지가 개발되지도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력 수요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기업들의 주요 젖줄인 해외 원전 수출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어쨌든 중요한 것은, 원전은 정치논리로 건설되어서도 안 되고 정치논리로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충분한 학문, 경제적 검토와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 수렴을 해야 한다. 시간을 가지고 결정해도 늦지않다. 이 문제만은 포퓰리즘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진보정부는 과거 보수정부의 사드배치와 관련해 절차적인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현 정부의 4대강보 해체와 탈원전문제에 있어서 국민적 의견수렴과 절차를 중요시하고 있지 않아 보인다.4대강보 해체와 탈원전은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의 대명사이다. 이 대형 과제는 앞으로 한국의 미래의 백년대계와 연관성을 갖는다. 만든걸 부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들이 정치적 논리나 포퓰리즘에 의해 실행되어서는 안 된다. 두고 두고 후세에 후회할 정책을 즉각 멈춰야 한다.

2019-08-22

러다이트 운동과 4차 산업혁명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40여 년 전 대학원을 갓 졸업하고 한국굴지의 모 건설회사에 취직하였을 때 일이다. 광화문 14층 기획관리실에서 근무할 때 어느날 건설노무자 여러 명이 갑자기 나타났다. 사무실을 박차고 들어온 그들은 흥분된 어조로 “왜 우리 봉급이 봉급봉투에 0 이라고 나오는가?” 라고 물었다. 컴퓨터의 실수였다. 당시 한국에 컴퓨터가 도입된지 몇 년 안되던 시절 건설노무자 봉급을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에러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컴퓨터는 빌딩 지하에 있었고 노무자들은 그리로 몰려갔다. 컴퓨터를 파괴할 기세였다. 평소에 컴퓨터가 노동을 뺏어간다는 피해의식 속에서 이런 컴퓨터 에러는 컴퓨터를 파괴하기에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었던 시절이다. 다행히 사과하고 전산화 과정을 설명하고 과격한 행동을 만류하기는 했지만 정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진땀을 빼던 기억이 난다.이와 비슷한 일이 200여 년 전 영국에서도 일어났다. 후세의 평가는 갈리기는 하지만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은 19세기 초, 1811∼1817년 사이에 일어난 “기계 파괴 운동”이다. 당시에 발명된 방직기의 등장으로 사람이 했던 노동을 기계가 빠르게 처리하게 되는데 위기감을 느낀 노동자들이 단합하여 대규모 기계파괴 운동을 벌인 것이다결국 기계로 인한 생산성은 무시할 수 없기에 러다이트 운동은 수그러들었지만, 노동자들은 노조설립 허용, 단체교섭을 인정받으면서 정치권과 자본가들의 양보를 받아내었다. 이는 어찌 보면 최초의 노동운동이었다.급격히 부각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네오 러다이트(Neo Luddite) 운동이라 하여 과학 기술에 적대적인 사상과 그 움직임을 뜻하는 새로운 용어가 탄생하였다. 네오 러다이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첨단기술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할 것으로 여기고 있다.4차산업혁명 시대의 언저리에서 네오 러다이트의 정당성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인공지능의 발전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감 존재한다. 6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2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전문가 견해도 있는데 그래도 4만개가 마이너스다.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시발점으로 사회 전반에 퍼진듯 보이는 4차산업혁명은 이미 이전부터 인공지능이란 형태로 과학자들에 의해 개발이 진행되어 왔지만 알파고의 활약에 의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기술적, 물리적인 문제로 인해 구현이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해지면서 인공지능의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알파고 사건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 계기로 전세계는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뒤섞여 나오고 있다. 아마존 고(Amazon Go)라고 불리는 무인스토어에서는 고객이 가게에 그냥 들어가서 물건을 들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 모든 과정은 센서와 인공지능이 처리한다. 제조업의 자동화인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 도 지능적 공장경영을 통해 직원수를 줄이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아마존고와 스마트팩토리의 예에서 보듯이 일자리 감축에 대한 우려감이 생기는건 당연해 보인다.그러나 러다이트 운동의 예나 2차세계대전 후 발명된 컴퓨터의 도입에 의한 사무자동화의 예로 볼 때 네오 러다이트 운동의 정당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기계화에서도 전산화에서도 당초 예상과는 달리 일자리가 감축되었다고 보기보다는 일자리가 다양화되고 고급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40년 전 공대생들이 연산자를 가지고 고생하면서 계산하던 시대에서 이제 스마트 폰을 간단히 계산하면 좀더 응용분야 연구에 시간을 쏟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러다이트 운동의 4차산업의 적용인 네오러다이트 운동의 정당성은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는 다가오는 아니 이미 도착한 4차산업혁명을 환영하는 것이 맞다.

