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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방언이 유용하게 활용되기를 바란다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詩와 方言 이야기’를 통해서 1920년대와 1940년대 그리고 현대의 시와 소설이 담아내는 언어들이 생물의 종 다양성이 중요하듯이 한국어라는 언어를 구성하는 다양한 지역 방언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 기회였기를 희망해왔다. 문학과 언어에 대한 본질이 지니고 있던 기본적인 시각이 사대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근본적으로 세상과 불화할 목적으로 문학 창작을 하는 작가들은 없겠지만 극한적 위기의 시대를 만나면 평범했던 얼굴을 했던 악인들이 나타나고 거칠고 앙칼진 목소리도 나타난다. 좀 더 관대해지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토착의 목소리를 동원하듯 민낯의 얼굴을 한 살아 있는 방언이 현실적 소통 세계로 더 활발하게 걸어 나온다면 우리들의 모국어는 훨씬 다양해지고 풍족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자연환경과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발전해 온 토착 언어 속에는 그 지역의 자연환경에 대한 상세한 지식 정보가 담겨 있다. 이 토착 지식정보가 어떤 식으로든 우리 모두가 의존하는 자원을 관리하는데 유용한 통찰력을 줄 수 있다. 생약 의약품의 4분의 1이 세계의 열대 우림에서 생산된다. 태평양 연안의 주목 나무껍질을 이용하여 난소암 치료제인 택솔을 생산할 수 있다. 과학 발전을 위한 다음 단계의 정보가 오지의 삼림 속에 있는 어느 이름 없는 토착 언어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북극 이누이트족은 얼음과 눈을 세상에서 가장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오고 있다. 에반 티 프리처드가 쓰고 강자모가 옮긴‘시계가 없는 나라(No Word for Time)’(2006)에 따르면 미국 원주민 언어인 미크맥어에는 가을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로 나무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해양 생물학자 R. E. 요하네스가 1894년 만난 팔라우 어부는 컴퓨터와 관련된 어휘는 단 하나도 알지 못하지만 3백 가지 이상의 물고기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독특한 문화적 요소들이 언어의 절멸과 함께 사라질 수 있다. 언어 다양성과 생물 다양성이 상실되는 과정 간에는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과거에는 생물 다양성의 상실은 인간의 개입 없이 진행되었으나 최근에는 인간이 환경을 바꾸어 놓은 탓에 유례없는 대규모의 멸종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소멸해가는 토착 언어 속에도 새롭게 찾아내어 유용하게 활용할 자원이 엄청나게 숨어 있다는 말이다. 언어의 붕괴 현상도 전 세계적 생태계의 붕괴 현상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다. 인위적인 언어 정책이 언어의 절멸을 더욱 가속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15세기 유럽의 해외 진출, 18세기 산업혁명, 19세기 도시화된 국가, 20세기 과학 혁명과 같은 인류 역사의 대변혁이 환경 변화와 함께 인간의 삶의 방식을 획일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언어 절멸의 문제가 중요한 주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는 언어가 많이 있으면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이나 현대화에 장애가 된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인도가 다중 언어로 인해 분열되었고 영어권은 단일 언어여서 단합을 이루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공통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도 정치적 단합이나 통합을 이루지 못한 북아일랜드나 소말리아, 구소련 공화국의 사례도 있지 않은가. 예루살렘의 거리 표지판은 다중 언어로 되어 있는데 정치적 상황에 따라 영어, 아랍어, 히브리어가 위아래의 순서가 달리 배치되는 매우 흥미로운 현상을 보인다. 1919년부터 1948년 사이 팔레스타인이 영국 통치 하에 있을 때에는‘영어-아랍어-히브리어’의 순서였지만 요르단 사람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에는‘아랍어-영어-히브리어’의 순으로, 1967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탈환했을 때에는‘히브리어-영어-아랍어’의 순위로 재배열되었다. 이처럼 언어는 전 세계에 걸쳐 정치적 투쟁의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언어와 방언 역시 정치나 문화적 힘에 따라 우열의 순위가 바뀔 수도 있다. 문학에 나타나는 방언의 중요성에 대한 칼럼 연재를 이제 마무리하려고 한다. 언어의 변종은 생태적 경쟁의 상태에서 때로는 충돌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예루살렘의 거리 표지판처럼 상생적인 힘을 갖기도 한다. 문학 언어로서의 방언의 소중함에 대한 성찰을 통해 방언 사용이 지역 문화와 관광에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확장되기를 바란다. 방언을 지역사회의 각종 안내간판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인식이 확대되기를 바란다.

2024-12-30

사투리 글쓰기를 지역 문화운동으로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훈민정음 해례’ 정인지 후서에 “사방의 풍토가 서로 다르면 소리 기운이 또한 거기에 따라 달라진다(與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고 하였다. 서울 사람, 충청도 사람, 강원도 사람,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 부산 사람이 각기 독특한 기질이나 성정의 차이가 있는 것은 지리나 풍토에 따른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흔히들 경상도 사람들의 말소리가 다른 지역보다 더 억세고 투박하고 거칠다고 느끼는 것은 경상도 말씨의 강한 높낮이 때문인데 같은 경상도에서도 바닷가 사람들의 말씨가 더욱 억세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말소리가 파도소리를 이겨야 하는 삶의 터전 탓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지역 방언은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삶의 전통과 성정이 어우러진 것이지만 1933년 국어맞춤법통일안이 제정되면서 서울 중심, 교양인 중심의 표준어 교육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방언은 저절로 금기시되었고 억제되었다. 한때 방송 언어에서조차 사투리는 사용 금지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심지어 드라마에서는 출연 인물의 신분이나 직업적 특성에 따라 특정 지역 사투리 사용자로 배정하여 방언을 계급적 상징으로 다루기도 하였다. 대구 출신 민경식 감독이 1960년에 만든 영화 ‘경상도 사나이’는 주인공 김 기자(이대엽)와 여자 친구 순경(조미령)과의 러브스토리인데 당시 인기 배우였던 조미령이 마침 마산 출신이어서 실감나는 멋진 사투리로 연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친구’에서 부산 사투리는 ‘조폭’의 이미지로 크게 히트되었다. 시와 소설 그리고 희곡 등과 같은 문학 장르에서 방언은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이나 문학 기교의 소중한 장치로서 끊임없이 사용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대구 시가지 풍광을 배경으로 한 김원일의 소설 ‘마당 깊은 집’(문학과지성사)이 대표적이다. “설령 점심밥을 굶어 배가 쪼매 고푸더라도 사나이 대장부가 될라카모 그 쭘은 꿋꿋이 참을 줄 알아야제.”에서 텍스트를 이해하려면 소리를 내어 읽어야 제 맛이 난다. 경남 하동 배경의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다산책방)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상에, 하도 기이하고 숭칙해서 말도 몬 하겠다. 우사스러서 우찌 살겠노, 어무이하고 그 말을 할라 카다가 차마 쇠가 안 떨어지더라.”이 소설에서 종종 발견되는 ‘하-모’에서처럼 동사의 어근 ‘하-’에 접속어미 결합형인 ‘하-마, 하-모’는 경상남북도를 가르는 매우 특징적인 말투이다. 물론 경북이나 경남 화자가 아니면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릴 수 없다. 하지만 최근 딥러링을 한 AI 소리지원 시스템이 어느 정도 이 같은 방언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방언적 특성이다. 이제는 문학이 단순한 텍스트 전달 방식이 아닌 소리와 관련된 풍경까지 지원하는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세종대왕 시절에 이미 간파했듯이 중국어와 조선말이 다르고, 조선 내에서도 삼남지방의 풍기가 달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정이 다르듯 그들의 말씨도 차이가 난다. 그런데 그 말소리와 꼭 같이 적을 수 있는 문자가 ‘훈민정음’이라고 했는데 사실 현재 문어와 구어는 엄청나게 차이를 보인다. 특히 방언과 같은 지역의 소리는 소리대로 적지 않았다. 구어 일치가 아니라 오로지 표준어를 중심으로 한 문어 일치로 교육을 받은 결과 지방의 토속어 정보에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배우 최불암이 출연한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았다. 특히 산촌이나 어촌 지역의 식재료 이름은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경남 하동 읍내시장 어물전 아지매가 몸을 일으키며 “배다구 몇 마리 사가이소”라고 외친다. ‘배다구’가 생선 이름인가 했더니 ‘배다구’는 생선 이름이 아니고 배에서 고기를 잡자말자 제 자리에서 소금 간을 쳐서 말린 고기를 뜻한다고 했다. 보리숭어나 민어 등 소금에 절여 말린 고기인 배다구를 사다가 맛있게 조림을 한 밥상을 차린다. “표준어 글쓰기”의 압박으로 토박이말을 빼앗긴 우리들의 글 속에서인들 방언을 마음 편하게 사용할 형편이 아직 안 된다. 그러나 선조들의 지적 체험과 정서적 감정이 듬뿍 배어 있는 향토말인 사투리 글쓰기로 지역 소멸을 막아내는 지역 사랑운동 한번 전개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24-12-23

시문학파가 토착방언으로 쓴 시의 성취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만해, 소월, 상화 등 20년대의 대표적인 근대 시인들은 그 시대의 다른 시인들에 비해 특별한 시적 성취를 이룩해 내었다고 평가된다. 그 이유로 시대 의식이 뛰어났다는 점과 토착어 지향의 시어를 사용한 것을 손꼽을 수 있다. 그들의 시작품은 서정성이나 시적 리듬을 살리기 위해 한자어를 피한 대신 토착어 지향을 뚜렷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20년대 말에서 30년대에 걸쳐 우리는 새로운 시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에게 있어서도 토착어 지향성은 한결 두드러졌고 시의 세련성은 배가되었다. 1930년에 발간된 순수시 동인지 ‘시문학’은 박용철을 비롯하여 김영랑, 정인보, 변영로, 신석정, 이하윤 등이 그 중심적인 작가였다. 그들은 새로운 시어의 연마와 세련된 시상으로 세칭 ‘기교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일군의 시인들이다. ‘시문학’파로 알려져 있는 시인들에게서 우리는 근대시의 세련미를 갖춘 시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김영랑이나 박용철은 순수한 토착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토속의 울림을 가진 리듬을 확보했다. ‘시문학’의 동인이었던 정지용은 현대시문학사에 매우 눈부신 시의 자취를 남겼다. 1927년에 발표된 정지용의 대표작 ‘향수’는 뛰어난 서정적 시와 노래로서 우리의 눈과 귀에 매우 익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질화로에 제가 식어지면/뷔인 밭에 봄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졸음에 겨운/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이 시에 나타나는 토착방언은 시인이 의도적으로 지향했던 고향의 그리움을 불러오는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서정적 운율을 유효하게 맞출 수 있는 의도된 방식으로 채택되었다. 시에 등장하는 토착방언은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향에 대한 추억과 신화에 대한 믿음을 환기시켜 준다. 어린 시절 자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모티브가 방언으로 나타나 한결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토착 방언은 본래 민중의 말이다. 또 외래어나 한자어처럼 어른들만의 말이 아니기 때문에 어른과 아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말이다. 방언 시어는 잃어버린 낙원, 곧 고향에 깃들어 있던 말이기 때문에 시의 모티브와 각별한 조화를 이룬다. 고향의 재발견이 토착 방언의 발견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시인의 자기동질성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정지용은 우리 현대시문학사에서 소중하고 견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정지용은 ‘문장’지의 시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1939년 박목월·조지훈·박두진 등의 청록파 시인을 발굴하여 등단시켰다. 이로써 30년대 순수 ‘시문학의 전통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게 되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壁)’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한 미당 서정주의 토대를 마련해 준 것도 ‘시문학’ 동인들의 영향이었다. ‘시문학’파의 토착어 세련성에 대한 강력한 반발에서 시적 출발을 했다고 할 수 있는 미당 서정주조차도 처녀 시집 ‘화사집’에서는 가급적 한자어를 배제한 덕분에 한층 더 높은 시적 성취에 도달하였다. 서정주의 ‘자화상’이라는 시를 살펴보자.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 뿐이었다./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파격적인 호소력을 가진 ‘자화상’의 첫 부분이 이렇게 토착적 고유어로 조직되어 있음에 반해서 한자어를 의도적으로 무절제하게 사용하고 있는 ‘정오의 언덕에서’, ‘웅계’, ‘문’ 등의 작품은 오히려 시적 설득력을 잃고 있음이 역력해 보인다. 훌륭한 시는 시인의 작가 의식과 함께 고양된 감정의 통합된 산물이다. 시인의 몸에서 울려나오는 시어로 꾸려낸 텍스트가 청각과 시각의 공명을 일으키는 효율적인 수단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시어로서의 방언의 효용성을 확인할 수가 있다. ‘시문학’파에서 ‘청록파’로 이어지는 서정의 시적 물결을 일으킨 일군의 근대 시인들에게 토착적인 방언은 시작(詩作)에 있어서 매우 소중한 재료였다.

