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방의 한 행사에서 “지역 인사의 큰 역할로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 사업이 추진되고 완공 됐다”는 영웅담(?)을 전해 듣고 적잖이 놀랐다. 더욱이 지역의 한 신문은 영웅담의 주인공을 대담한 내용과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었다고 한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초대형 국책 SOC 사업이, 특정인의 역할로 결정됐을까? 사실이 아니라면, 영웅담의 주인공은 허풍선이요, 신문기사는 오보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로 재직 당시,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한 교통 분야를 총괄하고, 예비타당성을 수행한 책임자였기에 사업의 추진 배경과 과정 등을 또렷이 기억한다. 기록물이 될 ‘고속도로 건설사’나 지역의 역사를 바로잡는 심정으로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의 추진 과정, 국가계획과의 연계성, 대안 검토 내용과 선정절차 등을 되짚어 봤다.
도로는 위계에 따라 건설, 유지·관리·정비하는 주체가 다르다. 고속도로는 국토교통부(이하 현 국토부)로 한국도로공사 소관이고, 국도는 국토부 산하 지방국토관리청 소관이다. 지방정부의 의견 등은 참고될 수 있으나,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 지방도, 군도 등은 행정안전부의 위임을 받아 유지·관리·정비 등은 지방정부 소관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재정이 투입되는 고속도로나 국도, 지방도 등 SOC사업은 해당 지방정부나 중앙정책부서에서 입안, 기획재정부에 의뢰해 예비타당성 조사의 선정과 종합판정(AHP)에 따라 가부가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도지사 등 지방정부 관계자가 건설 여부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지방정부 등 관련 기관에서 제안한 사안을 중앙정책부서를 경유해 기획재정부에 제출하면, 분야별 전문위원회를 통해 사업의 필요성과 우선순위 등을 평가해 선정한다. 당시에는 객관성 확보를 위해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 전문분야 대학교수와 국책연구원 등 학술과 기술 부문으로 나누어 수행한다. KDI 중심의 내·외부 전문가 자문회의 등 수차례의 치밀한 검토와 기획재정부의 최종보고 단계를 거치게 된다.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도 이와 같은 절차를 통해 선정됐다. 예비타당성 조사 당시 제안된 노선은 경제성이 낮게 도출됐다. 이에 교통영향권내의 기존 국도와 지방도를 개량·개선·정비하는 방안, 주요구간별 또는 특정 구간을 자동차전용도로화하는 방안 등 여러 대안이 현장 정밀조사를 통해 검토됐다. 그 결과, 일부 대안에서 경제성 지표인 B/C가 ‘회색 존’ 즉, 정책적 판단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사안으로 1차 조사가 마무리됐다.
이후 국가균형발전이 국가 주요과제로 부상하면서,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 방안도 재론 됐다. 지역 낙후도가 전국지자체 중 최하위권인 경북 북부지역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고속도로 건설이 주목됐다.
이와함께 경북도청 이전문제가 쟁점이 되면서, 교통체계 변화가 수도권과 직결체계가 경상북도 전역에 미칠 영향도 변수가 됐다. 이에 따라 당초 중부권 동서간선축인 당진~상주~영덕 간 노선 중 기검토된 상주~영덕 구간의 노선건설계획이 재검토됐다.
필자는 경북도청 이전 관련, 최종평가위원으로 참여해 상주~영덕 고속도로 건설이 경상북도 전역에 미칠 영향 등을 기본전제로 도청이전의 적지 지표를 확정했다. 이후 서울대 연구팀과 함께 상주~영덕간 고속도로 노선을 재검토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KDI, 건교부 등 실무자와 전문가 등은 경북도 관계자들과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
이를 토대로 경상북도를 초도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최우선 건의 사항으로 ‘경북도청 이전과 동시에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의 중요성’이 보고 됐다. 당시 노 대통령은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자”는 의견을 개진했고, 이후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사업은 경제성이 미흡하나 지역개발 효과와 국가균형발전 등 정책적 판단으로 채택됐다. 하지만 ‘경제성이 없는 노선을 왜 건설하느냐’는 감사원의 이의 제기로 한 때 사업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이에 영덕군, 청송군, 안동시 등의 시민단체와 주민들은 감사원, 도로공사, 건교부 등에 찾아가 집단 민원을 제기했었다. 결국 감사원 등이 한발 물러나면서 설계 등의 절차가 순조롭게 추진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천문학적 재정이 소요되는 국가 초대형 SOC사업은 정책집행부서, 기획재정부 등 중앙정책부서가 심도있게 논의, 검토, 조율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을 무시하고 특정인의 민원이나 권력 핵심부의 몇몇 지인을 통해 사업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몽환적 영웅심리(?)가 부른 허풍에 불과하다. 자칫 주요정책 결정에 유력인사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오해와 불신을 조장할 수 있기에 반드시 사라져야 할 구태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불행하게도 왠만한 SOC사업이 진행중인 지역마다 마치 필연적인양 허풍과 허세적인 영웅담들이 생겨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을 비롯해 자치단체장, 광역의원, 지방의원들까지 서로 자신들의 업적인양 내세우는 게 비일비재하다. 자신의 위치에서 의무적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조차 마치 대단한 업적을 쌓은 양 과대포장한다. 이런 언행들 대부분이 지역민, 지역 유권자들을 무시하는 권위주의적인 발상이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은 비단 SOC 국책사업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갖가지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거짓과 위선을 마치 사실인 양 둔갑시키고, 책이나 영화 등을 제작해 자신의 개인적 행각을 호도하고 미화한 기록물들이 넘쳐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자기 편향적인 거짓과 위선적 기록물들이 사실(史實)로 전해질 수 있을까. 언론 보도를 포함해 개인의 자의적이고 편향된 기록물이 사실인 양 치부되는 현상은 사회 질서를 왜곡시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자가당착적이다.
“어떤 사실을 일시적으로 전하려면 말로하고, 백 년 이상 오래도록 전하려면 기록으로 남겨라”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실(fact)을 역사적 사실(historical)로 전하는 기록이 미래를 이끌어 가는 추동력이다. 그 전제는 사실에 근거 정확하고 명확한 기록이다. 이런 맥락에서 당시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한 영웅담을 비롯해 이와 유사한 업적 평가들은 하루빨리 바로 잡혀야 한다.
국가 주요 정책은 타당성 조사, 정책적 요인, 지역파급 효과, 기술적 가치평가, 당위성 등 다각적으로 치밀한 분석·검토를 통해 결정된다. 지역 언론의 대담기사처럼, 초대형 국책사업이 권력적 편향 논리로 결정되는 일은 없다. 일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기획재정부 담당자에게 정책사업을 직접 설명하며 예산 지원을 설득했으나 거절당해 사업을 포기했다. 당시 노 장관은 거절 이유를 설명하는 기획재정부 담당자의 논리와 해박한 지식에 탄복했다는 일화가 한동안 회자됐었다.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 건설 사업 또한 건교부, 기획재정부 등 당시 중앙 정책부서와 전문가 집단의 치밀한 분석과 검토, 객관성과 합리성, 당위성에 근거한 정책적 판단으로 결정된 것임은 당연지사다. 아직도 “왕년에 내가 말이야”라는 ‘권위주의적 허풍’이 지역민 사이에 떠돌기를 바란다면, 낯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