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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 사이의 이정표, 충북 방언시

등록일 2024-09-23 18:40 게재일 2024-09-2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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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방언은 흔히 양반 말이라고도 한다. 호서 방언 혹은 서남방언이라고도 하는데 충북과 충남 방언은 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충청 방언은 경기 방언과 억양, 음운, 문법 면에서 이질적인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따로 구분하여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충북 방언은 경기 방언과 호남 방언의 중간점에 위치하여 둘 사이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해유’와 같이 말끝이 길게 늘어지고 말의 흐름 또한 느리고 온화하며, 억양이 차분한 것이 특징이다.

충북 방언은 단양, 제원군, 중원군, 괴산군의 연풍과 장연 지역의 동부 방언권과 중원군, 음성군, 진천군, 괴산군, 보은군 등지의 중부 방언권, 옥천군, 보은군, 영동군의 동부 지역 등 남부 방언권으로 나뉜다.

충청북도는 박완호, 서경은, 오탁번, 윤관영 등 이름난 시인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진천 출신의 박완호 시인은 ‘씨부럴’이라는 시에서 충청도 방언의 특유한 말투인 ‘~유’를 적절하게 섞어 충북 방언의 말맛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시팔이라구 쓰구는, 씨부럴이라구 했시유,/가 봐야 인자는 모냥새도 안 남은/구봉리 고향집, 푹석 자빠져부린/기둥이랑 들보 쓱어가는 새/여그저그 속 모르구 고개 쑥쑥 내민/풀잎사구 흔드는 바람만/괴사리손 빠져나가는 미꾸리들뫼양/눈그물 밖으로 내삐는디” 오랜만에 찾은 구봉리 고향집의 전경을 고향의 어법으로 구사한다. 충청도 방언에서 ‘ㅓ:’는 ‘ㅡ:’로 실현되며 말투 역시 느릿하게 ‘~유’라며 말꼬리가 축 드리워진다. 시의 말미에 “낫살에 안 맞게/엉엉 울어버리구 말았시유”라며 구봉리 고향을 나이들어 뒤늦게야 찾은 시인은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알싸한 고향의 그리움은 고향의 말씨와 뒤섞여 제 맛깔과 빛깔을 찾게 된다.

제천 출신 서경은 시인은 충청도의 낱말 가운데 ‘올뱅이(다슬기)’, ‘새뱅이(새우)’라는 단어로 한 편의 시를 지었다. 제천과 인접한 경북 영주지역에서도 ‘올뱅이’, ‘올갱이’라는 방언이 나타난다. 옹솥에 펄펄 끓인 새뱅이국과 올뱅이국을 끓여 먹으며 강에서 물놀이하던 추억을 한편의 그림처럼 그리고 있다. 우리말에서 ‘ㅂ’과 ‘ㄱ’은 쉽게 교체된다. 소위 음운교체라고 한다. ‘올뱅이’와 ‘올갱이’는 ㅂ과 ㄱ의 교체형으로 ‘붚(붑)>북(鼓)’의 변천과 같은 예이다. “물놀이에 함께 가지 못하고/혼자 집을 보고 있노라니/부아가 치밀었던가/옹솥 안에서 ‘새뱅이’들이/또 한 번 끓어오르며 왁자지끌하였으나/늦은 저녁으로 먹은 ‘새뱅이’국맛은/여전히 달랐다.”라며 충청도 제천의 대표적인 방언 어휘인 ‘올뱅이’와 ‘새뱅이’로 맛있는 한 상의 저녁상을 차려낸다. 오탁번의 산문집 ‘두루마리’(태학사, 2020)를 보면 그가 충북 제천 방언을 얼마나 아끼며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스스로를 ‘별별 오두방정을 떠는 철부지 시인’이라고 ‘자뻑’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방언으로 언어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그는 참 아름다운 시인이다. 그의 시 ‘잘코사니’에 나오는 ‘잘코사니’는 얄미운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하거나 봉변당하는 것을 고소하게 여길 때 내뱉는 제천 방언이다. 경상도 방언으로는 ‘아방신이다’, 서울방언으로는 ‘고소하다’정도의 말맛을 가진 단어다. 탁월한 방언 시인이기도 했던 오탁번은 “쥐코밥상 앞에서/아점 몇 술 뜨다가 만다/저녁은 제대로 먹으려고/밥집 찾아 들랑날랑하지만/늙정이 입맛에 영 아니다/다 버리고 고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을 찾아왔는데/입은 서울을 못 잊었나 보다/야젓하게 살고 싶지만/뭘 먹어야 살든 말든 하지!”에서 ‘쥐코밥상’, ‘늙정이’, ‘야젓하게’와 같은 제천 입말을 고급진 표준어 사이에 이정표처럼 끼워넣어 고향으로 간다. 오탁번 시인은 과연 “남몰래 슬프고 황홀했던” 삶을 살았던 것일까. 마치 자신의 모어, 살가운 사투리에 살짝 갸울은 시인이었다. ‘눈부처’의 “이승 저승이/입술에 닿는 술잔만큼/너무 가까워/동네사람들은 함빡취했다/-잔 안 비우고 뭐해유?/한 씨에게 자꾸만 술을 권했다”에서처럼 쉬 이승을 떠난 고향사람들을 회상하듯 자신도 입술에 닿는 술잔만큼 가까운 저승으로 떠났다. 노루잠에 개꿈을 꾸듯 살았던 이승의 그리움을 뒤로 밀어두고.

필자는 오탁번 시인이 남긴 방언시를 매우 아끼고 사랑한다. 시어로 방언을 마구잡이로 노출시켜 시적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시들은 오히려 방언을 오염되고 누추한 변종으로 추락시킨다. 이에 반해 오탁번은 방언 시어를 적절히 끼워넣어 시적 미의식을 감쇄시키지 않는 절대 균형을 이룬다. 섬세한 절제의 언어 수단으로만 방언을 시어에 사용했다. 방언시어로 언어의 원형을 복원하고 또 그 원형의 상징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표준어가 고급진 언어라면 방언은 그 고급진 언어로 향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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