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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을이 있는 학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교무실 뒤뜰이 아이들의 웅성거림으로 소란하다. 점심시간이면 으레껏 학생들은 운동장 여기저기에서 자신들의 놀이방식으로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낸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학생들은 창조적인 방법으로 시공간을 종횡무진 한다. 무리를 이룬 학생들은 그 학생들대로, 혼자인 학생은 또 그 나름대로 1시간이라는 짧지만 귀한 시간을 설계한다. 그 모습은 마치 시간 설계자 같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운동장에 있는 것이 산자연중학교 점심시간의 모습인데, 아이들이 교무실 뒷공간을 점령한 것은 흔치 않는 일이다. 그 공간은 도로와 학교를 구분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 놓은 공간이어서 선생님들도 잘 가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그곳은 들풀들의 천국이다.창문을 통해 본 그 곳에는 머리를 맞대고 앉아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4명의 학생이 있었다. 아이들 손에는 호미로 보이는 물체가 들려 있었다. 필자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물었다. “얘들아, 거기서 뭐하니?” 아이들은 고개도 들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였다. 필자가 아이들의 시간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몇 분이 지나고 그 중에 3학년 아이가 고개를 들어 필자의 참견을 허락하였다. “교감 선생님, 해바라기 심고 있어요!” 짧은 대답에는 더 이상 방해를 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아이들이 잠시 고개를 들었을 때 필자는 아이들이 일궈 놓은 3평 남짓한 공간을 보았다. 녹색의 힘을 한껏 자랑하기 시작한 풀들을 뒤엎고 만든 공간은 눈에 확 띄었다. 질서정연하게 이랑까지 만든 학생들은 해바라기 모종을 이랑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아이들은 필자를 보면서 외쳤다. “교감 선생님, 점심시간 얼마나 남았습니까?” “10분!” “얘들아 조금만 서두르자, 누구야 빨리 가서 물 좀 떠와!” 3학년의 정중한 지시에 무리 중에서 지명을 받은 아이가 수돗가로 뛰어갔다. 나머지 학생들은 해바라기를 심었다. 아이들의 호흡은 프로 팀을 능가하였다. 점심시간 마침 예비 종이 울림과 동시에 아이들은 작은 해바라기 밭을 완성했다. 그리고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났다.마을이 있는 학교의 학생들은 지금까지의 내용과 같이 스스로 숨은 땅을 찾아내어 해바라기를 심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김을 매고 땅을 일군다. 가급적이면 무딘 호미로 땅을 달랜다. 해바라기의 키를 생각할 줄 아이들은 이제 막 그늘의 품을 키우기 시작한 키 작은 나무를 피해 해바라기 밭을 일군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거름이 된 해바라기 밭의 가을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움은 마을이 있는 학교의 교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필자는 필자에게 이런 특권을 준 학생들이 너무 고맙다. 그리고 필자가 특별히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할 분들이 있다. 학교가 소재한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마을 어르신들이 그 분들이다.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서울, 인천, 강원 등 전국에 주소지를 두고 있다. 동네로 봐서는 이방인이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께서는 행복 교육을 찾아 멀리서 온 학생들을 친 손주 이상으로 보살펴 주신다. 그리고 기꺼이 학생들을 위해 인성수업을 맡아 수업을 해 주시고 있다. 수업 제목은 “마을 인성 교실”이다.매주 목요일 아침 8시30분 산자연중학교에 오시면 마을 어르신들과 학생들이 함께 수업하는 참의미의 인성 수업 모습을 보실 수 있다. 가정의 달, 감사의 달 5월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특히 학교에서는 가정과 감사가 사라지고 있다. 그 결과 영화에서 보던 끔찍한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대로 가다간 우리 사회는 어쩌면 사건 공화국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학교에서부터 의미 없는 교과서와 시험 따위는 과감히 버리고 그 자리에 사람향기 가득 한 마을을 들이면 어떨까! 아니 정말 더 늦기 전에 마을을 학교로 들이자!

2019-05-07

휘파람과 얼음냉수

▲ 차혜명 선린대 교수·교육학 박사무더위의 연속이었다. 이처럼 더운 날들의 연속이 언제 또 있었을까. 한반도가 정말로 아열대가 되는 것일까. 날씨가 궁금하기는 해도, 주요뉴스가 되기는 드문 일이 아닐까. 지구온난화 탓에 생기는 일이라니 그저 견뎌야 하나. 더위를 식혀줄 소식이라도 한 자락 들려온다면 지친 마음이 쉬어갈 수 있을까. 사람이 만들어 내는 시원한 이벤트라도 한 마당 펼쳐진다면, 고단한 몸에 기운이 조금이라도 솟아오를까. 포항국제불빛축제. 폭염의 한 복판에 축제 마당이 펼쳐졌다.힘들고 복잡한 일들이 켜켜이 쌓여 숨 쉴 겨를도 없는 판에 축제가 웬 소용일까.그것도 이렇게 무더운 한 가운데서. 나라 안팎 소식들에도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뉴스가 드물지 않았나. 정치는 우리를 배반하기 일쑤이며 경제는 하루하루 삶을 허덕이게 한다. 사회면은 마음을 무너뜨리는 소식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가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득하기만 한데. 하지만, 힘든 날 가운데 쉬어가는 일이 필요하듯이, 지친 지역에는 축제 한 마당이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 격려와 칭찬이 힘이 되듯이, 지역공동체는 축제로 하나됨과 열정을 나눈다.축제는 늘 싱싱해야 한다. 해마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와야 하며, 할 때마다 새로움으로 놀라와야 한다.가던 길 다시 가는 것보다 늘쩍지근한 게 또 있을까. 포항 축제에서 화들짝 놀라고 싶었다. 축제 마당에서 까무러지도록 웃어볼 수 있을까. 관람하는 축제가 아니라 내가 한 몫 신명나게 참여하는 축제이길 바랬다. 불빛을 담은 영일대 해변에서 못 잊을 추억을 담아내고 싶었다. 열다섯 번째 맞는 포항국제불빛축제라서 그 연륜에 걸맞는 싱싱함과 놀라움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축제가 지역의 또 하나 활력원이 되어 성장과 발전을 당겨줄 것으로 믿고 싶었다.과연! 도시는 아름다웠으며 열정으로 뜨거웠다. 멋진 불꽃의 향연만큼 달아오른 사람들의 기대와 참여는 여름 밤 더위를 잊게 하였다.누군가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행복하기 때문에 휘파람을 부는 게 아니라, 휘파람을 불 수 있어 나는 행복하다’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무더위와 더불어 맞는 일은 어느 구석 행복이라 부르기 힘들 터이다. 그런 가운데에도 휘파람을 불 여유를 찾을 수 있을 때에야 진정한 행복의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폭염이 불러온 짜증을 휘파람으로 날려 보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행복하게 삶을 이어가는 지혜가 아닐까. 행복의 조건이 턱없이 부족한 지경에 행복하게 휘파람을 불 수 있는 너른 마음. 한 여름 무더위를 뚫고 시민들을 향하여 찾아온 축제는 또 바로 그런 까닭을 담고 있지 않았을까. 축제를 준비한 고마운 손길들은, 무더위를 관통하며 전할 행복을 기대하며 구슬땀을 흘리지 않았을까. 당신들의 땀방울이 도시를 염천에서 구하였다고 일러주고 싶다.여름과 휴가는 축제와 바다를 기대하게 하였다. 열심히 지내온 날들에 선물이라도 주듯이 자신에게 쉼을 선사하고 싶다. 기왕이면, 그 휴가는 ‘얼음냉수’처럼 시원하고 차가운 몇 날이었으면 좋겠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는, 온 몸과 마음이 완전한 충전을 만끽하며 복귀하고 싶다.축제가 선사한 놀라움과 환호성이 여름의 끝자락에 모두에게 백퍼센트 충전과 즐거운 기억으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 열심히 살아온 당신, 축제로 힘이 날 것이다. 축제가 끝난 오늘, 새 힘과 새 기대로 멋진 날들을 만들어 가시라. 휘파람을 불며 얼음냉수를 떠올리고 싶다. 행복해야 하니까.

