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박정희와 박태준, 위대한 만남

▲ 이대환 작가서애 류성룡과 충무공 이순신은 16세기 중반 임진왜란 때 조선을 구해낸 영웅이다. 반드시 주목할 점은, 모함과 시기의 덫에 걸려 죽음으로 내몰리는 이순신을 살려낸 이가 류성룡이란 사실이다. 그래서 류성룡 없는 이순신은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순신 없는 류성룡은 있을 수 있었을까? 이순신이 없었다면 영의정 류성룡은 있었겠으나 구국의 영웅 류성룡은 있을 수 없었다. 이러한 사정을 환하게 밝혀낸 송복(연세대 명예교수)은 두 사람의 만남에 `위대한 만남`이란 말을 헌사하고, 같은 제목의 책을 썼다.그로부터 400여년이 지난 20세기 중반, 우리 역사는 또 하나의`위대한 만남`을 낳았다. 박태준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박정희와 박태준의 만남이 근대화 역사에서 `위대한 만남`으로 기록될 것이라 한다. 포항제철(포스코)은 한국 산업화의 기반이 되고 견인차가 됐는데, 박정희 없는 포항제철의 박태준은 있을 수 없었고, 박태준 없는 포스코의 성공은 있을 수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다.내가 쓴`박태준 평전`에 이런 문장이 있다.“박정희는 박태준의 순수하고 뜨거운 애국적 사명감만은 범할 수 없는 처녀성처럼 옹호했다. 정치권력의 방면으로 기웃거리지 않고 당겨도 단호히 뿌리친 그의 기개를 높이 보았다. 여기엔 한 인간과 인간으로서, 한 사내와 사내로서 오직 두 사람만이 온전히 알아차릴 수 있는 서로의 빛깔과 향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박정희와 박태준의 독특한 인간관계는 박태준이 자신의 리더십과 사명감을 신명나게 발현할 수 있는 양호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박태준이 정치적 방면으로 기웃거리지 않고 당겨도 뿌리쳤다는 것은, 1963년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박정희에게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은 그가 미국으로 유학 가겠다고 고집한 사실을 가리킨다. 1948년 남조선경비사관학교(육사) 강의실에서 사제지간처럼 맺어진 두 사람의 인연에서 그것은 `한국 산업화 역사`에서 새로운 전환점으로 기록될 만한 일대 사건이었다. 박정희가 박태준을 경제 방면에 투입하기로 결심하는 계기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 앞서 박정희는 5·16 군정에서 박태준을 상공담당 최고위원으로 활용하면서 경제적 인재로서의 박태준의 능력과 잠재적 가능성을 발견했다.그러나 박태준이 국회의원 출마를 거부하는 지점에 이르러 박정희는 그를 장기간 일본에 파견해 근대화 일본을 체험하게 만든 데 이어서 1964년 대한중석 사장으로 임명하고, 드디어 1967년에는 공식적으로 종합제철소 책임자로 발탁했다. 박태준 개인으로서는 박정희의 정치적 과오의 자리로 동행하지 않게 되는 새 출발이기도 했다.박정희가 포항제철의 박태준을 결정적으로 도와준 것은 무엇보다도`완전히 믿고 맡겼으며 정치적 외풍을 막아줬다`는 사실이다. 박정희가 믿은 것은 박태준의 탁월한 능력만이 아닐 것이다. 아니, 그의 순수하고 뜨거운 애국적 사명감을 믿었기에 능력도 믿었을 것이다. 전폭적 신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종이마패`였다. 정치인들이 그럴싸한 명분과 힘을 앞세워 포철의 설비구매를 통한 정치자금 조달을 압박해 왔을 때, 박태준이 박정희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자 박정희는 즉석에서 설비구매의 전권을 그에게 맡기는 메모에 사인을 해줬다. 박태준의 답례는 약속이었다. “각하께서는 저한테 해주실 것은 다 해주셨습니다. 이젠 제가 해드릴 차례입니다. 반드시 해드리겠습니다.”그리고 20여년이 흘렀다. 1992년 개천절, 박태준은 박정희 묘소 앞에 서 있었다. 종이마패, 실제로 한 번도 내민 적이 없었던 종이마패를 받은 자리에서 거듭 다짐한 그 약속을 완전히 실현했다는 보고를 올린 것이었다.이미 한국은 근대화에 성공한 샴페인을 터뜨린 나라가 돼있었다. 박정희와 박태준, 두 사내의 위대한 만남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2012-12-27

국민대통합 시대의 첫 걸음

▲ 이대환 작가“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화해는 우리 시대의 절박한 요청이며 과제다.” 이 시대적 숙원을 정치와 통치의 차원에서 처음 외친, 우리 사회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의 과제로 처음 제기한 인물은 고(故) 박태준 선생이다. 그때는 1997년 늦가을이었고, 그해 12월에는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한국 헌정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 그것은 우리 현대사에 새 지평을 개척한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때 박태준의 외침은 고독한 것이었고, 그만큼 사회적 반향이 미약할 수밖에 없었으며, 대통령 김대중은 그 고독한 외침을 하나의 유언처럼 고스란히 후대의 과제로 남겨둔 채 청와대를 나와서 이 세상을 떠났다.그로부터 정확히 15년 세월이 흐른 올해 12월, 박태준의 그 고독한 외침은 대선의 한국사회 안으로 마치 거창한 메아리처럼 부활해왔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대통합의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그것을 거대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다. 민주화의 상징이라 할 만한 인물들과 보수의 표본이라 할 만한 인물들의 정치적 행동도 이어졌다. 물론 그들에 대해 보수냐 진보냐 따위의 진영논리에 매몰된 인간들이 `배신자`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했다. 정나미가 뚝 떨어지게 만드는 언어를 동원해서.이제 선거는 끝났다. 과연 15년 만에 거창한 메아리처럼 돌아온 박태준의 그 고독했던 목소리는 대통합의 시대를 열어나가는 단초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 과연 새 대통령 당선자는 약속한 대통합의 시대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대통합의 시대를 이룩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조건은 무엇일까?5년 전 이맘때, 포항 사람들이 좋아라고 날뛰고 있던 그때,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이명박 당선자에게 충고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것은 이명박 당선자의 최대 공약이었던 `대운하`를 하루빨리 포기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때 내 주장의 요지는 이러했다.`대운하가 옳은가 그른가의 논쟁은 덮어두더라도, 대운하를 강행하면 우리 사회에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거대한 골짜기를 파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국민대통합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통치불능의 사태를 초래할 것이다.` 지금도 나는 이명박 대통령의 실패 요인에는 너무 오래, 너무 집요하게 대운하에 미련을 두고 있었다는 점이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새 대통령이 개척해야 하는 국민대통합의 시대는 결코 녹록한 과제가 아니다.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갈등은 여러 갈등이 혼재된 복합갈등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엉뚱하게도 영남과 호남의 갈등으로 직결됐고, 좌파와 우파의 이념대립을 낳았으며, 기성세대와 신진세대의 세대 갈등으로 번져갔고, 더 나아가 남한과 북한의 체제대결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그러나 해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첫 걸음은`박정희`를 역사 속으로 보내주는 일이다. 물론 민주화세력이라 자칭하는 정치적 지도력이 먼저 나서야 한다. 그들이`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역사 속으로 보내는 용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중국의 등소평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 등소평은 모택동에 대해 “공은 7이요, 과는 3이다”라고 정리한 뒤로 더 이상 모택동을 정치적 논쟁으로 삼지 않았다. 대통령 박정희에 대해 그와 비슷한 정리를 해줬어야 할 사람은 대통령 김대중이었다. 박정희의 사람들인 김종필과 박태준의 결정적인 도움을 받아 대통령이 된 김대중은 미적거리지 말고, 자기 세력의 눈치도 보지 말고, 아주 의연하게 박정희에 대해 `공은 7이요, 과는 3이다`라는 정도로 정리하고, 마침내 박정희를 역사 속으로 보내서 쉬게 해줬어야 했다.`새 정치`를 외친 오늘의 여야는 과연 그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이`대운하`에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했던 것처럼, 진영논리의 정치적 계산서를 버리지 못하면 그마저 어려울 것이다.

2012-12-20

박태준 사상, 미래를 열다

▲ 이대환 작가내일은 박태준 회장 서거 1주기다. 오전의 국립 서울 현충원 추모식에 이어 오후에는 포스코센터에서 부조(浮彫) 전신상 제막식과 `박태준 사상, 미래를 열다`라는 책의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인생의 황혼을 거니는 한 찰나를 재현한 그 벽에는 6천 쪽이나 되는 `박태준 어록`에서 연대별로 뽑은 그의 말도 한글과 영어로 새겨두었다. 모두 여섯 문장이다.1969년 12월 “조상의 피의 대가로 짓는 제철소입니다. 실패하면 우향우 해서 영일만 바다에 투신해야 합니다” 이 말은 영일만 신화의 핵이었던 우향우 정신이다. 1977년 5월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순교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세대입니다” 순교자적 희생, 가슴을 찌르는 말이다. 1986년 3월 “포항공대 설립은 먼 훗날을 위해서, 국가 장래를 위해서 큰 힘이 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과학기술이 뒷받침하지 못하면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는 신념이 박동치는 말이다.1997년 11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 영남과 호남의 화합은 우리의 시대적 소명입니다.” IMF사태(외환위기)를 예견하고 김대중 대통령 후보와 연대했던 외침이다. 김대중을 당선시켰지만 그때 그의 외침은 고독했다. 오늘의 한국사회가 여전히 그 갈등과 반목의 질곡에서 헤매고 있으니, 그것은 박태준의 선견지명이었다. 2010년 1월 “한 나라가 일어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힘은 지도층이 부패하지 않는 것과 국민이 자신감을 갖는 것입니다” 하노이국립대학 특별강연에서 베트남의 젊은 엘리트들과 교수들에게 들려준 말이다. 기립박수와 감동의 눈물이 답례로 돌아왔던 그 교훈은 오늘의 우리 사회에도 절실한 가르침이다. 2011년 9월 “우리의 추억이 포스코의 역사에, 조국의 현대사에 별처럼 반짝인다는 사실을 우리 인생의 자부심과 긍지로 간직합시다” 퇴역한 초창기의 현장 직원들과 19년 만에 재회한 그 자리가 그의 마지막 연설이었다.말은 그의 생각이고 사상이다. 그러나 언행일치, 지행합일이 없는 말(사상)은 그냥 관념일 뿐이다. 박태준의 위대성은 사상이 복잡하고 정교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말을 완전하고 철저하게 실천하여 위대한 공적으로 실현했다는 것이다. 박태준 사상은 캄캄한 절망의 시대에 희망찬 미래를 열어젖히는 횃불이 되고 빈곤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열쇠가 되었다. 그래서 그의 삶과 어록을 연구해 1주기에 나온 책이 `박태준 사상, 미래를 열다`로 총 450쪽에 이른다.교수 다섯 명이 쓰고, 나는 엮은이 역할이었다. `박정희와 박태준`의 만남을 임진왜란 때 `류성룡과 이순신`의 만남과 같은 `위대한 만남`이라 했던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사회학)는 박태준 사상을 “선비사상을 행위규범으로서 실천한 현장의 선비사상”으로 체계화했고, 최진덕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철학)는 “박태준의 결사적인 조국애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의 부름에 결사적으로 응답한 것”이라 했다. 전상인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개인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성취와 승리라는 거시구조적 맥락에서 영웅 박태준을 위치시켜야 한다”고 규명했으며, 김왕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박태준의 제철보국 이념은 주체적 자율적 내발동력의 원천”이라 했다. 백기복 국민대 교수(경영학)는 “박태준의 경영사상은 하나의 독립된 경영사상으로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요건들을 다 갖추었다”고 증명했다.“임자가 맡아. 이건 아무나 할 수 없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만이 해낼 수 있어. 그러니 임자가 맡아” 이것은 1967년 대통령 박정희가 대한중석 사장 박태준의 어깨 위에 종합제철소 건설의 책임을 얹어주며 했던 말이다. 박태준을 골라낸 박정희의 형안은 빛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25년 뒤의 개천절, 광양제철소까지 완성해 포스코를 세계 최고 철강기업으로 육성한 박태준은 서울 현충원의 박정희 유택 앞에서 눈물 젖은 `임무완수 보고`를 올렸다. 우리 현대사에서 송복이 말한 박정희와 박태준의 `위대한 만남`이 완성된 순간이었다.지금, 박태준은 박정희의 이웃으로 누워 있다. 황혼을 거니는 시절에 그가 늘 소원했던 대로 과연 두 사람은 어느 주막에서 해후하여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며 며칠에 걸쳐 막걸리를 나누었을까. 하늘이 무심하지만은 않으니 그만한 소원이야 들어주지 않았으랴.

