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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상산고의 눈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자율형 사립고(자사고)의 아이콘인 상산고 학부모 수백명은 전북교육청 앞 광장에서 며칠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북교육청의 상산고 자사고 재지정 취소 절차가 공정성과 절차적 정당성 등을 잃었다는 항의이다. 상산고는 대통령 공약인 자사고 폐지의 첫 희생양인 셈이다.전북교육청은 자사고 폐지를 밀어붙이기 위해서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 커트라인을 전국 시·도 교육청의 기준점수 70점보다 10점이 높은 80점을 제시하고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예외로 인정하는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의무를 평가 항목에 소급 적용하고 배점도 높여 부당하게 평가했다고 한다. 결국 80점 만점에 79.61점이라는 0.39점 차이로 상산고 재지정 취소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한마디로 대통령 공약 사업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아무 죄도 없는 학교를 상대로 교육청이 소위 ‘작전’을 편 것으로 보인다. 상산고를 설립한 홍성대 이사장은 필자가 고교를 다닐 때부터 유명했던 ‘수학의 정석’저자이며 국내 최고의 수학 학습서로 지금도 각광받는 책이다. 홍 이사장은 여기서 벌어들인 수백억의 재산을 모두 상산고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 부담금도 최대한 줄이고 장학금을 확대하고 재단전입금을 늘려 모범적으로 자사고를 운영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모범적인 자사고에 대하여 재지정의 취소 결정이 내려진 셈이다.홍 이사장은 획일성과 평등만을 강요해서 어떻게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인 다양한 인재를 기를 수 있겠냐고 반문하고 자사고 재지정 취소에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들도 ‘자사고 폐지’가 대통령 공약 사항인데다 100대 국정 과제에 들어 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벌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이번 사태는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논리로 결정된 것이 확실해 보인다. 경쟁이 있어야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경쟁 속에서 다양한 창조적 교육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종류의 고교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을 정부가 인정하고 과거에 자사고 제도를 만들었다. 고교의 다양성을 위해 만든 제도를 정부가 바뀌었다고 스스로 폐지하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자사고는 과거 정부가 다양한 교육수요를 수용하겠다며 2010년 도입한 학교 모델로 학교의 자율성을 더 확대·발전시킨 것이다. 자사고는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다양화하기 위해 고교 정부 규정을 벗어난 교육과정, 교원 인사, 학생 선발 등 학사 운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사고는 정부 지원 없이 등록금과 재단 전입금으로 운영되도록 되어 있다.정부와 진보성향 교육감들의 자사고 폐지의 명분은 ‘평등교육’이다. 그러나 ‘평등교육’의 정의는 올바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개인은 각각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다양한 능력에 맞는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한 기회를 누구에게든 부여하는 것이 평등교육의 기본 정신일 것이다. 평등교육이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이지 교육수준의 평등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수준은 각각의 수준과 다양한 능력에 맞게 제공돼야 한다. 상산고의 눈물은 정치적 논리로 휘청거리는 한국 중등교육의 눈물이다. 해방 후 지난 70여 년간 정치적 논리로 정부가 바뀔 때마다 바뀌는 교육정책은 “똑같은 제도하에서 졸업한 두 개의 세대는 없다”는 한국만의 이상한 교육의 모습을 만들고 있다. 한국은 교육정책에 관한한 후진국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교육정책을 그렇게 쉽게 바꾸지 않는다. 사립고, 공립고가 존재하고 특히 사립고들은 다양한 교육방식으로 경쟁하고 랭킹이 존재하며 우수한 학생들을 모으기 위한 자율적 경쟁을 한다. 중등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보장되어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교육정책들이 정치적 논리로 자꾸 바뀌어서는 안된다. 지금 상산고의 눈물은 우리 자신의 눈물이다.

2019-06-25

대학총장 선출방식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대학들이 총장선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매년 되풀이되는 현상이지만 금년에는 더 정도가 심한 것은 과거 보수정부에서 교수들의 직접 선거를 간접선거로 바꾸도록 하였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직접선거를 장려하는 분위기로 바뀌면서 대학총장 선출 방식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한국의 대학들은 대강 4년에 한 번 총장을 선임하므로 4년제만 따져도 매년 50개 정도의 대학이 총장선출의 진통을 겪는다. 금년은 특히 디지스트(대구경북과기원), 지스트(광주과기원)가 새로운 총장을 선임하였고, 포스텍(포항공대), 유니스트(울산과기원) 등 특성화 과학기술 대학들이 유임이든 또 새로운 총장을 선출하든, 총장 선임의 상황이 되어 과기대의 총장 선임이 첨예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과기원들은 전반적으로 총장추천위원회를 통한 간접 선출을 하고 있지만, 국립대를 중심으로 총장 직선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총장직선제란 대학의 교수들이 총장을 직접 선출하는 방법이다. 1988년 민주화의 정치적 상황을 맞이하여 많은 대학들이 총장을 총장직선제로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가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겨나고 정부의 정책으로 인하여 2010년대에 이르면 국립대학교를 포함하여 많은 대학이 총장직선제를 포기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이전 10년간 보수정부에서는 총장 간선제를 강권하여 국립대와의 마찰이 컸으며 일부 국립대에서는 강한 저항을 하며 한때 총장 부재 사태까지 빚었다.교육부에서는 총장직선제가 문제가 많으므로 폐지하고 추천을 받아 국가에서 총장을 임명해야 한다고 한다는 방침을 정해 추진했으나 정부가 입맛에 맞은 총장을 선출하여 대학 길들이기에 나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사립대학의 경우에는 재단의 뜻으로 운영되므로 간선제가 비교적 많은데 비하여 국립대학의 경우 정부의 뜻에 따라 직선제, 간선제, 다시 직선제로 좌충우돌하는 모양새의 혼란을 빚고 있다. 어쨌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당수의 학교들이 총장 직선제를 다시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직선제는 교수들이 직접 총장을 선출하므로 어느 정도는 교수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사람이 총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투표에 의해 민주적 절차를 거쳐 총장이 임명되므로 총장이 교수들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독단적으로 대학을 운영하는 것을 견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또한 교수 누구든 뜻이 있고 지지가 있으면 총장이 될수 있기에 교수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장점이 있다.그러나 직선제의 가장 큰 문제는 교수간 파벌이 생긴다는 점이다. 총장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력이 있어야 하고 세력이 있어야 하므로 파벌의 부작용이 생겨난다. 이러한 파벌 형성은 교수사회에 심각한 부작용을 만들고 학교운영에도 파행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선거철만 되면 교수들을 회유하기 위한 정치적인 작업으로 캠퍼스가 혼란스러울 수 있는 것도 상아탑에서 있어서는 안 될 단점으로 꼽힌다.반면 간선제는 어떤 형태가 되든 공정성 시비가 있을 수 있다. 재단이 직접 임명하든 위원회를 통한 추천을 하든 소수의 의견이 지배한다는 항의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직선제, 간선제를 둘러싼 대학들의 갈등은 그동안 끊임없이 있어 왔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직선제와 간선제는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미국은 대부분 위원회를 통해서 총장을 찾는 게 관례로 되어 있고 위원회를 신뢰하여 이루어진다.결국은 신뢰의 문제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구성원을 대표하는 위원회, 그리고 재단을 신뢰해야 하고 또한 위원회와 재단은 신뢰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직선제를 가미한 간선제, 간선제를 가미한 직선제 등 다양한 형태의 총장선출 방식은 훌륭한 총장을 선임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마음이 일관성 있고 신뢰에 바탕을 둔다면 방식에 관계없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총장선출을 둘러싸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들은 이러한 신뢰의 바탕 위에 운영의 묘를 잘 살렸으면 한다.

