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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선진국 싱가포르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싱가포르는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학회 관계로 싱가포르를 여러 번 다녀온 대학교수로 있는 친구가 내게 해준 말이다.몇 번 필자도 다녀오긴 했지만 지난주 싱가포르 국제회의에 가서 느낀 건 정말 싱가포르는 선진국이라는 느낌이 확연히 다가왔다. 선진국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교과서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틀림없고 정확한 회의 진행, 최신설비의 대학시설, 깨끗한 길거리와 지하철, 친절한 택시기사, 공원의 질서, 그리고 공항시설은 자동 출국수속을 밟도록 되어 있었다.미국 및 모든 공항에서는 노트북 컴퓨터를 가방에서 꺼내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싱가포르에서는 최신식 기계로 검색하기에 가방에서 꺼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싱가포르 공화국은 동남아시아, 말레이 반도의 끝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도시 국가이다. 북쪽의 조호르 해협과 남쪽의 싱가포르 해협을 두고 각각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약간 분리되어 있다.1819년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현 싱가포르 남부에 개발한 항구가 시초이다. 1960년대 말레이시아 연방의 일원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며, 말레이시아 연방 정부와의 다툼 끝에 결국 연방을 탈퇴하여 독립국가가 되었다.독립 당시 인구는 100만 명 정도였으나, 꾸준히 늘어 현재 500만 명이 넘었다. 20세기 후반에 초고속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 중 하나이다.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항구 도시이며, 정유시설과 금융 산업은 세계 최정상권이다. 지난 10년간 싱가포르의 경제 성장률은 15%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았고, 싱가포르 넓이의 500배에 달하는 옛 종주국인 말레이시아를 총 경제 규모로도 추월하였다.현재 1인당 명목 국민소득은 PPP(실질 구매력) 환산 6만 달러에 달하며, 1인당 외환보유고는 세계 최정상이다.사실 싱가포르의 면적은 692.7㎞로 한국의 서울보다 조금 넓고, 인구는 서울의 절반 정도이지만 인간개발지수는 전 세계에서 10위권이며, 아시아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싱가포르의 신설대학 SUTD(싱가포르 기술및 디자인 대학)을 둘러보았다. 이미 포스텍과는 자매결연이 되어 있는 대학이지만 창의적인 실험실과 도서실은 창의적인 디자인과 기술개발의 모범적 캠퍼스를 보여주었다.사실상 싱가포르 국립대(NUS)는 각종 조사에서 아시아 최고의 대학이다. 또 싱가포르의 난양공대 등 대부분의 대학들이 아시아 최상위권에 포진하고 있고 세계대학들과 경쟁하고 있다.싱가포르공항에서 자동화된 시스템을 통해 출국 수속을 밟으면서 얼마 전 다녀온 미얀마, 사우디 등이 떠올랐다. 광활한 국토와 석유자원의 사우디나 한국의 6배나 되는 넓이의 미얀마에서도 아직 후진국의 느낌을 받은 적이 있기에 싱가포르의 현대화된 시설과 도시의 모습 그리고 정교한 시스템은 가벼운 충격으로 다가왔다.한국이 가야할 길을 싱가포르는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부패 없는 사회, 깨끗한 도시와 거리, 질서 있는 사회 등은 바로 한국이 가야할 길이다.비행기로 인천공항을 거쳐 대구공항에 내려 택시를 탔을 때 달라진 거리 풍경과 엉키는 자동차, 무뚝뚝한 택시기사의 모습은 필자를 조금 우울하게 만들었다. 조금 전 보았던 싱가포르와는 다른 모습이었다.이제 우리도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야겠다. 선진국은 국민소득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다.

2018-04-05

옛것을 살리자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더운 나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게 되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 건설회사에서 일할 때 방문한 후 40년 만이다. 리야드가 행정도시라면 상업도시의 중심 젯다를 방문했다. 대학 관련 회의가 끝난 후 시간을 내어 젯다의 옛마을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젯다의 `올드타운`이라는 옛마을을 재 건축 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며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모습이었다.사우디는 국민소득이 한국과 비슷한 나라로 최근 풍부한 석유를 바탕으로 하는, 급격히 현대화 되고 있는 산유국이다. 거리, 유원지, 호텔 등을 돌아볼 때 현대화의 물결을 느낄 수 있었다. 급격히 발달하는 나라이지만 사우디는 국격으로는 한국에 뒤지는 나라이다. 그런데도 젯다의 옛마을은 비록 세련되게 보존은 하지 못했지만 옛모습 그대로 놔둔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었다.필자는 그런 젯다의 모습을 보면서 몇 년 전 KTX가 들어오며 사라진 포항역사를 떠올렸다. 우리보다 뒤떨어진 나라에서도 옛모습을 보존하는데 왜 우린 부수고 없애고 하는 것일까. 포항역사가 사라진 후 해병대 군인들, 포스코 직원들을 중심으로 포항시민의 회한이 깃들인 포항역사를 복원하고 싶다는 생각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고 한다.요즘도 필자는 옛 포항역사 앞을 지나가지도 않고 차를 그쪽으로 몰지도 않는다. 그 휑하니 뚫린 길을 보면서 휑하니 뚫린 심정을 느끼는 건 아마 포항시민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결국 부수어야 했을까. 포항 역사는 결국 부서졌다. 왜라는 질문을 해본다. “역사적 가치가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다.역사적 가치란 무엇인가. 반드시 건물이 고풍스럽고 멋있어야 하는가. 그냥 오랫동안 거기에 있던 건물이라면 그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다. 그 건물의 초석은 그 시대의 것이고 건축양식은 좋든 싫든 그 시절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건물과 함께한 시민들의 추억과 낭만이다. 눈물과 기쁨, 그리고 오랜 역사를 간직한 포항역이었다. 일제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해 해방과 함께 건축된 포항역사는 거의 100년 가까운 포항의 산증인이다.사실 이런 옛것 부수기는 포항만이 아니다. 어려서 서울서 자란 필자는 서울의 추억이 깃든 서울 단성사, 피카디리, 화신백화점, 중앙청(물론 일제 잔재라는 문제는 있지만) 등등 모두 사라지니까 어릴적 서울 살던 추억이 많이 사라졌다. 다니던 대학을 가보니 건물 두개 정도 문화재로 보관되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옛 동독의 도시 드레스덴에는 아주 유명한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가 있다. 이 교회는 300년 전 지어졌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드레스덴 시민들은 언젠가 재건축 될 것을 생각하며 무너진 프라우엔 교회의 돌들에 번호를 매겨 보관했고, 독일 태생의 한 과학자가 노벨상 수상기금을 모두 기부해 어린 시절 프라우엔 교회의 기억을 되살리며 10여 년 전 완전 재건축에 성공했다고 한다. 지금 그 교회는 드레스덴과 드레스덴 시민의 자부심이 되고 있다.전쟁으로 파괴된 건물도 원형 그대로 다시 신축 보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치욕의 역사들도 후세들을 위해 보존하는 것이 유럽 각국의 모습이다.이제 무언가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을 것 같다. 포항역사 복원운동 시민위원회를 만들어 마음을 모으고 지속적 캠페인을 통해 추진하고, 그리고 포항시의 협조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포항역사 안에는 해병역사관이나 포스코, 포항역사관이 함께 해도 좋다. 곧 지방선거가 다가오는데 선거공약으로 시장 후보자들에 포항역사 복원을 제안하고 싶다. 후세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포항역사의 복구와 그 포항역사의 로터리를 휘감는 차량의 행렬을 생각하면 정말 신이 난다.

2018-03-28

스티븐 호킹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한 과학자의 빈소에 과학을 좋아하고 과학을 하고 싶어 하는 중고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들의 얼굴은 명복을 비는 마음과 함께 위대한 과학자의 길을 함께 걷겠다는 미래의 희망으로 가득차 있는 듯 했다. 지난주 과학계의 큰 별 하나가 졌다.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자 또는 물리학자를 꼽으라면 단연 아인슈타인이 선택될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유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누굴 꼽을 수 있을까?많은 과학자들은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스티븐 호킹을 꼽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천재적인 물리학자”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다닌다. 그런데 그는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조차 할 수 없는 핸디캡이 있는 과학자이다. 그는 과학자들에게 상대성 이론과 우주론에 대한 독창적인 업적으로 유명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루게릭병으로 뒤틀어진 외모로 더 유명하다.그는 옥스퍼드 대학 재학 시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병과 투쟁을 해서 병마를 이겨 냈고, 읽고, 말하고, 쓰는 것이 다 어려운 상태에서 이론 물리학의 중요한 업적들을 출판했다. 그의 대중적인 책 `시간의 역사`는 전 세계적으로 1천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이다.호킹은 이론 물리학 분야의 아이콘(icon)의 역할을 하고 있다.그는 20대 초반 학생 시절인 1964년 공개강연에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인 프레드 호일의 이론에 도전하면서 블랙홀에 적용되던 특이점을 우주 전체에 적용해서, 우주가 팽창하고 일반 상대성 이론이 참이라면 이 우주 전체가 하나의 특이점에서 탄생해야 한다는 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했다.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지만 이는 호킹의 이런 연구의 기반이 되었고, 그의 빅뱅 이론과 블랙홀 이론의 출발점이 되었다.호킹은 1975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1979년에 명예로운 루카스(Lucas)좌 석좌교수가 되었다. 이 자리는 뉴턴을 비롯해서 쟁쟁한 수학자, 물리학자들이 거쳐 간 자리였다.호킹은 계속 저술을 출판했고, 전 세계를 돌면서 강연을 했다.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는 2008년에는 “우주의 광활함을 고려했을 때, 우주 어딘가에 원시적인 형태의 외계인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며, 지적 생명체의 존재 또한 가능하다”고 했으며, 2015년에는 인간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의 개발은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디지스트, 포스텍을 비롯한 국내 5개의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에는 그의 떠남을 애도하는 빈소가 설치되기를 소망하면서, 필자는 필자가 현재 근무하는 디지스트의 호킹 빈소를 찾았다.빈소는 캠브리지 유학시절 호킹 박사를 따르고 그와 절친하게 지냈던 디지스트의 교수가 직접 설치하여 학생들이 잘 드나들 수 있는 길목에 세워졌다.교수, 학생들이 찾기도 했지만 중고교생들의 방문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교장 선생님의 인솔로 빈소를 찾은 과학을 열망하는 인근 중고교의 학생들의 얼굴엔 슬픔보다는 그의 학문적 열정을 따르겠다는 각오가 보이는 듯 했다.그들이 호킹 박사의 일대기를 듣고 동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은 여느 청소년들과는 다른 진지한 모습이었다.그 어떤 노벨상 수상자보다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호킹 박사 이론은 직접 실험적인 검증이 불가능한 것들이 많아서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다고 한다.그의 빈소를 찾은 한국의 청소년들의 얼굴에서 미래의 노벨상도 그리고 호킹 박사 같은 위대한 업적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 필자의 마음은 들뜨고 있었다.그들의 희망찬 마음을 아는지 봄을 알리는 캠퍼스의 목련이 꽃망울을 가득 품고 있었다.