2018-08-02

어린이 급식안전과 지원센터

▲ 도형기포항시1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장 현재 전국에는 4만개가 넘는 어린이집이 운영되고 있고 약 150만 명의 어린이가 보육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포항에도 약 1만5천명의 영유아들이 보육시설을 이용하고 있으며 500여개의 어린이집이 현재 운영되고 있다. 10년전에 비하면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아동수가 2배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증가로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이에 따른 정부의 보육료 지원정책도 지속적으로 확대돼 앞으로도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어린이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보육시설은 하루 2번의 간식과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영유아 하루 필요영양의 3분의1 이상을 차지하는 양이다. 영유아기는 식품에 대한 기호가 결정되고, 식습관이 형성되며 성장의 기초가 형성됨으로써 건강하고 위생적인 양질의 급식이 제공돼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육시설은 100인 미만의 소규모 보육시설로 어린이급식관리 전문 인력 고용의무가 없어 어린이급식의 영양과 위생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이에 따른 학부모님들의 어린이급식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전국에 206개의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를 설치했다. 현재 경북도에는 경북도 거점센터로 지정된 포항시1어린이급식관리센터(포항1센터)를 비롯해 총 23개의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가 시군구 단위로 설치돼 운영 중이다. 포항시의 경우 2013년부터 자발적으로 센터에 등록한 약 320개 소규모 보육시설이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의 관리와 지원을 받게 됐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미등록 소규모 보육시설은 140여개로 센터의 지원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센터에 등록된 보육시설의 경우 급식전문가들이 식약처의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체계적인 위생안전 지도점검 및 위생교육 , 영양지도점검 및 영양교육 등을 정기적으로 실시함에 따라 어린이집의 급식영양 및 위생수준이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원장, 조리사, 교사, 학부모 등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교육만족도를 높였다. 특별히 학부모들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뉴트리 패밀리의 튼튼프로젝트`와 같은 가족단위 프로그램은 자녀 영양상담, 무지개빛 푸드브릿지 요리놀이교실, 라이스케이크교실 등은 학부모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또한 센터는 영유아들의 올바른 식습관형성을 위해 한동대 내 `신나는 영양나라 대탐험` 어린이교육장을 설치하고 매일 50명의 어린이들과 행복한 체험교육시간을 갖고 있다. `신나는 영양나라 대탐험` 교육장은 식품과 영양, 식품구성자전거, 소화기관알기, 식사예절, 편식, 비만예방, 개인위생관리 등 다양한 주제와 인형극을 비롯한 다양한 오감자극 콘텐츠들로 구성돼 있다.최근 포항1센터는 어린이급식안전지원을 위해 한동대 링크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IOT 기술을 접목한 식중독지수 알림이 기기를 전국 최초로 개발했다. 그리고 개발된 기기는 현재 약 60개 보육시설에 무상으로 보급이 완료돼 시범운영 중이다. 올 연말까지 100대를 추가로 개발해 북구지역 센터에 등록된 모든 보육시설에 보급할 계획이며 식중독관리에도 더욱 힘쓸 예정이다.한동대학교 산학협력단은 센터의 체계성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 `어린이영양나라대탐험` 어린이교육장, 주방위해미생물컨설팅 `Focus On`, 이상적인 소규모어린이급식소 모델 `Ideal Kitchen` 개발 및 특허등록을 지원해 센터사업을 다각도로 후원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이고, 희망인 포항시 영유아들을 위한 지역사회 맞춤형 사업들이 더욱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보육시설 학부모들과 보육시설 관계자 그리고 어린이급식 유관기관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2016-10-31

양치기 지진(地震)

▲ 이주형시인민족 최대의 명절답게 꽤 긴 연휴였다. 누군가는 가을 휴가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명절과 휴가 분위기를 내기에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너무 좋지 않았다.대표적인 것이 5.8 규모의 지진.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이번에는 흔들림이 컸다. 그 흔들림에 많은 피해까지 났다. 연휴 기간 내 TV들은 지진 소식을 전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말했다. 더 이상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고.국민들을 더 불안하게 만든 건 지진대 위에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는 것. 정부는 경주 지역의 원자력 발전소들이 6.8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내용을 연일 방송을 통해 내보면서 국민들을 안심시켰다.선동하기 좋아하는 언론들은 연일 지진 당시 상황을 내보내면서 국민 불안을 조장했다. 언론을 잘 믿지 않는 필자지만 언론이 무한반복해서 내보내는 피해 영상 장면, 특히 어느 상점의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는 모습을 보고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리고 무너져 내린 담, 흘러내린 기와지붕, 금이 간 벽 등을 보면서 필자는 더 무서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진 피해 장면도 장면이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단층(斷層) 지도조차 없다는 뉴스를 보고는 필자의 불안 강도는 최고치를 경신했다. 불안을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 필자는 단층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검색을 통해 단층은 외부의 힘을 받은 지각이 두 개의 조각으로 끊어져 어긋난 지질구조라는 정확한 정의를 알았다. 그런데 그것보다 필자의 눈에 더 확실히 들어온 것은 `양산단층과 활성(活性)단층`이다. 양산단층은 단층이 있는 지역 이름을 딴 명칭이다.그럼 활성단층은? `활성`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어떤 물질(物質)이 에너지, 빛, 촉매(觸媒) 따위에 의(依)하여 활동(活動)이 활발(活潑)하여지거나 반응(反應) 속도(速度)가 빨라지는 성질(性質)”. 우리는 여기서 “활동이 활발하여지거나”에 주목해야 한다. 즉 활성단층이란 활동이 활발한 단층을 의미한다.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글을 쓰고 있는데 또 흔들린다. 그것도 심하게! 갑자기 휴대폰이 바빠졌다. 기숙사 학생들이 걱정된 학부모들의 걱정 전화가 끝없이 이어졌다. 학부모님들의 전화가 잠잠해지자 문자 메시지가 쏟아졌다. 그 중에 국민안전처에서 온 것도 있었다. “09.19 20:33 경주시 남남서쪽 11㎞ 지역 규모 4.5 지진 발생”.언론은 지난번에 발생한 5.8 지진의 여진이 일어났고, 전국에서 지진이 감지되었다고 떠들어 댔다. 지금까지 300여 번의 여진이 발생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강도가 강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번 여진에 의한 여진이 또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근데 정말 뭔가 불안하다. 필자의 불안함을 증명해주는 법칙이 있는데 `하인리히 법칙`이다. 하인리히 법칙은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법칙이다. 최근 계속되고 있는 지진은 어쩌면 더 강한 지진의 예고일지도 모른다.그런데 필자는 지진보다 더 크게 걱정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안전 불감증이다. 우리는 양치기 이야기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큰 일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처음 몇 번이야 놀라서 뭔가를 준비한다. 하지만 그것이 몇 번 반복되고 아무 일도 없으면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린다. 그리고 같은 상황이 발생해도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겨버린다. 만성(慢性)병에 걸린 우둔한 인간들은 양치기 마을의 사람들이 그렇듯 이것이 불행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양치기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활성단층 유무를 떠나 지진에 대해 만전의 준비를 해야 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만 싸우라고, 인간의 이기(利己)가 곧 큰 재앙을 불러올 거라고. 지금의 지진 양상은 분명 예전과 다르다. 5.8, 4.5의 지진은 인간을 속이기 위한 양치기 지진일지도 모른다.

2016-09-22

느림의 품격(品格) 2…시인의 속도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요 며칠 간의 날씨를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를 들라면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훅”을 들 것이다. 전국을 절절 끓게 만든 폭염이 “훅” 갔다. 그리고 가을이 “훅” 왔다. 계절의 변화를 준비할 시간도 없이 훅 가고 훅 와버렸다. 훅 떨어진 기온에 은행잎들이 노랗게 질렸다. 곧 맨몸을 드러내야 하는 나무들이 부끄러움에 붉게 물들 것이다. 그럼 올 한해도 다 가고 만다. 김영랑 시인은 이런 상황을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 삼백 예순 날 하양 섭섭해 우옵네다”빠름에 중독된 인간들 때문에 자연까지 빨라지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자연은 늘 완충 시간을 두어 인간들에게 변화에 준비할 시간을 주었다. 그런데 최근 자연현상을 보면 빨라도 너무 빠르다. 단 며칠 만에 여름과 가을이 자리를 바꾸었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하루, 아니 몇 시간을 두고 계절이 왔다 갔다 할지도 모른다. 비가 한 번 왔을 뿐인데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던 날씨에 대한 보도가 마치 먼 과거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침과 밤 기온은 싸늘하다 못해 차다. 이젠 창문을 열어 놓고 잘 수가 없을 만큼 새벽은 춥다. 이 모든 것이 불과 며칠 상간에 일어났다.계절과 속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면, 아마도 여름은 빠름의 계절일 것이다. 빠르지 않으면 모든 것이 이글거리는 태양에 타버릴 것만 같은 계절이 여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 “빨리 빨리”를 외치며 한여름을 광속으로 살았는지 모른다. 그런 여름이 정말 빠르게 갔다. 그리고 세상이 제대로 숨 쉴 수 있는 가을이 왔다. 여름이 빠름이라면 가을은 느림이다. 올 가을은 진정으로 느림의 계절이 되어 우리가 한여름 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을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다.밀란 쿤데라는 느림과 기억 사이,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어떤 내밀한 상관관계가 있으며,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고 하였다. 올 여름 어쩌면 사람들은 정말 잊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아 빠르게 살았는지도 모른다. 돌아가는 국내외 정세, 특히 정치, 경제, 교육 등을 보면 분명 사람들은 제정신으로는 살 수가 없다.9월을 열매달이라고 한다. 자연은 호들갑 한번 떨지 않고 그 뜨거운 여름을 견뎌냈다. 한 여름을 견뎌낸 나무들이 가지마다 결실을 주렁주렁 달았다. 논밭에는 오곡백과들이 익어간다. 자연은 사람들에게 말한다, 제철에 맞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라고. 이기려고 애쓰다가 실패하면 지고 말지만, 견뎌내려다 실패하면 참고 마음을 추슬러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또 사는 것은, 그리고 관계라는 것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참고 견디는 것이라고 절절 끓는 여름을 잘 견딘 자연이 말한다. 하지만 이기기 위해 사는 인간들은 또 싸우기 바쁘다.속도를 나타내는 표현 중에 소설가의 속도라는 것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걷는 것보다는 빠르고 자전거로 달리는 것보다는 느린 상태를 소설가의 속도라고 하였다. 소설가들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이 속도에 맞춰 삶을 관찰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응용하여 어느 방송작가는 “시인은 걷는 사람보다 더 느린 사람, 아예 걷지도 않고 먼 곳에서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인이 세상에 대해 절대적 통찰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시인의 속도 때문이라고.우리는 알아야 한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이 나라도 한방에 훅 간다는 것을.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시인의 속도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한 발 떨어져서 조금 느리더라도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그럴 때만이 사드(THAAD) 때문에 애꿎은 머리만 밀지는 않을 것이다.

