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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구고등법원은 정의롭고 공정한 판결을 했는가?

“열 명의 범인을 놓쳐도 한 명의 무고한 이가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된다.” 미국 대법관 윌리엄 블랙스톤(William Blackstone)의 말이다. 법으로 인한 억울한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다 공정하고 신중하라는 메시지이다. 며칠 전 포항 지진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 민사 소송 결과를 보고서 새삼 이 문구가 생각났다. 물론 재판관들은 양심에 따라 재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선고 결과에 의견을 달리하고 수용을 거부한다. 나의 평가가 편견에 기반 한 것이라는 비판의 소리를 재판부로부터 들을 수도 있지만 백번 양보 해 생각해도 판결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200~3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뒤엎고 이번에 한 푼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왜 이런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을까. 참으로 궁금했다. 180도 정 반대의 판결이 나왔으면 그 이유도 타당해야 하고 받아들이는 측도 수긍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난 판결문을 몇 번에 걸쳐 읽어보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쪽으로 결론 낼 수밖에 없었다. 50만 포항시민들을 충격으로 빠뜨린 이 판결은 과연 정당했는가. 그동안 포항지진특별법 제정 등에 앞장서며 포항촉발지진의 전 과정을 목도했던 필자가 판결문을 입수,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품었던 의문이었다. 안타깝게도 판결문 그 어디에도 시민의 간절함과 고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간의 활동을 토대로 도저히 반론을 하지 않을 수 없어 펜을 들었다. 정부의 예산으로 사업이 진행될 경우, 통상적으로 ‘갑’은 정부의 공무원이 된다. 이들의 영향력을 무시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 사업 감시와 감독 권한이 해당 공무원에게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포항 지진 발생 이후 지진 안정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주민 대표로 활동한 경험을 통해 이 시스템을 체득했고 실감할 수 있었다. 포항지진 사업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의 공무원들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 그들은 권한을 행사했다. 포항지열발전기술개발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진 발생 위험에 대한 사실을 해당 공무원이 몰랐다고도 할 수 없다. 사업 제안서를 살펴보면, 한국어로는 ‘미소진동’이라고 표현했지만, 영어로는 지진을 의미하는 ‘micro-seismicity’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2심 판결문에서 ‘미소지진’이라는 용어 대신 ‘미소진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미 피고 측 주장을 대변하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지진 위험이 있는 사업임을 고려할 때, 정부 관계 공무원들은 사업 진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한 경각심과 긴장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전제 하에 재판부는 공무원들이 적절히 감시하고 감독했는지를 검토하고, 책임 차원에서 확인해야 했다. 재판부가 밝힌 과실 내용을 여러 번 읽어볼수록, 원고 측의 주장보다 피고 측 공무원의 과실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담론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 점도 씁쓸했다. 백번 양보해 부지 선전에서 활성 단층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인정하자. 그러나 생산정과 투입정을 시추하는 과정에서 머드로스(mud loss)가 발생한 부분은 어떻게 봐야 하나. 이 머드로스 현상은 단층이 존재한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재판부는 공무원들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증언을 통해 검증했어야 했다. 포항지진은 감사원 등 정부기관을 통해서도 인재였음을 인정받았다. 관계 부처와 관계자들의 과실만 20여 건이나 적시됐다. 정부를 대변하는 피고 측 변호사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큰 과실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재판부도 인용했다. 너무나 너그러운 판결이다. 지열 사업을 진행한 넥스지오 콘소시엄 관계자와 정부 관계 공무원들이 지진 발생 위험을 차단하고 방지하기 위한 행동도 단발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업 전후의 연관성을 고려하여 지속적으로 축적되어 발생하는 지진 위험을 초래하는 과실을 검증해야 했음에도 이를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미소진동 관리 방안과 관련, 정부 관계자들과 상의할 법적 내용이 아니라는 피고 측 변호인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였다. 미소진동 관리 방안을 당국의 허가 없이 변경한 점에 대해 지적하면서도, 지진 발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가볍게 해석한 점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특히 지진계의 부실 운영도 중대한 과실이 아니라고 판단, 필자를 놀라게 했다. 