2018-03-22

대학의 실험과 도전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유난히 추웠던 겨울은 이제 훈훈한 바람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꽃망울이 맺히는 계절, 국내 대학들의 실험과 도전에 대한 소식이 주목을 끌고 있다.사실상 학생들과 교수들이 전세계 어디든지 필요에 따라 이동하는 고등교육의 글로벌화는 전통적인 사고만으로 대학을 운영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최근 연세대와 포스텍(포항공대)이 공동학위제, 디지스트(대구경북과기원)의 융복합 학위제가 바로 그러한 대학들의 실험과 도전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최근 뉴스는 포스텍과 연세대가 두 학교 간 공동캠퍼스 구축을 통한 파격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고 전한다.두 대학은 학점과 강의를 전면 공유하며 궁극적으로 공동 학위를 추진하기로 하고, 구체적으로는 집중 강의제도, 단기교육과정 인증제도, 모듈식 교과 등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 또한 공동으로 개발 도입한다고 한다.교수·연구·산학협력 등 전방위에 걸쳐 양 대학이 가진 브레인·정보·시설 등 모든 자원을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공동연구에 참여하는 양교 교수를 상호겸직교수로 임용하고 리서치 센터, 실험실, MOOC(온라인 공개수업)에 기반한 교육플랫폼 등 연구자원을 공유해 세계 최고수준의 연구팀과 시설을 조성하기로 한다고 한다.구체적으로는 바이오메디컬·미래 도시 등 2개 분야에서 공동 연구를 추진하고, 이 연구에 참여하는 대학원생에겐 양 대학에서 학위를 준다고 한다. 두 대학 학부생들이 방학에 상대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계절학기를 듣는 `집중 강의제`도 도입된다.매우 파격적이고 신선하다. 신선함을 넘어 충격도 느껴진다.이러한 충격은 포항과 지근거리의 대구에 있는 디지스트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디지스트의 무학과 단일학부제 실험은 이제 융복합 국제 세미나, 전시회 및 세계적인 학술지 `Nature`와 대학평가 기관들과의 공동 국제회의 개최 기획 등을 통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고 있다.디지스트의 융복합 교육을 위한 무학과 단일학부제 도입은 2014학년도부터 국내 처음이었다. 급변하는 지식주도형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면 특정 학문에만 치우치지 않고 기초과학지식이 탄탄한 융복합 인재의 필요성을 절감해서이다.이후 국내 다른 대학들도 부분적으로 무학과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포스텍은 올해 처음으로 신입생들이 `무학과` 선발 원칙에 따라 학과를 정하지 않고 입학했다. 창의융합적 사고를 기르고 경험적 교육을 하기 위해 무학과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빅데이터,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로봇 등 첨단과학기술이 산업과 융합해 사회 전반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문제를 만들어 해결하는 창의적인 사람, 새로운 것에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을 즐기는 사람, 사람들과 협력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인재가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스트와 포스텍의 실험은 이러한 시대적 사명에 맞춰 기초가 탄탄한 융복합 인재를 양성하는데 앞장서고 있다고 판단한데 기인한다.또한 디지스트의 융복합 개념은 포스텍-연대가 추구하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공유캠퍼스를 통한 폭넓은 창의적 인재 양성의 계획과 맥을 같이한다.미래사회의 문제해결에 적극 참여해나가며 4차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창의적 리더를 양성하는 것으로 대학의 시대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융복합적 사고와 교육, 그리고 대학 간 경계를 허무는 것은 중요하다.한국대학들의 이러한 파격적인 실험과 도전의 결과가 주목된다.한국의 대학들은 기존의 관념을 넘어서는 교육과 연구의 모델을 통해 세계에 도전해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최근 포스텍-연대의 연대와 디지스트의 융복합 교육모델의 실험과 도전이 성공하길 기대해 본다.

2018-03-15

정년 퇴임하는 교수들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함께 생을 살아온 친구 교수들이 한창 은퇴로 바쁜 나날이다. 금년 겨울, 많은 친구들이 대학에서 정년퇴임 했다.교수들은 65년 대부분 인생을 학교에서 보냈다. 6살 유치원에 들어간 후 대학원, 유학까지 30여 년 학교를 다니고, 그리고 대학에서 또 30여 년 강단에 선 친구들이 대부분이다.이제 캠퍼스를 떠나 바깥사회로 나가는 것이 많은 감회를 주고 있는 것인지 그들의 글을 읽으면 코끝이 시큰해진다.학교 마지막날 출근길에서 친구 교수들은 독백한다.“어제는 봄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특별한 볼일 없이 학교에 들렀다. 왠지 `교수로서 마지막 날을 학교에서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라는 생각 때문인가? 공식적인 정년퇴임식을 갖고, 곧 바로 연구실을 정리했다. 후배 교수들과 연구실 제자들이 마련한 고별강연을 마치고 오늘부터 진정한 백수(?)가 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지난 세월 석박사 제자들이 함께 지냈던 학생연구실을 둘러보았다”퇴임 교수들에게 마지막 학기, 마지막 강의, 마지막 지도학생 등 `마지막`이란 단어는 만감을 교차케 한다. `고별강연`이라는 행사가 있다. 그 교수가 전공한 분야에 대한 마지막 강연을 캠퍼스에서 학생, 교수, 직원들을 상대로 하는 강연이다. 그 강연은 전공강연으로 끝을 맺지 못한다. 그가 걸어온 인생을 반추하는 시간으로 끝을 맺게 된다. 그들의 눈가는 젖고 희끗희끗한 머리는 강연을 듣는 제자들의 검은 머리와 대비된다. 내가 살아온 길은 만족스러웠는가? 만감이 교차한다. 낯설고 물선 해외유학의 시간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김포공항을 떠날 때 가졌던 결심들, 그리고 처음 외국 땅에 발을 디딜 때 느꼈던 호기심과 약간의 두려움들. 어설픈 영어와 문화가 다른 환경에 적응했던 수많은 시간들. 그런 시간들을 지내고 학위를 받고 귀국하고 또 다른 환경에 적응하려 애쓴다. 교수 생활도 일반 회사생활보다는 덜 할지 모르지만 동료 교수, 학계, 제자들 프로젝트로 만난 기업인들, 공무원들, 커뮤니티 사람들, 이런저런 사람들과 부딪히며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난다.“언제나 삶은 서툴 수 밖에 없다. 교수생활도 항상 서툴다. 좀 더 마음과 감성과 지식을 새롭게 성장시키려 했던 나날인 듯하다. 알게 모르게 함께 한 사람들을 기쁘게도 했겠지만, 또한 알게 모르게 많은 실수를 하고, 사람들을 섭섭하게도 했을 것이다. 그동안 수없이 많았을 저의 서툰 삶을 관대하게 포용해 주시길 기원해 본다”그리고 퇴임식, 필자도 미국서 귀국해서 퇴임하는 아빠를 위해 퇴임식에서 연주를 해준 아이들이 너무 고마웠고 자랑스러웠다. 함께 60여 평생을 걸어온 배우자에 대한 고마움도 예외는 아니다. 초등학교 동창부터 대학원 동창에 이르기까지 참석해서 회고담을 해준 친구들을 생각할 때 또 하늘에서 내려다 봐 주실 부모님을 생각할 때 그 감회는 남다르다.그들은 가족들에게 고마워 한다. 그들은 성숙한 제자들이 자랑스럽다. 함께 걸어온 동료와 후배 교수들을 보며 감회에 젖는다.떠나면서 강의실, 실험실, 책상, 걸상 그리고 캠퍼스의 구석구석을 돌아본다.“수많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사랑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계단강의실이 2개일 때 한번 더 사용하려고 시작 시간을 30분 당겨 점심시간 까지 강의하도록 했었는데 이젠 계단 강의실이 수없이 많네요. 캠퍼스를 끝없이 돌다 자리를 마련한 농구장, 그리고 아뜨리움 피아노와 지도교수로서 창립한 주크박스도 영원하길….”포스텍 캠퍼스에는 길마다 길이름 표지판이 있다. 학생회관에는 만국기가 휘날린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길을 걸으며 그리고 세계적 인재를 꿈꾸는 새내기 인재를 만날 때마다 그 표지판과 만국기를 걸던 순간이 떠오른다. 같은 마음이다. “영원하길….”

