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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죽도동 연하실비 주점

조금 구라를 때려 칠엽굴(七葉窟)*에 버금가는 난장의 소굴(巢窟)이라 할 만하다 좌측과 우측이 침을 튀겨며 싸워도 그 독성의 곰팡이가 꽃으로 피는 곳 맑은 피가 난무하는 따스한 광장 이기심이 배려로 바뀌는 희한한 유전인자를 내재한 약간의 돌연변이들이 꼼지락거리며 시대를 노려보고 있다 독재에 가까운 주인의 횡포와 무례를 쌍욕으로 잠재우는 단련된 내공에 아무도 항거하지 않는다 묵묵히 제 길을 가라고 부축하기 때문이다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한 나날들이 소금으로 설탕으로 고춧가루로 온갖 음식에 녹아 있어 계절의 변화와 파도의 향기까지 누릴 수 있는데, 헛소리하다가는 본전도 못 건진다 이런 선한 강적에게는 얼른 굴복하는 것이 최선임을 나는 배운다 세상에 술집은 많고 개소리는 송도바다에 가서 풀면 되기 때문이다. *칠엽굴 : 인도 왕사성 부근 비파라산에 있는 석굴로 부처 당시 500여 명의 비구들이 모여 경(經)과 율(律)을 합송함으로써 제1차 결집이 이루어진 곳. …… 이곳은 주인의 독재에 아무도 항거하지 않는다. 알아서 챙겨주기 때문이다. 잘못 씨부리면 욕도 엄청 먹을 각오도 해야 한다. 바르게 살아온 자신감이 충만한 예쁜 교만이 가득하다. 마음이 늘 쓸쓸한 우리에게는 감추어둔 최후의, 비장의 장소 혹은 무기가 된다. 아무에게도 소개하지 않고 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만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실상은 온갖 잡놈들이 다 모이는 광장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 잡놈들의 대장이자 ‘따까리’임을 자처한다.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7-02

기북시장 장터식당

어느 날은 손님보다 상인이 많아 보이는 기북시장 거기에 세상의 가장 훌륭한 뷔페를 파는 장터시장이 있다 한 접시에 많은 것을 담을 필요가 없다 그저 깻잎장아찌 몇 점 계란말이 두 점 대접에 밥을 푸고 무생채를 적당히 넣고 주인이 귀찮다고 입구에 놓아둔 항아리에서 고추장을 퍼와 비비면 된다 진하고 뻑뻑한 들기름을 슬쩍 뿌려준다 투박하나 저 섬섬옥수, 툭 던지는 배려 고추장은 무얼 그리 좋은 걸 많이 넣었는지 마치 조청의 점도(粘度)에 뒤지지 않는다 맵기도 하지만 달기도 하고 고소하다 비비다보면 들기름 냄새가 기북 동네를 덮는다 곁들이는 꽁치추어탕이 깊고 우아하다 부족하다 싶으면 국수 한 그릇을 더 먹어도 좋다 장터식당의 음식은 맛은 물론 아름다운 음식이다 기본기가 확실한 만찬이다 식당을 나와 잡놈처럼 이쑤시개를 씹으며 장터를 한바퀴 둘러보면 앙증맞은 기북장터는 소꿉놀이 같다 고복격양(鼓腹擊壤)이라 했나 한끼면 충분한 것을, 멀리 앙증스런 비학산(飛鶴山)을 본다. ….. 화려한 밥상이 정말 건강에 도움이 될까? 그냥 먹어도 좋을 것을 온갖 재주를 부려 꾸미고 가꾼다. 차라리 그 시간에 간단히 먹고 산책이나 하라 한다. 어머니 말이다. 먹는 정보가 차고 넘친다. 식충이가 되라 한다. 제발, 제철 음식 소박하게 먹어라, 어머니 말이다. 내 말이 절대 아니다. 내 말에 어머니가 책임을 져야 한다. 감옥 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알프스를 가지고 있지 않다. 비학산 아래 기북마을이 있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6-25

