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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총장, 속였는가 비겁한가

등록일 2024-03-31 19:39 게재일 2024-04-0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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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환 작가

봄비 내리는 저녁, 서울 광화문. 작가, 교수, 변호사, 사업가(후배) 등이 어우러졌다. 후배가 내게 김성근 포스텍 총장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이가 또래라는 것만 안다고 했더니, 화학계에 이름 높은 학자로서 받고 있던 연봉보다 적게 받으면서 총장으로 갔다는 자랑을 보탰다. 내가 ‘박태준 평전’을 쓴 작가니까 그랬겠는데, 웃으며 한마디 건넸다.

“칠십 고개를 바라보면서도 인생의 의미보다 돈을 더 중시한다면, 속물이거나 바보 아니겠나?”

며칠 지났다. 나는 포항에 왔다. 또 봄비가 어둠을 적시는 저녁이었다. 몇이서 돼지국밥에 막걸리를 주고받았다. 문득 심각해지는 화제가 올랐다.

“포스텍 총장이 의과학대학 설립에 소극적이라는데.”

변호사 선배의 무거운 우려였다. 나는 금시초문이었다. 설왕설래가 길어졌다. 내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이러한 경우에 ‘소극적’이란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첫째는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환경에 안 맞는다는 것이다. 만약 첫째의 경우라면, 그는 포항시민·포항시·포스텍 구성원을 속인 총장이다. 몇 년에 걸친 지역공동체의 중대 현안이고 포스텍과 포항시가 함께 추진해오는 프로젝트인데, 이것이 자기 생각과 안 맞는 거라면 총장으로 오지 말았어야 옳은 거 아닌가. 만약 둘째의 경우라면, 그는 최정우 이사장의 눈치나 살피는 용기가 부족한 총장이다. 올바른 용기가 부족한 리더십은 조직에 도움이 되기 어렵지 않는가.

포스텍 이사장을 겸임한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이 김성근 총장을 뽑았다. 회장 3연임에는 막혔으나 여전히 이사장을 유지하는 그가 포항시민·포항시와 대립해온 것은 온 나라가 다 아는 일이다. 그래서 그날의 막걸리 술잔들은 “이사장이 의과학대학을 반대하니까 총장이 소극적이지 않겠나” 하는 쪽으로 일단 의견을 모았다.

포스텍의 의대(의과학대학) 신설, 스마트병원 설립에 열정을 바쳤던 김무환 전임 총장이 임기를 마치는 지난해 8월의 어느 오후였다. 나는 동갑내기 총장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찾아갔다. 마침 후임과 점심식사를 같이하고 돌아온 그가 학교 동기라며 칭송했고, 그래서 나는 새 총장이 또래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의과학대학, 스마트병원 설립에 대해 새 총장도 잘 아는가요?”

“그럼요.”

“현실적 문제는 어떤 게 있는지요?”

물러나는 총장이 세 가지를 꼽았다. 의대 정원 증원과 신설 의과학과 배정받기, 이사회의 인준받기, 연차적 재원 확보 등이었다.

“의대 증원이 이뤄져도 교육부에 의과학대 설립과 정원 배당을 신청하자면 그보다 먼저 포스텍 이사회의 승인을 받고 재원 계획을 확립해야 하는 거군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답답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안 들어도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었다.

김무환 총장도 최정우 이사장이 뽑았다. 그는 지역사회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것은 총장 연임에서 멀어지는 길이었으나 꿋꿋하게 용기를 보여줬다.

그의 전임 김도연 총장은 가치창출대학, 그러니까 연구 결과가 벤처창업으로 꽃피는 포스텍을 외치면서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과 대학정책에 공공연히 반기를 들었다. 지식인의 소신과 용기를 보여준 그가 임기 종료를 세 학기 앞둔 2018년 봄날, 주총에서 임기 3년을 받으며 연임에 올랐던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출범 2년차 문재인 정권에 겨우 한 달을 버텨서 사퇴하겠다고 표명하더니 그해 여름에 최정우 회장이 등장하고 12월부터는 포스텍 이사장도 맡았다. 마음 비운 김도연 총장에게 그가 연임을 적극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로 김 총장도 총장 후보에 등록했다. 그러나 그는 면접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업어다가 난장 때린 격이었다. 포스텍 이사회 관계자들이 청와대와 무관한 결과라고 강변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이는 드물었다.

두 전임 총장의 용기를 언급한 까닭은, 김성근 총장이 속이고 온 경우도 아니고 연임할 욕심도 아니라면, 그들의 용기를 살펴보는 게 좋겠다는 뜻이다. 물론 포스텍 총장으로 왔으니 기본예의 차원에서라도 ‘박태준 평전’을 일독한다면 뒤늦게 용기의 새로운 참뜻도 덤으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며칠이 지났다. 새하얀 새떼 같은 목련꽃 송이마다 햇살이 눈부신 아침이었다. 카톡이 날아들었다. 신문기사였다. 이강덕 포항시장의 일갈이 제목으로 뽑혀 있었다.

‘의대에 미온적인 포스텍 총장은 포항에 필요 없다.’