지진 위험을 관리하는 전 과정이 서로 연계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분리하여 큰 과실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피고 측에 유리한 입장에서 판결문이 작성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미소진동 관리 방안, 즉 교통신호등 체계의 운영에서는 지진 규모 2 이상이 발생할 경우 포항시에 통보하는 조항이 있다. 사회적 수용성이다. 그러나 지진 진행 정부 관계 공무원들은 이런 것엔 별 관심이 없었다. 이는 정부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3차 수리자극에서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정부 공무원들이 포항시와 포항 시민들에게 지열 발전소가 일으킨 지진이라고 통보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부분을 따져야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새로운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고의로 은폐하지 않았다고 하며 면죄부를 줬다. 정부 공무원들의 감시 및 감독을 능동적으로 실천하는 것에 대한 평가가 고의성의 기준으로 이루어지니, 평가의 잣대가 너그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욱 경악스러운 내용도 있다. 피고 측은 지열발전소 운영 측은 많은 양의 물을 투입하지 않았으며, 외국 사례에 비해 매우 적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어느 나라의 기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재판부는 이 또한 피고 측에 유리한 학자인 맥가(A.McGarr)이론의 범위 내에서 진행,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는 원고 측인 정부 조사단과 정부 진상위원회의 주장, 그리고 세계 지열학회와 지진학회, 세계적으로 저명한 논문의 입장과 이론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포항 지진은 단순히 물 투입량만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물 투입에 따라 지하에서 지진이 발생할 응력이 축적된 상태에서 일어난 촉발 지진으로 규정되었다. 1차부터 4차까지의 수리 자극을 하는 동안 지진을 일으킬 응력이 축적된 상태에서 5차 수리 자극이 촉발하여 지진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주장이 맞선다면 시민 50여 만명의 고통이 걸린 재판이었던 만큼 재판부는 세계적인 전문가들을 불러 이 조항을 더 세밀하게 들여 봤어야 했다. 무엇 때문에 1차례 변론과 3여 개 월 만에 서둘러 선고했는지 난망하다. 이번에 재판부는 인간의 잘못으로 발생한 촉발 지진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잘못이 크지 않다고 했다. 이걸 모순이라고 하지 않으면 뭘 모순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재판부는 판결이 100% 완전하지 않으니 대법원에서 다시 판결을 받아보라는 친절한 안내를 제공하는 자비로운 모습까지 보였다. 자신감이 결여된 판결이므로 지진으로 인한 상처와 억울함을 치유하기 위해 더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보라는 것으로 밖에 해석이 안됐다. 포항지진으로 50여 만명이 고통을 받았고, 아직도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어디에서 위로받아야 하는가, 항소심 재판부에 묻고 싶다. /양만재 포항지역사회복지연구소 소장· 박사

2025-05-18

‘권위주의적 허풍(虛風)’은 사라져야

얼마 전 지방의 한 행사에서 “지역 인사의 큰 역할로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 사업이 추진되고 완공 됐다”는 영웅담(?)을 전해 듣고 적잖이 놀랐다. 더욱이 지역의 한 신문은 영웅담의 주인공을 대담한 내용과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었다고 한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초대형 국책 SOC 사업이, 특정인의 역할로 결정됐을까? 사실이 아니라면, 영웅담의 주인공은 허풍선이요, 신문기사는 오보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로 재직 당시,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한 교통 분야를 총괄하고, 예비타당성을 수행한 책임자였기에 사업의 추진 배경과 과정 등을 또렷이 기억한다. 기록물이 될 ‘고속도로 건설사’나 지역의 역사를 바로잡는 심정으로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의 추진 과정, 국가계획과의 연계성, 대안 검토 내용과 선정절차 등을 되짚어 봤다. 도로는 위계에 따라 건설, 유지·관리·정비하는 주체가 다르다. 고속도로는 국토교통부(이하 현 국토부)로 한국도로공사 소관이고, 국도는 국토부 산하 지방국토관리청 소관이다. 지방정부의 의견 등은 참고될 수 있으나,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 지방도, 군도 등은 행정안전부의 위임을 받아 유지·관리·정비 등은 지방정부 소관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재정이 투입되는 고속도로나 국도, 지방도 등 SOC사업은 해당 지방정부나 중앙정책부서에서 입안, 기획재정부에 의뢰해 예비타당성 조사의 선정과 종합판정(AHP)에 따라 가부가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도지사 등 지방정부 관계자가 건설 여부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지방정부 등 관련 기관에서 제안한 사안을 중앙정책부서를 경유해 기획재정부에 제출하면, 분야별 전문위원회를 통해 사업의 필요성과 우선순위 등을 평가해 선정한다. 당시에는 객관성 확보를 위해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 전문분야 대학교수와 국책연구원 등 학술과 기술 부문으로 나누어 수행한다. KDI 중심의 내·외부 전문가 자문회의 등 수차례의 치밀한 검토와 기획재정부의 최종보고 단계를 거치게 된다.