2024-12-16

김병해 시인, 열악한 언어생태 환경의 파수꾼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김병해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아뜩한 절간’은 튼실한 언어로 축조된 자신의 시 세계를 반딧불이 같은 초롱불빛 등을 우리들에게 내밀고 있다. 문형렬은 “단단하면서도 깊은 서정의 시어를 빚어낸 그는 이번 시집에서는 평이하면서도 울림이 깊은 목소리로 존재의 적적한 모습들을 가만가만 노래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맞춤맞은 시평이다. 시인은 새로운 단어를 낳는 연금술사다. 시인이 아름다운 단어들을 빚어 어떻게 적재적소에 잘 배치할 수 있는가가 시인에게 거는 나의 기대다. 그런 의미에서 김병해는 밀려드는 외래어와 잡종의 혼종어들이 깨끗한 언어를 잡아먹는 열악한 언어생태 환경에서 우리말을 지켜내는 파수꾼이다. ‘외따름히’, ‘별쫑맞은’, ‘바위너설’, ‘휘우듬히’, ‘생떼거리’, ‘북재비’, ‘구부스름’, ‘무젖은’, ‘들큰’, ‘놋갓쟁이’, ‘흔덕이는’, ‘허릿매’와 같은 잘 사용하지 않거나 사전에도 없는 낱말을 곧잘 만들어 내는 기량을 김 시인은 가지고 있다. “좁장한 이랑의 민둥 산비탈 끝녘/숨은 듯 위뜸 봇둑작은 과수밭/껍질에 닫혀 부푸는 과육이 우겨대던/늦가을 이즘 시렁 문턱밖으로/도톰하니 여문 과실 떠나보낸 나무가 편안합니다//들명달명 되풀이들이밀던 바람의 흘레질/물관부 체액으로 테두리 잎맥마다/얼치기 골백번생각만으로 헤아리던/크기와 무게에다 호흡을 쏟은 탄탄한 열정/그 결기 찬찬히 되걷는 저녁 시간입니다//뭉툭 무뎌진 밑동 늦도록 바닥에 끌리면/휘어진 그루, 결별의 그림자는 길어서/가쁜 숨이 잦아들어 심이 될 때까지/수그린 빈 몸으로 저물을 맞서는/참 오래된 사과나무의 시간입니다”(오랜 사과나무의 시간)에서 ‘좁살한’, ‘위뜸’, ‘이즘’, ‘들명달명’, ‘되걷는’, ‘수그린’, ‘저묾’과 같이 새로운 낱말 만들고 간간이 경상도 사투리를 살포시 끼워넣는 재주를 가진 시인이다. ‘안부’는 아예 전편이 경상도 방언이다. “하모 글치/내사 여서 잘 있데이//카마 니는 거 머 하미/어데 우째 지내노//암마 빌일 읎는 기제/공연시리 궁겁네//꽃 지기 전/함 댕기 가그레이”. 경상도 출신 가까운 친구와 전화로 주고받는 대화로 서로 어떻게 지내는가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걸걸한 목소리이다. 이 방언 시의 텍스트를 읽으면 소리가 일어난다. 마치 곁에 경상도 사람들의 일상이 소리와 풍경화로 다가온다. 마지막 연은 누구의 목소리라고 할 것 없이 둘 다 서로에게 또는 스스로에게 당부하는 말이기도 하다. 보고 싶으니 한번 다녀가라는 말이다. 이 대화 시의 주인공은 오랜 친구일 수도 있고 멀리 사는 일가친척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꽃 지기 전일까? 꽃 지기 전이라면 언제일까? 그것은 꽃이 한순간 지고 만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두 사람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짧은 지상의 이 순간이 다하기 전에 서로 한 번 다녀가라고 권하는 절묘함을 표현하고 있다. 꽃이나 나무는 시인의 시적 소재에 매우 중요한 매개인 동시에 시인의 인식과 존재의 옷깃으로 현재화된다. 꽃이 지듯 짧은 시간성은 인간 존재를 빗댄 상징성이다. 김병해 시인은 자연 속 식물에 대한 촉감이 매우 뛰어나다. “살점의 뿌리는 뼈대이고/유년의 뿌리는 기억이다//바다의 뿌리가 강줄기라면/별빛의 뿌리는 어둠이다//세상 모든 뿌리 없는 것들 그러모은/저항의 뿌리는 불길이겠지만//방목한 빈 바람 소리만/내달리는 폐사지//아무 말 않고서도 모든 것을 말하는/뜨겁게 북받치는 모든 것들의 언어//적멸의 뿌리는/여태 숨죽이던 버젓한 비명이다”(‘모든 것들의 뿌리’)에서 그의 인식과 사유의 뿌리가 도달한 곳은 존재라는 나무의 뿌리이고 그 적멸의 뿌리는 언어이며 시라는 비명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김병해 시인은 낱말 만들기에만 능숙하게 아니라 시어의 현상적 의미에 대한 깊이를 철저하게 가늠하는 세련성을 지녔다. ‘뜨다,는 말의 생애’는 11종의 ‘뜨다’라는 낱말이 품고 있는 의미망을 엮어 한 편의 시로 만들어내었다. 시인학교를 빗댄 그의 풍자적인 시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취한 인구 감소에도 시인은 넘쳐 학급 대폭 증설”, 하하하, 위대한 시인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2024-12-09

전남 강진 김영랑 시인의 기다림의 미학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첫눈이 대지를 온통 하얗게 뒤덮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첫눈이 폭설이라고 했다. 여기 경상도에서 누릴 수 없는 겨울 정경이다. 무덥던 한여름 태양의 열기와 꽃비에 젖은 봄이 있었던가 아득해진다. 전남 강진 출신 김영랑(본명 김윤식) 시인이 봄 그리워하는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불현듯 떠오른다. 1935년 무렵 김영랑은 우리 고유의 운율로 미묘한 심상을 그려낸 뛰어난 시인이었다. 그는 전라도의 토착적인 방언이 지닌 음악성을 살려내기 위해 방언의 소리와 리듬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시인이었다. 그의 시 ‘언덕에 바로누어’는 본래 제목이 ‘어덕에 바로누어였다. ‘어덕’은 경남과 충남 일부에도 쓰이지만 주로 전라남도 쪽에서 많이 사용되는 방언이다. 그의 초창기 시의 특색은 토착의 소리를 그대로 살려낸 음악성에 치중했고, 부드러운 가락에 영롱한 심상을 곁들인 거였다. 따라서 표준어로만으로 쓰면 그 의미 구조가 너무 투명해져 버려 재미가 반감된다. 여기서 김영랑이 의도적으로 방언을 쓴 까닭이 드러난다. 김영랑의 대표시라고 할 수 있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전문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즉 나의봄을 기둘리고 잇슬테요/모란이 뚝뚝 떠러져버린날/나는 비로소 봄을여흰 서름에 잠길테요/五月어느날 그하로 무덥든날/떠러져누은 꼿닙마져 시드러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업서지고/뻐쳐오르던 내보람 서운케 문허졋느니/모란이 지고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말아/三百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슬테요 찰란한슬픔의 봄을”(‘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시간의 흐름 속 소멸의 미학을 노래한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읽을 때마다 이 시의 절절하고 유정한 시적미학에 나는 깊이 빠진다. 봄을 기다리는 시점은 아마도 지금과 같은 첫눈이 내린 겨울이 아닐까? 찬란히 핀 모란꽃이 낙화하는 꽃처럼 지고 난 시간에 대한 절절한 안타까움은 시인 이형기가 노래한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분분한 낙화….”라는 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시는 시적 대상으로서의 ‘모란’과 시적 주제로서의 ‘나’ 사이에 일어나는 인연의 애달픈 별리라는 상실을 노래한 시이다. 화려한 봄을 잃어버리는 순간은 그냥 별리가 결코 아니길래 더욱 애달프다. 우리 인생에서도 가장 화려했던 봄날은 늘 과거에 묻혀 있다. 잊어버렸던 지난날의 추억이 소멸되는 순간에 느끼는 비애를 시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다. 이 시에서 시적 의미를 고양시키는 중심은 바로 ‘기둘리고 잇슬테요’라는 전라도 강진 방언이다. 봄은 해마다 다시 회귀하지만 다시 찾아올 수 없는 사람의 봄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그래서 아쉽고 슬픈 것이다. 그러나 다시 찾아오는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바로 모란이 피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모란이 피어 있는 순간이 매우 짧듯이 화려한 인생의 봄 역시 결코 길지 않다. 그래서 이 시의 주체인 ‘나’를 서술하는 ‘기둘리다’. ‘(서름에) 잠기다’, ‘울다’ 가운데에서 열 번째 시행에 나오는 ‘우옵내다(울다)’를 주목해야 한다. 객체존대의 ‘-오-’는 주체존대의 ‘-시-’와 겹치는 ‘나’와 함께 ‘모란’도 울어 안타까움을 최고의 정점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시적 주체인 ‘나’와 시적 대상인 ‘모란’이 일체를 이루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떨어지는 모란을 보고 그 모란과 함께 다시 모란이 피어날 때까지 울면서 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三百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에서 ‘하냥’이 지닌 뜻의 절묘함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 단어가 들어갈 자리에 표준어 ‘늘’, ‘항상’과 같은 부사로 대치해 보라. 전라도에서 사용되는 방언 ‘하냥’은 ‘함께’, ‘같이’라는 의미가 섞여있는 단순한 ‘늘’의 뜻이 아닌 주체인 ‘나’와 대상인 ‘모란’이 함께 같이 다시 꽃이 필 날을 가다린다는 시적 의미를 나타낸다. 시인 오세영은 “사투리 ‘하냥’은 그 뜻에 비추어 보거나 언어 음악성이라는 관점에서 ‘항상’, ‘언제나’ 혹은 ‘마냥’보다 훨씬 깊은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소리 그 자체에 아름다운 미학적 요소가 담겨 있다고 평했다. 이 시는 ‘하냥’ 덕분에 주체와 객체가 물아일체가 되어 상실의 봄을 기다리는 아픔을 노래하는 방언시의 절창이 될 수 있었다.

