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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화 시, 정전화(正典化)가 시급하다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어떤 언어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낡아지다가 언젠가는 사라진다. 문명 대상물이 시대 변화에 따라 소멸하면 그 이름도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함께 사라진다. 오래된 무덤 속에서 발굴된 유물이 고고학의 대상이 되듯이, 문명의 변두리 사람들이 사용하던 사물의 이름인 방언도 언어고고학적 유물이다. 소설가들이나 시인들은 오랜 언어 시간의 그물코를 짜는 언어 문명의 필경사이다. 문학 작품은 문명의 변천사, 그 속에 알알이 맺힌 사람들의 정서와 마음의 파문을 정성으로 직조한 한 필의 천이라고 할 수 있다.지난 3월 8일, 대구 3·8독립만세운동 기념식이 있었다. 대구 3·8독립만세사건의 주역이기도 했던 이상화 시인은 지금까지 71편의 시작품을 남겼다. 국어맞춤법통일안이 정착되지 않았던 1920년대에 주로 작품을 발표했던 이상화의 시 작품에는 다양한 대구방언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대구방언을 활용한 이상화의 시들은 엄청난 왜곡의 세월을 거쳤다. 방언에 이해도가 낮은 비평가나 출판업자들에 의해서였다. 이상화의 대표작인‘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깝치지 마라’가 ‘까불지 마라’로 해독된 적도 있다. 심지어 국정국어교과서에서도 그런 오류가 수정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비를 다고’라는 작품의 ‘이장’은 ‘농기구, 연장’를 뜻하는 대구 방언이다.‘병적 계절’등에 보이는 ‘짬’은 ‘어떠한 일이 일어난 영문이나 사건의 앞과 뒤’(이상규, 2001)라는 의미다. 그런데 정한모·김용직의 ‘한국현대시요람’에서는 ‘짬’에 대한 대구방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로 ‘짬’을 전혀 의미가 닿지 않은 ‘셈’으로 교열하기도 하였다. 이상화의‘가장 비통한 기욕’에 보이는 ‘햇채’는 ‘빗물이나 집안에서 버린 물이 흘러가도록 만든 시설’로 ‘수채’의 경상도 방언인데. 이를 ‘바다풀’ 곧 ‘해채(海菜)’로 해석한 한심한 오류도 있다. 사라져 없어질 위기의 고어인 지역 방언을 시 속에 이처럼 살포시 감추어 둔 항일시인의 작품을 후손들은 무지하고도 무관심하게 훼손하면서 차세대에게 가르쳐왔다.1950년 정음사에서 출간한 ‘이상화시집’에서 범했던 오류는 표준어 관점에서 방언을 제대로 해석치 못한 채로 범해졌고, 그 이후 출간한 시집에도 거의 수정되지 않은 채 80년대까지 이어져 시집이 출간되고 교과서에까지 실렸던 것이다. 80년대, 이러한 이상화의 시 71편을 수합하여 필자가 이를 전면 교열하여‘정본 이상화시전집’을 출간했다. 아직까지도 이상화의 시 작품이 몇 편이지, 시에 어떤 부분이 오류로 전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없다. 대구를 대표하는 항일 시인인 이상화의 온전한 문학작품정전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이들은 물론 없다. 이상화 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수상하고 또 기념사업회에서 대구시의 지원으로 현창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이상화 문학의 정전화 작업에는 독립운동단체에서나 지방정부에서조차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이상화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대구 출신의 소설가 현진건의 작품에도. ‘국해(시궁창의 흙), 데불다, 뒤통시, 몰, 진동한동, 불버하다, 삽작, 엉설궂다, 찰지다, 거진’과 같은 방언형을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1936년 무렵동아일보에 연재한 현진건의 ‘무영탑’에는 ‘별판’, ‘찐답잔은’, ‘노박이’, ‘진둥한둥’, ‘감때사나운’과 같은 방언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곳곳에 박혀있다.식민지의 작가들은 왜 구태여 방언이라는 천으로 시와 소설을 직조했을까? 공식적인 언어가 아닌 방언을 사용했던 이유는 바로 방언의 생명성의 문제였을 것이다. 방언은 살아있는 현재진행형의 언어이기 때문에 시적 주인공의 현존성, 소설 속 인물의 토착성을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을 것이다. 특히 이상화의 경우, 시인의 고향 방언이라는 비장의 언어를 통해 ‘낯설게 하기’라는 실험적 자유시로 우리 한국어의 무한한 가능성을 시적 언어를 통해 드러내려는 전략이 아니었을까? 서울 말씨와 다른 방언을 시적 매개로 삼았던 이유는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고향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면서 동시에 시간적으로 다가올 미래의 고향에 다가가려는 심리적 기제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이다.이상화문학 현창사업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바로 이상화문학을 총량화하고 반듯하게 정전화하는 사업이어야 할 것이다.그것이야말로 후손된 도리요 책무이다.