2019-06-20

폭증하는 외국인 유학생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한국대학 캠퍼스에서 외국인 유학생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어느 대학 캠퍼스를 가도 외국인 유학생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제 국내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수는 15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는 4년제 대학 기준으로 대강 캠퍼스당 1천명이 넘어선다. 유학생들이 선호하는 대학들은 이미 이들의 숫자가 3천명을 넘어섰고 5천명의 유학생을 가진 캠퍼스도 있다. 일부 대학은 중국에 지점을 설치하고 유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불과 20년이 채 안된 1990년말 1만명을 넘긴 유학생숫자가 급증하게 된 계기는 지난 2004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의 ‘대학 글로벌화’ 추진이 기폭제가 되었다. 국내 대학교 입학생 수 부족과 유학수지 적자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Study Korea Project’를 수립했다. 이에 따라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됐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캠퍼스 글로벌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바람직한 현상으로 일단 받아들일 수 있다. 교육부의 2023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유치 목표는 20만명이다.그러나 이러한 캠퍼스 국제화 실상을 들여다 보면 마냥 낙관적이지만 않다. 유학생의 90%는 아시아 국가 출신으로, 중국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전체 유학생 중 절반 가량은 중국 학생이다. 얼핏 보기엔 ‘대학 환경의 글로벌화’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속사정은 다르다.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학교 차원의 배려나 정책당국의 해법이 미약하고 유학생 관리 제도는 사실상 방임되고 있다. 교육부와 학교의 관리 소홀로 외국인 유학생의 중도탈락률은 갈수록 늘고 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의 중도탈락률은 각각 5.0%, 6.3%, 6.6%로 증가세다.최근 교육부가 내놓은 ‘유학생 표준업무처리요령’은 유학생 선발 절차와 학업지도 등에 관한 업무처리를 표준화하기 위해 작성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제도를 제시하기보다는 추상적인 방향성만 권고하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선발·관리 절차는 대학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 기본적인 시설만 갖추면 외국인 유학생을 받을 수 있다보니 질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서울 소재 한 명문대학교는 학교 내 어학당을 졸업하고 한국어 시험만 통과하면 대학교 입학 자격을 준다. 따로 수능이나 입학시험이 필요하지 않다.대학들이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사활을 거는 까닭은 저출산으로 인해 대학 진학자가 급격하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결된 등록금으로 유학생 유치는 대학 재정에 절대 도움을 주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작 외국인 유학생의 관리에는 소홀하다.언어의 문제도 심각하다. 특히 명성이 낮은 대학에서의 문제점은 더 심각하다. 한국어 수준이 낮으니까 한국어 강의를 못 알아듣고 영어강의는 더 못알아 듣는 외국학생 특히 중국학생이 많다고 한다. 이들은 중국에서 대학을 실패하고 한국에 몰려온 케이스인데 대학들은 등록금 수입으로 받긴 하였지만 이들의 교육에 큰 골치를 앓고 있다.이제 유학생을 받아들이는 정책에 철학이 필요해 보인다. 등록금 동결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들이 유학생유치에 의존하는 것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그리고 외국인 유학생은 한국홍보와 국제적 네트워크의 첨병으로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적으로 팽창하는 유학생의 질이 관리되지 않는다면 이들은 고국에 돌아가서 한국유학생이란 타이틀로 한국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수도 있다.현실에 입각한 외국인 유학생 관리 정책과 대학별 유학생의 질을 관리하고 올바른 교육을 시키는 자율적 정책이 조화를 이루어 조만간 20만명을 돌파할 외국인 유학생이 진정 그들에게도 그리고 한국에게도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19-06-13

포항시 승격 70주년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금년 포항시가 70돌 생일을 맞이했다. 1949년 시로 승격한 포항시가 이제 고희(古稀)를 맞이했고 포항시는 과거 70년 포항을 재조명하고 미래의 혁신성장동력 발굴과 비전 제시를 위한 ‘포항 미래비전 포럼’을 지난 5일 열었다. 필자는 90년대 환동해 연구회를 만들어 학자들과 함께 중국, 러시아, 일본을 돌면서 회의를 하고 환동해 발전축으로 포항을 키우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기억이 새롭다. 이제 환동해지역본부가 2021년까지 흥해읍에 들어선다고 한다.환동해 중심권에서 포항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이미 일본은 오래 전부터 니가타를 중심으로 각 지역별로 환동해본부가 있으며 90년대 이후 환동해권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진행하여 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환동해 경제권의 중심지로서 포항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누구든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포항은 환동해 중심지역을 바탕으로 그레이터 포항(Greater Pohang)의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 ‘그레이터’란 물리적인 면적은 아니지만 외연을 확대하는 영향력을 미치는 지역을 포괄해 ‘그레이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이제 현대 도시나 대학, 국가의 힘은 반드시 면적이나 구성원의 숫자에 상관없이 얼마나 세계로 뻗어나가는가 하는 것이 그 힘을 결정한다. 실리콘밸리는 샌프란시스코 남쪽 조그만 도시이지만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레이터 포항은 인구 50여 만의 아주 큰 도시는 아니지만 실리콘밸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잠재력이 있다. 세계적인 철강회사, 대학, 연구시설 등을 바탕으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 있다면 그레이터 포항이 가능할 것이다.그레이터 포항으로 가기 위한 인프라는 어떤 것일까? 우선적으로 중요한 과제는 포항의 경제산업을 재건하는 것이다.이는 포스코가 과거철강산업에서 단일 기업으로는 세계 최고의 입지전적인 위치를 확보할 때의 전략과 포스텍이라는 대학이 세계 28위라는 업적을 내게 된 과정을 한번 살펴보고 그런 전략이 현재 경제나 산업환경이 바뀐 상태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 지를 살펴보아야 한다.포스코와 포스텍을 중심으로 하는 클러스터 정책이 활용될 수 있는 분야는 포항의 미래성장엔진을 주도할 신소재, IT, 소프트웨어, 의생명, 해양산업을 비롯하여 매우 다양하다.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현재까지 포항이 배출한 인적물적 자원들을 동원하여 포항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일이다.포스코는 지난 반세기 가까운 역사 속에 수많은 인적자원은 물론 한국산업의 기초를 제공해 왔다.포스코의 철강산업으로 인하여 자동차, 선박들의 산업이 활성화된 것이다. 이제 이러한 파생산업의 성공의 과실이 다시 포항으로 돌아와야 한다. 일반적으로 지역 도시 주변에 창업생태계가 갖춰져 있지 않으니 졸업생들이 수도권으로 갈 수밖에 없고, 인재확보를 위해 지역에 대도시권 생태계를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특히 인적자원은 주목할 만하다. 지역이 배출한 인재들은 이제 포항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이들의 성공의 열매를 포항으로 가져와야 한다. 이들의 네트워크는 이제 포항발전의 네트워크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들의 기술, 산업역량은 이제 포항, 우리의 자산이 되어야 한다.포항 발전을 위한 전략의 활용, 그리고 포항이 배출한 각종 인적, 물적 자원의 활용이 포항이 안고 있는 과제이며 그레이터 포항으로 가기위한 전제조건이다.​​​​​​​이와함께 첨언하고 싶은 것은 포항역같은 옛건물을 복원하여 구룡포 일본가옥거리 같이 옛것을 회복하면 유럽의 도시처럼 매력적인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의 활성화와 인재의 유입 그리고 현대와 옛것이 어울리는 매력적인 도시 포항! 포항시 승격 70년!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2019-06-06

지역신문이 가야 할 길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지난주 감사패를 하나 받았다. 경북매일신문의 독자권익위원회 위원장을 6년간 역임한 것에 경북매일 대표께서 전달해 주셨다. 감사한 마음이다. 세월이 빨리도 흘렀다. 지난 2013년 위원장을 맡은 이후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간 많은 지역의 유지분들을 위원으로 초빙하여 교류하면서 그들과 지역발전을 위한 의견을 나눈 것이 큰 보람이고 성과였다. 그동안 신문도 그 내용의 충실도에 있어서나 양적으로 모두 성장하였다.신문칼럼도 그 시절 시작했는데 벌써 300회가 넘었다. 지역신문과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을 같이 하면서 지역신문이 가야 할길을 생각해 보았다. 보통 지방신문이라고도 하는데, 필자는 “지방”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우선 지역신문은 지방신문이란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방정부, 지방공무원, 지방대학…. 지방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단어이다. 서울이라는 중앙에 대응하는 단어로서의 지방이란 단어는 한국에서 중앙에 대한 대등한 개념이 아닌, 열등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지방대’란 단어다. 정부가 연구비 지원을 할 때는 몇 개의 지방에 있는 우수대학은 지방에 있으면서도 지방대학이 아닌 것으로 분류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교수들이 유학 후 귀국해 국내학회에 참석했을 때 가장 당황하는 것은 지회(支會)라는 단어의 해석이다. 한국에서 지회란 중앙에 대한 지점(branch)의 개념으로 쓰이고 있고, 각 지역이 동등한 자격을 갖는 지역학회(chapter)의 개념은 아니다. 반면 미국은 학회가 결성되면 전 지역을 모두 평등하게 나누어 지회를 설치한다. 각 지회는 동등한 자격을 갖는다.따라서 지역신문은 이런 관점에서 그저 중앙에 대응한 지방신문이 아닌 지역의 권익과 발전을 도모하면서 전 국토의 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고, 세계로 뻗어가는 각개약진의 기반이 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포스텍 재임시 고교생 입학설명회에 가면 학부모들의 질문 중의 하나가 바로 지방에 위치한 대학의 장·단점이다. 필자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세계지도를 들여다보면 한반도는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점에서 점 왼쪽에 있으면 어떻고, 점의 오른쪽에 있으면 어떤가? 우리는 한국의 어느 지역에 위치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그러한 관점에서 지역신문은 지역에 대한 뉴스 동향과 함께 지역과 전국을 잇는 분석적 기사가 많아져야 한다. 또한 포항공항 국제화, 세계적 테크노폴리스 구축, 철강산업의 경쟁력, 같은 글로벌 이슈에 좀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은 더 이상 서울과 지방으로 나눠져야 할 필요가 없는 나라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차를 몰고가면 거의 공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 국토에 걸쳐 사람들이 퍼져 살고 있다. 그만큼 좁은 나라다. 좁은 나라의 미래의 번영은 세계화에 있다.반면 지역의 뉴스나 과제도 잘 챙겨야 한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라는 교훈대로 지역신문은 지역의 발전을 통한 전국화, 세계화가 하나의 중요한 미션이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전제하에서 각 지역은 각 지역에 대한 강한 긍지를 가지고 지역별 특성을 강조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삶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역신문은 지역민들에게 이러한 점을 계도하고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또한 지역의 자치체가 이러한 역할과 사명을 인식해야 하도록 지역신문이 역할을 해야 한다. 지역신문의 역할은 그래서 전국지 보다도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지역과 전국, 그리고 세계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뉴스와 화제를 항상 다루어야 하고 문제 해결을 제시하고 관심을 촉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역신문들의 분발과 발전을 빌어본다.