2024-12-02

문학어와 방언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대한제국이 기울어지면서 신문명과 함께 서구 문학도 외세의 바람을 타고 한반도로 밀어닥쳤다. 문학 양식은 옛날 운문체 형식의 언어와 문자에서 벗어나 우리말과 우리 글자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되 새로운 서구의 문학 양식에 맞춘 문학 형식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최남선, 이광수와 같은 문인들이 개화 문물을 도입하면서 새로운 문학 양식으로 시나 소설을 짓기 시작하였다. 일부에서는 우리의 글과 말을 갈고 닦으며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조선어학회(한글학회의 전신)는 표준어 사정, 맞춤법의 정리, 외래어 표기 등 우리말과 글의 규범을 정립하는 일이 곧 나라를 수호하는 일이라며 우리말큰사전 편찬 작업에 힘을 모았다. 정확하게 1933년 맞춤법통일안이 만들어진 그 이전의 시공간 속에서 활동한 20~30년 사이의 문학 활동을 한 이들에게는 오늘날과 같은 맞춤법의 기준이 아주 희미했다. 우리 근대문학은 일제침탈이라는 정치적 역경 속에서 형성되고 전개되었다. 일제 식민지 체제에서 문학의 표현 매체인 우리말글을 마음대로 갈고 다듬을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문학은 우리말을 세련되게 꾸며 보급시키려는 역할을 충실히 담당했다. 구어체가 문학작품 속에 잘 발달되지 않았던 상태였다. 곧 고전시가와 소설들은 대체로 문어체였는데 그것으로는 현대소설을 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문과 대화체를 분리해서 구어의 속성을 반영하는 단계에서는 지역 방언이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현대시 역시 음수율에서 벗어나 리듬과 운율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문어체보다 구어체가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고전문학과 달라진 근대적 문학 언어의 사용 환경이 구어체와 문어체의 결합이라는 문학 언어로 탄생되었지만 표기 기준은 기껏 성경책 표기나 한글신문 기사나 잡지의 글쓰기 표기법을 흉내낼 정도였다. 근대문학 초창기에 우리 시인 작가들은 모두 글쓰기 방식에 대한 새로운 지향점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김동인은 훗날 ‘약한 자의 슬픔’을 쓸 때 “나는 자라난 가정이 매우 엄격하여 집안의 하인배까지도 막말을 집안에서 못쓰게 하여 어려서 배운 말이 아주 부족한데다 열다섯 살에 외국에 건너가 공부한 만치 조선말의 기초 지식부터 부족하였고 게다가 표준어(경기말)의 지식은 예수교 성경에서 배운 것뿐이라 어휘에 막히면 그 난관을 뚫기는 아주 곤란하였다. 썩 뒤의 일이지만 그때 독신이던 나더러 경기도 마누라를 아내 삼으라 권한 일이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정확한 조선어(표준어)를 좀 더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경기도나 서울 출신의 아내를 얻으라는 충고를 들을 정도로 문인의 고뇌가 잘 드러난 내용이다. 최남선, 이광수, 김동인, 주요한, 김억, 이상화 등 20년대 이전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우리말의 표준어와 방언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감각을 가지면서 여러 독자 또는 대중에게 신선하게 느껴질 말과 문장도 아직 분명하게 확립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그 당시 조선어학회의 표준어 맞춤법 제정을 위한 노력도 매우 중요했지만 ‘창조’, ‘장미촌’, ‘백조’, ‘폐허’ 등의 동인지 활동을 통해 당시 문인들이 표준어로 공식화할 수 있는 말을 골라 쓰고 문장을 만들어 대중에게 다가갔다. 근대 문학어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문인들의 시도가 우리 어문의 근대화와 표준화에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시와 소설은 아주 강한 전파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라를 잃은 슬픔의 시대에 문학 작품은 가장 큰 문화 교양을 알려주는 매체였고, 신지식을 습득하는 수단이었으며, 새로운 글쓰기와 글 읽기의 기풍을 확립해 준 셈이다. 1910년대 말에서 20년대 초에 걸친 시인과 작가들의 언어를 당대의 문학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근대문학 초창기 우리 문인들은 아직 우리말글의 표준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서구의 양식에 발을 맞춘 문학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100년 후,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발표되자, 한강은 많은 선배문학인이 있었던 덕분이라고 했다. 한강이 읽었던 선배문학인 또한 1920년대 현대문학 선구자들이 문학적 글쓰기의 힘든 길을 닦아낸 덕분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24-11-25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데보라 스미스의 ‘HUMAN ACTS’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5·18 시민군에 휩쓸린 어린 소년 동호의 죽음을 회상한 ‘소년이 온다’는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작에 선정되기 이전 2014년 만해문학상,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전세계 20여개국에서 번역 출간되면서 한국문학의 세계화의 길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벨상을 계기로 이제 우리나라 문학이 세계의 문턱을 넘어 세계 각국의 독자와 한결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한국 민주화의 전환점을 불러온 5·18민주화운동은 광주를 지역적 배경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일어나서는 아니 될 내전에 가까운 전쟁으로 인해 숱한 생명이 고문과 학살로 사그라졌다. ‘소년이 온다’는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공간 속에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다룬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소설”(가디언)로 평가되었다. 교련복 차림의 어리고 어리숙한 동호의 이름없는 죽음에 그의 어머니는 리얼한 광주방언으로 피눈물을 쏟아낸다.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시와 천착의 서사”인 이 소설 중 제6장 ‘꽃 핀 쪽으로’는 당시 중학생이었던 동호의 죽음에 대해 20여년이 지나서 동호를 가장 사랑하던 어머니가 지난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대사와 지문이 구분이 없되, 광주방언만이 깨알처럼 박혀 있다. 작가 한강은 동호의 죽음만이 상처가 아니라 그의 일가족과 광주시민 모두가 헤어날 수 없는 오래 묵은 상처를 가지고 있음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 머시매를 따라갔다. 머시매 걸음은 빠르고 나는 늙었는디, 아무리 걸어도 따라잡을 수 있어야제. 조금만 옆으로 고개를 돌려주먼 옆얼굴이 보일 것인 디, 아무 데도 안 둘러보고 앞으로, 앞으로만 가야. 요새 어느 중학생이 그리 짧게 머리를 깎겄냐이. 동그스름한 네 두상을 내가 아는디, 분명히 너였다이. 느이 작은형이 물려준 교복이 너한테는 너무 컸다가 3학년 올라감스로야 겨우 몸에 맞았제.” 작중 화자는 한글을 조금 읽을 수 있는 가난하고 무지한 광주의 소시민인 동호의 어머니다. 그의 언어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이미지는 오래전 한국의 어머니의 전형이 아닐까? 자연 그의 언어는 토착의 사투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나의 관심은 바로 이러한 광주 방언이 번역문에는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였다. 지역의 토착적 분위기가 동호의 죽음과 가족사에 그늘진 모습을 어떻게 투사하고 있는지를 밝혀보고 싶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Deboraha Smith)의 ‘HUMAN ACTS’ GRANTA 영어판을 사서 살펴보았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는 탁월한 한국문학 번역가로 알려졌고, 특히 한강의 소설을 훌륭히 번역한 것으로 영국 맨부커상도 한강과 공동 수상한 번역가다. 한강을 뛰어넘어 제2의 한강이라며 그녀의 번역에 대한 호평이 자자했다. 그러나 방언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앞의 동호 어머니의 독백과 같은 광주방언 대사는 지나친 의역으로 원작이 품고 있는 토착적 향기는 모조리 증발되어 버렸다. 그도 방언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충분히 했을 거라는 짐작은 간다. 필자는 번역전문가는 아니지만 문학작품 번역에서 방언을 어떻게 투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오래도록 해 왔다. 1885년 미국의 마크 트웨인이 쓴 ‘허클베리핀의 모험’은 형식상으로는 ‘톰소여의 모험’(1876)의 속편으로 발표되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흑인과 백인의 언어는 사회적 방언으로 차이가 컸는데, 흑인의 방언이 그대로 쓰여 큰 이슈가 되었다. 글로 쓰인 방언을 가시방언(Eye DIalects)라고 하는데, 이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들이 이어졌다. 향후 k-문학이 세계로 뻗어나기 위해서는 우수한 원작이라는 조건에 더해 탄탄한 번역이라는 또 하나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 토착 방언에 대한 문학적 기능과 역할에 대한 국제적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미세하고 다양한 인류 언어의 공통적 자산을 한 단계 도약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AI기계번역이 도달하지 못하는 문맥에 따른 이미지의 다양성, 상징과 비유 그리고 방언의 번역이라는 보다 순도 높은 언어 소통의 기술력을 위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 그리고 투자가 절실한 시점이다.

2024-11-18

K-문학의 시대, 문학방언의 번역 과제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시와 소설 등 문학예술은 언어를 매체로 하는 예술이다. 한국문학은 한국어가 중심 매체로 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어에는 공통어인 표준어가 있지만 여러 지역과 사회계급에 따른 방언도 있다. 모든 한국인의 소통에 기준이 되는 표준어가 사실 인공적으로 정한 언어이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는 대칭적인 자연언어인 방언이 상호보완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중 어떤 언어가 우리 문학의 매체로 되어야 할까? 현대문학에 있어서는 두말 할 것도 없이 공통어가 문학 용어로 사용된다. 가끔 문학적 효용을 위해 방언으로 된 문학 작품이 발표되기도 하지만 매우 큰 제약을 받고 있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드러낼 필요가 있는 경우 대화체에서 방언 화자의 생경하고 자연스러운 방언을 노출하지만 방언으로 된 작품은 근본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제주도에서 간행된 그곳 출신 유명한 작가의 작품도 공통어 일색이다. 소설 등의 인용 대화문에서만 때로 방언이 나타날 뿐이다. 교육과 매스컴의 영향으로 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공통어가 크게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공통어가 덜 보급된 시기의 문학 작품, 곧 고전 문학의 경우에는 방언을 매체로 한 작품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지방에서 간행된 한글고소설, 내방가사, 시조 등을 살펴보면 동 시기의 작품에서는 대체로 공통어와 방언이 뒤섞인 경우가 적지 않다. 비록 지방문학으로서의 고전에서도 공통어로 되어 있다. 사실 공통어는 본시 방언의 혼입이다. 가령 가사 문학의 두 대가인 전라도 출신의 송강과 경상도 출신의 노계는 각각 전라·경상 방언을 말하는 지방 출신이지만, 그들의 작품에서 구개음화 등 약간의 방언형을 제외하고는 그들 지역방언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전남 해남 출산의 고산의 시조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에 우리는 고전문학에 있어서도 공통어가 매체로 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문학어로서 공통어와 더불어 선별적으로 방언을 함께 권장하는 근본적 이유는 고유어의 샘물이 마르지 않게 한국어의 생태 환경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과거와 현재의 문인들에게 공통어와 방언을 지켜내고 풍부화시킨 그들의 공로를 우리는 크게 찬양하여야 할 것이다. 민요와 설화 등 구비문학에 있어서 그 지방의 방언이 그대로 매체가 된 김영돈의 ‘제주도 민요연구’(1965)에 “방엔 보난 굴묵낭 방에 절권 보난 도에낭 절귀방아는 보니 느티나무 방아 절굿공이”와 같이 제주방언으로 노래한 작품이 많다.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는 당연히 전라 방언으로 구사되어 있다. 특히 채록을 통한 구비문학 연구가 70년대 이후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지방의 방언 구어들이 민요나 설화 전설에 대량으로 기록유산으로 전해온다. 이균옥(1998)의 ‘동해안 별신굿’은 동해안을 따라 강릉에서 부산 다대포까지 내려오면서 각종 별신굿의 연희 내용을 채록한 기록문학이다. “우리 영감 디베졌십더/영감 디비졌다꼬?/예 진찰 좀 해주이소/어/우리영감 좀 살려주이소/오 긇나/예, 예”에서처럼 경상도 사투리 구연 그대로를 채록한 무가 자료는 마치 곁에서 말하는 듯하다. 이재욱(1930)이 채록한 ‘영남전래민요집’의 상주지방 ‘모숨기소리’에서는 “상주 함창 공갈 못에/연밥 따는 저 큰 애기/연꽃은 따지 말고/이내 품에 잠을 자세/잠자기는 어렵잔에도/연밥 따기 늦여간다/머리 조코 잘난 쳐자/울 뽕남게 거란잔네”라는 지방 민요의 맛깔을 돋우는 것이 바로 방언의 기능이다. 따라서 문학 작가들을 일컬어 언어의 창조자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도 한 개별언어의 생태적 조건은 새로운 대상을 상징하는 다양한 조어능력을 갖는 일이다. 만일 새로운 단어의 조성 능력이 단절되면 그 언어는 사라지거나 혹은 변질되어 변종으로 바뀌게 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본격적인 K-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한국고전문학의 번역 문제는 꽤 심각한 문제이다. 한국의 전통 문화의 정수가 담긴 ‘모숨기노래’와 같은 민요나‘열녀춘향수절가’와 같은 판소리를 어떻게 다국적 언어로 번역할 것인가? 방언으로 된 한국고전을 한국어 공통어로 번역한다면 우선 그 문학의 토착적 배경이 모두 무너져 버릴 터인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외국어로의 번역은 더욱 난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방언문학의 번역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관심과 연구가 매우 긴요한 과제이다. 세계문학으로 진출하기 위한 크나큰 문턱이 가로막고 있다.

