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의 근대의 여명기에는 육당의 덜 다듬어지고 조잡한 회화체 형식의 신체시로 시작되면서 전통과의 연계 대신 문학사의 단절을 가져왔다. 20년대는 서구의 상징주의와 낭만주의를 흉내낸 아마추어적 문학 풍조와 계급문학이 득세하면서 한국의 현대시사는 서구의 문학에 접목되는 기이한 과정을 거쳤다. 30년대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국제적 안목을 지닌 모더니티가 정지용과 김광림과 같은 탁월한 재능과 기질을 갖춘 시인들에 의해 세련된 초현실주의나 다다이즘에 근접하는 문예 양식이 만들어졌다.
과다한 한자 어휘를 배격하거나 생경한 일제식 외래어를 가능한 시의 언어에 배제했던 20년대 소월, 30년대 백석, 정지용 등이 이룩한 성과는 시문학에 언문일치를 이루었다. 이들에 의해 우리말의 싱싱함과 푸르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는 토착어를 적절하게 시어에 반영하여 시어의 구어적 청각적 전통성을 이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노래하는 시, 씌어진 시라는 측면에서 구전적 전통과 회화체의 관습을 현대시로 이어낸 것은 근대적 단절이 아닌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평가될 일이다.
이 시기에 토착어 지향의 시적 경향이 강할수록 성공적인 시라는 판단이 가능한 이유는 당대의 소월, 만해, 백석, 이상화, 김영랑 등과 같은 시인들의 시작에서는 한자어나 외래어가 절제되지 않아 참담한 시적 실패를 보여주는 것과는 상반된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알 수가 있다.
시인 정지용이 1923년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시 ‘향수’(‘조선지광’ 65호, 1927년 3월)의 예를 들어보자. 시문학파가 일군 토착어 지향성은 단순한 언문일치운동의 차원이 아닌 토착어가 섞인 고향의 노래이기 때문에 그 호소력이 각별하다. 한자어나 외래어와 같은 생경한 언어가 아닌 어린이나 유민들의 구어적 언어가 잃어버린 고향의 실체를 경험하는 역할을 해 주기 때문에 쉽게 노래로 전파될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중략//하늘에는 성근 별/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이 시에서는 토착어의 배타적 조직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마구잡이로 토착어를 남발하듯 쏟아 부은 게 아니라 절묘하게 방언을 잘 섞어놓았기 때문에 피상성이나 억지를 부린 듯한 혼란은 충분하게 배격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토착 지향의 30년대 시문학파 시인들은 최소한 느낌에 섬세한 구체성을 부여하고 드물게는 느낌과 생각의 긴밀한 통합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향수’에서 등장하는 토착어는 매우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에서 ‘지줄대다’라는 시어는 마치 실개천의 흐르는 물소리를 연상할 수 있게 한다. ‘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에서 ‘얼룩백이 황소’는 우리 전통적인 일소인 칡소로 검은 반점이 있는 소의 심상적 이미지를 이어준다.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이라는 표현은 이 시에서 매우 중요한 전경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소의 울음을 비인과적인 시간성 언어인 ‘해설피’로 표현한다. 소의 울음을 시각적으로 금빛으로 마치 게으른 칡소가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전경은 한 폭의 이미지요 그림이다. 텅 빈 밭에 밤바람 소리는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이 밀려들어 마치 말이 달리는 듯하고 하늘에는 듬성듬성한 별이 모래성으로 옮아가는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 이미지로 드러낸다. ‘얼룩백이 황소’, ‘질화로’, ‘늙으신 아버지’, ‘짚베개’,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 ‘사철 발 벗은 아내’, ‘서리 까마귀’,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 등 시인의 공감각을 절묘한 토착어로, 저녁 무렵에서 밤으로 다시 새벽으로 이어지는 고향의 늦가을 전경을 시간적 이미지로 이어낸 작품이다. 시간적으로 유서 깊은 고향의 추억을 시공간으로 엮으면서도 시인의 경험을 뿌리깊은 토박이 말로 이미지화하여 잘 꿰어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