2019-05-30

싸이와 BTS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있다.미국 방송들은 60년대 영국의 비틀즈가 미국에 상륙해서 당시 젊은이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빠뜨렸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 방송하고 심지어 비틀즈 복장을 입혀 방송에 출연 시키기도 하고 있다. 또한 미국 뉴욕을 상징하는 건물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이 그룹의 방문을 기념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이 그룹이 한국이 배출한 방탄소년단(BTS)이다.이날 BTS는 미국 최대 라디오 방송사인 아이하트미디어(iHeartMedia) 라디오 라이브 쇼 출연에 앞서 인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찾았는데, 이에 빌딩 측은 이날 이 라디오 방송이 전파를 탄 오후 7시를 시작으로 이후 매시 정각부터 5분 동안 상층부 LED 조명을 BTS를 상징하는 보라색으로 바꿨다. BTS는 최근 총 6회의 미국 공연에서 32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대성공을 거두고 남미 투어에 들어갔다고 한다. 남미 투어도 미국투어처럼 인터넷 판매 수 분만에 매진되었다는 소문이다. BTS는 빌보드 차트 1위를 세 번이나 했다. 한국 최초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이런 돌풍을 일으킨 한국의 음악은 7년 전인 2012년에도 있었다. 가수 싸이의‘강남스타일’이 그것이다. 미국의 거의 모든 대학과 많은 나라의 도시들이 강남스타일 플래쉬몹(Fresh Mob·길거리 댄스)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당시 필자가 감독하여 만든 ‘포스텍 강남스타일’은 현재 유튜브 조회 수 30만을 넘었다.싸이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면서도 한국말로 ‘강남스타일’을 노래하면서 전 세계 투어를 하고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를 장악했다. 빌보드 차트 2위까지 갔다. 한국 대학 공연으로 귀국만 하지 않았다면 1위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세계적으로 휩쓴 음악은 과거에도 있었다. 60년대 영국의 비틀즈와 70년대 필리핀가수 프레디 아길라가 불러 세계를 휩쓴 ‘아낙(Anak)’이란 노래, 그리고 80년대 스페인 그룹 로스델리오의‘마카레나’가 그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아낙이나 마카레나는 리듬이 단조로와 싸이의‘강남스타일’보다 못하고 춤의 다양성에서 뒤진다.그리고 현재 BTS의 열풍은 비틀즈에 필적한다. 추세를 좀더 기다려 봐야 하겠지만 현재로는 비틀즈를 능가할 수도 있는 추세이다.싸이와 BTS를 보면서 진정한 한국의 한국만의 국제화, 세계화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 세계화란 결코 국수주의가 아닌, 세계로 나아가 그들의 정서와 호흡을 같이하고 어울리는 것 아닐까? 세계의 모든 국가, 국민들과 함께 어울리면서도 한국을 알리고, 세계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로부터 인정받을 때 그것이 진정 국제화, 세계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전 세계를 뛰어다니며 외국어로 상품을 설명하면서 한국 상품을 파는 세일즈맨들. 한국 문학을 알리기 위해 우리 문학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작가들. 외국에서 제품 생산기지를 지키고 각종 건설을 하고 있는 기업인과 근로자들. 해외대학에서 강의하면서 각종 학회에서 발표하는 한국 학자들, 외국에서 한국어·한국문화를 가르치는 문화원들은 모두 한국의 세계화의 첨병이다.스포츠도 마찬가지이다. LPGA를 호령하는 한국 여자 골퍼들이나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 축구의 손흥민 선수 등은 세계에 한국을 알렸다.이제 우리 문화, 체육, 과학, 기술 모든 분야에서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세계화에 부응하는 국민적 정서가 필요하다. 그리고 필요한 인프라도 필요하다.싸이와 BTS가 펼쳐놓은 세계와 어울리는 장에 힘을 모을 때가 아닐까?

2019-05-23

한국형 천재의 눈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최근 개최된 ‘서울포럼 2019’에서 과학계의 리더들은 기초연구 및 기초과학의 생태계, 그중에서도 특히 교육 분야의 혁신을 강하게 주문했다.현재와 같은 암기식 교육 중심의 중고등교육 구조에서는 과학영재가 있어도 세계적인 과학자로 육성하기 힘들고, 암기를 잘하는 인재를 키우는 방식에서 창의적 교육 시스템으로의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수업시간에 필기를 잘한 학생들이 학점이 높은 대학의 현실은 심각한 문제이며, ‘시험기술자’가 성공하는 구조로 필기만 잘하는 학생에게서 창의적 연구가 나오기는 어렵고 그토록 원하는 노벨상도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이런 기사를 접하면서 필자는 문득 최근 서울대 신임총장으로 임명된 오세정 총장을 생각했다. 오 총장을 처음 만난 건 고교 1학년때였다. 그 시절 각 지역의 각 시도에서 1등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최고 명문 고교였다. 그런데 그런 전국 각지의 쟁쟁한 수재들이 도저히 공부로는 이길 수 없었던 사람이 바로 오 총장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그리고 그 명문중고교를 내내 수석으로 다니면서 고교수석졸업-전국 대입 예비고사(지금의 대학 학력고사) 수석- 서울대 수석입학-서울대 수석 졸업의 수석 가도를 달렸다.그런데 그를 다시 만난 건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였다. 그는 스탠퍼드 물리학과 박사과정 자격시험에서도 수석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느날 그와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그의 입에서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필자가 그에게 “박사학위 논문도 당연히 1등이겠지?”라고 물으니 그는 의외의 대답을 하였다 “아니, 아마도 20명의 박사학위 학생 중 중간정도 일거야”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는 이어 말했다. “난 한국의 암기식 교육의 피해자”라고 그의 눈가에는 가벼운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그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아마도 노벨상을 지금쯤 받지 않았을까? 그 정도로 그는 수재였고 공부를 뛰어나게 잘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가 받아온 교육은 ‘암기식’이었다. 문제를 창의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뭐든지 외워서 써야 하고 해법을 암기하여 맞추어야 하는 전형적인 비창의적 교육을 받아왔기에 논문을 쓰는 단계에서 그의 수석의 행진은 멈추게 되었다.조그만 경험이 생각난다. 필자가 미국 대학에서 공부했을 때 미국의 수재들과 한국의 수재들의 차이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던 일화가 있다. 이미 알려진 해법을 통해 답을 구하는데 급급한 한국의 수재들은 해법이 없는 문제를 접하였을 때 며칠간 끙끙대다가 끝내 답을 구하지 못했다.문제를 풀지 못한 한국의 수재들은 미국의 수재들에게 해법에 대한 조언을 구했는데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해법이 없으면 해법을 만들어서 답을 구하면 된다.” 실제로 그들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해법을 스스로 만드는 창의성을 발휘했으며, 그들이 새로이 제시한 해법은 몇 달 후 논문으로 출판됐다. 한국에서 수재라고 불리던 우리나라 학생들은 이러한 창의성의 차이에 부끄러움을 느꼈다.창의력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인가 혹은 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여러 논란이 있다. 결론부터 미리 말한다면 두 가지 모두가 창의력에 공헌을 할 것이다. 하지만 구태여 둘 중 비교를 한다면 창의력은 90% 정도는 훈련과 환경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어려서부터 한국에서 창의적인 환경에서의 교육이 이뤄졌다면…. 오 총장같은 천재들은 지금쯤 노벨상을 탈 수 있었을 것으로 우리는 나름 추측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그가 이제 서울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이제 그가 자기가 걸어온 길을 반추하며 진정한 창의적인 교육을 시키는 대학의 수장이 되길 빌어본다. 아니 이에 앞서 한국의 초중고 교육이 그리고 대학교육이 창의적 교육의 산실이 되길 함께 빌어본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곧 첫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길!

2019-05-16

평등교육과 자사고 폐지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최근 미국 일간지가 미국 사립고교 랭킹을 발표했다. 미국은 사립고교 입학 경쟁이 치열한 나라다. 학군제로 운영되지만 공립고교 랭킹도 존재한다. 뿐만아니라 주별로 때로는 도시별로도 고교랭킹을 보도하기도 한다. 대학랭킹은 이보다 더 치열하게 보도된다. 경영학석사인 MBA 대학 랭킹과 법학전문대학원 로스쿨(Law School)의 랭킹은 졸업후 연봉과도 직결된다.경쟁이 있는 곳에 랭킹이 있고 그러한 경쟁은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은 경제학 제1장에 쓰여 있다. 사회주의 지상주의라는 중국이나 심지어 북한도 명문학교가 존재한다. 중국의 명문교 입학 경쟁은 치열한 것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둘러싼 사태는 이러한 논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서울시교육청이 자사고의 존폐 여부를 가름하는 운영성과 평가를 한창 진행하는 가운데 서울 자사고 학부모들이 재지정 평가를 통한 자사고 폐지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광화문에서 대규모 시위까지 벌였다.서울시 교육청이 자사고 평가 기준을 대폭 높여 자사고 폐지를 유도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평가기준을 높인 이유야 간단하다. 폐지수순을 밟기 위함이고 이는 항상‘평등교육’이라고 포장되어 있다.연합회와 자사고 측은 줄곧 서울시교육청의 재지정 평가지표가 자사고에 불리하게 설정됐으며 이는 교육감 공약인 자사고 폐지를 위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교육청은 재지정 평가 절차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진행하겠다는 입장과 원칙을 강조하지만 평가지표의 변경과 강화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는 확연해 보인다. 자사고가 학교서열화의 주범이라는 것인데 그런 관점이라면 과학고·외국어고·국제고 등 특수목적고도 폐지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학교서열화의 득실은 무엇이고 서열화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고 그것이 고교만의 문제인가를 냉철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교의 다양성을 위해 만든 제도를 정부가 바뀌었다고 스스로 폐지하려는 발상은 왜 나오는가? 자사고는 과거 정부가 다양한 교육수요를 수용하겠다며 2010년 도입한 학교 모델로 학교의 자율성을 더 확대·발전시킨 것이다. 자사고는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다양화하기 위해 고교 정부 규정을 벗어난 교육과정, 교원 인사, 학생 선발 등 학사 운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사고는 정부 지원 없이 등록금과 재단 전입금으로 운영되며, 등록금은 일반고의 3배 수준까지 받을 수 있다.전국 교육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선거당시 공통적으로 내놓은 공약이 자사고 폐지였고 그 첫칼을 서울시에서 빼어 든 것이다. 진보성향 교육감들의 자사고 폐지의 명분은 ‘평등교육’이다. 과연 진보 교육감들의 ‘평등교육’이란 무엇인가?개인은 각각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다양한 능력에 맞는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한 기회를 누구에게든 부여하는 것이 평등교육의 기본 정신일 것이다. 평등교육이란 교육을 받을수 있는 기회의 평등이지 교육수준의 평등이 되어서는 안된다. 교육수준은 각각의 수준과 다양한 능력에 맞게 제공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고교가 필요성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자사고의 커리큘럼을 조정한다든가 자사고와 같은 다른 형태의 수준별 고교를 만든다든가 하는 정책이 우리에게 필요한것이지 자사고 특목고들을 폐지하는 것이 평등교육은 아닐 것이다.평등교육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한다면 자사고 특목고 폐지가 우리 교육의 정답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올바른 평등교육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는 자사고 폐지정책은 재고 되어야 한다.

