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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교수님을 그리워하며

등록일 2017-10-19 21:00 게재일 2017-10-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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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의호<br /><br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

낙엽이 물들기 시작한 올해 포스텍 캠퍼스 가을은 유난히 쓸쓸하게 느껴진다.

최근 일주일 사이 포스텍에선 두 분의 현직 교수님이 하늘로 떠나갔다.

포스텍 30년 역사에서 현직 교수님이 세상을 떠나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더구나 두 분이 한꺼번에 떠나시는 것은 개교이래 처음일듯 싶다.

호암의학상에 빛나는 서챨스(서동철) 교수님(생명공학)은 `세계 면역학의 성지`로 불리는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의 첫 한국인 정교수였다.

몇년 전 그가 포스텍에 부임하던 날, 그를 스카우트한 같은 학과 최관용 교수님과 함께 영일대해수욕장의 조개구이 집을 찾았다. 소박하고 서민적인 느낌을 주는 서 교수와 함께 조개를 구워 먹으면서 그의 학문적 예리함과 함께 한국사회의 관습 문제를 꿰뚫는 혜안으로 밤이 새는 줄 몰랐다.

포스텍은 IBS(기초과학연구원)에 4개의 연구단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서 교수 연구단이다.

면역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그는 이 분야에 독보적인 연구단을 만들었고 국내외 기대를 한몸에 받은 학자였다. 그는 매우 건강해 보였다. 포스텍에선 매일 아침 요가를 직접 지도하면서 교수님들의 건강향상에 앞장섰다. 그가 대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을 때도 금새 일어날 것으로 믿었다. 그는 웃음을 잃지않는 낙관론자였다.

그가 육류음식을 정말 좋아했다는건 나중에 알았다. 미국에서 치료를 받던 그는 지난주 홀연히 떠나갔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본인이 선택한 길이라고 했다.

포스텍에 차려진 빈소에는 그를 애도하는 동료학자, 제자들의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추도미사가 곧 미국과 한국에서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의 은은한 미소가 쉽게 떠날 것 같지는 않다.

서 교수에 대한 그리움을 추스르기도 전 그제 갑자기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하고 포항의 한 병원에 차려진 또 한 분 교수님의 빈소를 찾아야만 했다. 풍력대학원을 설립하고 풍력 및 신에너지 연구에 매진했던 한경섭 교수님(기계공학)은 풍력학회, 신에너지 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신에너지 개발에 정력을 쏟았던 분이었다.

한 교수님은 필자의 고교와 대학 선배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특별한 인연은 자식을 앞세운 부모로서도 선배였다.

언젠가 “선배님은 편해 보이시는데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물으니 “가슴에 늘 안고 있고 이렇게 꺼내 보곤 하지요” 라며 눈망울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보면서 `아! 교수님도 겉은 태연해도 마찬가지이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찡했던 기억이 있다.

교수님은 슬픔과 고통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안고 함께 같이 가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동료교수의 전언에 의하면, 몇달 전 뇌종양 수술 후 우연히 만나고 헤어지는데 다시 불러세워서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하더라면서 그분의 애틋한 심정을 전해줬다. 10여 년 전 기획처장으로 학교에 봉사하셨던 한 교수님은 세 달 전 카톡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단톡방에서 갑자기 나가셨다. 단톡방에서 나가면 곧 좋지 않은 소식이 오는 것을 알기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부고가 날아들었다.

이 두 분의 석학은 수많은 연구업적을 내면서 막상 본인의 건강을 이기지 못했다.

필자는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서 교수는 면역학의 권위자인데, 암에 버티는 면역력을 기를 수 없었을까? 또 한 교수도 신에너지의 선두였는데, 종양에 대항하는 신에너지원을 만들어 볼 수는 없었을까? 너무도 안타까운 떠남에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영결식이 끝난 후 포스텍 캠퍼스를 한 바퀴 도는 영정차를 보면서, 두 분 교수님의 명복을 빌었다. 하늘에서 한국대학과 한국과학의 발전을 위해 애써주시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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