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도전이 신세계의 문을 열어젖힌다. 새 지평을 개척한다는 말이다. 포항에는 그 실증이 셋이다. 포항제철(포스코), 포항공대(포스텍), 그리고 에코프로.
포스코와 포스텍은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세계관으로 무장한 무사욕(無私慾) 일류국가주의 박태준의 리더십과 창업세대의 헌신적 애국심이 창조한 위업이다. 이것은 제철보국과 교육보국의 모범으로 우리 현대사를 빛내고 있다.
포항사람 이동채가 일궈낸 에코프로는 우리나라에서 이차전지소재의 새 지평을 열었다. 현재 뜻밖의 고초를 감내하는 가운데 걸어온 66년의 길을 돌아보며 앞으로 걸어갈 길을 가다듬고 있는 이동채. 나에겐 동갑내기 고향친구(그는 대송면 성좌, 나는 대송면 송정)와 다름없는, 고향사람들이 따뜻하게 맞이할 포항의 영웅.
지난해 4월, 포항에서 그와 함께 물회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자리였다. 내가 일본에서 ‘손(孫)’이란 성(姓)까지 창시한 소프트뱅크 회장 손정의의 어린 시절을 들려줬다. 역사 근처 철로변 판잣집의 한 귀퉁이에 돼지를 치고 돼지우리 구석에서 밀주를 만들어 팔러 다녔다는 눈물겨운 사연이었다. 이동채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손정의 회장네 집에는 돼지도 있고 밀주도 있었네. 그때 우리집에는 그런 것도 없었어.”
손정의는 이동채보다 한 살 위다. 같은 동네에서 컸으면 “정의야” “동채야” 부르고 있을 두 사나이의 공통점은 흙수저 중의 흙수저 출신이고 담대한 도전정신과 각고의 인내와 지혜의 힘으로 세계적 기업을 육성했다는 것이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전지보국, 바이오보국의 깃발을 들었다. 제철보국, 교육보국을 바탕으로 성취해야 하는 포항의 미래 비전이다.
전지보국은 에코프로와 포스코퓨처엠이 그 기반을 조성했고, 코스닥 대장 자리를 오르내리는 에코프로는 성장 대로로 당당히 전진하고 있다.
‘바이오보국 포항’의 주요기반은 포스텍의 의과학과 신설과 스마트병원 설립이다. 포항의 거사이며, 대한민국 바이오제약의 도약에 꼭 필요한 디딤돌이다.
그런데 김성근 포스텍 총장 취임 뒤로 삐꺽대는 소리가 나왔다. 나는 작가로서 지난 1일 ‘포스텍 총장, 속였는가 비겁한가’라는 칼럼을 바로 이 지면에 발표했고, 오후에는 그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다음날 아침에는 시장과 총장이 대화의 자리를 가졌다.
김 총장이 털어놓은 고충들에서 내가 좀 분개하며 가장 공감한 점은 “포스코의 지원금이 없었다”라는 것이고, 내가 가장 아쉬운 점은 ‘임기 3년 5개월 남은 관리 총장’이란 점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인지 천성이 그런지 몰라도 ‘담대한 도전정신을 읽어내기 어렵다’라는 것이다.
의과학과 신설과 스마트병원 설립에는 넉넉잡아 연차적으로 1조원 정도 소요된다. 재원 확보 방안은 필수적 선결 과제지만, 겁부터 내세울 일은 아니다. 신임 포스코 회장이 이사장을 맡는 게 급선무이다. 나는 이사회에 박태준 선생의 유족, 대기업의 오너와 경영자들이 초빙되기를 바란다.
새 이사장과 이사들, 총장, 포항시, 경상북도,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공약한 중앙정부와 국회, 의과학대와 스마트병원의 긴요성을 갈구하는 바이오제약 기업들, 지역 의료법인 등이 협의체를 구성하고 공을 들여 논의하는 과정에서 재원 마련의 방안은 마련될 것이다. 자신의 가족가업을 통해 ‘1000억원 문화재단’을 설립하는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에게도 충분히 설명할 기회가 오지 않겠는가.
그리고 김 총장이 ‘500병상 병원과 배후 인구 100만’을 소극적 견해의 근거로 내세운 것이 내게는 설득력이 크게 모자랐다. 그러한 일반 병원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포항의 기존 종합병원을 보강하겠다.
포스텍 연구중심 의과학대의 스마트병원은 마치 포스텍이 세계적 강소 대학으로 성장한 것처럼 세계적 강소 병원으로 나가야 한다. 포스텍 생명과학의 독점적 기술력부터 최우선 특화하고 가장 뛰어난 특화 분야 중심의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서서 일반 병원의 역할도 겸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가령, 서울 강남의 어느 유명한 성형전문의원을 생각해보자. 규모는 동네의원이다. 그러나 국내 전역에서, 중국에서, 동남아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국제적 병원 기능을 한다. 이러한 성형전문의원의 커다란 확장 같은 병원이 특화 분야 중심의 포스텍 의과학대 부설 스마트병원으로, 일반 병원의 역할도 겸하는 것이다.
물론, 의과학이나 스마트병원은 바이오제약과 임상실험에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자면 전문가의 강의 같은 긴 설명이 있어야 한다.
기필코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의 반열에 안착해야 하는 포스텍은 지금 여기서 삼두마차를 완성해야만 한다. 김성근 총장이 오래 묵은 법인 소유 포스코 주식 등을 현금화하여 향후 10년간 1조2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제2 건학 프로젝트,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의과학대 신설과 스마트병원 설립, 포항으로 오게 해서 포스텍과 결합해야 하는 포스코 미래기술연구원, 이들 셋이 그 삼두마차이다.
다시 문제는 근원으로 회귀한다. 새 지평을 여는 제일의 동력은 역시 담대한 도전정신과 시대정신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는 리더십이다.
거사에 도전하는 길은 험하고 멀지만, 지역사회의 리더십들이 손잡고 앞장서면 반드시 신세계의 문을 열어젖힐 수 있다.
경북매일신문이 4월부터 마련한 ‘이슈 논단’의 첫 필자로서 지난 1일 포스텍 의과학대 신설과 스마트병원 설립 문제에 대한 칼럼을 기고한 이대환 작가가 그날 오후 열렸던 김성근 포스텍 총장의 기자간담회 관련 기사를 읽고 다시 ‘이슈 논단’에 올리는 칼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