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정찬 화가·경북도립대 교수무더운 여름이다. 올 여름은 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리니 바깥나들이를 하기 싫을 정도다. 집이나 직장이나 에어컨을 켜 놓은 상태에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 참 시원하고 여름에도 이런 환경에서 일을 본다는 것이 좋은 시절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늘 감기기운이 있다. 에어컨이나 선풍기 탓이다. 아이들은 더위에 쉽게 지친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각별한 여름나기를 연구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에어컨에 집착하는 것이다. 문을 꽁꽁 닫아 놓고 에어컨을 켜고 선풍기 바람에 의존하다보니 아이고 어른이고 호흡기 건강에 지장이 많다. 이럴 땐 우리가 어릴 적에는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릴 적 여름이면 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 매미소리 들어가며 할머니 무릎을 베고 할머니가 흔들어 주는 부채 바람과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오수를 즐기지 않았는가? 아니면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아 놓고 삼베를 배를 덮고 낮잠을 자거나 가족끼리 이야기를 오순도순 나누며, 우물 속에서 꺼낸 수박 먹으며 여름나기를 하지 않았는가? 소나기가 내리면 옷을 벗고 마당에서 비를 맞으며 폴짝 폴짝 뛰며 좋아 했고, 개울물이 넘치면 온 동네 사람들은 개울가로 가서 물 구경하는 것도 피서의 범위였다. 그리고 맑은 물이 흐르면 모두들 좋아라하며 어른들은 잘 보이지 않는 후미진 곳에서 아이들은 그 아래서 물장구를 치며 놀든 시절이었다. 밤이면 원두막에서 수박이나 참외를 먹고 하룻밤을 자기도 하며 산짐승 소리에 더위를 잊었다. 바깥나들이를 하고 들어오면 모두 우물가로 가서 엄마나 형수가 부어주는 바가지 물에 등물을 하니 그 차가움과 시원함에 숨이 턱 멎는다.이처럼 아버지 어머니 세대에서는 어릴 적 추억 속에 여름을 이기는 법을 몸소 터득해 왔다. 부채를 이용한 자연 바람의 활용법을 잘 알고 나무 그늘의 시원함도 여러 가지 유년시절의 체험을 잘 알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나 밀폐된 공간에서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하루 종일 틀다시피 하며 아이들에게 여름을 나게 하는 것이 지나친 사랑인지 모를 일이다.과일도 사다 놓고 아이스크림도 사다 주고 불편함이 없다. 그리고는 공부에 매진하도록 하는 것 아닌가? 영어, 수학, 미술 피아노, 바둑 등 할 것도 배울 것도 많다.무더운 여름이고 방학이라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요구 하는 것이 너무 많다. 일과 스케줄을 빈틈없이 짜놓고 아이들을 학습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여름나기인지 모를 일이다.그래도 여름 한철은 우리식구들에게는 산사 보문사의 모락재(주택이름)가 가장 가고 싶은 곳이다. 매년 여름이면 어김없이 보름이고 한 달이고 간단한 짐을 꾸려가서 여름나기를 한다. 사방을 둘러싼 아름드리 소나무들, 병풍처럼 보이는 산, 온갖 나무나 풀, 아름다운 꽃, 다람쥐, 이름 모를 새들, 개구리, 가재 등등 아이들에게는 호기심의 천국이다.수확을 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수박덩어리를 차 트렁크 가득 실고 오니 여름 내내 수박걱정 없고, 집근처의 이곳저곳에는 버섯이나 부추, 머구, 상치, 쑥, 민들레, 엉겅퀴, 가시 오가피, 밤, 호두, 도토리 등 채소나 약초를 쉽게 보거나 구할 수가 있다이러하니 아이들은 휴양지나 놀이터 보다 보문사를 더 좋아 한다. 선풍기 하나 없는 곳, 자연 바람과 새소리, 벌레소리, 산짐승 소리에 흠뻑 취하게 하는 작은 정자에서의 밤은 어른이나 아이들에게는 더 없는 여름나기인 셈이다.
2013-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