2018-03-08

평창올림픽의 강소국들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평창의 성화는 꺼졌다. 역대 동계올림픽 중 가장 멋진 올림픽이었다는 평가가 꽤 많다.“한국은 6위인가 7위인가?” 하는 퀴즈가 요즘 한창 유행이다.금메달 5개로 총메달 17개인 한국은 금메달 순위로 종합순위 7위이지만 전체메달 순으로는 종합 6위가 되기 때문이다.이번 한국이 획득한 메달수는 역대 최다 메달 획득으로 금메달 6개 총메달 14개로 종합 5위였던 2010년 밴쿠버의 랭킹에는 다소 못미치지만 금메달 3개 총 메달 8개로 종합 13위였던 2014년 소치때 보다는 압도적으로 상승한 랭킹을 보여 주었다.현재까지 한국은 92년 프랑스 알베르빌에서 최초로 동계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후 계속 동계올림픽 솔트레이크와 소치만 빼고는 모두 10위 이내에 드는 쾌거를 보여 주고 있다. 사실 소치는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트 연패를 막는 등 러시아의 텃세가 심했고, 솔트레이크는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김동성이 금메달 날치기 당한 올림픽인데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진행된 모든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은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이번 평창대회에서 국토사이즈가 작은 강소국의 활약이 대단해 보인다.네덜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같은 한국보다 국토와 인구가 더 적은 나라들이 모두 톱10에 올랐다.이번에 1위를 한 노르웨이는 인구는 작지만 국토가 넓고 겨울이 길어 동계스포츠가 주종목인 나라이다.그러나 위에 언급한 나라들은 한국과 함께 동계하계 올림픽의 성과가 모두 균형을 이룬 강소국들이다.한국이 강소국이라고 하면 반발하는 분들이 있다. 왜 한국이 작은 나라인가라는 반문인데 여기서 `소`란 국토면적이 세계 100위도 안 되고 인구로도 27위인 나라이니까 작다는 뜻이지 국력이 작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여기 언급한 강소국 4형제 국가의 공통점은 세계적인 기업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기업들이 그 분야의 대표성을 띄고 있다.네덜란드 필립스와 쉘, 스위스의 네슬과 로렉스, 오스트리아의 도펠마이어와 로젠바워들이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들이다. 물론 한국에는 삼성, LG, 현대, 기아 등의 세계적 브랜드가 있다.이들은 국가의 사이즈에 비하면 엄청난 제조업의 힘을 갖고 있다.현대의 국가의 힘은 면적이나 인구숫자에 상관없이 얼마나 세계로 뻗어나가는가 하는 버츄얼(virtual) 개념으로 결정된다. 미국의 한 개 주 보다 더 작은 이러한 강소국의 위력은 버츄얼 개념으로 설명된다. 한국이 기술력과 경제력, 그리고 빠르게 진행되는 국제화로 강소국으로 부각되는 것은 이미 앞서간 이러한 국가들의 전철을 밟고 이미 뛰어넘고 있다.근대 올림픽 창시자인 쿠베르탱 남작은 “올림픽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고 참가”라고 했다지만, 실제로 국제사회의 관심은 어느 국가가 메달을 많이 따느냐에 있는 것도 사실이고, 메달 숫자는 국력과 경제력의 척도임은 틀림없다.매건 버시 미국 버클리대 교수는 “수십년간 올림픽 성적을 분석한 결과 국가별 성적에 가장 영향을 미친 변수는 1인당 국내 총생산(GDP)” 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역대 금메달 최다 순위는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라고 하며 중국, 일본이 그 뒤를 따르고 한국이 이들을 위협하고 있고 위에 언급한 강소국 4형제의 도전도 대단하다.이제 한국은 스포츠 강국인 것이 틀림없다. 경제순위 12위, 무역순위 8위인 한국은 이제 동계 하계 스포츠마저 10위권에 들면서 명실공히 세계 10위권의 국가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여정에서 강소국 경제는 네덜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경제, 사회, 정치, 과학, 교육 등의 시스템을 잘 연구하여 계속 한국의 발전을 위해 참고하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2018-02-28

지역과 함께 하는 대학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지역대학은 지역의 사랑을 받으며 전국으로 또는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 최근 지역 대학들(필자는 개인적으로 `지방대학`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의 움직임에서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신선하다.1980년 필자가 미국 유학길에 오를 때 일본 도쿄 나리타 공항에서 비행기를 바꾸어 타야 했다.처음으로 미국에 가는 설레임 속에 비행기를 타려고 줄을 서있는데 내 뒤에 서있던 미국인이 물었다. “왜 미국에 가는가 ?”그후 이 미국인과의 대화는 이렇다.“왜 미국에 가는가?” “유학 간다”“어디로 가는가 ?” “스탠퍼드로 간다”“오, 팔로알토 !” “노, 팔로알토가 아니라 스탠퍼드”그 미국인은 웃고 있었다. 필자는 그가 왜 웃는지 몰랐다. 팔로알토(Palo Alto)가 스탠퍼드 대학이 있는 동네 이름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이들은 대학이름을 떠올릴 때 동네이름을 떠올리는 것이 보편적이다.물론 스탠퍼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를 세운 것은 지역을 사랑한 명문대학의 노력이고 또한 그 실리콘밸리는 그 지역의 자존심이 되었다.또 이런 일화도 있다.1994년 포스텍이 최고경영자과정(PAMTIP)을 만들 때 반대가 꽤 심했다. 연구중심대학이 그러한 대중적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코드가 맞느냐는 논쟁이었다.사실 미국 최고봉의 공과대학 MIT는 최고경영자 과정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그러한 과정들이 오히려 지역을 사랑하고 공헌하는 대학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30여 년 전 포스텍이 설립되었을 때 지역민들은 지역 최초 4년제 대학설립에 설레면서도 입학이 어려운 포스텍에 대해 큰 거리감을 느꼈던 터였다. 그렇기에 최고경영자 과정의 설치는 신선하게 다가왔다.현재 포스텍의 PAMTIP은 24년의 역사와 1천명이 넘는 지역 졸업생들이 전국에 퍼지면서 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인 대학의 큰 자산이며 네트워크가 되고 있다. 필자는 10년간 PAMTIP 주임교수를 역임했는데 “국내 최장수 최고경영자과정 주임교수”라는 농담을 하곤 한다.최근에 대구 테크노파크에서 하나의 퍼레이드로 큰 화제가 있었다.디지스트(DGIST, 대구경북과기원)가 올해 첫 학부 졸업생을 내면서 학교 구성원들과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대학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졸업 퍼레이드를 개최했다고 한다. 대학이 위치한 대구 달성군 현풍면, 유가면 일대에서 중고교 졸업생들과 재학생, 교직원, 지역주민 등이 참여한 가운데 디지스트 교수, 졸업생이 한 줄로 걸어가는 모습은 지역과 함께하는 대학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전국적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페이스북에 소식을 올려봤는데 반응이 폭발적이고 최근 정부주관 과학기술대학 회의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이런 졸업식 퍼레이드가 외화내빈인 한국 대학의 졸업식을 풍성하게 만들고 커뮤니티와 대학이 어울리는 잔치로 계속 확장되었으면 한다.졸업 퍼레이드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실시해왔다. 졸업식이 벌어지는 날 시내 퍼레이드 풍경은 장관을 이룬다. 그 도시의 중심 거리를 교통경찰 지원을 받아서 졸업생들이 당당히 걸어가는 모습과 이를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대학과 시민이 하나가 되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영국의 대학가 풍경이다.한국에서 지역대학을 육성하는 것은 지역대학들이 지역과 함께 호흡하면서 지역의 사랑 속에 전국으로 세계로 도약하는 것이다. 지역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서울로 몰리는 대학 인구를 지역으로 분산하고 각 지역의 대학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각개약진을 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2018-02-22

