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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0%의 엘리트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포스텍에서 연구실을 거쳐간 제자는 필자가 부임한 연도와 같은 89명이다. 이중 대학교수를 하고 있는 제자들이 몇 명 있다. 그래서 제자들이 교수로 있는 대학에 가서 순회강연을 계획했고 벌써 몇 대학에서 강연을 했다. 이번 주에는 목포의 국립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있는 제자의 초청으로 그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략적 기술경영 및 정보경영`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그런데 예상외로 강의를 듣는 태도가 훌륭하고 진지했다. 대답도 잘하고 반응이 좋아 흥겨운 강의가 됐다. 요즘 대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스마트폰을 들여다 본다든가 하는 행위들이 잦다는 소문을 듣던 터이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제자 교수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학생들의 태도를 칭찬하면서 `10%의 엘리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10%의 엘리트`란 어떤 집단이든 10% 정도의 엘리트가 존재하며 남은 90%는 자기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10% 엘리트가 이끄는 사회의 일원으로 행복을 누린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는 미국이 가장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미국대학의 교수로 있으면서 느낀 것은 덧셈도 제대로 못하는 미국 대학생들이 있는데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노벨상이 300개 이상 나오고 과학과 기술이 최고이며 경제, 군사에서 최강국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해답을 알아냈다.미국의 10%의 엘리트(아마 더 작을 수도 있다. 혹자는 5%라고도 한다.)들은 정말 명석했다. 명문 스탠포드대학에 재학시절 이 10% 엘리트들이 얼마나 명석하고 활동적인가를 알았다. 그러한 창의성을 가지고 만든 것이 실리콘 밸리이다.지금 구글, 페이스북, 인텔, 애플 등 기라성 같은 기업들이 깔려있는 실리콘밸리는 미국 10% 엘리트의 산물이고 여기서 활약한다는 인도, 한국, 중국의 인재들은 모두 그 나라의 엘리트들이다.특히 얼마 전 다녀온 인도의 인도공대(IIT)는 인도의 엘리트들로 IT 쪽에 세계적 명성을 가지고 있다.제자 대학인 목포의 국립대는 유명한 대학은 아닐지 몰라도 10% 엘리트들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필자도 미국 유학 전인 70년대 후반 서울의 한 대학에서 전임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엘리트이론에 근거해 몇 명의 엘리트 학생에게 심혈을 기울였고 그들과 연합하는 다른 학생들에게 용기와 야망을 심어주었다. 그 결과 50대 중반을 넘어선 이 제자들은 사회에서의 활약상이 눈부시다. 대기업 사장, 대학교수, 공기업 국장, 벤처 CEO 등 자기 분야에서 눈부신 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는 그 제자 교수에게 엘리트론을 설명했다. 이 대학의 엘리트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길러낼 때 그 제자들이 사회의 큰 재목이 될 것이고 그들이 만든 자부심으로 나머지 학생들도 자기 역량에 맞는 분야에서 크게 활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지금 우리 사회는 자만과 좌절의 두 갈래로 나뉘는 패러다임에 살고 있다. 그러나 자만도 금물이지만 좌절도 금물이다.그래서 10% 엘리트론은 가슴에 다가온다.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했던 포스텍이나 필자가 현재 근무하는 디지스트는 아마도 10% 엘리트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한편 이 두 대학의 운명을 쥐고 있는 것은 이 두 대학의 10% 엘리트 졸업생 일수도 있다.한국은 지금 북한의 핵 위협과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얽혀서 정말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한국의 엘리트들(그들이 정치인이든 경제이든 과학자이든 교육자이든)의 역할은 정말 중요한 것이다.목포 국립대 문을 나서면서 노을이 짙어가는 캠퍼스를 바라보며 그 대학의 엘리트들의 역할을 생각했다. 손짓으로 작별을 아쉬워하는 제자 교수를 위해 기도하는 심정으로 캠퍼스를 떠났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완주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2017-11-09

인도의 두 얼굴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인도의 델리에는 재작년 인도상공회의소(FICCI) 초대로 방문해 강연한 이후 두 번째로 방문하게 됐다. 새벽 1시 공항에 도착한 후 공항밖으로 나오는 순간 매캐한 공기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인도는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나라이다. 역사 깊고, 두뇌가 좋고 잠재력이 큰 나라라는 평가와 국민성과 계급제도로 발전하기 힘든 나라라는 평가이다.이번에는 세계적 논문관리 및 출판사인 엘즈비어(Elsevier)의 초청으로 델리에서 열리는 포럼에 강연자로 초청받았다.그런데 비자를 내는데 요구하는 서류가 너무 많았다. 지금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비자를 필요로 하지 않고 심지어 미국도 한국에 `노비자` 정책을 쓰고 있는데 별로 내키지 않는 인도가 왜 그리 요구하는 서류가 많은지 이해가 안됐다.행사에 앞서 인도의 명문인 인도공과대학(IIT)에 가 봤다. IIT의 명성을 알고 있어 기대를 가졌던 필자는 캠퍼스를 들어서면서 어리둥절해졌다.낡은 건물이나 사무실, 교실은 이해한다 치더라도 길가에 쌓여있는 모래더미나 건축자재들은 캠퍼스라기 보다는 공사장 같았다.도서관을 둘러보니 60년대 한국의 대학교 수준으로 보였다. 포스텍에서 교환학생으로 간 제자인 학생과 만나보니 기숙사 시설도 낙후돼 지내기가 무척 힘들어 보였다.처장실의 방에는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에어컨을 켜 달라고 했더니 전기가 나갔다 들어왔다 하면서 불안한 전압과 전기사정을 볼 수 있었다.기대는 큰 실망으로 바뀌고 있었다.인도는 인구가 10억이 넘는 나라이고, 미국 실리콘밸리 20%의 인재가 인도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두뇌가 좋고 IT기술도 뛰어나다고 한다. 물론 땅 덩어리가 한국의 30배가 넘고, 무한한 자원도 땅속에 묻혀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그런데 인도에는 발전을 저해하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어 보였다.우선 신분제도인 카스트제도이다. 계급사회인데 그 전통과 폐해가 심해 인도의 발전을 막고 있다. 법적으로는 폐지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사회 구석구석에 뿌리깊게 내리고 있다. 또한 인도 사람들의 국민성도 큰 문제로 보인다. 더운 기후 탓인지 인도 사람들은 항상 느긋하고 심하게 말하면 `게을러` 보인다.대부분의 건축공사들은 끝없이 이어지고, 기차는 연착하기 일쑤다. 두 세 시간은 기본이고 다섯 시간 연착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제자 말로는 비자연장 신청하는데 관청을 7번 갔다고 했다. 행정의 비효율이 극치를 이룬다고 한다.사실 인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딸 정도로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도 한국, 중국,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에 절대적 열세를 보여주고 있다.올림픽은 국가 경제, 조직력, 국민성 등을 척도하는 종합예술인데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구 강국과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선전을 보여주고 있기에 인구 10억의 대국 인도의 열세는 현재의 문제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사실 한국도 60년대엔 이런 모양새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인도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껴진다.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라는 네 나라를 미래의 희망이라고 한다.그러나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미래의 희망이라고 말하기 힘들다.시스템이 올바로 작동되고 근면성이 배양된다면 인도는 엄청난 국가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에 정말 해야 할 일이 많고 갈 길이 먼 나라라고 느낀다. 한국은 30~40년 전에 비해 엄청 발전했지만 인도의 경우로부터 많은 걸 느끼고 더욱 발전의 고삐를 죄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2017-11-02