2024-03-11

“아이고 문디야”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시도 재밌어야 한다. 메시지 전달을 너무 강하게 의식하면 시는 관념화하거나 교훈적이거나 독자를 계도하고 가르치려는 부담을 주게 된다. 시가 교훈적이거나 이념을 강요하는 시를 오탁번 시인은 시적 문맹이라며 시답잖다고 판단한다. 한때 시에다가 무슨 사상이나 이념이나 철학을 담아내어 제법 그럴듯하게 꾸며 독자를 현혹시켜는 사이비 위장전입한 시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발로 차지마라”는 메시지는 가난하고 짓밟혀 사는 사람들을 발로 차지 말라는 엄청난 감동을 일으켰다. 그런데 과연 시인 자신은 연탄재를 발로 차며 사는 변두리 사람이었을까? 타자와의 일체성을 잃어버린 위장자의 입장에서 서민을 교화하려는 허위성을 안고 있는 언어는 아닐까? 오히려 곡진한 고어나 변두리 사람들의 말 속에서 건져올린 말도 안 되는 우스개 수준의 시가 시적 허위의 엄숙성을 내치는 좋은 수단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요 엄창 큰 비바리야’(2007)에 실린 권기호 시인의 시‘아이고 문디야’는 ‘보리문디’ 경상도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관용어 “아이고 문디야”가 시어로 화려하게 변신하여 재미있게 읽히는 시다.“태백산 돌기로 내려온 지판은 오래전 문경암층 방향 틀어/ 바람소리 물소리 이곳 음질 되어 영일만 자락까지 퍼져있었다.// 어메요 주께지 마소 나는 가니더 미친년 주것다 카고 이자뿌소/ 부푼 배를 안고 부풀게 한 사내 따라/ 철없는 딸은 손사래치며 떠나는데// 아이고 저 문디 우째 살라 카노 아이고 저 문디 우째 살키고/ 인연의 삼베끈 황토길 놓으며 어메는 목젖 세하게 타고 있었다.// 호박꽃 벌들 유난스런 유월 느닷없이 남의살 제 몸에 들어와/ 노을빛 먹구름 아득히 헤맨 딸에게 어메는 연신 눈물 훔치며/ 맨살 드러낸 산허리 흙더미 내리듯이 마른 갈대소리 갈대가 받듯이/ 토담에 바랜 정 골짜기에 쌓을 수밖에 없는데// 세월 흘러도 신생대 암층 고생대 지층이 받쳐왔듯이/ 풍화된 마음 먼 훗날 만나게 되면// 아이고 이 문디 우째 안죽고 살았노 아이고 어메요/ 우리 어메요/ 맨살 부비는 산허리 소리 반갑게 울부짖는 것이다.”이 시는 경상도에서도 아주 무지한 사람들의 살아있는 곡진한 목소리를 시어로 불러내었다. 태백산 줄기를 타고 문경에서 영일만까지 경상도의 음질이 된 사투리의 생생한 현장성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철없는 딸년이 아이를 배어 집을 떠나는 서사적 사연을 엮어낸 시적 대사는 농경시대 어두운 시절의 그림처럼 혹은 한 편의 연극처럼 슬프긴 하지만 내쳐버리지 못할 질긴 운명의 서사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보리밭처럼 밟혀 사는 무지랭이들의 육성이 마치 귀에 들리는 듯하다. 바람이 나서 부모 몰래 아이를 밴 딸년은 어메에게 “나는 가니더 미친년 주것다 카고 이자뿌소”라고 내뱉는다. 그에 화답하는 어메는 “아이고 저 문디 우째 살라 카노, 아이고 저 문디 우째 살키고”라며 모녀간의 이별을 통곡한다. 안 죽고 살아서 다시 만나는 모녀의 관계는 마치 태백산맥의 지층이 영남의 역사와 공간을 유지해온 것과 묘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다.알몸으로 살아온 사람들, 농경제 공동사회에서 ‘문디’는 보리밭에서 아이들 간을 빼내먹고 산다는 나환자를 이르는 말이지만 경상도 방언에서는 ‘문디’는 항상 ‘아이고’라는 감탄사와 함께 호응을 이루어 원통하거나 한스러울 때 상대를 호명하는 경상도 사람들의 심성을 담고 있는 울림의 관용구다. “연탄재 발로 차지 말라”며 독자들에게 단호하게 명령하는 시인의 눈높이가 아니라 가난하고 무지한 농촌의 어메와 원초적 본능에 충실한 딸년의 눈높이로 자세를 낮춰야 들리는 세상의 소리다.시인은 놀라운 통찰력으로 영남 방언의 음운변화와 아래아의 역사적 변천의 잔존형까지 시어로 녹여내었다. “맨살 부비는 산허리 소리 반갑게 울부짖는 것이다.”라며 무지한 딸년이 남자를 만나는 광경을 산허리의 바람 부는 소리로 전환해내는 시어의 놀라운 위력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시인 권기호가 들려주는 투박한 경상도 소리가 과거의 시공간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온다. 딸년의 무지하고 원초적인 성은 도덕을 뛰어 넘어 어둠조차 견뎌내게 만드는 축제적인 제례임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무슨 혼탁한 윤리나 도덕이 개입할 여지가 있을까?