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도 이와 같은 절차를 통해 선정됐다. 예비타당성 조사 당시 제안된 노선은 경제성이 낮게 도출됐다. 이에 교통영향권내의 기존 국도와 지방도를 개량·개선·정비하는 방안, 주요구간별 또는 특정 구간을 자동차전용도로화하는 방안 등 여러 대안이 현장 정밀조사를 통해 검토됐다. 그 결과, 일부 대안에서 경제성 지표인 B/C가 ‘회색 존’ 즉, 정책적 판단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사안으로 1차 조사가 마무리됐다. 이후 국가균형발전이 국가 주요과제로 부상하면서,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 방안도 재론 됐다. 지역 낙후도가 전국지자체 중 최하위권인 경북 북부지역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고속도로 건설이 주목됐다. 이와함께 경북도청 이전문제가 쟁점이 되면서, 교통체계 변화가 수도권과 직결체계가 경상북도 전역에 미칠 영향도 변수가 됐다. 이에 따라 당초 중부권 동서간선축인 당진~상주~영덕 간 노선 중 기검토된 상주~영덕 구간의 노선건설계획이 재검토됐다. 필자는 경북도청 이전 관련, 최종평가위원으로 참여해 상주~영덕 고속도로 건설이 경상북도 전역에 미칠 영향 등을 기본전제로 도청이전의 적지 지표를 확정했다. 이후 서울대 연구팀과 함께 상주~영덕간 고속도로 노선을 재검토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KDI, 건교부 등 실무자와 전문가 등은 경북도 관계자들과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 이를 토대로 경상북도를 초도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최우선 건의 사항으로 ‘경북도청 이전과 동시에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의 중요성’이 보고 됐다. 당시 노 대통령은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자”는 의견을 개진했고, 이후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사업은 경제성이 미흡하나 지역개발 효과와 국가균형발전 등 정책적 판단으로 채택됐다. 하지만 ‘경제성이 없는 노선을 왜 건설하느냐’는 감사원의 이의 제기로 한 때 사업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이에 영덕군, 청송군, 안동시 등의 시민단체와 주민들은 감사원, 도로공사, 건교부 등에 찾아가 집단 민원을 제기했었다. 결국 감사원 등이 한발 물러나면서 설계 등의 절차가 순조롭게 추진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천문학적 재정이 소요되는 국가 초대형 SOC사업은 정책집행부서, 기획재정부 등 중앙정책부서가 심도있게 논의, 검토, 조율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을 무시하고 특정인의 민원이나 권력 핵심부의 몇몇 지인을 통해 사업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몽환적 영웅심리(?)가 부른 허풍에 불과하다. 자칫 주요정책 결정에 유력인사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오해와 불신을 조장할 수 있기에 반드시 사라져야 할 구태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불행하게도 왠만한 SOC사업이 진행중인 지역마다 마치 필연적인양 허풍과 허세적인 영웅담들이 생겨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을 비롯해 자치단체장, 광역의원, 지방의원들까지 서로 자신들의 업적인양 내세우는 게 비일비재하다. 자신의 위치에서 의무적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조차 마치 대단한 업적을 쌓은 양 과대포장한다. 이런 언행들 대부분이 지역민, 지역 유권자들을 무시하는 권위주의적인 발상이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은 비단 SOC 국책사업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갖가지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거짓과 위선을 마치 사실인 양 둔갑시키고, 책이나 영화 등을 제작해 자신의 개인적 행각을 호도하고 미화한 기록물들이 넘쳐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자기 편향적인 거짓과 위선적 기록물들이 사실(史實)로 전해질 수 있을까. 언론 보도를 포함해 개인의 자의적이고 편향된 기록물이 사실인 양 치부되는 현상은 사회 질서를 왜곡시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자가당착적이다. 이성모 동북아협력인프라硏 원장전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 “어떤 사실을 일시적으로 전하려면 말로하고, 백 년 이상 오래도록 전하려면 기록으로 남겨라”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실(fact)을 역사적 사실(historical)로 전하는 기록이 미래를 이끌어 가는 추동력이다. 그 전제는 사실에 근거 정확하고 명확한 기록이다. 이런 맥락에서 당시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한 영웅담을 비롯해 이와 유사한 업적 평가들은 하루빨리 바로 잡혀야 한다. 국가 주요 정책은 타당성 조사, 정책적 요인, 지역파급 효과, 기술적 가치평가, 당위성 등 다각적으로 치밀한 분석·검토를 통해 결정된다. 지역 언론의 대담기사처럼, 초대형 국책사업이 권력적 편향 논리로 결정되는 일은 없다. 일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기획재정부 담당자에게 정책사업을 직접 설명하며 예산 지원을 설득했으나 거절당해 사업을 포기했다. 당시 노 장관은 거절 이유를 설명하는 기획재정부 담당자의 논리와 해박한 지식에 탄복했다는 일화가 한동안 회자됐었다.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 사업 또한 건교부, 기획재정부 등 당시 중앙 정책부서와 전문가 집단의 치밀한 분석과 검토, 객관성과 합리성, 당위성에 근거한 정책적 판단으로 결정된 것임은 당연지사다. 아직도 “왕년에 내가 말이야”라는 ‘권위주의적 허풍’이 지역민 사이에 떠돌기를 바란다면, 낯부끄러운 일이다.