“제가 의원님 자식인가요?”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여의도는 지금 국정감사가 한창이다.그런데 국감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드라마는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들에게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국감에 참고인으로 나온 카이스트 이병태 교수는 “제가 의원님 자식인가요?” 라고 내뱉었다. 국회의원들에게 대들지 못하는 일반적 분위기에서 나온 발언이기에 꽤 충격적이었다. 국회의원이 무슨 큰 벼슬이나 되는 것처럼 고자세로 고성을 지르고 어거지 주장을 펼치고 청문회나 국감에 나선 증인이나 공무원들에게 모욕적 발언을 일삼는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지난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나온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와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의원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의원들은 이 교수가 `최저임금`과 관련해 자신들과 다른 견해를 발표하자 언성을 높이며 질타했다. 상대가 교수라서 그런지 상대적으로는 점잖기는 했지만, 여전히 국회의원들이 참고인을 불러놓고 `갑질`을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이 교수는 이날 “이렇게 급격하고 과격하게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나라는 유례가 없다”며 “자영업자나 영세업자의 준비기간도 없이 획일적으로 인상해선 안 된다.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그는 “생산성 없이 임금을 많이 올리면 결국 일자리를 줄이는 쪽으로 가게 될 것”이라며 과격한 인상보다는 적절한 최저임금 산출을 주장했다. 이에 일부 여당의원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논란이 있는데 왜 한쪽 의견만 일방적으로 주장하느냐”고 비판했고 “교수님이 자녀에게 용돈을 얼마나 주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가계의 임금 표를 보라”고 질타했다. 이런 점입가경의 상황에서 문제가 터졌다. 신창현 민주당 의원이 이 교수의 발언 태도를 문제 삼으며 “감정적인 표현과 모욕적인 단어를 사용했다. 의원들이 모욕감을 느낀다”고 하면서 이 교수의 답변 태도를 문제 삼았다.이에 대해 이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자영업자나 영세업자가 준비할 기간도 없이 획일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면서 “의견이 다른 것 때문에 왜 모욕감을 느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이 교수는 “제가 내일모레면 60이다. 여기 계신 의원님들에게 태도, 표정을 코치 받을 나이인가. 제가 의원님 자식인가”라며 항의를 하였다.이 발언은 SNS 상에서 급히 퍼졌고, 평소 국회의원들의 태도에 불만이 있던 많은 네티즌들로부터 “속 시원한 발언이다”라는 지지를 받았다.이병태 교수는 필자와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학자로서 평소 잘 알고 지내고 있는데, 산업공학과 출신 교수로는 드물게 경제, 경영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그의 생각은 항상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있고 포퓰리즘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학자로 과감하고 용기있는 발언을 하기도 하기에 그의 논리에 비교적 필자는 동감하고 있는 편이다그런 측면에서 그가 “제가 의원님 자식인가요?”로 항의한 대목이 필자의 주목을 크게 끌었다.국회의원들이 본인들이 소리를 지르고 상대에 대한 모욕적인 자세를 스스로 고치지 않으면서 대답을 하는 공무원이나 참고인들의 자세를 훈육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모두 미국 국회청문회나 국감을 한번 가서 견학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얼마나 정연하게 논리를 펼치고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청문회나 국감을 진행하는가 보게 될 것이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환골탈태해야 한다.진정 국민의 심부름꾼으로서 겸손하고 확고한 지식을 통한 정치와 소견을 펼칠 때 국회에서 쓸데없이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훨씬 존경받게 될 것이다.

2017-10-26

두 분 교수님을 그리워하며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낙엽이 물들기 시작한 올해 포스텍 캠퍼스 가을은 유난히 쓸쓸하게 느껴진다.최근 일주일 사이 포스텍에선 두 분의 현직 교수님이 하늘로 떠나갔다.포스텍 30년 역사에서 현직 교수님이 세상을 떠나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더구나 두 분이 한꺼번에 떠나시는 것은 개교이래 처음일듯 싶다.호암의학상에 빛나는 서챨스(서동철) 교수님(생명공학)은 `세계 면역학의 성지`로 불리는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의 첫 한국인 정교수였다.몇년 전 그가 포스텍에 부임하던 날, 그를 스카우트한 같은 학과 최관용 교수님과 함께 영일대해수욕장의 조개구이 집을 찾았다. 소박하고 서민적인 느낌을 주는 서 교수와 함께 조개를 구워 먹으면서 그의 학문적 예리함과 함께 한국사회의 관습 문제를 꿰뚫는 혜안으로 밤이 새는 줄 몰랐다.포스텍은 IBS(기초과학연구원)에 4개의 연구단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서 교수 연구단이다.면역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그는 이 분야에 독보적인 연구단을 만들었고 국내외 기대를 한몸에 받은 학자였다. 그는 매우 건강해 보였다. 포스텍에선 매일 아침 요가를 직접 지도하면서 교수님들의 건강향상에 앞장섰다. 그가 대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을 때도 금새 일어날 것으로 믿었다. 그는 웃음을 잃지않는 낙관론자였다.그가 육류음식을 정말 좋아했다는건 나중에 알았다. 미국에서 치료를 받던 그는 지난주 홀연히 떠나갔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본인이 선택한 길이라고 했다.포스텍에 차려진 빈소에는 그를 애도하는 동료학자, 제자들의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추도미사가 곧 미국과 한국에서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의 은은한 미소가 쉽게 떠날 것 같지는 않다.서 교수에 대한 그리움을 추스르기도 전 그제 갑자기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하고 포항의 한 병원에 차려진 또 한 분 교수님의 빈소를 찾아야만 했다. 풍력대학원을 설립하고 풍력 및 신에너지 연구에 매진했던 한경섭 교수님(기계공학)은 풍력학회, 신에너지 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신에너지 개발에 정력을 쏟았던 분이었다.한 교수님은 필자의 고교와 대학 선배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특별한 인연은 자식을 앞세운 부모로서도 선배였다.언젠가 “선배님은 편해 보이시는데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물으니 “가슴에 늘 안고 있고 이렇게 꺼내 보곤 하지요” 라며 눈망울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보면서 `아! 교수님도 겉은 태연해도 마찬가지이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찡했던 기억이 있다.교수님은 슬픔과 고통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안고 함께 같이 가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동료교수의 전언에 의하면, 몇달 전 뇌종양 수술 후 우연히 만나고 헤어지는데 다시 불러세워서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하더라면서 그분의 애틋한 심정을 전해줬다. 10여 년 전 기획처장으로 학교에 봉사하셨던 한 교수님은 세 달 전 카톡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단톡방에서 갑자기 나가셨다. 단톡방에서 나가면 곧 좋지 않은 소식이 오는 것을 알기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부고가 날아들었다.이 두 분의 석학은 수많은 연구업적을 내면서 막상 본인의 건강을 이기지 못했다.필자는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서 교수는 면역학의 권위자인데, 암에 버티는 면역력을 기를 수 없었을까? 또 한 교수도 신에너지의 선두였는데, 종양에 대항하는 신에너지원을 만들어 볼 수는 없었을까? 너무도 안타까운 떠남에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영결식이 끝난 후 포스텍 캠퍼스를 한 바퀴 도는 영정차를 보면서, 두 분 교수님의 명복을 빌었다. 하늘에서 한국대학과 한국과학의 발전을 위해 애써주시리라 믿으면서….

2017-10-19

라스베이거스의 총기 난사와 노벨경제학상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이번 연휴는 참 길었다. 무려 열흘이나 계속된 연휴는 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시작해 노벨 경제학상 발표로 끝을 맺었다.총기 난사와 노벨경제학상.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두 개의 단어가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재 미국이 안고 있는 모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10월의 첫날, 총격범 스티븐 패덕은 라스베이거스 중심가에 위치한 호텔 32층에서 길 건너편 야외 콘서트장 2만여 명의 관객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해 58명의 사망자와 550여 명의 부상자를 만들며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을 저질렀다. 경찰은 그 이유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미국에서는 거의 매년 대형 총기사고가 터진다. 최근만 돌아봐도 1999년 13명의 사망자를 낸 콜로라도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2007년 33명이 사망한 버지니아공대 비극에 이어 2012년 12월 코네티컷 주 뉴타운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로 26명이 사망하고, 작년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 소재의 나이트클럽에서 50명이 사망한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로 기록돼 있었으나 이번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가 다시 기록을 갱신했다.`최악의 총기 난사`라는 기록은 경쟁적으로 깨지고 있다. 미국에서 총기 사건·사고로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 일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연간 3만명 이상이 총기로 인해 사망하고 있다. 이는 인구대비 1만명 중 1명으로 세계 최고의 총기 사망률이다.한국 인구에 대비하면 매년 5천명이 총기사고로 사망하는 비율이다.교통사고와 맞먹고, 테러와는 비교가 안 된다. 2001년 9·11 테러 이후부터 2013년까지 테러로 미국 안팎에서 사망한 희생자가 3천380명인데 반해 같은 기간 총기 사고로 미국 내에서 사망한 이는 40만6천496명에 달하기 때문이다.미국에서 총기 사고가 많은 까닭은 다른나라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총기 보유량과 깊은 연관이 있다. 미국인이 보유한 총기는 2억7천만 정에 이른다고 하는데 미국 인구를 3억2천만명으로 추산하면 전체 인구의 84%가 총기를 소유한 셈이 된다.총기 규제를 못하는 이유는 수정헌법 2조에 근거해 설립된 총기소유 당위성을 고집하는 미국총기협회(NRA)의 횡포와 NRA의 정치자금을 받는 공화당 중심의 보수적 국회의원들 때문에 총기규제 법안자체가 통과되기 힘들기 때문이다.또한 NRA는 “총은 개인을 방어하기 위해 있는 것이며 어떠한 규제도 하면 안 된다”라고 버티고 있다. 총 때문에 수만명이 죽어갈 때 과연 몇 명이 총기로 스스로 방어해서 살아남았는가?한편, 총기사고로 뒤숭숭한 연휴의 마지막날 올해 노벨경제학상이 발표됐다.올해 노벨경제학상은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 미국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교수가 받았다. 지금까지 수여된 80여 개의 노벨경제학상은 80% 이상 미국인이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중국적자가 많지만 필자의 카운트로는 60명 이상이다.세계 경제학이론의 근간을 만들어 내고 있는 미국인 학자와 교수들이 지금 세계 1위 총기 사고의 미국을 보면서 과연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묻고 싶다. 경제학의 근거는 당연히 트레이드오프(Trade-off·이익과 손해의 상호작용)이다. 이익이 손해보다 클 때 경제학은 그런 정책을 추구한다.총기 소유 자율화로 손해가 훨씬 큰데도 불구하고 NRA의 부당한 압력에 정의가 실천되지 못하며 경제원리를 적용 못하는 미국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호주는 미국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아 강력한 총기 규제로 총기에 의한 살인을 50%나 감소시킨 것으로 알려져있다.미국은 강력한 총기 규제로 최다 노벨경제학상의 체면을 살리기 바란다.