고인돌과 놀았다

고인돌 옆에서 1인용 텐트를 치고 밤을 세웠다 고인돌은 지상의, 별의 자리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헛된 욕망에 불구하다 누군들 불멸을 꿈꾸지 않으랴 그러나 권력은, 혹은 인생은 야비하고 무모하고 허망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고인돌이었다 저 장엄한 것이 이슬보다 쓸모없다 잡풀에 희롱당하고 비에 젖어 후줄근하다 빛나는 죽음은 없다 주검만 잠시 있을 뿐 그마저도 사라진다 종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칠성재 마루 고인돌 옆에서 잠을 청한다 옛사람의 근본을 추적하여 오늘 우리의 터전의 발판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만 지금은 내가 불멸의 고인돌이다 자기의 자리에서 생(生)을 노련하고 집요하게 노려보는 것이, 긴 호흡 내쉬는 것이 더욱 소중하다 새벽이 되면 집으로 갈 것이다 그래, 오늘 살아 있어 미래를 전망하고 성찰하는 것이 오히려 단순해서 눈부시게 찬란하다 고인돌과 종일 잘 놀았다. … 내가 이 고인돌을 보러 갔을 때, 입구의 안내판은 누가 발로 찼는지 찢어져 있었다. 대체로 관리가 무성의해 보였다. 멋쩍은 미필적 실수, 행정력의 부재, 그 무엇이라도. 비교해 보니 강화도와 연천 전곡의 고인돌은 제법 대접을 잘 받는 듯 싶었다. 그러나 칠성재의 그 고인돌은 푸대접 받는 그 모습이 오히려 좋았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어쨌거나!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6-18

낮달-신광 법광사지 당간지주

그대, 떠돌이면서도 원주민인 사람 타인과의 경계가 그토록 마음에 걸렸을까 밤낮 없이 기웃거린 발걸음 나쁜 것을 먼저 배워 허무를 실천하는 사람 산에 가리고 강에 잠기면서 물음표 느낌표 다 깨물어먹고 맨발로 자기 속으로 숨는 사람 비겁함에 힘을 실어주고 웃는 사람 새털구름 잔주름 묻은 햇살을 녹인 소주 한 잔 마시고 그걸로 양치질하는 더러운 사람 보는 이 마음에 무혈입성하여 남긴 차가운 소인(消印) 그렇게 누구에게나 원죄는 있다고 다그치면서 살아가는 것이 곧 사죄이며 소멸의 시작임을 가만히 지적하는 무기질의 비웃음 폴폴 날리며 걷는 사람 하늘엔 문이 없다고 중얼거리면서도 문을 여는 마음이 예쁜 사람, 불치병이 없는 사람 그대 원주민이면서도 떠돌이인 사람. … 일상적 혹은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이란 말을 나는 자주 사용한다. 그보다 더한 철학은 없다고 믿는다. 평범해서 눈부시다. 모든 사람의 생애가 반드시 그러하다.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5-21

탁발-옛날 중앙로 우체국 풍경

부처와 가섭 존자가 중앙로의 어느 골목 모퉁이에서 오늘 탁발한 것을 적당하게 분배하고 있다 가서 보니 기껏해야 햇빛과 먼지 몇 개의 동전과 비웃음 몇 줌, 생각해 보니 그 보시는 오히려 중생에게 강탈한 진짜 보리(菩提)였는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헌신하자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주고받는 거 없어도 그냥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남는 장사라는 거, 부처와 가섭은 동의했다 하이파이브 했다 노동의 결실의 소주잔에 잠기는, 오늘의 노을이 좋다 카아, 목줄 땡기는 이런 소리는 아무나 뱉지 못한다 풍부한 하근기(下根機)에 배부르고 아늑하다. …. 무던하다고 섬세하지 않을 리 없다. 금(金)은 은(銀)을 이기지 못한다. 남몰래 벼린 칼날 초승달로 내뱉고, 생업(生業) 이루고 나서 돌아서서 말하리라. 참 따스한 세상이라고. 별로 내밀 거 없어도 나에게 헌신(獻身) 했다고 말하리라. 그 마음씀씀이가 너울물결로 이어졌으면 한다.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5-14