2012-12-12

이정희 후보, 그리고 마음속의 강(江)

▲ 이대환 작가그저께 밤, 대선후보 3인의 TV토론을 지켜보았다. 자주 짜증이 치밀어서 돌릴까 했으나 혹시 정책 차이를 발견할까 하여 끝끝내 돌리지 않았다. 내 소감은 실망스러운 토론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모양으로 만든 주요 원인은 이정희 후보와 눈치뿐인 사회였다고 생각한다. 무슨 선거법이 이따위냐 하다가도 3번 후보가 따발총 말솜씨로 떠들어댈 때마다 의구심이 솟구쳤다. 저런 얼굴이 과연 한국 진보의 얼굴인가? 나는 이른바 `이념의 경계`안에 갇혀서 살지 않는 작가지만, 나와 같은 시청자도 지켜보는 그 화면에서 그토록 `목적지상주의`를 맘껏 발휘해도 되는 것인가? 내가 보기에 한국 진보에 가장 시급한 기본자세는 `겸손과 예의`이다. 그러나 목적지상주의에는 겸손과 예의가 존재하기 어렵다. 그 이념, 그 사상에서 겸손과 예의는 거추장스런 액세서리에 불과하거나, 언제든지 겸손과 예의를 위선용 도구로 활용할 수도 있고, 그것들을 공격의 창칼로 둔갑시킬 수도 있다.보수를 하든 진보를 하든 어떤 사람들은 정말 똑똑한데도 도대체 왜 인간의 가장 근본인 그 무엇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일까? 보수를 탐욕으로 규정한 진보는 탐욕에 대한 저항을 거창한 도덕적 기반으로 삼는다. 탐욕의 세력과 무리를 향하여 저항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는 언제나 정의와 선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의도 좋고 선도 좋고 투쟁도 좋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 제일의 근본은 `인간됨`이다.인간의 가장 근본인 그 무엇을 상실했다는 말은 `인간됨`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면, 왜 배울 만큼 배우고 공부할 만큼 공부한 인간들이 탐욕의 늪에 빠져서 그런 줄도 모르고 날이면 날마다 `돈 계산`이나 하게 되고, 그런 탐욕의 세력에게 저항한다는 신념에 불타서 겸손과 예의를 다 팽개치고 날이면 날마다 `정치적 계산`에만 골몰하게 되는 것일까?우선, 나는 디지털 시대의 인간들이 저마다 인간의 마음속에 흐르는 `강(江)`을 까맣게 잊어버린 탓이라고 본다.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투쟁이 있었지만, 그 투쟁의 목소리도 인간들에게 그의 마음속에 흐르고 있는 강을 한번쯤 들여다보게 하거나 느끼게 만들지는 못하고 말았다. 정치적, 환경적 투쟁의 효과를 얼마간 올리긴 했겠으나, 우리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인간들의 심성을 좀 더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전혀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내가 만난 강 중에서 사람의 마음속에 흐르는 강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달타`에 등장하는 강이다. 기나긴 방황의 여정을 거의 마친 뒤에 이윽고 늙어가는 싯달타는 묵상 속에서 흐르는 강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는 정답게 흘러가는 강기슭에서 수정과 같이 투명하고 신비로운 물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강은 여러 가지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혹은 푸른 눈, 흰 눈, 혹은 수정같은 눈, 혹은 하늘빛 같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오, 그렇다. 그는 그 강물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이 흐르는 강물을 이해하는 사람은 다른 모든 인생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싯달타는 깨닫는다. “모든 창조물의 소리들이 이 강물 속에 있소. 만일 그 수천 가지 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다면 강은 당신에게 무슨 소리를 할까요?”탐욕, 탐욕과의 투쟁. 양쪽 다 이제는 자기 마음속의 강부터 만나기 바란다. 20세기의 역사는 이미 웅변해주었다. 잘못된 자본주의가 인간을 이윤 창출과 그 착취의 도구로 취급했다면, 그것을 해방시킨다고 했던 공산주의혁명은 너무 많은 인간의 생명을 정치적 투쟁의 도구로 취급했다는 사실을!

2012-12-06

왜 `박태준`을 연구해야 하는가?

▲ 이대환 작가오는 12월13일은 박태준 포스코 창업회장의 서거 1주기다. 대선의 아우성이 고인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덮어버릴지 몰라도, 현재 추모사업위원회는 차분하고 조용하게 그날의 일들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눈에 얼른 띄지 않을 일에는 `박태준 연구`라는 학자들의 연구 작업이 있다. 몇 년 전부터 시작한 그것은 올해 4월에 `박태준 연구 총서`다섯 권으로 출간되기도 했고, 이 성과들을 바탕으로 삼아 그의 정신세계와 신념체계를 더 치밀하게 통찰하고 분석한 `박태준의 사상`이 1주기에 맞춰 출간될 예정이다. 지난해 박태준의 서거 당시에 여러 외국 언론과 국내의 모든 언론이 하나같이 그의 영정 앞에 헌화하듯 `영웅, 거인, 거목`을 바쳤다시피, 그는 한국 근대화 시대의 영웅이다. 이 영웅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이제부터 더 본격적이고, 더 적극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책들의 저자나 편저자로서 서문 또는 후기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는데, 그것이 괜찮은 대답이 될 것 같다. 긴 인용이다.`영웅의 죽음은 곧잘 공적의 표상으로 되살아난다. 이것이 인간사회의 오랜 관습이다. 세상을 떠난 영웅에게는 또 하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강요된다. 여기서 그는 우상처럼 통속으로 전락하기 쉽고, 후세는 그의 정신을 망각하기 쉽다. 다만 그것을 막아낼 길목에 튼튼하고 깐깐한 바리케이드를 설치할 수는 있다. 인물연구와 전기문학의 몫이다.인물연구와 전기문학은 다른 장르이다. 하지만 존재의 성격과 목적은 유사하다. 어느 쪽이든 주인공이 감당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그를 인간의 이름으로 읽어내야 한다.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은, 그의 얼굴과 체온과 내면이 다시 살아나고, 당대의 초상이 다시 그려지는 부활의 시간이다. 이 부활은 잊어버린 질문의 복구이기도 하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 어떻게 위업을 이룩할 수 있었는가? 이것은 관문의 열쇠이다. 그 문을 열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그의 신념, 그의 고뇌, 그의 투쟁, 그의 상처가 숨을 쉬는 특정한 시대의 특수한 시공(時空)과 만날 수 있으며, 드디어 그의 감정을 느끼는 가운데 그와 대화를 나누는 방에 이르게 된다.거대한 짐을 짊어지고 흐트러짐 없이 필생을 완주하는 동안에 시대의 새 지평을 개척하면서 만인을 위하여 헌신한 영웅에 대해 공적으로만 그를 기억하는 것은 후세의 큰 결례이며, 위대한 정신 유산을 잃어버리는 사회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이 신념의 나침반을 따라 한 치 어긋남 없이 헤쳐 나아간 박태준의 일생은 철저한 선공후사와 솔선수범, 그리고 순애(殉愛)의 헌신으로 제철보국 교육보국을 실현하는 길이었다.그것은 위업을 창조했다. 제철보국은 무(無)의 불모지에 포스코를 세워 세계 일류 철강기업으로 성장시킴으로써 조국근대화의 견인차가 되고, 교육보국은 유치원·초·중·고 14개교를 세워 한국 최고 배움의 전당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한국 최초 연구중심대학 포스텍을 세워 세계적 명문대학으로 육성함으로써 이 나라 교육의 새로운 개척자가 되었다. 더구나 모든 일들이 오직 일류국가의 이상과 염원을 향해 나아가는 실천이었다.그러므로 후세는 박태준의 위업에 내재된 그의 정신을 기억하면서 사회적 무형의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박태준 연구총서`와 `박태준의 사상`이란 책들은 그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성과를 체계화하여 앞으로 이어질 박태준 연구에 대한 선행연구의 역할을 맡는 가운데 기존 `박태준 평전`과 함께 언젠가 그를 공적의 표상으로만 기억하게 될지 모르는 그 위험한 길목도 지켜줄 것이다.`우리는 영웅을 기억해야 한다. 거대한 위업과 함께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그의 정신세계를.

2012-11-29

사상(思想)이 사라진 물신(物神) 사회

▲ 이대환 작가사상이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서 보통 사람들은 주눅부터 들어 말문이 막히기 마련이다. 체계와 논리를 정연히 갖춘 거창한 정신세계가 사상이라고 생각해온 오랜 통념이 그 모양으로 만든다. 헤켈, 칸트, 니체, 하이데거, 주자, 왕양명 같은 동서의 고명한 이름들까지 떠올리게 되면, 그만 스스로가 한없이 왜소해 보이고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통념이다. 사상을 그런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상이 무언지 모르거나 사상을 너무 현학적으로 맹신해온 탓이다. 사상은 우리 삶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고원(高遠)한 무엇`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현학적이고 고원한 정신세계가 체계와 논리까지 겸비했다면 그것이 사상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런 정신세계만이 사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우리는 지금, 인간사회에서 사상이 존립하게 된 원래의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상이란 원래 우리가 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나침반 같은 것이었다. 더 정확히는 `올바른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게 하는 힘`이었다.인간사회에서 사상의 존재이유가 올바른 생각의 나침반이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위대한 학자의 `위대한 사상`이라 해도 그것이 인간의 삶과 행동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한낱 `화려하고 찬란한 꽃`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성립시켜 준다. 심하게 말하는 철학자들은, 우리의 올바른 삶과 행동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상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삶을 위한 사상도 아니고 행동을 위한 사상도 아닌 사상, 그러니까 사상을 위한 사상, 한마디로 말해 그 `순수사상`은 각박하고 절박한 현실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한가하고 고고한 학자`의 지적 유희(遊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거듭 말하지만, 사상이 인간에 꼭 필요한 이유는 우리에게 삶의 지향점을 제시해주고, 그것을 위한 행동의 힘이 되는 것이다. 삶의 지향점을 상실한 인간, 올바른 행동을 상실한 인간의 보편적 특징은 그 사상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타인에게 엄청난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주는 것도 어떤 인간의 특이한 사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을 우리는 쉽게 `사이코`라 일컫는다. 원래 사상의 존재 이유는 올바른 생각과 그 실천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다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상을 갖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꼭 참고해야 할 하나의 조사 결과가 있다. 지난해 이맘때쯤 한국 갤럽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물질주의(물질을 최고 가치로 여기며 가장 중시하는 것)가 미국인보다 3배나 높고, 일본인보다 2배나 높다고 했다. 물질주의를 쉬운 말로 바꾸면 “돈을 최고 가치로 여기며 가장 중시하며 자기의 개인적 이익추구를 절대적으로 제일 먼저 추구하는 것”이다.새삼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개인적 이익추구를 사상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사회인데, 개인적 이익의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러한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일수록 더욱 절실히 필요한 것이 `인간사회에 존재해야만 하는 바로 그 사상`이다. 그 `사상`만이 각박함을 풀어줄 수 있는 개인적 차원의 묘수인 동시에 `가장 소중한 사회자본`이 되는 것이다.그러나 현재 한국에는 사회적·시대적 차원의 그 `사상`이 맥을 못 추고있다. 그 `사상`이 사라졌다고 한탄하는 `우국지사`가 나오는 형편이다. `돈벌이`에서 대박을 터뜨린 `스타`들이 마치 `한국사회의 사상적 전범(典範)`으로 군림하고 있다. `돈벌이`에서 대박을 터뜨리지 못하면 `스타`가 될 수도 없고, 스타가 못 되면 일약 혜성과 같은 정치인으로 등장할 수도 없는 사회구조로 굳어져가고 있다.`사상`이 맥을 못 추거나 실종된 그 자리에 강림해 계시는 물신주의, 이것이 바로 물신사회이고, 각박한 사회이고, 자살률 높은 사회이다. 지금, 우리는 너나없이 물신의 그물에 갇혀 있다.