내가 들었던 변호사의 ‘소극적’을 시장은 ‘미온적’이라 했다. 격정을 응축한 표현인데 나는 오히려 점잖게 느꼈다. 포항시에서 의과학대학 관련으로 포스텍에 전화를 걸면 안 받거나 뺑뺑이를 돌린다는 기자의 취재가 곁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포항시 도처에는 ‘포스텍 의과학대학 설립은 포항의 미래입니다’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다. 그걸 이루기 위해 시민 30만 명이 연대서명에 동참했고….

김성근 총장에게 ‘박태준 정신’에 비춰서 말해주고 싶다. 리더십은 비겁하지 말아야 하거늘, 소극적이든 미온적이든 그 이유가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는 첫째의 경우라면 지역공동체를 속인 셈이니 스스로 그만두기를 바라고, 자기의 환경에 안 맞는 둘째의 경우라면 용기를 세워서 이사장을 설득하기 바란다. 더구나 최 이사장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유난히 시끄럽게 회장을 마쳤음에도 현재 연임한 이사장의 임기를 2년 8개월이나 남겨뒀으니 포스텍을 위해 새 회장에게 이사장을 넘겨주고 그만 자진 사퇴해야 옳다는 주장들이다. 이게 포항 민심이기도 하다. 한창 떠들썩한 총선 마이크가 꺼지고 나면 민심은 뭉쳐져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화학자 김성근이 아니라 포스텍 총장 김성근으로서 가슴에 손을 얹고 사유해야 할 일들이 따로 있을 듯하다. 작가의 눈에는 적어도 세 가지가 어른거린다.

먼저, 포스텍의 미래이다. 이것은 총장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이다. 의대 증원이 이뤄지면 젊은 이공계 인재의 의대 쏠림이 더 심해지고, 이는 포스텍 학생들의 학력 수준에 악영향을 끼친다. 2021년 1월 최정우 이사장이 “포스텍 기부 체납”을 운운한 그때 이미 포스텍의 정체를 안타까워하는 여론이 한파전선처럼 형성됐는데, 의대 증원은 설상가상이란 말에 딱 어울리는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포스텍 리더십은 주저 없이 ‘의과학대학’ 신설을 결단해야 한다. 다행히 포스텍은 생명과학이 아주 강하며 인프라도 한국 최고 수준이고, 의과학은 의학·공학·기초과학을 융합하니, 그것이야말로 포스텍 전체에 재도약의 활력을 불어넣는 신의 한 수가 아니겠는가. 재원 문제? 사람들이 의기를 결집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도 더러는 폭발적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병원 경영에 대한 걱정이 앞설 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중심의대(의과학대) 부속병원의 특수성을 살려나가고 3D 바이오프린팅, 세포막 단백질 연구, 그린바이오, 마린바이오 등 포스텍 생명과학의 뛰어난 기술력을 임상에 적용하는 가까운 미래를 생각해보면 겁부터 먹을 노릇이 아니다. 당연히 바이오제약 기업들도 동참할 것이다. 호암 이병철 선생과 청암 박태준 선생, 일찍이 두 거장이 포항공대 곁에 암치료 전문병원 설립을 논의했던 것과 같은 선각적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호암 선생의 건강한 삶이 더 길어졌더라면!

또 하나는, 포스텍을 포스코의 미래기술연구원과 거의 한 몸으로 만드는 일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이차전지소재, 수소 등에 주력하겠다는 미래기술연구원을 반드시 포항에 오게 해서 포스텍과 거의 한 몸으로 묶어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포항시민이 앞장서서 미래기술연구원은 포스텍과 함께 가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것은 지역균형발전의 거점을 육성하려는 시대정신의 실천의지도 담고 있지만, 포스텍에게는 박태준 선생의 유지를 받들며 세계 일류로 나아갈 강력한 동력을 장착하는 거사이기도 하다. 과연 총장을 비롯한 교수들이 진정으로 포스텍의 희망찬 미래를 담보하려는 집단지성을 갖추고 있는가? 그러하다면 이제부터라도 미래기술연구원에 대해 시민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총장 자신의 삶에 관한 문제이다. 임기가 4년 미만으로 남았는데 임기를 마치면 포항에 정주하겠는가? 틀림없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포스텍 의과학대학과 스마트병원은 포스텍(포항공대)·포스코(포항제철)·포항시, 더 나아가 대한민국 바이오제약의 향후 40년을 위해 기필코 갖춰야 하는 필수적인 새 인프라이다. 너무 오래 지각한, 이 엄중한 운명적 도전을 회피하려 한다면, 그는 2024년의 포스텍 총장이든 이사장이든 직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경북매일신문은 4월부터 ‘이슈 논단’ 코너를 마련합니다.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문화 등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의견과 목소리가 점증하고 있는 만큼 시민사회에 제기된 여론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수렴키 위한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주지하시다시피 지금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현실은 매우 복잡합니다. 사안에 따라 이해관계가 있고 견해차도 큽니다. 논단을 통해 다름을 살펴보고 고찰하면 당면하고 누적된 과제에 대한 미래적 해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코너 참여는 ‘기고’ 형식으로 누구나 가능합니다. 다만, 개인적인 일이나 비난, 민원 등은 불가하며, 분야는 제한이 없습니다. 특정 사안의 기고에 대해 의견이 다를 경우 반박 투고도 열어뒀습니다. 시민 및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연락처 054-289-5040)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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