2024-03-04

방언의 고고학 ‘어뜨무러차’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한국의 근현대시 100년, 그리고 한국현대시단을 대표해온 한국시인협회 50주년을 맞아 우리가 살고 있는 국토를 노래한 시들을 모아 엮은 작품집이 있다. ‘노래하자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 국토사랑시집’(한국시인협회, 천년의 시작).이 시집은 우리말의 곡진한 의미와 꼴을 찾는 시인들의 작품을 찾아 알리고 그 속에 알알이 박혀있는 고어나 방언을 되살려 표준국어의 운용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그런 기획 의도를 오탁번 회장은 금방 알아차리고 반겼기에 작품집 제작이 순조로웠다.1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는 작년 고인이 되었다. 그가 남긴 유작집인 ‘좋은 시는 다 우스개다’(태학사, 2024)가 며칠 전 출간되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그 당시를 회상하고 있었다. “지지난 달에 나온 이상규 교수의 시집 ‘외젠포티에의 인터네셔널가 변주’(예서, 2022)에 ‘아 그리운 오탁번’이라는 시가 있는 것에 놀랐다.2008년 내가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일할 때 국립국어원장이던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방언시집을 낼 때 국립국어원에서 지원금 교부를 받기 위해서였다.국어학 전공 교수로만 알았지 그가 등단한 시인이라는 것을 그때는 잘 몰랐다. 그의 시집에 ‘오탁번’이 등장한다. 이 아니 놀랄쏘냐.”라며 17년 전 오랜 추억을 서로 교감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놀라워했다.“까물치도록 사투리를 애껴 시에 자릴 앉히는 오탁번 시인의 요오 메칠 전에 출간한 ‘비백’ 곳곳에서 탁, 탁 맥히는 충청도 사투리. 이 어른 일부러 사투리 애끼가면서 요 모퉁이 조 모퉁이에 종자씨 모종 흐트뿌려 놓듯, 시 제목이 ‘노향림’인 시 작품 맨 끄트머리에 ‘노향림의 시를 읽으면/어뜨무러차!/짊어진 소금가마처럼/눈물이 다 나네’ 노향림 시 한 편도 안 읽었어도 고만 눈물이 따라 날라카네.”- 이상규 시‘아, 그리운 오탁번’ 부분)시의 맨 끝부분에 나오는 “진자지미 밥 뜸 들이는 그리운 냄새에 아직 벗어나지 못한, 갈보리처럼 밟힌 마이너리티 촌티를 못 벗은 건지 안 벗는건지 매양 오탁번 시인의 시가 그래서 그립다.”‘어뜨무러차’는 어린아이나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때 내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이다. 으샤, 영차 등의 뜻인 셈이다. 이 한 마디가 시의 본질이 언어의 예술이자 우리 국어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오 시인은 토착어는 중앙 집권의 공식 언어가 아니지만 현재진행형으로 사용되는 소리언어로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그렇다. 그는 표준어를 보다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 서울 지역의 교양인이 아닌 다양한 지역에 수평적으로 공존하는 방언을 찾아 시어로 사용했다. 그 속에서 ‘마음의 고고학’이라는 일관된 미학을 우뚝 세운 것이다.사용하지 않아 천천히 사라지는 고어들이나 변두리인들이 사용하던 낡은 언어를 정성을 쏟아 한 편의 시 안에 곱게 자리를 만들어 앉혀내는 시인들의 경이적인 노력들이 이어질 때 전통의 현재적 계승이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담아둔 옛 기억의 순수한 언어들을 새로운 시청각적 시언어로 탈환시키는 일은 국가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이러한 문화적 변곡점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한국시인협회가 흔쾌히 동참해 준 결과다.오탁번 회장은 국어정책 연구 지원 기관인 국립국어원의 이러한 호소어린 요청을 시인들에게 한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분이셨다. 순은빛으로 반짝이는 우리 말 토박이의 소리를 회귀의 미학으로 꽃 피워 주신 시간과 공간 언어의 필경사, 오탁번 선생을 다시 또 그리워한다.그는 “이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서 순금이 반짝이는 저 오로라빛 암흑으로 갔다. 독을 바른 창을 잡고 휘장을 친 수레를 몰고 그는 갔다. 아아, 희망도 절망도 없는 가을 하늘 아래 흔들리는 구절초 하나 같은”그와 나는 국립국어원장과 시인이라는 그 한 번의 만남, 그 후에도 시를 쓰거나 에세이로 기억하면서 잊지 않고 교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2024-02-26

‘잘코사니’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북에서 핵으로 남쪽을 불바다를 만든다고 위협할 때 남에서는 부랴부랴 거창한 베를린 구상으로 아부를 했다. 그러면 다시 “가을 뻐꾸기 같은 수작”을 부리지 말라며 북의 김여정은 남한의 국가 원수를 “삶은 소대가리”라고 한 방 날렸다. 북에서는 묘한 가을 뻐꾸기를 불러와서 모욕을 주는데 남한의 최고 지도자는 평화를 위해 자존심을 다 버렸다. 온 국민의 자존심도 짓밟았다. 낱말의 선택은 이렇게 정치외교에서처럼 궁뚱망뚱한 언어로 쓰는 것이 아니다. “가을 뻐꾸기”에 대응하여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적장의 이마빡에 명중하면 전쟁은 끝이 난다.”며 화답한 시인이 있다.지난 연말 세상을 떠난 오탁번 시인은 잊혀가는 우리말을 지극히 사랑했다. 동자승 같이 살던 글쟁이 오탁번이 쓴 시집 ‘두루마리’(태학사)를 읽어보면 어떻게 요렇게 야물딱지고 찰진 오래된 우리말과 변두리 방언을 잘도 이용했을까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의 시 어느 언저리에도 한 푼어치 섞인 허위를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시는 순수하고 정직한 영혼의 흔적이 아닌 것이 없다. 필자와는 깊은 인연은 아니나 그가 쓴 옛 책 ‘헛똑똑이의 시 읽기’라는 책에 방언을 사랑하던 내 이름을 번듯하게 올려준 인연으로 늘 그의 문적을 헤적이고 있다.그의 시나 소설은 모두 따뜻하면서도 진중한 맛을 갖추었기에 읽는 내내 빠져들게 된다.그의 마지막 시집 ‘비백’에는 좁쌀처럼 흩트러진 고어와 방언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스스로 “말 하나를 가지고 별별 오두방정을 떠는 철부지 시인이다.”라며 겸손을 부렸지만 필자가 보기엔 그는 우리말의 깊은 뿌리와 말맛을 찾아 시를 남긴 보기 드물게 당당했던 시인이다.그의 작품 ‘노루잠’이라는 시를 읽었다. “괭이잠이라는 말은 알았지만/노루잠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깊이 들지 못하고 자주 깨는 잠/노루목, 노루발, 노루꼬리, 노루종아리/사전을 찾아보니까/예쁜 우리말이 깡충깡충 뛰논다….”이 시에 나오는 ‘노루종아리’는 말 그대로 노루의 다리 마지막 긴 마디를 뜻하는 줄 알겠지만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노루종아리’는 소반의 상다리의 마지막 부분 매끈하게 흐르는 부분, 또는 문살에서 가로 살은 성기고 세로 살만 촘촘한 부분이라고 풀이했다. 진짜 익은 우리말, 변두리에 내쳐진 말 하나를 건져내어 준 그가 ‘별별 오두방정을 뜨는 철부지 시인’일까. 우리말의 숨과 결을 이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시인이 우리 곁에 있었다. 한때 방언시가 유행한 때가 있었다. 욕지거리에 가까운 변두말로 쓴 시를 방언시라며 낯 두껍게도 방언시집이라 한 시인도 있었다. 시가 가지고 있는 예민한 현을 연주하기도 전에 다 터뜨려버린 그런 시들은 진정한 우리말의 맛깔을 호도한다.그런 면에서 오탁번 시인은 모국어의 원형을 고이 복원하기 위해 몇몇 날밤을 새우며 각고의 노력을 한 시인이다. 미궁과 같은 자리에 방언을 꼭 집어넣어 살짝 깔아 놓으면 시가 낯설어지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고단위 영양제 역할을 한다.그가 쓴 ‘겨우살이’라는 시를 들쳐보자. “쥐코밥상 앞에서/아점 몇 술 뜨다가 만다/저녁은 제대로 먹으려고/밥집 찾아 들랑날랑하지만 늙정이 입맛에 영 아니다/다 버리고 고향을 찾아왔는데/입은 서울을 못 잊었나 보다/야젓하게 살고 싶지만/뭘 먹어야 살든 말든 하지//강풍경보가 발령된 겨울밤/몰아치는 눈보라에/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요란하다/다 낡은 분교사택/지붕도 몽땅 날아가겠다/낙향하여 선비처럼 산다고?/그래 잘 살아라/쌤통!/잘코사니”.그가 이 시를 쓴 이유는 바로 ‘잘코사니’(고소하게 여겨지는 일·주로 미운 사람이 불행을 당한 경우에 하는 말이다.)라는 낱말 때문이다.‘쥐코밥상’, ‘아점’, ‘야젓하게’와 같은 지난 결의 사라져가는 언어들도 절묘한 빛을 발휘한다.오탁번 시인이 정년을 하고 고향 제천 산골마을에 문학관을 세워 겨울을 보내는 전경이 눈에 훤하게 들어온다.서사적으로 기상천외하게 계급과 이념의 극단을 늘 끌어들여 당혹스럽게 했던 창비와 같은 이념의 문풍시대에도 고결하게 글쓰기 명줄을 놓지 않은 살가운 글쟁이 오탁번 시인이 보고 싶다.