2019-08-15

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대학 교무회의에 참석하면 가장 골치 아픈 논의가 하나 있다. 그것은 어떤 학과의 정원을 줄여서 어떤 학과의 정원을 늘리느냐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가장 골치아픈 논의 중 하나다. 학과의 정원을 줄이고 싶은 학과는 없기 때문인데, 대학의 입장에서는 잘 나가는 학과의 정원을 늘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논의는 한국대학에서만 빚어지고 있는 기현상이기도 하다. 그건 대학정원의 결정을 교육부가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오랜만에 교육부가 다소 충격적인 발표를 하였다. 교육부가 대학입학정원 감축을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다소 듣기에 생소한 정책 발표를 하였다. 지금은 교육부가 전체 대학에 점수를 매겨 ‘재정 지원 제한 대학’을 선정, 국가 장학금 등 교육부 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만들어 사실상 대학의 정원조정을 압박하고 퇴출시키는 방식으로 대학정원에 간섭하고 있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평가는 원하는 대학만 하고 평가 결과를 내놓을 때도 ‘일반 재정 지원 대학’만 선정하겠다고 했다. 다소 획기적이다. 아마도 이런 조치의 배경은 구조조정을 해봐야 학령인구 감소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정책변경이라기보다는 정책포기로 봐야 할 것이다.고된 과정을 통해 힘들게 평가해서 줄인 정원이 5년간 6만5천 명 정도인데 앞으로는 5년간 학령인구는 15만 명 가량 줄어든다는데 주목해 본다. 2000년 수능에 응시했던 학생은 89만 명이었다. 수능 시험일 일정 시간에는 비행기가 날지 못하고, 전 국민이 수험생을 위해 숨을 죽이고, 모든 언론 매체가 수능 시험을 톱 뉴스로 다루는 그런 분위기였다. 대학으로 가는 길은 그만큼 치열했다.그런데 금년 수능시험 응시자 수는 55만 명으로 예상된다. 2000년보다 35만 명 가량 줄어들었고 역대 최저라고 한다. 그리고 당장 내년부터 만 18살 학령인구 숫자는 50만 명 밑으로 내려가고, 5년 뒤 2024년이 되면 37만 명이 된다고 한다. 2000년에 비하여 정확히 반으로 줄어든다는 이야기이다.그래서 이번 발표는 교육부가 구조조정을 하는 속도보다 인구 감소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공연히 고생만 하고 문제해결을 못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정책좌절로 보인다. 그동안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없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다”라는 자조적인 말이 있어왔다. 교육부가 대학지원을 무기로 입학정원에서부터 대학 구조조정까지 여러 가지로 대학을 규제하여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은채 대학을 규제하여 오던 교육부가 이젠 가만 내버려 두어도 대학은 고통 속에 스스로 규제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손을 놓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혼돈하고 있다. 상황이 좋을 때는 대학을 규제하지 않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고 상황이 안좋을 때는 대학을 도와주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다.지금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대학을 규제하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 교육부가 평시에도 대학지원을 무기로 대학을 규제하고 있다가 지금과 같이 위기 상황에서 대학은 고통을 대학자율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앞으로 고통을 받게 될 지역 군소 대학이나 전문대 같은 취약 대학에 좀더 많은 지원책을 입안하여 그러한 대학들이 입학정원 감소에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평가는 필요하고 평가를 징계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의 잣대로 삼아야 한다. 평소에 규제의 칼을 사용하던 교육부는 이제 대학생존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좀 더 잘 구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08-08