중국의 힘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신흥도시 선전(심천)에 왔다. 이곳은 홍콩 접경 지역으로 겨울에 쌀쌀하지만 영하로 내려가지는 않는 곳이다. 중국의 오래된 큰 도시 베이징, 톈진, 상하이 등은 회의차 다녀온 적이 몇 번 있지만, 홍콩에서 가깝다는 신흥도시 선전은 항상 호기심의 대상이었다.호텔 TV는 평창올림픽 예고로 시끄러운 가운데, 이곳에서 영국 타임즈가 개최하는 아시아 대학 회의가 있었다. 아시아 대학 총장 및 관계자들이 모여서 함께 대학발전 전략을 논의하고 아시아 대학 랭킹을 발표하기도 한다.이런 모임이 수 년 전부터 시작됐는데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300명 정도로 참가자를 일찍 마감했다고 한다.도대체 사람들의 호기심을 끈 선전은 어떤 도시이고 왜 여기서 중국의 힘을 느끼게 할까? 역사적으로 선전은 중국 내에서 그리 비중 있는 지역으로 주목받지는 못했으며 근대에 들어서도 홍콩과 마카오를 출입하며 주로 농산물을 거래하는 국경 거점지역으로만 역할을 했다.그러나 1980년 덩샤오핑의 개방 정책에 따라 중국에서 제일 먼저 경제특구로 지정되면서 변모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영국으로부터 홍콩과 마카오를 반환받으면서 정책적으로 근거리의 선전을 신흥 산업도시로 육성하기 위한 중국의 정책적 배려에서 나온 것이었다.회의 기간 중 들러본 선전에 본사를 둔 텐센트(Tencent)라는 회사의 웅장한 모습이 중국의 힘을 느끼게 했다.텐센트는 1998년 선전에 설립된 인터넷 서비스 제공 업체다. 실시간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QQ를 개발 출시해 단번에 중국시장을 장악하고, 이 메신저는 텐센트의 대표적 사업 기반이 됐다.본사 복도에는 중국내 QQ의 동시 사용자의 숫자가 표시되는데 2억이 넘는 동시 사용자 숫자가 텐센트의 위용을 느끼게 했다. 메신저를 포함해 온라인 및 모바일 네트워크에서 포털, 게임,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가가치 서비스 사업이 전체 매출의 76%를 차지한다고 한다.텐센트는 QQ 이외에도 메신저인 위챗(WeChat), 개인맞춤형 멀티미디어 제공 서비스인 큐존(Qzone) 등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를 가지고 세계적 인터넷 거인으로 자라고 있다.이날 발표된 아시아 랭킹에서 중국대학들은 일본 대학들을 누르고 싱가포르국립대에 이어 칭화대 2위, 베이징대가 3위를 차지했다. 중국 C9 연구 중심 대학들의 논문의 숫자나 인용수는 이미 일본의 연구중심대학 R11을 누르고 미국이나 영국의 연구중심대학들에 접근한다는 통계를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머무르는 호텔이나 호텔 지하의 백화점을 찾았을 때 그 웅장함과 청결함도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이 더 이상 아니었다.작년 중국 선전 하이테크 박람회가 선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가운데,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유망한 국내 기업 14개사와 함께 문화기술(CT) 공동관을 구성해 참가했다고 한다. 선전의 한국기업의 진출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미국에 한국 교포가 300만을 넘어서면서 미국이 한국 바깥에서 가장 한국의 경제성장을 끌어가는 한국의 연장선의 국토가 되고 있지만 중국 시장이 이 정도로 성장한다면 중국도 선전을 중심으로 이제 연장선의 국토로 키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더구나 중국은 이번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차기 동계올림픽 주최국이다. 한국에 이어 중국이 바통을 넘겨 받는 것도 의미 있는 인연으로 보인다.중국은 아직도 정치적으로 북한과 한국 사이에서 애매한 입장을 취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정리되지 않은 국가이다. 적어도 한국에게는 그렇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적 애매함을 경제까지 적용되지 않도록 대 중국 운영의 묘를 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2018-02-08

정현 신드롬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한국 테니스계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정현이라는 21세 어린 선수가 테니스의 메이저 대회라는 그랜드슬램 토너먼트(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미국오픈)인 호주오픈에서 본선 4강까지 가는 기염을 토했다.4강까지 가는 길에서 세계 4위 즈베레프, 전 세계 1위 조코비치 등을 이기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조코비치는 세계 랭킹이 10위 밖으로 떨어졌지만 작년까지 5년간 세계 1위를 기록하면서 나달, 페더러와 함께 세계 테니스를 끌어오던 초특급 스타였다.사실 정현은 이에 앞서 ATP 투어인 21세 이하 유망주들의 결전인 `넥스트 제너레이션`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이미 자신을 알렸다. 그러나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이런 쾌거를 이룰 것이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한국 그랜드슬램 최고 기록은 여자 이덕희 선수, 남자 이형택 선수가 세운 16강이 최고였다.정현은 랭킹 세계 29위로 뛰어오르며, 이형택 선수가 2007년 기록한 36위를 10년 만에 뛰어넘었다. 그것도 21세의 어린 나이에 이룩한 것이다. 사실상 한국 테니스의 모든 기록을 갱신했다.돌이켜 보면 한국은 그동안 불가능으로 여겼던 여러 스포츠 종목에서 결국 금메달을 따내면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왔다. 골프 박세리, 수영 박태환, 피겨스케이팅 김연아가 그 대표적 예이다.그러나 마지막 남은 테니스는 정복이 안 된다는 절망이 있어왔다. 기업들의 스폰을 받으려고 하면 돌아오는 답은 “테니스는 안 된다”라는 것이었다.20여년 전 엘리트 테니스 아카데미 `STA 아카데미`를 국내 최초로 포항에 창설한 필자는 `한국 테니스는 왜 안 될까? J 선수의 교훈`이란 신문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이 칼럼은 지금도 테니스 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는데 1994년 16세의 나이로 윔블던 주니어(18세)부에서 준우승을 한 선수를 예로 든 것이었다.당시 결승에서 맞붙었던 힝기스는 바로 프로로 전향, 수많은 프로 대회에 참가해 경쟁력을 쌓았고 미국 닉볼리티에르 아카데미 등 유명 클럽에서 다양한 상대와 훈련하며 야생의 쌈닭으로 성장했고 결국 세계 1위로 성장했다. 반면 우리 선수는 당시 계속 주니어 대회를 맴돌고 한명의 코치와 지루하게 공을 치고 연습하면서 점점 힘없는 집닭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두 개의 교훈을 배웠다.첫째, 우리는 주니어 경기에 너무 집착했다. 테니스는 다양하고 강한 상대와 시합을 하면서 성장하는 것이기에 좀 더 강한 경쟁을 해야 한다. 끊임없는 동기 부여와 자극이 선수들을 계속 높은 랭킹으로 올라갈 수 있게 하고 머물러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둘째, 한 명의 코치와 연습하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다고 선수는 회고했다. 테니스는 고립 상태에서 절대 실력이 늘지 않는다. 다양한 상대와 연습해야만 실력이 늘 수 있다. 테니스는 상대에 의해 실력이 늘어가는 경기이다.정현 선수는 사실 돌아보면 갑자기 나온 스타는 아니다. 위에 지적된 문제를 그는 나름 극복했다. 그를 지원한 삼성이 팀을 해체하고 선수에게 자유를 주면서 금전적 후원만 한 것도 잘한 것으로 보여진다.그는 해외 경기를 돌면서 다양한 상대와 경기를 하면서 야생마로 자라났고 어려서 미국 테니스 명문교 닉볼리티에르에 유학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훈련했다.한국의 모든 분야, 특히 기술 과학 분야도 이런 방식을 따라야 한다.기술 과학 분야도 오픈된 경쟁 속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야생마처럼 자랴야만 우리가 그리도 목메는 노벨상도 탈 수 있을 것이다.정현이 국민에게 준 희망과 교훈이 한국의 모든 분야에 교훈을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2018-02-01

평창의 북한팀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한국은 이제 3관왕이다. 월드컵, 하계올림픽,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국가를 `3관왕`이라고 부른다면 전 세계에 이런 국가의 숫자는 불과 6개국 뿐이라고 한다. 월드컵은 종합 스포츠 축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하계동계 올림픽 동시 개최국도 전 세계 8개국에 불과하다. 스포츠 강국 한국이 자랑스럽다.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한다고 한다. 북한이 유일하게 예선을 통과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자격을 가진 종목은 피겨 남녀 페어 뿐이었고 이들도 엔트리 마감 기한은 넘겼다.그러나 한국 정부와 IOC의 배려로 이번 동계올림픽에 북한은 5개 종목 22명의 선수와 함께 수백 명 임원진과 응원단도 함께 참가한다. 의논 중이지만 고위관리, 참관단이 함께 온다고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입장식에서 한반도 기를 사용하고, 여자 아이스하키 팀은 남북한 단일팀을 꾸린다.이에 대한 찬반 토론이 만만치 않다. 특히 단일팀 논란은 현 정부 지지층인 20, 30대의 저항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고 있고 정부가 수세적인 모양새를 보여왔다. 야당은 “평양 올림픽”이라고 부르며 “너무 양보한 것이며 굴욕적”이라고 공격하고 있다.정부가 이에 대해 최근 적극적 공세로 전환한 듯한 모양새다. 20, 30대의 반응을 예상치 못했다며 반성을 언급했던 청와대가 하루 만에 보수야당의 `평양올림픽` 이념 공세에는 적극 대응하고 나섰다. 청와대 대변인은 “평창동계올림픽은 한반도 평화를 넘어 동북아·세계의 평화를 앞당길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평창 올림픽은 평화 올림픽”이라며 “여기에 `평양 올림픽`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보수야당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사실 전에도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도 있었고 한반도기 입장도 있었다.아마 중요한 차이는 현 정부의 북한 관용 정책의 정도에 있다는 것이 일반인의 시각이다. 북한은 보도에서 평창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참가로 실패에 가까운 평창올림픽을 살려줬다고 내외신에 선전하고 있다. 더구나 개막일 전날 대규모 군사 훈련을 한다고 한다.반면 한국은 태영호 전 영국공사를 포함한 주요 탈북민들에게 발언 자제를 요구했다. 이런 상황이 어떻게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질지 우려가 된다.평화는 중요하다. 그러나 국민의 자존심을 지키는 평화가 유지되어야 한다. 상대방의 전술에 넘어가는 평화는 한시적일 뿐이다. 북한은 한국전쟁을 일으켰고, 지난 60여 년간 단 한번도 남한 적화야욕을 포기한 적이 없다. 121 공비침투, 울진삼척 공비침투, 판문점 도끼만행, 아웅산 테러, 88올림픽 항공기 폭파, 연평도 포격, 천안함 침몰 등 끊임없는 도발을 해왔다.그렇기에 북한의 평화공세가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일시적 전술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남북한 단일팀은 민족화해의 상징일 수 있다. 또한 한반도 기를 들고 입장하는 것도 의미있는 화해의 장 일 수도 있다. 과거에도 있었기에 또 한다고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핵무기의 끊임없는 개발로 세계 안전을 위협하는 북한과 상대하는 순간이다. 과거와는 다른 상황이다.그들이 진정 평화를 원하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면 남북단일팀이나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자칫 정치적인 전시효과로 보여질 수 있다. 북한이 진정성 있는 자세로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길 바란다. 그것만이 북한도 살길이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남북한이 함께 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누구든 원한다. 그렇기에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북한을 대하는 방식도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 국민으로서 서러운 마음의 소원이다.