2012-11-22

상식과 단일화, 스타와 욕망

▲ 이대환 작가안철수 후보의 브랜드는 `상식`이다. 나는 그의 상식에 대하여 몇 가지 의문을 품고 있다. 잠깐씩 검증의 대상으로 떠올랐던 딱지 아파트, 아내의 서울대 교수 임용과정, 전세살이 타령, 단란주점 등과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그저께(13일) 한 언론사의 대선 여론조사를 본 다음에는 이 시점에서 `안철수의 상식`에 대한 나의 근본적 불만을 밝혀도 될 것 같았다. 그 발표에 따르면 `박근혜와 문재인`이 맞붙어도 박근혜가 조금 빠지고 `박근혜와 안철수`가 맞붙어도 박근혜가 조금 빠지는데, 안철수보다는 문재인이 박근혜에게 간발의 차이로 더 이길 것이라고 했다. 이쯤에서 내가 안철수 후보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대통령이 될 준비, 나라를 통치할 준비,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준비를 아직은 시간 부족의 관계로 인해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이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 이것이 안철수의 `상식`에 맞는가?” 내가 안철수 후보가 될 수 없듯이 그가 이대환 작가가 될 수 없는 일이지만, 내 상식에는 그것이 결코 맞지 않다.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안철수 후보나 그 캠프는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급조한 책을 펼치거나 인기를 누렸던 `청춘콘서트`를 틀어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책은 여러 지식인이 평가한 것처럼 그야말로 `상식의 교과서` 수준이고, 젊은 대학생들을 상대하여 현실을 비판하거나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행위와 국가통치의 행위는 아주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이러한 사실들도 그저 `상식`에 불과하다.물론 내 주장이 `안철수의 상식`과 다를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나보다 훨씬 경륜도 많고 훨씬 명성도 높은, 그 캠프의 이헌재 전 부총리나 조정래 소설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곁에서 지켜보니까 안철수 후보는 국가를 통치할 준비를 제대로 갖춘 사람인가, 아니면 너무 서두르는 것인가. 내 질문은 이런 상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안철수 후보의 정당이 없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큰소리도 상식을 벗어난 발상이다. 국민의 뜻, 국민의 명령이란 말로 정당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젊은 세대의 압도적 지지를 빼고 나면 지지율이 폭락한다는 지지층의 구조도 왠지 불안하고 허술해 보인다. 선거는 젊은 바람으로 승리할지 몰라도 통치는 그 바람으로 성공할 수 없다.그래서 나는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의 `담판 단일화`를 선호한다. 또한 그래서 나는 안철수 후보가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큰 바람을 일으킨 사람으로서 양보하는 것이 맞고, 그래야 늦었지만 이제라도 자신의 그 상식에 합당한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렇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찍겠다는 결심을 세운 것도 아니며, 박근혜 후보를 찍겠다는 결심을 세운 것도 아니다. 더 지켜볼 것이다. 특히 남북관계에 대한 정책과 신념, 6자회담에 대한 구상과 철학,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대응책 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아직도 정책 대결이 성립되지 못하고 있으니 그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도 온갖 계산이 난무할 `단일화 테이블`이 한시바삐 뉴스에서 사라지기를 바란다.이제 우리나라에 영웅은 없는가? 난세에는 영웅이 난다고 했지만, 다시 난세에 들었음에도 영웅은 보이지 않고 대신 `스타`(star)만 심심찮게 떠오른다. 스타는 많아도 영웅은 없는 사회는 `연예사회`(show business society)라고 할 수 있으며, 대통령선거도 연예인에 대한 인기투표를 하듯이 해치울 위험성이 농후하다. 스타나 영웅이 될 욕망을 품은 적이 없어도 작가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자주 곱씹었던 나는 `스타`들에게 자신의 인기에 도취하여 영웅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충고나 해주고 싶다.영웅과 스타는 본질이 다르다. 인류 역사에서 영웅의 원형은 신화 속에 있다. 신화학자 조셉 켐벨은 세계 각국의 신화구조가 갖고 있는 근본적 공통점은 `영웅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라 했다. 인간에게 가장 힘겨운 자기극복의 대상은`자기논리가 완성된 욕망`이다.

2012-11-15

6자회담을 뜯어고칠 후보는 없는가?

▲ 이대환작가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 포항시 남구 선관위 이마에 붙은 말이다. 다른 선관위에도 붙었는지 모르겠으나, 대한민국 64년사의 산맥 하나는 그 꽃을 제대로 피우려는 고난과 투쟁으로 이루어졌다. 그 꽃은 무엇보다도 대선이 `정책과 인물의 대결`로 이뤄질 때 비로소 활짝 피어난다. 안타깝지만 그 꽃은 이번 대선에서도 시들시들하다. 아직도 정책과 인물의 대결은 성립되지 않았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어떻게 단일화할 것인가? 박근혜 후보와 단일 후보가 맞붙으면 누가 이길 것인가? 이따위에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다. 이것은 `안철수의 그늘`이다. 현재까지 그가 가장 잘한 일은 한국정치에 쇄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이고 가장 잘못한 일은 정책과 인물의 대결을 실종시킨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주장했지만, 다음의 대선도 이번처럼 진행된다고 가정할 경우에는 차라리 법을 개정해서 대통령선거일이 100일 남은 날부터는 어떤 명분과 수단으로든 후보 단일화를 금지시켜야 `민주주의의 꽃`에게 거름이 될 것이다.정책 대결이 실종 상태인 현재, 내가 세 후보에게 똑같이 실망하는 외교정책의 하나는 `6자회담`이다. 평양의 발언처럼 `식물상태`에 있거나 오랜만에 열려봤자 곧잘 헛바퀴를 돌려온 것이 6자회담이다. 물론 그것은 6자의 전략이 서로 어긋나니까 발생한 일이다. 그러나 6자회담의 핵심의제 그 자체가 근본적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그리고 남한과 북한이 모이는 6자회담이 왜 `북핵(北核)`에만 매달려야 하는가?나는 6자회담의 명칭부터 뜯어고치기를 바란다. `한반도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6자회담`이 좋을 것이다. 북핵은 한반도평화체제 정착의 하위에 있어야 제자리가 맞다. 한반도평화체제 정착의 기나긴 여정에서 큰 걸림돌 하나를 처치하려는 통찰력으로 다뤄야하는 것이 북핵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 대해 현실성이 빈약하다고 비판할 전문가가 적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만약 대선 후보들 중에 누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당신은 역사적 상상력이 빈곤하군요.”라는 반박을 해주겠다.왜 6자회담은 `한반도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6자회담`으로 정정되고 격상돼야 하는가? 이유는 명백하다. `분단 70년`을 불과 2년여 남겨둔 한반도의 비극과 고통을 초래한 당사국들이 바로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이기 때문이다. 새삼 문헌들을 들출 것도 없다. 분단의 근원은 일제 식민지 지배였다. 세계적 냉전체제의 확립 속에서 미국과 러시아(구 소련)는 한반도 분할점령에 대한 협상의 산물로서 `38선`이라는 분단을 창출했다. 김일성 정권이 일으킨 한국전쟁에 중국이 개입하여 `휴전선`이라는 새로운 분단을 창출했다.평양의 나팔수는 변함없이 `우리 민족끼리`를 외쳐대지만, 한 발의 총성도 없었던 독일의 흡수통일 과정에서 그때 서독 정부는 러시아, 프랑스, 영국, 헝가리, 미국 등을 상대로 긴박하고 절박한 외교전을 펼쳤다. 여기에 관해서라면 우리의 전문가들도 바싹하게 공부를 해놨을 것이다. 더구나 남한은 북한을 흡수할 실력이 모자란다. 전쟁통일은 결단코 반대한다. 전쟁으로 통일할 바에는 통일을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래서 평화통일은 우리의 시대적 숙원이 되었다. 그러나 한반도평화체제 정착이 선행되지 않으면 평화통일은 오지 않는다.이번 대선에서 우리는 역사적 상상력과 담대한 외교적 모험심과 확고한 시대정신을 겸비한 후보를 뽑아야 한다. 이런 대통령만이 6자회담 당사국 정상들에게 6자회담의 명칭 변경과 핵심의제 조정을 설득할 수 있다. 그 자리에서 윤리적 정당성은 확실히 우리 대통령의 것이다.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당신들이 바로 한반도에서 7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분단의 비극과 고통에 대한 실질적 책임자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우리 대통령은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려도 좋다. 분단의 비극과 고통에 진정으로 민감한 지도자라면 그 자리에서 눈물을 참기도 어려울 것이다. 유엔총회에 가서도 왜 6자회담이 `한반도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회담`으로 정정되고 격상돼야 하는가를 호소하고 주장해야 한다. 인류의 양심에 공명을 일으킬 만한 명문장과 명연설로 말이다. 지금 여기, 그런 대통령 후보가 있고 그런 정책이 있는가?