2024-12-08

포스텍 의대 설립, 결코 포기 해서는 안 된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서울대는 되고 포스텍은 왜 안되는가?최근 25년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37%가 의사과학자이고, 세계적인 제약회사의 대표 과학책임자 70%도 의사과학자인 것으로 알려졌다.미국 의과대학의 경우 한해 졸업생 4만5천명 중 3.7% 가량이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는다. 매년 1천700명가량의 의사과학자가 배출된다.미국은 연구중심 의대를 별도로 운영한다. 이런 의대들은 공과대와 협업하거나 아예 공과대가 의대를 설치해서 신약개발이나 바이오산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이에 비해 한국은 의대 졸업생 중 의사과학자가 되는 이들이 1%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 모집정원이 3천58명이므로 30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이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바이오산업, 첨단의학 기술의 격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그런데 충격적인 뉴스가 연일 들린다.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증원 신청 대상에서 의대 신설은 제외되면서 의사과학자 육성을 위한 포스텍의 의대 설립도 미뤄지고 있다.기존 의대를 중심으로 증원이 이뤄지면서 의대가 없는 대학은 정원 확보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이다.의료계의 반발도 크다. 의료계는 “의대 가운데 연구중심의대를 지정해야 한다”며 포스텍의 계획에도 반대하고 있다.과기정통부가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과기의전원 설립을 본격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지지부진하다.정부는 의대 증원 논의를 마친 뒤 의대 신설을 차례대로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그러나 서울대는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따라 15명 증원을 신청했다.이와 별개로 의과학과 신설을 전제로 한 학부 정원 50명을 별도 요청했다. 서울대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서울대는 65명을 추가로 육성할 수 있게 된다.서울대는 되고 포스텍은 왜 안되는가?이런 와중에 포스텍이 이제는 의과학대학 설립에 소극적이라는 어리둥절한 소식이 언론에 보도 되고 있다.포항시에서도 크게 당황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의대 정원 증원과 신설 의과학과 배정받기, 이사회의 인준받기, 연차적 재원 확보 등 문제가 많이 앞에 놓여 있긴 하다.의대 증원이 이뤄져도 교육부에 의과학대 설립과 정원 배당을 신청하자면 그보다 먼저 포스텍 이사회의 승인을 받고 재원 계획을 확립해야 하는 것이 필요한건 다 안다.그러나 의과학자 양성, 의대 설립의 목표를 놓아서는 안 된다. 더 고삐를 당겨야 한다.축구에 run-and-kick(뛰고 공차기)도 있지만 kick-and-run(일단 공을 차고 뛰기)도 있다, 공을 차고 뛰는 것이다. 먼저 목표를 설정하고 달리는 것도 중요한 전략 중에 하나이다.포스텍 리더십은 의과학자 양성과 의과학대학 설립의 목표에서 한걸음도 물러 나서는 안 된다.포스텍은 생명과학이 아주 강하며 인프라도 한국 최고 수준이고, 의과학은 의학·공학·기초과학을 융합하니, 그것이야말로 포스텍 전체에 재도약의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폭발점이 될 것이다.의사과학자는 의사 면허를 가진 과학자다. 진료보다는 임상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를 연구하고, 이러한 연구 성과가 환자 치료나 의약품, 의료기기 개발에 활용될 수 있도록 돕는다.줄기세포 치료제, 인공장기, 유전자검사, 면역항암제 등 바이오산업과 의료 분야의 최신 연구와 기술 개발을 맡고 있어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릴 핵심 인력이 의사과학자이다.최근 포항시장은 포스텍에 협력을 촉구하였고, 이에 최근 시장과 총장 두 분이 만났다고 한다.이날 비공식 만남에서 정확한 대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대 설립에 대한 공동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만은 확인되었고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는 소문은 다행이다.지금은 의대 설립 인가를 받는 것에 집중해야지 다시 수억원을 들여 의대를 설립할지 말지를 물어보는 용역은 시간과 비용 낭비이다. 그런 용역을 하면서 시간낭비나 이미 수렴되고 지역민들이 서울까지 올라가 데모까지 한 사항을 검토할 시간과 여유가 우리에게 있지 않다고 본다.포항시와 포스텍은 우선 소통창구 정비부터 들어갈 계획이고 기존에 어긋났던 소통 조직을 재구성해 보다 활발한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것인데 마치 시계를 거꾸로 돌려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든다.포스텍은 어떤 대학인가?지역에서 사립대가 전국과 세계적인 명성을 갖는 신설대학 세계 1위의 신화를 쓴 대학이 포스텍 말고 또 있는가?포스텍이 걸어온 개척자 정신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포스텍은 그저 하나의 대학이 아니다.누군가 한국의 미래를 묻거든 관악이 아닌 형산강을 바라보도록 포스텍은 그러한 시대를 끌어가고 있다는 걸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된다.

