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에 원님이 부임했다. 고을에서는 연회를 준비했고 그 연회의 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하인이 세숫물을 담은 대야를 대령했다. 그런데 그 대야 옆에 흰 가루가 담긴 조그마한 접시가 놓여 있었다. 그것을 처음 본 원님이 “이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입에 탁 털어 넣고 물을 마시고는 삼켜버렸다. 그리고 나서 세수를 했다. 이것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하인이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웃었다. “네 이놈, 무엄한지고! 감히 누구 앞에서 그렇게 함부로 웃느냐? 네놈이 웃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호통을 쳤다. 하인이 황급히 땅에 엎드려 “아니옵니다”라고 이유를 말하려 하지 않자 원님은 더욱 그것이 알고 싶어 호통을 쳤다. 마침내 하인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원님이 입에 넣은 가루는 소인이 특별히 콩과 팥을 갈아서 섞은 비누이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원님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희들은 겉치장에만 신경을 쓰느라 세수할 때만 사용하지만 나는 속이 더 깨끗해져 마음이 수정같이 맑아야 하겠기에 속을 씻기 위해 먹은 것이니라. 콩과 팥으로 만든 가루이기에 얼마나 먹기 좋으냐? 우리 고을을 맑고 깨끗하게 다스리려면 내 자신부터 깨끗해야 하는 법이니라” 하인은 더욱 마당에 엎드려 오히려 자기가 웃었던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원님은 그 후 이 사건으로 인하여 더욱 맑은 정치를 하였다. 원님의 지혜와 덕(德)이 돋보이는 이야기다.
중국의 3대 기서(奇書)가 삼국지·수호지·서유기인데 그 리더들을 살펴보면 공통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서유기의 삼장법사, 삼국지의 유비현덕, 수호지의 송강은 덕장(德將)이라는 것이다. 삼국지를 오래전에 읽었다. 인물사로 본다면 지장(智將)의 제갈공명, 용장(勇將)의 관우와 장비, 덕장(德將)의 유비현덕이 등장하는데 지장의 머리도 용장의 힘과 우직함도 덕의 힘 앞에서는 모두 머리를 숙이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유비가 제갈공명보다 똑똑하지 못하고, 관우만큼 리더십도 없고, 장비만큼 용맹하지도 않지만 삼국의 통일이 유비를 통해서 진행되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손자병법을 보면 용장(勇將)보다 지장(智將)이 낫고, 지장보다 덕장(德將)이 낫다고 했다. 그런데 덕장보다 더 귀한 것이 일반적인 통념으로 운장(運將), 혹은 복장(福將)이라고 한다. 아무리 지(智) 용(勇) 덕(德)을 겸비해도 하늘이 내려주는 복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평론으로는 운(運)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의 섭리론이며 하나님의 은혜이다.
현대 정치사, 아니 정치사는 목사가 평론하기는 너무 무겁고 근대 교회사를 보면 삼국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운장(運將)의 복을 받았음에도 덕(德)이 부족하여 통감(通鑑)의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의 지(智)와 용(勇)이 전부인줄 착각하고 힘을 사용하는 소위 꼴뚜기 리더십을 사용하다가 공동체를 혼란하게 하고 카오스 현상으로 마무리하고 자신의 모습도 제갈공명처럼 역사의 뒤안길에 남겨지는 경우를 흔히 본다.
사울과 다윗은 운장(運將)이라 할 수 있다.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은총이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자신의 지(智)와 용(勇)이 전부인 듯 이기적 교만의 리더십을 발휘하다가 그의 리더십의 역사는 카오스 현상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다윗은 지(智)와 용(勇)을 넘어 덕(德)을 갖추어 치리하다가 그 운(運)이 하늘에 닿아 오늘까지 빛으로의 역사를 남겼다. 나는 어떤 지도자인가? 교회도 교단도 한국교회도 덕장(德將)의 리더십이 그리워지는 시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