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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3-10-01 02:01 게재일 2013-10-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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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관홍 신부·포항 죽도성당 부주임 다문화가정 가톨릭지원센터 담당

신학대학 재학 중에 결혼이주여성의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캄보디아에서 온 여성이었는데 상담의 주된 내용은 고부간의 갈등이었다. 한참을 이야기하면서 왜 고부간의 갈등이 발생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원인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시어머니의 `말`때문이었다. 자신이 보기에는 두 돌이 지난 자신의 아기가 너무나도 예쁜데 시어머니는 자신의 아기에게 `똥강아지`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설명하였지만 도무지 왜 자신의 아기를 강아지라고 부르는지를, 거기다 더럽고 혐오감을 주는 단어인 똥이라는 단어까지 붙여서 부르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아기를 부를 때 `똥강아지`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시어머니 역시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지만 더 이상 아기를 부를 때 `똥강아지`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했다. 문화적, 언어적 차이에서 오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지만 `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같은 말과 같은 글을 사용하더라도, 그리고 사실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말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내곤 한다. 요즘 자주 사용되는 `막말`이라는 단어가 이를 의미하지 않을까? `막말`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곳은 아마도 정치권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민심을 대변한다는 사람들이 국민들 앞에서 `막말`정치를 한다는 것은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고, 정치인들의 자질 문제라 생각이 된다. `귀태(鬼胎·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뜻)`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지역 감정을 부추기는 말까지 거리낌 없이 사용되고 있다.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말` 한마디에 역사가 바뀐 사례도 많이 있다. 18세기에 프랑스에서는 마리앙투네트가 한 말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라는 말 한마디가 프랑스 혁명의 불씨를 당겼다.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에게 항복을 요구하는 연합군의 최후통첩을 보냈는데 일본 측 의도와는 다르게 일본 언론이 “무시 한다”로 발표해서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고 한다. 1980년 대 독일에서는 동서 베를린 시민의 왕래가 가능한 여행법 개정을 발표한 동독 측이 발표했는데 독일어에 서툰 외국 기자가 `여행을 개방 한다`를 `국경을 개방 한다`로 오역하는 덕분에 1961년에 세워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단초가 됐다.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명언은 수없이 많다. 성경의 잠언에는 “입을 조심하는 이는 제 목숨을 보존하지만 입술을 열어젖히는 자에게는 파멸이 온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말은 남을 죽일 수도 있고,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고 한다. 칼에는 양날이 있지만 사람의 혀에는 백 개의 날이 달려있다고 한다. 특히나 사회 지도층,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 국력이 낭비될 수도 있고 나라의 품격이 저하되며 진실을 왜곡하는 말 한마디로 나라가 망할 수 있다. 지금 정치권의 막말 논쟁은 우리에게 말의 중요성, 말을 함에 있어서 신중해야함을 다시금 상기시켜주고 있다.

정치권 뿐 아니라, 사회 지도층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막말`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서로에게 `막말`을 삼가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날 때, 상처나 오해를 주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는 말을 하는 아름다운 문화가 생겨날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 만큼이나 아름답고 따뜻하게 변화되어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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