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제 몸 위에 어떤 입체물이 얹히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제 몸 하나로 일어섰다가 주저앉으며 하나로 모일 뿐이다. 바다의 소리가 있는가? 바다는 원래 언어를 잉태한 적이 없다. 바다는 원래 언어를 갖지 않았지만 바다의 언어를 시로 쏟아낸 작품은 적지 않다. 바다, 존재로서 인간의 인식 대상으로서의 그 이전의 바다의 시니피에는 충돌이며 시니피앙은 하나의 몸일 뿐이다.
허만하 시인은 바다가 끊임없이 일어서려고 해도 본질적으로로 설 수 없는 존재의 한계를 노래했다. 선다는 것은 욕망이다. 바다는 제 몸 위에 어떤 것도 얹히는 것을 부정하듯 인간의 욕망을 수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김동원(‘관해(觀海)’)은 ‘수평의 시’로서 바다를 관조한 철학적 함의를 품은 고급 시편을 발표하였다.
시인 김동원은 바다가 거부하는 사물을 바다의 몸 속에 투사시키는 고급의 시적 작위를 성공시킨 것이다. 경계와 이음, 주술과 접신을 배타적인 바다의 속성 안에 일즉다의 방식으로 내장시켰다. 일찍 바다에 침몰한 어부 아버지의 그리움을 일몰의 시간 황금빛으로 이글거리는 저녁노을로 회생시켜내면서 고뇌와 아픔을 소멸로 녹여낸 멋진 시작으로 이어냈다.
“아이고, 자가 누고! 복순 아버지, 순돌이네 큰애, 뒷집 허삽이 아재 아이가. 신묘년 오징어잡이 한배 닸다가 몽땅 수장(水葬)된, 가엾은 엾은 목숨들. 흐렁흐렁 흐렁 물 밟고 서성이네. 그래 그래…. 물은 무탈하니 훨훨 다 벗고 올라가거래이, 돌아볼 것 없다 카이! 아이고, 이 새벽 뭐 할라꼬 또 흰 수의(壽衣) 입고 저리들 몰려오노!” -김동원의 ‘흐렁 흐렁, 흐렁’중
김동원 시인의 내면에는 일찍 오징어배 침몰로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이웃 사람들의 죽음과 그토록 아름다운 바다와 상충되는 심층에 수장된 죽음을 그리고 그 물귀신들의 원혼들을 물려내치는 무술적인 기운이 서려 있다. “신묘년 오징어잡이 한배 닸다가 몽땅 수장(水葬)된, 가엾은 엾은 목숨들. 흐렁흐렁 흐렁 물 밟고 서성이네.” 환영이 아니라 바다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외적인 이물인 수장된 사람들의 이물과 그 영혼들을 바다 밖으로 불러내는 신굿을 하던 기억들과 만난다. 그 안스러운 물귀신들이 가 제 자식처럼 보였는지 ‘흐렁, 흐렁, 흐렁’이라는 시어는 물귀신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신호이자 염원이다. “그래 그래 그래…. 물은 다 무탈하니” 동해에 빠져 죽은 모든 물귀신들아! “훨훨 다 벗고 올라가거래이, 돌아볼 것 없다 카이!”라는 강한 경상도 영덕 강구의 말씨로 염원을 빌고 있다.
김 시인의 화법으로 “시는 풍경이다.” 그러니까 시는 바다 안에도 있고 바다 밖에도 있다. 그런데 정작 바다는 바다 이외에 어떤 것을 바다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니까 거센 파도를 세찬 풍파를 일으키며 살아 있음을 포효하고 있다. 그 바다를 관조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눈에는 바다가 때로는 새로로 일어서려다가 때로는 가로로 끝없이 퍼져나가는 인력의 힘을 잠시도 쉬지 않고 위세처럼 펼치고 있다. 이 바다의 힘을 바다의 목소리로 전달할 때 제 맛이 살아난다. 김동원 시인이 바다를 관조하고 쓴 시들에 바다 소금바람에 쩐 강구 사투리로 시를 쓴 이유가 시적 현실감을 더 고조시키기 위한 중요한 장치이자 도구일 것이리라.
“내가 바다를 바라본 까닭은, 밀물 속 흐릿하게 밀려오는 마흔에 가신 아버지가 출렁거리기 때문이다. 네 살 난 아들을 두고 가신, 그 흉중의 물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아침 해만 보면 청상의 어머니는 ‘아이쿠, 느그 아부지 바닷속에 장작불 때는 것을 좀 보래이’그러셨다. 동해를 숫제 우리집의 가마솥으로, 붉은 해를 아궁이의 장작불로, 방언나 고등어를 무슨 고봉밥처럼 귀히 여겨셨다. 나만 보면 까까머리 쓰다듬으며, ‘우예, 이리 제 아비를 닮았을꼬?’ 신기해 하셨다.
언재나 엇비슥 웃는 그 서른의 어머니는 봄날 수평선 위에 모란꽃처럼 환하셨다.”(김동원의 ‘흉중 1,’) 끊임없이 출렁이는 저 바다는 밀물과 썰물이라는 율동을 그리고 선율과 아침과 저녁이면 붉게 타오르는 태양의 찬란한 빛의 축제를 바닷속 깊은 가슴에서 끓어 올렸다. 시인의 어머니는 마당에 있는 솥아궁이에 타오르는 장작불이 저 동해바다의 흉중에서 쏫아오르는 것을 아셨다. 그것도 자신의 남편을 집어삼킨 거대한 바다에서. 그 아침 핏빛 바다 물속 잠기여 꿈틀거리던 붉은 햇덩이는, 사무친 아비의 글썽이는형상이며 그것을 지켜본 어머니는 봄날 수평선 위에 핀 모란꽃이었음을 방언시로 노래하고 있다. 참 오랜만에 신선한 바다의 시와 자작 해설의 빼어난 글을 읽으니 무더위조차 저 멀리 달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