2019-05-09

아부다비에서 원전을 생각하며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1인당 국민소득 10만불이라는 초부유국 UAE 아부다비에 회의 참석차 왔다.회의 자체는 대학평가에 관한 회의이지만 초대된 많은 전문가들이 원전에 관한 전문가인 것들이 이채로웠다. 한국에서 초빙된 전문가도 원전 전문가였다. 그만큼 원전에 대한 이곳의 관심은 뜨겁다.7개의 토후국으로 이루어진 UAE에서 가장 면적이 크고 OPEC 석유생산의 10%, 세계 석유생산의 5%를 감당한다는 세계 초부유국 UAE의 아부다비는 고급 호텔 건물에서 잘 정돈된 거리까지 모두 풍부한 자금을 가진 아부다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1980년 수교하고, 그리고 10년 전 원전수주를 계기로 맺어진 한국과 UAE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보수정부 시절 바라카 원전 수주와 아크부대 파병 등으로 꽃이 피면서 중동에서 유일한 우리의 전략적 동반자 국가가 됐다. 교역량 150억달러, 중동에서 우리의 수출 1위국인 허브 국가이다.UAE는 한국을 선택했다. 계약대로 4개의 원전이 모두 완성되면 UAE 발전량의 25%를 우리가 지은 원전이 담당하게 된다. 이런 사업을 원전 수출 경험이 전무했던 한국에 맡긴 것은 UAE로선 중대 결단이었다.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며 원전폐기정책을 발표했다. UAE로선 황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UAE 방문중 “바라카 원전은 축복”이라고 달래긴 했지만 여전히 정부의 원전에 대한 국내 정책은 UAE 뿐만아니라 원전수출에 결정적 걸림돌이 되고 있다.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등 전국 13개 대학의 원자력공학도가 모여 결성된 녹색원자력학생연대는 주말마다 전국 주요 KTX역에서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서명운동을 받기도 했다. “10∼20년 후 원자력계를 이끌어갈 학생들이 떠나면 원전 기술도 후퇴할 수 밖에 없다”고 원자력 관련 교수들은 말한다.한국이 UAE에 원전을 수출하는 것을 보고 원자력공학도의 꿈을 키웠던 학생들은 이제 바뀐 상황에서 원자력공학의 꿈을 접고 있다. 교수들도 원자력계 일자리가 줄어드는 문제 외에 공들여 쌓아올린 원전 생태계를 어떻게 가꾸어 갈지 고민이다.정부가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지난해 한국전력공사가 적자를 냈고 원전보다 비싼 LNG와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확대하면 전기요금의 계속적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현실이다.이런 와중에 기쁜 소식이 들린다. 우리나라가 개발한 차세대 원전인 APR1400이 8년여 만에 미국 원자력 규제 당국으로부터 안전성을 입증받아 설계인증서(DC)를 취득하게 됐다는 소식이다. 원전 기술 종주국인 미국의 DC를 외국 기업이 단독으로 받는 건 사상 최초다. DC는 미국에서 APR1400을 짓고 운영할 수 있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 인증이어서 차세대 한국형 원전의 수출 가능성이 한층 커지게 됐다.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이 25년 전 제출한 APR1400에 대해 더 이상 기술적 이슈가 없어 신속한 법제화 절차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한국의 원전 기술이다.정부가 탈원전 정책이라는 대전제를 정해두기보다 원전, LNG, 석탄, 신재생에너지 등 각각의 에너지원별로 객관적인 평가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각각의 에너지원은 장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고 서로 보완적 성격을 가진다.에너지정책은 경제성, 환경, 안전을 모두 감안해 정해야 하며 특정 에너지원에 일방적 단정을 하기 보다는 모든 에너지원에 대한 포트폴리오(자원배분) 정책을 세워야 한다.현 시점에서 최선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신재생에너지와 원전이 함께 공유하는 포트폴리오 정책이 최선이라고 생각된다. 선거공약에 집착하기 보다는 진정 무엇이 국가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가를 냉철하게 생각할 때이다.

2019-05-02

학석사 연계과정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10년전 프랑스 명문대학 에꼴폴리텍(Ecole Polytechnique)을 방문한 적이 있다. 에꼴폴리텍은 푸리어, 라그랑제, 포아송 등 수학, 통계, 공학 등에서 유명한 학자들을 배출한 나폴레옹이 만든 대학이며 프랑스 최고의 대학으로 꼽힌다.당시 인상 깊었던 것은 이 대학이 석박사 연계과정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었다.모든 에꼴폴리텍 입학자는 석사까지 마치는 학석사 연계과정을 대부분 선택하게 된다. 이런 제도는 프랑스의 명문대학 그랑제꼴(Grandes Ecoles)에서 대부분 택하고 있는데, 이는 학문, 특히 공학이나 자연과학은 석사까지 마칠 수 있어야 그 분야를 어느정도 마스터 하게 된다는 철학에 근거한다.최근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대학들과 연계해 ‘반도체 계약학과’신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와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서울대, 연고대, 카이스트(KAIST) 등과 반도체 계약학과 설치를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학생장학금 학과 운영비 반도체 실습에 필요한 고가 기자재 등 각종 지원을 약속하고, 반도체 계약학과에 입학한 학생은 전원 해당 기업체에 취업이 보장된다.반도체 계약학과 설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정부의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 의지에 맞춰 추진하는 사업이다.산업통상자원부가 2018년 발간한 ‘산업기술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반도체업계 전문인력은 1천500여 명이 부족한데 이는 디스플레이업계에 부족한 전문인력보다 5배 이상 많은 숫자라고 한다.흥미로운 것은 프랑스의 에꼴폴리텍처럼 최근 SK하이닉스는 카이스트와 추진 중인 ‘반도체 계약학과를 5년짜리 학·석사 연계과정을 통해 메모리는 물론, 비메모리 분야까지 한꺼번에 육성한다는 구상을 밝혔다는 점이다. 선발인원은 1년에 최소 50명. SK하이닉스는 카이스트에 학·석사 연계과정(3년+2년)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중국은 최근 반도체 등 첨단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을 앞설 것이라고 공언했다. SK하이닉스와 카이스트가 2년 후부터 반도체 계약학과를 본격 운영한다고 가정할 경우 2025년에 첫 졸업생이 배출된다. 이때가 바로 중국이 한국을 앞설 것이라고 공언한 첫 해가 된다. 타이밍으로 보았을 때 시기적절한 시작이며 반도체 계약학과는 시급히 시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규모는 차이는 있지만 SK하이닉스는 서울대 연고대 등에도 카이스트와 비슷한 내용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반도체 계약학과를 설치·운영하기 위해서는 교육부의 관련 규정을 충족하고 인·허가도 받아야 하는 과정이 남아있긴 하지만 정부가 최근 비메모리 반도체를 ‘중점육성 산업’으로 선정한 만큼 시범적인 ‘SK하이닉스-KAIST 반도체 계약학과’ 출범은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SK하이닉스 반도체 계약학과 확정안은 정부가 이달 중 발표 예정인 비메모리 산업 육성방안에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도 이날 반도체 계약학과 관련 내용을 내놓을 방침이다. 10년 전 에꼴폴리텍을 방문했을 때 방문단에 함께 했던 당시 포스텍 총장은 포스텍도 학석사 연계과정의 5년제로 운영하겠다는 신선한 뉴스를 발표했던 기억이 난다. 이 제도는 이런저런 이유로 실천 되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수준의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다.지금 진행중인 반도체게약학과에 우리 지역의 포스텍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당황스럽다. 포스텍은 이러한 유수한 대학들과 공학분야에서 어깨를 겨루는 최고의 대학으로 당연히 이러한 계획에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학석사 연계과정을 오래전부터 연구해온 노하우를 가진 대학으로 이러한 제도 정착에 선두를 끌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포스텍이 학석사 연계과정의 선두주자로 국내 반도체산업 육성에 앞장서길 주문해 본다.