2018-01-25

영어교육, 자율에 맡겨야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연초 미국 출장 중 삼성전자가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새로 짓고 있는 뉴베리 공장에 들렀다. 연구개발 제휴 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해 들르면서 그곳에서 근무하는 막내아이를 만났고 흥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모든 회의에 자기가 들어가서 통역이나 번역을 도와주고 있는데 미국 측 건축회사가 자기들끼리 비밀리 주고받는 소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삼성전자 측이 협상이나 협력에서 상당히 유리해져서 회사가 매우 고마워 한다는 것인데, 사실 필자는 이미 그런 유사한 경험을 했었다.90년대 환동해연구회를 일본, 중국, 러시아 등과 조직했었는데 국제회의 때 4개 국어가 난무하면서 영어를 공통언어로 지정하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회의를 장악하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언어 구사력이 그 국가의 이익을 가장 크게 보호하고 대변할 수 있었다.교육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전국 5만여 개 유치원·어린이집의 방과 후 영어 수업 금지 방침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한다. `수업 금지→금지 여부 미확정→시행 시기 미확정`으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학부모의 강력 반발이 이어지자 금지 여부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교육부는 16일 “유아 방과 후 수업을 금지하면 사교육 부담과 영어 교육 격차가 늘어난다는 등 국민의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이기로 했다”면서 “다양한 국민 의견을 수렴해 유치원 방과 후 과정 운영 기준을 내년 초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의 규제가 한국교육을 망친다는 이야기는 이제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지만 도대체 왜 영어교육까지 교육부가 규제하려 드는가? 교육부는 “유치원·어린이집 영어 방과 후 수업이 지나치게 학습 위주로 운영돼 금지하겠다”고 했는데 방법에 문제가 있으면 방법을 고치면 되지 교육 자체를 금지하는 건 지금의 국제적 추세와 학부모의 열망을 너무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실제로 학부모들 사이에선 당장 “우리 아이는 노래를 통해 재미있게 영어를 배우는데, 왜 자꾸 학습이라고 하느냐. 공감이 안 된다”는 불만이 나왔다고 한다.교육부는 “영어 방과 후 금지 정책을 재검토하겠다”면서도 “조기 영어교육을 지양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영어는 어려서 노출이 돼야 한다.언어감각은 보통 12세 이전에 완성된다고 한다. 모국어 발달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영어의 조기 노출만으로도 외국어 감각이 발달될 수 있다.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 LG, 현대와 같은 기업은 세계 어디서나 그 제품을 볼 수 있는 기업인데, 영어는 그들의 기업 운영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영어가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포스코 회장들은 세계철강협회 회장으로 종종 활약하는데, 늘 영어구사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다양한 언어습득은 두뇌에 언어구사 장치를 만드는데 있다. 이 장치들은 병렬로 연결돼 있어야 하며, 직렬로 연결돼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번역하려면 이미 늦다. 영어로 들으면 영어로 대답하고, 한국어로 들으면 한국어로 대답하는 두 개의 장치가 병렬로 있어야 한다.이러한 두 개의 병렬장치 발달은 어려서 외국어에 노출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언어학의 기본이다. 세계화로 인해 기업, 교육, 문화, 경제, 외교 모든 분야에서 세계와 교류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이 시점에서, 강소국을 지향하는 한국으로서는 반드시 영어에 노출이 되어야 한다. 필자가 미국대학 교수 시절 어려서 영어에 조기 노출되지 못했던 아쉬움으로 안타까워 했던 시간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반복 되어서는 안 된다. 영어교육, 자율에 맡겨야 한다.

2018-01-18

대학 졸업식 퍼레이드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이제 곧 대학의 졸업식 시즌이 시작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대학 졸업식은 꽃다발 들고 사진 찍는 행사로 변질되고 있다. 심지어 행사장에 들어가지도 않고 바깥에서 사진만 찍고 가는 졸업생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언젠가 서울 유명 대학의 졸업식에 참석했는데 학부 졸업생들은 아예 바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사진만 찍고 있고 행사장엔 대학원 졸업생들만 앉아있는 진풍경을 본 적이 있다. 대학 졸업식이 아니라 대학원 졸업식이었다.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평소 행동과 태도가 거침이 없기로 유명한 미국 대학생들의 졸업식은 질서 정연하기로 유명하다는 사실이다. 3시간을 넘어서는 졸업식에서 학생들이 질서정연히 앉아 있는 광경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자유분방한 미국 젊은이들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매우 이채로운 풍경이다. 최근 포스텍이나 디지스트 같은 과학 특성화 대학의 졸업식은 미국 졸업식에 가까울 정도로 질서 정연하지만 몇 년 전 포스텍에서도 에피소드는 있었다.졸업식이 예상 밖으로 너무 길어지면서 졸업생들이 하나 둘 자리를 이탈해 바깥에서 가족들과 사진을 찍는 모습이 연출되고 기차 시간에 맞춰 학교를 떠나기도 했던 것이다. 졸업식 자리가 듬성듬성 비는 상황이 벌어지고 급기야 단상에 참석한 중요한 귀빈 한 분이 화를 내면서 단상을 내려오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후 포스텍은 졸업식 시작 시간을 앞당기고 여러 가지가 개선돼 다시 질서 정연한 졸업식으로 변신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대학졸업식 퍼레이드를 기획하고 있는 대학이 있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오는 2월 졸업식을 갖는 한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학위를 받은 한 교수의 아이디어로 졸업식 퍼레이드를 기획했고 곧 실천될 단계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한국 대학에서 졸업식 퍼레이드를 하면 어떨까하는 기대를 가졌던 필자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이런 졸업식 퍼레이드가 외화내빈인 한국의 대학 졸업식을 풍성하게 만들고 커뮤니티와 대학이 어울리는 잔치로 벌어지길 기대하는 마음이 가득하다.영국 케임브리지대학, 호주 RMIT대학 등은 졸업식 퍼레이드로 유명하다.졸업식이 벌어지는 날 시내 퍼레이드 풍경은 장관을 이룬다. 그 도시의 제일 중심이 되는 거리를 교통경찰 지원을 받아서 졸업생들이 당당히 걸어가는 모습과 이를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대학과 시민이 하나가 되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어떤 대학들은 졸업 시즌이면 거의 아침마다 퍼레이드가 있는데 이는 졸업식을 학부마다 진행하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래도 모두 표정이 밝고 시민들도 함께 기뻐하고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대학 졸업이 입학하는 것보다 어려운 외국의 대학에서는 당연한 모습인 듯하다.국내 처음 시행되는 이번 졸업식 퍼레이드는 2월이라는 추위와 `처음`이라는 수줍음과 어색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망설이는 졸업생이나 교직원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어울리게 대학이 신선하게 홍보되고, 지역과 어울리는 잔치가 되는 이런 행사가 가져올 보상은 망설임을 넘어설 것이라 생각된다. 오히려 지역민들은 추위를 우려하기 보다 대학의 새로운 시도에 설레임과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앞으로 졸업생 퍼레이드가 최소한 국내 과학특성화 대학에서는 확장될 것으로 기대된다.과학과 공학은 특히 시민과 지역사회 커뮤니티와 동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기에 과학·공학도들의 거리 행진은 과학과 공학이 시민 곁으로 다가간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을 것이다.이번 행사가 유튜브로 세계에 중계되었으면 한다. 시민들 사이로 박수를 받으며 당당히 걷게 될 졸업생들의 모습이 벌써부터 설레임 속에 기다려진다.