2024-11-11

‘문장강화’에서 이태준의 방언 인식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우리의 근대는 대한제국에서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도상에 있었다. 한문 소통의 세상에서 한글 소통으로의 변화는 한국사에서 매우 중요하고 적절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였다. 그로부터 80년 한글 글쓰기는 노벨문학상 수상과 함께 세계적으로 공인되었으며 한글세계화전략에 맞춰 전 세계로 날개를 달고 뻗어나갔다. 그 결과 한국의 K-문화는 전 세계 문화 트렌드를 이끄는 선두에 서게 되었다. ‘표준어’와 ‘방언’은 때로는 상하 관계, 때로는 우열 관계로 인식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글쓰기의 교본 ‘문장강화’를 펴낸 이태준이 방언을 언급하였다. 이태준은 글쓰기를 “언어의 기록 또는 언어를 문자로 표현한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표준어가 한반도에서 지배적인 언어의 힘을 가지는 것으로 보았다. 대신 “방언이란 한 지방에만 쓰는 특색 있는(말소리로나 말투로나) 말을 가리킨다”고 하면서 방언의 역기능을 문제로 삼았다. 한문 소통 시대에서 한글 소통시대로 진입하면서 표준어란 잘 다듬어진 언어이고 방언은 소통범위가 제약된 다듬어지지 않는 언어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쉽게 이해, 수용할 수 있는 표준어가 당연 우월하다는 인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문학 작품은 널리 읽혀져야 한다. 그러니까 표준어가 사용되어야 하고 방언은 부차적인 의미밖에 못 갖는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또한 표준어는 방언과 달리 품위를 지닌다는 가치의 문제로 인식함으로써 한동안 방언은 잘못된 말로 오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태준은 완강하게 “시인, 작가는 모름지기 ‘언문의 통일’을 위해 일조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표준어 중심 글쓰기를 권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0년~1940년대, 방언에 대한 속깊은 인식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많은 시인들과 소설가들은 향토적인 상황에 등장하는 화자들의 언어를 방언으로 구사하였다. 문학에서 방언이 필요한 때도 있다고 보았다. 본래 작품은 그 제재나 배경, 등장인물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야 한다. 그를 위해 등장인물의 대화 같은 것에는 방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동인의 ‘감자’의 한 부분을 들었다. 그에 대한 해석을 다음과 같이 했다. “여기서 만일 복녀 부처의 대화를 표준어로 써보라. 칠성문이 나오고, 기자묘가 나오는 평양 배경의 인물들로 얼마나 현실감이 없어질 것인가? 작자 자신이 쓰는 말, 즉 지문은 절대로 표준어일 것이나 표현하는 방법으로 인용하는 것은 어느 지방의 사투리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라고 하여 문학에서 방언의 사용을 전적으로 제한하지는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느 지방에서나 방언이 존재하는 한 또 그 지방 인물이나 풍정을 기록하는 한 의음의 효과로서 문장은 방언을 묘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하는 이태준의 선구적 발언에는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얼마간의 한계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다. 우선 여기서는 방언의 효용, 기능이 지방색을 살리는 쪽으로만 파악되어 있다. 이것은 방언의 지역적 측면만을 생각한 결과다. 그러나 이미 지적된 바와 같이 방언에는 사회적 시각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 있다. 실제 이태준은 ‘문장강화’의 다른 자리에서 이런 단면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것이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서림과 뱃사공이 주고받는 말을 끌어들여 생활 속어라는 말로 계급적인 언어 사용을 인정하였다. 방언은 지리적인 차이에 의한 방언과 계급적 차이 곧 반상과 중인 하인들의 언어가 약간의 차이를 보여준다. 전자를 지리방언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사회방언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태준은 그 당시 이러한 두 가지 방언의 차이를 인식하고 지리적 방언을 ‘방언’, 사회적 방언을 ‘생활 속어’라고 하여 이어(俚語)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와 비슷한 시기에 우리 문단에서 활약한 시인들 곧 이상화, 김소월, 김영랑. 백석, 이용악 등의 작품 가운데 어떤 것은 방언과 분리시켜 그 작품의 우수성이나 가치를 더 논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방언 시를 발표하였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보면 방언이란 언어의 하위 개념이다. 한 민족의 언어가 형성된 경우 방언의 문제는 부수적으로 제기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형성된 역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방언이 우리 한국어의 총량 가운데 일부로 언어 정보자료로서 가치를 주장하게 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본격적으로 방언문학을 논의하게 된 단계에 이르러서 그 가치에 대한 결실이 맺어졌다.

2024-11-04

방언이라고 모두 시어가 될 옥돌은 아니다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조건어학회 사건 33인 가운데 한 분인 환산 이윤재 선생은 ‘조선어큰사전’ 편찬을 위한 기초 작업으로 사전의 올림말을 선정하는데 꼭 필요한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외래어를 선정하여 외래어 표기법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사전 올림말을 표준어로 한정하였지만 실제로 다양한 지역 방언을 조사하여 사전에 싣기 위하여 전국의 방언조사를 위해 최현배 선생이 작성한 ‘시골말 캐기 잡책’이라는 방언조사 질문지를 이용하여 전국 방언을 수집하였으며, ‘한글’잡지를 통해 조사된 자료를 연재하는 동시에 방학을 이용하여 경성에 있는 팔도 출신 대학생들에게 자기 고향말 수집을 독려하였다.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만들기 위해 어떤 말을 표준어로 삼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표준어 발표식’에서 이윤재 선생이 설명한 글이 남아 있다. “이제 발표하는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은 조선어 학회에서 삼 년 전부터 조선어 표준어 사정 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래 사정에 애써 오던 것입니다. 나는 이제 이 책의 내용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라고 하면서 표준어를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에 대한 원리원칙을 발표하였다. 상용어를 기준으로 하되 ‘같은 말’과 ‘비슷한 말’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매우 중요한 원칙도 제시하였다. ‘잠자리’의 경우, 이를 표준어로 하되 같은 말로는 ‘잠바리’, ‘잔자리’, ‘철갱이’, ‘철기’ 등과 같이 다양한 지역방언들이 나타난다. ‘같은 말’이라 함은, 한 사물에 꼭 같은 뜻이 있어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쓰는 것이다. ‘잠바리’, ‘잔자리’와 같이 ‘잠자리’에 대한 음운론적인 변이형을 전등어(全等語)라 하여, 그 여러 개 가운데서 하나만 뽑아 표준어로 정하고, 남은 것은 다 버려야 한다. 대사전에 이렇게 다양한 방언들을 모두 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잠자리’, ‘반자리’, ‘잠바리’와 같은 전등어 가운데 ‘잠자리’를 대표로 큰사전의 올림말에 싣게 되었다. 또 ‘갈구리’, ‘갈고리’, ‘갈쿠리’, ‘갈코리’, ‘갈구지’, ‘갈쿠지’, ‘갈고랑이’, ‘갈구랑이’, ‘갈코장이’, ‘갈쿠장이’ 등 십여 개나 되는 전등어도 있으나, 그중에서 한 개만 표준어로 세우고 그 밖의 것은 다 치워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음운론적으로 조금 차이가 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잠자리’에 대응해서 ‘철기’, ‘철갱이’, ‘철구’와 같이 형태는 전혀 다르되 ‘같은 말’도 있다. ‘범:호랑이’라든지, ‘옥수수: 강냉이’와 같이 소리가 아주 다르면서 뜻이 같은 말도 있다. ‘비슷한 말’은 얼른 보아서는 전등어로 보기 쉬우나, 실지 그 내용을 자세히 따지어 보면, 거의 같은 듯싶지만 어느 점으로든지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고, 또 달리 쓰이는 때도 있으니, 이것을 각립어(各立語)라 한다. 곧 형태론적 변이형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방언형은 지역적 특성으로 언어의 변화 시기와 방법의 차이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다. 한반도 북방은 ‘벼’라고 하는데 동남방에서는 ‘나락’이라고 한다. ‘벼이삭’과 ‘나락이삭’, ‘볏단’과 ‘나락단’처럼 각립어는 새로운 어휘 합성을 하는 데까지 나타나 우리의 한국어를 보다 풍성하게 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표준어 사정 원칙 때문에 지역적으로 서울지역어가 아닌 때문에 ‘나락’은 방언이 되고, 사전의 올림말에서 구축당했다. ‘강냉이’는 그 분포지역이 워낙 넓은 덕에 구제되어, ‘옥수수’와 함께 표준어로 대접을 받는 행운을 차지했다. 1933년 맞춤법통일안이 만들어지고 조선어 대사전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이처럼 매우 세심하게 표준어로 무엇을 올림말로 삼을 것인지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이윤재 선생은 “표준어를 될 수만 있으면, 전 조선 각 지방의 사투리(方言)를 있는 대로 다 조사하여, 여기에 대조하여 놓는 것이 떳떳한 일이겠으나, 이것은 간단한 시일에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것일 뿐더러, 분량이 너무 많아 인쇄에도 곤란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그리 못된 것을 매우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라고 하면서 앞으로 방언을 살려서 지속적으로 우리의 국어를 보다 풍족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 두었다. 따라서 방언에 대한 기본적 식견이 없이 마구잡이로 방언을 소리나는 대로 문학어로 끌어다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방언을 거칠고 남루한 언어로 밀쳐내는 일이나 다름이 없다. 특히 문학어로 사용하는 방언은 전등어와 각립어의 기준을 준수하여 잘 사용해야 한다.

2024-10-28

“제주의 새들은 제주어로 울까”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최근 아르코에서 방언시 웹진을 만드는 ‘미디어 TEAT’을 지원하여 방언으로 작품을 쓰는 작가나 시인들에게 예산을 대폭 지원해 주고 있다. 지역 문인협회에서도 방언 시 공모와 시화전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2019년 제주도의 시인이자 작가인 현택훈이 쓴 ‘제주어 마음사전’(걷는사람)이 ‘아르코 문학나눔(2019)’에 선정되었다. 진솔한 제주어를 소재로 한 산문과 제주어를 소재로 한 시를 간곡히 담아낸 ‘제주어 마음사전’은 총 4부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 ‘우리는 가매기 새끼들이었다’에는 “가매기(까마귀), 간세등이(게르름뱅이), 강셍이(강아지), 고장(꽃), 곤밥(흰밥), 곰세기/곰수기(돌고래), 곱을락(숨바꼭질), 구젱기(소라), 귓것(쉬신), 굴룬각시(내연여), 궨당(친척), 깅이(게), ㄱ·대(조릿대), 내창(하천), 넉둥베기(윷놀이)”와 같은 뭍의 사람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제주어를 섞어 시와 산문을 소개하고 있다. 제2부 ‘엄마는 한라산 용강에 묻혔다’에서는 “뉭끼리다(미끌어지다), 도댓불(등댓불), 돌킹이(부채게), 동카름(동쪽 마을), 두리다(어리다), ㄸㆍㄹ르다(따돌리다), 랑마랑(~하기는커녕), 막은창(막다른 골목), 모살(모래), 몰멩지다(숫기가 없다), 물보라(서귀포시 지역 지명), 물웨(물외), 버렝이(벌레)”와 같은 자연과 지명 이름 등을 소개한다. 제3부 ‘제주의 새들은 제주어로 울까’에서는 “베지근ㅎㆍ다(궁물이 맛있다), 보그락이(잘 부풀러 오름), 본치(상처가 낫은 흔적), 부에(화), 벤줄(벤귤), 생이(새), 솔라니(옥돔), 숙대낭(삼나무), 숨비소리(해녀들의 가쁘게 물속에서 쉬는 숨소리), 아ㄲㆍㅂ다(귀엽다), 아시아시날(그끄저께), 얼다(춥다), 엥그리다(낙서하다), 오몽ㅎㆍ다(열심히 몸을 움직이다), 오소록ㅎㆍ다(으슥하다)”와 같이 제주사람들의 심성과 마음의 울림이 담긴 제주어를 소개한다. 제4부 ‘오늘 밤에 나는 또 누군가의 꿈에 가서’에서는 “요자기(요전), 우치다(흐리고 비가 내리다), 웨삼춘(외삼촌), 이루후제(이후에), 조케(조카), 창도름(막창자), 출람생이(총랑거리는 이), 카다(붕이 붙어 타다), ㅋㆍ찡ㅎㆍ다(가지른히 고르다), 타글락타글락(터덜터덜), 퉤끼(토끼), 폭낭(팽나무), 할락산(한라산), 할망바당(수심이 얕은 바다), 허운데기(머리털), ㅎㆍ끌락(아주 작다)”과 같이 제주 토박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제주어를 소개한다. 이 책의 방언 자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물웨(물외), 퉤끼(토끼), 할락산(한라산)”과 같은 음운론적 변이형들은 제주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뜻의 짐작이 가능하다. 그래서 환산 이윤재 선생은 예측 가능한 음운론적 변이형인 전등어는 사전에 싣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그렇지만 “허운데기(머리털), ㅎㆍ끌락(아주 작다)”과 같이 표준어와 형태나 조어 자체가 다른 형태론적 병인형인 각립어는 가능한 한 큰사전에 실어 표준어를 풍성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비록 표준어가 아닌 방언이지만 지역의 정서나 삶의 체험과 경험의 무늬가 남아 있는 방언은 매우 중요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특히 AI 시대, 대형 클라우드 정보 저장과 처리가 가능한 시대인 지금이야말로 이처럼 소중한 문화유산을 일일이 조사하여 저장해 두어야 할 뿐만 아니라 유용하게 활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택훈의 제주 지명을 소재로 한 ‘솜반천길’이라는 시를 한편 보자.“물은 바다로 흘러가는데 길은 어디로 흘러갈까요 솜반천으로 가는 솜반천길 길도 물 따라 흘러 바다로 흘러가지요 아무리 힘들게 오르막길 오르더라도 결국엔 내리막길로 흘러가죠 솜반천길 걸으면 작은 교회 문 닫은 슈퍼 평수 넓지 않은 빌라 솜반천으로 흘러가네요 폐지 줍는 리어카 바퀴 옆모여드는 참새 몇 마리 송사리 같은 아이들 슬리퍼 신고 내달리다 한 짝이 벗겨져도 좋은 길 흘러가요 종남소, 고냉이소, 도고리소, 나꿈소, 괴야소, 막은소…. 이렇게 작은 물웅덩이에게 하나하나 이름 붙인 솜반천 마을 사람들 흘러가요” 제주도 내창(內川)은 대부분 건천인데 흘러가는 내가 아닌 중간 중간 물이 고인 소(沼)도 있다. 제주 특유의 자연환경에 이름 붙인 “종남소, 고냉이소, 도고리소, 나꿈소, 괴야소, 막은소”는 제주 자연이 남기고 제주 사람들이 명명한 제주어다. 제주사람들의 깊은 애정과 심성이 맑게 흐르는 물처럼 담겨 있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지역 방언은 독특한 지역의 지식정보와 사람들의 마음이 새겨진 디지털 정보뭉치이다.