2012-11-08

오랜 독자들에게 띄우는 편지

이대환 `ASIA`발행인·작가고향 독자들과 생각을 나눈다는 봉사의 마음으로 이태에 걸쳐 거의 매주 월요일마다 `세상읽기`를 했다. 새해부터는 다른 글쓰기에 쫓겨 멈춰야 하니, 이제 인사를 겸해 세모(歲暮)의 소회를 밝힐까 한다.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한국의 영웅이 떠났다”고 보도한 고(故) 박태준 선생을 서울 현충원 국가유공자 묘역으로 모시려는 어느 시각이었나 보다.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심장을 뚝 멈췄다.올해는 `세계 독재자들의 수난의 해`로 기록될 만 하다. 1월에는 노점상 청년 부아지지의 분신자살이 촉발한 재스민혁명이 튀니지의 23년 독재자 벤 알리를 축출하더니, 2월에는 이집트의 30년 독재자 무바라크를 쫓아내고, 4월에는 코트디부아르의 10년 독재자 로랑 그바그보를 법정에 세우고, 10월에는 리비아의 42년 독재자 카다피를 사살하고, 11월에는 예멘의 33년 독재자 압둘라 살레를 권좌에서 밀어내고, 12월에는 자연섭리가 북한의 세습왕조적인 독재자 김정일을 땅으로 거둬들였다. 아랍권 시민혁명에는 SNS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북한에는 SNS가 없어서 주민봉기가 안될 거라는 견해도 부쩍 지지를 받았었다. 물론 SNS가 아랍권 시민들을 민주광장에 모여들게 하는 연락책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SNS가 없다고 시민혁명이 안 되나? 우리의 4·19의거 때는 전화기마저 귀한 시절이었다. 결코 SNS는 혁명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것은 등사기나 인쇄기를 대신하는 도구일 뿐이고, 인간이 인간적 한계로써 세상을 뒤엎는 거다. 아마도 북한 인민은 60년 넘은 철저한 세뇌와 20년 가까운 굶주림 속에서 인간적 한계를 돌파할 집단저항의 기력마저 고갈했을 거다.요새 한국 정치판은 어떤가? 진보는 절반의 통합에 성공하고, 보수는 쇄신한다고 야단이다만, 총선의 `아생(我生)`부터 모색하는 그들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꼴통좌파(꼴좌)`와 `꼴통우파(꼴우)`라는 시대적 과제는 고스란히 남았다.꼴좌는 교만의 만용에 사로잡혀 있다. 세계적 변화의 조류를 마치 고약한 망아지쯤이나 송아지쯤으로 여기는 것 같은, 비록 자신이 몇 차례 땅바닥으로 나뒹구는 고통을 당할지언정 반드시 그 망아지를 길들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은, 비록 자신이 몇 차례 땅바닥으로 나자빠지는 곤경을 겪을지언정 반드시 그 송아지에게 코뚜레를 꿸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은, 고체덩어리로 굳어버린 교만의 만용이다. 그것이 피의 폭력마저 투쟁수단이라고 정당화한다.꼴우는 탐욕을 다스리는 영혼이 매우 빈곤하다. 그들의 내면에는 세상만사를 `돈`과 관련짓는 습성이 마치 썩어빠진 수도배관 속의 녹처럼 덕지덕지 끼어 있다. 그들은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다는 거의 신앙적인 교만을 고체덩어리처럼 머릿속에 박아두고 있으며, 그것으로 곧잘 합리보수들까지 더럽힌다.꼴좌는 변혁을 외치지만 무엇보다 `정세의 근본적 변화`를 두려워한다. 자기 사상, 자기 신념을 신성불가침으로 절대시하며, 투쟁해서 헤게모니를 잡고 기필코 그것을 실현하자고 맹세한다. 원리주의의 종교집단을 방불케 한다. 꼴우는 무엇보다 `돈`을 우선시하고 중시한다. 돈을 최고 가치로 숭배한다. 종교를 가져보았자 실상은 물신주의에 갇힌 채 기도한다. 물신숭배의 신도들이다. 꼴좌와 꼴우는 적대관계이면서 상생관계이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고, 너와 내가 싸워야 서로 생존의 영토를 확장할 수 있다는 거다. 늘 적과 동침하며 늘 적과 싸우는 관계인데, 승리는 꼴좌가 독차지한다. 비정규직, 환경, 노동 문제에서 꼴좌는 `정의, 평등, 인간다움` 같은 고전적 불변가치들을 앞세울 뿐만 아니라, SNS 따위를 장악하는 수완이 꼴우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그런데 두 세력이 아무리 날뛰어보았자 우리 사회가 그들을 시대적 변두리에 머물게 하는 문화적 역량을 체질화하는 날에는 그들도 인간세상의 구색쯤에 불과해질 거다. 올해 사라진 독재자들을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비추면 거의 `꼴좌`인데, 공통점은 개혁과 개방에 대한 완강한 거부였다. 중국 공산당과 소비에트 러시아 공산당이 벌써 80년대에 선택한 그것을 끝내 거부하면서 인민을 억압하고 호도하는 가운데 자신의 권좌옹호를 최우선시하는 `기만의 만용`에 빠져있었던 거다.더욱 혼란스러울 새해를 예측해보면, 고 박태준 선생의 사상과 실천이 더욱 귀중해 보인다. 그분은 후세들이 우리의 60년대, 70년대를 공평한 시각에서 공부하라고 당부했다. “독재의 사슬도 기억케 하고, 빈곤의 사슬도 기억케 하라!” 이것이다.오랜 독자들에게 거듭 인사를 드리며, 그분의 삶을 배워서 새해 우리의 삶도 한층 아름다워지기를 바란다.

2011-12-26

안철수의 책무, 그리고 박경철

이대환 `ASIA`발행인·작가“안철수씨가 30% 정도 지분을 갖고 있는 안철수연구소가 올해 들어 주가가 500%나 뛰었다는데, 이는 안철수씨의 대권행보에 영향을 받은 주가 상승이다. 적절히 정치권에 왔다갔다하면서 자신의 높아진 정치적인 인기 때문에 안철수연구소 주식이 계속 고가를 유지하도록 교묘하게 개입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지난 10월25일,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캠프에 레터를 들고 찾아간 다음날에 `대통령을위한기도시민연대(PUP)`가 발표한 성명의 한 구절이다. 문득 이것이 궁금해진다. 오늘이라도 그가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안철수연구소 주가는 곧바로 곤두박질칠 것인가?안철수 교수의 느닷없는 등장은 가장 극적으로, 가장 적나라하게 한국정치를 혁신대상의 실체로 시대적 무대 위에 세워놓았다. 치솟은 주가총액 중 1천500억 원을 뚝 떼서 쾌척한 것보다 훨씬 뛰어난 그의 시대적 공로가 바로 그 점이다. 그런데 누가 어떻게 한국정치를 혁신할 것인가? 한나라당은 쇄신을 하겠다 시끄럽고 민주당은 통합을 하겠다 시끄러운데, 그는 정당도 안 만들고 내년 총선에도 안 나간다니 시대적 과제만 명확히 해둔 상태에서 뒤로 빠지겠다는 것인가? 내년 총선 기간 중에 적절한 때를 골라잡아 어느 정당 대표를 찾아갈 수도 있을 테지만, 그것은 선거운동이지 한국정치 혁신운동은 아니다.왜 한국정치는 혁신대상인가? 한마디 인터뷰를 요구한다면, 영혼이 없는 인간들과 낡아빠진 이념의 노예들이 정치판에 우글거리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그들이 뒤섞인 정치판은, 계산과 아집이 넘쳐나서 양보와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정치판의 영혼이 없는 인간들은 그의 종교도 이미 하나의 선거운동 도구이기에 종교가 내면에 대한 진실한 통찰을 도와주지 못한다. 늘 자기 계산에만 분주하여 국민과 시대를 운운해봤자 한낱 자기 계산을 치장하는 허영일 뿐이다. 정치판의 낡아빠진 이념의 노예들은 자기가 정의와 선의 실현을 위해 투쟁한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 투쟁은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최고 전술이라 확신한다. 먼저 그의 내면에 천지개벽의 혁신이 일어나야 그 노예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과연 안철수 교수는 한국정치를 혁신할 의지와 신념이 있는가? 방법과 비전은 있는가? 있으면 밝혀야 한다. 없으면 없다고 밝혀야 한다. 정치판에 들지 않더라도 그것만은 밝혀야 옳다. 그것을 밝히는 일은 안철수연구소 주가를 치솟게 해준 자본주의 시민에 대한 예의이며, 그를 한국정치의 메시아처럼 등장시킨 이 나라 젊은 세대에 대한 책임이다. 정치를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만, 정치적 언행에 대한 책무는 다해야 옳은데, 그의 책무란 바로 그 예의와 그 책임을 실천하는 일이며, 그래야 그가 주장하는 상식에도 합당하다.개그콘서트의 `달인`에 뚱뚱한 사회자가 나왔듯이, 청춘콘서트에는 박경철도 나왔다. 박경철은 의사(義士)인가? 아니다. 그는 의사(醫師)다. 의사면 그냥 의사지 `시골의사`는 또 무언가? 안동이 서울보다 시골인데, 현재 한국과 세계를 통틀어 `시골`이라는 말을 상품화시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린 주인공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의사가 본업이지만 주식 등 재태크에 성공해 이른바 대중의 스타로 떠오른 경우다. 이제는 `시골의사`란 말을 그만둘 때도 한참 지났건만 그것이 극대화시킨 자본주의적 상품성을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요새 서울역 지하철 유리벽에 박원순 시장의 책 광고가 대문짝만 하게 붙어 있다. 거기도 `시골의사 박경철`이 나왔다. `경제평론가`라는 직업명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시골의사에서 재태크 전문가로, 다시 경제평론가로, 그 화려한 진화와 변신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박경철은 재태크 전문가로 유명세를 올리며 성공한 인물이었다. 의사(義士)의 삶은 아니었다. 현재까지는 자본주의적 대박의 롤모델이며 좀 허황한 젊은이에게는 사막의 신기루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경제평론가인지 아닌지, 이것은 그의 말과 글을 모르는 내가 평가할 노릇이 아니다.

2011-12-05

나의 `이립(而立)`의 나무

이대환 `ASIA`발행인·작가24년 전 이맘때는 드디어 내 인생도 삼십대의 문지방에 닿은 초겨울이었다. 세계의 변혁에 대하여 진정으로 고뇌하는 인간은 삼십대라는 시절에 청춘의 순정한 열정적 관념을 전략으로 가다듬는다. 또한 그것을 자신의 신념과 사상이라 자부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에 대하여 `진보와 정의와 선(善)을 위한 투쟁`이라 확신한다. 마르크스, 히틀러, 호치민이 그랬다. 하얼빈 역두에서 권총을 쏘는 안중근은 삼십대였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도 삼십대였다. 존재의 본질, 세계의 변혁에 대한 탐구와 번민으로 술을 마시며 청춘을 탕진한 즈음에 맞이한 삼십대의 문지방에서 나는 폭음의 음주벽에 휘둘리고 취할수록 `더러운 것들`에 대한 분노가 더 명징해지는 인간이었다. 이미 작가였지만 작중 인물의 고민과 발언은 늘 술잔에 담겨 있었다. 건강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는 쓸쓸한 인간이었다.그러나 비록 내가 `작가가 된 것` 외에는 보잘것없는 청춘을 보냈을지언정 삼십대의 문지방에서 공자의 그 `이립(而立)` 하나만은 이루었노라 자위(自慰)한다. 권력욕, 물욕, 명예욕과는 떨어진 곳이었지만 나의 `이립의 묘목(苗木)`은 한국적 상황과 세계적 변화라는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작가정신으로 인생을 헤쳐 나가겠다는 신념이 확고했으니, 그렇게 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24년 전 초겨울, 1987년 11월 하순, 그때 한국인은 온통 대통령선거에 몰입해 있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이라는 민주화 세력의 분열이 `보통사람 노태우`를 당선시킨 선거. 그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나는 이렇게 썼다. “소아적(小我的) 권력욕의 늪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한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과 배반은, 사람들의 마음이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받아들이려는 창문처럼 활짝 열리고 손주를 안은 할아버지처럼 너그러워질 수 있는 문화적 전환과 도약의 발판을 팽개친 역사적 죄악이다”그리고 이태가 더 지난 1989년 11월9일, 20세기 후반의 지구에서 `세계사를 변혁한 지도자`라 칭송되어 마땅한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미모의 아내와 함께 브란덴부르크 문에 나타나 환한 웃음의 박수를 치며 말했다. “역사는 늦게 오는 자를 처벌한다” 바로 베를린장벽이 허물어진 순간이었다. 그것은 현존 사회주의체제가 연쇄 붕괴하는 신호탄이었다. 그때 인간의 윤리의식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져 있던 나는 이렇게 썼다. “인간은 사회주의를 할 수 있는 천부의 윤리적 자질이 크게 부족하다. 이념이 인간 조건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조건이 이념을 창조하며, 인민이 체제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가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그렇게 태어난 나의`이립의 묘목`은 삼십대와 사십대를 다 지나고 머리칼이 희끗희끗해진 현재에 이르러 제법 무럭무럭 자라났다. 시인 에즈라 파운드가 `하루에 사상이 하나씩 죽는` 연령대라고 모질게 질타한 사십대에 그와는 반대로 살아야 한다며 엔간히 자신을 책망하며 까칠한 언행을 마다하지 않은 결실인지 모른다.생태를 위한다며 운전면허증을 안 따고 골프를 안 했다. 여전히 안 한다. 현재는 운전도 골프도 하기 싫어서 안할 뿐, 거창한 이유는 없다. 개인용 컴퓨터 시대에 홈페이지를 외면했다. 팬을 관리한다? 팬과 소통한다? 아니, 세계를 향해 발언하는 창이다? 우스워 보였다. 한낱 명예욕에 휘둘린 작가들의 멍청한 짓거리로 보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잘난 사람들이 트위터 따위에 권력의 목을 매달고 있는 형국인데, 나는 끝내 그것을 외면하는 구닥다리로 남을 작정이다. 이렇게 쓸 것이기 때문이다. “손가락에 두뇌를 달고 다니는 괴물들이 지하철과 버스와 거리에 우글거리는데, 괴물들의 두뇌는 흔히 140자 이내의 재치 넘치는 야유와 풍자를 찾아내느라 몰두한다. 그것이 괴물들의 어느 하나를 일약 스타로 뜨게 만들고 그러면 `로또 당첨` 같은 것이 스타 괴물에게 도래한다. 김어준 따위에 열광하는 괴물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어느덧 나의 `이립`의 나무에는 연민의 가지도 많아졌다. 그것은 나에게 이해와 인내를 가르친다. 그러나 나의 `이립`의 나무는 줄기 속에 아직도 묘목 시절의 신념을 혈액으로 간직하고 있는 모양이다. 혼자서 걷는 동안에 `이윤의 쳇바퀴를 돌고 또 돌아야 하는 자본주의적 인간의 운명`에서 스스로 직업적 자부심마저 버린 인간은 스스로 이윤의 노예로 전락한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하고, 분노해야 하는 것에 분노하지 않아서 `나쁜 일`이 되는 경우에 대하여 자꾸 무뎌져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나무라기도 한다.`인간은 누구나 자연의 단 한 번의 귀중한 실험이다. 모든 인간의 생애는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길이다` 헤르만 헤세의 말이다. 미완으로 끝내도 그 길을 가리라.