2024-02-19

돔배기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대구 경북 방언으로 방언시를 즐겨 짓고, 경상도 방언시집을 많이 출간한 상희구 시인의 시 중에 ‘돔배기’라는 시가 있다.“지삿날 큰집 백모님이/음복식을 나누어 주실 때/돔배기는 항상/제기 맨 우에 얹혀있었다./당당하게, 돔배기는 모든 지사 음식을 앞으로 끌어간다./지가 지일로 앞장서고/콩나물 고사리나물 무시나물…./소고기 산적도 끌어가고/민어 산적도 끌어가고…./이렇게 돔배기는/모든 지사 음식을 다 끌어간다/”경상도 제사상에서 으뜸인 제수가 돔배기임을 알 수 있는 시이다.돔배기는 무엇인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돔배기를 찾으면, 도마의 방언, 도막의 방언, 돔발상어의 방언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모두 잘못된 풀이다. 오픈사전에서야 “제사상에 올리는 상어고기”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가장 근사한 정의다. 더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주로 경상도에서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상어를 네모나게 토막낸 것”이어야 한다.그런데 경상도라도 모든 지역에서 돔배기를 제사음식으로 올려 쓰지는 않는다.우리말의 물음법은 여러가지 유형이 있다. 대표적으로 wh-의문사가 들어가는 의문과 의향을 묻는 yes no-의문법으로 크게 구분한다. 경상북도 방언은 의문사 의문법의 어미에 따라 크게 3그룹으로 구획된다. 대구, 경주, 포항지역은 “-는교”형, 안동, 영주, 의성 지역은 “-니껴”형, 김천, 구미, 선산 일부 지역은 “-여”형으로 나뉜다. 이들 지역의 방언 차이는 아마도 큰 산맥이나 강 등의 지형으로 구획되는 것 같은데 오랜 역사와 문화의 차이와 구분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제의의 절차나 형식, 제수음식 차이점을 보인다.“-니껴”형의 안동권역에서는 제수로 반드시 문어를 사용한다. 이 지역에서는 문어 없는 제사는 제사가 아니다. 문어(文魚)가 글을 숭상하는 안동의 문화와 관련있고, 문어의 먹물이 문방사우 중 먹을 상징한다는 것은 제의관습 이후의 해석일 것이다. 그런데 고대국가 신라권역이었던 “-는교”형의 대구, 영천, 경주, 포항지역에는 돔배기를 반드시 제수로 올린다. 돔배기 없이는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고 할만큼 제수 가운데 최상으로 손꼽는다. 돔배기를 길게 네모나게 잘라 꼬치로 꿰어 구운 돔배기 산적이 있고, 상어껍질이나 연한 뼈와 함께 무를 토막내어 푹 끓인 어탕국도 빠지지 않는다.경산 진량 고분이나 대구 불로동 고분에서 상어의 등뼈가 발굴된 것으로 보아 “-는교”형 지역에서 돔배기가 제수나 음식으로 사용된 역사가 무척 오래임을 짐작할 수있다. 동해안을 타고 신라로 내려온 예족계열의 문화적 연계성은 아닐까 조심스러운 추정을 해본다.같은 경상도 안에서도 돔배기가 “-는교”형 지역에서만 사용하고 “-니껴”형 지역인 안동권으로 넘어가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문화 현상이요, 연구해 볼 만한 문화유산인 셈이다.한국의 근현대시 100년, 그리고 한국현대시단을 대표해온 한국시인협회 50주년을 맞아 우리가 살고 있는 국토를 노래한 시들을 모아 엮은 작품집이 있다. ‘노래하자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 국토사랑시집’(한국시인협회, 천년의 시작, 2007)에 필자는 ‘돔배기’라는 시를 발표한 적이 있다. 경상도 “-는교”형 지역에 살지 않아 돔배기를 먹어보지 못한 분들은 이 시를 통해 돔배기의 맛을 경험해 봐도 좋을 듯하다. 푹 삭힌 상어고기를 네모나게 토막(돔박)을 낸 돔배기의 싸한 맛과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의 맛을…. 어쩌면 이 맛은 잘 삭아서 익은 전라도 홍어의 깊은 맛과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요즘은 냄새나고 알싸한 맛의 삭힌 돔배기를 잘 먹지 않는다.설날, 제사상에 오른 귀한 음식 돔배기를 소재로 한 시작품을 통해 오랜 역사의 틈새에 비친 우리 제사 문화의 잔영을 찾아보았다.