2019-04-25

무은재 25주기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포스텍 김승환 대학원장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금년 4월 30일이 무은재 김호길 포스텍 초대총장의 25주기이니까 특별행사로 명예교수님들을 초대하고 싶다는 전언이었다. 그제서야 무심하게도 금년이 무은재 25주기라는 걸 깨달았다. 1994년 그날은 토요일로 기억된다. 동료교수들과 시내에서 식사를 하는 도중 지역TV 방송에서 그의 서거를 알리는 화면이 나왔고 식사를 하던 교수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부근 병원에 이송된 그는 포스텍 총장 6년 동안 이룩한 위대한 업적을 뒤로한채 그렇게 떠났다. 금년 1월 과기정통부는 과학기술 발전에 공헌한 연구자를 기리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에 한국 최초의 가속기 학자인 고(故) 김호길 포스텍 전 총장 등 16명을 신규 지정했다고 발표하였다. 과학기술유공자는 2015년 제정된 ‘과학기술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으로 2017년 초대 유공자 32명이 지정된 데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과학기술유공자 제도는 일반 국민이 존경할 만한 우수한 업적이 있는 과학기술인을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해 명예와 긍지를 높이고 과학기술인이 존중받는 사회문화를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마련됐다.무은재는 1933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생하였으며 경상북도 영일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다. 그는 1952년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56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학사학위를 받았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 공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재직하면서 양자역학과 전자기학을 공부하면서 이론물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1961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장학생으로 영국 버밍엄 대학교로 유학을 떠난 그는 1964년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싸이클로트론(cyclotron) 분야의 연구를 병행하였다. 그는 이후 1964년부터 1966년까지 미국 UC버클리의 로렌스 연구소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기며 물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1966년부터 1978년까지는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물리학과와 전기공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재미한국 과학기술자협회 창설 및 회장을 역임했다. 1983년 한국의 과학발전과 후진양성을 위해 영구 귀국했으며 당시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 구자경 회장의 초청으로 경상남도 진주에 위치한 연암공전 초대 학장직을 맡았고, 이후 공대 신설을 추진하던 포항제철과 인연을 맺으며 1985년 포항공과대학교 초대총장으로 선임되었다. 1985년 8월부터 1994년 4월까지 포항공과대학교 초대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연구 중심의 교육을 통해 기술 입국을 실현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포스텍 설립과 발전을 이끌었으며, 순수 국내 기술로 범국가적 연구시설인 포항방사광가속기의 건설을 주도하였다.그는 서울이 아닌 지역에 위치한 포항공대가 성공하는 지름길은 “다른 대학이 가지지 않은 무언가를 가져야 한다”것이 신념이었고 방사광가속기 건설을 총장수락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1994년 체육대회 도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가 그토록 애지중지 추진했던 포항방사광가속기의 완공을 보지 못하였다. 또 필자가 맡고 있었던 최고경영자과정의 특강을 한 주 앞두고 떠나셨기에 그 아쉬움과 슬픔이 두고두고 흐른다. 무은재란 중국 사회과학원의 신관결 박사가 국제 퇴계학상 수상을 위해 1989년 내한하여, 김호길 박사에게 지어준 것으로 그가 호방한 성품뿐만 아니라 자연, 인문과학 등 광범위한 학문과 지식을 갖추었음을 표현한 것이다.포항의 포스텍은 무은재 김호길 초대총장과 박태준 포스텍 명예이사장 두 분의 작품이라는 건 누구든 잘 아는 사실이다. 무은재 25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업적에 존경을 표하며 이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정말 감사합니다”.

2019-04-18

어느 교수의 은퇴식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요즘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65세 교수 정년이 너무 이르다는 의견이 학계에 있다.기업들이 60세 전후 은퇴를 볼 때 65세도 충분하다는 의견과 미국대학들처럼 교수는 정년을 없애고 교수 스스로가 정년을 결정하도록 하자는 의견도 있다.사실 65세 은퇴하는 교수들은 미국교수들이 부럽기까지 할 정도로 건강도 좋고 연구활동도 여전한 교수들도 많다.오랫동안 대학에서 수 십 년을 후학을 가르치시고 은퇴하신 교수님의 생활은 어떨까?계속 학교에 남아 가르치기도 하고 다른 대학으로 가기도 하고 또 개인 연구소를 경영하는 분도 있고 책을 쓰기도 하고 그냥 여가를 즐기시는 분까지 정말 백인백색이다.어떤 은퇴 목사님이 쓰신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은퇴목사의 노래가 있다는 것이다. 그 목사님이 소개한 노래는 현제명 작곡의 ‘고향생각’이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내 동무 어디두고 이 홀로 앉아서/이일 저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는 가사가 지금 은퇴 목사님들의 마음을 표현한다고 한다.그 목사님은 개사를 해서 이렇게 불렀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교인 없고.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네. 교인은 어디 가고 나 홀로 앉아서 이일 저일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교인을 제자로 바꾸면 아마도 은퇴교수님들의 외로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찾아오는 제자가 없고 밝은 달을 쳐다보면서 제자는 어디가고 나홀로 앉아있나라는 생각을 하시는 원로 교수님들을 생각해본다.그래도 그분들에게는 큰 보람이 있을 것이다. 연락은 많이 없어도 뻗어나가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리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은퇴교수님들은 충분히 보람있고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 또 베품을 보여주었던 은퇴교수님의 모습은 오래 기억된다. 언젠가 베풂을 남겼던 한 은퇴교수님의 은퇴식을 생각해 본다.그 교수님의 은퇴식에 초대된 손님들의 구성이 특이했기 때문이다. 보통 은퇴식의 초대 손님은 가족, 친지, 동료교수, 제자들이 주를 이룬다. 가끔 친한 대학 직원을 초청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그런데 이 원로교수의 은퇴식에는 대학의 환경미화원, 근로직 복지회 직원 등 일반적으로 교수 은퇴식에 초대되지 않는 분들이 여러 명 초대되어 눈길을 끌었다. 일반 직원들도 그 숫자가 꽤 많았다.좌석 배치도 이런 분들과 교수 및 일반 직원들이 함께 어울려 앉도록 한 것도 매우 이채로웠다. 어색한 분위기를 감내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정겨웠다. 그리고 은퇴식 다음날 학교게시판에는 그 은퇴교수님을 칭송하는 글이 올라왔다. 여러 사람들은 그 원로교수의 숨은 선행을 알게 되었다.명절 때나 특별한 날이면 수시로 어려운 분들을 도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모두 익명으로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셨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 교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주 검소한 삶을 꾸려가기로 유명하신 분이었다. 낡은 차를 몰고 다니시는 그런 삶 속에서 남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날의 모습은 감동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이런 베풂의 교수와 더불어 우리 주변엔 제자들의 장학금을 많이 기부하고 떠나는 교수님들도 종종 볼 수 있다. 그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이 얼마나 그 교수님을 기억할지는 모르지만 장학금을 마련한 교수의 마음은 진정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이리라.아마도 “찾아오는 제자가 없고 밝은달을 쳐다 보면서 제자는 어디가고 나홀로 앉아있다”라고 상념에 잠길 은퇴교수도 베풂을 통한 구성원에 대한 사랑과 장학금을 통한 제자 사랑에 그런 외로운 마음을 흔쾌히 씻어낼 수 있으리라. 이제 은퇴교수님들에게, 스승님들에게 한번 연락을 드릴때도 된 것 같다. 우선 나부터 말이다.