2017-10-12

배우자의 선택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김광석! 80년, 90년대 순수하고 감성적인 노래로 지금 40대 이후 연령층을 울리던 가수다. 그러나 애잔하고 감성을 파고 드는 그의 노래는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애창되고 있다. 최근 다시 사람들에게 김광석의 노래가 화제가 되고 있다.필자도 정말 그를 좋아했고 좋아한다. 그의 히트곡은 수없이 많지만 `이등병의 편지`는 특히 필자가 젊은시절 가슴으로 안고 듣던 노래이다.그랬던 그가 20여 년 전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자살이라고 했다. 의문투성이 죽음을,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죽음이었는데도 경찰은 자살로 처리했다.그리고 20년이 흘렀고 10년 전 그의 하나 남은 딸마저 숨졌다는 사실이 이제야 알려졌다.그리고 두 사람의 죽음을 증언하는 김광석의 처가 TV 방송에 나왔다.남편과 딸을 잃은 사람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슬픔도 없어 보이고 논리에 맞지않는 변명과 과장되고 현란한 손짓으로 마치 거짓을 이야기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김광석! 그는 누구인가?그는 1964년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노래하는 철학자`로도 불린다. 2014년 제5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장이 추서됐다.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해 1982년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가요 공연을 시작했다.1984년 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했으며, 노찾사 1집에도 참여했다. 이후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일반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으며,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후에도 통기타 가수로 큰 인기를 누렸다.사실 그의 인기는 통기타 솔로 시절 빛을 발했다. 그의 콘서트는 낭만과 정서에 목마른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그의 노래에 젊음의 힘든 시절을 견뎌냈다.그의 사후 2007년, 그가 부른 노래 중 하나인 `서른 즈음에`가 음악 평론가들에게서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됐다. 2008년 1월 6일에는 12주기 추모 콘서트와 함께 대학로의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노래비 제막식이 열렸다. 또한 2010년 그가 태어난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에는 그를 기리는 `김광석 거리`가 조성돼 350m의 길에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다양한 벽화와 작품들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그의 짧은 인생과 비극적 죽음을 보면서 `배우자의 선택`이 한 인간의 일생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낀다.순수의 덩어리, 그리고 젊음의 감정 전도사였던 그의 죽음은 결국 배우자 선택의 잘못에서 비롯됐다.결혼사실을 숨기고 아이까지 있었던 사람이 팬이라고 의도적으로 접근해 이뤄졌던 결혼식은 사실상 사기극에 가까웠다. 어떻게 김광석이 그런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했는지 정말 미스터리다.그리고 그의 죽음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타살의혹이 짙다. 그 배우자는 김광석 사망 후 다른 남자와 하와이로 이주, 상당기간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피성 이주가 느껴지는 대목이다.그리고 딸을 기르는 것처럼 언론에 흘렸던 그녀의 거짓된 말과는 달리 딸은 이미 10여 년 전 숨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TV에 나온 그녀의 표정과 몸짓을 보면서 잘못된 `배우자의 선택`이 한 천재 가수를 파멸에 이르게 한 상황을 알 수 있었다.젊어서 사랑에 빠지면 객관적인 눈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오랜 경륜에서 오는 부모님이나 이웃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기 때문이다.사랑하는 가수 김광석의 이른 떠남과 가족의 비극을 보면서 배우자의 선택이 한 일생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낀다.이제 `김광석`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

2017-09-28

외로운 한국 기업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요즘 한국 기업들이 어렵다. 이리저리 몰리면서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우선 롯데의 이전투구가 불쌍할 정도다. 지난 6개월간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해 중국 롯데마트 112개 점포 중 87곳이 영업정지 돼 있는 상태다.연말까지 피해액 1조가 예상되며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든 상황으로, 중국 롯데마트 112곳을 전부 매각하는 협상에 들어갔다. 제 값에 팔 수 있을지도 요원한 상황이다.롯데는 국가 안보를 위해 정부에 사드 부지를 제공한 죄로 중국 보복의 타깃이 됐다. 그런데도 정부나 국민으로부터 성원이나 위로의 말 한마디 못 듣고 있다. 사드의 설치 자체가 아직도 정치적 쟁점이 되면서 롯데의 손실은 관심의 초점을 잃은 듯한 모양새다.사실 롯데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사드를 설치하려면 누군가 부지를 제공해야 하고 그것이 우연히 롯데의 땅이었을 뿐이다.그런데도 중국은 무차별적인 보복을 하고 있다. 더구나 도움을 줘야 할 정부도 30년 점용 허가 기간이 끝나는 서울역과 영등포역의 국가 귀속을 갑자기 발표했다. 롯데백화점 또는 롯데마트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근로자 등은 대책도 없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국가 신인도와 한국 홍보에 공헌한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고, 그것을 외면하고 있는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지금 한국 기업들은 외롭다. 비단 롯데뿐만이 아니다.현대기아차도 중국에서 사드 보복을 겪으며 입지가 위태로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예년에 비해 중국에서의 판매량이 반으로 줄었다. 작년 중국 시장점유율 6위를 차지했으나 현재 13위로 크게 하락했다.여기에 노조의 집요한 도전으로, 안팎으로 시달리고 있다. 사드 보복이란 이유가 없는 미국시장도 주저앉고 있다. 사드보복, 집요한 노조, 그리고 미국시장에서의 고전으로 역시 사면초가이다.롯데마트가 중국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한 뒤 현대기아차의 중국 철수설까지 불거지고 있다. 현대차의 중국 합자법인인 베이징현대는 현대차와 베이징기아차가 갈등을 벌이면서 8월 말과 9월 초에 일부 공장가동을 멈추기도 했다. 또 기아차 중국 딜러들이 회사를 상대로 판매부진에 따른 피해보상을 요청한 데 이어 현대차 중국 딜러들도 회사에 불만을 표출하거나 현대차 판매를 중단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기아차 역시 중국 사드 보복으로 판매부진을 겪으면서 생산 및 판매망도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진보정권의 집권으로 과거 보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현대에 대한 냉소도 심화될 전망이다.삼성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이다.총수는 장기 식물인간, 그리고 CEO는 수감 중이다. 정치적 냉소는 삼성도 예외가 아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그럼에도 삼성은 최근 반도체에서 인텔을 초월해 세계 1위가 되었다는 소식은 있다. 그러나 삼성의 고민과 외로움은 깊어갈 전망이다.요즘 기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사업을 접고 싶다”고 넋두리를 한다. 기업을 키워놓고 보니 온갖 규제와 제재, 조사에 시달리게 되고 설사 돈을 벌어도 국민들 동정도 못 얻고 내몰린다고 한다.기업인들은 “공장을 증설하기로 해도 한국에서는 아니다”라고 한다. 반기업 정서와 일부 극단적인 노조, 여기에 동조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기류에 기업들이 외로움이 깊어가고 있는 것이다.지금 한국의 기업들은 외롭다.이제 민생 최전선에서 뛰는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우리의 성원과 사회적 대접은 과연 어떤 것인지 자성해 봐야 한다.한국의 기업이 외롭도록 내 버려 두어선 안 된다. 기업이 외로워지면 곧 우리의 경제도 세계로부터 외면받고 외로워지고 결국 우리 민생도 외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2017-09-21

