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 정인지 후서에 “사방의 풍토가 서로 다르면 소리 기운이 또한 거기에 따라 달라진다(與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고 하였다.
서울 사람, 충청도 사람, 강원도 사람,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 부산 사람이 각기 독특한 기질이나 성정의 차이가 있는 것은 지리나 풍토에 따른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흔히들 경상도 사람들의 말소리가 다른 지역보다 더 억세고 투박하고 거칠다고 느끼는 것은 경상도 말씨의 강한 높낮이 때문인데 같은 경상도에서도 바닷가 사람들의 말씨가 더욱 억세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말소리가 파도소리를 이겨야 하는 삶의 터전 탓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지역 방언은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삶의 전통과 성정이 어우러진 것이지만 1933년 국어맞춤법통일안이 제정되면서 서울 중심, 교양인 중심의 표준어 교육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방언은 저절로 금기시되었고 억제되었다. 한때 방송 언어에서조차 사투리는 사용 금지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심지어 드라마에서는 출연 인물의 신분이나 직업적 특성에 따라 특정 지역 사투리 사용자로 배정하여 방언을 계급적 상징으로 다루기도 하였다. 대구 출신 민경식 감독이 1960년에 만든 영화 ‘경상도 사나이’는 주인공 김 기자(이대엽)와 여자 친구 순경(조미령)과의 러브스토리인데 당시 인기 배우였던 조미령이 마침 마산 출신이어서 실감나는 멋진 사투리로 연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친구’에서 부산 사투리는 ‘조폭’의 이미지로 크게 히트되었다.
시와 소설 그리고 희곡 등과 같은 문학 장르에서 방언은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이나 문학 기교의 소중한 장치로서 끊임없이 사용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대구 시가지 풍광을 배경으로 한 김원일의 소설 ‘마당 깊은 집’(문학과지성사)이 대표적이다. “설령 점심밥을 굶어 배가 쪼매 고푸더라도 사나이 대장부가 될라카모 그 쭘은 꿋꿋이 참을 줄 알아야제.”에서 텍스트를 이해하려면 소리를 내어 읽어야 제 맛이 난다.
경남 하동 배경의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다산책방)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상에, 하도 기이하고 숭칙해서 말도 몬 하겠다. 우사스러서 우찌 살겠노, 어무이하고 그 말을 할라 카다가 차마 쇠가 안 떨어지더라.”이 소설에서 종종 발견되는 ‘하-모’에서처럼 동사의 어근 ‘하-’에 접속어미 결합형인 ‘하-마, 하-모’는 경상남북도를 가르는 매우 특징적인 말투이다. 물론 경북이나 경남 화자가 아니면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릴 수 없다. 하지만 최근 딥러링을 한 AI 소리지원 시스템이 어느 정도 이 같은 방언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방언적 특성이다.
이제는 문학이 단순한 텍스트 전달 방식이 아닌 소리와 관련된 풍경까지 지원하는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세종대왕 시절에 이미 간파했듯이 중국어와 조선말이 다르고, 조선 내에서도 삼남지방의 풍기가 달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정이 다르듯 그들의 말씨도 차이가 난다. 그런데 그 말소리와 꼭 같이 적을 수 있는 문자가 ‘훈민정음’이라고 했는데 사실 현재 문어와 구어는 엄청나게 차이를 보인다. 특히 방언과 같은 지역의 소리는 소리대로 적지 않았다. 구어 일치가 아니라 오로지 표준어를 중심으로 한 문어 일치로 교육을 받은 결과 지방의 토속어 정보에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배우 최불암이 출연한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았다. 특히 산촌이나 어촌 지역의 식재료 이름은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경남 하동 읍내시장 어물전 아지매가 몸을 일으키며 “배다구 몇 마리 사가이소”라고 외친다. ‘배다구’가 생선 이름인가 했더니 ‘배다구’는 생선 이름이 아니고 배에서 고기를 잡자말자 제 자리에서 소금 간을 쳐서 말린 고기를 뜻한다고 했다. 보리숭어나 민어 등 소금에 절여 말린 고기인 배다구를 사다가 맛있게 조림을 한 밥상을 차린다.
“표준어 글쓰기”의 압박으로 토박이말을 빼앗긴 우리들의 글 속에서인들 방언을 마음 편하게 사용할 형편이 아직 안 된다. 그러나 선조들의 지적 체험과 정서적 감정이 듬뿍 배어 있는 향토말인 사투리 글쓰기로 지역 소멸을 막아내는 지역 사랑운동 한번 전개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