대학의 최고경영자과정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4반세기 전인 1994년 포스텍에 최고경영자과정이 설립되었다. 이름하여 팸팁(PAMTIP: Postech Advanced Management of Technology and Innovation Program)이라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대학이 그냥 AMP라고 부르는 과정을 포스텍의 특징에 맞게 ‘기술과 혁신’(Technology Innovation) 이라는 글자를 넣어 차별화시켰다.일반적으로 최고경영자과정(최경과정)은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고위공무원, 정치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단기 비학위 교육과정인데, 포스텍은 ‘기술과 혁신’에 특화시키면서 출발부터 차별화와 특화를 꾀하였다. 이 과정을 만들기 위해 거의 1년간 포항, 경주, 울산 지역의 기업체를 방문하여 수요를 조사하고 계획서를 만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포스텍의 분위기는 “연구중심 대학인 포스텍이 과연 최경과정을 만드는 것이 적절한가?”였고 그래서 다소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했다.그런데 포스텍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MIT 공대 같은 곳은 최경과정이 여러 개 있다. 보스턴 지역의 각종 기업들과 공무원들을 위한 계속교육(Continuing Education) 과정인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수혈받고 산학협력을 도모하고 그들만의 정보교환 등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최근 소식에 의하면, 대학에서 정·재계 가교 역할을 하던 최경과정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지역대학은 물론 서울 주요대학에서도 정원을 채우지 못해 과정 운영을 잇달아 중단하고 있다고 한다. 천편일률적인 교육과정과 불황시대에 비싼 등록금도 최고위과정 입학생이 줄어든 요인으로 꼽힌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시행도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신입생을 채우지 못한 일부 유수 대학들의 20∼30년 전통을 가진 최경과정이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유수대학인 K대 컴퓨터정보통신대학원은 지난해 2학기를 끝으로 최고위정보통신과정(ICP)을 아예 폐지했다고 한다. ICP는 1996년 개설돼 2천500여 명의 동문을 배출한 전통 깊은 최고위과정이고 전 교육부 장관과 주요 그룹회장 및 국회의원 등이 수료한 과정이었다고 한다.Y대, S대 등 유수대학들의 언론대학원 최경과정, 교육대학원 최경과정 등이 최근 폐지되었다고, 형편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최근 개설된 대학들의 최경과정도 입학생 문제로 고전하면서 6개월 과정을 1년으로 늘리며 여러 변화를 모색한다고 한다고 한다.최경과정은 한때 사회 지도층의 학업과 인맥, 일석이조의 혜택으로 공무원과 중소기업 및 대기업의 임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그러한 이유들로 인해 매우 고전한다고 한다.우여곡절 끝에 1994년 3월 개강보다 한 달 늦은 4월초 팸팁은 문을 열었다. 필자가 창설 주임교수였지만 이후 여러 교수들과 스태프들이 수고를 많이 하여 포스텍의 팸팁은 4반세기를 착실히 운영되고 있고 이 지역의 기업인 공무원들에게 새로운 지식과 함께 정보교환의 네트워크 장을 제공하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차별화된 프로그램이다. 기술과 혁신에 중점을 둔 차별화 된 프로그램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의 자랑인 초일류 대학 포스텍과 함께 한다는 프라이드도 있다. 이러한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한 교수, 직원들의 노력도 큰 공헌을 하고 있다.최고위 과정이 여러 사정으로 어려움이 있어도 진정한 최고위 과정의 목표를 추구한다면 일반 기업인, 공무원 등 사회 지도층에게 매우 주요한 과정이다.창설된 그해 5월초 강연을 약속했던 김호길 초대 총장은 끝내 팸팁에서 강연을 하지 못하고 4월 30일 사고로 타계하셨다. 그 아쉬움은 오늘날 팸팁의 성공과 함께 깊게 투영된다.