대학 국제화의 그늘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의 여름을 피해 영국 런던을 찾았다.대학 평가기관인 타임즈(THE)의 세계 총장회의 및 세계 대학 랭킹 발표에 참가하기 위한 것이 일차적 목적이었지만 런던에 있는 세계적인 대학 옥스퍼드, 캠브리지, 임페리얼 대학 등을 방문해 대학간 국제협력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우연히도 이날 발표된 타임즈 세계 랭킹에서 옥스포드가 1위, 캠브리지가 2위를, 그리고 임페리얼이 8위를 차지해 이 세 곳의 영국대학이 위세를 떨쳤던 날이었다.그런데 이 대학들의 국제처장과 이야기 하면서 한가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점이 있었다. 이제 국제협력에 있어서 대학간 MOU를 만든 후 서로 협력관계를 찾는 방식인 하향식(Top-down) 방식을 지양하고, 학과나 연구그룹에서 먼저 연구협력이나 교류협력이 이뤄져 활성화 된 후 대학간 협력으로 발전시키는 상향식(Bottom-up)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그들의 형식적 대학간의 협력에 대한 저항은 완강해 보였다.그들의 불만은 한국 일부 대학들이 대학간 MOU를 맺은 후 이를 외부에 과시할 뿐 실제로는 아무런 협력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물론 한국 대학들과 심도있는 연구와 협력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하지만 대학 과시용·대학 랭킹용 MOU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대학평가 또는 대학 랭킹을 위해 평판도 를 높이고자 노력하는 것은 꼭 한국 대학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국제협력과 MOU를 평판도 상승 방법으로 활용하고, 그러기 위해 자매대학을 늘리고 그들의 인지도를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일 수도 있다.그러나 최근 국내 한 대학의 세계 대학평가 자료 조작이 적발돼 유수한 대학평가 기관 랭킹에서 배제됐던 사건은 그냥 간과할 일은 아닌 것 같다.평가 항목 중 평판도 설문에서 조작 정황이 발견돼 순위권 제외판정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평판도가 부족한 상태에서 과욕이 불러온 해프닝이었다. 사실 국제화를 위한 기초작업은 그동안 끊임없이 토론의 대상이었다.보통 대학의 `국제화` 수준을 따질 때 외국인 교수 인원수와, 지금은 폐지됐지만 한때 영어강의 개설 수를 지표로 삼기도 했는데, 국제화 지표를 높이려고 무작정 외국인 교수를 늘리거나 영어강의를 개설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물론 필자는 외국인 교수 확대와 영어강의는 대학평가를 떠나 국제화에 매우 유용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외국인 교수확대와 영어강의 증가는 반드시 국제 교류와 협력을 실제 활용하는데 사용돼야 하며 형식적으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한국 대학의 국제협력 그늘은 여기에 있다.국제협력은 실제적 한국대학의 국제화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류확대가 상향식으로 일어나야 한다.상향식 교류확대를 위해 절대 필요한 기본 조건들이 점검돼야 한다. 아마도 위에 언급한 외국인 교수, 학생 확대와 영어강의, 영어환경 등도 그 조건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학평가나 랭킹이 목적이 아니라 실제적 국제협력을 통한 대학평가 상승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대학평가마다 지표도 다르고 비중도 다르지만 세계적 대학들은 어느 지표 어떤 비중의 잣대에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그 이유는 실제적인 국제화된 대학 운영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세계대학평가에서 크게 부각되고 있는 싱가포르나 홍콩의 대학들이 그 좋은 예이다.이들의 국제협력이나 국제화는 형식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탄탄한 기반속에 발전되어 왔다.한국의 대학들이 배워야 할 점이다.

2017-09-14

특성화 과기대의 미래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 특보새 집과 새 직장은 늘 낯설고 어색하다. 며칠간 그런 낯설음에서 헤매고 있다.28년간 젊음을 모두 보낸 포스텍을 떠나 대구에 있는 디지스트(대구경북과학기술원)로 가는 날 이 대학이 어떤 대학인가 나도 궁금하지만 모두들 궁금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사실 친구들이 어느 직장으로 가냐고 물었을 때 디지스트라고 이야기 하면, 인문계 출신 친구들은 대부분 잘 몰랐고 이공계 친구들도 전부 아는 건 아니었다.그만큼 신설된 대학이 디지스트였다.포항에서 그리 멀지는 않다. 1시간 남짓 대구로 가서 구마고속도로를 30분쯤 가다 보면 할매 곰탕으로 유명한 현풍이 나타난다.현풍에는 대규모 테크노단지가 세워지고 있다. 이곳에는 원래 경북과학기술원이라는 연구원이 있었고, 테크노 단지, 그리고 여러 공장들이 들어서고 국립대구과학관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교육부의 과기대 특성화 정책에 의해 4개 과기대 즉, 한국과학기술원(KAIST, 카이스트), 광주과학기술원(GIST, 지스트),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디지스트), 울산과학기술대학교(UNIST, 유니스트)의 집중 육성정책에 의해 디지스트 대학도 6년 전 설립되었다.이 4개의 대학과 사립대학인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포스텍)를 합해 5개 특성화 과기대라고 일컫는다.사실 이 5개 대학이 전국에 퍼져 있으면서 한국의 과학기술의 첨병이 되길 정부는 기대하고 있고 국민의 기대도 크다. 그간 정부는 1971년 창설한 카이스트를 중심으로 고급 과학기술인재 양성에 기여해 왔고 1986년 창설된 포스텍이 그 뒤를 이었다.그러나 꾸준히, 사회적 기술수요와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신속한 인재양성과 국가 전략적인 연구활동 및 지역산업 발전의 연구거점으로서의 역할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어 왔다. 이에 정부는 대학과 출연(연) 기능이 융합된 과학기술대학(원)의 이점을 활용하여 글로벌 시장을 창조할 수 있는 선도연구와 지역산업을 주도하는 지역수요기반의 RD 분야를 중점 지원하여 관련 핵심인재를 양성해 나가고, 강점분야에 대한 특성화를 통해 과기대를 세계적인 과학기술 선도대학으로 육성해 나갈 방침으로 이러한 특성화 대학(원)을 설립했다.병행하여 과학고, 과학영재학교를 포스텍과 이러한 디지스트 같은 특성화 대학원과 연계하여 과학기술과 교육의 융합시너지 창출, 해외 석학과 우수 외국인 교수를 유치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융·복합 교육 강화 및 스타과학자 육성을 위한 여건 조성 등을 해나간다는 계획도 있다.물론 포스텍은 사립대학이라 이러한 융합에 한계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포스텍의 우수성은 충분히 이러한 한계를 상쇄하고 있다. 디지스트를 비롯한 특성화 과기대의 또 하나의 전략은 전략기술 및 각 과기대의 강점분야를 특성화하고 연구의 창조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융합연구를 활성화 한다는 것이다. 국가 신성장동력 발굴과 국가·지역의 전략기술 원천연구 등 국가 미래원천 RD 분야 중점지원 기초과학연구원 연구단을 집적한 캠퍼스와 연계 및 융합연구소를 중심으로 융합연구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사실 디지스트가 추구하는 융합형 교육과 연구는 지금 포스텍의 주요 관심사이기도 하다.카이스트, 포스텍도 처음 만들어졌을 때 낯선 이름으로 고생하던 기억이 있다.필자도 특례자원 기초훈련을 군에서 받을 때 한국과학기술원 출신이라고 하니까 기술학원 출신으로 오해 받은적이 있고 또 대전에서는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오해한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포스텍도 포항의 어떤 낯선 대학으로 한동안 이름 때문에 고생하기도 했다.디지스트가 이런 선배대학들의 전철을 참고로 이름을 잘 극복하고 진정 한국과학의 선봉에서 포스텍과 함께 잘 발전하길 빌어본다.포스텍이 있는 포항과 디지스트가 있는 현풍을 달리는 길은 늘 즐겁다. 당분간은 왔다갔다 하면서 지내야 할 것 같다. 즐거운 왕복이 될 것 같다.

2017-09-07

이별과 고별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낯설은 포항에 온 지도 28년이 지났다.오클라호마 주립대 교수로 있던 시절인 30년 전인 1987년, 갑작스런 포스텍 교수의 한 통의 전화로 포항에 대학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그리고 다음 해 인천에서 있었던 재미과학기술자 학술대회 참가차 왔을 때 포스텍 학교 버스를 타고 포항에 처음 와 보았고 한참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 포스텍을 보았다.당시 교수들 중 지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포스텍의 발전과 전망에 대한 자신만만한 태도에 압도되었고 2년후 1989년 포스텍에 오게 되었다.지난주 포스텍을 퇴임하는 퇴임식을 다른 6명의 교수와 함께 가진 필자의 눈가엔 감회의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고별강연을 할 때는 가슴에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이별과 고별의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포스텍은 어떤 대학인가?문득 3년 전 유엔 안보리에서 행한 한국의 오준 유엔대사가 행한 연설을 새삼 생각게 한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북한사람들은 그냥 스쳐가는 아무나(anybodies)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그는 또한 “먼 훗날 우리가 북한을 위해 한 일을 돌아볼 때 우리가 올바른 일을 했다(did the right thing)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외쳤다.이 두 마디가 정말 포스텍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라고 느껴진다. 30년 전 아무것도 없었던 황량한 땅에 포스텍을 세울 때 외국에서 귀국한 교수들과 그리고 직원들에게는 또한 위험을 안고 포스텍을 선택하였던 졸업생들에게는 포스텍은 `아무나의 대학`(anybodies` university)은 아니었을 것이다.그리고 `한국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을 건설하기 위해 우리가 피땀흘려 한 일이 먼훗날 우리가 “필요한 올바른 일을 하였다”라는 평가를 받기를 바랄 뿐이다. 어려서부터 방송이나 언론에 흥미를 가졌던 필자는 포스텍에 입성하면서 항상 포스텍의 우수한 연구력, 우수한 교수인력과 학생들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수퍼텍(SuperTech)이라는 자발적 교수 그룹의 홍보팀으로 전국 고교를 돌았고, 또 이중언어 대학(Bi-lingual Campus) 선언과 같은 국제화, 그리고 포스텍의 국제적 평가와 위상을 위해 나름 지난 28년간 열심히 교수, 스태프들과 함께 뛰었다.여러 교수님들과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이러한 일들은 비교적 순조로웠고, 포스텍은 타임즈(THE)에 의한 세계랭킹 28위(한국 1위)라는 국내 대학 최고의 평가도 받았다. 이 모든 결과들은 모두 포스텍 구성원들과 그리고 포스텍을 후원한 포스코, 그리고 지역사회의 성원, 정부의 지원 등의 결과였을 것이다.그러나 이제 포스텍은 다양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라이벌이었던 카이스트의 도약과 디지스트, 유니스트, 지스트 등의 등장, 그리고 예상되는 한전공대 등의 새로운 진입대학들, 홍콩, 싱가포르 대학들의 추월과 약진 등 국내외로 거센 도전과 추월을 받고 있다.대학의 사명은 좋은 학생을 선발하여 “좋은 교육과 연구를 통해 좋은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명 달성을 위해서는 포스텍의 국내외적 위치는 확고히 정립되어야 한다.이별은 마음의 이별이고 고별은 몸의 이별이라고 한다. 필자가 나름 정의를 내려본 것이다. 포항과 포스텍에 대한 마음은 고별일 수는 있지만 이별은 결코 아니다.필자의 젊음을 모두 보낸 이 도시, 이 대학에서의 이별은 없을 것 같다.유명한 맥아더의 연설 일부를 인용해 본다.“Old professors never die nor fade away. They are with us forever.(노교수는 죽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한다)”.