2024-02-12

시 작품에 방언의 옷을 입히다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내가 국립국어원장으로 일하던 때였던 2006년, 당시 한국시인협회에 전국시인들이 고향 방언으로 창작한 시를 묶은 방언시집 출간을 요청하였다. 현대시 100주년인 2007년을 기념하는 차원이었다. 국립국어원의 뜻밖의 요청에 시인들은 놀라워하면서도 크게 반겼다. 반면 국어학 연구 교수들은 방언시집 발간이 국립국어원의 역할인가 의문의 눈초리를 보냈다. 강한 거부의사도 서슴치 않았다. 모 대학 교수는 국립국어원장이 표준어의 어문정책을 파괴하는 행위를 한다며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내기도 하고 더 나아가 원장 파면을 선동하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조는 확고했다. 시인은 새로운 언어의 창조자다. 방언은 표준어 이전의 모국어이자 모태어다. 시를 통해 모국어를 보다 풍성하게 할 수 있다. 국어의 언어다양성을 지키고 지지하는 것 또한 국립국어원의 역할이자 의무라는 논거로 이 사업을 지원했다며 당당히 맞섰다.사실 국립국어원은 국어의 발전과 국민의 언어생활을 향상하는 연구 사업을 추진하고 체계적인 정책 수립의 기반을 마련하는 기관이다. 합리적인 국어정책 추진에 필요한 체계적 조사와 연구를 하며, 언어 규범을 보완·정비하는 목적을 가진 기관이다. 그런 점에서 기본언어는 표준어가 맞다. 그러나 국가 언어 자원을 수집하여 통합 정보 서비스를 강화함으로써 국민 언어생활의 편익을 증진한다는 또 하나의 기본 목표가 있다. 국가의 언어자원에는 방언이 큰 몫을 한다. 모국어를 보다 풍성하게 살리려면 표준어 관리도 중요하지만 지역 방언도 중요하다는 국어정책의 기본을 안다면 이 얼마나 필요충분한 사업인가. 정제된 언어인 표준어를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역 방언을 되살려 표준어의 경계와 범주를 확대하는 것 또한 중차대하다. 특히 넘쳐나는 차용외래어의 환경과 무분별하게 생성되는 신조어의 홍수 속에서 우리말을 온전하게 지키는 언어생태환경 조성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안이다. 방언이 표준어를 훼손하는 일이 아니라 언어 다양성을 존중하는 언어라는 것을 알리는 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표준어를 신화처럼 여기던 국어학계에서도 말문을 닫았다. 국가언어정책의 기본 틀의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나는 사업이었다.그렇게 해서 ‘시인 101명, 내 고향말로 시를 쓰다’라는 부제의 방언시집 ‘요 엄창 큰 비바리야 냉바리야’(서정시학)가 출간되었다. 토착 방언들로 지은 시 작품이 과거를 하나씩 호명하듯 기억의 거미줄에 걸려들었다. 방언이 섞인 시의 맛이 따뜻하고 신선하다는 평가들이 이어졌다. 환경과 기술의 빠른 변화 속에서 잊혀진 시간과 공간의 풍경들을 방언 시를 통해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며 반가워했다. 표준어의 위력에 억눌려 숨을 쉬지 못하고 있던 토속적인 감정과 그들 간에 유통되는 토속의 지식정보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방언으로 살아났다.당시 국가 어문정책의 책임자인 나는 국어학자이면서 시인이기도 했다. 문학 작품 속에 깃든 방언을 문학 비평적 관점에서 연구한 ‘방언의 미학’(살림)과 ‘위반의 주술 시와 방언’(경북대출판부)을 간행하기도 했다. 나의 이런 연구가 시인들에게 방언으로 된 시 창작을 부탁하게 된 이유가 된 점도 없지 않다. 이후 국어국문학계에는 문학방언에 대한 연구 붐이 일어났다.내친 김에 나는 언어다양성 정책을 학술적으로 지원하기로 하고, 2008년 한국언어학회와 공동으로 제8차 세계언어학자대회를 한국에 유치하였다. ‘언어의 다양성’을 주제로 자본의 우위와 식민지배로 인해 절멸해 가는 세계의 언어와 변두리의 방언 보전과 유지를 위한 국제협력의 장을 펼쳤다. 언어학자대회이지만 문학인들을 대거 초청하여 발표의 기회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또한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학어야 말로 언어의 존속과 창의적 변용을 통한 집단의 정체성과 지식정보 축적의 기본으로 한 언어의 다양성 보전의 첨병이라는 학계의 동의를 선언적으로 얻었다.이 두 사업은 방언이 문화의 다양성 속에 창의성이나 독창성뿐만 아니라 개성과 정체성을 확보하는 자산이며 특히 지식정보 전달 매체인 언어와 방언이 지역과 계급적 차등과 차별을 뛰어넘는 기초가 된다는 나의 언어관을 실현한 매우 의미있고 기쁜 일이었다. 학자로서 그리고 시인으로 가장 보람된 일 가운데 하나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2024-02-05