2018-01-11

미국의 한국기업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작은 도시 뉴베리라는 곳에서 2018년 새해 아침을 맞고 있다. 미국에서 삼성전자의 야심찬 가전제품 허브가 될 뉴베리는 지금 공장 신축공사로 한참 북새통이다. 현장은 어지럽게 널려진 건축자재와 1월 중순 선보일 첫 제품 생산 라인을 시험 운전하는 모습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빠 보였다.이 뉴베리에 필자가 들른 이유는 개인적으로는 막내아이가 근무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삼성이 인근대학들과 연구개발(RD) 컨소시엄을 맺어 미국 내 삼성 중심축으로 키우려는 계획 때문에 한국대학들과의 RD 연결 고리를 만들기 위해서다.최근 기사에 의하면 삼성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생활가전제품의 콘셉트·RD·생산·유통·서비스 등 모든 단계를 책임지는 허브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그리고 삼성전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와 클렘슨대학,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 등과 `팔메토 컨소시엄`을 체결했다. 팔메토 컨소시엄은 삼성전자와 현지 관계자들이 향후 5년간 신제품 개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첨단 제조와 센서 기술 등 가전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기술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이다.대학들을 직접 방문해 클렘슨대학 연구부총장,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공대 학장 등과 만나봤다. 클렘슨은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 그리고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은 이 지역에 공장이 있는 보잉과 연결한 보잉 프로젝트가 열기를 띠고 있었다. 이 대학들은 엔지니어링·정보기술·컴퓨터공학 분야의 리서치 프로그램에서 미국 톱 클래스로 인정받는 곳이다.그러니 한국대학 교수의 방문을 대 환영하는 모습이었다. 클렘슨에서는 자동차 디자인에 관한 비디오를 봤고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선 공대 학장 안내로 직접 보잉프로젝트 실험실 투어를 할 수 있었다.삼성전자는 향후 이 지역에 1조원이 넘는 투자를 하며, 우선 2020년까지 3억8천만 달러(약 4천억원)를 투입해 1천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하니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가 적극적으로 삼성 입지를 돕고 있는 현실이다.지금 미국 동남부 지역은 한국 기업들의 공장 건설이 활기를 띠고 있다.이미 10여 년 전부터 가동중인 조지아 웨스트포인트의 기아자동차 공장과 알라바마 몽고메리의 현대자동차 공장은 각각 3천명 가까운 직원을 고용해 미국 동남부지역의 고용창출에 크게 기여했다. 인근엔 50개가 넘는 한국 자동차 부품업체가 진출해 있다.뉴베리의 삼성 가전제품 공장 건설은 이 두 개의 자동차 공장과 함께 최근 LG가 건설중인 테네시주 클락스빌의 가전제품공장과 더불어 미국 동남부 한국 제조 기업체의 핵심을 이룰 전망이다. 이미 달라스에는 대규모 삼성 스마트폰 및 반도체 중심의 공장과 지사가 들어서 있다.또 하나 놀라운 것은 뉴베리라는 이 조그만 도시에 20년 전 고려제강이 `Kris Wire`란 제품으로 진출했다는 사실이다. 그 공장은 그곳에 우뚝 서 있었다.조지아-알라바마 85번 고속도로 벨트라인에 퍼져있는 한국 중소기업들과 함께 얼마든지 규모가 작은 기업들도 미국진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미국에 살고 있는 교민은 줄 잡아 30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국토는 작고 인구는 상대적으로 많은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국가의 힘은 면적이나 인구숫자에 상관없이 얼마나 세계로 뻗어나가는가 하는 영향력에 의해 결정된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위스 같은 나라들이 좋은 예이다.한국기업의 미국 진출은 이제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건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토 및 인구 확장의 의미를 갖는다.

2018-01-04

국가형 맞춤 참사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또 터졌다.안전 불감증 사고는 도처에서 크레인 붕괴, 낚싯배 침몰에 이어 이제 빌딩 대형화재에까지 이르렀다.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 빌딩 화재 참사는 지금 한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사들과 더불어 결국 `국가형 맞춤 참사`이다.불법적 관리와 대충주의가 낳은 안전 불감증이 이처럼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고 이것은 한국이라는 국가가 갖고 있는 맞춤형 문제이다.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2층 여자 사우나에서는 비상구로 통하는 공간이 창고로 사용되고 있었고 비상구로 가는 입구는 목욕 바구니로 꽉찬 선반들이 가로막고 있어 탈출이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비상구를 찾지 못한 여성들이 정문으로 탈출하려다 계단을 타고 올라온 유독가스를 흡입하고 참변을 당했다고 한다.비상구는 화재 발생 시 인명피해를 막는 생명 통로다. 그럼에도 비상구 입구를 창고처럼 이용한 건물주의 안전 불감증과 대충주의가 이처럼 많은 인명피해를 낳았다.도대체 어떻게 화재 발생 1시간이 지나도록 창문 하나 깨지 못하고 구조활동을 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는가? 왜 사다리도 펴지지 않는 불량품 차량이 움직이는가? 그것도 결국 대충주의의 산물이다. 이번 화재는 46년 전 1971년 크리스마스 이브 때의 서울 대연각호텔 화재의 재판이다.필자가 대학 신입생 시절 일어난, 200여 명이 희생된 대연각호텔 화재는 불이 복도를 타고 연소통처럼 피어오를 때 사다리도 없는 소방차가 전국 궁사들을 모아서 활을 창문에 쏘는 19세기 방식의 구조 방식으로 수많은 투숙객을 희생시켰다.그때는 소방장비 등이 절대 부족한 시절이라고 하지만 지금 50년 가까이 지나서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14년 전 마산을 휩쓴 태풍 매미 때 수십명의 사망자도 안전 불감증에서 나타난 똑같은 상황이었다.당시 마산시나 소방당국은 경고사이렌 하나 없이 쓰나미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였고 안전에 대한 기본적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필자 자신도 그 당시 보석같은 큰 딸아이를 하늘로 보냈다. 미국에서 유학시절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아이가 한국에 와서 국가형 맞춤 재해에 희생된 것이다.세계 어디를 가도 안전지대는 없겠지만 국가형 맞춤 재해에 의해 희생된 부모와 가족은 정말 억울하고 미안한 마음에 가슴을 부여잡고 삶을 이어간다. 그 삶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아프고 처절한 삶이다.미국이나 필리핀에는 총기사고가 있다. 아프리카에는 유행성 질병 사고가 빈번하다. 세계 곳곳에는 국가맞춤형 사고들이 있다.미국에서 총기로 희생된 필자의 친구가 있었고, 아프리카 외교관으로 갔다가 뇌수막염에 걸려 평생 불구가 된 지인도 있다.한국의 안전 불감증과 더불어 국가별 맞춤형 재난에 희생된 케이스이다. 그러한 나라들도 반성해야 한다.미국과 필리핀 같은 나라는 총기사고 방지를, 아프리카는 질병 예방 방지를 강화하기 위해 온갖 힘을 쏟아야 한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제 한국은 안전 불감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충대충 주의는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과거 공무원들의 부정이나 학생들의 시험부정 등등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들에서 대충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대충주의가 오늘날 한국의 적당주의로 안전불감증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한국의 맞춤형 사고 - 안전 불감증 사고는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그 첫걸음이 대충주의를 없애야 한다. 제발 이제 국가 맞춤형 사고는 멈추자.희생자의 가족과 부모를 생각할 때 이는 미루어야 할 일이 절대 아니다.

2017-12-28

엘리트 대학과 조정경기(Rowing)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포스텍은 최근 포항 연일읍 적계못에서 유니스트(울산과기원)를 초청해 친선 조정경기를 가졌다. 이날 경기에는 양교 총장과 구성원들의 열띤 응원과 함께 열려 유니스트가 간발의 차이로 승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자신 대학 때 조정선수였던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배려와 협력의 상징인 조정경기를 통해서 우의를 다지고 서로 발전해 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왜 영남권 대학들에서 특히 과학기술대학들이 갑자기 조정붐이 일고 있는가라는 의구심이 호기심을 자극한다.사실상 조정경기는 체력 정신력 화합 리더십을 동시에 배울 수 있는 종합 스포츠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미국, 영국 등 선진 대학에선 조정경기에서 그 대학의 프라이드를 나타내고 있다.그러한 점에서 디지스트(DGIST·대구경북 과학기술원)가 전국대학조정대회를 2연패하고 최근 열린 제1회 부산광역시 조정협회장배 비치 조정선수권대회에서 남여 대학부 6종목에서 전관왕을 차지하며 우승한 것이 주목을 끌고 있다.과학기술대학 중 가장 어리고 가장 작은 대학인 디지스트의 조정부 수준이 국가대표급의 실력을 닦은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시사점을 배울 수 있다.디지스트가 4년 전에 전국대학조정대회에 출사표를 던질 때만해도 대학조정의 전통 강호인 연세대나 고려대, 서울대 등 수도권 강팀들을 꺾고 우승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학부학생이 1천명도 안 되는 디지스트가 학생수 수만 명의 대형 대학들과의 경기는 사실상 다윗과 골리앗의 경기였다.그러나 우리는 다윗의 승리에서 한국 대학, 아니 한국이 가야 할 길을 생각케 한다.우선 디지스트가 교육철학인 작지만 융복합을 통해 강할 수 있다는 신념을 길렀다고 한다.최근 포스텍이 무학과로 전체학생을 선발하는 것이나 디지스트는 전 학년을 통해서 무학과로 교육을 시키는 철학은 사실상 작지만 강한 융복합형 인재를 키우는데 맥을 같이한다. 융복합형 인재는 아마도 강소국인 한국교육의 방향일지도 모른다.또 하나는 불같이 타오르는 열정과 과학적 훈련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유학시절에 조정을 배운 인수일 교수가 지도교수를 맡았고 최정상급 훈련 시스템을 도입하고 열정적인 훈련을 하였다고 한다.이것도 한국대학이 가야 할 길이다. 아직 과학 노벨상 하나 없는 척박한 현실에서 우리가 가진 건 열정과 최정상급 교육시스템일 것이다. 대학의 환경은 필자가 공부하던 40여 년 전보다 많이 나아진건 사실이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놓여 있다.조정경기는 한국대학의 세계화에도 큰 공헌을 하고 있다.디지스트는 3년 전부터 세계명문대학 조정축제를 매년 여름방학기간 중 주최하고 있는데 케임브리지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중국 홍콩과기대, 호주 시드니대, 미국 하버드대, 미국 MIT 등 6개국을 대표하는 명문대 7개 팀 선수가 연 100여 명씩 참가해 낙동강에서 대규모 대회를 열고 있다.학문적으로도 세계 최일류대학인 이런 대학들이 한국의 대학들과 어울려 조정 한마당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한국대학과 한국을 세계 젊은이들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세계적인 대학문화가 탄생한 것이다.이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각 대학 선수들을 고루 섞어서 팀을 구성한 융합 팀이 12km에 이르는 낙동강 구간에서 수상마라톤 대회라고 하는데 세계적으로도 최초로 시도하는 경기 방식이라고 한다. 이는 세계의 엘리트 대학들이 서로 협동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이는 점에서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진다.한국의 엘리트 대학들이 세계의 엘리트 대학과 어울리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세계의 과학과 공학을 함께 리드하는 모습은 상상만해도 멋지다.그러한 상상이 이제 조정경기를 통해 현실화 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세계 명문대 `교수 조정경기`대회는 어떨까 하는 상상이 미소를 짓게 한다.