2019-08-01

이공계생을 적극 키워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반세기 전인 1971년 이공계 육성의 엄청난 정책이 발표되었다. 한국에 카이스(KAIS·KAIST의 초창기 이름) 라는 특수 이공계 대학원을 만들어 재학생 전원을 특례보충역으로 3주 훈련만 받고 병역특례를 준다는 발표였다. 당시 충격적인 조건으로 카이스를 향한 이공계 대학생들의 합격열망은 대단하였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 공대학장이었던 터만 조사단이 내한하여 계획을 구상하였고, 지금 카이스트 경영대가 있는 홍릉단지에 카이스가 세워졌다. 발표 2년 후인 1973년 첫 입학생을 모집하였다.필자도 1975년 카이스 3회로 입학하여 직접 교육과정을 받으면서 당시 한국의 일류라고 하는 일반 대학들과는 전혀 다른 미국식 교육과 연구방식에 큰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현재 이공계 대학의 상당수의 교수가 카이스트 졸업생이고 산업계에도 엄청난 기여를 하였다는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사실상 이러한 카이스트의 성공에는 초창기 병역특례가 기여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엄격히 말하면 병역특례는 당시에도 병역의무의 다른 형태였다. 왜냐하면 병역특례를 받은 졸업생들은 국내의 산업, 연구소에 최소한 3년을 근무해야 한다는 조항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카이스의 병역특례는 여러 가지 과정을 겪으면서 오늘날 이공계전문연구요원 병역특례로 이어져 오고 있다. 한 해 약 2천500명이 혜택을 받는다고 한다. 군복무 기간을 대강 2년으로 볼 때 약 1%의 젊은이들에 대한 혜택이다.최근 정부는 이 제도의 대폭 축소 내지는 폐지를 구상하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국방부는 현역병 자원 감소를 이유로 연간 2천500명 규모 전문연을 2022년부터 단계적으로 감축해 2024년에는 50% 이상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대하여 과학계 원로인사들로 구성된 한림원이 성명서를 내고 이에 KAIST 등 국내 4대 과학기술원 교수들까지 이공계 전문연구요원 축소 방안에 반대하고 나섰다.포스텍, 서울대 등 주요 일반대학의 이공계 교수들도 같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교수들은 축소안이 이공계 대학원의 인적자원을 붕괴시키고 인구역량 저하를 가져올 뿐 아니라 중소기업 및 연구기관의 첨단기술인력 부족을 초래해 기술주권 상실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전문연구요원 선발 규모가 현역 입영인원에 1% 수준으로 군 복무자원의 확보 차원이 아니라는 의미다.사실상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과학기술을 활용한 국가사회적 문제해결과 함께 국방과학기술 고도화를 통한 군의 현대화·선진화·고급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해 왔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군의 전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본다. 또한 국가 기술주권과 산업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초창기 카이스트가 병역특례로 그 명성을 유지하면서 오늘날 각종 이공계 인재를 배출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이런 점에서 전문연구요원은 병역면제라기 보다는 병역의무의 또다른 형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전문연구 요원 제도는 우수 과학기술인재의 해외 유출 방지에 기여한 대체불가능한 제도라고 본다. 전문연 제도 감축·폐지가 이공계 연구실 연구능력과 중소기업의 고급기술인력 확보뿐 아니라 국가경쟁력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 특히, 최근 일본의 반도체 부품 수출규제 사태에서 보듯이 이제 우리 기술을 더 강화하여야 할 시기에 중소기업 및 연구기관의 첨단기술인력 부족을 초래는 불보듯이 뻔하다.정부가 좀더 소통과 대안 없이 전문연을 감축하면 지금도 부족한 고급 과학기술인재를 해외로 유출시키고 대학-연구소-기업으로 이어지는 과학기술 생태계를 붕괴시켜 종국엔 국가 산업경쟁력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지금은 이공계생들을 더 적극 키워야 할 시기이다.