2019-04-11

대학의 또 다른 사명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지금 대전 카이스트(KAIST) 캠퍼스에서는 흥미로운 국제회의가 열리고 있다.카이스트와 세계 대학 랭킹 발표로 명성을 가지고 있는 영국 고등교육평가기관인 THE(Times Higher Education)가 공동 개최한 ‘KAIST-THE 이노베이션 임팩트 서밋’(혁신과 영향력 대학 정상 회의)이라는 회의가 그것이다.필자가 이 회의에 참석하면서 지금까지 기존 관념을 뒤엎는 이채로운 토의내용과 새로이 발표되는 대학랭킹을 접했다.이 회의 주제는 ‘대학이 사회, 문화, 경제, 기술 등 사회전반에 어떤 영향과 기여를 하는가’를 가지고 대학의 서열을 매겨 보자는 것이다.대학의 서열을 정할 때 학생의 수준, 교수의 연구능력과 결과, 대학의 명성 등을 주로 고려하는게 일반적인데 비하여 이러한 시도는 매우 신선하고 흥미롭다.행사 마지막 날 4일 발표된 ‘세계 대학 영향력 순위’는 UN총회가 2015년 채택한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에 대한 고등교육기관의 직무이행 여부를 평가 기준으로 한다.THE는 UN이 제시한 17개 목표 중 11개를 평가 항목으로 삼았고, 6개 대륙, 75개국, 500개 이상의 기관이 평가 자료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다수의 기관이 참여한 이번 평가 결과는 각 대학의 사회·경제적 영향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활용할 수 있다. 기후변화, 환경, 양성평등, 기술 및 사회혁신 같은 독특한 평가 지표들이 사용되었다.이번 서밋은 ‘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학의 역할 변화’를 주제로 한다. 각 대학과 그 졸업생들이 국가 발전에 기반이 되는 우수한 연구를 얼마나 수행하는지와 해당 지역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중점적으로 평가했다고 THE는 밝히고 선진국 대학들 중심의 기존 세계 대학 랭킹과는 크게 다를 것이라고 전했다. 그래서 이번에 발표된 랭킹에서 뉴질랜드 오크랜드 대학이 1위를 하고 캐나다의 대학들이 상위권에 포진했다. 한국도 전통적인 상위권 대학을 제치고 경희대가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있었다.몇 년 전부터 ‘혁신대학 랭킹’이라는 것도 발표되고 있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로이터라고 하는 회사에서 혁신 대학의 랭킹을 발표하고 있다.매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첨단 과학 연구를 이끌고 신기술에 대한 개발 성과가 우수하며,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창출하고 성장시키는데 기여도가 높은 대학을 발굴해 순위를 발표한다. 여기서 특허출원, 특허 성공률, 상업화 비율 및 특허의 피인용지수 등이 주요 평가 항목이다. 작년에 로이터가 ‘2018년 아시아 최고 혁신대학 75곳’(Reuterksns Top 75: Asia’s Most Innovative Universities)을 선정 발표하면서 로이터 발표에 따르면 카이스트는 평가 첫해인 2016년 이래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포스텍은 2016년 5위에서 매년 한 단계씩 상승했다.대학의 목적은 무엇일까?인재를 길러내 우수 졸업생을 배출하여 사회 각계에 공급하는 것이 대학의 목적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의 시설, 교수, 학생, 연구력 등 모든 제반 조건들의 최종 목적은 우수 졸업생의 배출이라는 목적으로 수렴된다. 그래서 대학들은 우수 졸업생을 배출하기 위한 조건으로 우수 입학생을 받아들이기 위해 온갖 힘을 기울이고 있다. 대학의 시설, 재력, 연구력, 명성 등을 총동원해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그런데 이번에 시도된 새로운 발상은 대학이 사회적·경제적으로 혁신을 일으켜야 함은 물론 문화, 환경, 정의 등에 공헌해야 한다는 새로운 대학의 사명을 제시한 것이다.대학은 이제 교육, 연구와 같은 전통적인 개념에 충실하면서도 새로 제시된 사명감에 관심을 더 크게 가져야 할 것이다.

2019-04-04

디지스트(대구경북과기원)의 새 출발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오랜 공백 끝에 디지스트(DGIST·대구경북과기원)의 새로운 총장이 결정되었다. 아직 정부의 승인 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신임 총장이 결정된 것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디지스트는 지난 26일 이사회를 열어 전 서울대 명예교수인 국양 교수를 디지스트 4대 총장으로 선임했다. 디지스트는 작년 11월 총장이 사임한 후 4개월 가까운 오랜 총장 부재의 공백기를 거쳤다. 사임 전에도 수개월간 과기부의 감사가 이어지면서 대학은 힘든 과정을 겪었다.디지스트는 학부에서 학과에 소속되지 않은 자유전공으로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전공을 확정하는 한국 최초의 융복합대학으로 미래의 한국대학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대학이다. 이러한 융복합 과정은 학생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기에 이는 매우 신선하고도 중요한 시도로 여겨진다. 그래서 명성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소위 ‘스카이’ 대학들이나 포스텍, 카이스트 같은 명문 과기특성화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대학수험생들에게도 환영을 받고 있다.그러나 거의 1년 가까이 디지스트는 안팎으로 시달려 왔고 상당한 리더십 공백기를 거쳤다. 그 문제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훗날의 판단에 맡기더라도 이제 디지스트는 상처를 씻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 따라서 디지스트를 이끌 새로운 수장으로서 신임 국양 총장의 임무는 막중하다고 생각된다.신임 총장은 서울대에서 오랜 연구경력과 행정경력을 쌓았고 최근 삼성기술재단 이사장 역할을 통해 과학계에서 리더십이 인정되었기에 지금 디지스트가 당면한 문제들을 잘 극복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몇 가지 주문을 해 본다.우선 디지스트 구성원 전체에게 심기일전의 목표를 제시하고 그들의 용기와 희망을 북돋는 일이 필요하다. 그동안 특히 디지스트 교수 및 직원들은 어려움 속에서 대학을 이끌어 가야 하는 각고의 과정을 겪었다. 따라서 신임총장은 교수 및 직원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의견을 청취하여 화합과 단결 속에서 새로운 힘을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요즈음 유행하는 단어가 ‘소통’이다. 캠퍼스는 다른 조직들보다 특히 소통이 중요하며, 교수, 직원, 학생들 이러한 구성원과 소통을 통해 새로운 추진력을 얻는 조직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둘째로는 정부와의 관계 정립을 새롭게 해야 한다. 디지스트의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는 이제 새로 출발하는 디지스트와 신임총장에게 전폭적인 신뢰와 필요한 지원으로 화답해야 한다고 본다.마지막으로 디지스트의 국내외 위상제고이다. 사실상 디지스트는 해외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조차 그 이름을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국내외 우수 교수, 우수 학생 유치에 있어서 대학이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과제이다. 국내에서 타 특성화과기대와 기존의 명문대학들과의 선의의 경쟁과 또한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해외의 명문대학들과의 경쟁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세계의 여러 평가기관들이 앞다투어 대학들을 평가하는 대학랭킹을 발표하고 있고 이러한 평가에서 디지스트는 좋은 평가를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수들의 연구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 수월성을 제고하여야 하며 또한 세계대학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명성’ 부분에서 특히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내 타 신설 과기대도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긴 하지만 디지스트는 특히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디지스트의 신임 총장에게 기대를 걸고 싶다. 기대가 꼭 현실로 나타나길 간절히 소원해 본다.

2019-03-28

이제 교가까지 바꾸는가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과중고교 교가는 지금도 한가할 때는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른 곳을 다녔던 필자는 두 개의 교가를 모두 잘 외우고 있고 가끔 불러보기도 하고 흥얼거리기도 한다. 동창모임에 가면 끝날 때 어김없이 부르는게 교가이다. 그만큼 중고교 교가는 10대 성장기의 정서를 키워주고 자부심을 갖게 하는 노래요 노랫말이다.지금 느닷없이 교육청이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인물이 작사·작곡한 교가는 바꿔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지은 건물은 다 부숴야 한다는 논리와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그 친일인명사전이란 것이 얼마나 정확한 것이고 기준의 객관성이 그리 투명한 것도 아니다. 평생 애국하다가 일본의 공갈협박으로 잠시 굴복한 것을 친일인사로 꼭 분류해야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지난달부터 ‘친일 교가 청산’작업이 전국에 퍼지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10곳의 교육청이 직접 나서서 교가 작사·작곡자 이력을 전수 조사하거나 적극적으로 바꾸도록 권하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곳이 광주제일고다. 이 학교 교가를 지은 이흥렬(1909~1980)은 애창곡 동요 ‘섬집아기’와 애창 군가 ‘진짜사나이’를 남긴 대표적인 20세기 한국의 작곡가이다.이흥렬 씨는 한국이 낳은 최고의 작곡가이고 많은 애창곡을 작곡했지만, 일제 말기 강요에 의해 군국 가요를 연주·반주·지휘했다는 이유로 좌파 성향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는 수난을 겪은 작곡가이다. 광주제일고는 조만간 동문·학생·학부모 등으로 교가 교체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기로 하고,‘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동문에게 새 교가를 맡기는 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광주 시내 중·고교 13곳과 대학교 4곳이 현제명·김동진·김성태·이흥렬 등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작사가나 작곡가 4명이 지은 교가를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10곳 넘는 중·고교가 교가 교체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학교들은 입학식 때 교가를 부르지 않고 있다고 한다.좌파성향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4천389명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었는데 이는 광복 직후 반민특위가 가려낸 친일 인사보다 6배가 많은 숫자이다. 그리고 이 인명사전을 근거로 지금 이런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 인명사전은 6·25전쟁 때 북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은 오른 반면, 일부 친일 논란이 있는 좌파 인사는 빠진 경우가 있다. 그래서 발간 당시부터 ‘선정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많았다.문제는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 한 가지만으로 ‘이 사람은 친일, 저 사람은 반일’이라고 100년 전 역사를 간단히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삶의 한 단면만 보고 ‘친일’이라고 낙인찍기 힘든 이들이 더 많다. 을사늑약 때 ‘시일야방성대곡’ 사설을 쓴 위암 장지연도 이 사전에 따르면 친일 인사다.광주제일고 동문들은 교가 교체에 반대하는 연판장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동문들은 “우리 동문 4만명은 이흥렬 선생이 지은 교가를 자긍심을 갖고 불러왔다”면서 “전교조와 일부 역사학자들이 작곡가들을 친일로 몰아 교가까지 없애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과연 좌파성향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근거로 오랫동안 불러온 교가를 하루 아침에 교체해야 하는지는 큰 의문이다.필자가 부르는 중학교, 고교 교가에는 민족정서와 민족정기가 배어 있다. 그리고 어려웠던 시절 반드시 선진국가로 나아가고 통일을 이루겠다는 꿈이 서려 있다. 이념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런 교가를 근거가 확실치도 않은 친일인명사전을 근거로 교가를 바꾸겠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 그 교가에 서려 있는 수만명 동문들의 추억과 회한을 한번 생각이나 해보았는지 묻고 싶다.

