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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곳

등록일 2013-10-04 02:01 게재일 2013-10-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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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수필가

친구와 대화를 하는 중에 어쩌다가 평화 이야기가 나왔다. “이 시대는 어떤 상태라야 평화스럽다고 말 할 수 있을까?”를 그에게 물어 보았다. 조금 머뭇거리더니 “기쁘게 살아가는 곳이겠지. 자기가 할 것은 모두 스스로가 하고, 남을 도우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곳이겠지. 때로는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대립되어도 양보하고 타협할 줄 아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겠는가!”라고 대답했다.

우리들은 여러 가지 생각과 다양한 환경, 그리고 개인 특유의 인격을 가지고 살아간다. 각자의 교육을 받은 정도와 내용은 모두가 다르다. 그래서 각자는 자기만의 개성과 경향, 기호, 경험이 있다. 평화는 사람들의 다양한 입장을 배려하는 곳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도 않다. 많은 시민들을 위하는 복지가 잘 되어 있는 곳이면 그 사회는 평화를 지향하는 편에 가깝다. 그러나 복지국가인 노르웨이에서도 극우 청년의 테러가 일어났다. 영국의 한 복판에서도 난동과 폭력, 그리고 약탈 사건이 일어났다. 종교의 위력 앞에 숨죽이던 북아프리카 지역에는 지금 소요의 와중에 있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평화를 달라!”고 외치고 있다.

평화를 위한 교육은 이론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생활 속에서 몸소 실천하는 교육, 사랑으로 희생정신을 존중하도록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역사를 보면 인류의 평화를 주장하던 링컨, 폰 회퍼 등의 말로는 비참하였다. 평화는 대가를 치루면서야 겨우 조금씩 자라왔다.

또 어떻게 살아야 평화스런 삶인가를 모범으로 보여준 틱낫한 스님이나 데레사 수녀, 모든 생명을 존중하던 알베르트 슈바이처, 비폭력이 폭력을 이긴다는 신념을 선택한 간디 같은 삶도 평화의 전도사 같이 어려운 삶을 살았었다.

인간은 누구나 평화를 기원하면서도 마음속에는 항상 탐욕과 증오심, 시기함 등이 있어서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원한과 대결을 부추긴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하면 영웅시하고 과격함을 좋아하며 평화를 지향하면 나약한 사람으로 몰아 부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역사에서는 정의로운 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 정의로운 자는 어쩌면 어리석은 자일지도 모른다. 오로지 승리자만이 역사 무대에서 주연을 담당했다. 그러나 평화를 지향해야 한다.

오늘날 세계 강국들은 더 발전하기 위해 평화로운 환경을 필요로 하고 평화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서로 협력한다.

그럼 평화를 지향하는 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화평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 주위의 환경을 더 좋게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이다. 즉 남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들이다. 또는 연구실에서 인류를 위해 밤새워 노력하는 자들도 이 부류에 속한다.

누구나 상대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평화주의자가 된다. 사랑의 실천 자,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자, 지구의 아픔을 절감하는 자 등은 모두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럼 평화로운 곳이란 어떤 장소일까? 아마도 그곳은 험한 바다의 파도를 넘어 저쪽에 있는 산천경개 좋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곳일 것이다. 격랑의 밤이 지나가고 환한 새벽에 멀리 보이는 희망찬 나라일 것이다. 돛을 달아서 부는 바람을 맞아 물결을 넘어가면 도달하는 자유, 평등, 행복, 희망이 가득한 그곳이 평화로운 곳일 것이다.

그곳에서는 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화해의 언덕이고, 노래가 흐르고 흥에 겨워 어깨가 들썩이는 곳이다. 서로가 격려하면서 살아가며, 약점이 있는 인간이 서로를 위로하고 도움을 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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