2024-10-21

‘애비’ 말은 안 듣고, ‘내비’ 말만 듣는 시대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추석날 가족 나들이 나서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던진 말이다. 점심 무렵 “다양하고 맛있는 뷔페는, 아이리스 뷔페”에서 베란다 ‘섀시’가 ‘샷시’로 ‘바이닐봉투’가 ‘비닐봉투’로 ‘프로페인가스’가 ‘프로판가스’로 ‘뷰테인가스’가 ‘부탄가스’로 표기된다. 뭐가 맞는지 도무지 헷갈린다. 생활 속에 침범해 들어온 외국어들이 넘쳐난다. 외국어, 외래어의 남용, 신조어와 축약어의 범람, 두문자만 이어 쓰는 등 올바른 소통의 장애는 셀 수 없이 많다. 우리말이 있는데도 외국어음차표기나 외래어를 사용하는 분위기는 이미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파티, 톱, 라이프, 라인, 바캉스, 스팀, 레스토랑, 블라우스”는 일상화된 사례다. 우리말과 외국어음차표기가 마구 뒤섞인 “게임광, 깜짝쇼, 디지털화, 치킨집, 레게 음악, 휴대폰, 광케이블, 비피더스 유산균, 빵나라”도 있다. 외래어처럼 표기한 “예그리나, 타미나, 더존 전자 믹스, 조아 약국, 비치나, 유니나, 푸르미, 예스런, 맛나니, 새우깡, 조아라, 푸르지오” 등은 국적 불명의 언어로 변질된 예이다. 전문용어로 사용되는 경제, 패션, 컴퓨터, 공학, 과학 계열의 언어들은 일반 국민이 충분히 소통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한자어처럼 계급과 지식의 범주에 따른 언어 차등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필자가 방언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모국어의 조어능력을 확장시켜 새로운 문물을 우리말로 잘 다듬어내어 소통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방언들을 조금 더 미화시킨 문학용어로서 장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언어의 다양성을 위한 전략이었다. 나의 방언에 대한 인식은 방언을 단순히 표준어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방언과 표준어의 경계를 다소 느슨하게 하여 순수한 모국어의 운용의 폭을 넓혀줌으로서 고유어 조어능력을 키워내자는 의도이다. 표준어 한가지로만 소통하라면서 강제하던 국가어문정책이 쏟아져 나온 외국어, 외래어, 약어, 두문자 쓰기 등 공공언어의 소통 체계가 몰락하는 지경은 왜 방관하고 있는가? 경북 성주 출신의 고 문인수 시인의 “옛집은 사투리다”라는 시를 보자. “엉퍼드기 엉퍼드키 울어뿔고 싶다./웅굴을 뻐져나온 동캉맨치로 그래/아부지예, 어무이예, 부르미/배껕마당부터 우신에 모지리 적수고 싶다//우묵하이 짓은 풀대 풀 떼 새로 똥근 것들, 장꼬방이 비고/통시 여불데기 담우락엔 헌 수굼포 한 잘리 서 있다.//먼 산 산날망에 먹구름 걸려서/올라카나 말라카나 우쨀라카노 비,/매불대 씹은 매분 가심 묽쿠고 싶다.” 시인은 방언을 오래된 집, 곧 오래된 사유와 지식으로 지어진 집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비를 기다리는 농민의 심정으로 오래 묵은 방언으로 지은 한 채의 존재의 집이다. ‘엉퍼드기(웅덩이 물을 푸듯)’, ‘모지리(모조리)’, ‘수굼포(삽)’, ‘산날망(산꼭대기)’, ‘매불 때(여뀟대)’, ‘매분(매운)’ 등 경상도 방언을 하나하나 예술적 심성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러한 국어정책의 일환으로 국립국어원에서 한국시인협회에 지원하여 토박이말 시집 “니 언제 시건들래?”라는 시집이 만들어졌다. 이 시집에 실린 안동 출신 송종규 시인의 ‘고등어’라는 작품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방언들을 살펴보자. “다무 한 번의 태무심에 허를 찔렸니더 다무 한 번의 신뢰가 결국 지 모가지 줄을 잡아 땡겼니더 뭐 별꺼 있니껴? 이녁의 손가락 끄티에서 맛있는 밥풀떼기와 향기로운 불빛이 번들거리던 그맘때, 하마 게임은 끝났니더, 지는 젔니데이,//오늘 내 삶의 소용돌이와 먼 길의 고저장단 전부를/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솟구치는,/흰 글씨들/어디론가 나도 솟구쳤다//내가 나를 기록할 수 없는 순간이 첫눈처럼, 닥쳐왔다/저녁의 불빛이 등을 구불이고 태연하게/입을 닦는다”. 그냥 슬쩍 읽고 넘어갈 작품이 아니다. 시골 안동 가람의 진한 말투는 깊은 심해에 유유히 헤엄치는 싱싱한 한 마리의 고등어, 그 고등어는 과거 안동의 처녀 송종규였다. 이녁(당신, 안동방언에서 2인칭 대명사)이 놓은 불빛 낚시에 코가 매였을 때 이미 잔치는 끝이 났다. 게임은 끝난 것이다. 현실의 밥상을 차리고 그 차린 밥상은 내 삶의 소용돌이와 고저장단으로 차린 흰 글씨들 고등어가 낚시에 낚여 올라갔듯이 “어디론가 나도 솟구쳤다”. 이 무렵 시인 송종규의 삶은 내가 나를 기록할 수 없는 순간의 첫눈처럼 은빛 반짝이는 생선 고등어였을 뿐이다. 고등어를 소재로 열여덟 살 안동 소녀의 꿈과 무너진 스토리는 문인수 시인의 “옛집은 사투리다”와 다를 바 없는 오래된 추억을 자아올리고 있다. 방언은 변두리의 무력한 언어가 아니라 이토록 가열찬 언어의 찬가이다.

2024-10-14

김종필 시인의 ‘뭉티기’에 차린 토박이 음식상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요사이 배추 값이 금값이다. 배추로 만든 음식 가운데 김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애호하는 토속음식이다. 그러나 이제 김치는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 웰빙음식이 되었다. 남부 방언에서는 김치를 ‘짠지’ 또는 ‘짐치’, 또 ‘지’라고도 한다. ‘짐치’는 한자어 ‘침채(沈菜)’에서 온 말이고, ‘지’는 고유어 ‘디히’에서 온 고어이다. ‘지’의 종류로는 ‘짠지’, ‘오이지’, ‘무시지’, ‘고들빼기지’ 등 다양하다. ‘배추’나 ‘열무’로 김치를 처음 담글 때, 금방 담근 김치를 경상도에서는 ‘생지래기’, ‘생재래기’라고 하고 전라도에서는 ‘쌩지’라고 말한다. 아마 임시로 먹기 위해 배추를 양념에 무친 것, 곧 날로 절인 김치라는 의미다. 호남 지역에서는 ‘짓국’이라는 반찬이 있다. 이 말은 이 지방에서는 ‘김치의 국물’이라는 뜻도 있고, ‘열무에다가 물을 많이 넣어 삼삼하게 담근 김치’를 말하기도 한다. 후자를 이 지방에서는 ‘싱건지’라고 한다. ‘싱건지’의 ‘싱건’은 ‘싱겁다’의 관형사형이다. ‘짓국’ 또는 ‘싱건지’를 ‘물김치’라고도 말하는데, 이 ‘물김치’라는 말은 서울말에는 없었고 요즘 새로 생긴 말이다. 호남 지역에서는 김치를 담는 배추와 무를 통틀어 ‘짓거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특히 전북 지역에 가면 음식에 곁들여 주는 ‘멀국’을 표준어 사정 원칙 제4절에서는 ‘국물’의 방언형으로 즉 ‘멀국’을 ‘국물’과 의미가 동일한 것으로 처리하여 ‘국물’을 표준어로 채택하고 ‘멀국’을 버릴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토속음식을 소재로 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시인은 백석이다. 함경도 토속적인 음식의 맛깔, 빛깔, 냄새, 씹는 소리와 식감을 버물어 내는 시는 향토적 맛의 향연이며 오랜 전통의 기억과 추억을 회생시켜낸다. 대구경북에서 김종필 시인이 시집 ‘뭉티기’에서 이 지역의 음식 72편을 소재로 하여 언어로 차린 엄청난 음식상을 우리들에서 선사하였다. ‘따로국밥’, ‘갱시기’, ‘뭉티기’, ‘양푼이찜갈비’, ‘과메기’ 등 대구경북의 토속음식 이름을 가져와 시로 버물어내었다. “소 엉덩이 뭉텅뭉텅 막 썬 뭉티기/구이 수육보다 먹기 거북스럽지만/다진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 양념장에 찍어/눈 찔끈 감고 먹으면 인절미 맛….” 김종필 시인은 ‘뭉티기’라는 시에서 뭉티기 고기의 맛이 입속에서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까지 그려내고 있다. 뭉티기는 대구경북에만 있는 특유의 소고기 생고기 음식으로 생고기를 잘게 썰어 양념을 한 육회와 달리 생고기를 토막토막 썰거나 뭉텅뭉텅 썬 음식이다. 포항 특유의 향토음식인 ‘과메기’는 서울 도성 사람들이 모르는 지방 음식이라고 하여 표준어에 올라가지도 못했지만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최근 일본 사람 입맛에도 맞는지 수출까지 했다고 한다. “얼었다 녹았다//고소함 흘러내리는 꽁치과메기/첫눈 내려야 맛있다는데//저녁와도/아침 와도// 얼었다 녹았다//기다림에 애타는 마음 비릿하네/첫눈 내려야 맛있다는데” 과메기를 만드는 과정을 시로 쓰면서 기다림의 미학과 연결시키고 있다. 표준어에 없는 ‘과메기’, ‘아구찜’, ‘홍탁’과 같은 지방의 음식은 전국으로 확산되었어도 아직 그 이름은 방언의 신세를 못 면하고 있다. ‘과메기’, ‘과미기’라는 말은 한자어 ‘관목(貫目)청어’를 줄여서 ‘관목이’라 부르다가 변화된 말이다. 과메기는 원래 청어(방언형:등어, 비웃, 구구대, 고섭, 푸주치, 눈검쟁이, 갈청어, 울산치, 과목숙구기)를 얼리면서 말린 것이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 선생이 포항 장기읍성 아래에 유배 와 있을 때 이웃 주민들이 탱자나무 가시 사이로 넣어준 과메기를 먹고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한다. 그 덕에 가난한 선비를 살찌게 해 준다는 말린 청어는 ‘비유어(肥儒魚)’라는 고상한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이 청어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거의 잡히지 않게 되자 청어 대신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자 전국적인 상품으로 발전되었다. 과메기는 추운 날씨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내장의 즙이 고기 살에 고루 스며들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이처럼 대상물이 서울에는 없고 지역에만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낱말을 방언으로 처리하여 표준어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허다하니 안타깝다. 어쩌면 방언인데도 표준어로 채택된 영광을 지닌 낱말이 있는가 하면 당연하게 표준어로 채택되어야 할 역사적 정당성이나 합리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는 이유로 표준어에서 밀려나는 불행을 겪어야 하는 낱말도 있으니, 이 또한 인생살이의 모습과도 가히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2024-10-07