2024-04-14

포스텍 의과학대 신설·스마트병원 설립 ‘담대한 도전정신’이 신세계의 문을 연다

이대환 작가 담대한 도전이 신세계의 문을 열어젖힌다. 새 지평을 개척한다는 말이다. 포항에는 그 실증이 셋이다. 포항제철(포스코), 포항공대(포스텍), 그리고 에코프로.포스코와 포스텍은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세계관으로 무장한 무사욕(無私慾) 일류국가주의 박태준의 리더십과 창업세대의 헌신적 애국심이 창조한 위업이다. 이것은 제철보국과 교육보국의 모범으로 우리 현대사를 빛내고 있다.포항사람 이동채가 일궈낸 에코프로는 우리나라에서 이차전지소재의 새 지평을 열었다. 현재 뜻밖의 고초를 감내하는 가운데 걸어온 66년의 길을 돌아보며 앞으로 걸어갈 길을 가다듬고 있는 이동채. 나에겐 동갑내기 고향친구(그는 대송면 성좌, 나는 대송면 송정)와 다름없는, 고향사람들이 따뜻하게 맞이할 포항의 영웅.지난해 4월, 포항에서 그와 함께 물회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자리였다. 내가 일본에서 ‘손(孫)’이란 성(姓)까지 창시한 소프트뱅크 회장 손정의의 어린 시절을 들려줬다. 역사 근처 철로변 판잣집의 한 귀퉁이에 돼지를 치고 돼지우리 구석에서 밀주를 만들어 팔러 다녔다는 눈물겨운 사연이었다. 이동채의 반응은 무덤덤했다.“손정의 회장네 집에는 돼지도 있고 밀주도 있었네. 그때 우리집에는 그런 것도 없었어.”손정의는 이동채보다 한 살 위다. 같은 동네에서 컸으면 “정의야” “동채야” 부르고 있을 두 사나이의 공통점은 흙수저 중의 흙수저 출신이고 담대한 도전정신과 각고의 인내와 지혜의 힘으로 세계적 기업을 육성했다는 것이다.이강덕 포항시장은 전지보국, 바이오보국의 깃발을 들었다. 제철보국, 교육보국을 바탕으로 성취해야 하는 포항의 미래 비전이다.전지보국은 에코프로와 포스코퓨처엠이 그 기반을 조성했고, 코스닥 대장 자리를 오르내리는 에코프로는 성장 대로로 당당히 전진하고 있다.‘바이오보국 포항’의 주요기반은 포스텍의 의과학과 신설과 스마트병원 설립이다. 포항의 거사이며, 대한민국 바이오제약의 도약에 꼭 필요한 디딤돌이다.그런데 김성근 포스텍 총장 취임 뒤로 삐꺽대는 소리가 나왔다. 나는 작가로서 지난 1일 ‘포스텍 총장, 속였는가 비겁한가’라는 칼럼을 바로 이 지면에 발표했고, 오후에는 그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다음날 아침에는 시장과 총장이 대화의 자리를 가졌다.김 총장이 털어놓은 고충들에서 내가 좀 분개하며 가장 공감한 점은 “포스코의 지원금이 없었다”라는 것이고, 내가 가장 아쉬운 점은 ‘임기 3년 5개월 남은 관리 총장’이란 점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인지 천성이 그런지 몰라도 ‘담대한 도전정신을 읽어내기 어렵다’라는 것이다.의과학과 신설과 스마트병원 설립에는 넉넉잡아 연차적으로 1조원 정도 소요된다. 재원 확보 방안은 필수적 선결 과제지만, 겁부터 내세울 일은 아니다. 신임 포스코 회장이 이사장을 맡는 게 급선무이다. 나는 이사회에 박태준 선생의 유족, 대기업의 오너와 경영자들이 초빙되기를 바란다.새 이사장과 이사들, 총장, 포항시, 경상북도,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공약한 중앙정부와 국회, 의과학대와 스마트병원의 긴요성을 갈구하는 바이오제약 기업들, 지역 의료법인 등이 협의체를 구성하고 공을 들여 논의하는 과정에서 재원 마련의 방안은 마련될 것이다. 자신의 가족가업을 통해 ‘1000억원 문화재단’을 설립하는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에게도 충분히 설명할 기회가 오지 않겠는가.그리고 김 총장이 ‘500병상 병원과 배후 인구 100만’을 소극적 견해의 근거로 내세운 것이 내게는 설득력이 크게 모자랐다. 그러한 일반 병원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포항의 기존 종합병원을 보강하겠다.포스텍 연구중심 의과학대의 스마트병원은 마치 포스텍이 세계적 강소 대학으로 성장한 것처럼 세계적 강소 병원으로 나가야 한다. 포스텍 생명과학의 독점적 기술력부터 최우선 특화하고 가장 뛰어난 특화 분야 중심의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서서 일반 병원의 역할도 겸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가령, 서울 강남의 어느 유명한 성형전문의원을 생각해보자. 