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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대두

등록일 2013-09-06 02:01 게재일 2013-09-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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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수필가

인간이 신을 창조했는가? 또는 신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이 신을 새삼 알아가고 있는가? 만일 인간이 신을 설정했다고 하면 무신론이고 그 반대의 개념이라면 창조론이다.

매일의 생활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현재의 삶도 두렵고 그것의 미래의 전개에 대해 인간은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더 큰 것은 죽음 이후의 과정을 생각하면 막막함과 아연함을 느낀다. 인간은 개인의 삶의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모여 살고 그래서 크게는 대도시까지 이루었다. 그리고 심연 모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여러 종교가 우후죽순처럼 나타나 있다. 철학자 스펜서 “사람은 삶이 두려워서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서 종교를 만들었다”고 했다.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두렵고도 불안해하는 인간 군상을 보고서 “누군가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 하고,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고 했다. 이는 종교를 인간 사고방식의 공통된 한 부분으로 본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종교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보라고 한다. 종교가 일으킨 여러 가지의 일, 예를 들면 자살 폭파, 십자군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스라엘과 파레스타인 간의 갈등, 보스니아의 인종 청소 등이 종교가 없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으리라고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유·무신론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일로 가득찬 일생을 보내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많아진다. 앞날을 전망할 수 없음으로 보통은 신이 살아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100년 이내이다. 광대무변한 우주의 영원한 시간 속에서, 100년은 순간에 불과하다.

불안한 미래 때문에 우리 사회는 보험제도가 있다. 종교란 이 무한대의 시간을 잘 보내려고 신을 믿는, 일종의 보험을 드는 것과 같다. 무한대 시간을 짧은 일생동안에 믿기만 하면 보장되니까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

종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각 종교에 따라 믿는 신이 다르고 신의 수 또한 다르게 정해져 있다. 무신론자는 신을 없애버린 자, 유일신을 믿는 자는 하나의 신만 살려둔 자, 다신론 자는 자기들의 생각에 맞게 적절한 수의 신만을 살려 둔 자들이다.

세상의 신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왜 빛만 있으면 좋으련만 어둠을 만들었느냐? 악을 만든 이유는 능력의 부족 때문이 아닌가? 인간이 악에 빠진 후에 비로소 구원을 한다면 그 신은 무능하지 않느냐? 혹시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모양을 보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면, 변태적이지나 않을까?

그러나 종교에서는 이런 것은 신의 소관이고 인간의 두뇌로서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인간 사회에서는 상대적인 기준은 넘쳐나고 절대적인 기준은 아직도 없다. 아마도 영원히 우리는 절대적인 기준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비교급과 최상급에 쓰이는 말도 상대적인 기준 안에서의 표현하는 방법이다. 시간도 공간개념도 절대 표준은 없고 그냥 편리상 인간이 만들어 둔 것이다.

우리는 절대적인 기준을 갈망하고 그 결과 종교가 나타났다.`나란 어떤 존재이고 운명이란 무엇인가? 우주란 무엇이고, 진리란 뭐냐?`등의 명제 앞에서는 인간이란 풀잎위의 이슬과 같은 존재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는 등의 말은 의미가 없다.

인간은 도덕적으로 일을 해도 행복을 보장받을 수 없다. 성실히 일한 결과가 실패로 나타날 수도 있다. 행복의 완전한 보장도 인간 차원에서는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신앙의 차원에서는 가능하다. 신을 전제하지 않고는 이러한 윤리적 부조리 등 삶의 여러 문제에서 완전한 해결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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