표준어 사이의 이정표, 충북 방언시

충청 방언은 흔히 양반 말이라고도 한다. 호서 방언 혹은 서남방언이라고도 하는데 충북과 충남 방언은 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충청 방언은 경기 방언과 억양, 음운, 문법 면에서 이질적인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따로 구분하여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충북 방언은 경기 방언과 호남 방언의 중간점에 위치하여 둘 사이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해유’와 같이 말끝이 길게 늘어지고 말의 흐름 또한 느리고 온화하며, 억양이 차분한 것이 특징이다. 충북 방언은 단양, 제원군, 중원군, 괴산군의 연풍과 장연 지역의 동부 방언권과 중원군, 음성군, 진천군, 괴산군, 보은군 등지의 중부 방언권, 옥천군, 보은군, 영동군의 동부 지역 등 남부 방언권으로 나뉜다. 충청북도는 박완호, 서경은, 오탁번, 윤관영 등 이름난 시인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진천 출신의 박완호 시인은 ‘씨부럴’이라는 시에서 충청도 방언의 특유한 말투인 ‘~유’를 적절하게 섞어 충북 방언의 말맛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시팔이라구 쓰구는, 씨부럴이라구 했시유,/가 봐야 인자는 모냥새도 안 남은/구봉리 고향집, 푹석 자빠져부린/기둥이랑 들보 쓱어가는 새/여그저그 속 모르구 고개 쑥쑥 내민/풀잎사구 흔드는 바람만/괴사리손 빠져나가는 미꾸리들뫼양/눈그물 밖으로 내삐는디” 오랜만에 찾은 구봉리 고향집의 전경을 고향의 어법으로 구사한다. 충청도 방언에서 ‘ㅓ:’는 ‘ㅡ:’로 실현되며 말투 역시 느릿하게 ‘~유’라며 말꼬리가 축 드리워진다. 시의 말미에 “낫살에 안 맞게/엉엉 울어버리구 말았시유”라며 구봉리 고향을 나이들어 뒤늦게야 찾은 시인은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알싸한 고향의 그리움은 고향의 말씨와 뒤섞여 제 맛깔과 빛깔을 찾게 된다. 제천 출신 서경은 시인은 충청도의 낱말 가운데 ‘올뱅이(다슬기)’, ‘새뱅이(새우)’라는 단어로 한 편의 시를 지었다. 제천과 인접한 경북 영주지역에서도 ‘올뱅이’, ‘올갱이’라는 방언이 나타난다. 옹솥에 펄펄 끓인 새뱅이국과 올뱅이국을 끓여 먹으며 강에서 물놀이하던 추억을 한편의 그림처럼 그리고 있다. 우리말에서 ‘ㅂ’과 ‘ㄱ’은 쉽게 교체된다. 소위 음운교체라고 한다. ‘올뱅이’와 ‘올갱이’는 ㅂ과 ㄱ의 교체형으로 ‘붚(붑)북(鼓)’의 변천과 같은 예이다. “물놀이에 함께 가지 못하고/혼자 집을 보고 있노라니/부아가 치밀었던가/옹솥 안에서 ‘새뱅이’들이/또 한 번 끓어오르며 왁자지끌하였으나/늦은 저녁으로 먹은 ‘새뱅이’국맛은/여전히 달랐다.”라며 충청도 제천의 대표적인 방언 어휘인 ‘올뱅이’와 ‘새뱅이’로 맛있는 한 상의 저녁상을 차려낸다. 오탁번의 산문집 ‘두루마리’(태학사, 2020)를 보면 그가 충북 제천 방언을 얼마나 아끼며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스스로를 ‘별별 오두방정을 떠는 철부지 시인’이라고 ‘자뻑’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방언으로 언어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그는 참 아름다운 시인이다. 그의 시 ‘잘코사니’에 나오는 ‘잘코사니’는 얄미운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하거나 봉변당하는 것을 고소하게 여길 때 내뱉는 제천 방언이다. 경상도 방언으로는 ‘아방신이다’, 서울방언으로는 ‘고소하다’정도의 말맛을 가진 단어다. 탁월한 방언 시인이기도 했던 오탁번은 “쥐코밥상 앞에서/아점 몇 술 뜨다가 만다/저녁은 제대로 먹으려고/밥집 찾아 들랑날랑하지만/늙정이 입맛에 영 아니다/다 버리고 고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을 찾아왔는데/입은 서울을 못 잊었나 보다/야젓하게 살고 싶지만/뭘 먹어야 살든 말든 하지!”에서 ‘쥐코밥상’, ‘늙정이’, ‘야젓하게’와 같은 제천 입말을 고급진 표준어 사이에 이정표처럼 끼워넣어 고향으로 간다. 오탁번 시인은 과연 “남몰래 슬프고 황홀했던” 삶을 살았던 것일까. 마치 자신의 모어, 살가운 사투리에 살짝 갸울은 시인이었다. ‘눈부처’의 “이승 저승이/입술에 닿는 술잔만큼/너무 가까워/동네사람들은 함빡취했다/-잔 안 비우고 뭐해유?/한 씨에게 자꾸만 술을 권했다”에서처럼 쉬 이승을 떠난 고향사람들을 회상하듯 자신도 입술에 닿는 술잔만큼 가까운 저승으로 떠났다. 노루잠에 개꿈을 꾸듯 살았던 이승의 그리움을 뒤로 밀어두고. 필자는 오탁번 시인이 남긴 방언시를 매우 아끼고 사랑한다. 시어로 방언을 마구잡이로 노출시켜 시적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시들은 오히려 방언을 오염되고 누추한 변종으로 추락시킨다. 이에 반해 오탁번은 방언 시어를 적절히 끼워넣어 시적 미의식을 감쇄시키지 않는 절대 균형을 이룬다. 섬세한 절제의 언어 수단으로만 방언을 시어에 사용했다. 방언시어로 언어의 원형을 복원하고 또 그 원형의 상징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표준어가 고급진 언어라면 방언은 그 고급진 언어로 향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4-09-23

이용악의 함경도 방언 시의 애환과 슬픔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용악은 함경북도 경성 출생이다. 국경을 넘나들며 소금장수를 하던 아버지를 연상하며 눈이 내린 날 쓴 ‘국경’이라는 작품은 이 민족의 슬픔과 애환을 노래한 뛰어난 시였다. 1937년 첫 시집 ‘분수령’을 내고, 이어 그 이듬해 두 번째 시집 ‘낡은 집’을 도쿄에서 간행했다. 이 두 시집에서는 나라를 잃어버린 예민한 한 지식인이자 시인의 감수성이 고도의 긴장으로 활과 리라의 활처럼 팽팽한 언어로 꾸며져 있다. 광복 후 조선문학가동맹의 시분과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간행한 ‘오랑캐꽃’에서도 그의 시작은 꽃을 피웠다. 그러나 북쪽 공산 치하에서 1956년 11월부터 조선작가동맹출판사 단행본 편집부 부주필로 일하면서 김일성을 찬양하는 등 해방전쟁의 투사로 전환한다. ‘원쑤의 가슴팍에 땅크를 굴리자’는 어마무시한 시어를 구사하는 혁명 투사가 되었다. 노동전투와 대남 혁명을 선동하는 언사로 아름다운 시인의 길을 접어버린 아까운 시인 가운데 한 분이다. 이용악의 고향 경성은 두만강을 경계로 육진이 설치되었던 여진과도 맞닿아있으면서 연해주로 이어지는 극동지역 이주민들의 통로였다. 조선조 말까지 결혼을 하고 머리를 기른 재가승이 있었으며 한화한 여진계의 사람들이 뒤섞여 살았던 곳이다. 이 지역은 변화의 물결이 두루 미치지 못하여 음운이나 어휘 면에서는 옛말을 많이 지니고 있다. 독특한 방언이 많이 남아 있는 이 지역을 방언학계에서는 ‘방언섬’이라 이르기도 한다. 특히 소리의 높낮이가 단어의 뜻을 구별해 주는 성조방언의 모습을 보여주는 면에서는 경상도 방언과 상당히 닮아있다. 모음은 ‘ㅣ, ㅔ, ㅐ, ㅡ, ㅓ, ㅏ, ㅜ, ㅗ’의 여덟이다.‘외’는 대체로 ‘ㅙ’, ‘위’는 [wi], ‘의’는 ‘ㅣ’로 발음된다. 회령, 종성 등지에서는 반모음 ‘ㅣ’[y]가 탈락한 ‘돟다, 덕다, 탁실하다’와 같은 방언이 쓰인다. 북부의 회령, 종성, 온성 등지에서는 순자음 아래의 ‘ㆍㅗ’ 변화가 현저하다. ‘모디(마디), 몯아바니(큰아버지), 볿다(밟다), 볼써(발써), 뽈다(빨다)’ 등의 예들이 보인다. 함경도 방언은 중세국어의 ‘ㅸ’‘ㅿ’‘ㅇ’은 대부분 ‘ㄱ’ ‘ㅂ’‘ㅅ’으로 나타나 경상도 방언과 매우 흡사한 모습이다.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갔단다/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구름이 모여 골짝골짝을 구름이 홀로//백 년이 몇 백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오랑캐꽃/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게/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이용악의 ‘오랑캐꽃’을 읽으면 육진 지역에 혼거하는 여진족을 떠올리며 애상에 잠긴다. 빙 돌아서 흐르는 샘물인 ‘도래샘’, 벼처럼 생긴 띠로 엮은 지붕의 ‘띳집’, 돌 몇 개를 고아놓은 가마솥인 ‘돌가마’, 털로 된 신발인 ‘털메투리’. 이 모든 풍경과 물상은 여진족의 일상의 모습이다. 경성은 두만강을 건너면 ‘우라지오 바다’에 면하고 ‘아라사 벌판’으로 그리고 간도로 진출하는 관문인 국경 마을이다. 이용악의 시는 이별로 분열되는 변방에서 이향과 귀향의 악순환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어둠과 고통을 몸으로 체험한 기록이다. “땀내 나는/고달픈 사색 그 복판에/소낙비 맞은 허수애비가 그리어졌다/모초리 수염을 꺼리는 허수애비여/주잖은 너의 귀에/풀피리 소리마저 멀어졌나봐” 이용악의 ‘소낙비 맞은 허수애비’에서 ‘허수애비’, ‘모초리’, ‘주잖은’과 같이 간간히 섞여있는 함경도 방언은 떠나온 고향이 못내 그리운 실향민의 슬픈 모습이 보인다. 그의 시집 ‘분수령’의 ‘만추(晩秋)’에서는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선 유민들의 암담한 비애와 고통의 심도를 전해준다. 그의 ‘두메산골 1’은 함경북도의 전통적인 풍물과 향토색 짙은 두메산골의 냄새에 물씬 젖어들게 한다.‘물구지떡 내음새’라든가‘썩달나무 썩는 냄새 유달리 향그러웠다’라는 향토의 방언으로 “주인장은 매사냥을 다니다가/바위틈에서 죽었다는 주막집에서/오래오래 옛말처럼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용악의 또 다른 절창인 ‘전라도 가시내’라는 시에서는 이향에서 만난 전라도 가시내에 대한 애틋한 동족의 의식, 식민과 함께 밀려든 역사의 무상함, 반전된 역사적 현실 앞에 좌절된 연민의 정을 각기 다른 방언으로 토로하고 있다. 아름다운 시인이 이념의 권좌 앞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친일과 김일성 혁명의 붉은 깃발의 프로파간다로 무너져 버린 이용악은 애달픈 시인이다.