2019-03-21

“서잡대”라고 부르면 좋을까?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과미국의 아이비 리그(미국 동부의 8개의 명문대)의 하나인 코넬(Cornell)대학은 이타카(Ithaca) 라고 하는 아주 작은 마을에 있다. 몇 년전 그곳을 찾아가는데 시골길을 한참 차를 몰고 가니까 멀리서 나타나는 그런 소위 ‘촌구석’에 있는 대학이었다. 정문이 그러니까 후문 쪽은 좀 번화하지 않을까 하고 후문 쪽으로 가보았는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소위 ‘시골대학’인 코넬 대학은 노벨상 수상자도 여럿 배출하고 경제학, 경영학, 공학, 자연과학 등에서 미국의 최고 명문 대학으로 수 백년간 칭송받고 있다.미국의 많은 우수한 대학들이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에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주요 명문 주립대학들은 주의 수도가 아닌 작은 마을에 있다. 이것은 교육선진국이라는 유럽이나 일본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마찬가지이다.한국도 요즘 포스텍이나 명문 과기대 등이 서울이 아닌 곳에 세워지고 있다. 또한 서울이 아닌 지방(필자는 지방이란 말을 쓰지 않지만 편의상 써본다)의 대학들도 우수한 대학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교육의 품질과 상관없이 ‘지잡대’ 등으로 싸잡아 부르며 멸시하고 차별하는 풍토가 있다. 서울 중심의 불균형한 사고방식과 왜곡된 학력 경쟁이 낳은 지방차별화의 실상이다.몇 년전 서울대 대나무숲 페이스북에는 ‘지방대생인 친구와 쇼핑몰에서 놀다가 충격적인 일을 당했다’는 서울대생의 글이 올라왔다. 한 지방대 마크가 들어간 후드 티셔츠를 입은 친구와 떠들고 있었는데, 서울 소재 한 대학생이 지나가면서 얼굴을 찌푸리며 ‘어휴 지잡대 냄새’라고 말했다는 사연이었다. 정말로 상식을 넘어선 충격적 사건이었다.그러나 이 사건은 그 학생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지방을 무시하는, 그래서 지방에 있는 대학을 무시하는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차별의 문제이다. 미국, 영국 등 서구 교육 선진국에도 대학 간 우열은 있지만 지방에 위치하고 잇다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조롱을 받는 일은 결코 없다. 학력차별이 비교적 심한 일본에서조차 최하위권 대학을 뜻하는 ‘에프(F)랭크 대학’이라는 용어가 있지만 한국의 ‘지잡대’처럼 지방대 전체를 싸잡아 비하하는 말은 없다.지방대 출신이 전체 대학 졸업자 중 70%를 차지하는 다수인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차별받고 멸시의 대상이 되는 것은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지방 경시 상황에 근거하고 있다.역설적으로 지방대 무시의 시발점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 학교와 학원이다. 명문대 진학에 초점을 맞추는 입시중심 교육 속에서 지방대는 ‘낙오’의 동의어로 각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고 인기강사라는 학원강사들이 지방대 비하 발언을 유튜브에서 서슴지 않고 있다.지방에 있는 많은 고등학교들은 이른바 ‘명문대’ 진학생 숫자를 홍보하는 현수막을 정문에 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성적순으로 대학을 줄 세우고 지방에 있는 대학에 가는 것을 ‘실패’와 ‘낙오’로 치부하는 일부 교사의 언행과 학교 분위기가 지방대 혐오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여기서 파격적인 제안을 한번 해본다. 서울에 있는 대학들을 싸잡아 “서잡대”라고 부르면 어떨까? 물론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런 가정을 해본다. “아휴 서잡대 냄새”라고 코를 잡고 지나간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서울·지방 이분법은 이 사회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특히 대학은 실력과 경쟁력에 의해 구분되어야지 서울, 지방 등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2019-03-14

IST(과기대) 형제의 통합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인도 델리에 있는 인도공대(IIT) 델리 캠퍼스를 가본적이 있다. 시설은 한국대학에 못미치지만 엘리트 의식이 가득한 캠퍼스였다. 조금 과장된 이야기이지만 인도 학생들 사이에는 “MIT 붙고 IIT 떨어졌다”는 말이 공공연하다고 한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창업자의 15%, IBM 엔지니어의 28%, NASA 직원의 35%, 미국의 의사 15%를 IIT 출신이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다.IIT는 인도의 독립 직후, 인도의 과학 발전을 위해 설립한 명문 국립 공과대학이다. 인도 독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네루 수상이 설립을 주도했다. 지금은 카라푸르, 뭄바이, 델리, 하이데라바드 등 16개 캠퍼스가 있는데 10개는 2004년 이후에 세워질 정도로 IIT의 인기는 급상승하고 있다. 인도 전체에서 30만명이 시험을 봐서 5천명 정도 선발한다고 하니 그 치열한 경쟁을 알만하다. 인도 대학 순위를 보면 어디서 조사하든 1위에서 20위 사이에 16개의 캠퍼스가 전부 들어간다. 전통적인 명문 델리 대학, 네루 대학, 그리고 인도과학연구원을 제외하고는 IIT 가 모두 장악하고 있다. IIT에 대한 인도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IIT출신자들의 졸업 후 행보를 보면 세계 유수의 IT기업에서 IIT 졸업생을 바로 채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IIT의 힘은 “1+1 은 2보다 더 크다”는 시너지 효과에 기인한다. 각 캠퍼스의 우열의 차이는 있지만 정부의 통합관리로 자원의 효율적 사용이 가능하고 캠퍼스별 차별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각 캠퍼스는 특성화를 앞세우지만 인재 유치를 위해 경쟁력에 힘을 기울인다. 한국에도 IIT 같은 정부의 특성화 공대가 여러개 있다. 최근 국공립 4개 과기원인 카이스트(대전)·지스트(광주)·유니스트(울산)·디지스트(대구)를 통합 운영하는 방안을 정부가 추진한다고 한다. 우선은 ‘공동 사무국’을 만들어 운영하지만 이후 이사회를 통합해 ‘하나의 대학’으로 만드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4개 과기원을 운영하는 ‘공동 사무국’을 카이스트 캠퍼스에 세울 계획”이라며 “이르면 3월, 늦어도 올 상반기 사무국 문을 연다”고 했다.늦은감이 있지만 잘 한 결정이라고 본다. 그동안 4개 과기원은 연구시설 공유, 중복 연구 조정, 과기원별 중점 연구 분야 결정 등에 있어서 충분한 조율이 되지 못하였다. 비슷한 목적으로 세워진 과기원들이 여러 곳 생기면서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고 비슷한 연구가 중복되는 등의 문제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과기원의 역할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인도의 IIT 같은 형태로 전환하여 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캠퍼스별 특화를 꾀하면서도 캠퍼스간 경쟁은 지속되는 형태를 띠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내 과기원은 카이스트(1971). 지스트(1995), 디지스트(2004, 학사는 2014), 유니스트(2009) 등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이들은 통칭 ‘IST (과기원) 형제’라고 부른다. 모두 ‘한국의 MIT’를 표방하며 개원했지만 학교별로 이사회가 다르고 정부 예산도 별도로 받아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현재 검토 중인 방안은 4개 과학원을 통합해 ‘하나의 대학’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디지스트는 ‘카이스트 대구경북캠퍼스’가 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대학 평가에서도 캠퍼스 별로 랭크가 되겠지만 통합적인 개념 때문에 4개 캠퍼스 모두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4개 캠퍼스가 통합된 KAIST와 사립 특성화 이공계 대학인 포스텍은 상호 협력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세계적 경쟁력을 더 얻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IIT 계열이 아닌 인도과학연구원(IIS)이 IIT와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1,2위를 다투는 것과 비슷한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9-03-07