2017-08-31

정치 개혁의 역학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한국은 두 달이 지나면 엄청 개혁이 되는 듯 보이는데 2년이 지나면 똑같아진다” 매년 제자들과 가지는 연구실 창립기념 모임에서 한 제자가 한 말이다.그 제자는 해외 출장을 많이 다니는데 “2개월 후 돌아와 보면 무언가 정신없이 변해 있는데 2년 후 돌아와 보면 똑같아 진다”는 상당히 의미있는 농담을 했다.참석한 제자들이 파안대소 했지만 그 농담은 웃어넘길 일이 아닌 듯했다.과거 모든 정권에서 초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정권들이 중반 이후 지지세가 급격히 떨어지는 경험을 했었다.지금 야당은 새 정부의 인사난맥상 등을 따지겠다며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의 출석을 요구하고 있다.그러나 청와대나 여당은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다. 국회 운영위에서는 여야가 고성과 삿대질을 주고받으며 충돌하는 모습까지 연출했다.사실 비리나 직권남용이 아니라 단지 인사검증 문제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국회 출석을 요구하는 건 정치적인 공세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그러나 한편 민정수석이 국회출석을 못할 이유도 사실은 없다.지금 여당은 야당시절, 국정혼란 개입의혹을 받았던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의 국회출석을 거세게 요구했었고 그의 국회 출석 거부를 격렬히 비난했었다.이제 여야가 바뀌어 여나 야나 과거를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여는 과거 그토록 비난했던 민정수석 국회 불출석을 옹호하고 있는데 그 옹호나 변명이 과거 여당 정부와 똑같다는 보도를 읽었다.반대로 야는 과거 민정수석의 국회 불출석을 옹호하던 것과는 달리 현 민정수석의 불출석을 격렬히 비난하고 있다. 여당은 야당에 대해 당신들이 여당시절엔 이러이러하지 않았는가 비난하고 야당도 여당에 대해 똑같은 논리로 비난하고 있다. 결국은 변화나 개혁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정치개혁의 역학은 무엇일까?자기 입장에서 모든 걸 정당화 한다면 어떤 개혁도 일어나기 힘들다. 현재 내 입장에 유리한 논리를 전개한다면 아무런 개혁도 일어날 수 없다.특히 정치개혁은 항상 상대방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 과거 내가 상대방 입장에 있을 때 어떻게 했을까 하는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이 개혁의 역학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올바른 개혁의 역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정권이 바뀌면 요란한 개혁이 진행되어도 몇 년이 지나면 똑같은 모습이 되는 것이 그동안 한국의 정치풍토였다.사실 현 정부가 인사검증에서 과거 야당시절 그토록 비난했던 공직 후보자에 대한 부실 검증 논란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민정수석이 차라리 국회에 나와 과감하고 떳떳하게 인사난맥에 대하여 해명을 해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과거 그토록 비난하던 논문표절, 음주운전, 부동산 투기를 한 인사들을 공직자로 임명하는 배경을 설명하면서 국민과 국회의 이해를 구하고 왜 야당시절 때와는 달리 인사 임명의 기준을 낮춰야 하는지 설명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그런 면에서 민정수석의 국회출석이 더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다고 본다.애시당초 민정수석은 인사검증 이외에도 상당히 전략적인 일들을 하기에 약간 베일에 싸인 역할을 한다는 이유로 국회증언을 거부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 전략적인 일들이 여전히 공개하기 힘들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제 정치개혁이란 측면에서 이번 정권은 이런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시켰으면 한다. 그것이 현 정부에 거는 새로운 국민들의 기대라고 본다.과거 잘못된 개혁의 역학이 아닌, 올바른 정치개혁의 역학 구도가 자리잡았으면 한다.

2017-08-24

한미 과기협(KSEA)의 과제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지난주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는 한국 및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과학자 수백명이 모인 연례 학술행사가 열렸다. 이름하여 UKC(USA-Korea Conference)다. UKC는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의 연례 학술행사인데, KSEA는 1971년 워싱턴DC에서 한인 유학생에 의해 창설된 재미한인과학자들의 모임이다. 필자가 유학생이던 80년대 1천 명 정도의 회원수가 지금은 1만 명 가까운 회원수로 늘어나 미국-한국을 연결하는 한인 과학자들 최대의 네트워크가 되고 있다.KSEA는 45년이 넘는 역사를 거치며 초창기 한인 1세대에 이어 1.5세와 2세 한인과학기술자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한·미 과학계 교류를 활성화한다는 취지 아래 한미과학기술산업학술대회(UKC)를 매년 열고 있다.초창기에는 학술대회를 KSEA 연례학술대회라는 이름으로 열다가 최근에는 UKC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미국-한국 유대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KSEA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KOFST)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는데, UKC 2017은 올해 19회째로 한국과 미국에서 모인 과학기술자, 기업가, 과학기술전공 학생들이 첨단과학기술 연구에 대해 논의하고 인적 네트워킹에 참여하게 된다.특히, 올해는 UKC 2017 개막식 기조연설자로 2006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우주항공국(NASA) 고다드 센터의 존 매더 박사가 초청돼 이채를 띠었다.매년 참석해 온 필자가 본 이번 UKC는 예년에 비해 참석자가 다소 줄고 본국에서 온 과학자들의 숫자도 조금 줄어든 느낌이었다. 그러나 한국인 과학자 교류의 장으로서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모습이었다.UKC를 본따서 한국-캐나다 과학기술학술대회인 CKC , 한국-유럽 EKC가 매년 열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중국의 CKC 창설 움직임이 있을 정도로 UKC의 선도적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금년 CKC와 UKC는 이틀 간격으로 연달아 열리는데 여기에는 정부 출연연 소장이나 원장들이 대부분 참석하고, 국회 과학기술위원회 위원들이 대거 참석한다.금년 CKC 주제는 `미래를 위한 과학기술혁신협력`, UKC는 `글로벌 도전에서의 기회:협력을 통한 융합과 혁신`으로 관심을 끌었다. 특히 융합과 혁신은 전·현 한국 정부 최대의 관심사로 시의 적절한 주제였다고 보여진다.한국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들이 대부분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새로운 과학기술 소개 등에 큰 관심을 보인 점도 예년과 같았다.필자는 매년 UKC에 참석하면서 UKC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다.우선 UKC 스폰서는 한국의 연구소, 대학, 정부기관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KSEA 회장에 당선되면 한국에 와서 여러기관들을 방문해 스폰서십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한다.KSEA가 진정 한국과 미국 과학자의 교류의 장으로 발전하길 바란다면 좀 더 다양한 소스에서 스폰서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미국 내 연구소, 대학, 정부기관들의 참여도 중요하기 때문이다.논문을 발표하는 참석자들 대부분은 재미 과학자와 한국 과학자들로 채워져 있다. 이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한국-미국 학자들이 공동으로 모이는 모임이 된다면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세션을 두 개로 나눠 한 개는 한국학자끼리, 또 하나는 한국-미국 학자의 공동 세션으로 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겠다.미국에 거주하는 300만 한인 교포들은 한국민의 연장선상에서 국토와 경제의 확장 개념으로 간주된다.그런 측면에서 UKC의 개념 확장은 더욱 중요해 보인다.