어느 봄날 - 기계면 도원정사

배롱나무 꽃 피는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낮잠을 못 자겠다 배롱나무 꽃 돋는 소리가 얼마나 켜켜이 쌓이는지 술을 못 미루겠다 봄날은, 마음의 멍울이 망울로 돋고 비와 바람에 꽃이 피고 져서 아지랑이도 서로 비비고 꼬이면서 온도를 재촉하며 순서도 명분도 없이 무분별하나 조용한 소요를 양분 삼아 투명하게 바쁘게 서두르고 있다 그 욕심의 작은 서막(序幕) 혹은 사람의 길은 아닐지 다행인 것은 외롭고 가난해도 왠지 더 윤택해지는 봄날의 느낌 햇살 한 조각 허투루 낭비 않는, 가만히 있어도 촘촘하게 흐르는, 그 봄날의 역학(力學)을 도원정사에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 .. 한 사람이 있었다.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고 싶었다. 등대처럼 끊임없이 수신호를 보내는 사람이고 싶었다. 배경이 되고 노을이 되고 싶었다. 혼자면서도 더불어 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데, 어머니는 시집을 간다고 한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5-07

입암서원(立巖書院)

가사천 물소리 맑으니 과연 세거(世居)할 만한 곳이다 안과 밖으로 닦아 문장(文章)과 산남의진(山南義陣)이 이렇게 교차하는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향나무 냄새 쑥떡보다 깊다 우리가 불천위(不遷位)를 바라는가 망연한 불후(不朽)를 꿈꾸지 않고 오직 실용적으로 살자고 다짐한다 형식적인 솟음이 아니라 의지의 표상으로 뜻을 세움이라 헛것에 들썩이지 말고 오직 정좌(正坐)하여 정진하며 읽고 또 읽으리라 뼈에 새겨 각고라 했으니 성리(性理)가 사람의 길에 삐끗한다면 새로이 갈아치울 기개를 배우고 시대에 동참하는 열린 생각을 배우는 것이 학문의 길이 아니겠는가 귀 기울여 듣고 마음 낮추고 후세를 두려워하여 오늘을 직시하는 선비가 되는 것이 눈 밝은 조상의 가르침인 것을, 헌 신짝처럼 신념을 개량할 수 있는 것도 교조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길일 것이다 그리하여 동천(洞天)에 머물고자, 그래서 입암(立巖)이다 그래서 선비는 위태로운 사람이다. 어느 들판에서 쓰러지리라. 그 들판이 되어 벌떡 다시 일어나리라. 입신양명은 당대의 것이 아님을 명심하여 후세를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이 중요하다. 오늘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님을 진력을 다해야 한다. 보조 지눌이 말했다. 땅으로 쓰러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선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4-09

오어사(吾魚寺)

경북 포항 오천 항사리에 가면 오어사라는 절이 있다 한 놈의 땡중 때문에 한때 구설수에도 올랐지만 흠없는 사람 어디 있으랴 눈 질끈 감고 용서해야지 그래야 서로서로 사람이 되지 그밖에는 모든 것이 이쁜 절 부처가 아무리 부처라 해도 인간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는 모양이라 운제산(雲梯山)은 장구해도 덜 떨어진 인간 하나 감당 못했네 오어사, 이리저래 그냥 절하라고 있는 절, 업보가 없으면 사람이 아니지 쌓고 닦으며 평생을 수행하지 성불은 무슨, 그냥 닦는 거지 장작을 패는 마음의 인간의 따스함, 삼팔광땡 같은 후광과 온기가 있어 그것으로 충분하리. 능엄경에서 읽었다. ‘사마타’는 마음의 본래 자리인 집을 보는 단계로 돈오를 일컫는 말이다. ‘삼마다’는 집의 대문을 통과해 집에 들어서는 단계로 점수를 가르키는 말이다. ‘선나’는 집 안마당을 거쳐 방 안까지 걸어가는 단계로 불이(不二)를 말한다. 이 말을 나는 껌을 씹듯 중얼거리곤 한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4-02

송도 방파제

파도를 탓할 수 없으니 아울러 바다도 탓할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은 경계가 아니라 이어짐이다 다만 본질에 충실하면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송도바다 방파제 잠방잠방 윤슬과 대화하며 가장 독한 소주로 가장 황홀한 해산물을 얻어먹던 놀이터가 없어졌다 생업에 충실하며 눈매가 선한 그 아지매는 공부하라고 눈 흘기며 그래도 늘 다독여 주었다 아마 세상의 다른 곳에서 여전히 생선을 썰고 있을 것이다 죽도록 반성해야 할 일이다 포항제철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송도는 송도인데 송도 아님이 상심스럽다, 그리운 송도. 스무 살 무렵 송도 방파제에는 포장마차가 많았다. 방학 때마다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과 어울려 소주를 마셨다. 가난한 주머니를 우려한 단골집 아지매는 넘치게 해산물을 썰어주셨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많이 베풀며 살라 하셨다. 내가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매운 칼질 솜씨며 선한 눈매가 가끔 그립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3-26