2017-12-22

랜섬웨어와 북한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교수님 큰일 났어요” 전화 너머로 속이 바짝바짝 타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제자의 컴퓨터를 잠시 빌려 사용한 후 다시 제자가 컴퓨터를 쓰다가 모든 파일이 잠겨 버리는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누구의 잘못인지 모른다. 그저 이메일로 들어오는 이름 모를 파일을 클릭하면 감염된다는 악성코드 랜섬웨어(Ransomware). 사람을 납치한 후 몸값을 요구하는 랜섬(ransom)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랜섬웨어가 최근 극성을 떨치고 있다.랜섬웨어는 컴퓨터 시스템을 감염시켜 접근을 제한하고 일종의 몸값을 요구하는 악성 소프트웨어의 한 종류다.컴퓨터 접근이 제한되기 때문에 제한을 없애려면 해당 악성 프로그램을 개발한 자에게 암호를 풀 수 있는 키를 받기 위해 돈의 지불을 강요받게 된다.시스템을 잠그고 암호화 됐다고 협박 한 후 컴퓨터 사용자가 돈을 지불하게 만들기 위해 안내 문구를 띄운다.제자의 경우는 600만원을 내라는 협박을 받고 있고 제3자를 통해 고치려고 시도를 하면 지불해야 할 돈이 올라가거나 데이터를 영원히 파괴한다고 협박을 한다.이 돈을 지불한다고 해도 데이터가 돌아올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서버를 해외에 두고 수시로 이메일이나 서버를 바꾸는 수법으로 수사망을 피하면서 컴퓨터 사용자를 울리고 있다. 어떻게 세상에 이런 나쁜 사람들이 있을까? 소문은 들었지만 막상 제자가 당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치를 떨었다. 이러한 전 세계적 랜섬웨어를 통한 대량해킹은 인터넷 세계의 사이버 아마겟돈으로 불려진다.특히 올해 5월에는 사상최대 규모의 랜섬웨어 공격이 발생하기도 했다. 작년 해커들에게 탈취당한 미국국가안보국(NSA)의 해킹 툴을 활용한 `워너크라이(WannaCry)`라는 랜섬웨어는 유포 하루 만에 전 세계 100여 개국 10여만 대 이상의 컴퓨터를 감염시키며 전 세계를 사이버테러의 공포로 몰아넣었다.이러한 랜섬웨어의 공격을 보면서 북한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건 우연은 아닐 것이다. 문제를 만들어 놓고 해결하려면 돈을 내라고 하는 모습이나, 제3자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면 멸망시키겠다는 모습도 기가 막히게 닮았다.호시탐탐 적화통일을 위해 테러를 자행하고 핵을 개발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 돈을 내놓으라고 하고 핵개발을 중지하는 대가로 엄청난 돈을 요구한 적도 있다. 한국이 미국, 일본과의 연대로 방어적 군사강화를 하는 것에 대해 더 큰 공격을 할 것이라고 협박을 하는 것도 랜섬웨어의 협박과 똑같다.그런 의미에서 랜섬웨어 해결책으로 북한문제 해결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우선 인터넷을 차단하라는 주문이다. 이는 북한을 고립시킨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정책과도 일맥 상응한다. 인터넷이 차단되면 결국 아무런 일도 못하게 될 것이고 북한도 고립이 된다면 결국 손을 들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 해킹에 대비한 강력한 해킹 제어 프로그램을 심어서 강한 수비력을 키우자는 것도 현재의 한미일 동맹국의 군사훈련과 군사강화를 통한 대응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것은 공갈에 굴복하지 말자는 것이다. 랜섬웨어에 굴복해 돈을 보내면 돈의 갈취가 습관화 될 것이다. 지금 북한의 공갈에 굴복해선 안 된다. 당장은 데이터를 모두 잃을 지라도 랜섬웨어에 굴복하지 않을 때 그들은 결국 물러설 것이다. 북한의 공갈에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제자는 오늘도 해결책을 위해 싸우고 있다. 돈을 보내지 말라는 주문을 하면서 필자도 여기저기 해결책을 알아보고 있다. 결국은 해결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북한문제도 우리의 강한 의지로 결국은 해결될 수 있다.

2017-12-14

이국종 신드롬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이국종이라는 이름이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최근 CNN 방송이 국내에도 공개되지 않은 북한 귀순 병사 수술 광경과 이국종 교수와의 인터뷰를 공개해 이슈가 됐다.화제의 초점은 수술실에서 여러 명의 의료진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감동적인 모습과, 외신과 인터뷰 하는 이 교수의 유창한 영어실력과 전문성이었다.이국종 교수는 아주대 병원의 중증외상 센터장이다. 그는 아주대 의대를 졸업하고 해외 연수후에 아주대 병원에 근무하는 교수이다.이 교수는 CNN 인터뷰에서 지난달 23일 공동경비구역(JSA)을 넘어 탈출한 북한 병사의 탈출 상황과 수술과정 및 환자의 현재 상태에 관해 설명했다.그는 “당시 병사는 절반보다 훨씬 많은 피를 흘려 저혈압과 쇼크로 죽어가고 있었다”며 “병사가 여기가 진짜 남한이 맞느냐고 묻기에 태극기를 한번 보라고 대답해줬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수술 도중 북한 병사의 몸에서 나온 기생충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의당 모 의원이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의료법 위반을 거론하면서 환자의 권리를 옹호했고, 북한 이탈주민이 `혐오 대상`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그렇지만 국민들은 곧바로 반박했다.`한 생명을 살려놨는데 그의 기생충 감염 사실을 알린 것이 잘못인가`라는 의견과 함께 `북한의 인권과 현실을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며 해당 의원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참으로 논평할 가치조차 없는, 국회의원 자격이 의심되는 발언이었다.이 교수가 언론에 환자 수술 과정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자신의 평소 생각과 주장을 거침없이 얘기하자 그의 인기는 신드롬으로 번졌다. 나이에 관계없이 전 국민적인 인기 스타로 이 교수가 화제에 오른 느낌이다. 그가 방송에 출연한 유튜브 동영상은 조회 수가 급증했다.권역외상센터(권역 내에서 발생하는 외상환자의 응급의료를 담당하기 위해 지정된 병원) 지원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의견이 23만 건을 넘어섰고, 보건복지부는 권역외상센터 예산과 인력 확충에 나서기로 했다. 정치권도 여야 구분 없이 예산 증액을 약속했고 실제로 증액이 이뤄졌다.의사가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그 인기가 정책 과정에 영향을 미친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멋지다는 찬탄을 하게 된다.열악하고 숨 막히며 불합리한 한국 의료 제도 아래서 몸과 마음을 많이 다친 그이지만, 지금 이국종 교수는 행복한 의사이며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의사의 아이콘이다.이국종 신드롬은 우리에게 세 가지 시사점을 주고 있다.첫째, 자기 분야에 혼신을 다하는 사람은 결국 인정 받는다는 전문성이다. 힘들다고 다들 손사래 치는 중증외상 분야에서 외롭게 전력을 다하고 있는 그의 전문성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둘째, 국제성이다. 그의 영어실력뿐만 아니라 국제적 감각은 한국 의료수준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 산업, 기술, 의료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알리고 세계화되기 위한 국제성의 중요성이 돋보인다.셋째, 전문성이 대학 간판을 앞선다는 교훈이다. 그는 소위 SKY로 대변되는 간판 대학 출신이 아니지만 전문성과 국제성으로 자기 분야 최정상에 섰다. 물론 아주대 의대는 명문 의대의 반열에 있지만 필자는 아주대 평가팀에 이번 기회가 아주대의 의료수준과 국제적 위상을 널리 알릴 좋은 기회라고 말해줬다.이국종 신드롬은 우리 사회가 전문성, 국제성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국민적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내년엔 이국종 교수를 한번 만나고 싶다. 그의 매력이 어느 곳에서 나오는지 알고 싶다. 이국종 교수의 선전을 빌어본다.

