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소설 등 문학예술은 언어를 매체로 하는 예술이다. 한국문학은 한국어가 중심 매체로 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어에는 공통어인 표준어가 있지만 여러 지역과 사회계급에 따른 방언도 있다.
모든 한국인의 소통에 기준이 되는 표준어가 사실 인공적으로 정한 언어이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는 대칭적인 자연언어인 방언이 상호보완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중 어떤 언어가 우리 문학의 매체로 되어야 할까? 현대문학에 있어서는 두말 할 것도 없이 공통어가 문학 용어로 사용된다.
가끔 문학적 효용을 위해 방언으로 된 문학 작품이 발표되기도 하지만 매우 큰 제약을 받고 있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드러낼 필요가 있는 경우 대화체에서 방언 화자의 생경하고 자연스러운 방언을 노출하지만 방언으로 된 작품은 근본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제주도에서 간행된 그곳 출신 유명한 작가의 작품도 공통어 일색이다. 소설 등의 인용 대화문에서만 때로 방언이 나타날 뿐이다. 교육과 매스컴의 영향으로 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공통어가 크게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공통어가 덜 보급된 시기의 문학 작품, 곧 고전 문학의 경우에는 방언을 매체로 한 작품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지방에서 간행된 한글고소설, 내방가사, 시조 등을 살펴보면 동 시기의 작품에서는 대체로 공통어와 방언이 뒤섞인 경우가 적지 않다. 비록 지방문학으로서의 고전에서도 공통어로 되어 있다. 사실 공통어는 본시 방언의 혼입이다.
가령 가사 문학의 두 대가인 전라도 출신의 송강과 경상도 출신의 노계는 각각 전라·경상 방언을 말하는 지방 출신이지만, 그들의 작품에서 구개음화 등 약간의 방언형을 제외하고는 그들 지역방언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전남 해남 출산의 고산의 시조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에 우리는 고전문학에 있어서도 공통어가 매체로 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문학어로서 공통어와 더불어 선별적으로 방언을 함께 권장하는 근본적 이유는 고유어의 샘물이 마르지 않게 한국어의 생태 환경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과거와 현재의 문인들에게 공통어와 방언을 지켜내고 풍부화시킨 그들의 공로를 우리는 크게 찬양하여야 할 것이다. 민요와 설화 등 구비문학에 있어서 그 지방의 방언이 그대로 매체가 된 김영돈의 ‘제주도 민요연구’(1965)에 “방엔 보난 굴묵낭 방에 절권 보난 도에낭 절귀방아는 보니 느티나무 방아 절굿공이”와 같이 제주방언으로 노래한 작품이 많다.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는 당연히 전라 방언으로 구사되어 있다. 특히 채록을 통한 구비문학 연구가 70년대 이후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지방의 방언 구어들이 민요나 설화 전설에 대량으로 기록유산으로 전해온다.
이균옥(1998)의 ‘동해안 별신굿’은 동해안을 따라 강릉에서 부산 다대포까지 내려오면서 각종 별신굿의 연희 내용을 채록한 기록문학이다. “우리 영감 디베졌십더/영감 디비졌다꼬?/예 진찰 좀 해주이소/어/우리영감 좀 살려주이소/오 긇나/예, 예”에서처럼 경상도 사투리 구연 그대로를 채록한 무가 자료는 마치 곁에서 말하는 듯하다.
이재욱(1930)이 채록한 ‘영남전래민요집’의 상주지방 ‘모숨기소리’에서는 “상주 함창 공갈 못에/연밥 따는 저 큰 애기/연꽃은 따지 말고/이내 품에 잠을 자세/잠자기는 어렵잔에도/연밥 따기 늦여간다/머리 조코 잘난 쳐자/울 뽕남게 거란잔네”라는 지방 민요의 맛깔을 돋우는 것이 바로 방언의 기능이다. 따라서 문학 작가들을 일컬어 언어의 창조자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도 한 개별언어의 생태적 조건은 새로운 대상을 상징하는 다양한 조어능력을 갖는 일이다. 만일 새로운 단어의 조성 능력이 단절되면 그 언어는 사라지거나 혹은 변질되어 변종으로 바뀌게 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본격적인 K-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한국고전문학의 번역 문제는 꽤 심각한 문제이다.
한국의 전통 문화의 정수가 담긴 ‘모숨기노래’와 같은 민요나‘열녀춘향수절가’와 같은 판소리를 어떻게 다국적 언어로 번역할 것인가? 방언으로 된 한국고전을 한국어 공통어로 번역한다면 우선 그 문학의 토착적 배경이 모두 무너져 버릴 터인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외국어로의 번역은 더욱 난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방언문학의 번역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관심과 연구가 매우 긴요한 과제이다. 세계문학으로 진출하기 위한 크나큰 문턱이 가로막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