2017-08-17

맹장염, 골프 그리고 노벨상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맹장염, 골프, 노벨상.관련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세 개의 단어가 지난주 내내 머릿속에서 의문으로 다가왔다.몇일 전 새벽, 미국에서 공부하는 막내의 전화를 받았다. 얼마전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던 아이가 끝내 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는 전화였다.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꽤 흔한 맹장염이었다. 맹장염은 흔히 부르는 통칭이고 원래 충수염이라고 한다고 한다. 맹장 끝에 달린 충수돌기에 염증이 발생하는 것을 말하는데, 충수염은 수술에 의한 합병증보다 방치되었을 때의 후유증이 훨씬 심각하므로 충수염이 의심될 때는 수술적 처치가 필요하다고 한다.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도 수술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현지 친지들 말에 의하면 맹장이 안에서 터진 것 같은데 수술은 안 하고 항생제와 진통제만 투여하고 있다고 한다. 온갖 사전을 뒤져보고 친구 의사들에게 물어보아도 맹장염은 즉각 수술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만 돌아올 뿐이었다.급기야 미국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큰애가 비행기를 타고 달려갔다. 그리고 보내온 이야기는 맹장이 터지긴 했는데 구멍만 생긴 경우라고 한다.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순대에 조그마한 구멍이 생겼지만 안에 있는 내용물은 그대로 있는 경우라고 한다. 즉 터지지는 않았기에 항생제 투여로 염증을 치료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했다. 수술은 안할 수 있으면 안한다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하도 답답해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예외적으로 염증이 고름을 만들었을 경우 바로 수술을 하지 않고 우선 외부에서 배액관(튜브)을 삽입해 고름을 배출하고, 항생제를 투여해 염증을 가라앉힌 후 충수돌기 절제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안심하려고 노력했다.응급을 요하지 않는 맹장염으로 결국 이런 애를 태우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여전히 미국 의술의 현장 집행 방법에 대해 의문점을 지울 수 없었다.그러던 중 TV에서는 한국 여자 골프 선수의 영국오픈 우승 소식을 크게 전하고 있었다. 메이저대회의 쾌거라고 한다. 얼마전 다른 메이저 대회인 유에스오픈도 한국의 젊은 여자선수가 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또 우승의 쾌거가 들어왔다.언론은 금년 LPGA(미국 여자 프로 대회) 20개 대회 중 12개에서 한국선수가 우승했다는 믿기 힘든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세계 100개 넘는 나라가 골프를 하고 있지만 한국이라는 한 개의 나라가 이렇게 우승을 휩쓸다니….친한 친구 의사는 의기양양하게 말하고 있었다.“한국 사람들은 손재주가 좋아서 이렇게 골프도 잘하고 그리고 병원에서 수술도 잘하는거야. 자네 아들 맹장염 수술은 한국같으면 벌써 간단히 하고 퇴원했을텐데…. 수술은 역시 한국이 최고야”울화와 초조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오르지만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필자에게 한 가지 진한 의문이 다가 왔다.골프도 잘하고 수술도 잘하는 손재주 좋고 머리좋고 재능있는 한국사람들이 왜 노벨상은 단 한 개도 타지 못할까?미국이 300개 이상 타내고 유럽 각국이 비슷한 숫자로 받은 노벨상, 정확히 말하면 노벨 과학상을 왜 우리 한국은 단 한 개도 못받는 것일까?엉뚱하게도 필자는 맹장염 수술을 미루면서 원칙에 충실하려는 미국의학이 답답하긴 해도 노벨상 수백개를 타낸 밑바탕을 형성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사실 그 서양인들이 만든 약물과 발명한 수술방식 없이는 손재주는 좋다고 하지만 한국인들의 수술방식은 존재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생각할 때 무엇이 더 중요할까? 쉽지 않은 대답이다.

2017-08-10

영원한 승자는 없다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세계 반도체의 아이콘` 인텔이 삼성전자에게 왕좌를 내줬다는 뉴스는 전 세계에 결코 가볍지 않은 쇼크를 일으켰다. 80년대 PC가 처음 나왔을 때 인텔은 집적회로(IC)의 절대 강자였고 넘을 수 없는 벽이었으며 칩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했었다. 그런 인텔을 삼성이 추월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에 157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 인텔을 수억 달러 차이로 제치고 매출 기준 세계 반도체 업계 1위 자리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1991년 세계 1위로 올라섰던 인텔이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뺏긴 셈이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칩 부족 현상으로 인한 삼성의 선전이 당분간 계속되며, 비메모리 칩 중심의 인텔은 당분간 1위 탈환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인텔은 1968년 7월 화학자 고든 무어와 물리학자이자 집적회로를 공동 개발한 로버트 노이스가 페어차일드반도체를 떠나 세운 회사다. 이 회사는 후에 `Intergrated Electronics`(집적전자)을 줄인 인텔(Intel)로 이름을 바꾸고 세계시장을 호령하기 시작했다. 1971년 세계 최초로 4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인텔 4004를 개발하고, 1978년 개인용 컴퓨터에 장착되는 16비트 8086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출시했다. 1981년까지 주로 메모리칩 SRAM, DRAM 개발에 역점을 뒀다.전세계를 뒤흔든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 프로그램도 인텔의 작품이다. CPU 광고 시대의 브랜드는 단연 인텔이었다. 세계 전자 제품 메이커들은 물론 한국의 삼성도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인텔의 CPU를 장착한 컴퓨터에 `Intel Inside` 로고를 부착한 것으로 반도체와 같은 생산재 부품 광고는 당시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1993년 팬티엄 프로세서를 처음 출시하면서,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주요 공급업체가 됐으며, 1997년 전 세계 PC칩 시장의 80%를 점유했다.하지만 굳건했던 인텔의 반도체 왕국도 26년 사이 1978년 후발주자로 반도체 시장에 뛰어든 삼성전자 손에 흔들리게 됐다. 여기서 잠시 인텔 `무어의 법칙`과 삼성 `황의 법칙`을 생각해 보자.인텔 창립자 고든 무어는 1965년 기고를 통해 향후 최소 10년 간 마이크로칩의 성능이 매 1년마다 두 배씩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1년으로 설정했던 주기를 1975년에 2년으로 수정하면서 세간에 `무어의 법칙`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무어의 법칙은 발표 후 30년 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이 맞아 떨어지면서 오늘날에는 반도체산업의 연구개발(RD) 계획 수립을 위한 중요한 지침이 되어 왔다.반면 메모리 반도체의 기술발전 속도에 관해서는 `황의 법칙`이 제시되어 있다. 이는 삼성전자 전임 사장인 황창규 박사의 주장에 의한 것으로, 메모리 반도체 집적도가 매해 두 배씩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기는 2008년 삼성이 128GB NAND 플래시 메모리를 출시하지 못함에 따라 깨지게 된다.아이러니컬하게 무어의 법칙은 오랜 기간 유효했고 더 유명한 반면, 황의 법칙은 쉽게 무너졌고 덜 유명했다.그러나 쉽게 무너진 황의 법칙은 오히려 삼성에 큰 자극제가 됐다. 발전의 속도에 자신감을 심은 것이 바로 황의 법칙이다. 삼성은 이익 마진이 작다는 메모리칩 기술 분야에 집중했고 이 분야에서 단연 선두를 달려왔다.반면 인텔은 회사의 핵심시장인 PC와 기업용 서버에 대한 초점을 유지하면서 컴퓨터용 프로세싱 칩 개발에 집중해 차별화를 시도했다. 마진은 컸지만 IT산업 흐름이 PC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동하면서 PC 수요 감축이 인텔에 큰 타격이 됐다.기업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 삼성의 우세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끊임없는 혁신전략과 시장을 읽어내는 힘만이 승리를 보장할 뿐이다.

2017-08-03

망고식스와 소니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끔 보는 망고식스라는 디저트 전문점이 있다. 간판이나 인테리어도 독특하지만, 필자는 늘 `왜 식스(6)일까? 저기서는 망고만 먹는건가?` 그런 호기심을 가졌었다.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쉬운 그런 재미있는 브랜드였다. 어제 그 망고식스의 강훈(49) KH컴퍼니 대표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소식을 들었다. `창업의 천재`, `한국 프랜차이즈의 역사책`이라고 불리우는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창업을 열망하는 많은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창업을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신세계그룹 공채 출신인 강 대표가 커피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년전인 1997년. 신세계그룹의 `스타벅스 국내 출시팀`에 배속됐고, 스타벅스 커피의 국내진출을 위해 미국 출장을 간 그는 성장하는 미국 커피 시장을 보고 돌아와 사표를 내고 토종 커피 브랜드 `할리스 커피`를 창업했다고 한다. 할리스커피를 성공시킨 후 2004년 회사를 한 엔터테인먼트 업체에 매각하고 휴식기를 거친 후 그는 다시, 카페베네의 마케팅 본부장으로 영입되며 커피 시장으로 복귀했다고 한다. 연예인을 활용한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고, 카페베네는 점포 수 기준 업계 1위가 됐다.그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때였고, 이쯤 그가 쓴 책은 `따라하지 말고 선점하라`였다. 전문적인 용어로 이는 `소비자 선점 전략`이다. 이는 소비자들이 원하는대로 반응하는 반응 전략으로 험난한 싸움을 계속하는, 즉 따라하는 전략에서 소비자를 선점하기 위해 소비자를 끌고 가는 전략을 말한다. 이 전략은 사실상 컴퓨터칩으로 유명한 미국 인텔의 전략 중 하나였다.자신감을 얻은 강 대표는 2010년 카페베네를 나와 KH컴퍼니를 설립하고 디저트 전문점 망고식스를 열었다. 야심찬 그의 전략과 공격적 경영은 이후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비슷한 디저트 전문점이 등장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졌고, KH컴퍼니는 2015년과 2016년 각각 10억원, 11억원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고 한다.최근 KH컴퍼니는 최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망고식스의 자매 브랜드인 쥬스식스와 커피식스를 운영하는 KJ마케팅도 회생 신청을 냈다. 그가 쓴 책 `따라하지 말고 선점하라`의 전략은 소비자 선점 전략을 구사하기로 유명했던 소니(SONY)를 생각케 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보다는 소비자가 살 수밖에 없는 제품으로 유명했던 워크맨(Walkman)의 성공으로 자만에 빠졌던 소니는 스마트폰의 트렌드를 읽지 못해 뒤지기 시작했다.소니는 1950년대 초반 전자제품의 기반 기술이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이전하는 변곡점에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워크맨과 콤팩트디스크(CD)로 이어지는 혁신을 주도하면서 아날로그 시대에 세계 음향가전 시장의 절대 지존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소니의 성공신화는 디지털 혁명의 풍랑을 만나면서 좌초했다. 하드웨어의 시장 지배력을 소프트웨어 분야로 확장·결합시키려는 전략 방향은 타당했지만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융합시대의 주연 자리를 애플에 내주고 조연으로 전락했다. 소니의 실패는 20세기 아날로그 사고방식의 연장선에서 21세기 디지털 혁명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결국 선점 전략에 대한 자신감으로 반응 전략에 소홀히 한 것이 원인이 되었다. 자신감 때문에 소비자의 욕구를 읽지 못했다는 점에서 망고식스와 소니는 공통분모가 있다. 할리스커피, 카페베네로 성공한 강 대표는 자신감 때문인지 포화된 커피시장, 소비자의 망고에 대한 이미지, 빙수의 계절성 등 소비자의 니드(NEED)를 정확히 읽지 못했다. `한국 창업의 대명사`인 한 젊은 사업가의 죽음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창업을 위한 좀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야 하고 더불어 시장을 읽어내는 능력을 더욱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2017-07-27