2011-11-28

통영의 딸 구하기, SNS는 뭐하나?

이대환 `ASIA`발행인·작가1986년 11월22일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 평양에서 날아온 세 사내가 입국 심사대로 걸어가 일렬로 선다. 맨 앞은 덴마크 주재 북한 대사, 다음이 조선로동당 지도원, 그리고 오길남 박사. 오길남이 누구인가? 현재 통영시민이 북한에서 송환하려는 `통영의 딸 신숙자`의 남편이며 이들 부부의 두 딸 혜원과 규원의 아버지다. 25년 전 그날 오길남은 코펜하겐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탈북을 시도한다. 창구로 밀어 넣는 여권 위에 감쪽같이 쪽지를 얹는다. 독일어와 영어로 “제발, 제발 나를 도와 달라!”고 적은 것이다. 쪽지만으로 못 미더워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독일 박사학위논문까지 잽싸게 밀어 넣고는 눈을 감는다. 억센 손아귀가 진땀에 젖은 그의 몸을 당긴다. 순간적으로 대기실로 끌려간 그는 탈북에 성공한다.위 장면은 오길남 자서전에 나오는 묘사다. 그의 입북 결정 장면에 이르러 나는 “이런 바보같은 박사가 있었어!”라고 탄식했다. 가족을 거느린 그가 독일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평양으로 들어간 때는 60년대나 70년대도 아니고 1985년 11월 29일이었던 것이다. 북한체제가 주체사상의 유일독재체제로 굳어진 그때, 그는 마치 취업이민을 택한 것처럼 삶을 송두리째 평양으로 옮겨갔다. 내 오독(誤讀)인지 몰라도, 그는 순진해서 어리석었고 먹물답게 겁이 많았다.1942년 경북 의성의 궁핍한 농촌에서 태어난 오길남은 어린 시절에 좌익 집안 출신의 어머니가 고초 당하는 광경을 목격했고 부산 달동네에서 성장한 뒤 서울대 문리대 독어독문과를 졸업하고 1970년 10월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장학생으로 독일 유학의 장도에 올랐다. 이미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을 공부한 그는 1985년 7월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과 생산가격론을 현대 경제학의 관점에서 재조명한 논문으로 박사학위 최종심을 통과했다,가난한 유학생이 독일 병원의 자그맣고 야무진 `통영 출신`의 간호사 신숙자와 결혼한 때는 1972년 11월로 조국에는 막 유신체제가 들어서 있었다. 그즈음부터 오길남은 유신반대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그것은 5공 반대로 이어졌다. 박사학위를 받은 그가 먼저 고려한 것은 귀국으로, 한국 대학의 지인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교수 자리를 잡을 테니 귀국하라는 답장도 받는다. 그러나 그는 반국가단체 활동에 대한 구금과 재판을 두려워했다.그러한 시기에 오길남은 통영 출신 작곡가 윤이상의 편지를 받는다. 그 거물의 편지는 박사학위취득 축하와 북한에 대한 자랑, 그리고 `민족통일운동과 동포를 위해 지식을 써라`는 입북 권유였다. 그의 입북 과정에는 독일 한인사회에 침투한 북한 공작원이 끼어들고 사회학자 송두율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그러나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인물은, 평양에는 여러 차례 다녀왔으나 고향(통영)에는 눈을 감을 때까지 끝내 다녀가지 못한 윤이상이었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그때까지도 주체사상과 사회주의를 신봉한 지식인으로서 아내의 완강한 반대마저 윽박질러 뿌리친 오길남 자신에게 있었다.평양에서 겨우 `대남방송` 요원으로 동원되다가 독일의 한국 유학생을 포섭하라는 지령을 받고 대사와 지도원을 따라 코펜하겐 공항에 내린 오길남. 그에게 탈북 용기를 불어넣은 이는 두 딸과 함께 볼모로 평양에 남은 신숙자였다. “내 사랑하는 딸들이 여기서 짐승처럼 박해받을망정, 파렴치하고 가증스럽고 저열한 범죄(이것은 유학생 포섭을 말함) 공모자의 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나와 혜원이와 규원이는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생각하세요. 우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세요”탈북에는 성공했으나 가족을 못 구해서 통한에 시달리는 오길남에게 1991년 1월 윤이상은 `통영의 모녀`를 담은 사진과 `다시 월북하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 사진의 배경이 저 악명 높은 요덕수용소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은 그 지옥을 버텨냈던 북한이탈주민들이었다. 그들은 가장(家長)의 찢긴 가슴을 더 찢어놓는 증언도 했다. 한 번은 아주머니(신숙자) 혼자서 목매어 죽으려 했고, 한 번은 세 모녀가 같이 죽으려고 방에 불을 질렀다는 것.윤이상 음악제를 마련한 통영시민이 통영의 딸 `신숙자와 두 딸`을 구하려는 10만 서명운동을 마쳤다. 그것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국제인권기구에 전달된다. 오길남은 `가족 송환과 북한 정치범수용소 해체`를 촉구하러 베를린으로 날아가 강연도 하고 독일 주재 북한대사관 앞에서 시위도 한다. 아, 이렇게 야만적인 비극과 이산을 아직도 누가 강요하고 조장하는가? 그 잘난 한국의 `젊은 트위터며 SNS`는 선거때만 날뛰어야 하는가?