평안도의 가옥, 백석의 시 ‘가즈랑집’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백석(1912~1996)은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경성에서 영어 교사로 지내다가 만주 일대를 유랑하며 작품을 발표했다. 향토색 짙은 토속적인 소재를 평안도 방언으로 재구성해낸 탁월한 시인이었다. 해방 이후 고향에서 시작에 전념했으나 ‘사상 이외 문학성도 중요하다’는 그의 신념 탓에 1957년 즈음 북한 문단에서 숙청되었다. 협동농장으로 추방되어 시쓰기를 중단한 후 농부로 암흑의 삶을 살다가 1996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슴’(1936),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1938), ‘서행시초’(1939) 등의 시집과 동요집을 남겼다. 그의 시는 모두 일제강점기에 쓰였고 시집들도 그때 발간되었다. 그가 경성에 머무는 동안 만났던 그의 영원한 연인 기생 김자야와의 짧고도 영원한 사랑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심금을 울려준다.그의 시는 전통적인 고향마을의 생활 속 소재들인 동식물, 민속, 음식 등 전반에 걸쳐 방언 시어들의 파편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나라를 잃은 한 예술가가 탐해온 아릿하게 멀어져 가는 옛것에 대한 습속과 습성과 대상이 고향이라는 한 정점에 몰려 있다. 옛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지향하는 구심력과 동경과 경성이라는 모던한 현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그의 시작품 속에는 옛것과 추억과 현재성이 보석처럼 알알이 박혀있다.그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가즈랑집’이라는 시는 고향 촌락의 다양한 추억과 전설이 함께 어울려 빚어내는 작품이다. ‘가즈랑집’은 이 작품의 배경인 셈인데, 오래되었고 낡아 귀신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타날 듯한 집이다. 시인의 유년 시절의 추억인 가즈랑 고개의 무당 할머니가 살았던 추억의 현장이다. 쇠메를 든 도둑과 ‘승냥이’가 출몰할 만큼 외딴 집이다. 아슴한 기억의 공간을 배경으로 얽힌 몇 가지 에피소드로 엮어진 서사적 구성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가즈랑집’이 단순한 가즈랑 고개에 있는 낡은 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 않다. 이 ‘가즈랑’의 어원은 일본어 ‘가스라(かずら,葛·蔓)’이다. 칡덩굴이 뒤덮여 있는 오래되고 낡은 집이라는 뜻이다. 산짐승인 승냥이가 슬며시 지나가고 가끔은 산적도 출몰했던 가즈랑 고개에 얽힌 전설같은 추억으로 서사화된 작품이다. 교묘하게 ‘가스랑 고개’와 칡덩굴을 뜻하는 일본어 ‘가스라’가 일치하는 배경이다.산짐승이 가축을 물어간 이야기를 들려주던 신당집 가즈랑 할머니가 태어나자마자 시렁에 올리면서 명이 길게 오래오래 살도록 시렁귀신에게 수양아들로 팔았다는 시인의 태생적 비밀과 성장하면서 경험했던 시골 토속 음식을 기억한다. 유년기의 경험인 “울다가 웃으면 밑구멍에 털 난다”는 개구쟁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불러와 과거와 현재를 가로세로로 서사를 얽어낸다. 그 이야기 속에는 토속적인 방언들로 꼭꼭 메워져 있다. 이 시에서는 동물이나 식물 이름, 음식 이름, 가옥 이름, 민속과 관련된 이름 하나하나에서부터 질병 이름, 놀이 이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평안도 방언들이 나타난다. 마치 평안도 민속어사전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토속어가 오롯이 모여서 한 편의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깽제미(꽹과리), 구신집(귀신집), 당즈깨(당세기, 고리짝), 수영(수양, 데려다 기른 아들이나 딸), 아르대즘퍼리(아래쪽에 있는 진창의 펄)는 평안도 사람이 아니면 그 뜻을 새기기도 힘든 방언들이다. 돌나물김치나 백설기, 도토리묵과 도토리범벅은 알 만한 음식이름이다. 그러나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히순, 물구지우림, 둥굴레우림, 광살구, 당세는 식용 나물이거나 독초를 식용으로 가공한 나물음식의 이름을 평안도 사람이 아니면 누가 알까. 백석의 시에는 특히 평안도의 가옥구조와 관련된 매우 다양한 방언이 등장한다. ‘가즈랑집’을 비롯하여 옛 가옥을 구성하는 다양한 시어로 그려내는 마을의 골목골목이 정겹다. ‘곱새녕(이엉), 곱새담(풀, 짚으로 엮은 담), 돌 능와집(얇은 돌조각으로 이은 지붕), 딜옹배기(아주 작은 자배기), 섬돌(토방돌), 아르·(아랫목), 아릇간(아랫방), 울파주(대, 수수깡, 갈대, 싸리 등으로 엮어놓은 울타리), 재통(변소), 마가리(오막살이), 국수당(서낭당)’과 같이 옛날 서민들이 살았던 산골마을의 민속적인 전경이 펼쳐진다. 칡덩굴이 뒤덮인 외딴집 ‘가즈랑집’을 중심으로 하나의 민속마을을 복원해 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평안도 방언이 구사된 백석의 시이다.