지역언론인 혹은 문화적 정신적 개화기를 꿈꾸며

서울 갈 때, 터미널에서 한겨레신문을 구해 읽기가 쉽지 않아 잠시 당황스러웠을 때, 그래도 그 신문 지사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자칭 지역언론인 후배가 자랑스러웠습니다. 문화의 확장과 의식의 팽창은 작은 일에서부터, 사소한 일에서부터 챙겨야 합니다. 그리하여 풀뿌리 노동운동도 했고 민주학교도 꾸려 마음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그 뿌려진 씨앗들이 무럭무럭 자라 꽃피는 날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엎어지고 자빠져도 우리는 어깨동무 합니다. 글은 죽지 않습니다. 그것을 나르는 일도, 그 새벽의 의미만큼 청명할 것입니다. 가끔 지역적 한계에, 그것이 정치적이든 문화적이든 부닥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벽에는 문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 문을 두드리며 사람의 개벽을 기다립니다. 모두가 동참할 것입니다. 신문배달이라고 하자. 지국장이자 배달원이었던 후배는 여전히 그 직업을 사랑한다. 절망적인 판매부수에도 신문에서 손을 놓은 법이 없다. 새벽에 맡는 잉크 냄새는 뱃속의 기생충을 박멸할 정도로 자극적인 향기였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3-19

장기(長鬐) 읍성1

우암(尤菴)과 다산(茶山)이 잠시 머물렀다고 그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 영일만(迎日灣)은 저리 푸른데, 결국엔 촌구석이란 이야기지 그러나 사람의, 그리고 아주 먼 일별(一別)의, 꿍쳐놓고 싶은 공간, 지금도 유효한 지도 몰라 반성은 습관으로 반복적이었을까 역모(逆謀)는, 분노는 꿈도 꾸지 못하고 서울을 향하는 삶, 그 농밀하고 내면적인 지향(志向), 그렇게 팽개쳐진 삶 그래도 구룡포(九龍浦)와 모포(牟浦)와 하정리(河停里)의 바다는 고요하고 무심하며 여전히 생기발랄 그래서 우리는 뇌록지(磊綠地)2를 관찰하고 날물치3의 시원(始元)을 본다 외지(外地)여도 보석인 땅이 곳곳에 있더라 뭉개고 자빠져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음의 즐겁고 처절한 마스터베이션, 유림만보(儒林漫步)4한들 세상이 움직일까, 나의 용도폐기 뒤엔 세상이 있었다 비로소 고운 모래밭을 걸으며 받들어야 할 백성들의 생활을 기웃거리며 배워야 할 것들, 먹거리를 생각함 끝내 청보리밭 끝 모퉁이에서 오줌을 누고 비로소 세상과 결별하고 다시 세상과 조우(遭遇)함. 타박타박 걷고 싶으면 장기읍성에 가면 된다.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나는 나에게로부터 유배(流配)를 받았기 때문이다. 1. 경북 포항시 장기면 읍내리에 있는 고려, 조선시대의 읍성터. 2. 뇌록은 중간 명도의 탁한 녹색의 돌로 단청의 바탕칠에 사용되는 전통안료가 추출, 장기면이 국내 유일의 산출지로 인정되었다. 3. 생수암(生水岩), 바위 사이로 생수가 나오는 곳의 지명. 4. 愉를 儒로 바꾸어 보았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3-12