규모는 동네의원이다. 그러나 국내 전역에서, 중국에서, 동남아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국제적 병원 기능을 한다. 이러한 성형전문의원의 커다란 확장 같은 병원이 특화 분야 중심의 포스텍 의과학대 부설 스마트병원으로, 일반 병원의 역할도 겸하는 것이다.물론, 의과학이나 스마트병원은 바이오제약과 임상실험에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자면 전문가의 강의 같은 긴 설명이 있어야 한다.기필코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의 반열에 안착해야 하는 포스텍은 지금 여기서 삼두마차를 완성해야만 한다. 김성근 총장이 오래 묵은 법인 소유 포스코 주식 등을 현금화하여 향후 10년간 1조2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제2 건학 프로젝트,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의과학대 신설과 스마트병원 설립, 포항으로 오게 해서 포스텍과 결합해야 하는 포스코 미래기술연구원, 이들 셋이 그 삼두마차이다.다시 문제는 근원으로 회귀한다. 새 지평을 여는 제일의 동력은 역시 담대한 도전정신과 시대정신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는 리더십이다.거사에 도전하는 길은 험하고 멀지만, 지역사회의 리더십들이 손잡고 앞장서면 반드시 신세계의 문을 열어젖힐 수 있다. 경북매일신문이 4월부터 마련한 ‘이슈 논단’의 첫 필자로서 지난 1일 포스텍 의과학대 신설과 스마트병원 설립 문제에 대한 칼럼을 기고한 이대환 작가가 그날 오후 열렸던 김성근 포스텍 총장의 기자간담회 관련 기사를 읽고 다시 ‘이슈 논단’에 올리는 칼럼이다.

2024-04-03

포스텍 총장, 속였는가 비겁한가

이대환 작가 봄비 내리는 저녁, 서울 광화문. 작가, 교수, 변호사, 사업가(후배) 등이 어우러졌다. 후배가 내게 김성근 포스텍 총장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이가 또래라는 것만 안다고 했더니, 화학계에 이름 높은 학자로서 받고 있던 연봉보다 적게 받으면서 총장으로 갔다는 자랑을 보탰다. 내가 ‘박태준 평전’을 쓴 작가니까 그랬겠는데, 웃으며 한마디 건넸다.“칠십 고개를 바라보면서도 인생의 의미보다 돈을 더 중시한다면, 속물이거나 바보 아니겠나?”며칠 지났다. 나는 포항에 왔다. 또 봄비가 어둠을 적시는 저녁이었다. 몇이서 돼지국밥에 막걸리를 주고받았다. 문득 심각해지는 화제가 올랐다.“포스텍 총장이 의과학대학 설립에 소극적이라는데.”변호사 선배의 무거운 우려였다. 나는 금시초문이었다. 설왕설래가 길어졌다. 내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이러한 경우에 ‘소극적’이란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첫째는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환경에 안 맞는다는 것이다. 만약 첫째의 경우라면, 그는 포항시민·포항시·포스텍 구성원을 속인 총장이다. 몇 년에 걸친 지역공동체의 중대 현안이고 포스텍과 포항시가 함께 추진해오는 프로젝트인데, 이것이 자기 생각과 안 맞는 거라면 총장으로 오지 말았어야 옳은 거 아닌가. 만약 둘째의 경우라면, 그는 최정우 이사장의 눈치나 살피는 용기가 부족한 총장이다. 올바른 용기가 부족한 리더십은 조직에 도움이 되기 어렵지 않는가.포스텍 이사장을 겸임한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이 김성근 총장을 뽑았다. 회장 3연임에는 막혔으나 여전히 이사장을 유지하는 그가 포항시민·포항시와 대립해온 것은 온 나라가 다 아는 일이다. 그래서 그날의 막걸리 술잔들은 “이사장이 의과학대학을 반대하니까 총장이 소극적이지 않겠나” 하는 쪽으로 일단 의견을 모았다.포스텍의 의대(의과학대학) 신설, 스마트병원 설립에 열정을 바쳤던 김무환 전임 총장이 임기를 마치는 지난해 8월의 어느 오후였다. 나는 동갑내기 총장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찾아갔다. 마침 후임과 점심식사를 같이하고 돌아온 그가 학교 동기라며 칭송했고, 그래서 나는 새 총장이 또래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의과학대학, 스마트병원 설립에 대해 새 총장도 잘 아는가요?”“그럼요.”“현실적 문제는 어떤 게 있는지요?”