2016-09-01

허무를 넘어 창조주를 기억하라

▲ 정석수 신부·구미종합사회복지관장`코헬렛`의 저자 솔로몬은 세상의 일을 통하여 깊은 허무를 경험하였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라고 했다. 히브리어에 있어 `허무`는 `입김, 실바람, 수증기`라는 뜻이다. 인간의 권력도, 재물도, 심지어 인간의 목숨까지도 하느님 앞에서는 허무하게 사라지는 수증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가지지 못한 권력에 취해 보고픈 유혹, 맘껏 사용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재물이 있기를 바란다.솔로몬은 `코헬렛`의 마지막 장에서 늙음과 죽음에 관한 생각을 털어놓는다.“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해와 빛,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비 온 뒤 구름이 다시 몰려오기 전에 그분을 기억하여라….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깨어지며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고 세상의 창조주를 기억하도록 일깨워 주고 있다.바오로는 세상 위, 하느님을 바라보게 한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허무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을 넘어 영원의 시선을 잊지 않도록 일깨워 주고 있다.땅에 있는 일, 권력과 재물과, 방탕은 이미 솔로몬이 경험했던 것이다. 세상적인 재미를 주는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콜로 3,5)의 그 끝은 죽음이다.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유산 분배자가 되어 달라고 청하였다. 이에 예수님은 분배자가 되기보다 땅에 대한 분명한 관점을 제시해 주셨다.땅에서 나오는 소출로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재산에 매이지 않도록 요청하신다. 그러면서 하느님 앞에 부유한 사람이 되도록 깨우쳐 주셨다.하느님 없이, `자신만을 위한 것`은 결국 허무로 돌아간다. 요즘 세간에 진모씨와 김모씨 두 이름이 회자되고 있다.청운의 꿈을 키운 두 사람, 한 번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하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와 일찍이 컴퓨터의 매력에 빠져 새로운 게임(game)사업을 개척한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었다.한 사람은 돈으로 한 사람은 권력으로, 이 둘의 합이 세상을 밝게 하는 등불이 아니어서 너무 안타깝다. 남에게는 엄했으나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처신이 결국 공직 수행에 최대의 걸림돌이 되었다.어떤 부유한 사람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는 무엇을 알려 주고 있는가?아무리 많이 쌓아 두고 먹고 마시며 즐겨도 결국 “어리석은 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웃은 없고 자신만을 위하는 삶의 끝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고 있다.십여 년 전, 서울에 있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갔었다. 1997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기순 코미디언이 와서 조용하게 기부하고 가는 것을 봤다. 그가 환치기를 통하여 행했던 행위로 인하여 세간의 질타를 받았던 기사를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가 자신만의 유희, 도박에서 빠져나와 이웃을 위한 공익에 힘쓰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박수를 보낸 적이 있었다.“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예수님은 부와 생명의 관계를 명쾌하게 밝히면서 그 출발점, 탐욕을 경계하도록 했다.자신만을 위해서 재화를 모으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자가 되도록 재물을 사용하는 슬기가 필요하다.

2016-08-09

영원을 준비하면서 (하)

▲ 이원락 대구효산요양병원장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다. 그래서 삶의 마지막을 평온한 상태로 보내야 새롭고도 아름다운 세계가 그의 영혼의 면전에 펼쳐질 수 있다. 이러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잡된 것을 털어내고 스스로가 성실하고 진심어린 마음을 갖고자 노력해야 한다.서서히 죽어가지만 아직 대화가 가능한 자는 그의 말하는 태도나 내용, 또는 죽음을 수용하는 방법에 따라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와 슬픔을 줄 수도 있고, 반대로 용기와 감동을 선사할 수도 있다. 주위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하겠다.임종의 최종적 의미는 `아직 살아 있는 동안 영원한 생명을 가지기 위해 궁리하라`는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무언의 설득이다. 죽음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끝없는 세계로의 몰입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보다는 지금 이곳의 짧게 남은 생존 시간의 틀을 벗어나서, 삶 전체가 끝없이 길게 영원으로 이어지게 변화 되는 계기를 의미한다.임종은 영혼을 위해 자신의 신체를 마지막으로 희생시키는 절차이다. 그러므로 영혼에 대한 정신적 성숙은 임종을 통해 이뤄진다. 신체가 영혼을 위해 낱낱이 흩어지는 과정인 죽음이 없으면 완전한 영적인 성숙의 기회는 있을 수 없다. 임종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개별적 인간에서 절대적 우주의 당당한 멤버로 나아가는 하나의 큰 동기이기 때문이다.영적으로 준비하는 임종기간이 되면 그는 신의 말씀을 한 걸음 한 걸음 뒤따르는 것,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화해와 용서하는 것, 세상 전체와 하나가 되는 것, 등을 하면서 마무리를 준비해 나간다. 자신의 임종과 죽음, 그리고 삶을 영성적으로 깊이 관조하다 보면 늦게나마 사람들은 뜻밖에도 `일상적인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사람들은 평소에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지도 않고 살아가지만 누구나 자기의 삶은 그 나름대로는 뜻이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모두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행복,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나 죽음, 그리움과 불화나 증오가 뒤섞인 생활 등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거쳐 왔다. 그 후 비로소 삶에서 기쁨을 찾아내고, 슬픔을 극복하기, 자기의 본성을 받아들이기 등을 하면서 그는 삶의 의미를 발견해 나가게 된다.그래서 침상위에 누워 있는 노인들은 마음속에서 울려 나오는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영혼의 세계 너머에 있는 자유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무조건 사랑을 실천하고 싶어 하면서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점차 그는 천국에 가까워진다.어떤 이가 임종하기 전에 병실에 누워 있을 때 와서 문안한다면 그들 두 사람은 서로 의미 있는 소중한 가치를 나누게 된다. 이때는 물질에서 벗어나 버렸기 때문에 그들이 나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서로`사랑과 용서`하는 것뿐이다.이제 임종으로 가는 자는 마음을 열어서 친구나 가족,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은 물론, 이제까지 만났던 사람들 모두를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마음으로 응시하고 눈으로 대화를 하면서 서로사이에 있었을지도 모를 상처를 어루만져 준다. 그래서 서로 용서함으로써 죄의식에서 벗어나게 된다. 자연히 벅찬 감동으로 가슴을 가득 채우면서 그는 저세상으로 간다.그러므로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임종하는 어른들로부터 살면서 무엇을 해야만 영원으로 이어질 것인가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인생에서 나의 몫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이나 분위기에 맞게 마음을 정리해 한다.이러기 위해서는 가끔 노을이 하늘에 뻗쳐 있는 날에는 아무도 없는 백사장을 혼자 걸어보아도 좋다. 여하튼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서 명상을 한다거나 우주의 질서에 대해 고심하는 시간을 가져 볼 것을 권한다.

2016-08-05

영원을 준비하면서(상)

▲ 이원락 대구 효산요양병원장오늘도 요양병원 중환자실에서는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어느 나이 많은 노인이 몰아쉬던 숨을 거두어들인 것 같다. 신이 허락해 주신 기간을 다 채우고, 이제는 신에게 그의 인생 족적을 보고하러 떠나 가버린 모양이다. 산다는 것은 피로, 고난, 괴로움, 좌절 등이 동반되는 험난한 과정이다. 그러나 죽어서 신에게 신고식을 할 때 우리는 인생 전체를 그럭저럭 또는 어처구니없이 살아왔다고 보고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지하게 삶을 살지는 못했을 지라도 최소한 사는 동안 계속해서 악을 행하거나 그냥 시간을 낭비하면서 흘려보내지는 말아야 한다. 삶을 끝내고 신을 만날 때 성실치 못한 인생에 대해 후회의 양을 줄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 때는 신에게 어리광을 부리면서 선처해 줄 것을 청원해야 하기 때문이다.인간은 젊은 시절에는 힘차게 살아간다. 그러나 살아갈 기간이 줄어든 노인이 되면 혈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변한다. 그러다가 보행이 둔해져 감에 따라 그들은 생업 활동을 줄여서 점차 삶을 단순화시켜 간다. 늙어 가면 갈수록 더 많은 인생 과업을 포기해 나간다. 거기에 따라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 점점 더 변하게 된다.사람들 대부분은 평소에는 자신의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다가 임종 근처에 가서야 비로소 삶의 이유를 어렴풋이 깨닫는 경우가 많다. 살아가는 전체 기간이란 죽은 이후에 만나게 될 자기의 영원성을 위하여 준비해 나가는 시간이 된다. 이것은 인생이란 `영원 속에서는 어떤 상태로 되어 있어야 하나?`를 생각하여 시행하려는 긴 과정이라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누구에게든 죽음은 막연하게 미래 언젠가 나타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니고 반드시 나타나서 경험해야 할 사건이다. 그래서 힘들게 살아와서 죽음 앞에 섰을 때 영원한 생명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늙어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자기 인생이 붕괴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생각으로 모두가 우울감에 빠져든다. 이때쯤 갖게 되는 `죽은 이후`를 긍정적으로든 또는 부정적으로든 보는 관점에 따라 각자의 영혼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달라진다. 부정적인 시각은 종말의 시간을 의미하기 때문에 좋지 않다. 이런 시각을 가진 자는 생각하는 방향을 수정하여서 지금 이 시간을 영원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죽음을 앞두고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들은 대단히 많다. 그 중에서 정신적으로는 외로움과 고립, 우울, 후회, 절망 등이 있고 그리고 신체적으로는 전신이 쑤시고 아픈 몸이 있다. 육체는 진통제로 다스리겠지만 이런 어두운 정신세계를 극복하려면 그런 힘은 `사랑과 피부접촉`으로만 가능하다.즉, 죽음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자의 삶에 대한 감회는 만났다가 작별하는 인사를 통해서도 상대편 사람들의 생각 속으로 녹아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말보다 가벼운 신체 접촉이나 미소가 상대에게 그의 순수한 마음을 더 잘 전해 주기 때문이다.인간이 죽음과 마주한다는 것은 영적인 세계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그러기에 얼마 남지 않은 임종에 도달할 때까지 인간의 평소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영원을 생각할 것을 스스로에게 권한다. 이렇게 생각하도록 하는 권유를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은 지혜와 자비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이나 용서, 감사, 공유, 긍정하는 마음 등을 갖도록 더 많은 영향을 준다.

