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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데보라 스미스의 ‘HUMAN ACTS’

등록일 2024-11-18 18:51 게재일 2024-11-1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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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5·18 시민군에 휩쓸린 어린 소년 동호의 죽음을 회상한 ‘소년이 온다’는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작에 선정되기 이전 2014년 만해문학상,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전세계 20여개국에서 번역 출간되면서 한국문학의 세계화의 길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벨상을 계기로 이제 우리나라 문학이 세계의 문턱을 넘어 세계 각국의 독자와 한결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한국 민주화의 전환점을 불러온 5·18민주화운동은 광주를 지역적 배경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일어나서는 아니 될 내전에 가까운 전쟁으로 인해 숱한 생명이 고문과 학살로 사그라졌다. ‘소년이 온다’는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공간 속에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다룬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소설”(가디언)로 평가되었다. 교련복 차림의 어리고 어리숙한 동호의 이름없는 죽음에 그의 어머니는 리얼한 광주방언으로 피눈물을 쏟아낸다.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시와 천착의 서사”인 이 소설 중 제6장 ‘꽃 핀 쪽으로’는 당시 중학생이었던 동호의 죽음에 대해 20여년이 지나서 동호를 가장 사랑하던 어머니가 지난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대사와 지문이 구분이 없되, 광주방언만이 깨알처럼 박혀 있다. 작가 한강은 동호의 죽음만이 상처가 아니라 그의 일가족과 광주시민 모두가 헤어날 수 없는 오래 묵은 상처를 가지고 있음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 머시매를 따라갔다. 머시매 걸음은 빠르고 나는 늙었는디, 아무리 걸어도 따라잡을 수 있어야제. 조금만 옆으로 고개를 돌려주먼 옆얼굴이 보일 것인 디, 아무 데도 안 둘러보고 앞으로, 앞으로만 가야. 요새 어느 중학생이 그리 짧게 머리를 깎겄냐이. 동그스름한 네 두상을 내가 아는디, 분명히 너였다이. 느이 작은형이 물려준 교복이 너한테는 너무 컸다가 3학년 올라감스로야 겨우 몸에 맞았제.”

작중 화자는 한글을 조금 읽을 수 있는 가난하고 무지한 광주의 소시민인 동호의 어머니다. 그의 언어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이미지는 오래전 한국의 어머니의 전형이 아닐까? 자연 그의 언어는 토착의 사투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나의 관심은 바로 이러한 광주 방언이 번역문에는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였다. 지역의 토착적 분위기가 동호의 죽음과 가족사에 그늘진 모습을 어떻게 투사하고 있는지를 밝혀보고 싶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Deboraha Smith)의 ‘HUMAN ACTS’ GRANTA 영어판을 사서 살펴보았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는 탁월한 한국문학 번역가로 알려졌고, 특히 한강의 소설을 훌륭히 번역한 것으로 영국 맨부커상도 한강과 공동 수상한 번역가다. 한강을 뛰어넘어 제2의 한강이라며 그녀의 번역에 대한 호평이 자자했다. 그러나 방언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앞의 동호 어머니의 독백과 같은 광주방언 대사는 지나친 의역으로 원작이 품고 있는 토착적 향기는 모조리 증발되어 버렸다. 그도 방언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충분히 했을 거라는 짐작은 간다.

필자는 번역전문가는 아니지만 문학작품 번역에서 방언을 어떻게 투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오래도록 해 왔다. 1885년 미국의 마크 트웨인이 쓴 ‘허클베리핀의 모험’은 형식상으로는 ‘톰소여의 모험’(1876)의 속편으로 발표되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흑인과 백인의 언어는 사회적 방언으로 차이가 컸는데, 흑인의 방언이 그대로 쓰여 큰 이슈가 되었다. 글로 쓰인 방언을 가시방언(Eye DIalects)라고 하는데, 이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들이 이어졌다.

향후 k-문학이 세계로 뻗어나기 위해서는 우수한 원작이라는 조건에 더해 탄탄한 번역이라는 또 하나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

토착 방언에 대한 문학적 기능과 역할에 대한 국제적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미세하고 다양한 인류 언어의 공통적 자산을 한 단계 도약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AI기계번역이 도달하지 못하는 문맥에 따른 이미지의 다양성, 상징과 비유 그리고 방언의 번역이라는 보다 순도 높은 언어 소통의 기술력을 위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 그리고 투자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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