2024-09-09

권역별 차이가 뚜렷한 강원도 방언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강원도는 동해 바다에 면하여 한반도의 허리인 태백산맥이 지나가는 산간지역이다. 북으로는 함경도, 남으로는 경상도, 서쪽으로는 경기도와 만난다. 강원도의 휴전선 이북 지역(이천·평강·김화·회양·통천)은 함경도에 이어져 있다. 강원도 방언은 태백산맥이라는 지리적인 특성에 의하여 구획된다. 강원도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춘천·홍천·양양·횡성·평창·강릉·원주·영월·정선·삼척 중 태백산맥 내부와 그 동쪽에 위치한 영동 방언권(영월·정선·평창·삼척·강릉·양양·고성)이고, 태백산맥 서쪽은 영서 방언권(철원·화천·양구·인제·춘천·홍천·횡성·원주)으로 나누어진다. 영서지역어는 경기도 중부방언과 매우 흡사하고 영동방언은 고대 예맥의 역사적 물줄기를 이어오면서 위로는 함경방언, 아래로는 경상방언과 묘하게 얽혀 있다. 강원 방언은 중부방언과 매우 비슷하지만 성조와 음장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특히 영동지역의 강릉·삼척·영월 지역과 옛 강원도였던 경북 울진지역은 음장이 순수하게 변별적 기능을 하지만 정선·평창·양양·고성은 성조와 음장이 전이지대적 성격을 띤 준성조 지역이다. 동해안을 따라 내려오면서 포항·경주지역까지 부사형이나 명령형 어미가 모음조화와 관계없이 ‘-어/아’가 ‘-아’를 취하여 ‘먹어’나 ‘먹었어’가 ‘먹아’, ‘먹었아’와 같이 발화된다. 동해안 영동지역 방언에서는 주격 조사로 ‘-이/가’가 널리 쓰인다. 그런데 강릉·삼척·인제·정선·영월 지역에서는 모음으로 끝나는 명사에 주격 조사 ‘-이’가 수의적으로 결합하여 ‘코이(코-가, 鼻), 모이(모-가, 角), 오후이(오후-가)’ 등으로 나타는데, 경북 울진지역까지 이어진다. 삼척·울진 지역에서는 주격 조사가 중복된 ‘-이가’로 나타나서 ‘사램이가(사람-이), 장이가(장-이, 場)’의 형태를 보이기도 하고 영동 남부 지역에서는 ‘밥으(밥-을), 감재르(감자-를)’처럼 ‘-으/르’가 쓰이기도 한다. 어휘의 경우, 강원도 방언은 3개 권역으로 나뉜다. ‘잠자리, 오줌싸개’를 영서 지역에서는 각각 ‘짬자리, 오줌찍개’라고 한다. 강릉의 농촌에서는 ‘지렁(간장), 주벅(주걱), 따드밋돌(다듬잇돌), 부절까락(부젓가락), 굴뚝’이라고 하지만 어촌에서는 각각 ‘장물(간장), 박쭉(주걱), 빨랫돌, 불꼬지(부젓가락), 굴떡(굴뚝)’이라고 한다. 김성수 시인은 ‘울 할머어이의 추억’에서 “내가 자란 횡성은 서울과 가까워/유별난 방언은 없지만/평창 두메산골에서 자란 울 할머이는/사투리가 기가 막히게 재미있었다.”면서 ‘정지(부엌), 흘러깽이(홍두께), 펀뎅이(안반), 진죠지(국수), 다황(성냥) 재피질(불장난)’과 같은 할머니의 사투리를 기억하면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단다. 강릉 출신 박명자 시인은 ‘눈 오는 마실’에서 ‘무꾸밭(무우밭), 던데기(언덕), 굿뎅이(굿쟁이), 지둥(기둥), 고냉이(고양이), 네베시(너붓이), 장베기(머리 위), 살구낭구(살구나무), 잼긴(잠긴)’과 같은 강원 방언을 호명하여 검고 아득한 침묵의 소리, 침묵의 빛깔 속에 온통 추억 어린 동네가 폭삭 가라앉는다고 노래하고 있다. 영동방언과 영서방언이 뚜렷이 구별되는 어휘 변이형은 참으로 많다. 영동방언 가운데 삼척지역은 ‘개꽃(철쭉), 바뗑이(대님), 윤두(인두), 호박(확), 자부름(졸음)’처럼 경상도 방언의 요소가 강원도 다른 지역 방언보다 많으나 ‘대끼지(수수), 아벵이째(모조리)’라는 특이한 어휘도 존재한다. ‘가데기(극젱이), 퉁갈나무(청미래덩굴)’는 고성·양양에서 발견되는 생소한 어휘고 ‘동고리, 느르배기, 목말, 송구송구’는 강릉지역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어휘다. ‘아저씨’의 낮춤말로, 흔히 미혼 삼촌을 가리키는 단어인 ‘아재’가 강릉·삼척에서는 고모나 이모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강릉 출신 박용하 시인은 ‘살구’라는 자신의 시에 강릉방언을 쏟아 부었다. ‘예식아(계집아이), 데우(매우), 물게져 앉는다(울러앉는다), 지즈바아(계집아이), 밉괄시릅지(밉살스럽지), 갠부러(일부러), 달부어여웠다(엄청났다)’ 어느 하나 아깝지 않는 단어가 어디에 있는가? 정선 출신의 전윤호 시인은 “머이 우태 내게 사랑이란 건/ 마카 뺑때에 걸린 솔낭구처럼/춥고 적적해서/당최 가까이하기 어렵드라/(중략)/맴 저리면 술 한 잔 하고/가만 두는 게 젤 났지/허니 얼렁 가라 이 여수야/여태 싹수 노란 내 청춘아”(마바리)에서처럼 강원도 산골에 멍청하게 살아온 자신을 타박하기 싫다며 마음 저리면 술이나 한 잔 하고 사랑하던 여인도 아리랑처럼 그냥 떠나라고 내버려두는 무골의 순수한 시인의 마음을 정선 방언으로 노래하고 있다. 방언은 끝없는 그리움의 부호이자 율동과 흥이 곁들인 소리의 축제 마당이다.

2024-09-02

김동원 시인의 영덕 방언으로 바라본 바다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바다는 제 몸 위에 어떤 입체물이 얹히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제 몸 하나로 일어섰다가 주저앉으며 하나로 모일 뿐이다. 바다의 소리가 있는가? 바다는 원래 언어를 잉태한 적이 없다. 바다는 원래 언어를 갖지 않았지만 바다의 언어를 시로 쏟아낸 작품은 적지 않다. 바다, 존재로서 인간의 인식 대상으로서의 그 이전의 바다의 시니피에는 충돌이며 시니피앙은 하나의 몸일 뿐이다. 허만하 시인은 바다가 끊임없이 일어서려고 해도 본질적으로로 설 수 없는 존재의 한계를 노래했다. 선다는 것은 욕망이다. 바다는 제 몸 위에 어떤 것도 얹히는 것을 부정하듯 인간의 욕망을 수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김동원(‘관해(觀海)’)은 ‘수평의 시’로서 바다를 관조한 철학적 함의를 품은 고급 시편을 발표하였다. 시인 김동원은 바다가 거부하는 사물을 바다의 몸 속에 투사시키는 고급의 시적 작위를 성공시킨 것이다. 경계와 이음, 주술과 접신을 배타적인 바다의 속성 안에 일즉다의 방식으로 내장시켰다. 일찍 바다에 침몰한 어부 아버지의 그리움을 일몰의 시간 황금빛으로 이글거리는 저녁노을로 회생시켜내면서 고뇌와 아픔을 소멸로 녹여낸 멋진 시작으로 이어냈다.“아이고, 자가 누고! 복순 아버지, 순돌이네 큰애, 뒷집 허삽이 아재 아이가. 신묘년 오징어잡이 한배 닸다가 몽땅 수장(水葬)된, 가엾은 엾은 목숨들. 흐렁흐렁 흐렁 물 밟고 서성이네. 그래 그래…. 물은 무탈하니 훨훨 다 벗고 올라가거래이, 돌아볼 것 없다 카이! 아이고, 이 새벽 뭐 할라꼬 또 흰 수의(壽衣) 입고 저리들 몰려오노!” -김동원의 ‘흐렁 흐렁, 흐렁’중김동원 시인의 내면에는 일찍 오징어배 침몰로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이웃 사람들의 죽음과 그토록 아름다운 바다와 상충되는 심층에 수장된 죽음을 그리고 그 물귀신들의 원혼들을 물려내치는 무술적인 기운이 서려 있다. “신묘년 오징어잡이 한배 닸다가 몽땅 수장(水葬)된, 가엾은 엾은 목숨들. 흐렁흐렁 흐렁 물 밟고 서성이네.” 환영이 아니라 바다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외적인 이물인 수장된 사람들의 이물과 그 영혼들을 바다 밖으로 불러내는 신굿을 하던 기억들과 만난다. 그 안스러운 물귀신들이 가 제 자식처럼 보였는지 ‘흐렁, 흐렁, 흐렁’이라는 시어는 물귀신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신호이자 염원이다. “그래 그래 그래…. 물은 다 무탈하니” 동해에 빠져 죽은 모든 물귀신들아! “훨훨 다 벗고 올라가거래이, 돌아볼 것 없다 카이!”라는 강한 경상도 영덕 강구의 말씨로 염원을 빌고 있다.김 시인의 화법으로 “시는 풍경이다.” 그러니까 시는 바다 안에도 있고 바다 밖에도 있다. 그런데 정작 바다는 바다 이외에 어떤 것을 바다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니까 거센 파도를 세찬 풍파를 일으키며 살아 있음을 포효하고 있다. 그 바다를 관조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눈에는 바다가 때로는 새로로 일어서려다가 때로는 가로로 끝없이 퍼져나가는 인력의 힘을 잠시도 쉬지 않고 위세처럼 펼치고 있다. 이 바다의 힘을 바다의 목소리로 전달할 때 제 맛이 살아난다. 김동원 시인이 바다를 관조하고 쓴 시들에 바다 소금바람에 쩐 강구 사투리로 시를 쓴 이유가 시적 현실감을 더 고조시키기 위한 중요한 장치이자 도구일 것이리라.“내가 바다를 바라본 까닭은, 밀물 속 흐릿하게 밀려오는 마흔에 가신 아버지가 출렁거리기 때문이다. 네 살 난 아들을 두고 가신, 그 흉중의 물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아침 해만 보면 청상의 어머니는 ‘아이쿠, 느그 아부지 바닷속에 장작불 때는 것을 좀 보래이’그러셨다. 동해를 숫제 우리집의 가마솥으로, 붉은 해를 아궁이의 장작불로, 방언나 고등어를 무슨 고봉밥처럼 귀히 여겨셨다. 나만 보면 까까머리 쓰다듬으며, ‘우예, 이리 제 아비를 닮았을꼬?’ 신기해 하셨다. 언재나 엇비슥 웃는 그 서른의 어머니는 봄날 수평선 위에 모란꽃처럼 환하셨다.”(김동원의 ‘흉중 1,’) 끊임없이 출렁이는 저 바다는 밀물과 썰물이라는 율동을 그리고 선율과 아침과 저녁이면 붉게 타오르는 태양의 찬란한 빛의 축제를 바닷속 깊은 가슴에서 끓어 올렸다. 시인의 어머니는 마당에 있는 솥아궁이에 타오르는 장작불이 저 동해바다의 흉중에서 쏫아오르는 것을 아셨다. 그것도 자신의 남편을 집어삼킨 거대한 바다에서. 그 아침 핏빛 바다 물속 잠기여 꿈틀거리던 붉은 햇덩이는, 사무친 아비의 글썽이는형상이며 그것을 지켜본 어머니는 봄날 수평선 위에 핀 모란꽃이었음을 방언시로 노래하고 있다. 참 오랜만에 신선한 바다의 시와 자작 해설의 빼어난 글을 읽으니 무더위조차 저 멀리 달아난다.