2019-07-25

포스텍 총장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포스텍 이사회가 새로운 총장을 선임했다. 포스텍의 8대 총장으로 김무환 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가 선임되었다. 8년간 외부초빙 총장에 의해 운영된 포스텍이 다시 내부교수를 총장으로 선임하는 전환점이란 의미도 갖는다. 김무환 총장 내정자는 30년 넘게 원자력안전기술 분야를 연구해 온 원자력 전문가로 꼽힌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원장을 역임하였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자문기구인 국제원자력안전위원회의 한국 대표 위원으로도 활약했다. 교내에서는 기획처장, 학생처장 등 다양한 보직을 맡아왔다.상당한 진통을 겪었던 총장선임 과정이기에 새로운 총장이 교수 직원 학생 등 구성원들의 힘을 모아 포스텍의 새로운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는 노력과 사명감은 그 어느때보다 중요해 보인다. 포스텍은 어떤 대학인가? 포스텍은 한국을 세계로 리드하는 대학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30여 년 전 1986년 한국 최초의 연구중심 대학으로 출발하여 첫해부터 초일류대학으로 인정받아 1994년 시작된 중앙일보 랭킹에서 국내1위를 차지했다. 또한 2010년 영국의 평가기관 타임즈(THE)가 실시한 첫해 랭킹에서 한국 1위, 세계 28위를 차지하고 2012년 ‘창립 50년 이하 대학’에서 세계 유수의 대학들에 앞서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3년 연속 그 위치를 지켰던 한국 대학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대학이다.30년 전 박태준 포스코 회장의 결단과 김호길 초대 총장의 배짱으로 만들어진 포스텍은 한국의 서울 아닌 지역에서도 초일류 대학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포스텍은 창립 이후 줄곧 내부교수가 총장을 하는 전통을 가졌었다. 그러나 2011년 6대 총장 이후 8년간 두 분의 외부총장을 영입하였다. 과거를 돌아보면 캠퍼스를 격동으로 몰아넣었던 이슈가 있었고 그 기간 동안 역동력을 상실하여 학생들의 포스텍 선택이 줄어드는 현상을 입시에서 경험했다. 포스텍이 혼돈의 세월을 겪었기 때문이다. 국가과학자를 비롯해 교수들이 포스텍을 떠나기도 했다. 대학이 여러모로 최선을 다하긴 하였지만, 상대적 평가 하락도 이어졌다. 이후 대학을 다시 재건하려는 노력이 있어왔다. 외부활동과 강연을 통하여 창의력과 창업을 바탕으로 하는 여러 가지 제도를 만들어 대학을 다시 재건해 나갔다. 대학의 사명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는 시도는 신선했다.그러나 한번 내려가기 시작한 대학평가를 세우기는 쉽지 않았고 경쟁대학과의 학생선택권에서 위축되어 온 것을 되돌리기도 쉽지는 않았다. 대학을 선택하는 기준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정성적인 요소로는 대학의 명성이 있고, 정량적으로는 입학생의 성적과 국내외 대학평가 등이 있다. 물론 포스텍이 자랑하는 대학의 연구능력은 위의 세 요소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그 영향은 장기간에 걸치고 또한 전략적인 접근 없이는 쉽게 반영되지 않는다. 그 연구능력마저 경쟁대학들이 빠르게 따라오고 있다. 이제 신임 총장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포스텍의 발전을 위한 여러가지 전략은 국내외 높은 평가를 바탕으로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간의 선의의 경쟁은 스피드만을 기준으로 하는 달리기가 아니며 오히려 종합적인 면을 평가하는 피겨스케이팅에 가깝다. 대학에서 연구는 매우 중요하지만, “연구만 잘하면 된다”는 단순논리를 떠나 연구, 인프라, 명성, 네트워크 등이 함께 가야 한다.김 신임총장 내정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규모가 작지만 그렇기 때문에 혁신이 필요한 시대에 누구보다 빨리 대응하면서 앞서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포스텍은 작고 강한 대학이기 때문에 탄력성과 유연성을 갖고 있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대학이다. 신임총장에게 큰 기대를 걸어본다.

