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나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게 되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 건설회사에서 일할 때 방문한 후 40년 만이다. 리야드가 행정도시라면 상업도시의 중심 젯다를 방문했다. 대학 관련 회의가 끝난 후 시간을 내어 젯다의 옛마을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젯다의 `올드타운`이라는 옛마을을 재 건축 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며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사우디는 국민소득이 한국과 비슷한 나라로 최근 풍부한 석유를 바탕으로 하는, 급격히 현대화 되고 있는 산유국이다. 거리, 유원지, 호텔 등을 돌아볼 때 현대화의 물결을 느낄 수 있었다. 급격히 발달하는 나라이지만 사우디는 국격으로는 한국에 뒤지는 나라이다. 그런데도 젯다의 옛마을은 비록 세련되게 보존은 하지 못했지만 옛모습 그대로 놔둔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런 젯다의 모습을 보면서 몇 년 전 KTX가 들어오며 사라진 포항역사를 떠올렸다. 우리보다 뒤떨어진 나라에서도 옛모습을 보존하는데 왜 우린 부수고 없애고 하는 것일까. 포항역사가 사라진 후 해병대 군인들, 포스코 직원들을 중심으로 포항시민의 회한이 깃들인 포항역사를 복원하고 싶다는 생각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고 한다.
요즘도 필자는 옛 포항역사 앞을 지나가지도 않고 차를 그쪽으로 몰지도 않는다. 그 휑하니 뚫린 길을 보면서 휑하니 뚫린 심정을 느끼는 건 아마 포항시민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결국 부수어야 했을까. 포항 역사는 결국 부서졌다. 왜라는 질문을 해본다. “역사적 가치가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역사적 가치란 무엇인가. 반드시 건물이 고풍스럽고 멋있어야 하는가. 그냥 오랫동안 거기에 있던 건물이라면 그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다. 그 건물의 초석은 그 시대의 것이고 건축양식은 좋든 싫든 그 시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건물과 함께한 시민들의 추억과 낭만이다. 눈물과 기쁨, 그리고 오랜 역사를 간직한 포항역이었다. 일제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해 해방과 함께 건축된 포항역사는 거의 100년 가까운 포항의 산증인이다.
사실 이런 옛것 부수기는 포항만이 아니다. 어려서 서울서 자란 필자는 서울의 추억이 깃든 서울 단성사, 피카디리, 화신백화점, 중앙청(물론 일제 잔재라는 문제는 있지만) 등등 모두 사라지니까 어릴적 서울 살던 추억이 많이 사라졌다. 다니던 대학을 가보니 건물 두개 정도 문화재로 보관되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옛 동독의 도시 드레스덴에는 아주 유명한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가 있다. 이 교회는 300년 전 지어졌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드레스덴 시민들은 언젠가 재건축 될 것을 생각하며 무너진 프라우엔 교회의 돌들에 번호를 매겨 보관했고, 독일 태생의 한 과학자가 노벨상 수상기금을 모두 기부해 어린 시절 프라우엔 교회의 기억을 되살리며 10여 년 전 완전 재건축에 성공했다고 한다. 지금 그 교회는 드레스덴과 드레스덴 시민의 자부심이 되고 있다.
전쟁으로 파괴된 건물도 원형 그대로 다시 신축 보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치욕의 역사들도 후세들을 위해 보존하는 것이 유럽 각국의 모습이다.
이제 무언가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을 것 같다. 포항역사 복원운동 시민위원회를 만들어 마음을 모으고 지속적 캠페인을 통해 추진하고, 그리고 포항시의 협조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포항역사 안에는 해병역사관이나 포스코, 포항역사관이 함께 해도 좋다. 곧 지방선거가 다가오는데 선거공약으로 시장 후보자들에 포항역사 복원을 제안하고 싶다. 후세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포항역사의 복구와 그 포항역사의 로터리를 휘감는 차량의 행렬을 생각하면 정말 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