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소등어리 초지
소등어리 초지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삶이라는,
다이제스트의 팔만대장경을 보는 듯
그러나 아무도 읽지 못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파란 지붕의 집 한 채가 있는데,
심성이 고약하나 정갈할 것 같은
주인이 살고 있음이 분명하나,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광대하면서 좁쌀 같은 마음에
점 하나 찍는 그 배포는
썩 마음에 든다
나는 아직 집 한 채도 없는 가난뱅이지만
무색하게도 마누라 집에 얹혀 살고 있으니
최후로 가난하지 않다
소등어리 초지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모두가 가난하면 아무도 가난하지 않고*
광활한 공허에 머물 수 있음에
기쁨의 치를 떤다
축약본 팔만대장경을 내려다보며 오줌을 누면
울릉도가 온통 따스해진다 생각하며
이것이 나의 울릉도에 대한 욱여넣음과 쟁여놓음이니,
그러나 부디 헛발질이기를.
*피터 모린의 말에서 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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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나 사랑 그것이다. 사랑은 유기적인 것에 대한 공감이며, 부패의 운명을 가진 유기체의 감동적이고도 방종한 포옹이다. 사랑은 아무리 근엄한 사랑이라 해도 육체적이지 않은 일은 없고, 아무리 관능적인 사랑이라 해도 근엄하지 않은 일은 없다.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리고 한 시집의 제목을 생각한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소등어리 초지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