2024-01-29

박목월이 경상도를 기억하는 방법

박목월 시인. 청록파(靑鹿派)는 1939~1940년 잡지 ‘문장’지의 추천으로 시단에 등장한 시인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세 사람을 말한다. 청록파는 해방 이후 1946년에 간행된 이들 세 사람이 각자의 시들을 모아서 낸 시집‘청록집’에서 유래되었는데, 청록파는 우리나라 서정시의 산맥을 우뚝 세웠다. 세 시인은 우리말의 특징을 잘 살려 자연을 소재로 자연의 심성과 순수한 인간성을 표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되 각각의 개성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조지훈은 전통에 대한 향수를, 박두진은 자연을 통한 구원과 치유를, 박목월은 자연의 풍경을 묘사하거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향토적인 정서를 표현한다고 얘기한다. 이들 셋 중 가장 자연에 가까운 이는 박목월이다. ‘청록집’이라는 시집 이름도 사실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따온 것이다. 정지용이 ‘문장’지에 박목월을 추천하면서 “북에는 소월이 있었거니 남에는 박목월이라 할 만하다.”며 목월의 시를 한국시의 전형이라고 극찬했다.청록파의 세 시인에게는 경상도라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박목월은 경북 경주 출신이고, 조지훈은 경북 영양 사람이다. 박두진은 경기도 출생이지만 한때 경주와 밀양에서 유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럼에도 경상도 방언을 즐겨 시어로 채택한 이는 단연 박목월이다. 방언을 시어로 채택해 맛깔난 시를 쓴 시인으로는 경상도의 박목월과 전라도의 미당 서정주를 꼽는다. 목월과 미당은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두 공간의 토박이 방언으로 고향의 토속성을 아름답게 되살려 성공한 시인들이다. 미당의 시는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다.박목월은 유독 많은 방언 어휘나 방언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 억센 경상도식 사투리의 악센트가 텍스트 바깥으로 튕겨 나오는 듯하다. 문자가 없었던 시대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며 외치던 소리가 시가 되었듯 박목월의 시편에서 들리는 사투리는 경상도 사람의 말소리 그대로다. 애틋한 그리움이나 한의 정취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시인의 의도임이 분명하다. 박목월은 방언을 시 작품에 적절히 끼얹어 경상도식 탁성인 토박이 방언으로 고향의 토속적 정경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아배요 아배요/내 눈이 티눈인 걸/아배도 알지러요./등잔불도 없는 제상에/축문이 당한기요./눌러눌러/소금에 밥이나 많이 묵고 가이소./윤사월 보릿고개/아배도 알지러요./간고등어 한손이믄/아배 소원 풀어드리련만/저승길 배고플라요/소금에 밥이나마 많이 묵고묵고 가이소./니 정성이 엄첩다./이승 저승 다 다녀도/인정보다 귀한 것 있을락꼬,/망령도 감응하여, 되돌아가는 저승길에/니 정성 느껴느껴 세상에는 굵은 밤이슬이 온다.” -‘만술 아비의 축문’슬픈 서사 ‘만술 아비의 축문’은 가난하고 글눈 먼 기층민들의 삶을 향토적인 언어의 색조로 절절하게 노래한다. 거친 방언의 언어문법으로 직조해 내어 울림도가 더 크다. 소리내어 읽어보라. 눈앞에 펼쳐지는 부자간의 애틋한 대화에 귀 기울여 보라. 아버지 제사상 앞에 꿇어앉은 만술 아비의 슬프고 아픈 넋두리에 감응하는 죽은 ‘아배’의 대답에도 이슬 같은 눈물이 배어있다. 박목월은 변방 언어인 방언을 과감하게 시의 중심부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방언의 사용자인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부각시켜 향토적 서정을 형상화해내고 있다.‘내 눈이 티눈’은 ‘까막눈’, 곧 글자를 읽지 못하는 무식함을 은유하는 경상도식 속담이요, ‘엄첩다’는 ‘제법이다, 기대 이상이다.’로 풀이할 수 있는 방언인데 이 시어를 표준어로 바꾼다면 시의 극적 요소와 시적 자아의 정체성은 사라질 것이다. 방언을 절묘하게 배치한 방언시의 묘미를 박목월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4-01-22

방언과 시인의 고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우리 고향 통영에서는/잠자리를 앵오리라고 한다./부채를 부치라고 하고 고추를/고치라고 한다./우리 고향 통영에서는/통영을 토영이라고 한다./팥을 퐅이라 하고 팔을/폴이라고 한다./코를 케라고 한다./우리 고향 통영에서는/멍게를 우렁싱이라 하고 똥꾸멍을/미자발이라고 한다. 우리 외할머니께서는/통영을 퇴영이라고 하셨고 동경을/딩경이라고 하셨다. 그러나/까치는 까치라고 하셨고 까치는/깩깩 운다고 하셨다. 그러나/남망산은/난망산이라고 하셨다./우리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내 또래 외삼촌이/오매 오매 하고 우는 것을 나는 보았다.”- 김춘수의 ‘앵오리’김춘수는 경남 통영이 고향인 시인이다. 나의 은사이기도 하셨던 시인은 강한 경남 억양을 쓰셨다. 실제로 통영을 ‘토영’이라고 발음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이 시는 마치 경남 통영 사투리를 가르치는 텍스트 같기도 하다. 시 전편 어디에서도 향수나 추억이나 그리움이라는 감성을 환기하는 감정적 시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인의 고향 통영에 대한 향수와 ‘앵오리(잠자리)’를 잡던 유년시절의 추억과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방언이라는 시어가 갖는 위력을 일깨워 주는 김춘수의 시는 경남 바닷가 통영의 개인적 추억을 환기하면서, 동시에 그가 살았던 시대를 보여준다.이 시의 진가는 시이면서 동시에 언어학의 텍스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김춘수는 이 한편의 시를 통해 경남방언과 우리 국어의 역사를 매우 깔끔하게 정리하였다. 국어학 강의시간이라면 교수에게는 최소한 3주는 강의해야 할 주제이고 학생들에게는 매우 지루하게 배워야 할 내용의 학습 분량이다. 음운변화와 아래아의 역사적 변천, 움라우트 현상과 전부모음화, 비음화에 대한 설명을 이처럼 아름답고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는 시인의 능력에 국어학자로서 존경의 헌사를 올릴 따름이다.“우리 고장에서는/오빠를/오라배라 했다./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오오라베 부르면/나는/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나는 머루처럼 투명한/밤하늘을 사랑했다./그리고 오디가 샛까만/뽕나무를 사랑했다./혹은 울타리 섶에 피는/이슬마꽃 같은 것을…./그런 것은/나무나 하늘이나 꽃이기보다/내 고장의 그 사투리라 싶었다.//참말로/경상도 사투리에는/약간의 풀냄새가 난다./약간 이슬 냄새가 난다. 그리고 입안이 마르는/황토흙 타는 냄새가 난다.”-박목월의 ‘사투리’경주 사람 박목월의 ‘사투리’는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의 경상도 경주의 방언적 특징을 그대로 시어로 표현하였다.이 시를 소리내어 읽어보라. 큰 소리의 질박하고 꺼칠꺼칠한 경주의 방언이 마치 곁에서 들리는 듯이 고스란히 전해올 것이다.목월의 언어 감각은 청각에서 시각으로, 다시 후각으로 이어지는 방언의 연주곡과 같다.오래 잊고 지냈던 ‘오오라베(오빠)’가 불러오는 경주의 사투리에서 촉발된 경주에 대한 그리움은 수채화같이 투명하고 아름다운 고향의 정경을 소환하고 그것을 사투리의 소리로 듣고 이어 그림 속에서 냄새를 맡는 시인의 공감각적 능력은 탁월하다. 이슬 맺힌 풀과 황토흙 타는 냄새는 오래전 고향 떠나 타향살이 하는 시인의 고향 경주에 대한 강한 그리움이 감지된다.많은 시인들이 즐겨 사용한 방언은 시적 미학을 돋보이게 하는 최고의 시어이다.홉스테디(Hofstede, 1980)는 언어적 소통은 집단 구성원과 또 다른 인간 집단 구성을 구별하는 정신의 총체적 프로그램이라고 했다.방언이나 언어적 차이가 단순한 차이나 차별이 아닌 화려한 다양성의 꽃이라는 인식이 제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생물학적으로 생태의 다양성이 종 보존의 안정성을 가져다주듯이 언어의 다양성도 인간 지식과 정보의 지속적인 상속을 보장해 주는 요소로 그 가치가 존중되어야 한다.

