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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역별 차이가 뚜렷한 강원도 방언

등록일 2024-09-02 19:45 게재일 2024-09-0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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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강원도는 동해 바다에 면하여 한반도의 허리인 태백산맥이 지나가는 산간지역이다. 북으로는 함경도, 남으로는 경상도, 서쪽으로는 경기도와 만난다. 강원도의 휴전선 이북 지역(이천·평강·김화·회양·통천)은 함경도에 이어져 있다. 강원도 방언은 태백산맥이라는 지리적인 특성에 의하여 구획된다. 강원도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춘천·홍천·양양·횡성·평창·강릉·원주·영월·정선·삼척 중 태백산맥 내부와 그 동쪽에 위치한 영동 방언권(영월·정선·평창·삼척·강릉·양양·고성)이고, 태백산맥 서쪽은 영서 방언권(철원·화천·양구·인제·춘천·홍천·횡성·원주)으로 나누어진다. 영서지역어는 경기도 중부방언과 매우 흡사하고 영동방언은 고대 예맥의 역사적 물줄기를 이어오면서 위로는 함경방언, 아래로는 경상방언과 묘하게 얽혀 있다.

강원 방언은 중부방언과 매우 비슷하지만 성조와 음장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특히 영동지역의 강릉·삼척·영월 지역과 옛 강원도였던 경북 울진지역은 음장이 순수하게 변별적 기능을 하지만 정선·평창·양양·고성은 성조와 음장이 전이지대적 성격을 띤 준성조 지역이다. 동해안을 따라 내려오면서 포항·경주지역까지 부사형이나 명령형 어미가 모음조화와 관계없이 ‘-어/아’가 ‘-아’를 취하여 ‘먹어’나 ‘먹었어’가 ‘먹아’, ‘먹었아’와 같이 발화된다.

동해안 영동지역 방언에서는 주격 조사로 ‘-이/가’가 널리 쓰인다. 그런데 강릉·삼척·인제·정선·영월 지역에서는 모음으로 끝나는 명사에 주격 조사 ‘-이’가 수의적으로 결합하여 ‘코이(코-가, 鼻), 모이(모-가, 角), 오후이(오후-가)’ 등으로 나타는데, 경북 울진지역까지 이어진다. 삼척·울진 지역에서는 주격 조사가 중복된 ‘-이가’로 나타나서 ‘사램이가(사람-이), 장이가(장-이, 場)’의 형태를 보이기도 하고 영동 남부 지역에서는 ‘밥으(밥-을), 감재르(감자-를)’처럼 ‘-으/르’가 쓰이기도 한다.

어휘의 경우, 강원도 방언은 3개 권역으로 나뉜다. ‘잠자리, 오줌싸개’를 영서 지역에서는 각각 ‘짬자리, 오줌찍개’라고 한다. 강릉의 농촌에서는 ‘지렁(간장), 주벅(주걱), 따드밋돌(다듬잇돌), 부절까락(부젓가락), 굴뚝’이라고 하지만 어촌에서는 각각 ‘장물(간장), 박쭉(주걱), 빨랫돌, 불꼬지(부젓가락), 굴떡(굴뚝)’이라고 한다.

김성수 시인은 ‘울 할머어이의 추억’에서 “내가 자란 횡성은 서울과 가까워/유별난 방언은 없지만/평창 두메산골에서 자란 울 할머이는/사투리가 기가 막히게 재미있었다.”면서 ‘정지(부엌), 흘러깽이(홍두께), 펀뎅이(안반), 진죠지(국수), 다황(성냥) 재피질(불장난)’과 같은 할머니의 사투리를 기억하면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단다. 강릉 출신 박명자 시인은 ‘눈 오는 마실’에서 ‘무꾸밭(무우밭), 던데기(언덕), 굿뎅이(굿쟁이), 지둥(기둥), 고냉이(고양이), 네베시(너붓이), 장베기(머리 위), 살구낭구(살구나무), 잼긴(잠긴)’과 같은 강원 방언을 호명하여 검고 아득한 침묵의 소리, 침묵의 빛깔 속에 온통 추억 어린 동네가 폭삭 가라앉는다고 노래하고 있다.

영동방언과 영서방언이 뚜렷이 구별되는 어휘 변이형은 참으로 많다. 영동방언 가운데 삼척지역은 ‘개꽃(철쭉), 바뗑이(대님), 윤두(인두), 호박(확), 자부름(졸음)’처럼 경상도 방언의 요소가 강원도 다른 지역 방언보다 많으나 ‘대끼지(수수), 아벵이째(모조리)’라는 특이한 어휘도 존재한다. ‘가데기(극젱이), 퉁갈나무(청미래덩굴)’는 고성·양양에서 발견되는 생소한 어휘고 ‘동고리, 느르배기, 목말, 송구송구’는 강릉지역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어휘다. ‘아저씨’의 낮춤말로, 흔히 미혼 삼촌을 가리키는 단어인 ‘아재’가 강릉·삼척에서는 고모나 이모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강릉 출신 박용하 시인은 ‘살구’라는 자신의 시에 강릉방언을 쏟아 부었다. ‘예식아(계집아이), 데우(매우), 물게져 앉는다(울러앉는다), 지즈바아(계집아이), 밉괄시릅지(밉살스럽지), 갠부러(일부러), 달부어여웠다(엄청났다)’ 어느 하나 아깝지 않는 단어가 어디에 있는가? 정선 출신의 전윤호 시인은 “머이 우태 내게 사랑이란 건/ 마카 뺑때에 걸린 솔낭구처럼/춥고 적적해서/당최 가까이하기 어렵드라/(중략)/맴 저리면 술 한 잔 하고/가만 두는 게 젤 났지/허니 얼렁 가라 이 여수야/여태 싹수 노란 내 청춘아”(마바리)에서처럼 강원도 산골에 멍청하게 살아온 자신을 타박하기 싫다며 마음 저리면 술이나 한 잔 하고 사랑하던 여인도 아리랑처럼 그냥 떠나라고 내버려두는 무골의 순수한 시인의 마음을 정선 방언으로 노래하고 있다. 방언은 끝없는 그리움의 부호이자 율동과 흥이 곁들인 소리의 축제 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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