2019-07-18

일본, 어떻게 다룰 것인가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규제, 수출규제로 한국 경제계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은 급히 일본으로 달려가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일본체류가 길어지는 것으로 보아 협상이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대한 보복수출금지조치 등의 맞대응의 소식도 들린다. 수출규제, 보복수출규제 모두 감정적 대응이라는 소리는 한일 양국 국민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한 국가의 경제가 감정적 대응으로 좌지우지 되어선 안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한일관계의 근본적 붕괴에 대한 걱정도 앞선다.한국의 산업은, 특히 반도체 산업은 일본의 원자재나 부품공급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한국을 반도체 수출강국이라고 한다.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세계 1∼2위이다. 그러나 컴퓨터 휴대폰 기억장치 연산장치 능력을 갖는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는 세계 5위권 밖이며, 수입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2010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시 한국 IT산업분야가 타격을 입었다. 그 당시 후쿠시마 지역이 부품 소재 공업도시인데 부품 공급이 안 되어 그 피해를 한국이 입은 것이다.한국의 부품이나 소프트웨어 해외 의존도는 매년 1월 신문기사에 한국 삼성 엘지 등 휴대폰 제작사들이 미국 퀄컴사에 기술 로열티를 2조원을 내고 있다는 기사에서도 알 수 있다. 휴대폰 핵심소프트웨어는 이 회사 제품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기업이 부품소재 기술력이 없어서 이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일본 전자제품을 복사하여 자사 제품한 것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개발보다 수입에 의존하는 게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그리고 기업들이 협력사와 관계를 공조·공생관계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기업 부품소재 분야는 제3국으로 생산기지를 변경하게 되고 반도체 분야에서는 일본이 제3국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던 이유도 한몫하고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위안부 협정 파기 등에 대하여 불만이 누적되어 왔으며, 이에 대하여 문재인 정부의 대일 강경정책 완화를 목적으로 이러한 경제규제의 대응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을 맺었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이 시절 거리로 뛰쳐나온 대학생들의 격렬했던 데모를 기억한다. 우여곡절 끝에 맺은 한일협정 후 한국과 일본은 사실상 애증의 관계를 반복해 왔다.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면서도 위안부 문제 등 끊임없이 전개되는 이슈로 갈등을 겪어왔다. 그러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사실상 동반자 관계였다. 한국의 자동차, 조선, 반도체 산업은 일본과의 협력으로 발전해 온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진보적 현 정부가 일본에 대해 보수정부보다 덜 협력적이고 덜 우호적이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이고, 그래서 일본은 큰 불만을 품어 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일간의 관계는 한미관계보다 훨씬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한미일 동맹에서 한국이 제3자로 돌아서고 있는 상황이다.일본은 미국과 함께 같이 가야 할 국가임은 엄연한 사실이다. 동북아시아 구도상 한미일 공조가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강한 한국을 만들어 낼 수 있고 핵개발로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야욕을 막을수 있는 중요한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한일 동맹이 약화되면 경제는 물론이지만 정치, 군사적으로 동북아 정세의 불균형을 가져오게 되리라는 것은 불보듯이 뻔한 사실이다. 한미일 동맹강화는 건전한 한미, 한일 관계를 기초로 한다. 이번 일본발 한국에 대한 경제규제는 반발성 감정적 대응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좀더 슬기롭게 협력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일본을 감정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2019-07-11