2011-11-07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거울을

이대환 `ASIA`발행인·작가서울시장에 뽑힌 박원순. 내가 그의 진정한 친구라면, 과연 축하선물로 무엇을 보내야 할까? 오래 고심한 끝에 `거울`을 택하겠다. 미당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에 등장하는 그 거울, 머나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이제는 거울 앞에 선 누님이 자기 삶을 성찰하려는 그 거울. 오늘 아침에도 박 서울시장은 거울 앞에서 얼굴을 살폈겠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언론에 비친 그의 얼굴이 말끔해 보이고 승리의 기쁨과 벅찬 감격 탓인지 피로의 낌새도 없는 얼굴이라 말했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의 얼굴이 멍투성이로 보였다. 눈두덩이 시퍼런 것 같고 광대뼈에도 땡감이 달라붙은 것 같았다. 내 눈에 보이는, 그의 얼굴에 남은 그 시퍼런 멍들은 검증의 펀치를 얻어맞은 상처들이다.박 서울시장은 보름 남짓 진행된 선거운동 기간에 검증의 펀치들을 오지게 얻어맞았다. 그로기에 몰린 권투선수처럼 비틀거린 나머지 안철수 교수에게 `계획된 SOS`를 보내야 했다. 그가 성내는 표정으로 `네거티브`라는 방패를 들이댔지만 검증의 펀치들은 사정없이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협찬 인생, 강남 좌파, 위장 양자 의혹, 딸의 편입 특혜 의혹, 아내의 사업 특혜 의혹…. 본디 나는 `시민운동가 박원순`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좀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은 적 있었지만 저만한 사람도 아주 귀한 시대라 생각했다. 그의 삶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고단한 실천일 것이라 짐작했다. 물론 언젠가는 정치판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도 해보았다. 시민운동이라는 자못 전투적이며 팍팍한 선입견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자기세뇌와 자기연마`의 결실로만 느껴진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통해 저 사내는 `원모(遠謀)의 인간형`일 것이라 판단하고, 때가 무르익어 정치에 나선다면 나서는 것이지 그게 뭐 어떠하단 말인가라는 이해도 해뒀다. 그러한 나에게 `사람 박원순`이 쓰라린 실망을 안겼다. 지난 선거운동에서 검증의 펀치가 설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의 학력 중 하나가 `서울대 법학과 제적`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대 사회계열 제명`으로 밝혀졌다. 저서에 `서울대 법학과 제적`이라 표기한 잘못에 대하여 그는 `출판사`를 방패로 사용했다. 그것은 나를 무척 화나게 했다. 포항시민인 내가 화내든 말든 그의 당락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지만 내 눈에 `사람 박원순`이 달라 보였다. 도대체 어느 저술가가 자기 책에 나가는 자기 학력 소개를 인쇄 전에 살펴보지 않는단 말인가? 설령 출판사를 방패로 사용한 그의 해명이 사실일지라도 내 입에는 쓴맛이 고였다. 박 서울시장은 나보다 두 살 더 먹었다고 약력에 나오니 `우리 또래`인데, 우리 또래의 `참으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는 한국에서 수재 중 수재가 들어가는 곳이라 인식돼 있었다. 그것은 우리 또래의 통념이요 심지어 상식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참으로 평범한 우리 또래들에게는 일종의 신비감으로 비치기도 했다. 그러니까 참으로 평범한 우리 또래 사람들의 통념에서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와 `경기고, 서울대 사회계열`의 차이는 그 신비감의 유무라는 차이였다. 왜 출판사가 그에게 `서울대 법학과`로 표기하자고 했을까? 바로 그 신비감을 은근히 드러내서 상업적으로 활용하자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법학과로 진학했으나 일찍이 민주화운동에 나섰다가 억울하게 제적당하고 나중에 사법고시를 합격하여 변호사가 됐으나 돈벌이의 길을 버리고 시민운동가의 고독하고 고단한 외길로 나아가는 박원순. 이 인생 경로를 `참으로 평범한 독자들`이 우글우글 끓는 독서 시장에 제시할 때 `서울대 법학과`는 저자의 삶을 신비한 색채로 물들이는 중요한 물감이 아닐 수 없다. 그가 해명한 대로 그 오기(誤記)가 출판사의 뜻이었고 자신이 암묵이든 표명이든 동의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상업주의와 야합한 행위이다. 그 오기에 왜 내가 실망하고 분노했는가? 나는 작가의 상업주의적 야합을 혐오하고 경멸하기 때문이다.신들린 것 같기도 하고 `손가락 한 문장`이나 `인증샷` 따위로 자기 존재감을 대중 속으로 드러내려는 괴물들의 광기 같기도 했던, 그 속에 세대적 불만과 반란을 담았다는 `젊은 표`가 박원순 후보를 당선시켰다. 그러나 선거에서 이긴 것이 깊은 내면의 어떤 진실을 바꿔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승자에게 그것을 들여다볼 거울을 선물하고 싶은 것이다.이번 선거에서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우리 시대의 염증을 명확히 확인시켜준 `안철수와 박원순`의 공로에 높은 평가를 보내는 작가로서, 나는 신선할 것이라 믿어온 인물들마저 검증의 펀치에 쩔쩔매게 된다면 머잖아 정치 허무주의가 팽배하게 된다는 경고를 보낸다. 먼저, 보이지 않는 멍투성이 얼굴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2011-10-31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이대환 `ASIA`발행인·작가`인생은 아름답다. 미래의 세대로 하여금 인생에서 악과 억압과 폭력을 일소하고 삶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라` 참 아름다운 말이다. 러시아 혁명을 주도한 트로츠키의 것이다. 레닌이 후계자로 점찍었지만 그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스탈린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졸지에 떠돌이 신세로 전락해 머나먼 멕시코까지 도망쳤다가 스탈린의 자객에게 무참히 쓰러진 `영구혁명론`의 트로츠키. 20세기 초 레닌과 함께 세계 재편의 뇌수 역할을 했던 그의 명민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은 영구혁명으로써 미래 세대에게 저 말이 실현된 체제를 물려줄 수 있다고 꿈꿨다. 그가 지목한 `악과 억압과 폭력`이란 제정러시아 짜르체제, 스탈린의 무자비한 폭력정치, 시장 질서의 비인간적 횡포였을 것이다.`월가를 점령하라!` 미국 전역을 넘어 세계로 번지는 그 들불이 드디어 한국에도 상륙한 날, 나는 트로츠키의 저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99%`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사람들이 `우리 인생의 악이자 우리 인생에 대한 억압이며 폭력`이라고 먼저 지목한 것은 금융업자들의 너무 뻔뻔스런 탐욕과 1% 부자들이 국민 전체 자산의 40%를 소유해버린 너무 지나친 불평등이다. 그렇다면 금융업자들이 쓰레기 상품을 남발해 돈을 빨아들이다가 그게 함정이 돼 망해먹을 판국으로 내몰리고, 그것이 국가경제와 세계경제에 엄청난 위기국면을 조성하고, 그들을 살려내느라 어마어마한 세금을 쏟아 붓고, 그러한 상황에서 `돈 놓고 돈 먹는` 부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벌지만 국가재정은 악화되고 복지혜택은 축소되고 경기가 나빠져서 일자리는 왕창 줄어드는 이 악순환의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이미 답은 제출돼 있다. 신자유주의는 한계에 왔다는 것이다. 금융자본주의라고 불러야 하는 현 자본주의체제로는 더 많은 다수가 결코 행복과 안녕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시장 질서`에 맡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류가 발명한 부(富) 창출의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시장이지만, 시장 질서로는 윤리와 정의와 공평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시장 질서는 인류가 가장 소중한 정신적 가치로 받드는 그것들을 쉽게 부순다는 것이다. 인간은 돈이 있어야 인간답게 살 수 있고, 그래서 인간은 맹수가 운명적으로 사냥을 해야하는 것처럼 운명적으로 돈벌이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지만, 돈에 의한 악이고 억압이며 폭력이라 해야할 `윤리와 정의와 공평의 파괴`에 대하여 더 이상은 참고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세계로 번지는 `occupy 들불`이 계급혁명의 사회운동은 아니라는 분석이 대세를 이룬다. 여전히 계급혁명의 미몽에 빠져있는 극좌세력이 현 정세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 온갖 묘안을 짜내긴 하겠지만, 그것이 계급혁명의 성격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1848년 2월, 런던 어느 방구석에서 서른 살의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라고 시작되는 유명한 `공산당 선언`을 썼다. 바이블 다음으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공산당 선언에서 그는 “노동자 계급이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임금노예라는 쇠사슬뿐이며 얻을 것은 새로운 세계 전제”라고 예단했다.마르크스의 그 예단은 1990년 무렵에 발발한 지각변동과 같았던 사회주의국가들의 연쇄 붕괴를 통해, 북한의 처참한 오늘의 실상을 통해, 공산주의를 한낱 통치수단으로 여기는 중국의 번영을 통해 `틀려먹었다`는 판명이 났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예단이 틀렸다고 해서 현존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가 옳다는 것인가? 마르크스의 오류가 현존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북한체제가 틀려먹었다는 사실이 남한체제의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occupy 들불`은 윤리와 정의와 공평에 대한 개개인의 갈증이 집단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현존 자본주의체제를 개선하여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를 하자는 외침이다. 아직 그것이 몸부림 수준으로 격화되지는 않았다. 그것이 몸부림 수준으로 격화되면 계급혁명의 유혹을 받게 된다. 이쯤에서 각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현존 자본주의체제에 `인간의 얼굴`을 초대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한미FTA 비준이 `occupy 들불`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아니다. 한국사회의 시스템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우리의 시장 질서에는 어떤 악과 억압과 폭력이 상존하며 그것들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깊이 통찰해야할 주제였는데, 청와대 참모들은 `꼼수`라고 얻어맞은 내곡동 사저문제 따위도 챙겨두고 있다.

2011-10-17

중국 공산당 90년을 보며

이대환 `ASIA`발행인·작가우리나라 `국군의 날`인 10월1일은 중국 공산당 창당일이다. 이번 토요일에 그들은 창당 90주년을 맞는다. 오늘의 중국 공산당에 공산주의는 있는가?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처럼, 중국 공산당에는 공산주의가 없다. 공산주의의 지상과제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의 계급해방과 사유재산 철폐의 분배평등이다. 당연히 자본가는 타도 대상이다. 그러나 1989년 6월 천안문사태 직후에 출범한 장쩌민의 중국 공산당은 당헌(헌법)에 `사유재산 보장`을 집어넣어 사영기업 경영자들도 대거 당원으로 받아들였다. 마침내 부자(농업중심시대의 `지주`)들도 합법적이고 공식적으로 타도 대상에서 동지 신분으로 바뀌었다. 물론 그러한 변화는 현재 중국의 빛과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 빛은 중국을 G2로 성장시킨 것이다. 2008년 미국 리먼사태가 촉발한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중국 금융이 미국 금융의 멱살을 잡을 수도 있었다. 소비에트연방(옛 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이 연쇄 붕괴하는 세계사적 대전환기에 중국의 개혁 개방을 영도한 덩샤오핑의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실용노선을 충실히 추구한 결실이다. 그 그림자는 중국을 부(富)의 편중(빈부격차)이 극심한 체제로 굳어지게 만든 것이다. 중국의 위험한 중병으로 판명된 부의 편중은 한국과 미국을 뺨칠 지경이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중국의 상위 가구 1%가 전 국민 자산의 41.4%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으며, 중국 인민대 총장은 2011년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상위 10%의 부유층이 전 국민 자산의 80%를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먼저 부자가 되어도 좋다”며 경제 일으키기(돈 많이 벌기)를 독려했던 덩샤오핑은 과연 중국 내부의 짙은 그림자에 대해 어느 정도 염려할까?덩샤오핑이 살아 있다면, 아직은 공산당 독재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는 자본주의로 가되, 그 반대급부의 필연으로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어느 수준까지 해소하는 길을 보다 더 순조롭게 가기 위해서는 독재체제의 강압적 통치기제를 활용해야 한다고 판단할 것이라는 뜻이다. 천안문사태를 탱크로 진압한 그의 죄업을 세계의 모든 인권운동가들은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역사를 길게 보면서 중대한 변화의 선택에 대한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통치자로서의 신념을 후회하거나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천안문 광장을 낭자하게 물들였던 제자들의 피를 영혼 속에 품고서 자유민주주의적 운동가의 길을 걸어온 류샤오보, 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여전히 감옥에 가두고 있지만 눈썹도 까딱하지 않는 척하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마치 “아직은 때가 아니다. 자유권을 서서히 풀어주면서 빈부격차 문제를 해결하라. 그런 다음에 타이밍을 잘 잡아서 그것을 헌법으로 보장하라”는 덩샤오핑의 지하 교시라도 받는 것처럼 보인다.역사에 압축은 있어도 생략은 없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공산주의가 사라진 공산당 독재체제`라는 엄청난 모순으로 거대한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를 밀고나가는 중국 공산당이 내부의 짙은 그림자를 해소하는 여정은 험난할 것이다. 저항과 억압의 전선이 얼마나 길고 격할 것이며, 다시 얼마나 많은 인명이 그 격랑에 휩쓸려 희생될 것인가? 한국의 경우를 돌아보면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다. 국가 자본주의가 현재의 실체로 성장하는 여정에서 우리는 얼마나 숱한 고비를 넘고 또 넘어야 했던가?다만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집단학습의 강점을 발휘하고 있다. 마오쩌둥은 “당을 거대한 학교로 만들라”는 집단학습 전통을 세웠고, 덩샤오핑은 혁신의 동력이 될 수많은 인재들을 서방 선진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후진타오는 2002년 10월 `헌법 공부`를 하자며 지도부의 집단학습을 제도화했다. 벌써 70회도 넘었다고 한다. 그 학습을 통해 변화의 방향을 탐구하고 변화의 속도를 조절할 것이다. 마오쩌둥이 죽였던 공자를 부활시켜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문화상품으로 앞세우는 전략도 그 학습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중국은 세계 101개국에 700여 공자학원을 개설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이 아니라 공자의 공산당인 듯하다.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학습은 학습이 아니다. 이때 `변화`라는 말은 발전이나 체계화, 정반합(正反合)이나 궁즉통(窮卽通)을 포함하며, 당연히 혁신도 포함한다. 대체로 혁신적 변화는 학습과 사유를 바탕으로 삼은 각성에서 비롯한다. 변화를 모르는 집단학습은 세뇌교육에 불과하다. 대체 북한 지도자들은 어떤 집단학습을 하는가? 90세의 중국 공산당은 국가와 인민을 더 좋은 길로 영도할 자기변화를 위하여 `세계 정세를 관찰하고(察世情), 국가 정세를 살피고(觀國情), 당의 정세를 보는(看黨情)` 집단학습에 열성을 바치고 있건만!