탈원전, 성급해서는 안 된다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달 19일 고리원전 1호기가 공식 폐쇄됐고, 지난 14일에는 신고리 5, 6호기에 대한 공사도 한수원 이사회가 3개월간 일시중단 결정을 했다고 한다. 전기요금 인상, 전력수급의 안전성 등 국민적 걱정이 많지만 선거공약이라는 이유로 강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앞서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원전 건설을 연기한 후폭풍은 차차기 정부에 몰아닥쳤다. 바로 2011년 일어난 대규모 블랙아웃 사태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차기 혹은 차차기 정권에서 뒷감당을 해야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정부가 내세우는 대체 에너지란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정부는 독일의 경우를 전가 보도로 내세우지만 선진각국이 원전폐기에 들어갔다는 것도 과장된 보도이고 독일, 스위스를 제외하고는 확실한 탈원전을 선언한 나라는 별로 없다.독일도 수십조의 돈을 퍼부어 20여 년 이상 계획을 세웠으며 엄청난 인프라와 자금을 퍼붓고 있다.사실 독일은 25년 동안의 공론화 과정을, 스위스는 무려 33년간 5차례의 국민투표를 통해 탈핵을 결정했다. 우리 정부도 당장 원전을 폐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재생에너지에 대한 보조금을 늘리고 전기차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등 보다 점진적인 차원의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혹독한 원전 폐해를 입었던 일본조차도 다시 원전을 가동시키기 시작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점 때문이다.원자력발전은 매우 경제적이고 환경 친화적이다. 원전의 발전 단가나 탄소 배출량은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문제는 안전성이다.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대중에게 원전이 매우 불안한 에너지원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근래에 들어서는 부산, 경주 등 동남해안을 따라 고강도 지진이 일어나면서 안전과 관련된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입지는 크지 않다.국내 환경에서 풍력, 수력, 원자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채택하기는 열악하다. 미국의 셰일 가스 및 오일과 같은 새로운 에너지가 개발되지도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력 수요는 매년 증가하고 있어서 어떠한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원전 폐기물 처리 비용 및 사고 발생 시 큰 파급이 미치는 점과 같은 안전비용이 원전의 에너지 생산 비용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원전의 위험 부담비 같은 숨겨진 비용에 대한 논쟁도 치열하다.그러나 숨겨진 비용으로 일컬어지는 원전 해체 및 핵연료 처분 비용은 숨겨진 것이 아니라 공개된 것이며, 회계 처리의 문제라는 반박 논리도 있다.다른 수력, 풍력, 화령 및 신재생 에너지의 경우에도 노후 발전소 처리 등의 비용이 존재하기에 원전만 숨겨진 비용을 원가에 산정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의견도 있다.어쨌든 중요한 것은, 원전은 정치논리로 건설되어서도 안 되고 정치논리로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면 충분한 학문, 경제적 검토와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 수렴을 해야 한다. 시간을 가지고 결정해도 늦지않다.이 문제만은 포률리즘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사드배치와 관련해 절차적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현 정부는 원전문제에 있어서도 의견수렴과 절차를 중요시 여겨야 한다.원전을 폐기하는 건 정부의 몫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할 차기 정부와 국민의 고심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2017-07-20

경찰이 검문 받는 나라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지금 경북 성주에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민간인들이 마을 어귀 도로에서 민간인의 통과를 검문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경찰도 이들의 검문을 받아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30여 명의 민간인이 테이블과 의자, 파라솔을 가져다 놓고 “협조해주세요, 탑차·적재물 꼭 확인 후 지나가 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도 펼친채 지나가는 차들을 검문한다고 한다.경찰권도 없는 민간이 민간을 검문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통과하는 경찰차도 이들의 검문을 받고 있다고 하니 도대체 지금 한국은 법이 지켜지는 나라인지 의문이 든다. 검문하는 사람들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사드 배치 저지 전국행동` 등 반미(反美) 단체 회원들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그 피해는 막심하다. 이들이 검문소를 설치하고 사드 기지 운용에 필요한 물품 운송을 하지 못하도록 실력 행사에 나서는 바람에 군(軍)이 휘발유와 경유 등을 운송 하지 못하고 헬리콥터로 공수한다고 한다.공수는 비용도 문제이지만 위험이 크게 따른다.실제로 몇몇 민간인의 제지에 막힌 군이 2㎞ 남짓한 도로 통행을 포기하고 사드 부대 운용을 위한 유류와 병력 대부분을 헬기를 통해 운송하다가 난기류를 만나 한 야산에 항공유 한 통을 떨어뜨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 바람에 야산에 쏟아진 기름을 수거하기 위해 군 병력 100명이 동원되는 북새통을 떨어야 했다.운송의 비효율과 비용증가는 물론이지만 생명의 위기와 군 병력의 낭비가 심각한 상태다. 경상도 방위를 관할하는 2군작전사령부 관계자는 “주민과 충돌하지 않으려고 헬기를 이용하고 있지만 이른 시일 내에 성주군청과 경찰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민간인이 도로를 점령하고 검문을 벌이는 건 엄연한 불법 행위이다.왜 국가와 경찰은 이런 불법행위를 묵과하고 있는가? 성주경찰서 관계자는 검문소 철거 작업에 나섰지만 사드 반대 세력이 원불교·천주교 등 종교 행사를 하는 바람에 “`종교 탄압`이라는 주장이 나올까 봐 무리한 진압을 자제하고 있다”고 한다.그렇지만 지금의 경찰 무능력은 정부의 눈치를 보는데 있다. 당초 사드배치를 반대했던 정당이 정부를 장악하고 있기에 지금 사드배치를 반대하고 도로를 점령하고 불법을 일삼는 민간에 대해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정도는 다르지만 4·19 혁명 후 혼란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당시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매일 정부에 무엇인가 요구하면서 데모로 날이 새고 데모로 날이 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정부는 구 정부를 무너뜨린 민간인들의 공로(?)가 있기에 민간인들의 데모 통제에 속수무책이었고 사회와 국가는 대 혼란으로 빠져들었다.물론 현재 그러한 수준의 혼란은 아니지만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각종 노조의 요구, 민간인 도로 점령 등에 대해 정부가 강한 공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 유사한 사태가 선진 서방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어땠을까? 민간인의 시위는 신고에 의해 일정한 법 테두리 하에서 허용되지만 도로점령과 민간인 검문에 대해서는 강한 공권력이 작동됐을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요즘 “이게 나라냐 ?”하는 자조적 말들이 들린다.이 말은 작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당시 나라가 소용돌이 사태에 들어갔을 때 시작됐던 말이다.그런데 이 말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반복된다면 정권만 바뀐 도돌이표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정부는 공권력을 정치논리에 맡겨둬서는 안 된다. 확고한 공권력 확보로 대응해 국가를 안정시키고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시국에 대처해야 한다. 약한 내치로는 북한의 엄중한 위협에 대처하기 힘들다.