권순우 선수가 주는 교훈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금년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비교적 생소한 이름의 한국선수 한 명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국의 윔블던 대회의 예선전은 본선에 들어가고픈 선수들의 전쟁터 같은 곳이다. 예선 통과는 사실상 본선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 여기서 예선에서 압도적인 스코어로 3승을 거두고 본선에 진출한 21살 권순우라는 선수의 과거 역정이 주목을 끈다.권 선수는 메이저 테니스 대회에서 지금까지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선수였다. 그런 권 선수가 예선을 파죽지세로 몰아붙이고 본선에서 세계 9위의 선수에게 한 세트를 따내는 등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매 세트 접전이었다. 그가 비록 패하긴 했으나 세계 10위권 선수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탁월한 경기로 테니스 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전설의 스타 존매켄로 선수가 경기 후 권 선수에게 박수를 치며 앞으로 크게 될 선수라고 치켜세웠다는 소식이 들린다.여기서 필자의 흥미를 끄는 것은 그가 주니어 시절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선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 그의 공격적 플레이가 완성되고 한국선수로는 드물게 강한 서브로 무장한 그의 플레이는 테니스 팬인 필자에겐 정말 감동적이었다. 창의적이고 공격적인 주니어 시절을 보내야 체육이든 예술이든 학문이든 어떤 분야이든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증명했다.권 선수의 갑작스런 부각을 보면서 체육뿐 아니라 학문의 세계에서는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세계 학문의 각축장인 미국의 최고 명문대학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교수들은 과거 주니어 때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과연 한국에서 대학예비고사 또는 수학능력시험에서 전국 1위를 하고 대학의 수석합격자가 유학 후 미국의 명문대의 교수가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은 참으로 흥미로운 질문이다.미국의 일류대학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채찍이론이라는 재고관리 이론으로 유명한 경영학과 황승진 교수는 로체스터라는 비교적 생소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한 후 30년 전 스탠퍼드 대학 조교수로 시작하여 종신직까지 받은 스탠퍼드 석좌교수이다.아이비리그 대학인 브라운 대학의 기계공학 김경석 교수는 브라운 대학에서 공학박사를 받은 후 일리노이대학교 조교수 재직 중 국가젊은과학자상에 선발되면서 명문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칼텍, 브라운대학에서 정교수 제안을 받고 모교인 브라운 대학을 선택 정교수직에 오른 전설적 교수이다.이 두 사람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 두 분의 교수가 모두 대학 예비고사 수석이나 대학 수석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들이 공부는 잘했어도 그들의 창의적 사고가 암기식 공부 방식에는 방해가 되었을지 모른다. 이는 권순우 선수가 주니어 시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과도 같은 맥락일 것으로 생각된다.필자의 관찰로는 이 두 분의 교수는 꽤 머리가 좋긴 했지만 상당히 엉뚱한 곳이 있는 분들이었다. 유머가 풍부하면서도 날카로운 예지력과 창의력, 판단력을 소유하고 있는 교수들이었다. 엉뚱한 토론을 즐겨하며 창의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분들이었다.또 한 분 최근 화제가 된 미국 MIT 대학의 김상배 교수가 있다. 김 교수는 연세대 기계과 출신이다. 그 역시 수능 최고 점수하고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의 창의력은 스탠퍼드 박사과정 학생 때 만든 스티키봇(Stickybot)이 타임즈 최대 발명품으로 꼽힐 정도였고 당연히 MIT 같은 초일류대학의 교수가 되었다.권 선수의 경우도 그리고 열거한 미국 명문대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교수들을 예로 볼 때, 어려서 주니어 시절 좀 더 창의적이고 과감한 사고방식이 큰일을 낼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한국의 초중등 교육에 참으로 소중한 교훈이다.

2019-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