2024-01-15

방언이라는 다양성의 질서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갑진년 새해다. 우리가 알아야 할 매우 중요한 시대의 변화를 요약하면 인간의 인지능력에 기대어 살던 시대가 저물어가는 대신에 기계가 우리의 인지를 결정적으로 도와주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인류 문명의 변화의 단층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매개물이 시공간을 뛰어넘는 지식정보의 전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문자의 발견은 고대에서 중세라는 시대로 이행하는 촉매역할을 하였고 이 문자를 통한 지식 정보가 소리, 그림, 사진 이미지로 전달되면서 르네상스라는 인간 중심 사회로 이행되었다. 이때까지는 인간의 인지 폭 안에서 모든 사물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변종들을 단순화시켜 표준화하는 일에 몰두하였다.예를 들면 ‘잠자리’라는 표준어에 대응되는 변이형은 엄청나게 많이 나타난다. 특히 지리적인 차이에 따라 잠자리의 음성적 변이형으로 ‘잠바리’, ‘잔자리’, ‘짠자리’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이다. 한편 형태적인 변이형으로 ‘철겡이’, ‘철벵이’, ‘철기’, ‘처리’ 등 단일한 의미를 담은 언어의 변종이 많이 나타나므로 이를 표준화하여 모두 ‘잠자리’로 표준화하였다. 그리고 학교 교육에서나 모든 국가적 제도의 틀 속에서 표준어만을 존중하는 시대를 거쳐 왔다. 이러한 시대에서는 지역의 정보가 표준어인 서울에 비해 열등한 것처럼 없애버리는 혹은 잊혀지는, 잊혀야 하는 시대를 거쳐왔으나 여러 가지 문제점이 차츰 드러나기 시작하였다.필자가 왜 평생 방언 연구를 위해 정성을 쏟았는지 그 내력을 조금 소개해 드릴까 한다. 1979년 무렵 우리나라 국가적인 방언조사 계획에 참여하여 경상북도 전역의 방언조사를 수행하였다. 엄청난 방언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까?엑셀이나 메모장을 기반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다음 이를 어떻게 판독할 것인지 큰 과제였다. ‘잠자리’라는 방언 어휘의 예를 들어 ‘잠자리’형과 ‘철기’형으로 구분하여 하나의 얼개를 만들면 음성적 변이형과 형태적 변이형들의 갈래가 지워진다. 그러한 방언 분화가 왜 생겨났는지 언어학적인 설명이 더욱 용이해진다. 그러나 수천 항목을 이처럼 하나하나 해석하기란 너무나 벅찬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기계적 처리가 가능할까?이러한 기술이 일본에서는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었다. 2003년 일본 동경대학교에 컴퓨터를 활용한 언어지도 작성에 대한 연구를 위해 떠났다. 언어지도 제작 시스템 SIL을 개발한 니가타대학에 후쿠시마 교수와 동경에서 그리고 니가타대학 연구실로 옮겨 가면서 SIL시스템을 한국방언자료에 적용하여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자동으로 한반도 지도상에 채록된 방언형을 해당 지도 위에 멋진 상징부호로 전환하여 채색 상징부호 언어지도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 문부성 국어연구원에서와 동경대학교 대학원생들 대상으로 한 한·중·일 언어지도 제작에 대한 특강 등을 통해 방언 자료의 기계적 처리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불러 일으켰다.유학을 하고 돌아온 후 우리 독자적인 방언지도제작시스템 구축을 위해 경북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와 대학원생들의 협조를 받아 드디어 K-Map이라는 한국언어지도 제작시스템을 완성하였다.한국방언학회지에 방언자료 처리와 언어지도 제작에 관한 논문을 계속 발표하였다. 정년퇴임을 할 무렵 내 연구실 제자들과 함께 ‘방언을 지도에 입히다’(민속원, 2019)를 연구의 총체적인 결실물로 간행하였다. 마침 20세기를 넘기면서 점점 소멸하는 변두리의 생태와 붕괴되는 지식체계의 복원을 주장하는 다양성과 다원성을 보존하자는 논의들이 활발했던 시기였다.그와 함께 컴퓨터의 기술이 놀랍게 발전하면서 웹에서 앱으로 휴대전화 속에서 모든 정보를 교환하고 검색하여 공유할 수 있는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중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텍스트, 음성, 이미지 정보들을 대량으로 모아서 빅-데이터를 구축함으로서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훨씬 뛰어넘어 기계가 필요한 정보들을 신속하게 검색하여 정화한 정보를 알려주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앞에서 말한 방언, 사투리, 지역말씨가 이젠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황금의 알이 되었다.앞으로 어떤 황금알을 만들 것인지 풀어나갈 것이다.

2024-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