2024-08-26

육근상 시인 ‘동백’ 의 충청 방언 맛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평론가 임우기는 그의 비평문집인 ‘문학과 예술의 다시 개벽’(솔, 2024)에서 “방언은 삶의 살아있는 현장의 목소시를 직접 가져오는 것일 테니까 그야말로 삶의 내부에서 우러나온 자재 연원의 언어이고, 그것이 여러 현장의 구체성을 확보할 테니까 인위적 공교함을 앞서는 언어”라며 방언문학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소외된 삶을 사는 자들의 방언 복권으로 아버지의 삶의 승리로 이끌어 주기 때문에 문학적 승리라는 해독은 매우 난해하다. 시인의 눈에 비친 여항의 사람들의 삶을 방언으로 그려내면서 여항인들이 과연 무슨 변화가 있을까? 햇볕이 자주 다가서지 못하는 세계의 모든 소리들 그 가운데 기거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태양의 밝은 햇살에 조명된 표준어로 쓴 시에 가까이 다가서게 해준다는 자율적 시론을 확대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게 문학방언이 놓여야 할 자리”라고 방언문학론을 펼쳤다. 그가 대표적 방언 시인으로 꼽은 시인 육근상은 충청 방언으로 온전한 시를 창작한 많지 않은 시인 중의 한 분이다.육근상의 시집 ‘동백’(솔, 2024)에 실린 ‘해나무팅이’라는 작품을 보자. “해나무팅이라는 곳은/다 헐 수 웂는 말 빈 마당 휘돌먼/천장 내려온 먹구렝이 문지방 넘어 대숲 아래 똬리 틀고 있다는거다//새벽밥 준비허던 엄니/투거리 들고 장 뜨러 나왔다/아달아 오짠일여 언능 들어가자/아니다아니다 정짓간 들어가/주먹밥 쥐여주며 잽히먼 안 된다/엄니는 암시랑토 않응게 호따고니 넘어가그라/지푸재 새앙바위 뜬 그믐달인 거다/뒤안길 달음박질치다 넘어져/손톱 빠지고 이마빡 깨고/옆구리 터져 돌아와 보니/뚜껑이 개터래기 땅개 모르는 척이다/아무 말 허지 않는다/그슨새 지나간 자리 않고서야/숨죽이고 핀 꽃들 펀던 달려나갔겠는가/돌아보도 않고 피반령 넘어 갔겠는가“그는 왜 이 시를 방언으로 썼을까? 햇살이 내리는 마을의 한 모퉁이 자리인 ‘해나무팅이’는 시인의 고향집이다. 운동권 수배자 신분의 시적 화자가 꼭 시인과 일치하는가의 문제는 중요치 않다. 수배자 신분으로 숨어든 고향집 ‘엄니’와 동네 친구들과 문 앞에 매인 개도 이 시의 서사의 핵심이다. 이 시의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부 토박이의 말로 표현함으로써 현장감과 서사를 더 견고하게 다져 준다. ‘암시랑토 않응기 호따고니 넘어가그라’가 이 시의 핵심행이다.‘나는 아무렇지 않으니까 경찰에 잡히지 말고 빨리 산을 넘어가 피신하라’는 ‘엄니’의 말은 캄캄한 밤하늘에 뿌린 핏빛별이 된다.반정부 시국 사건에 연루된 자의 실화사건이 문학장치에 올려져 엄청난 확대 재생산의 과정을 거치면서 독재의 강압조치가 부풀어오른다. 문제는 이런 민중성을 이용한 작품의 상투성의 문제나 허구성의 한계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거칠 사이가 없었다.부들부들 먹기좋게 잘 부풀어 오른 빵에 요기조기 보기 좋고 맛있게도 박혀있는 콩과 같이 친근한 방언 ‘그슨새’ ‘호따고나’, ‘펀들’은 독자들의 식감을 한층 더 높여 준다. 육근상 시인의 ‘화엄장작’, ‘꿀벌’, ‘가을’과 같은 뛰어난 시에 펼쳐진 시의 말씨를 보면 그는 고향지명과 토박인 말씨의 청각적 인상을 매우 중시하며, 문학방언으로 진지하게 시작하는 시인임을 알 수 있다.‘꿀벌’이라는 시에서 “엄니가 생을 하다여/사경을 헤매고 있던 날/마당 가득하게 작약은 피어있었네/뜰팡에 벌통 몇 개 놓고/꿀 따곤 하셨는데/겨울날이면/늬덜두 목숨인디 먹구살으야지/아나 아나/벌통에 설탕물 부어주곤 하셨네(중략)/허리에 상복 무늬 하고/끝없이 걸어나오던 꿀벌들/밀랍을 먹감나무 가지에 발라놓아도/영영 돌아오지 않았네.”‘꿀벌’의 묘사를 엄니 장례에 면한 상복으로 처리한 점도 대단하지만 그 이전 수배자 신분으로 엄니 곁을 지키지 못한 시적 화자를 대신한다는 상상력도 뛰어나다. 엄니는 아들 대신 벌들을 자정으로 키웠고, 벌은 아들 대신한 상주 역할로 보답하는 것이다. 육 시인과 같은 민주운동의 세력을 배출한 것은 세상일과 아무 관계없는 듯한 무지랭이 농사꾼의 아내요 육시인과 같은 아들을 키운 ‘엄니’들이다. 민주화의 주류 레짐의 밑에는 한국의 어머니가 ‘지령의 기화’(임우기, 329)임에 틀림이 없다.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노동에 시달린 못난 대한민국의 어머니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류를 키워내었기에 그들의 시골 방언은 그들의 심회를 그대로 전달하는 강력한 힘의 언어인 것이다.

2024-08-19

김순일 ‘스산 사투리4’를 AI가 읽으면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얼마 전 경북매일 구독자로부터 왜 표준어가 아닌 방언으로 쓴 시에 대한 칼럼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미 누누이 언급했듯이 문학에서의 토착적 정서와 변두리 사람들의 심상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언은 표준어에 버금갈 만큼 중요한 무형문화유산이라는 대답을 했다. 또한 방언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도달하기 힘든 지식정보 관리를 빠른 시간 내에 처리해낼 수 있는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표준어 이상으로 쓸모 있는 정보 데이터이기도 하다는 답도 곁들였다.영국은 산업혁명을, 프랑스는 정치혁명을, 독일은 정신혁명을, 미국은 청교도 정신을 기반으로 한 지식정보화 혁명을 이루면서 세계사를 한 단계씩 끌어올렸다. 한국은 20세기 이후 전 세계가 깜짝 놀랄 만큼 단 기간에 서구가 수 세기에 걸쳐 이룩해온 제도적 민주화와 경제적 발전과 기술적 성취라는 기적을 이뤘다. 현재 21세기 한국의 놀라운 지식정보화 기술력과 디지털 생산력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세계를 선도한다. 지금은 음성, 문자, 이미지를 벡터(0.1)로 전환하여 호환할 수 있는 AI기술시대이자, 기계가 사물을 인식하고 감성까지 그대로 베낄 수 있는 GPT-4(Generative Pre-Training4)의 시대이다. 문제는 사람의 말소리는 순간순간 달라진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계층에 따라 분화되며 언어권에 따라 또 광범위하게 변이된다. ‘아버지’라고 말한 음성 파형은 말소리로 발화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지만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는 변별적 범주가 있다. 이것을 음운이라고 규정한다. 표준어 ‘잠자리’는 지역에 따라 ‘잔자리’, ‘잠바리’, ‘철갱이’, ‘철기’와 같이 매우 복잡한 방언 분화형을 생산한다. AI나 GPT-4와 같은 기계가 이러한 방언형을 ‘잠자리’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방언 분화형의 데이터를 엄청나게 확보해서 이들을 함께 묶어내야만 한다.우리나라 언어 정보처리 회사 ‘솔트룩스’는 이러한 방언 음성형들을 클라우드 데이터로 구축하는 일을 오랫동안 추진해 왔다. 그리고 ‘당신의 목소리를 구매합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통해 다양한 언어와 방언들을 동시통역함은 물론 방언이 섞인 문학작품을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시대를 준비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표준어만 학습해 왔다면 그 인공지능은 편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되었기 때문에 방언이나 개인적 언어 변이를 해석해 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언어의 지역적 편향성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사례로 윈터라이트 랩(Winterlight Labs)이라는 캐나다의 스타트업에서 개발한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을 진단하는 인공지능의 성능을 들 수 있다. 이 발명은 매우 획기적이었지만 데이터를 온타리오 지역에서 수집한 까닭에 미국 영어 중에서도 온타리오 방언 사용자들만 진단이 가능했다. 표준어나 혹은 방언이냐에 따른 데이터의 편향성으로 인해 인공지능이 무용에 가까운 폐기물이 될 수가 있고 언어정보가 어떤 변이형인지에 따라서 그 기능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도 있다는 좋은 사례다.충남 서산 출신 김순일 시인의 ‘스산 사투리4’를 예를 들어보자. ‘스산 사투리4’를 예를 들어보자. “갯바닥이나 뒤지며 살든 안흥 새악시가 근친을 왔는디유/새신랑의 품속에서유 야들야들해져가지구유 갯바닥이나/ 뒤지며 살든 새악시가 상글상글 근친을 왔는디유/갯바닥이 달을 품구 응어리진 멍울을 푸는 밤에유 지집 아이들이 모여 앉아서유 첫날밤 이야기를 졸랐는디유/보리누름에유 지름기 자알잘 흐르는 우럭은유 그래두유/ 눈이나 뜨구 먹는디유….” 라는 시를 표준어만 학습한 AI는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을 것이다. 충남 방언에서는 중모음이 길어지면 고모음으로 변화한다. ‘서:산’이 ‘스:산’으로 바뀌며 접속어미 ‘-고’가 ‘-구’로 바뀌고 모음으로 끝나는 접속어미 끝에 ‘-유’가 붙어서 말소리가 느려지고 길어진다. ‘계집’이 ‘지집’으로 ‘기름’이 ‘지름’으로 ㄱ-구개음화가 널리 퍼져 있는 충남 방언의 특성을 학습하지 못한 인공지능은 충청도 방언으로 된 이 시를 제대로 읽어내기 힘들 것이다.이런 점에서 인공지능의 데이터 편향성을 극복하고 방언을 이해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일은 개발자들의 윤리적 의무라고도 할 수 있다. 2002년부터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에서는 남북을 포함한 한국어의 지리적 사회 계층적 방언음성형을 대대적으로 조사하여 클라우드 데이터로 구축하려는 국가적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2024-08-12

이미지즘을 선도한 정지용의 시 언어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한국 문학의 근대의 여명기에는 육당의 덜 다듬어지고 조잡한 회화체 형식의 신체시로 시작되면서 전통과의 연계 대신 문학사의 단절을 가져왔다. 20년대는 서구의 상징주의와 낭만주의를 흉내낸 아마추어적 문학 풍조와 계급문학이 득세하면서 한국의 현대시사는 서구의 문학에 접목되는 기이한 과정을 거쳤다. 30년대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국제적 안목을 지닌 모더니티가 정지용과 김광림과 같은 탁월한 재능과 기질을 갖춘 시인들에 의해 세련된 초현실주의나 다다이즘에 근접하는 문예 양식이 만들어졌다.과다한 한자 어휘를 배격하거나 생경한 일제식 외래어를 가능한 시의 언어에 배제했던 20년대 소월, 30년대 백석, 정지용 등이 이룩한 성과는 시문학에 언문일치를 이루었다. 이들에 의해 우리말의 싱싱함과 푸르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는 토착어를 적절하게 시어에 반영하여 시어의 구어적 청각적 전통성을 이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노래하는 시, 씌어진 시라는 측면에서 구전적 전통과 회화체의 관습을 현대시로 이어낸 것은 근대적 단절이 아닌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평가될 일이다.이 시기에 토착어 지향의 시적 경향이 강할수록 성공적인 시라는 판단이 가능한 이유는 당대의 소월, 만해, 백석, 이상화, 김영랑 등과 같은 시인들의 시작에서는 한자어나 외래어가 절제되지 않아 참담한 시적 실패를 보여주는 것과는 상반된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알 수가 있다.시인 정지용이 1923년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시 ‘향수’(‘조선지광’ 65호, 1927년 3월)의 예를 들어보자. 시문학파가 일군 토착어 지향성은 단순한 언문일치운동의 차원이 아닌 토착어가 섞인 고향의 노래이기 때문에 그 호소력이 각별하다. 한자어나 외래어와 같은 생경한 언어가 아닌 어린이나 유민들의 구어적 언어가 잃어버린 고향의 실체를 경험하는 역할을 해 주기 때문에 쉽게 노래로 전파될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중략//하늘에는 성근 별/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이 시에서는 토착어의 배타적 조직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마구잡이로 토착어를 남발하듯 쏟아 부은 게 아니라 절묘하게 방언을 잘 섞어놓았기 때문에 피상성이나 억지를 부린 듯한 혼란은 충분하게 배격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토착 지향의 30년대 시문학파 시인들은 최소한 느낌에 섬세한 구체성을 부여하고 드물게는 느낌과 생각의 긴밀한 통합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향수’에서 등장하는 토착어는 매우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에서 ‘지줄대다’라는 시어는 마치 실개천의 흐르는 물소리를 연상할 수 있게 한다. ‘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에서 ‘얼룩백이 황소’는 우리 전통적인 일소인 칡소로 검은 반점이 있는 소의 심상적 이미지를 이어준다.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이라는 표현은 이 시에서 매우 중요한 전경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소의 울음을 비인과적인 시간성 언어인 ‘해설피’로 표현한다. 소의 울음을 시각적으로 금빛으로 마치 게으른 칡소가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전경은 한 폭의 이미지요 그림이다. 텅 빈 밭에 밤바람 소리는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이 밀려들어 마치 말이 달리는 듯하고 하늘에는 듬성듬성한 별이 모래성으로 옮아가는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 이미지로 드러낸다. ‘얼룩백이 황소’, ‘질화로’, ‘늙으신 아버지’, ‘짚베개’,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 ‘사철 발 벗은 아내’, ‘서리 까마귀’,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 등 시인의 공감각을 절묘한 토착어로, 저녁 무렵에서 밤으로 다시 새벽으로 이어지는 고향의 늦가을 전경을 시간적 이미지로 이어낸 작품이다. 시간적으로 유서 깊은 고향의 추억을 시공간으로 엮으면서도 시인의 경험을 뿌리깊은 토박이 말로 이미지화하여 잘 꿰어낸 작품이다.

2024-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