2017-12-07

디지스트와 포스텍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물설고 낯설다는 말을 실감한다. 28년을 함께한 포스텍을 떠나 대구 디지스트(DGIST·대구경북과학기술대학교)로 온 지도 이제 석 달이 지났다.아직 포항의 사무실도 정리가 덜 끝났고, 주민등록도 그대로 있다. 학교가 제공하는 관사는 떠났지만 학교 부근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주말을 보내며 포스텍 스태프들과 테니스도 치고 있다. 아마도 짐 정리는 떠나지 못하는 마음의 핑계일지도 모른다.유학과 미국 교수 생활을 마치고 포항에 처음 왔을 때 낯설은 투박한 포항 사투리에 적응해야 했고 과메기, 물회 등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던 음식도 먹어봐야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고 이제 포항이라는 고장에 잘 적응하고 과메기를 냉장고에 채워놓고 먹는 포항인으로 변해 있다.그러기에 다시 시작한 대구 생활은 또다시 물설고 낯선 생활이었다. 28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우선 음식이 과메기에서 곰탕으로 바뀌었다. 이곳 디지스트가 있는 대구 달성군 현풍면은 현풍할매곰탕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행히 곰탕은 원래 좋아하던 음식이기에 과메기처럼 적응 기간이 필요하지는 않아 좋다.디지스트!30년 역사에 국내 정상으로 우뚝선 포스텍 만큼 좋은 대학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을 가졌고 그 야심을 달성할 잠재력이 있는 대학이지만 해야 할 일은 많다.그건 30년 전 포스텍이 가졌던 숙제와 똑같은 것이다. 우선 대학의 호칭도 정립돼야 한다. 포스텍이 단과대인 포항공대에서 종합대 포항공과대학교를 거쳐 포스텍(POSTECH)이란 이름으로 정착되기까지 30년이 걸렸다.디지스트도 마찬가지 고민을 안고 있다. 디지스트라는 호칭이 맞는 것인가라는 토론이 거듭된다. 홍콩과기대(HKUST)는 H-K-U-S-T로 일일이 나눠 부른다. 그래서 디지스트도 D-G-I-S-T로 나눠 불러야 하는 건 논리상 맞다. 그러나 단어를 다섯 음절로 나눠 부르는 불편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지난주 대만의 타이중이라는 도시에서 국제대학 관련 평가회의가 있었다. 이제 포스텍 명예교수이자 디지스트를 대표하는 참가자로 디지스트를 수백 명의 참가자 앞에서 소개하면서 미묘한 감정이 흘렀다.그동안 포스텍에서 국제협력, 해외평가관리를 맡아 수십 번 국제회의에서 포스텍을 홍보하고 소개했다.이제 다시 나 자신에게 디지스트의 브랜드를 씌우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 번 도전해 볼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도전욕이 솟는다.디지스트의 브랜딩에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포스텍과 디지스트를 같은 스펙트럼에서 두 대학을 홍보할 좋은 기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두 대학 모두 과학특성화 대학이고 서울의 큰 종합대학에 비하면 단과대학과 같은 작은 규모의 대학이지만 우수한 학생과 교수를 보유하고 좋은 실험시설, 그리고 대학원 중심 대학이라는데 공통점이 있다.디지스트가 포스텍으로부터 배워야 할 가장 큰 것은 애교심이라고 생각한다.포스텍은 초창기 직원이나 교수들의 애교심이 대단했다. 그건 한국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을 설립한다는 자존심이었다.디지스트도 한국 최초로 학과 없는 학부의 융복합대학을 설립한다는 자존심을 가지고 모교 사랑을 키워야 한다. 직원과 교수의 애교심은 학생들에게 전달되고 결국 우수한 학생이 숨쉬는 대학을 만들 수 있다. 필자에게 포스텍, 디지스트는 모두 사랑해야 할 애정의 대상이다. 두 대학 모두 서로 끌고 밀어주면서 한국의 과학과 기술의 전당으로 세계에 우뚝 서는 대학이 되길 빌어본다.

2017-11-30

미국과 중국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 지정했다.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은 1980년대 아웅산테러, 대한항공 폭파 등으로 북한의 만행이 극에 달했을 때 이루어져 지난 2008년 북한이 영변 냉각탑 해체 쇼를 벌여 테러지원국 해지를 받은 이후 9년 만의 재 지정이다.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테러지권국으로 재지정한 이유에 대해 북한의 김정은이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한 사건과 미국인 대학생으로 북한 여행도중 불법적으로 체포된 오토 웜비어 사망 사건을 거론했다.하지만 재 지정이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대북 특사가 방북에서 돌아온 후 바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중국 특사의 방북이 협상실패라는 추정을 쉽게 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을 통해 북한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다른 채널로도 대화를 한다고 밝히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건 이번 테러지원국 재 지정에서 느낄 수 있다.사실 북핵 국면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는데 사실상 `빈손`으로 귀국한 것으로 관측되면서 한반도 정세가 암흑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북한이 테러지원국으로 재 지정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하면서 조만간 추가 도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작년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도 최근 미국 방문에서 제한적 북한 타격조차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혀 북한문제는 시계 제로의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북한의 사실상 이러한 결사적인 자세는 그래도 중국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북한은 말로는 미국의 공격에 대비한 핵개발이라고 하지만 김일성으로 시작된 김씨 일가의 독재를 지키기 위해 국민을 억압하고 핵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은 절대적인 존재이다.6·25 한국전쟁에서 중국은 북한을 위해 싸웠고 미국, 한국의 연합군과 전쟁을 한 나라이다. 그들 표현을 들자면 소위 `조미전쟁`에서 승리하였다고 매년 승리를 자축할 정도로 중국은 북한 편에 있다.그러한 중국을 이웃하면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중국의 눈치도 봐야 하는 한국의 현실은 참담할 정도로 힘들다.미국은 한국전쟁에서 4만여 명의 미군의 희생을 치르면서 한국의 함락을 막아준 나라이며 경제, 정치, 군사 면에서 한국에 가장 중요한 우방국이다.지금도 3만명 가까운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언제나 미국과의 면밀한 상의와 통제로 국가가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출전 못한 것을 한 예로 보더라도 체육은 물론, 국제외교, 정치, 그리고 핵개발 등 기술개발도 미국과의 상의와 통제하에 진행되고 있다.현실적으로 북한의 위협과 중국의 북한 우호 정책이 계속되는 한 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여겨진다.사실 한국과 중국은 외교·경제적으로 최근 20년간 매우 가까워진 것도 사실이다. 사드 배치로 악화되었던 한중관계가 최근 다시 풀리는 것도 이러한 한중관계의 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궁극적으로 한국과 북한을 등거리 외교를 통해 조정하려고 할 것이다.중국과 미국, 미국과 중국. 이 두 나라와 함께 가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그러나 중국과 미국은 어쨌든 같이 가야 할 나라들이다.이 두 나라는 세계의 2대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모든 면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이 두 나라는 서로 무시할 수 없는 애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이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여전히 한국은 미국과의 강한 동맹을 토대로 중국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정치적인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 정말 어려운 상황이지만 헤쳐나가야 한다. 그리고 독일 통일을 보면서 기대를 가져보자.

2017-11-23

우려되는 구속행렬

▲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DGIST 총장특보북한이 가장 두려워 한 장관이라는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의 구속영장 신청은 세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가 포승줄에 묶여 버스에서 내리는 장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매우 착잡하다.전 국정원장 여러 명이 구속되거나 구속될 위기에 있는 상황에서 다시 김 전 국방장관의 구속영장 신청은 결코 마음이 편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중국의 발 빠른 행보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중국이 사드 철수를 다시 한 번 요구했다. 중국 관영 CCTV는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이 사이버여론 조작 혐의로 구속될 당시“한국이 사드 배치 주동자를 척결하고 있다는 신호를 중국에 보내왔다”고 보도하며 사드 문제를 상기시켰다.또한 국내 상황과 의도와는 달리 중국은 이 상황을 사드 철수로 활용하고 있다.김 전 장관은 “이 상황이 꼭 죄가 된다면 나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 부하들은 잘못이 없다. 부하들의 선처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감동적인 발언이었다.국정 농단 사건이 시작된 뒤 국민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 수감자를 많이 보았지만 그중 스스로에게 모든 책임을 지운 사람은 김 전 장관이 처음인 것 같다.김 전 장관은 `북한이 가장 무서워하는 군인`으로 통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합참의장, 이명박 정부에서 국방장관에 발탁됐다. 부임 후 “북 도발 시 10배로 보복하라”고 지시하고, 실제 연평도에서 대규모 포격 훈련을 실시하자 북한은 그를 `보복 타격의 대상자`로 지목했다.박근혜 정권은 그를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하였고, 그는 지난 10년 이상 대한민국 안보의 간판이었다. 그런 그가 정권 교체와 함께 구속되는 처지가 됐다는 것은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김관진 전 장관의 구속이 중국과 북한이 바라는 바라면 그것도 큰 우려가 아닐 수 없다.검찰이 밝힌 그의 주된 혐의는 군의 정치 개입을 금지한 군 형법 위반이다. 김 전 장관이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사이버사 심리전단에 각종 정치적 이슈에 대해 여당을 지지하고 야당을 비난하는 댓글 공작을 지시했다는 것이다.수사가 진행되어야 알겠지만 그러한 사이버 댓글은 위법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이 한국 국내를 교란하기 위해 벌이는 사이버전에 대비한 사이버 부대의 활동까지 몽땅 매도된다면 그것도 옳은 판단은 아니다.우리는 사건의 진실을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매일 올라오는 사이버사 보고서 표지에 `V`표시를 해서 `봤다`는 의미로 돌려보낸 문서를 근거로 댓글공작을 승인하였다는 근거보다 더 중요한 건 그가 북한의 사이버부대에 대응하여 얼마나 국가를 지키려고 노력한 진정한 군인이었나를 파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판단이라고 본다. 거듭 북한의 사이버전을 한번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실제로 그가 사이버사 군무원 증편을 지시한 2012년 초 북한의 사이버 전력은 급속도로 강화됐다. 대남 선전 매체 `구국전선`은 신년 사설에서 `진보 세력의 대단합을 보다 높은 수준에서 이룩해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남한 정부에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야 한다`고 했다.2013년 북한의 사이버전 인력은 7천명에 달했다. 우리 측 사이버사 군무원의 10배였다. 김정은은 2013년 군 간부들에게 “사이버 공격은 핵·미사일과 함께 우리 군의 만능 보검”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김 전 장관측 변호인 말을 빌리면 “북한이 우리 측 총선과 대선을 노리고 사이버전을 벌이는데, 우리 측 사이버사도 대응 과정에서 일부 정치적 이슈가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며 “경계가 모호하고 피아 식별이 어려운 사이버전의 특수성이 김 전 장관의 유·무죄 판결에서 감안돼야 한다”고 했다.판단은 각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정의롭고 번영하면서 안보가 강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과연 최선인가 우리는 깊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17-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