물러나는 총장이 세 가지를 꼽았다. 의대 정원 증원과 신설 의과학과 배정받기, 이사회의 인준받기, 연차적 재원 확보 등이었다.“의대 증원이 이뤄져도 교육부에 의과학대 설립과 정원 배당을 신청하자면 그보다 먼저 포스텍 이사회의 승인을 받고 재원 계획을 확립해야 하는 거군요.”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답답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안 들어도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었다.김무환 총장도 최정우 이사장이 뽑았다. 그는 지역사회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것은 총장 연임에서 멀어지는 길이었으나 꿋꿋하게 용기를 보여줬다.그의 전임 김도연 총장은 가치창출대학, 그러니까 연구 결과가 벤처창업으로 꽃피는 포스텍을 외치면서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과 대학정책에 공공연히 반기를 들었다. 지식인의 소신과 용기를 보여준 그가 임기 종료를 세 학기 앞둔 2018년 봄날, 주총에서 임기 3년을 받으며 연임에 올랐던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출범 2년차 문재인 정권에 겨우 한 달을 버텨서 사퇴하겠다고 표명하더니 그해 여름에 최정우 회장이 등장하고 12월부터는 포스텍 이사장도 맡았다. 마음 비운 김도연 총장에게 그가 연임을 적극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로 김 총장도 총장 후보에 등록했다. 그러나 그는 면접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업어다가 난장 때린 격이었다. 포스텍 이사회 관계자들이 청와대와 무관한 결과라고 강변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이는 드물었다.두 전임 총장의 용기를 언급한 까닭은, 김성근 총장이 속이고 온 경우도 아니고 연임할 욕심도 아니라면, 그들의 용기를 살펴보는 게 좋겠다는 뜻이다. 물론 포스텍 총장으로 왔으니 기본예의 차원에서라도 ‘박태준 평전’을 일독한다면 뒤늦게 용기의 새로운 참뜻도 덤으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다시 며칠이 지났다. 새하얀 새떼 같은 목련꽃 송이마다 햇살이 눈부신 아침이었다. 카톡이 날아들었다. 신문기사였다. 이강덕 포항시장의 일갈이 제목으로 뽑혀 있었다.‘의대에 미온적인 포스텍 총장은 포항에 필요 없다.’내가 들었던 변호사의 ‘소극적’을 시장은 ‘미온적’이라 했다. 격정을 응축한 표현인데 나는 오히려 점잖게 느꼈다. 포항시에서 의과학대학 관련으로 포스텍에 전화를 걸면 안 받거나 뺑뺑이를 돌린다는 기자의 취재가 곁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포항시 도처에는 ‘포스텍 의과학대학 설립은 포항의 미래입니다’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다. 그걸 이루기 위해 시민 30만 명이 연대서명에 동참했고….김성근 총장에게 ‘박태준 정신’에 비춰서 말해주고 싶다. 리더십은 비겁하지 말아야 하거늘, 소극적이든 미온적이든 그 이유가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는 첫째의 경우라면 지역공동체를 속인 셈이니 스스로 그만두기를 바라고, 자기의 환경에 안 맞는 둘째의 경우라면 용기를 세워서 이사장을 설득하기 바란다. 더구나 최 이사장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유난히 시끄럽게 회장을 마쳤음에도 현재 연임한 이사장의 임기를 2년 8개월이나 남겨뒀으니 포스텍을 위해 새 회장에게 이사장을 넘겨주고 그만 자진 사퇴해야 옳다는 주장들이다. 이게 포항 민심이기도 하다. 한창 떠들썩한 총선 마이크가 꺼지고 나면 민심은 뭉쳐져 움직일 것이다.그리고 화학자 김성근이 아니라 포스텍 총장 김성근으로서 가슴에 손을 얹고 사유해야 할 일들이 따로 있을 듯하다. 작가의 눈에는 적어도 세 가지가 어른거린다.먼저, 포스텍의 미래이다. 이것은 총장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이다. 