2011-09-26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이대환 `ASIA`발행인·작가올해는 일제 식민지시대에 중국 동북지역에서 한인 독립군을 양성했던 신흥무관학교 개교 100주년이다. 딱히 그것을 기념하려는 뜻은 아니었지만, `일본 천왕의 신민(臣民)`으로 전락한 조선인들이 `만주`라 불렀던 중국 요녕성(랴오닝성)을 두루 돌아다녔다. 버스에 몸을 싣고 대련, 여순 감옥, 단동, 통화, 유하, 심양(옛 봉천) 등에 차례로 머물렀다가 다시 대련으로 돌아온 그 여정은 총 2천100km로, 한국(남한) 육지의 테두리를 따라 한 바퀴 도는 것과 맞먹는 거리였다. 만주 곳곳에는 망국 시대를 감당한 조선인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 있었다. 이제는 그 터마저 옥수수 밭으로 변한 신흥무관학교는 피와 땀과 눈물로써 민족정신을 깨우고 가꾸며 미래의 희망을 부여잡은 독립투쟁의 상징이었다. 1909년 만주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기로 결의한 신민회(新民會)의 `신`자와 부흥할 `흥(興)`자를 합쳤던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주역은 널리 알려진 대로 우당(友堂) 이회영(1867~1932) 선생의 여섯 형제와 이동녕(1869~1940) 선생이었다.대련과 그 이웃의 여순. 이 지명은 우당 선생과 악연이었다. 대련 항구에서 체포돼 1932년 11월 여순 감옥에서 사형을 당했던 것이다. 안중근(1879~910) 의사가 31세 청춘으로 생을 마쳐야 했던 여순 감옥은 어느덧 관광 상품의 주요목록에 올라 있었다. 2층에는 우당 선생과 신채호(1880~1936) 선생의 얼굴이 걸려 있었다. 흑백사진이었다. 그러나 그분들의 영혼이 찍힌 것 같았다. 현대도시로 급성장한 단동. 조선인들이 `안동`이라 불렀던 국경도시는 고통을 강요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6·25전쟁 때 미군 폭격기가 끊어놓은 압록강 철교였고, 또 하나는 압록강의 중국 쪽 강가를 따라 즐비하게 들어선 불야성 빌딩들과는 너무 대조적으로 반딧불이 같은 불빛도 하나 없이 칠흑에 묻혀버린 강 건너 거대한 어둠이었다.압록강 한복판으로 흐르는 조·중의 보이지 않는 국경선. 60년 전 압록강 철교를 폭격한 미군 조종사들은 중국 국경을 넘지 않으려고 얼마나 긴장했을까? 중국 쪽의 것은 멀쩡하고 북한 쪽의 것은 흔적 없이 사라진 `절반의 철교`, 이 관광 상품 옆에 새로 세워진 철교가 중국과 북한을 이어주고 있지만, 절반의 철교야말로 조·중 혈맹관계의 가장 확실한 증거물이요 상징물이었다. 철교 들머리에는 중국군이 항미(抗美) 기치를 치켜세워 북한으로 진격해 들어가는 조각상이 지키고 있고, 끊긴 철교의 끄트머리에는 중국군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물이 결코 끊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기세로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었다.다시 대련으로 돌아온 마지막 밤, 정신의 한 구석이 불편했다. 무엇하러 나흘 동안 2천100km를 돌아다녔단 말인가. 조상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자취를 확인하고 공경심을 더 높이기 위하여 그랬단 말인가. 이것이 견딜 수 없이 싫었다. 기어코 불편한 속내를 토로하고 말았다.“만주 벌판에서 온갖 고초를 극복하며 200개나 되는 민족학교를 세우고 독립자금을 대주고 독립투쟁을 했다. 이것은 역사의 위업이고 귀감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우리는 자신을 향해 매서운 질문 하나를 반드시 던져야 한다. `왜 독립운동이 필요 없는 나라를 만들지 못했을까?` 바로 이것이다. 일본은 1860년대에 명치유신 투쟁을 했다. 우당 선생이 태어난 그 무렵이다. 그때 조선의 지식인은 무얼 했나? 결국 50년 뒤 식민지가 됐다”서울의 주민투표가 끝났다. 양보와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 것은 피의 혁명이다. 주민투표는 민주적 방식인 것 같아도 양보와 타협을 배제한다. `학생들 점심밥 문제`로 정치집단이 이념투쟁의 혁명적 수단을 동원한 격이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박형준 대통령특보가 기획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수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들의 머리에도 `나쁜 투표` 거부운동을 기획한 인간들 못잖게 `80년대 운동권적 습성`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양이다. `복지표퓰리즘`을 비난하고 `복지만세`를 외치는 양측 `머리들`에게 말하고 싶다.“당신은 당신의 그 오래된, 이제는 습관적이고 정파적으로 변질된 이념적 편향에 갇혀서, 그 관념의 감옥 속에서 당신이 과거에 말했던 것에 얽매여 그것을 기억하는 자들의 비판을 두려워하며, 어쩌면 당신이 죽은 뒤나 50년쯤 뒤에 당신의 혼백이 고독하게 통곡할 그 어떤 결정적인 후회들을 만들고 있지 않는가? 그것들의 하나를 나는 말할 수 있다. 습관적이고 정파적이고 헤게모니 쟁탈적인 관념의 감옥에 갇힌 탓으로, 이해와 관용이 결핍되어, 양보와 타협의 문화를 일구지 못한 채 마치 피의 혁명이라도 할 것처럼 설쳐댄, 바로 그것이라고”

2011-08-29

홍준표 대표의 `양극화`와 큰절

이대환 `ASIA`발행인·작가“한나라당이 재집권을 위해서는 날로 심화돼 가고 있는 사회 양극화를 완화해야 한다.” 지난 19일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내놓은 발언이다. 그가 말한 `사회 양극화`란 무엇일까? 경제적 문제로 범위를 한정하면, 당연히 저 외환위기(IMF사태) 때 결정적으로 굳어진 `20 대 80`의 사회구조를 다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부터 14년 전인 1997년 겨울부터 한국에서 살아온 대다수 한국인은 `아이엠에프사태`라는 말에 진저리를 친다. 그 국가부도위기 사태가 한국사회를 돌이키기 어려운 `양극화` 체제로 굳어지게 했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상식이다.그해 겨울에 한국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식민지 체제로 합병됐다. 그해 여름, 4년여 만에 조국으로 돌아와 포항 북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즉시 맥아더 장군이 함상에 서서 일본 접수를 선언했던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코쟁이 백인이 김포공항에 내려서 한국경제 접수를 선언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듯이, 아이엠에프사태는 창졸간에 독수리가 쥐를 덮치듯이 한국인의 일상을 덮쳐왔다.아이엠에프사태가 한국인의 의식에 얼마나 무시무시한 상처를 남겼는가? 그때는 초등학생이었고 현재는 `졸업을 자꾸 미루는 대학생들`로서 등록금문제와 취업문제에 등이 휘어진 이 나라의 가난한 청년들은 대체로 자기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아이엠에프사태의 충격으로 사업을 망쳤다가 간신히 다시 일어선 아버지는 `뭔가 용기 있게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없는 남자가 되어 `작은 것이라도 잘 지켜내야 좋은 가장(家長)`이라고 확신하는 남자로 변모했다.”정축년(1997) 12월3일. 세종로 정부청사의 한 테이블 앞에 세 사내가 나란히 앉았다. 한국은행 총재, 한국 경제부총리, 그리고 IMF총재 미셸 캉드쉬. 심각한 두 한국인은 만년필로 서류에 서명하고, 코쟁이 백인은 한가로이 두 손을 포개서 책상 위에 얹은 채 옆의 한국 부총리가 서류에 서명하는 모습을 커닝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이 장면이 한국 신문들의 톱뉴스를 장식했다. 그것은 경제적 주권을 IMF에게 넘겨주는 `정축국치`의 생생한 현장이었으며, 모든 언론이 `6 ·25전쟁 후 최대 국란`이라 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은 한국사회가 노숙자를 대량 생산하는 잔인하고 처절한 계절이었다.정축국치의 서류에 따라 한국정부는 `기업인수합병(MA) 시장의 전면 개방` 등등을 수용해야 했고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 등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성` 재고를 위한 대책들을 곧바로 시행해야 했다. 그렇게 `양극화로 갈 수밖에 없는 길`이 사회안정망 같은 대책을 세울 여유도 없이, 아니 무방비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졸지에 활짝 열려버린 것이었다. 참으로 엄청난 사회적 폭력이었다.한국사회의 두터운 중산층을 산사태처럼 무너뜨리고 숱한 서민을 생계의 극한지대로 몰아간 아이엠에프사태를 이 땅에 불러들인 총체적 책임자는 누구였는가? 바로 당시의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한국 언론은 그 대통령을 여전히 YS라 부르며 예우하고 있고, YS는 필생의 경쟁자였던 DJ가 이 세상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현실 정치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다음 대통령은 누구를 찍을지 결정해뒀다`는 따위 정치적 발언을 던져서 언론의 시선을 끌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저 분은 한국사회가 정말 심각한 고질병으로 앓고 있는 20 대 80의 양극화 구조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모양이구나`라는 쓸쓸한 생각에 잠기게 된다.홍준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에 뽑혀 우선순위로 찾아간 이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넙죽 큰절을 올린 그는 부모님 아닌 분에게 처음 큰절을 올리는 것이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그러한 언행이 검사의 옷을 벗은 자신을 여의도 정치계로 불러준 은인에 대하여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양극화`를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심각한 폐단이라고 판단하는 정치 지도자라면, 그것이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의 주요 동력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정치 지도자라면, 우리 시대의 상식을 망각해선 안 된다. 아이엠에프사태로 인해 양극화가 결정적으로 굳어졌고, 그것이 그해 겨울의 대선에서 정권교체(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에서 민주당으로 교체)를 초래한 주요 동력이었으며, 그 총체적 책임이 당시의 김영삼 대통령에게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된다. 그가 진정으로 시대적 고통을 통감했다면 어떤 개인적 이유에서든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YS의 발 앞에 엎드리지 말아야 했다.

2011-07-25

좋은 문학인과 나쁜 문학인

이대환 `ASIA`발행인·작가문학의 기능에는 `사회의 부족한 것`을 드러내고 `부조리에 저항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 이것을 문학인은 특권처럼 종종 누린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주장해 왔다. “문학의 이름으로 한국 정치판을 비난하고 비판하려면 문학단체에 깊이 관여하는 문학인들이 정치판 뺨치는 짓거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정치판을 향해 손가락질하지 말고, 그 손가락을 그러한 문학인들 쪽으로 돌려야 한다” 공자의 말씀에도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금언(金言)이 있지만,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사람`이다. 문학에서는 문학적 본분에 충실한 사람이 `좋은 문학인`이다. 인생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사회에 대하여, 역사에 대하여, 신에 대하여, 종교에 대하여, 문화에 대하여, 생태에 대하여, 평화에 대하여, 자유와 평등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는 그 치열성과 진정성을 과연 어느 수준에서 감당해 나가야 `좋은 문학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까? 국가의 위기를 맞은 대통령이 해법을 찾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적 상상력을 펼치며 참모들과 토의하고 민심을 읽어내느라 전전반측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 수준이어야 한다.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려는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해석하고 참모들의 조언을 경청하며 수없이 고뇌하여 드디어 결심하는 그 수준이어야 한다. 환자의 배를 갈라놓은 의사가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말아야 하는 그 수준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교사가 문제아를 지도하기 위하여 번민하고 사랑하는 그 수준이어야 한다. 가난한 아버지가 식솔들을 책임지기 위해 어떤 노동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 수준이어야 한다. 세상에는 그러한 수준에서 문학적 인생을 감당해 나가는 소수의 문학인이 존재한다. `좋은 문학인`이라는 말은 바로 그들에게 바쳐져야 하는 꽃다발이다.흔히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은 모든 문학인이 `좋은 문학인`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에는 그들의 기대감을 허황한 착각으로 만들어버리는 문학인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문학의 양심으로 용서하기 어렵고 문학의 이름으로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넓게 생각하면 그것이 다 세상의 구성요건이기도 하다. 어차피 어느 집단이든 좋은 사람, 그저 그런 사람, 나쁜 사람 등으로 구성되기 마련인 것이다.시인, 시조시인, 수필가, 아동문학가, 소설가, 희곡 작가, 시나리오 작가, 드라마 작가, 청소년 문학가, 판타지 문학가, 평론가 등 문학인의 호칭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그들 중에서 `나쁜 문학인`은 어떤 사람일까? 문학적 본분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을 가장 먼저 지목해야 한다. 인생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사회에 대하여, 역사에 대하여, 신에 대하여, 종교에 대하여, 생태에 대하여, 평화에 대하여, 자유와 평등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뇌하지 않고 진정으로 탐구하지 않는 문학인은 이미 문학인의 자격을 상실한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이 오히려 문학으로 자기이름 팔기에 몰두하고, 패거리를 잘 짓고, 몹쓸 소문을 퍼트리고, 패거리를 조종해서 알량한 권력을 쥐려 하고, 그것으로 골목대장 같은 폼을 잡으려 한다. 젊은 시절부터 나는 그들을 문학인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시인, 시조시인, 수필가, 아동문학가, 소설가 중의 어느 하나 또는 둘을 이름 뒤에 버젓이 달고 다니니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을 문학인으로 알아줄 것이다.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이 문학인에게 보내주는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감에 대한 배반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장사해야 하는 출판사에게 “제발 쓰레기 같은 작품집을 돈 받고 내주지 말라”고 해봤자 우이독경일 테니, 우선은 문예지가 작품 게재에 엄격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는 신인을 무더기로 데뷔시키는 조건으로 해당 문예지 대량 매입을 요구하는 문예지들도 건재하고 있다. 그 주모자는 그렇게 양산한 신인들을 마치 훈장이나 주듯이 문학단체에 가입시켜 문학단체장 선거 시기에 자기 권력행세의 수단으로 동원하거나 활용하기도 한다. 참으로 구역질나는 짓거리지만 고뇌는 없고 눈치만 빛나는 자들이니 그러지 말라고 타이를 수도 없다. 그들은 문학의 악화(惡貨)이다. 그러나 양화(良貨)를 쫓아내지 못하는 `영원히 가련한 악화`일 따름이다.포항의 뜻 있는 문학인들이 `문학만(Literature Bay)`을 창간하여 전국적 문예지로 육성하는 가운데 동료들의 작품 게재에 대하여 더욱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이유도 다른 데 있지 않다. 문학의 이름과 문학의 양심을 더럽히지 말고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이 문학인에 대하여 막연히 품고 있는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감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진정한 노력을 기울여보자는 뜻이다.

