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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이라고 모두 시어가 될 옥돌은 아니다

등록일 2024-10-28 18:45 게재일 2024-10-2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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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조건어학회 사건 33인 가운데 한 분인 환산 이윤재 선생은 ‘조선어큰사전’ 편찬을 위한 기초 작업으로 사전의 올림말을 선정하는데 꼭 필요한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외래어를 선정하여 외래어 표기법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사전 올림말을 표준어로 한정하였지만 실제로 다양한 지역 방언을 조사하여 사전에 싣기 위하여 전국의 방언조사를 위해 최현배 선생이 작성한 ‘시골말 캐기 잡책’이라는 방언조사 질문지를 이용하여 전국 방언을 수집하였으며, ‘한글’잡지를 통해 조사된 자료를 연재하는 동시에 방학을 이용하여 경성에 있는 팔도 출신 대학생들에게 자기 고향말 수집을 독려하였다.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만들기 위해 어떤 말을 표준어로 삼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표준어 발표식’에서 이윤재 선생이 설명한 글이 남아 있다. “이제 발표하는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은 조선어 학회에서 삼 년 전부터 조선어 표준어 사정 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래 사정에 애써 오던 것입니다. 나는 이제 이 책의 내용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라고 하면서 표준어를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에 대한 원리원칙을 발표하였다. 상용어를 기준으로 하되 ‘같은 말’과 ‘비슷한 말’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매우 중요한 원칙도 제시하였다.

‘잠자리’의 경우, 이를 표준어로 하되 같은 말로는 ‘잠바리’, ‘잔자리’, ‘철갱이’, ‘철기’ 등과 같이 다양한 지역방언들이 나타난다. ‘같은 말’이라 함은, 한 사물에 꼭 같은 뜻이 있어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쓰는 것이다. ‘잠바리’, ‘잔자리’와 같이 ‘잠자리’에 대한 음운론적인 변이형을 전등어(全等語)라 하여, 그 여러 개 가운데서 하나만 뽑아 표준어로 정하고, 남은 것은 다 버려야 한다. 대사전에 이렇게 다양한 방언들을 모두 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잠자리’, ‘반자리’, ‘잠바리’와 같은 전등어 가운데 ‘잠자리’를 대표로 큰사전의 올림말에 싣게 되었다.

또 ‘갈구리’, ‘갈고리’, ‘갈쿠리’, ‘갈코리’, ‘갈구지’, ‘갈쿠지’, ‘갈고랑이’, ‘갈구랑이’, ‘갈코장이’, ‘갈쿠장이’ 등 십여 개나 되는 전등어도 있으나, 그중에서 한 개만 표준어로 세우고 그 밖의 것은 다 치워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음운론적으로 조금 차이가 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잠자리’에 대응해서 ‘철기’, ‘철갱이’, ‘철구’와 같이 형태는 전혀 다르되 ‘같은 말’도 있다. ‘범:호랑이’라든지, ‘옥수수: 강냉이’와 같이 소리가 아주 다르면서 뜻이 같은 말도 있다. ‘비슷한 말’은 얼른 보아서는 전등어로 보기 쉬우나, 실지 그 내용을 자세히 따지어 보면, 거의 같은 듯싶지만 어느 점으로든지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고, 또 달리 쓰이는 때도 있으니, 이것을 각립어(各立語)라 한다.

곧 형태론적 변이형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방언형은 지역적 특성으로 언어의 변화 시기와 방법의 차이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다. 한반도 북방은 ‘벼’라고 하는데 동남방에서는 ‘나락’이라고 한다. ‘벼이삭’과 ‘나락이삭’, ‘볏단’과 ‘나락단’처럼 각립어는 새로운 어휘 합성을 하는 데까지 나타나 우리의 한국어를 보다 풍성하게 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표준어 사정 원칙 때문에 지역적으로 서울지역어가 아닌 때문에 ‘나락’은 방언이 되고, 사전의 올림말에서 구축당했다. ‘강냉이’는 그 분포지역이 워낙 넓은 덕에 구제되어, ‘옥수수’와 함께 표준어로 대접을 받는 행운을 차지했다.

1933년 맞춤법통일안이 만들어지고 조선어 대사전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이처럼 매우 세심하게 표준어로 무엇을 올림말로 삼을 것인지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이윤재 선생은 “표준어를 될 수만 있으면, 전 조선 각 지방의 사투리(方言)를 있는 대로 다 조사하여, 여기에 대조하여 놓는 것이 떳떳한 일이겠으나, 이것은 간단한 시일에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것일 뿐더러, 분량이 너무 많아 인쇄에도 곤란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그리 못된 것을 매우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라고 하면서 앞으로 방언을 살려서 지속적으로 우리의 국어를 보다 풍족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 두었다.

따라서 방언에 대한 기본적 식견이 없이 마구잡이로 방언을 소리나는 대로 문학어로 끌어다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방언을 거칠고 남루한 언어로 밀쳐내는 일이나 다름이 없다. 특히 문학어로 사용하는 방언은 전등어와 각립어의 기준을 준수하여 잘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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