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국 음식의 우아함과 손끝의 깃든 정성을 가장 잘 담아낸 한국요리를 꼽으라면, 단연코 구절판이 떠오른다.
구절판은 우리 고유의 황, 적, 흑, 백, 청의 오방색이 잘 구현되어 담은 식재료와 오미(五味)의 적절한 조화를 아낌없이 보여 주는 음식으로,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철학을 잘 실천하고 있는 음식이 바로 구절판이다. △미의 조화와 오미(五味)의 균형
궁중이나 반가에서는 유두절의 시절식으로도 활용되었던 구절판은 아홉 칸의 담긴 다양한 재료들이 개별적인 맛을 유지하면서도 함께 먹었을 때 조화를 이루며, 이는 한국요리의 깊은 미학을 나타낸다.
특히, 그릇의 한가운데 위치한 밀쌈은 각 재료를 감싸는 화합의 상징으로, 개별적이면서도 어우러지는 조화를 통해 하나의 완성된 맛을 이루게 한다. 이러한 구절판은 시각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맛과 철학까지 담아내며 전통과 조화를 추구하는 한국 음식문화의 정수를 보여 준다. △숫자 9의 상징성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9’는 재수를 상징하는 좋은 숫자로 여겨왔다. ‘9’는 모든 것을 아우르고 완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구절판의 구성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구절판은 9칸의 그릇에 각가의 재료를 담아내며, 음식을 먹을 때는 조화로운 맛을 느낄 수가 있다. 이러한 화합의 상징성 때문에 구절판은 국빈만찬 또는 국가의 행사 등 정성과 품격을 강조하는 자리에서 자주 등장했다. △한국 전통의 정수, 구절판
외국 귀빈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전통 음식을 소개하는 자리에서도 한국의 정성을 담아낸 요리로 구절판이 자주 상에 오른다.
구절판의 조리법은 1931년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 1940년 홍선표의 ‘조선요리학’ 에도 등장한 구절판은 신선로와 함께 이후 한국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대표 요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눈과 입으로 즐기는 구절판
구절판은 단순히 음식을 담은 그릇을 넘어선 예술적 아름다움과 맛의 조화를 보여준다. 눈으로 즐기고, 입으로 즐기며, 그 깊은 맛과 정성을 통해 마음 까지 사로잡는 구절판은 그 자체로 한국 음식 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재료 하나 하나에 정교한 손길이 중요하다. △재료 하나하나가 만드는 조화
구절판의 조화로움을 이루기 위해서는 재료 선정이 중요하며, 재료 하나 하나에 정교한 손길이 중요하다. 소고기, 미나리. 오이, 달걀지단, 석이버섯, 표고버섯, 도라지, 느타리버섯 등 계절과 기호에 맞춰 선정한 8가지 재료를 길고 가늘게 썰어내고, 각기 다른 색감과 조화를 이루도록 조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계절과 기호에 따라 봄나물 위주로 담아도 좋고, 더덕이나 우엉 같은 향긋한 뿌리채소를 다양하게 활용해 보는 것도 센스있는 선택이다. △색감과 맛을 더하는 쉐프의 선택
돌려 담는 재료만 다양하게 응용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전병의 색감도 다양하게 응용이 가능해서 요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루가 지나도 촉촉한 전병을 만들기 위해서는 밀가루 반죽에 약간의 찹쌀가루를 섞어주면 된다. 여기에 다양한 색감을 내기 위해 반죽 물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오이를 잘라 믹서에 갈거나 강판에 간 후 채에 걸러 반죽 물로 사용하면 은은한 파스텔톤의 초록빛과 오이의 향긋한 향이 솔솔 퍼지는 전병을 만들 수가 있다.
또한, 치자 물을 사용하거나 노란 파프리카를 갈아 넣으면, 노란빛 전병을 얻을 수 있으며, 비트, 당근, 홍 파프리카 등을 활용해 붉은빛 전병을 만드는 것도 요리하는 재미와 다양성을 더해준다.
이처럼 색감과 맛이 조화를 이룬 얇게 부친 전병에 여덟 가지 색색의 채소, 고기, 버섯을 싸서 먹으면, 한입 가득 오묘한 맛의 하모니가 퍼져나간다.
이처럼 구절판은 단순히 먹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육류와 식물성 식품이 잘 어우러져 영양 면에서도 조화를 이루는 건강 요리로 평가받는다. △구절판 만들기
재료
·오이 1개, 애호박 1개, 당근 2/1개, 계란 2개, 새우살 50g,
·목이버섯 10g, 건표고버섯 4장, 소고기 200g,
·소금 1큰술, 식용유 1컵, 밀가루 1컵, 찹쌀가루 1큰술
·만능 간장 양념 (간장 3큰술, 설탕 1큰술, 물엿 3큰술, 참기름 1큰술, 후추 약간)
만드는 방법
1.버섯 불리기 : 목이와 표고는 뜨거운 물에 불려 부드러워지면 물기를 제거한 뒤에 얇게 채 썰어 만능 간장 양념 한 큰술씩 넣어 조물 조물 양념해 준다.
2. 야채 채 썰기 : 애호박은 껍질 부분만 돌려 깍아 채 썰고, 당근도 최대한 비슷한 길이로 채 썰어 준다.
3. 새우살 데치기 : 작은 새우살은 끓는 물에 데친 후 반으로 썰어 준비한다.
4. 소고기 손질 : 얇게 썬 소고기를 만능간장 양념 3큰술로 양념해 준다.
5. 전병 반죽 : 오이 물 3/2컵, 밀가루 1컵, 찹쌀가루 1큰술, 물 2/1컵을 섞어 반죽한다. (반죽물은 채에 걸러주면 멍울 없이 매끄럽게 사용할 수 있다)
6. 계란지단 :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 각각 잘 저어준 후 약불에서 팬에 얇게 부쳐 4cm 길이로 곱게 채 썰어준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7. 전병 부치기: 지단 할 때와 마찬가지로 팬에 기름 코팅을 하여 주고 반죽을 가장자리로 밀어내듯 원을 그리며 얇게 부쳐 준다.
8. 재료 볶기 : 채 썬 호박과 당근을 기름 1큰술 두른 팬에 재빠르게 볶아 펼쳐 식혀준다. 이때 소금간 살짝 뿌려준다. 버섯, 고기도 같이 볶아 준비 한다.
9. 마무리: 재료들을 조화롭게 돌려 담아낸다.
※Tip : 구절판에 겨자장을 곁들이면 더 맛있게 즐길 수가 있다.
겨자장 소스 : 식초 3큰술, 설탕 2큰술, 물 1큰술, 발효 겨자 2/1술, 참기름 2/1술을 잘 섞어 준비한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외식산업학 박사 △안동 1호 조리기능장 △안동종가음식체험관 연구원장 △대구가톨릭대학교 산학겸임 교수 △(주)예미정별채 수석셰프 겸 대표
2025-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