2011-07-18

`박지만 부부`와 고독을 위하여

이대환 `아시아`발행인·작가1979년 11월 어느 날, 구상(具常, 1919~2004) 시인이 애잔한 표정으로 강단에 섰다. 문득 나는 긴장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신념과 규율이 강고한 사람이었다. 그것이 한국 산업화의 동력이었다. 그러나 영혼에 대해 깊이 고뇌하진 않았다. 그것이 오늘의 비극을 불렀다. 이제는 저승 가는 발길에 자녀들만이 걸리기를 바란다” 은사의 오래된 말씀을 지금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박 대통령의 오랜 친구였던 구상 시인. 술자리에선 대통령을 `박 첨지`라 부르고 장관직 제의를 사양한 시인은 그이의 죽음에 조시(弔詩)를 바쳤다. `설령 그가 당신 뜻에 어긋난 잘못이 있었거나 스스로 깨닫지 못한 허물이 있었더라도/그가 앞장서 애쓰며 흘린 땀과/그가 마침내 무참히 흘린 피를 보사…`시인은 `독재자에게 조시를 바치다니`라는 돌멩이를 맞아도 `친구니까`라고 웃어 넘겼다. 시인이 말한 영혼이란 무엇일까? 삶과 죽음, 인생의 근원, 진선미에 대한 사유를 수행하고 그 삶을 추구하는 정신이다. 굳이 구도자의 길을 가지 않아도 영혼은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속물적 가치보다 아름다움이나 착함을 더 소중히 받들게 하는 힘이다. 영혼은 양심에 머물면서 양심을 초월한다.물론 박 대통령이 영혼의 문제에 매달렸다면 산업화를 그토록 이끌지는 못했을 테지만, 과연 시인 친구가 비원(悲願)한 대로 국가와 시대의 짐들을 다 부리고 자녀들만 염려하는 평범한 아버지로서 이승을 하직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그이에게는 인간적으로 좋은 일이었겠는데, 졸지에 자녀들은 황야로 나서야 했다.풍찬노숙을 거쳐 어느덧 사업가로 성공한 박지만 사장. 나는 그와 58개띠 동갑내기다. 58개띠 이재무 시인이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절실한 비애`를 담은 `우리 시대 자화상`이라고 노래한 `박지만`의 실물과 나는 세 번 만났다.1997년 7월, 포항역 광장. 4년여 정치적 망명생활을 마감하고 포항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태준 후보의 연설회에 찬조연사로 등장한 박지만. 청중이 숨을 죽이고 연단을 쳐다보았다. 그는 얌전히 절만 하고 내려갔다. 침묵의 연설, 그러나 그것만으로 감동의 연설이었다. 2004년 12월, 포스텍 체육관. 내가 쓴 평전 `박태준`의 출판기념회에 그는 신혼여행마저 하루 미루고 신부와 함께 참석했다. 일찍이 5·16 당시에 박정희 소장은 박태준 대령에게 `거사가 실패하면 처자식을 부탁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이십여 년도 더 흐른 뒤 박태준 포철 회장이 `황야의 박지만`을 사업의 길로 인도했으니, 그해 여름과 그해 겨울에 이뤄진 두 사람의 만남은 `박정희와 박태준`의 깊은 인연이 모란꽃처럼 피어난 장면들이었다.2005년 봄날에 나는 박지만 사장과 잠시 만나게 되었다. 우리 사이엔 커피 잔이 놓여 있었다. 그가 나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아내가 `박태준`을 읽으며 몇 차례나 울먹이더라는 것이었다. 언뜻 나는 책속의 몇 문장을 떠올렸다.`박정희는 박태준의 순수하고 뜨거운 애국적 사명감만은 범할 수 없는 처녀성처럼 옹호했다. 여기엔 한 인간과 한 인간, 한 사내와 한 사내로서 오직 두 사람만이 온전히 알아차릴 수 있는 서로의 빛깔과 향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 독특한 인간관계는 박태준이 포철에서 자신의 리더십과 사명감을 신명나게 발현할 수 있는 양호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요즘 언론에 `박지만 부부`가 오르내린다. 단란한 가정, 잘되는 사업. 오늘의 박 사장은 남부러울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다시 고독을 감당할 영혼을 준비해야 한다. 짧게는 누나가 경선이나 대선을 마칠 때까지고, 만약 누나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의 고독은 5년 더 연장될 수밖에 없다. 변호사인 아내는 남편이 감당할 운명적 고독의 길에서 `조용한 동반자`여야 마땅하다.고독은 사람을 외롭게 한다. 그러나 구상 시인이 말한 영혼은 오히려 고독으로써 삶을 더 삶답게 가꿔준다. 경영실적, 법률지식, `돈쟁이`이나 세도가와 교제 등은 영혼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가 나에게 일러준 아내의 눈물에는 영혼이 묻어 있었을지 모른다. 아니라면, 고독을 부부의 규율로 여겨도 좋다. 이 경우엔 그것이 아버지의 규율만큼 강고해야 한다.

2011-06-20

`역사의 숨결`을 듣는 지도자는 없는가?

이대환 작가·`아시아`발행인올해 내가 읽은 책들 중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한 권은 `가장 근원적인 것에 대하여`(인간사랑, 379쪽)이다. `허화평의 개헌청원론`이란 부제가 붙은 그 책의 저자는 포항 출신 허화평 전 국회의원이다. 지난 90년대에 포항시민이 두 차례 국회로 보내기 전의 그는 `5공의 설계자` 또는 `5공의 키 플레이어`로 불렸다. 그것은 그에게 정치적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었다. 국가적 위기와 혼란을 극복한 용기와 지혜와 능력을 겸비한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풍겼던 반면, 5공의 과오나 악덕과 분리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선입견을 줬던 것이다.`가장 근원적인 것에 대하여`를 읽어보면 그의 정치적 강점으로 작용했던 그 이미지가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사색과 논리와 주장은 `지금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직시하고 무엇에 집중해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명확한 시대정신을 제시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은 마치 수많은 명저들도 겪었던 것처럼 이른바 독서시장의 화젯거리로는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정치적 약점으로 작용했던 그 선입견과 연관성이 깊을 듯하다. `386세대`로서 학창시절에 최루가스의 매운 맛을 톡톡히 맛본 사람들은 `5공이 뭘` 하며 그 책에서 눈길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허화평은 김영삼 대통령시절에 이른바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정치적 프로젝트에 걸려서 옥중 출마를 강행한 적 있었다. 그때 포항시민은 옥중 후보를 당선시켰다. 대검찰청이 5공 실세들을 샅샅이 뒤졌으나 그는 `검은 돈`과 완전히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고, 무엇보다도 포항시민은 `한때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알려졌던 허화평의 다시 검증된 청렴과 강직`을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올해 73세인 허화평은 스스로 공직선거에 출마할 일은 없다고 확언한다. 자신의 나이에도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것은 당선 여부를 떠나 `노욕`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국가의 미래에 대하여 사색하고 글을 쓰는 일은 `노익장`이라고 생각한다. 노욕이 너저분한 것이라면, 노익장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의 노익장은 이번 저서의 첫 장에 `역사의 숨결`을 생생히 불어넣는다. 훌륭한 글이어서 인용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역사는 호흡을 하는 것일까요?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호흡을 하듯 역사도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과거 역사도, 당대 역사도, 미래 역사도 호흡을 합니다. 과거 역사는 땅 속에서, 땅 위에서, 책 속에서 호흡하면서 우리가 필요할 때면 모습을 드러내고 조언을 해줍니다. 당대 역사는 그 숨소리가 너무 크고 거칠어서 누구나 들을 수는 있지만 정확하게 분간하여 듣기가 어렵습니다. 미래 역사는 태풍의 눈처럼 자라나면서 우리 앞에 다가오지만 그 소리가 너무나 먼 곳에서 들려오기 때문에 아무나 들을 수가 없고 오직 소수만이 감지해낼 수 있습니다.역사는 어떤 모습으로 호흡하는 것일까요? 과거 역사와 당대 역사는 문명의 흥망성쇠와 제국의 흥망성쇠, 전쟁과 혁명, 질서와 진보, 발전과 성장, 파괴와 창조 같은 모습으로 진행되면서 높은 파열음을 토해냅니다. 대자연의 지각변동과 생태변화나 넓은 지역을 휩쓸고 가는 질병과 기아 또한 역사의 숨결로 남습니다. 그리고 미래 역사는 갖가지 징후들을 드러내면서 속삭입니다. 역사의 숨결은 파동과 같아서 무한한 미래로 퍼져나갈 뿐 결코 뒤돌아서거나 멈추는 일이 없습니다.역사의 숨결을 듣는 것을 역사감각(sence of history)이라고 합니다. 현명한 자는 과거 역사의 숨결에 귀 기울이고, 명석한 자는 당대 역사의 숨결에 귀 기울이며, 지혜로운 자는 미래 역사의 숨결을 감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처럼 역사의 숨결을 듣는 것, 감지하는 것을 일반적인 역사감각이라고 한다면 다가오는 앞날에 전개될 역사의 숨결을 감지해내는 것은 창조적 역사감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공한 지도자와 민족들은 예외 없이 역사의 숨소리를 경청했던 사람들이며, 탁월한 창조적 역사감각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후진적은 분야가 무엇이냐고 한국인에게 물으면, 압도적인 다수가 서슴없이 정치라고 꼽는다. 역사의 숨결을 경청하려는 정치인은 만나기 어려운데, 돈과 거짓말로 하는 정치 뉴스가 거의 날마다 국민 앞에 펼쳐지니 그럴 수밖에 없다. 역사의 숨결을 알고 그것을 제대로 듣는 지도자는 어느 날에야 나타나려는가?

2011-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