2016-07-29

돈과 행복

▲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도 거기에 비례할 것으로 착각한다(전도서. 6장1~3). 국민 소득이 8천400달러였던 1993년에는 52%가 행복하다, 42%는 그저 그렇다, 6%는 불행하다고 답했다. 20년이 지난 2011년 말 국민 소득이 3배인 2만3천달러일 때, 행복 여론 조사에서 52%는 행복하다, 40%는 그저 그렇다, 8%는 불행하다고 답했다. 이것으로 보면 국민의 행복감은 경제 성장과는 비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3배를 더 잘 살아도 행복 지수는 비슷하다. 또 2011년 월 소득이 500만원 이상인자는 57%가 행복하다고 했고, 200만~499만원 정도의 사람은 52%가 행복하다고 했다. 200만원 미만이 사람은 50%가 행복하다고 했다. 이로보아 돈의 많고 적음보다도, 내가 내 삶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행복의 중요한 평가기준이 된다.여론 조사 결과, 큰 부자라 하더라도 평범한 사람보다 행복을 느끼는 양은 조금 더 많을 뿐이었다. 빈곤의 문턱을 넘어가서 생계가 안정되면 재산이 늘어난다 해도 그것이 행복과는 직결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생활 형편이 상류인 사람들 중에서도 43% 정도는 행복을 느끼지 않았다. 돈이 행복에 절대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돈에 중독되어 있지는 않을까를 걱정해야 한다. 돈에 중독되어 있는지 여부는 돈을 가지고 있다가, 빈털터리가 돼 봐야 알 수 있다. 마치 흡연자가 담배를 피우다가 끊어 보면, 중독 여부를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그럼, 진정한 부자는 누구일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많이 가진 자가 부자이다. 이 세상에 제일 중요한 것은 햇빛, 참사랑, 우정, 이웃 도우기 등인데 이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면 약전 골목이나 먹자골목이 있듯이 `행복 골목`도 생겨서 터질 정도로 성업할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점을 쳐 봐도 점쟁이에게 돈만 주는 것일 뿐이다.부자란 사랑하는 사람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를 말한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기를 매우 좋아한다. 이렇게 볼 때, 이태석 신부는 거대한 부자이다. 그 신부님이 부자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자가 있으면 우리를 설득해 보라. 불가능할 것이다.사랑이란 돈으로는 살 수 없다. 사랑뿐 아니라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경치 등 대자연도 돈거래가 불가능하다. 이것들은 자기 이름으로 등기해 두지 않아도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미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으므로 그들 전부가 부자일 수 있다.자본주의 사회란 인간의 욕망을 중심으로 하여 돈이 으뜸가는 기준이 되어 형성된 사회를 말한다. 그것은 소비를 원동력으로 해서 사유재산을 증식하기 위해 경쟁하는 체제이다.지금은 소비 경제 체제에 있지만 인간들은 현명하기 때문에 미래에는 `더불어`를 생각하는 삶을 선택해야만 좀 더 잘살아갈 수 있는 세상으로 바꿔 갈 것이다.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고, 제도를 보강해 `함께 살아가자`고 주장해야 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이것은 개인의 노력이나 자선 형식으로는 효과가 거의 불가능하다. 국가 차원에서 행해야 비교적 고른 혜택이 가능하다. 국가의 이런 장치를 `복지제도`라고 한다.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체제에서는 자유로이 자기 소유를 많이 모을 수 있다. 그러나 자유는 남을 위해 절제돼야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이제는 자본의 쏠림으로 크게 벌어진 빈부 격차를 좁혀야 한다. 그래서 교육은 공유정신을 가질 것을 가르쳐야 한다.머릿속에 꽉 찬 돈에 대한 집착을 줄여야 나의 돈은 `남의 것을 잠시 가지고 있을 뿐이다`라는 공유의 정신이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돈이 나의 친구나 하인이 되면 돈은 충직한 종이 된다. 그러나 돈이 나의 주인이 되면 돈은 무자비한 독재자가 된다. 돈을 친구 정도로 사귀는 노력이 필요하다.

2016-06-17

부부 인생의 마지막 부분

▲ 이원락 수필가·경주청하요양병원장정열에 불타던 청춘 시절에 만나 일생을 약속한 부부는 그들만의 `인생 수레`에 두 개의 바퀴가 되어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과정 동안 둘은 수많은 갈등과 부부싸움, 자식을 낳아 기르고, 재물의 형성이나 파산, 봉변을 당하거나 용서, 출세와 실패 등을 겪어가는 동안 어느새 백발의 머리에 잔주름이 가득한 노부부가 되어서 잘 걷지도 못하게 된다.어느날 늙은 부부 두 사람이 산책하던 중 부인이 넘어졌다. 평평한 길에서 서로 팔을 잡고 천천히 걸었는데도 갑자기 쓰러지면서 허리를 삐어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이런 경우에 남편인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목욕하기, 화장실 가기, 옷 입기 등을 보조할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는 여러 면으로 수발을 들지만 힘이 줄어든 상태여서 능률을 전혀 보이지 못한다.이런 나이가 많은 노인들은 죽음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기 전에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 즉 청력, 기억력, 친구들, 삶의 아름다운 장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 등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무언가 계속해서 잃어가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이다. 점점 많은 것을 잃어가기 때문에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충족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근래에는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할 경우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노인들은 삶의 상당 기간을 쇠약한 노인이 되어 살아간다. 즉 노인의 몸은 점점 줄어든다. 그러나 노인은 힘이 아직 자기 몸에 조금만 남아 있어도 기쁨을 찾으려 한다. 그럴 때는 사람들을 옆에 두고 이야기하면서 같이 시간 보내고 싶어 한다.시간이 더 흐르면 시력은 점차 희미해지고 큰 소리로 말해야 겨우 들을 수 있으며 기억력마저 줄어든다. 일상생활은 생각이 모호하게 흐려짐 속에서 일어난다. 부부가 함께 있는 동안에는 의미 없는 수준의 말을 여러 번 반복한다. 부부 중의 한 사람은 대화를 들어주려고 옆에 머물러 있다. 상대가 잊어버릴까 자기가 옆에 있음을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부부 서로는 돌보는 것에서 또는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갖는다.이때쯤까지는 그래도 상대에게 옷을 입히고, 씻기고, 먹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 밤이면 서로의 팔에 기댄 채 포근하게 누워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부부는 그 시간이 가장 소중한 순간으로 기억에 남는다. 이때가 이제까지 살아온 그 어느 때보다 확실히 상대를 사랑하며 속속들이 안다고 느끼는 순간이다.그러나 나이가 많아지면서 점차 어려워져가던 의사소통 방법이 이제는 모두 불가능하게 되어버린다. 이때는 바닥에 글씨를 써보아도 인식하지 못한다. 이 시점에서는 간단한 것, 예를 들어 옷을 입히는 것조차 되지 못한다. 모든 것이 악몽처럼 대단히 혼란스러운 일로 변해버린다. 둘은 말없이 누워 있고 사방은 조용한 적막강산의 어두운 밤이다.이제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더 깊이 망상에 빠진다. 이제는 더이상 서로를 돌볼 수 없다. 노약한 몸으로 겨우 숨쉬며 살아가는 동안 생기는 스트레스 등으로 심히 지쳐 있다. 자식은 이런 상태를 경험해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옆에서 이런 장면을 보아도 많이 늙으면 나타나는 현상으로 생각하여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그후 할머니는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 이때 할아버지는 허둥대면서 “내 몸의 일부가 없어진 것 같아요. 팔다리를 잃은 것 같아요”라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이제는 아내가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그리고 `생애의 마지막 부분을 따뜻하게 사랑을 나누면서 함께 지냈었다`는 것이다.

