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살겠다고 그렇게도 별렀던 날들은 꿈결같이 지나간다. 이전 것은 그리움만 남긴 채 아득한 하늘 저 멀리 점이 되어 사라져간다. 삶에 지치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도 인생의 나이테는 불어난다. 운명이라는 덫에 걸린 우리는 시간에 밀리면서 살아 왔고 살아갈 뿐 이런 자연의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다.
흘러가버린 것들은 이제 기억으로 축적돼서 누구나의 가슴속에 아련히 추억으로 내재되는가 보다. 겹겹이 녹아들어 그리움의 씨앗이 된다. 그리움은 애틋함으로 포장돼 마음 저 깊이 저장된다. 그래서 그것은 우리가 하는 일들과 따뜻하게 정을 나누는 생활 속에서 싹을 틔운다.
`사랑한다`와 `보고 싶다`가 만나면 변하여 `그립다`로 한 차원을 높여 준다. 그리움의 대상에는 남녀 간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고독한 자기 자신, 과거의 추억, 예술과 학문, 진리 등도 빌미를 제공한다.
흔히 느끼는 남녀 사이의 그리움은 아쉽고도 애절하다. 아름다운 인연으로 이뤄져 계속 옆에 두고 싶은 소망이 나를 애끓게 한다.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당신을 만나지만 그것은 더 큰 그리움을 만들어 버린다. 그대를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세상을 훈훈하게 만들고 싶다. 누군가와 새벽이 될 때까지 온기 넘치는 대화를 갈망한다.
자신의 모든 것이 한 줌의 숯덩이가 되더라도 그리움이 변하여 사랑으로 이뤄지기를 기도한다. 그는 가슴속을 불살라서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텅 빈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면 그는 그리움과 동시에 허전, 허무, 애석, 영원, 황혼의 노을, 아련함 등을 느낀다.
그리움은 남녀 사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도 가지고 있다. 돌아가신 부모를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 고향의 옛 동산이 그립다. 이웃끼리는 인정이 그립다. 아름다운 풍경도 그리울 때가 있다. 세상은 온통 그리움으로만 꾸며진 것 같다. 혹시 인생이란 그리움이라는 고리를 이어가는 과정은 아닐까?
또 조국의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워 할 때 그는 나라의 역사를 이끌고 갈 수 있다. 좀 더 좋은 사회를 그리면서 살아가는 자의 그리움은 인간끼리의 애정이나 사랑의 차원을 넘어 선다. 그리움은 에로스 세계에만이 아니고 아가페 세계에서도 역시 엄존한다.
선과 진리를 향한 사람은 그냥 세월이 흘러가 버림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때로는 하늘에 자기의 아련한 바람을 소리쳐 아뢴다. 이들은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교류가 아닌 영혼의 소리로 그리워한다.
이때는 자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다. 이제 그들은 종교의 문을 기웃거려 본다.
몸과 생각 등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홀로 있음을 느낄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을 `고독하다`라고 표현한다. 이런 상태에서 고독은 철학적 사고로 이어져 간다. 홀로 조용한 시간이 되면 생활 잊혀졌던 자기를 찾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과 속 깊이 내재된 사랑으로 이해를 주고받는다. 이들은 영원을 생각하고 그 결과 무한대로 그리워 질 때 종교에 의지한다. 그리움이란 신이 인간을 부르는 방법이다.
어느 하늘아래 떠남이 없겠으며 어느 산천에 서글픔이 없겠는가만 아무래도 역시 삶은 외롭고도 그리운 것이다. 그리움은 인생에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든다. 그것은 애절함, 사무침, 간절함 등과 같이 온통 가슴을 붉게 석양노을의 빛깔로 물들인다. 핏빛 노을의 그리움은 점점 어둡게 흑색 칠을 하면서 깊은 밤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끝 모를 이별에 울면서 저 산을 넘어간다. 소리쳐 불러 봐도 대답 없이 사라지는 노을은 안타까운 그리움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