2017-07-13

다가서는 쇼우다운(Show-down)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북한과 한미 진영간의 쇼우다운(Show-down)이 다가서는 느낌이다. 정말 어렵게 한반도 정세는 변해 가고 있다.국민들은 매일 벌어지는 사태를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다. 진보적 새 정부가 들어서면 대화와 평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상황이 기대와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5일 한미 군당국은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발사 하루 만에 북한 핵·미사일 시설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사격훈련을 실시했다고 전하고 있다. 같은 ICBM으로 대응사격을 실시하는 훈련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착잡한 심정이다.북한 김정은은 지난 4일 실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 발사 과정을 현장에서 참관하면서 “미국 독립기념일에 우리에게서 받은 `선물 보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할 것 같은데 앞으로 심심치 않게 `선물 보따리`들을 보내주자”고 미국을 조롱했다고 한다.그는 또한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4`형 시험발사에 통쾌하게 성공했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켓을 협상탁자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며, 핵 무력 강화의 길에서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쇼우다운은 포커에서 서로 패를 가리고 겨루다가 마지막 순간에 패를 내려놓아 승부를 겨루는 것을 말한다.상대방을 속이는 전략으로 계속 씨름을 하다가 최종적으로 패를 내려놓는 쇼우다운은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점에서 현 상황과 흡사하다. 또 그 결과가 양자에게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골고루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것이다.합동참모본부는 이날 “한미 미사일 부대는 북한의 거듭되는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동해안에서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사격을 실시했다”고 밝히며 훈련에 동원된 `현무-2A`는 국내 기술로 개발한 사거리 300㎞ 탄도미사일이라고 밝혔다. 주한미군이 운용하는 전술지대지 미사일 탄두에 수많은 자탄이 들어 있어 단 한발로 축구장 4개를 초토화 할 수 있다. 결국 상대방을 초토화 시킨다는 위협으로 서로 맞서고 있는 양상이다. 선제타격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오고 가고 있다.미국이나 문 대통령도 이제 쇼우다운의 막다른 골목에 들어와 있는 상황을 절감하고 있다. 이번 훈련은 문 대통령이 전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한·미 연합 미사일 무력시위를 지시하면서 이뤄졌다고 한다. 정 안보실장은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통화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주목을 끄는 것은 “북한의 도발에 우리가 성명으로만 대응할 상황이 아니며, 우리의 확고한 미사일 연합대응태세를 북한에게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는데 있다. 합참도 이에 맞춰 “이번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사격은`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한미 동맹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문 대통령의 집권 후 햇빛정책의 회생으로 남북한 대화와 평화 무드가 조성되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흘러가고 있다.전쟁이 나면 남북한 누구도 승자없는 막대한 피해를 줄 것이 예상된다.그렇다고 북한의 위협과 공갈에 굴복해서도 안 된다.그렇다면 현재 해결방안은 무엇인가?어려운 국면이 흐르고 있다. 중국이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고 싶다.중국은 절대적 키를 쥐고 있는 국가다. 현재 한반도 상황에서 북한을 자제시키고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중국이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한반도에 적용시켜서는 안 된다.한반도의 전쟁은 중국에게도 결코 좋은일 일 수 없다. 쇼우다운의 피해에서 중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국, 일본과 함께 중국의 역할이 절대 필요하다. 평화는 함께 지켜야 한다.

2017-07-06

짝사랑 같은 대화 제의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짝사랑 같은 대화 제의가 계속되고 있다.현 정부의 북한에 대한 짝사랑 제의가 연일 지면을 채우고 있다.남북단일팀 구성, 올림픽 분산개최, 대북지원 민간단체 방북 등 새 정부의 북한을 위한 짝사랑 손짓은 계속 되고 있다.그렇지만 북한은 매몰차게 한마디로 “NO”라고 답하고 있다.현 정부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을 제안한 것은 정치적 부담이 덜한 낮은 수위의 교류를 계기로 남북관계를 단계적으로 풀어가겠다는 뜻으로 이해가 된다.최근 무주에서 있었던 세계 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최초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최고의 성적을 거뒀던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대회의 영광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다시 보고싶다”고 문 대통령은 말했다고 한다.이것은 국제태권도연맹(ITF) 시범단을 이끌고 남측을 찾은 북한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개막식에 참석한 가운데 남북 단일팀 구성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북측에 공개 제안한 것이다.문 대통령은 이런 제안을 북한이 고마워하고 응할 것으로 기대했을지 모른다.그러나 장웅의 반응은 의외로 써늘했다.장웅은 개막식 후 만찬에서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단일팀을 구성했을 때 남북회담을 22차례나 했다. 다섯 달이나 걸렸다”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사실상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같은 말이라도 “좋은 제안이다. 지바 탁구선수권 때는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이번에는 빠른 속도로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라고 할 수도 있고, 이런 식의 반응을 정부는 기대했을지도 모른다.이에 앞서 북한은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한 민간단체 방북을 줄줄이 불허해 왔다. 새 정부는 지난 정부가 불허했던 민간단체 방북을 계속 허가하면서 북한에 짝사랑의 손짓을 보냈지만 허사였다.북한은 6·15 남북공동선언 17주년 기념 공동행사를 개성에서 열자는 남측 요구도 거부했다. 유엔 대북 제재에 동조하는 우리 정부 태도를 문제 삼았다고 한다. 민간 교류 확대로 남북 관계를 풀어간다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북한의 한국을 비웃는 정책은 점입가경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최근 “남측 대표단이 방북해 북한에 말라리아 방역 물자를 반출하려 했으나 북측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와 이에 대한 우리 정부 태도를 문제 삼아 방북을 허용치 않겠다고 통보해 왔다”고 말했다. 북측은 열흘 만에 거부 내용을 담은 팩스와 이메일을 보내왔다고 한다.그러나 그런 북한은 미국의 대북제재로 국제기구의 보건 관련 지원물자 전달이 지연되고 있다며 해당 기구 등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고 한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형훈 보건성 부상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서한을 유엔아동기금(USICEF)과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보내면서 지원을 촉구했다는 것이다.왜 우리는 짝사랑을 하는가? 상대는 트집만 잡고 있는데도 계속되는 짝사랑은 국민의 자존심만 상하게 하고 있다.북한은 우리가 사드배치를 철회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북한의 미사일, 핵실험을 허용하고 국제제재에 참여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대화에 응할 지도 모른다그렇다면 우리도 당당히 북한이 미사일, 핵실험을 중지할 때 대화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젊은이들의 짝사랑에서 좋은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스토커 수준의 짝사랑은 상대가 더욱 멀어지는 상황이 된다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상대에게 자신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오히려 관심이 적은 것처럼 행동할 때 상대가 나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우리는 젊은이들의 사랑방정식에서 잘 알고 있다.북한에 대한 짝사랑 구걸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한미동맹과 국제공조를 통한 강한 국가를 유지할 때 오히려 북한은 한국에 다가올 것이다. 공허한 짝사랑은 상대가 더욱 멀어지는 상황이 될 뿐이다.

2017-06-29

신중해야 할 특목고 폐지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최근 정부 발표에 외고와 자사고를 조만간 폐지한다고 한다. 이에 고교 관계자들은 물론 입시를 준비해왔던 학생과 학부모들도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이다.수학의 정석으로 유명한 상산고등학교 홍성대 이사장은 기자들에게 수백억을 들여 키워온 모교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황망스러운 심정을 토로했다.이 문제에 대해 정부는 자사고와 외고가 입시 과열의 주범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입시 과열은 우리나라에서 과거 1965년 `무즙 사태`를 비롯한 50년이 넘는 고질적인 병이며 그것이 외고, 자사고와 같은 일부 고교 입시에 의해 빚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입시 병폐를 살펴보면 일류 지향적 마인드에서 비롯된다. 이는 사회에서 1등이 돼야 하고 제일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들어가야만 인정을 받을 것이라는 욕망에서 시작된다. 이런 욕망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그렇다면 우리가 엘리트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따르게 된다.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공부, 음악, 체육, 말하기 등 자신만의 특성과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 이런 재능을 키워주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과학고에서 과학에 흥미가 있는 아이들, 외고에서 언어적 감각이 있는 아이들, 또는 자사고에서 특정 분야에 소질이 있는 아이들을 키우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미국의 제퍼슨, 일본의 히비야, 영국의 이튼스쿨과 같이 유명한 고등학교들이 선진국에도 즐비하다. 입시 과열 때문에 정부가 외고, 자사고를 폐지한다고 하지만 이런 논리라면 입시 과열을 일으키는 과학고 역시 폐지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입시 과열을 해결하는 정책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의 차별화된 재능을 살려주는 교육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예술고 등 각자의 특징을 살려주는 다양한 고등학교를 늘려 학생들의 재능을 키워주고 일률적인 교육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특수고를 폐지하고 모두 일반고로 전환한다면 소위 일류대학을 향한 일률적 교육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라고 본다. 모든 학생들을 재능과 상관없이 한 개의 잣대에 집어넣고 그 잣대에 의해 필사적으로 공부하는 비이상적인 교육이 재현될 것이다.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필자는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싶다.첫 번째는 중·고등학교를 다양화해서 다양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줘야 한다. 두 번째, 창의적 교육을 제공해 학생들이 굳이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본인의 소질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최근 정부는 프랑스식으로 대학을 평준화 시킨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프랑스에는 그랑제꼴이라는 엘리트 교육집단을 운영하고 있다. 그랑제꼴에 속하지 않은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들도 본인의 수준에 맞게 대학을 선택하고 있다.이런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필자는 `대학의 클러스터화`를 제안하고 싶다.미국의 경우 아이비리그에 약 20개 대학, 주립 대학 약 20개 등 다양한 클러스터가 있다. 미국에선 같은 그룹 내에 있는 대학이라면 어느 대학에 들어가도 상관없는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대학 서열화가 심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특정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어 입시과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물론 경쟁이 나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요소에는 경쟁이 존재한다. 하지만 학생들의 건강을 해치거나 창의력을 저하시키는 등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교육은 백년대계다. 5년의 정권이 100년의 교육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 자사고와 특목고의 폐지에 보다 신중을 기하길 바란다.

2017-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