2016-05-20

동물 사랑은 너른 인간성에서

▲ 이원락 수필가·경주청하요양병원장종교에서는 사람들에게 사랑이나 자비, 또는 어진 마음(仁)을 가지라고 한다. 이는 생태적으로 인간은 악의 요소를 소유하고 있거나 태어나서 살아갈 때 악을 먼저 배워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하기야 나 자신도 남들이 보지 않을 때에는 나쁜 짓을 하고 싶기에 다른 사람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행동을 조심해야 함이 옳은 것이다. 얼마 전 SBS `TV 동물농장`에서 어떤 사내가 자전거에 개를 묶어서 질질 끌고 달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또 최근 한 신문에서는 화살로 순진한 개의 배를 관통 시켜버린 글을 읽었다.주택지의 도로에는 방음벽을 설치하여 시민들에게 시끄러움을 줄여준다. 그러나 어떤 곳에서는 투명한 방음벽으로 인해 새들이 부딪혀서 보호종 새들마저 죽어가는 실상을 들어본 적이 있다. 고의는 아니겠지만 길가에 투명벽 설치로 죄 없는 동물들을 죽게 하는 인간이란 과연 지상의 운영을 맡을 최고의 종(種)이 될 수 있을까?근래에는 바둑판같이 가로세로 길을 뚫어서 도로가 잘 닦여 있다. 그 위로 사람들은 휘파람을 불면서 신나게 달린다. 인간들은 신나게 드라이브 할 수 있겠지만 짐승들은 절벽에 추락해 버리거나 달리는 차에 로드 킬을 당할 수 있다. 일반 길에도 야간에 차가 달리면 소음 번쩍이는 불빛으로 짐승들에게는 살 곳이 못 된다. 결국 짐승은 점차 사라질 것이고 지상에는 인간만이 북적댈 것이다.또 강물은 댐으로 막아서 인간에게 유용하게 만들어 두었다. 그러나 물길이 막혀버려서 물고기들은 깊은 물에서 먹고 살 범위가 줄어들었다. 게다가 촘촘한 그물로 고기를 싹쓸이 잡아버린다. 기생충에도 많이 걸린다.이렇게 짐승을 함부로 잡아버리는 사람은 그의 성격이나 인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마음의 성숙도는 커 나온 환경에서 만들어 진다. 가정교육의 부재, 밥상머리 교육이 없는 자들이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자들은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취미 생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모두는 그곳에 심취할 수 있고, 취미활동은 인간들의 마음을 가뿐하게 하여서 내일을 잘 준비하게 한다. 그러나 닭싸움이나 개싸움에서 돈내기를 하는 취미는 지옥에 들어가기 직전, 입구에서 먼저 들어가려고 하는 행동이다.그런가 하면 반대로 짐승들이 병을 앓거나 다친 동물을 보살피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천당에 들어가기 싫어도, 하나님이 끌어당겨 넣어버릴 정도로 선행을 하는 경우이겠다.`TV 동물농장`에서는 짐승에게 무한히 애정을 보내는 자가 있는가하면 짐승을 괴롭히면서도 일상생활을 부담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보여준다. 생물을 괴롭히는 나쁜 성격을 가진 사람은 가정에서 그 부모의 행위를 보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는 좋은 일을 했을 때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지 못했고, 나쁜 짓을 했을 때에도 부모의 꾸중을 듣지 못하는 무관심의 결과물이었다.아무런 생각도 없이 동물을 괴롭히기 좋아하는 인격자는 그의 자식들을 사랑하면서 훌륭한 인격으로 키울 수 있을까? 짐승에 악행을 하는 어른은 과연 학교에서 선생님과 진지하게 자식의 장래를 걱정할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 가정교육을 한다면 미래에 자식이 훌륭한 인물이 된다고 굳게 믿을 수 있을까?얼마 전 TV에서는 미국의 어느 아주머니가 잃어버렸거나 병들었거나 상처를 받아서 길거리에서 신음하는 고양이 80여 마리를 키우다 보니 집안은 온통 고양이 천지였다. 기자가 그녀에게 “귀찮지 않으세요?”라고 물어보니 “같이 사는데 불편이 없고 오히려 긴장이 풀려요”라고 대답했다. 그 여자가 고양이 세계에서 석가모니나 예수의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서 나는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2016-03-24

TV드라마가 주는 휴머니즘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필자는 TV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이다. 특히 사극보다는 인생드라마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막장 드라마의 마력에 푹 빠져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인생드라마 속에서 어려운 삶을 극복하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풋풋한 사람냄새가 좋기 때문이다. 저품격 드라마라고 통칭하는 막장 드라마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는 방송물로 마냥 지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과 보편적 생각을 뛰어넘는 극적인 반전 그리고 시청자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드라마틱한 줄거리로 구성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저품격 저질 드라마라고 평가한다는 것은 방송이 주는 시각적 재미와 상상력을 무시한 주관적 판단으로 보인다.반전이 주는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연기자들의 과다한 연기가 일상성에서 벗어난 행동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그 역시 방송의 묘미로 큰 무리는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막장 드라마의 종말은 극적인 반전이 주는 자극적 결론이다. 그 결과는 우리의 정서와 문화 속에 깊게 깔려있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이념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권선징악이 주는 뻔한 결론이 더욱 시청자들을 자극해 중독성을 더욱 유발시키는지 모른다.얼마 전 모 방송사에서 종영된 `부탁해요 엄마`는 그동안 우리가 늘 봐왔던 막장드라마의 굴레에서 벗어나 가족간의 이해심과 깊은 배려가 짙게 배어 나와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던 의미 있는 휴먼드라마로 많은 후담을 낳고 있다. 억척스럽게 가족들 뒷바라지를 하며 자신의 삶과 인생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이 드라마는 국내 정상급 탤런트의 호화 캐스팅과 탄탄한 줄거리의 구성이라는 특징도 있지만 무엇보다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애절함이 시청자의 눈시울을 더욱 촉촉이 적셨는지 모른다. 세상에 다시없는 앙숙 모녀를 통해 징글징글하면서도 짠한 모녀간 애증의 이야기가 진지함과 코믹함을 적절히 담고 있기에 시청자들을 TV앞에서 쉽게 떠나지 못하게 했다.말기 폐암으로 투병 중이던 엄마(고두심)와 함께 온 가족들이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날 아침 조용히 가족곁을 떠났던 마지막회 시청률은 38.2%(전국기준)을 기록하며 자체 최고기록 경신이라는 의미있는 결과를 안겨 주었다. 이러한 드라마의 성공 요인은 탄탄한 대본과 연출, 그리고 공감을 부르는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가 가미됐기에 이런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이처럼 인생드라마가 주는 매력은 드라마 상영시간을 기다리는 즐거움과 함께 시청자들의 마음을 순화시켜주는 카타르시스(Catharsis)적인 요소가 함께 담겨져 있기에 그 의미는 배가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막장 드라마가 가지는 시청률 지상주의에서 비롯된 자극적 구성과 편집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 찾기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이제 우리나라 방송도 고정관념화 된 시각에서 탈피해 방송사의 자율적 정화 노력을 통해 고품격 드라마를 지향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다각적인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다양한 장르의 드라마가 기획돼 다채로운 연령에 맞는 시청자의 취향을 골고루 만족시킬 수 있다면 우리나라 방송드라마가 가지는 존재감은 더욱 상승할 것이다. 전 세계 TV시청자들이 우리나라의 고품격 드라마에 푹 빠지게 된다면 그 또한 우리문화의 지속적인 성장이며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의미 있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2016-02-24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려면

