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최근 아르코에서 방언시 웹진을 만드는 ‘미디어 TEAT’을 지원하여 방언으로 작품을 쓰는 작가나 시인들에게 예산을 대폭 지원해 주고 있다. 지역 문인협회에서도 방언 시 공모와 시화전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2019년 제주도의 시인이자 작가인 현택훈이 쓴 ‘제주어 마음사전’(걷는사람)이 ‘아르코 문학나눔(2019)’에 선정되었다. 진솔한 제주어를 소재로 한 산문과 제주어를 소재로 한 시를 간곡히 담아낸 ‘제주어 마음사전’은 총 4부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 ‘우리는 가매기 새끼들이었다’에는 “가매기(까마귀), 간세등이(게르름뱅이), 강셍이(강아지), 고장(꽃), 곤밥(흰밥), 곰세기/곰수기(돌고래), 곱을락(숨바꼭질), 구젱기(소라), 귓것(쉬신), 굴룬각시(내연여), 궨당(친척), 깅이(게), ㄱ·대(조릿대), 내창(하천), 넉둥베기(윷놀이)”와 같은 뭍의 사람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제주어를 섞어 시와 산문을 소개하고 있다. 제2부 ‘엄마는 한라산 용강에 묻혔다’에서는 “뉭끼리다(미끌어지다), 도댓불(등댓불), 돌킹이(부채게), 동카름(동쪽 마을), 두리다(어리다), ㄸㆍㄹ르다(따돌리다), 랑마랑(~하기는커녕), 막은창(막다른 골목), 모살(모래), 몰멩지다(숫기가 없다), 물보라(서귀포시 지역 지명), 물웨(물외), 버렝이(벌레)”와 같은 자연과 지명 이름 등을 소개한다. 제3부 ‘제주의 새들은 제주어로 울까’에서는 “베지근ㅎㆍ다(궁물이 맛있다), 보그락이(잘 부풀러 오름), 본치(상처가 낫은 흔적), 부에(화), 벤줄(벤귤), 생이(새), 솔라니(옥돔), 숙대낭(삼나무), 숨비소리(해녀들의 가쁘게 물속에서 쉬는 숨소리), 아ㄲㆍㅂ다(귀엽다), 아시아시날(그끄저께), 얼다(춥다), 엥그리다(낙서하다), 오몽ㅎㆍ다(열심히 몸을 움직이다), 오소록ㅎㆍ다(으슥하다)”와 같이 제주사람들의 심성과 마음의 울림이 담긴 제주어를 소개한다.
제4부 ‘오늘 밤에 나는 또 누군가의 꿈에 가서’에서는 “요자기(요전), 우치다(흐리고 비가 내리다), 웨삼춘(외삼촌), 이루후제(이후에), 조케(조카), 창도름(막창자), 출람생이(총랑거리는 이), 카다(붕이 붙어 타다), ㅋㆍ찡ㅎㆍ다(가지른히 고르다), 타글락타글락(터덜터덜), 퉤끼(토끼), 폭낭(팽나무), 할락산(한라산), 할망바당(수심이 얕은 바다), 허운데기(머리털), ㅎㆍ끌락(아주 작다)”과 같이 제주 토박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제주어를 소개한다.
이 책의 방언 자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물웨(물외), 퉤끼(토끼), 할락산(한라산)”과 같은 음운론적 변이형들은 제주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뜻의 짐작이 가능하다. 그래서 환산 이윤재 선생은 예측 가능한 음운론적 변이형인 전등어는 사전에 싣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그렇지만 “허운데기(머리털), ㅎㆍ끌락(아주 작다)”과 같이 표준어와 형태나 조어 자체가 다른 형태론적 병인형인 각립어는 가능한 한 큰사전에 실어 표준어를 풍성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비록 표준어가 아닌 방언이지만 지역의 정서나 삶의 체험과 경험의 무늬가 남아 있는 방언은 매우 중요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특히 AI 시대, 대형 클라우드 정보 저장과 처리가 가능한 시대인 지금이야말로 이처럼 소중한 문화유산을 일일이 조사하여 저장해 두어야 할 뿐만 아니라 유용하게 활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택훈의 제주 지명을 소재로 한 ‘솜반천길’이라는 시를 한편 보자.“물은 바다로 흘러가는데 길은 어디로 흘러갈까요 솜반천으로 가는 솜반천길 길도 물 따라 흘러 바다로 흘러가지요 아무리 힘들게 오르막길 오르더라도 결국엔 내리막길로 흘러가죠 솜반천길 걸으면 작은 교회 문 닫은 슈퍼 평수 넓지 않은 빌라 솜반천으로 흘러가네요 폐지 줍는 리어카 바퀴 옆모여드는 참새 몇 마리 송사리 같은 아이들 슬리퍼 신고 내달리다 한 짝이 벗겨져도 좋은 길 흘러가요 종남소, 고냉이소, 도고리소, 나꿈소, 괴야소, 막은소…. 이렇게 작은 물웅덩이에게 하나하나 이름 붙인 솜반천 마을 사람들 흘러가요”
제주도 내창(內川)은 대부분 건천인데 흘러가는 내가 아닌 중간 중간 물이 고인 소(沼)도 있다. 제주 특유의 자연환경에 이름 붙인 “종남소, 고냉이소, 도고리소, 나꿈소, 괴야소, 막은소”는 제주 자연이 남기고 제주 사람들이 명명한 제주어다. 제주사람들의 깊은 애정과 심성이 맑게 흐르는 물처럼 담겨 있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지역 방언은 독특한 지역의 지식정보와 사람들의 마음이 새겨진 디지털 정보뭉치이다.
2024-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