의대 증원이 이뤄지면 젊은 이공계 인재의 의대 쏠림이 더 심해지고, 이는 포스텍 학생들의 학력 수준에 악영향을 끼친다. 2021년 1월 최정우 이사장이 “포스텍 기부 체납”을 운운한 그때 이미 포스텍의 정체를 안타까워하는 여론이 한파전선처럼 형성됐는데, 의대 증원은 설상가상이란 말에 딱 어울리는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포스텍 리더십은 주저 없이 ‘의과학대학’ 신설을 결단해야 한다. 다행히 포스텍은 생명과학이 아주 강하며 인프라도 한국 최고 수준이고, 의과학은 의학·공학·기초과학을 융합하니, 그것이야말로 포스텍 전체에 재도약의 활력을 불어넣는 신의 한 수가 아니겠는가. 재원 문제? 사람들이 의기를 결집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도 더러는 폭발적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물론 병원 경영에 대한 걱정이 앞설 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중심의대(의과학대) 부속병원의 특수성을 살려나가고 3D 바이오프린팅, 세포막 단백질 연구, 그린바이오, 마린바이오 등 포스텍 생명과학의 뛰어난 기술력을 임상에 적용하는 가까운 미래를 생각해보면 겁부터 먹을 노릇이 아니다. 당연히 바이오제약 기업들도 동참할 것이다. 호암 이병철 선생과 청암 박태준 선생, 일찍이 두 거장이 포항공대 곁에 암치료 전문병원 설립을 논의했던 것과 같은 선각적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호암 선생의 건강한 삶이 더 길어졌더라면!또 하나는, 포스텍을 포스코의 미래기술연구원과 거의 한 몸으로 만드는 일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이차전지소재, 수소 등에 주력하겠다는 미래기술연구원을 반드시 포항에 오게 해서 포스텍과 거의 한 몸으로 묶어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포항시민이 앞장서서 미래기술연구원은 포스텍과 함께 가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것은 지역균형발전의 거점을 육성하려는 시대정신의 실천의지도 담고 있지만, 포스텍에게는 박태준 선생의 유지를 받들며 세계 일류로 나아갈 강력한 동력을 장착하는 거사이기도 하다. 과연 총장을 비롯한 교수들이 진정으로 포스텍의 희망찬 미래를 담보하려는 집단지성을 갖추고 있는가? 그러하다면 이제부터라도 미래기술연구원에 대해 시민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다른 하나는, 총장 자신의 삶에 관한 문제이다. 임기가 4년 미만으로 남았는데 임기를 마치면 포항에 정주하겠는가? 틀림없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포스텍 의과학대학과 스마트병원은 포스텍(포항공대)·포스코(포항제철)·포항시, 더 나아가 대한민국 바이오제약의 향후 40년을 위해 기필코 갖춰야 하는 필수적인 새 인프라이다. 너무 오래 지각한, 이 엄중한 운명적 도전을 회피하려 한다면, 그는 2024년의 포스텍 총장이든 이사장이든 직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경북매일신문은 4월부터 ‘이슈 논단’ 코너를 마련합니다.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문화 등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의견과 목소리가 점증하고 있는 만큼 시민사회에 제기된 여론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수렴키 위한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주지하시다시피 지금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현실은 매우 복잡합니다. 사안에 따라 이해관계가 있고 견해차도 큽니다. 논단을 통해 다름을 살펴보고 고찰하면 당면하고 누적된 과제에 대한 미래적 해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코너 참여는 ‘기고’ 형식으로 누구나 가능합니다. 다만, 개인적인 일이나 비난, 민원 등은 불가하며, 분야는 제한이 없습니다. 특정 사안의 기고에 대해 의견이 다를 경우 반박 투고도 열어뒀습니다. 시민 및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연락처 054-289-5040)를 기대합니다.

2024-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