▲ 이원락 수필가·경주청하요양병원장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되어 내면을 안착시킬 때 비로소 우리는 평안함을 느낀다. 이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 그는 자기 주위마저 안락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사방에서 일어나는 여러 여건들로 우리의 생각에 풍파를 일으켜서 매일의 삶은 불안을 연속시킨다. 인간은 평화를 바라면서도 마음속에는 탐욕과 증오심, 싫어함, 시기함 등으로 꽉 차서 화평한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원한과 대결을 계속 부추긴다. 그래서 세상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투사정신을 부추기고 전쟁에서 승리하면 영웅시 한다. 과격함을 좋아하고 평화를 지향하면 나약한 사람으로 몰아붙인다.세상은 한시도 평화로운 시간이 없다. 몇 년 전 복지국가인 노르웨이에서도 극우 청년의 테러로 80여 명이 목숨을 빼앗겼고 그 당시 영국의 복판에서도 난동과 폭력, 약탈이 자행되기도 했다. 또 지금 아프리카나 중동지역에서도 살상이 계속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남북 관계가 일촉즉발인 관계가 계속되고 있다.인류 역사에서 보면 평화를 주창하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죽임을 당하거나 말로가 비참하였다. 흑인의 자유와 인권을 위한 링컨, 히틀러 시대에 평화를 위해 노력한 폰 회퍼, 흑인의 비참한 현실의 개선을 위해 노력한 루터 킹 목사 등이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인류를 구원하려던 예수는 `소란 죄`로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했다. 이와 같이 평화는 많은 대가를 치루면서 조금씩 자라왔다.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전쟁이 없어도 가난하거나 여러 질병이 만연한 곳, 독재정치를 하는 곳에는 평화가 없다. 사상 대결이 있거나 끝없이 내분이 일어나는 곳이면 평화는 떠나 버린다. 너무 조용한 것도 좋지 않다. 억압된 분위기가 여기에 속한다. 억눌려서 조용하기만 하고 논쟁이 없다면 그곳은 공동묘지와 같은 곳일 것이다.그럼 평화로운 곳이란 어떤 장소일까? 그곳은 현제명의 노래에서와 같이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 서로가 격려하는 화해의 언덕이다. 돛단배가 노를 저어 인생의 바다에서 험한 물결을 넘어가서야 비로소 도달하는 산천경개 좋은 언덕, 자유, 평등, 행복이 가득한 곳이다. 갈등으로 소란한 곳이 아니고 문제점이 있을 때, 화합하여 노력하는 곳이다. 그곳에 도달하려면 많은 험하고 어려운 고난을 이겨 나가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가슴 속에 이런 긍정적인 각오가 넘쳐날 때 바로 거기에 평화가 깃들 수 있다.평화는 더 좋고, 더 아름답고 건강하고 정의롭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에 있다. 단점과 갈등과 경쟁심으로 가득 찬 가슴을 가진 인간이 삶을 지배하면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무질서, 질병, 억압, 인권 말살, 사람차별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깃들지 않는다. 그래도 있다면 염려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가짜 평화가 있을 뿐이다.평화를 가지기 위한 인간들의 피나는 노력 중 제일 크게 요구되는 것은 가난에서 해방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사회의 모든 조직을 가동해야 한다.외국인 근로자도 여기에 포함된다. 또 한 가지는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탈출시켜야 한다. 그래서 사회의 모든 소식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민주화가 뭔지 삶의 지향점은 어디여야 하는지를 토론해 보아야 한다.그 다음으로는 환경보호로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 지금은 환경파괴로 인해 전 생명체가 버려지는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자본주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부추겨서 지구의 온도를 변화시키고 있지만 성장과 발전, 개발 지상주의로 파괴되는 생활 터를 잘 보존해야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터전이 된다.평화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는 매우 어려워 보이지만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은 없다 했다.

2016-02-17

연명의료 중단이란

▲ 이원락 수필가·경주청하요양병원장지난 8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안(웰다잉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우리나라에 호스피스·완화의료 개념이 도입 된지 약 50년 만에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허용하는 법이 제정된 것이다. 10여 년 전부터는 상당수 시민 단체들도 법제정을 촉구하였다. 이 문제는 2008년 세브란스 병원에서 김 할머니 사건이 소송으로 비화되기도 했다.이 법안은 국민의 80.2%가 찬성을 하고 있고,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존엄을 보호하는 범위와 한계 안에서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자는 것에 제정 목적이 있다. 그래서 유익하고 필요한 의료 행위와 기본적 돌봄을 마지막까지 행할 것을 이 법에서 명시했다.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갖는 대상은 1. 암, 2. 후천성 면역 결핍증, 3.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4. 만성 간경변증, 5. 그 밖의 보건복지부 령으로 정하는 질환에서 적극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병을 앓는 자로서 회복 가능성이 없고, 증상 악화 등으로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총 2명이 수개월 내에 사망을 예상하는 사람이 해당된다. 생명 연장을 인위적으로 하지 말자는 것이다.연명의료의 범위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이들 병이 의학적 시술로도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 연장될 때, 연명의료에 대한 기본 원칙과 이들을 중단시키려 할 경우에 지킬 기준, 이행 방법, 그리고 이를 결정하는 절차, 관리 방안 등을 정해 둔 법이다.모든 행위는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수개월 내에 죽을 환자에게 스스로가 결정한대로 편안한 죽음을 가지는 것을 보장하는 법이 된다. 그래서 죽음을 인간화 하는데 기여할 수 있게 하였다.연명치료 중단여부의 결정은 연명의료 계획서,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또는 환자 가족의 진술을 통해 환자의 의사를 확인한 경우 등을 통하여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에 기본을 두고 있다.그래서 환자의 의사(意思)를 모를 경우, 환자 가족과 전문가의 동의는 물론 다양한 방법을 통해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토록 했다.즉 편안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갖게 하는 것으로서 누구나 긍정할 수 있는 기본 권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죽음이 삶의 한 부분이라면, 죽음을 둘러싼 결정에 시비가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래서 이러한 법을 제정하는 데에서 논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다.무엇보다 회복 가능성과 악화 가능성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그 한계를 설정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누가 어떻게 판단을 할지가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사전연명 의료 의향서`나 `연명의료 계획서`를 통해 당사자가 분명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했을 때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런 것이 없는 경우에는 1. 환자가 그럴 뜻이 있었으나 서류를 남기지 않았을 때, 2. 환자의 뜻을 몰랐을 때에는 논란이 가능하다. 거기에다가 유산 상속 문제가 남아 있을 때 등의 경우와 같은 이해관계가 개입되면, 시비는 커질 것이다.앞으로도 더 진척해야 할 분야로는 1.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치료를 의사가 거부할 수 있는지의 문제, 2. 장기기증이 전제되지 않아도 뇌사자에게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3. 희망이 없는데도 치료함으로써 치료비 부담에 대한 가족의 부담감 문제(특히 생계가 어려운 자) 등이 있을 수 있다.

2016-01-20

연말 계획을 완수하려면

▲ 이원락 수필가·경주청하요양병원장우리는 3차원의 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4차원 이상 무한 차원까지는 하나님의 작은 가방 속에 하나의 점(點)으로 들어 있어서 인간은 그것을 느낄 수가 없는 모양이다. 마치 우주가 탄생될 때, 빅뱅이라는 사건을 통하여 수백억 도의 열을 뿜으면서 순간적으로 하나의 점에서 우주가 생성되었다는 과학자들의 주장과 같은 원리이다.시간과 거리를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에 맞게 필요한 길이로 토막 내어 작게 쪼개어 두었다. 이제 연말로 접어드는 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지나온 1년 동안 실적을 회상하고, 다음 해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게 된다.연말인 이때 나는 독자들에게 희망찬 송구영신으로 알찬 내년이 되기를 기원한다. 사업의 성공, 자녀의 좋은 학교 입학, 연구의 실적 쌓기, 더 행복한 가정생활 등을 다음 해에는 꼭 이루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런 것은 실행하기가 좀 막연하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성공이나 더 좋은 내년을 위해 약간의 제안을 하려 한다.21세기는 20세기와는 다른 세상이 전개될 것이다. 각자의 생각은 매우 예리해져 가고, 앞으로는 더 치밀성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조직을 운영하는 자는 좀 더 현실에 맞는 운영프로그램을 가져야 한다. 계획을 수행 할 때 만나는 상대도 첨단적 사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시간도 더 잘게 쪼개어 하루를 보내야 한다. 무엇보다도 목적을 막연하거나 희미한 것에 두지 않고 목표는 실현성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현실성이나 성취 가능성이 없는 너무 거창한 것은 돈키호테적 발상이다. 생각으로만 가능한 것을 목표로 추진한다면, 곧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세상일에는 단번에 이룰 수 없음으로 조금씩 해 나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출세나 재력 정도 등 어떤 목표수행에는 여러 해가, 때로는 평생 동안 걸릴 수도 있다. 이런 것은 해마다 조금씩 이루어 나가야 할 목표가 될 것이다. 여하튼 차근차근히 해 나가야 한다. 세상일에는 단번에 뿌리를 뽑아버리는 일은 거의 없다.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면, 그는 이제까지 갖고 있던 행복을 받을 자세가 바른 것이었는지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행복을 위해 자기는 변하지 않고, 상대가 변하도록 하는 계획은 의미가 없다. 끊임없는 인내심과 안착된 마음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의욕을 가지고 너무 크게 작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에게 “왜 그렇게 큰 계획을 세우느냐”고 물으면 간혹 “못 이룰 계획이지만 이렇게 계획을 크게 세워야만 조금이라도 더 크게 일을 이루어낼 수 있어요”라는 대답을 들을 때도 있다.그러나 사람들은 정작 오해하고 있는 친구 관계를 풀어 본다든지, 인성의 변화나 예술 분야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나 많이 독서를 하고 예술의 어느 부분을 어느 정도로 노력해 볼까 등은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연말인 이때, 세월이 지나면 엉뚱한 길로 들어가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쯤 나아갈 길을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계획을 실행하려고 작정을 할 때에는 굳은 결심이 강할수록 완수하는 능력이 증가된다. 강한 결심으로 그 계획의 실행을 습관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습관화란 여러번 반복함으로써 `하기 싫다`는 등의 저항감이 없이 자연스레 행하게 되는 행위를 말한다.그러나 습관화되기 까지는 매우 힘들다. 적어도 10회 이상을 반복해야 저항심이 줄어들고, 30회 이상 되어야 몸에 밴다고 한다. 학교 공부도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는 훈련을 여러번 반복해야 습관화 된다. 모두가 더 좋은 내년이 되기를 소원한다.

