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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해 시인, 열악한 언어생태 환경의 파수꾼

등록일 2024-12-09 19:04 게재일 2024-12-1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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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김병해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아뜩한 절간’은 튼실한 언어로 축조된 자신의 시 세계를 반딧불이 같은 초롱불빛 등을 우리들에게 내밀고 있다.

문형렬은 “단단하면서도 깊은 서정의 시어를 빚어낸 그는 이번 시집에서는 평이하면서도 울림이 깊은 목소리로 존재의 적적한 모습들을 가만가만 노래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맞춤맞은 시평이다. 시인은 새로운 단어를 낳는 연금술사다. 시인이 아름다운 단어들을 빚어 어떻게 적재적소에 잘 배치할 수 있는가가 시인에게 거는 나의 기대다.

그런 의미에서 김병해는 밀려드는 외래어와 잡종의 혼종어들이 깨끗한 언어를 잡아먹는 열악한 언어생태 환경에서 우리말을 지켜내는 파수꾼이다.

‘외따름히’, ‘별쫑맞은’, ‘바위너설’, ‘휘우듬히’, ‘생떼거리’, ‘북재비’, ‘구부스름’, ‘무젖은’, ‘들큰’, ‘놋갓쟁이’, ‘흔덕이는’, ‘허릿매’와 같은 잘 사용하지 않거나 사전에도 없는 낱말을 곧잘 만들어 내는 기량을 김 시인은 가지고 있다.

“좁장한 이랑의 민둥 산비탈 끝녘/숨은 듯 위뜸 봇둑작은 과수밭/껍질에 닫혀 부푸는 과육이 우겨대던/늦가을 이즘 시렁 문턱밖으로/도톰하니 여문 과실 떠나보낸 나무가 편안합니다//들명달명 되풀이들이밀던 바람의 흘레질/물관부 체액으로 테두리 잎맥마다/얼치기 골백번생각만으로 헤아리던/크기와 무게에다 호흡을 쏟은 탄탄한 열정/그 결기 찬찬히 되걷는 저녁 시간입니다//뭉툭 무뎌진 밑동 늦도록 바닥에 끌리면/휘어진 그루, 결별의 그림자는 길어서/가쁜 숨이 잦아들어 심이 될 때까지/수그린 빈 몸으로 저물을 맞서는/참 오래된 사과나무의 시간입니다”(오랜 사과나무의 시간)에서 ‘좁살한’, ‘위뜸’, ‘이즘’, ‘들명달명’, ‘되걷는’, ‘수그린’, ‘저묾’과 같이 새로운 낱말 만들고 간간이 경상도 사투리를 살포시 끼워넣는 재주를 가진 시인이다.

‘안부’는 아예 전편이 경상도 방언이다. “하모 글치/내사 여서 잘 있데이//카마 니는 거 머 하미/어데 우째 지내노//암마 빌일 읎는 기제/공연시리 궁겁네//꽃 지기 전/함 댕기 가그레이”.

경상도 출신 가까운 친구와 전화로 주고받는 대화로 서로 어떻게 지내는가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걸걸한 목소리이다. 이 방언 시의 텍스트를 읽으면 소리가 일어난다.

마치 곁에 경상도 사람들의 일상이 소리와 풍경화로 다가온다. 마지막 연은 누구의 목소리라고 할 것 없이 둘 다 서로에게 또는 스스로에게 당부하는 말이기도 하다. 보고 싶으니 한번 다녀가라는 말이다.

이 대화 시의 주인공은 오랜 친구일 수도 있고 멀리 사는 일가친척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꽃 지기 전일까? 꽃 지기 전이라면 언제일까? 그것은 꽃이 한순간 지고 만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두 사람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짧은 지상의 이 순간이 다하기 전에 서로 한 번 다녀가라고 권하는 절묘함을 표현하고 있다. 꽃이나 나무는 시인의 시적 소재에 매우 중요한 매개인 동시에 시인의 인식과 존재의 옷깃으로 현재화된다.

꽃이 지듯 짧은 시간성은 인간 존재를 빗댄 상징성이다. 김병해 시인은 자연 속 식물에 대한 촉감이 매우 뛰어나다.

“살점의 뿌리는 뼈대이고/유년의 뿌리는 기억이다//바다의 뿌리가 강줄기라면/별빛의 뿌리는 어둠이다//세상 모든 뿌리 없는 것들 그러모은/저항의 뿌리는 불길이겠지만//방목한 빈 바람 소리만/내달리는 폐사지//아무 말 않고서도 모든 것을 말하는/뜨겁게 북받치는 모든 것들의 언어//적멸의 뿌리는/여태 숨죽이던 버젓한 비명이다”(‘모든 것들의 뿌리’)에서 그의 인식과 사유의 뿌리가 도달한 곳은 존재라는 나무의 뿌리이고 그 적멸의 뿌리는 언어이며 시라는 비명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김병해 시인은 낱말 만들기에만 능숙하게 아니라 시어의 현상적 의미에 대한 깊이를 철저하게 가늠하는 세련성을 지녔다. ‘뜨다,는 말의 생애’는 11종의 ‘뜨다’라는 낱말이 품고 있는 의미망을 엮어 한 편의 시로 만들어내었다.

시인학교를 빗댄 그의 풍자적인 시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취한 인구 감소에도 시인은 넘쳐 학급 대폭 증설”, 하하하, 위대한 시인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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