여성 과학자 시대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한국 과학기술계가 바야흐로 ‘여성 과학자 시대’를 맞았다. 이젠 여성과학자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게 별로 낯설지 않다. 대통령비서실 과학기술보좌관에 이화여대 약학과 이공주 교수가 임명되었다고 한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김명자 회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미옥 1차관에 이어 “여성과학자 트로이카”시대를 열었다는 요란한 언론보도가 주목을 끈다.모두 필자와 인연이 많은 교수들이다.카이스트 석사과정 후배인 이공주 교수를 만난 건 80년대초 스탠포드 대학 시절이었다. 당시 최근 임명된 오세정 서울대 총장과 함께 20대의 학생 시절이었다. 학업에 열중하면서 학생회 모임에 열심히 나오던 모습이 기억난다. 이후 뛰어난 학술업적으로 여성과학기술자상, 마크로젠 여성과학자상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하였다.문미옥 차관은 포스텍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했으니 학과는 다르지만 제자인 셈이다. 최근 디지스트(대구경북과기원) 졸업식에 참석한 문 차관의 자신만만한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국회의원, 과학기술보좌관 등을 거치며 과학계의 실세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적극적인 성격이 주목을 끈다.김명자 회장은 오래전부터 과학계의 잘 알려진 인사다. 숙명여대 화학과 교수를 25년간 역임한 김 회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44개월간 환경부 장관을 지내 ‘헌정 사상 최장수 여성 장관’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자주 각종 회의에서 인사를 나누었다.한 분은 차관이고, 또 과학기술보좌관은 차관급, 과총 회장은 한국의 ‘과학기술인 대표’로 친다면, 한국과학기술계는 이들 3명의 여성과학자 트로이카가 맡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간다.‘역사 속의 여성 과학자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도 상당한 의미가 있을 듯하다. 흔히 ‘퀴리 부인’이라 불리는 ‘마리 퀴리’(Marie Curie·1867∼1934)는 성공한 여성과학자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는데, 노벨상을 두 차례나 받았다. 또한 퀴리 부인의 큰딸인 이렌 퀴리(Irene Curie·1897∼1956) 역시 1935년도 노벨화학상을 받는 등 크게 성공한 여성과학자였다.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1878∼1968)와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Elste Franklin·1920∼1958)처럼 퀴리 모녀에 못지않은 비범한 능력과 열정을 가진 과학자도 있었다. 우라늄 원자핵이 두 쪽으로 쪼개지는 핵분열의 원리를 명확히 밝혀내는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또한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히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왓슨(James Watson·1928-)과 크릭(Francis Crick·1916∼2004)이 경쟁자였던 윌킨스(Maurice Wilkins)와 함께 1962년도 노벨 생리의학상까지 받게 된 불후의 업적인 DNA의 이중나선구조 발견은 프랭클린이 찍은 DNA의 X선 회절사진이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돌이켜 보면 공학분야의 여성 진출이 눈에 띈다. 70년대 대학시절 공대 입학생 600명 중 여학생은 단 3명이었고 큰 화제가 됐다. 보통 1∼2명 입학하는데 3명이나 입학했으니 단연코 화제였고 남학생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이제 대부분 대학의 공대에서도 20% 정도가 여학생으로 채워진다. 생명, 컴퓨터공학, 수학 등 여학생 선호분야 뿐만아니라 기계, 토목, 에너지 자원 같은 중후장대한 분야에도 여학생의 진출이 눈에 띈다.공학분야의 여성 과학자들이 많아지면서 여성CEO들도 늘고 있다. 이제 여성과학자, 여성공학자는 보편화 되는 모습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과학계에선 가속화 되고 있고 이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여성과학자들에게 파이팅!이라고 외쳐 본다.

2019-02-21

한전공대 꼭 필요한가?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5·16이 일어난 다음해인 1962년, 서울 마포에 2년제 수도공업초급대학이 세워졌다. “국가의 자주 독립을 고수·발전시키고 인류 평화 건설에 기여할 인재를 양성한다.” 는 구호 아래 한국전력이 만든 대학이다. 이 대학은 2년후 4년제인 수도공과대학으로 개편되었다. 한국전력은 흩어진 전력회사들을 통합하면서 전문인력 공급이 절실했다. 그래서 세운 것이 수도공대였다.당시 수도공대 인기는 대단했다. 전교생에게 기숙사와 장학금을 지급하고 취업률도 좋아서 가난하게 살던 시절 인재들이 몰렸다. 하지만 수도공대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국가로부터 재정조달이 줄고 한전의 보조금도 줄어들면서 수도공대는 인기를 잃었고, 결국 1971년 홍익대에 이양됐다. 한국전력은 두 번째의 공대 설립을 시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기 때문이다. 서부의 포스텍을 표방하는 한전공대의 부지가 최종 확정되면서 한전공대 설립이 본격화 되고 있다. 명분은 에너지기술의 육성이라는 것이다.지금 한국엔 수십개의 종합대학교 공대가 있고 특성화 공대가 5개나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과 비교하여도 국토와 인구수의 규모에 비해 특성화 공대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다. 더구나 고교졸업생의 감소가 예상되어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4년제, 2년제 대학을 합쳐 350개의 대학숫자는 어떤 선진국가보다도 인구비례로 많은 숫자이다.지금 대학 설립 주체로서 자금줄이 돼야 할 한국전력이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운영비 일부 지원을 약속한 지방자치단체의 열악한 재정도 문제다. 한전은 6년 만에 4천억원이 넘는 적자를 앞두고 있고 운영비 등의 부담을 함께 짊어져야 할 전남도는 재정자립도가 30%대로 17개 광역시 중 꼴찌 수준이어서 원활한 재정 지원이 가능하지가 않다.또한 설립에 약 5천억원이 필요하고 설립 후에도 매년 운영비로 약 1천억원 이상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과연 그런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한전에 있는 것인가.이런 와중에 한전공대는 2022년 개교를 6개 학과에 학부생 400명, 대학원생 600명, 교수 100명으로 혜택이 파격적이다. 등록금 전액 면제에 기숙사까지 무료로 제공은 기본이고 특히 눈길을 끄는건. 교수들에게 다른 특성 과기대의 3배 이상의 연봉을 준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발상이 나올수 있는지 어안이 벙벙해 진다. 다른 대학교수의 3배 이상의 연봉을 주어 우수교수들을 빨아들이겠다는 발상인데 이는 현실적으로 큰 혼란만 초래할 것이 예상된다.연봉 3배는 즉흥적 발상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보여진다.과거 정보통신부와 산하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민간 KT 등이 공동으로 설립해 1998년 개교한 사립대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는 정권이 바뀌고 ICU는 국가나 공공기관은 사립학교를 설립할 수 없음에도 규정을 어기고 국비를 지원받았다는 감사원의 지적(2004년)을 받고 결국 카이스트에 통합되었다. 정권이 바뀌면 한전공대 설립이나 운영이 난항을 겪을 것은 자명하다. 현재 한전공대 설립은 현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다는 이유 외에는 뚜렷한 명분을 찾을 수 없다.내세운 에너지 연구는 국내 수많은 공대 특히 5개 과기특성화 대학에서 이미 많은 연구를 하고 있고 만일 부족하다면 이러한 기존의 공대를 한전이나 정부가 지원해 주는 것으로 충분하고 지역을 고려 하더라도 광주의 지시트의 에너지 관련 연구 교육을 강화하면 된다.지금 우리는 정치적인 논리로 세워지는듯한 인상을 주는 한전공대 설립이 진정 국가백년대계에 필요한 것인지 곰곰 생각해 봐야 한다.

2019-02-14

제주의 향기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한국의 신혼여행지 변천사를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신혼여행지로 60∼70년대는 유성온천이 압도적이었다. 경주도 선택을 받았다. 그러다가 70년대 중반부터는 소득의 향상으로 신혼여행지로 제주도가 급부상하였다. 제주도의 인기는 80∼90년대까지 이어진다. 2000년대 이후는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신혼여행지는 해외로 바뀌었다.구정 기간 중 40년 전 신혼여행을 갔던 제주를 찾아보았다. 그간 제주를 회의나 공식적인 일로 여러차례 왔었지만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과거 신혼여행때 찾았던 명소들을 들르며 똑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 재미를 가져 보았다. 자연물을 소재로 한 용두암, 천지연 폭포, 외돌개 등등은 옛 그대로였지만 목석원 같은 인위적이었던 명소는 사라졌다. 신혼여행의 최고의 숙박시설로 필자가 묵었던 칼호텔은 이제 중문단지의 5성급 호텔에 밀리는듯 비교적 서민적인 호텔로 변모해 있었다. 명소를 방문하여 40년 전 사진을 보여주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할 때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젊은이들은 아주 흥미롭게 옛 사진을 보면서 사진 찍는 걸 도와주었다.당시 제주밀감으로 유명했던 귤도 한라봉이 나오더니 이제는 천혜향, 레드향 등으로 다양한 고급 귤이 개발되어 있고 다양한 볼거리, 놀거리들이 있었다.작은 나라 한국은 제주가 있어 참 다행인듯 싶다.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섬이 있고, 산업화되어 숨쉬기도 힘든 도심의 생활을 탈피하여 날씨가 온화하고 자연이 숨쉬는 곳으로 갈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다행인듯 싶다. 그래서 제주공항에 내리면 야자수의 모습과 함께 독특한 제주의 향기가 있다.그런데 제주의 향기가 정치와 함께 흐려질까 걱정된다. 김정은의 외할버지 고경택은 제주도가 고향이라고 한다. 그래서 김정은에게 제주도는 외가라고 부를 만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문 대통령은 작년 9월 김정은과 함께 백두산에 오르며 한라산 정상도 오르자는 대화를 나눈 바 있다. 제주산 귤 수백톤을 북한이 보낸 송이버섯에 대한 답례라고 하면서 김정은에게 보냈다.한때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의 회담 장소로도 거론되기도 했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가 김 위원장을 한라산으로 공식 초청키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가능한 시나리오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한라산을 함께 올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완성된 통일 한반도의 평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도 있다고 했다. 또 제주도의회 차원의 남북교류 활성화 방안에는 상징적인 남북교류 사업인 감귤보내기 사업 재개와 제주 어미돼지 분양, 한라산과 백두산의 생태 환경 보존을 위한 공동협력과 공통의 역사·문화 연구 및 교류를 제안한다고 한다.김정은의 방문으로 제주가 평화의 상징으로 부각되어 진정 평화가 찾아온다면 그보다 반가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행보는 기대와 다르게 흐르고 있다. 그가 바라는 것이 진정한 평화일까 아니면 미군철수를 통한 한국의 약화를 통해 핵보유국을 선언하고 있는 북한이 힘의 우위를 점하여 한국을 속국화 하거나 침략하려는 것일까. 김정은이 실제로 제주도를 방문하면 북한은 오히려 ‘백두 혈통’인 김정은이 ‘한라산 줄기’이기도 하다는 선전·선동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우리는 평화조약을 통해 평화가 지켜진 예가 없다는 세계 역사의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다. 힘의 균형과 우위를 통해 진정한 북한의 체제변화를 통한 평화의지를 끌어내야만 계속 우리는 제주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간다.

2019-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