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배추 값이 금값이다. 배추로 만든 음식 가운데 김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애호하는 토속음식이다. 그러나 이제 김치는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 웰빙음식이 되었다. 남부 방언에서는 김치를 ‘짠지’ 또는 ‘짐치’, 또 ‘지’라고도 한다. ‘짐치’는 한자어 ‘침채(沈菜)’에서 온 말이고, ‘지’는 고유어 ‘디히’에서 온 고어이다. ‘지’의 종류로는 ‘짠지’, ‘오이지’, ‘무시지’, ‘고들빼기지’ 등 다양하다. ‘배추’나 ‘열무’로 김치를 처음 담글 때, 금방 담근 김치를 경상도에서는 ‘생지래기’, ‘생재래기’라고 하고 전라도에서는 ‘쌩지’라고 말한다. 아마 임시로 먹기 위해 배추를 양념에 무친 것, 곧 날로 절인 김치라는 의미다.
호남 지역에서는 ‘짓국’이라는 반찬이 있다. 이 말은 이 지방에서는 ‘김치의 국물’이라는 뜻도 있고, ‘열무에다가 물을 많이 넣어 삼삼하게 담근 김치’를 말하기도 한다. 후자를 이 지방에서는 ‘싱건지’라고 한다. ‘싱건지’의 ‘싱건’은 ‘싱겁다’의 관형사형이다. ‘짓국’ 또는 ‘싱건지’를 ‘물김치’라고도 말하는데, 이 ‘물김치’라는 말은 서울말에는 없었고 요즘 새로 생긴 말이다. 호남 지역에서는 김치를 담는 배추와 무를 통틀어 ‘짓거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특히 전북 지역에 가면 음식에 곁들여 주는 ‘멀국’을 표준어 사정 원칙 제4절에서는 ‘국물’의 방언형으로 즉 ‘멀국’을 ‘국물’과 의미가 동일한 것으로 처리하여 ‘국물’을 표준어로 채택하고 ‘멀국’을 버릴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토속음식을 소재로 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시인은 백석이다. 함경도 토속적인 음식의 맛깔, 빛깔, 냄새, 씹는 소리와 식감을 버물어 내는 시는 향토적 맛의 향연이며 오랜 전통의 기억과 추억을 회생시켜낸다. 대구경북에서 김종필 시인이 시집 ‘뭉티기’에서 이 지역의 음식 72편을 소재로 하여 언어로 차린 엄청난 음식상을 우리들에서 선사하였다. ‘따로국밥’, ‘갱시기’, ‘뭉티기’, ‘양푼이찜갈비’, ‘과메기’ 등 대구경북의 토속음식 이름을 가져와 시로 버물어내었다. “소 엉덩이 뭉텅뭉텅 막 썬 뭉티기/구이 수육보다 먹기 거북스럽지만/다진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 양념장에 찍어/눈 찔끈 감고 먹으면 인절미 맛….” 김종필 시인은 ‘뭉티기’라는 시에서 뭉티기 고기의 맛이 입속에서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까지 그려내고 있다. 뭉티기는 대구경북에만 있는 특유의 소고기 생고기 음식으로 생고기를 잘게 썰어 양념을 한 육회와 달리 생고기를 토막토막 썰거나 뭉텅뭉텅 썬 음식이다.
포항 특유의 향토음식인 ‘과메기’는 서울 도성 사람들이 모르는 지방 음식이라고 하여 표준어에 올라가지도 못했지만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최근 일본 사람 입맛에도 맞는지 수출까지 했다고 한다. “얼었다 녹았다//고소함 흘러내리는 꽁치과메기/첫눈 내려야 맛있다는데//저녁와도/아침 와도// 얼었다 녹았다//기다림에 애타는 마음 비릿하네/첫눈 내려야 맛있다는데” 과메기를 만드는 과정을 시로 쓰면서 기다림의 미학과 연결시키고 있다. 표준어에 없는 ‘과메기’, ‘아구찜’, ‘홍탁’과 같은 지방의 음식은 전국으로 확산되었어도 아직 그 이름은 방언의 신세를 못 면하고 있다.
‘과메기’, ‘과미기’라는 말은 한자어 ‘관목(貫目)청어’를 줄여서 ‘관목이’라 부르다가 변화된 말이다. 과메기는 원래 청어(방언형:등어, 비웃, 구구대, 고섭, 푸주치, 눈검쟁이, 갈청어, 울산치, 과목숙구기)를 얼리면서 말린 것이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 선생이 포항 장기읍성 아래에 유배 와 있을 때 이웃 주민들이 탱자나무 가시 사이로 넣어준 과메기를 먹고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한다. 그 덕에 가난한 선비를 살찌게 해 준다는 말린 청어는 ‘비유어(肥儒魚)’라는 고상한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이 청어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거의 잡히지 않게 되자 청어 대신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자 전국적인 상품으로 발전되었다.
과메기는 추운 날씨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내장의 즙이 고기 살에 고루 스며들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이처럼 대상물이 서울에는 없고 지역에만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낱말을 방언으로 처리하여 표준어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허다하니 안타깝다. 어쩌면 방언인데도 표준어로 채택된 영광을 지닌 낱말이 있는가 하면 당연하게 표준어로 채택되어야 할 역사적 정당성이나 합리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는 이유로 표준어에서 밀려나는 불행을 겪어야 하는 낱말도 있으니, 이 또한 인생살이의 모습과도 가히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