2015-12-29

우리 안에서 탄생하시는 분

▲ 정석수 구미종합사회복지관장·신부요한은 예수님을 두고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고 하며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바오로는 필립비인들에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리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알려준다. 따라서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우리와 같이 되신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신다. 그 실천의 모습은 어떤가? 요한은 예수님이 벳자타 못 가에서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에게 다정하게 질문하는 분으로 묘사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직역하자면, 온전해지고 싶으냐이다. 마음에서 원의를 일으킨 다음 말씀으로 회복시켜 주었다. 약한 이에게는 한 없이 다정하여 말씀의 힘으로 치유를 하시지만, 힘 있는 자 앞에서는 당신의 힘을 드러내지 않았다.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을 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하게 알렸다.얼마 전 세간의 집중을 받았던 인물이 있다. 민노총 위원장 한상균씨와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이다. 도법스님은 어느날 한상균씨를 만났을 때, `불덩어리` 앞에 선 존재임을 깨닫고 깊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한상균씨는 도법 스님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궁금해진다. 한상균씨는 어느 모임에서 세상을 뒤집고 전국을 마비시키겠노라고 했다는데 그 위원장이라는 직분에서 주어지는 힘으로 그렇게만 사용하는 것이 효용적일까 자문해 본다.어느 모임에서 연사로 오신 분은 자신의 자리에서 함께 하는 분들과 소통을 하기 위하여 6개월 동안 힘을 빼는 훈련을 했다고 했다. 또 다른 연사는 40년 직장 생활을 돌이켜 보면서, 힘없는 이에게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 삶을 회고하였다. 특히 어느 순간 일 중심에서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한 마디는 “관계가 남는다.”고 했다. 우리 앞에 산적한 일이 많다. 그것은 적대적이 아닌 사랑의 신뢰 관계 안에서 풀어갈 숙제이다.시골의 연로한 노인이 계시는 집에 연탄 배달을 하며 잊혔던 기억을 떠올렸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 만났던 연탄, 언덕 위 동네에서 착화탄을 피워가며 다시 불심을 되살렸던 추억, 누구는 연탄가스로 급히 병원으로 옮기며 놀랐던 기억까지. 안도현시인은 연탄이란 주제로 울림을 주고 있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날씨가 이렇게 차가워지고 비까지 내리는 날이면 더욱 시인의 질문은 삶을 돌이켜 보게 한다. 이웃에게 어떤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를….리웨이원(李維文)은 `인생에 가장 중요한 7인을 만나라`라는 책에서 삶에 힘이 되는 사람을 찾도록 지혜를 주고 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언제 그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삶에 끼치는 영향을 설명한 것이다. 특히 그는 “인생에는 언제나 자신을 `일깨워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신을 이끌어 줄 멘토를 찾고 동료를 통해 함께 성장하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사람을 전정으로 필요하고 또한 멈춤 없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자발적 노력이 중요하고 했다.인생이란 경기장에 입장해 출발선에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고 조금 늦게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상처를 넘어서 밖을 쳐다볼 수 있게 된다. 상처를 넘어 볼 수 있는 것은 내적으로 하느님을 닮은 아이, 브래드쇼(Bradshaw)가 말하는 신적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신적인 아이를 통해 우리는 참된 본질과 만날 수 있는 고요의 공간에서 하느님은 우리 안에 탄생한다.

2015-12-17

미래를 생각하면서 살자

▲ 이원락 수필가·경주청하요양병원장태어난 후 줄곧 시골에서 살았다. 60년 전 초등학교 6학년 11월에 전학하기 위하여 트럭을 타고 밤에 대구에 도착했을 때, 가로등 불빛에 번쩍거리는 길을 나는 얼음이 얼어서 번들거리는 줄 알았다. 그것은 처음 본 아스팔트길이었다. 6·25사변 직후에는 길이나 산에서 총알을 줍기도 하고, 상이군경이 많았다. 길거리에는 거지와 부모를 잃은 고아도 많았다. 그들은 지금 돼지나 먹을 수준의 열악한 음식을 얻어먹으면서 살아갔다.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하여서 기뻐하는 신문기사를 읽기도 했다. 산길을 걷다가 노루, 토끼, 여우는 물론이고, 산돼지를 본 적도 여러 번 있었다.중학 시절에 흑백 TV가 나왔고 TV가 있는 상점 앞에는 동네 주민들이 모여서 왁자지껄거리면서 시청을 하였다. 볼펜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30~40년 전에는 어느 가수가 `미니 스커트`라는 짧은 치마를 입었는데 길에서 그 옷을 입으면 위법행위였다. 또 머리를 길게 하면 장발족으로 몰려서 강제로 머리 일부를 싹둑 잘랐다.그 후 반세기가 조금 지난 오늘날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 있다. 시골 곳곳의 길은 모두 포장되어 있고 거미줄같이 얽힌 찻길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절벽이 만들어져서 짐승들의 통로가 막혀버렸다. 여우는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TV프로그램도 다양해졌고 채널수가 대단히 많아졌다. 이제는 대부분 사람들이 장발을 하고, 거지같은 신세도 `노숙자`라는 말로 대치되었다. 물론 팬티보다도 짧은 치마를 입어야만 현대 여성인 것같이 세태가 바뀌었다. 이제는 지게나 보릿고개라는 단어는 고어사전에만 있는 단어가 되었다. 역사는 태풍과 같이 흘러가고 과학기술은 과속으로 발전한다.최근 뉴스에서는 차세대 우주선이 2시간 반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고 한다. 지금은 다른 별에 가려고 노력하고, 친척이란 단어는 사라지고 있다. 4촌의 이름도 가물가물 거린다.멀지 않은 미래에는 남녀평등과 인권이 신장될 것이다. 아버지가 여러 사람이어서, 한 어머니의 아이들이 각각 다른 성을 가지거나 어머니 성을 자식에게 물려줄지도 모른다. 우주탐사선이 수년간의 비행 끝에 곧 별에 도착하리라 한다. 인간의 염색체 DNA의 기능과 구조가 밝혀졌다. 생명 조작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실험실 애기가 탄생했다는 소식도 가능하다. DNA조작으로 다른 종류의 생명체가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그럼 2050년쯤에는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까? 아마도 상상한 것보다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달(月)은 그것을 제일 먼저 정복한 나라의 속국으로 되어 있고 지구를 좁게 여겨서 달나라에 이사를 갈지도 모른다. 기계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할 것이다. 이와 같이 지금의 학생들이 노후가 되었을 때는 지금보다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드디어 우주의 기원과 생명 출발의 신비가 밝혀져서, 종교의 필요성에 대한 토론이 격렬해 질 것이다. 그러면 신부, 수녀, 스님, 목사, 전도사 등의 직업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종교의 미래`에 관한 책을 읽고 난 후 `영화는 미래를 어떻게 그려내는가?`를 알기 위해서, 극장에 가 보았다. 거기에는 우주를 날아다닐 뿐 인간의 갈등이나 사랑, 그리고 음식 재료 등의 기본적인 것은 현재와 변함 없었다.그러나 지구의 환경은 파괴되어서 온난화로 해수면이 1m 이상 높아질 것이다. 이것은 과학으로도 밝혀지고 있다. 제일 큰 걱정은 환경 문제이다. 잘못하면 인류의 종말을 부를지도 모른다. 끝 간 데 없이 발전시키고 싶어도 종말이 되면, 텅 빈 지구가 될 것이다. 누가 이런 현상을 막을 수 있을까?우리는 현재를 살아가지만 후손들을 위해서는 미래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2015-12-11

바람직한 결혼 생활

▲ 이원락 수필가·경주청하요양병원장신은 만물 중 가장 좋은 최후의 작품으로 자유 의지와 다양성을 가진 인간, 남녀를 만들었단다. 그래서 그들에게 외롭지 않게 가정을 이루게 했다. 사랑을 가슴에 품고 서로를 위하면서 살아가도록 했단다.이렇게 처음 만난 낯선 두 사람은 어떻게 성장해 왔으며, 성격은 어떤지 전혀 몰랐다. 생면부지인데도, 어떻든 살아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남남이던 두 사람은 살면서 일생동안 지지고 볶는다. 때로는 기뻐하거나 슬퍼하기도 하고 괴로워서 울기도 많이 한다. 삶에서 다툰 횟수를 합하면 벌써 원수가 됐고 깨어진다면 100번도 더 부서질 듯이 살아 왔는데….그런 상대의 죽음 앞에서 남은 자가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싸우면서도 헤어짐에서 울다니…. 이것이 바로 `가정의 신비`라는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결혼해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몸을 던져버리는, 엄청난 투기 같은 투자를 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 사이의 모든 것을 녹여 버리는 아가페와 에로스가 혼융된 사랑이기 때문이다.결혼당사자들은 대부분은 `잘 살아보려고, 행복하려고, 사랑하기에` 등 모두가 자기중심으로 결혼에 대해 이기적인 기대를 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잘 살지 못하면? 행복하지 못하면? 사랑이 식어지면, 헤어져야 하는가? 아니다. 이런 마음으로 시작하더라도 모든 일에 성찰과 사랑의 태도로 살아가야 비로소, 그 너머에 행복의 형상이 어렴풋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살아가는 것은 끝없이 등산을 하는 것과 같다. 좋은 경치는 잠시뿐, 오를수록 주위는 황량하고 절벽을 만난다. 때로는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씨도 수없이 겪게 된다. 어떤 때는 텐트가 날아가 버리기도 하고 도중에 상대자를 하늘로 보내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성인들은 험한 세상에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어떤 환경에서든 어짐(仁)으로, 자비(慈悲)로, 사랑(愛)으로 성실히 살아갈 것을 권한다.성경에는 “결혼 후에는 부모를 떠나 한 몸이 될지니라”고 적혀 있다. 이는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녀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고비고비를 스스로가 이겨 내면서 살아가야 한단다. 부모는 자식을 떠나보내야 할 책임이 있단다. 의지하게 하면 안된단다.결혼 조건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주로 재산, 학벌, 직업이다. 부자일수록 화합하는 정신을 더 많이 갖고 있다고는 할 수 없고, 직업이 좋아 보여도 모두의 미래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또 돈이란 돌고 도는 것이라서 한 두 세대를 지탱하기가 어렵다. 어떻든 결혼을 하면, 결혼 전에 가졌던 만남의 조건을 전부 사랑으로 변환시켜야 한다.남편은 아내의 머리다. 남편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일일이 간섭하거나 자존심 등을 망가뜨리지 말라. 그리고 아내는 약한 그릇이다. 깨지기 쉬우니, 귀중한 보물 같이 상처 입을까 걱정을 해야 한다. 서로는 존중하고 아끼면서 살아가야 한다.결혼 후에 부부는 서로와 자녀에게는 무능한 존재가 돼야 한다. 사랑과 무능함 속에서 살아야 한다. 남편이 강하면 아내가 죽어나고, 아내가 강하면 남편이 죽어난다. 부모가 강하면 자식이 죽어난다. 사랑과 무능함 속에 있어야만 각자는 능력을 나타낼 수 있다.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은 `가정을 꾸미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이란 인간 무리들 속에서 제일 기초가 되는 공동체가 되었다. 삶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은 가정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가정에서 일생을 마무리하면서 인간은 죽어간다. 우리가 애써 노력하면 생애를 바친 이곳은 아름다운 가정, 곧 천당이 된다. 지상에서 천당을 만들어라.

