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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 말은 안 듣고, ‘내비’ 말만 듣는 시대

등록일 2024-10-14 18:14 게재일 2024-10-1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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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추석날 가족 나들이 나서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던진 말이다. 점심 무렵 “다양하고 맛있는 뷔페는, 아이리스 뷔페”에서 베란다 ‘섀시’가 ‘샷시’로 ‘바이닐봉투’가 ‘비닐봉투’로 ‘프로페인가스’가 ‘프로판가스’로 ‘뷰테인가스’가 ‘부탄가스’로 표기된다. 뭐가 맞는지 도무지 헷갈린다. 생활 속에 침범해 들어온 외국어들이 넘쳐난다. 외국어, 외래어의 남용, 신조어와 축약어의 범람, 두문자만 이어 쓰는 등 올바른 소통의 장애는 셀 수 없이 많다.

우리말이 있는데도 외국어음차표기나 외래어를 사용하는 분위기는 이미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파티, 톱, 라이프, 라인, 바캉스, 스팀, 레스토랑, 블라우스”는 일상화된 사례다. 우리말과 외국어음차표기가 마구 뒤섞인 “게임광, 깜짝쇼, 디지털화, 치킨집, 레게 음악, 휴대폰, 광케이블, 비피더스 유산균, 빵나라”도 있다. 외래어처럼 표기한 “예그리나, 타미나, 더존 전자 믹스, 조아 약국, 비치나, 유니나, 푸르미, 예스런, 맛나니, 새우깡, 조아라, 푸르지오” 등은 국적 불명의 언어로 변질된 예이다.

전문용어로 사용되는 경제, 패션, 컴퓨터, 공학, 과학 계열의 언어들은 일반 국민이 충분히 소통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한자어처럼 계급과 지식의 범주에 따른 언어 차등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필자가 방언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모국어의 조어능력을 확장시켜 새로운 문물을 우리말로 잘 다듬어내어 소통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방언들을 조금 더 미화시킨 문학용어로서 장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언어의 다양성을 위한 전략이었다. 나의 방언에 대한 인식은 방언을 단순히 표준어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방언과 표준어의 경계를 다소 느슨하게 하여 순수한 모국어의 운용의 폭을 넓혀줌으로서 고유어 조어능력을 키워내자는 의도이다. 표준어 한가지로만 소통하라면서 강제하던 국가어문정책이 쏟아져 나온 외국어, 외래어, 약어, 두문자 쓰기 등 공공언어의 소통 체계가 몰락하는 지경은 왜 방관하고 있는가?

경북 성주 출신의 고 문인수 시인의 “옛집은 사투리다”라는 시를 보자. “엉퍼드기 엉퍼드키 울어뿔고 싶다./웅굴을 뻐져나온 동캉맨치로 그래/아부지예, 어무이예, 부르미/배껕마당부터 우신에 모지리 적수고 싶다//우묵하이 짓은 풀대 풀 떼 새로 똥근 것들, 장꼬방이 비고/통시 여불데기 담우락엔 헌 수굼포 한 잘리 서 있다.//먼 산 산날망에 먹구름 걸려서/올라카나 말라카나 우쨀라카노 비,/매불대 씹은 매분 가심 묽쿠고 싶다.” 시인은 방언을 오래된 집, 곧 오래된 사유와 지식으로 지어진 집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비를 기다리는 농민의 심정으로 오래 묵은 방언으로 지은 한 채의 존재의 집이다. ‘엉퍼드기(웅덩이 물을 푸듯)’, ‘모지리(모조리)’, ‘수굼포(삽)’, ‘산날망(산꼭대기)’, ‘매불 때(여뀟대)’, ‘매분(매운)’ 등 경상도 방언을 하나하나 예술적 심성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러한 국어정책의 일환으로 국립국어원에서 한국시인협회에 지원하여 토박이말 시집 “니 언제 시건들래?”라는 시집이 만들어졌다. 이 시집에 실린 안동 출신 송종규 시인의 ‘고등어’라는 작품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방언들을 살펴보자. “다무 한 번의 태무심에 허를 찔렸니더 다무 한 번의 신뢰가 결국 지 모가지 줄을 잡아 땡겼니더 뭐 별꺼 있니껴? 이녁의 손가락 끄티에서 맛있는 밥풀떼기와 향기로운 불빛이 번들거리던 그맘때, 하마 게임은 끝났니더, 지는 젔니데이,//오늘 내 삶의 소용돌이와 먼 길의 고저장단 전부를/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솟구치는,/흰 글씨들/어디론가 나도 솟구쳤다//내가 나를 기록할 수 없는 순간이 첫눈처럼, 닥쳐왔다/저녁의 불빛이 등을 구불이고 태연하게/입을 닦는다”. 그냥 슬쩍 읽고 넘어갈 작품이 아니다. 시골 안동 가람의 진한 말투는 깊은 심해에 유유히 헤엄치는 싱싱한 한 마리의 고등어, 그 고등어는 과거 안동의 처녀 송종규였다. 이녁(당신, 안동방언에서 2인칭 대명사)이 놓은 불빛 낚시에 코가 매였을 때 이미 잔치는 끝이 났다. 게임은 끝난 것이다. 현실의 밥상을 차리고 그 차린 밥상은 내 삶의 소용돌이와 고저장단으로 차린 흰 글씨들 고등어가 낚시에 낚여 올라갔듯이 “어디론가 나도 솟구쳤다”. 이 무렵 시인 송종규의 삶은 내가 나를 기록할 수 없는 순간의 첫눈처럼 은빛 반짝이는 생선 고등어였을 뿐이다. 고등어를 소재로 열여덟 살 안동 소녀의 꿈과 무너진 스토리는 문인수 시인의 “옛집은 사투리다”와 다를 바 없는 오래된 추억을 자아올리고 있다. 방언은 변두리의 무력한 언어가 아니라 이토록 가열찬 언어의 찬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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