죽도시장 할머니 막걸리집

그 한 평도 안 되는 막걸리집팔 십 생애의 생업(生業)찐 계란과 소금밖에 없다한 놈이 한 병 시켜먹으면 오 백 원이지만잔술 넉 잔 팔면 팔 백 원이다나는 적당히 계산적이다앉아 마실 자리도 없으니집세 걱정도 상대적으로 적으며알아서들 챙겨 마시고 간다나는 최소한 의자 몇 개는 준비하고 있으며누군가를 기다릴 줄 안다, 그 가난의 자리날품팔이의 고단함 대신할 십시일반의개념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저렇게 알아서 마시고 길을 나서니나의 권력도 적당하고 정당하다들락날락 온갖 잡놈들 종일 바쁘다허리가 아파도 사람구경이 좋다지랄하는 놈, 외상하는 놈 일체 없다인생에 있어 공짜라는 것이 없지 않겠는가사람은 기본적으로 싸가지가 장착되어 있다바닥이라고 바닥을 치지는 않는다배워서가 아니라 선험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그 가치를 스스로 지향하고 있다우리는 남루해서 눈부시고 그렇게 살아간다가치를 부여하지도 않고 그 의미도 모른다덧셈 뺄셈 구구단 정도면 충분하다인생의 일몰이 분주해서 행복하다이만한 남는 장사 또 없으리.원고료가 두둑하면 늘 가고 싶은 곳이 죽도시장 할머니 집이다. 더 돈을 버는 느낌이다. 천천히 한잔 마시면서 내가 생산한 결과물들에 대해 심도 있게 비평한다. 쓸데없이 진지하다. 수없이 많은 입술들이 닿았을 저 잔에 노을이 슬쩍 걸터앉는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3-05

검정고무신-오천초등학교 가을운동회

신새벽 찬물 한 그릇 마시고 안개를 뚫고 어제 씻어 놓은 찹쌀떡처럼 찰진 검정고무신을 신고 양철대문을 밀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직도 걷고 있습니다 식구들에게 여러 모로 미안스럽지만 결코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뻔뻔하기도 하고 많이 닳았지요 때는 덜 타지만 도무지 멋대가리 없는 검정고무신이 아직도 신작로를 걷고 있습니다. 이슬에 미끄러지는 것이 약점이고 빗물에 강한 것이 장점이지만 어정쩡한 위상(位相)과 얕잡아 보는 시선에는 속수무책이었지요 난들 왜 기차표 운동화이고 싶지 않았겠어요 단지 질기다는 경제적 이유로 발바닥과 열을 낸 나날들 그렇게 소모되어도 따뜻한 것이 되고 싶었지요 가끔 송사리를 가두는 유용한 도구이기도 했음이 너무 기특했어요 아직 걷고 있음이 사양하고픈 축복이지만 그렇지만 날이 저물어도 우리는 가야 해요 열심히 달리면 공짜로 공책과 연필도 생기는 그 화려한 축제는 가을 하늘에 고스란히 남아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해요. 소풍과 더불어 운동회는 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둘러앉아 음식을 나눈다. 알싸한 사이다는 왜 그리도 달콤한지, 세상을 다 얻은 듯 했다. 펄럭이는 만국기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뛰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꿈이 얼마나 원대한 것인지 절실히 느껴진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2-26

민주교사 정영상

민주교사 정영상은 잠결에 웃으며 심장마비로 죽었다 모든 죽음이 마찬가지다 청량리에서 밤기차를 타고 제천에서 내려 단양으로 총알택시를 갈아타고 정영상의 죽음을 확인하러 갈 때 어둠은 아늑하게 우리의 삶을 확인해 주었다 젠장,산다는 것이 눈물 한 방울로 정점을 찍어 살아갈 목표를 확인시킨다는 것 그 무심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관(棺)을 부여잡고 운들 무엇하리 살아 죄 한 점 없었던 사람이 어린 아들 딸 남겨 놓고, 마누라만 남겨 놓고 그렇게 간 죄가 많은 사람이 되어 떠났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이유도 없이 분노했다 정작 벌을 받아야 할 나는 멀쩡히 소주를 마시며 먼 월악산을 보고 있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마음이 저승에 닿아 강물로 흐르면서, 그가 굵은 손으로 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것, 그러나 그 감촉은 가을비보다 혹독했다 상(賞)보다 벌(罰)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 정영상은 결코 죽지 않았다. 정영상은 연일읍 출신으로 공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안동 복주여중에서 근무했으며, 전교조 활동으로 투쟁 중 심장마비로 세상과 이별했다. 내가 2학년 여름방학 때 임용대기 중이던 형은 자전거 뒤에 도시락을 묶어 화실로 출근하여 나와 자주 놀았다. 도시락과 막걸리를 나눠 먹으며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큰 자양분이 되었다. 털털거리는 그 자전거 소리가 아직 귀에 쟁쟁하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