2015-11-19

진실 게임의 끝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작자와 창작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은 배좌수의 딸 장화가 정혼을 하게 되자, 혼수를 많이 준비하려는 남편의 의도에 불만을 품은 재취가 자신의 재산 몫이 줄어들 것을 염려해서 흉계를 꾸며 장화를 죽인다. 동생인 홍련의 꿈에 죽은 장화가 현몽하여 홍련은 장화가 원사한 사실을 알게 되고, 장화가 죽은 못을 찾아가 물에 뛰어들어 죽는다. 그 뒤 부사로 부임했던 정동우(鄭東佑)가 장화와 홍련이 겪은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었다는 잘 알려진 서사이다. 서사에서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장화와 홍련의 계모, 즉 배좌수의 재취이다. 장화와 홍련이 죽고 없는 시점에서, 진실을 말하든지 거짓을 말하든지는 순전히 그녀의 마음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진실을 은폐하고 거짓 증언을 선택한다. 장화는 낙태하여 투신자살하였고, 홍련은 행실이 부정하더니 야음을 틈타 가출하고 종무소식이라고 하며, 장화의 낙태물을 증거물로 제시하자 그녀는 풀려난다. CCTV도 없는 상황에서 범죄자의 진술을 토대로 죄의 유무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 서사는 장화와 홍련이 꿈이라는 장치를 활용해서 자신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고 있다.며칠 전 이태원 살인사건의 재판이 시작되었다. 용의자로 재판을 받고 있는 패터슨과 증인으로 출석한 에드워드 리는 서로 상대방이 범인임을 주장하고 있으니 진실 게임을 보는 것처럼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이 발생했던 1997년 당시에는 CCTV도 상용화되지 않던 시절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범인의 자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시 현장에서 살해당한 조중필씨의 어머니는 이제 72세가 되었고, 서로에게 죄를 떠넘기는 패터슨과 리의 행동을 보고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아들하고 같이 밥도 먹고 싶고, 마주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데 그런 걸 못해서 너무 속이 상하다”며 “존경하는 재판장님, 검사님들 그냥 우리 죽은 아들 한이라도 풀게 범인을 꼭 밝혀 달라. 중필이 잃고 범인이 밝혀지는 걸 18년 동안 빌었다. 하나님이 계시고 부처님이 계셔서 소원을 들어주셨는지 여기까지 왔다. 꼭 범인을 밝혀주셔서 중필이 한도 풀고 저희 가족 한도 풀어 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원한에 사무친 한 어머니의 회한어린 소망임을 알 수 있다. 거짓 없는 사실이라는 뜻을 지닌 진실이 게임을 할 때 일부러 감추거나 밝히는 시합(試合)을 일컫는 말이 된다. 장화홍련전에 등장하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부사 정동우 이외에도 우리 고전에는 여러 인물들이 있다. 조선시대 조광원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가 천추사로 연경에 가다가 밤에 서관의 한 큰 고을에 머물게 되었는데, 기생의 원혼을 만나서 사연을 듣고 해결해 준 인물이다. 기생이 어느 해 몇 월 며칠 어떤 사신을 모시고 있다가 소변을 보려고 나가는데 관노 아무개가 기둥 아래 누워 있다가 달빛에 비친 그녀를 보고는 겁탈하려 했다. 그녀가 죽기를 각오하고 범인을 따르지 않자 그녀의 옷을 찢어 입을 막고, 그녀가 소리 지르지 못하게 한 후 정원의 큰 바위 곁으로 끌고 가서 돌로 압사시켰다는 정보를 준다. 조광원 또한 지혜롭게 범인을 잡아 벌을 줌으로써 기생의 원한을 풀어주는 사람이다.조선 후기의 문신이었던 어사 박문수도 그런 인물 중의 한 명이다. 조선 팔도를 떠돌아다니며 그가 지닌 특유의 기지와 혜안으로 여러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준 인물로 유명하다. 원한은 원통하고 한스러운 생각이다. 사건 속 어디엔가 진실은 반드시 있기 때문에 진실 게임의 끝은 원한의 해소에 이르리라 믿는다. 이태원 사건의 진범이 빠른 시일 안에 가려져 그 어머니의 나머지 생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지기를 바란다.

2015-11-09

사상이 흐른 뒤의 자취

▲ 이원락 수필가·경주청하요양병원장일제 시대 때는 공산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세계를 양분하여서 서로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때에는 공산주의가 유행병처럼 퍼져나갔다. 그러나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잇달아 독일 통일과 소련 공산체제가 무너졌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사람들은 모두 잘 사는 세상을 지향한다는 공산주의에 매혹을 느꼈다. 공평하게 모두 다 잘사는 사회를 건설 한다는데, 누가 `그건 나쁜 생각이야!`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빼앗긴 조국을 찾으려 노력한 사람들의 많은 수가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특히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앞장서서 지지를 하였다. 일본만 물러가면, 서로 춤추며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는 기대감에, 자원하여 공산당에 입당했다.또 6·25 사변으로 남침을 당하였을 때, 북한 공산군인은 우리에게 `앞으로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올 것이다`라고 위로하였고, 초기에는 공산당원들도 스스로 잘 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었다. 그때는 세상의 정보도 어두웠고, 봄에 풀뿌리를 캐어먹는 춘궁기가 있을 정도로 가난했던 시절이었다.식자층의 대부분이 그 사상을 찬성했고, 6·25전쟁 전후에 공산주의의 매력에 빠져든 사람들은 북한으로 가버렸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조국과 민족을 아주 많이 사랑하던 사람들이었다. 필자도 만일 이 시대에 성장했다면 그들의 좋은 슬로건에 속아서 공산당원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더 풍족한 생활은 어려웠고, 자기를 위한 노동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노력이어서, 자기에게 직접 돌아오는 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흥미가 자꾸 줄어들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 연방이 해체되는 것을 보고서야 실상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우리는 미래를 모른다. 공산주의 이론을 만든 학자들도 그렇게 망하리라고는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학자들의 학설이 나중에 잘못으로 판명되면 그의 노력과 그를 믿었던 사람의 기대는 헛된 것이 된다.지금은 그 사상이 사라져 버렸다. 중국도 자본주의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고 북한이라는 국가는 폭력 조직체인양, 장성택을 죽이는 과정은 거의 깡패의 소행과 다를 바 없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릴 사상이 사변 이후에도 남한에 숨어사는 공산주의자가 있을 정도로 왜 그렇게 흠모의 대상이 되었을까?그 사상에는 결정적으로 큰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생산을 해도 국가에 바치고 나면 노력의 효과는 눈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기 몫이 너무 적었다. 인간에게 있는 소유욕이라는 기본 욕구를 전혀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 후 남북한에는 사상 검열이 심했다. 자유당 시절 일본에 놀러갔던 한 대학생은 자기도 모르게 공산당 집에 놀러 갔다가, 귀국 후에 괴로움을 많이 겪기도 했다. 약 20년 전에 중국의 연변에 갔을 때, 그곳의 주민은 나에게 `공동 토지 생산은 형편없으나, 집 옆에 있는 개인이 만든 텃밭에는 채소가 잘 자라고 있다`고 했다.오늘날 자본주의에서는 마음대로 재산을 축적할 수 있다. 다만 세금이나 복지 정책으로 빈부의 차이를 줄일 뿐이다. 지금은 대량 생산과 소비의 신자유주의로 더욱 성장을 부채질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질 가능성이 많다.더 많은 생산을 위해 하늘로 올라가는 까만 공장의 연기는 한계가 있는 지구를 파괴하지나 않을까? 신자유주의 부산물이 우리를 위협할 것 같다. 미래의 불안에 대해 좋은 답을 제시하여 노벨상을 받는 인재가 나타나기를 고대한다.

201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