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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강화’에서 이태준의 방언 인식

등록일 2024-11-04 18:26 게재일 2024-11-0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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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우리의 근대는 대한제국에서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도상에 있었다. 한문 소통의 세상에서 한글 소통으로의 변화는 한국사에서 매우 중요하고 적절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였다. 그로부터 80년 한글 글쓰기는 노벨문학상 수상과 함께 세계적으로 공인되었으며 한글세계화전략에 맞춰 전 세계로 날개를 달고 뻗어나갔다. 그 결과 한국의 K-문화는 전 세계 문화 트렌드를 이끄는 선두에 서게 되었다.

‘표준어’와 ‘방언’은 때로는 상하 관계, 때로는 우열 관계로 인식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글쓰기의 교본 ‘문장강화’를 펴낸 이태준이 방언을 언급하였다. 이태준은 글쓰기를 “언어의 기록 또는 언어를 문자로 표현한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표준어가 한반도에서 지배적인 언어의 힘을 가지는 것으로 보았다. 대신 “방언이란 한 지방에만 쓰는 특색 있는(말소리로나 말투로나) 말을 가리킨다”고 하면서 방언의 역기능을 문제로 삼았다. 한문 소통 시대에서 한글 소통시대로 진입하면서 표준어란 잘 다듬어진 언어이고 방언은 소통범위가 제약된 다듬어지지 않는 언어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쉽게 이해, 수용할 수 있는 표준어가 당연 우월하다는 인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문학 작품은 널리 읽혀져야 한다. 그러니까 표준어가 사용되어야 하고 방언은 부차적인 의미밖에 못 갖는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또한 표준어는 방언과 달리 품위를 지닌다는 가치의 문제로 인식함으로써 한동안 방언은 잘못된 말로 오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태준은 완강하게 “시인, 작가는 모름지기 ‘언문의 통일’을 위해 일조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표준어 중심 글쓰기를 권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0년~1940년대, 방언에 대한 속깊은 인식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많은 시인들과 소설가들은 향토적인 상황에 등장하는 화자들의 언어를 방언으로 구사하였다.

문학에서 방언이 필요한 때도 있다고 보았다. 본래 작품은 그 제재나 배경, 등장인물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야 한다. 그를 위해 등장인물의 대화 같은 것에는 방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동인의 ‘감자’의 한 부분을 들었다. 그에 대한 해석을 다음과 같이 했다. “여기서 만일 복녀 부처의 대화를 표준어로 써보라. 칠성문이 나오고, 기자묘가 나오는 평양 배경의 인물들로 얼마나 현실감이 없어질 것인가? 작자 자신이 쓰는 말, 즉 지문은 절대로 표준어일 것이나 표현하는 방법으로 인용하는 것은 어느 지방의 사투리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라고 하여 문학에서 방언의 사용을 전적으로 제한하지는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느 지방에서나 방언이 존재하는 한 또 그 지방 인물이나 풍정을 기록하는 한 의음의 효과로서 문장은 방언을 묘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하는 이태준의 선구적 발언에는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얼마간의 한계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다. 우선 여기서는 방언의 효용, 기능이 지방색을 살리는 쪽으로만 파악되어 있다. 이것은 방언의 지역적 측면만을 생각한 결과다. 그러나 이미 지적된 바와 같이 방언에는 사회적 시각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 있다.

실제 이태준은 ‘문장강화’의 다른 자리에서 이런 단면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것이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서림과 뱃사공이 주고받는 말을 끌어들여 생활 속어라는 말로 계급적인 언어 사용을 인정하였다. 방언은 지리적인 차이에 의한 방언과 계급적 차이 곧 반상과 중인 하인들의 언어가 약간의 차이를 보여준다. 전자를 지리방언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사회방언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태준은 그 당시 이러한 두 가지 방언의 차이를 인식하고 지리적 방언을 ‘방언’, 사회적 방언을 ‘생활 속어’라고 하여 이어(俚語)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와 비슷한 시기에 우리 문단에서 활약한 시인들 곧 이상화, 김소월, 김영랑. 백석, 이용악 등의 작품 가운데 어떤 것은 방언과 분리시켜 그 작품의 우수성이나 가치를 더 논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방언 시를 발표하였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보면 방언이란 언어의 하위 개념이다. 한 민족의 언어가 형성된 경우 방언의 문제는 부수적으로 제기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형성된 역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방언이 우리 한국어의 총량 가운데 일부로 언어 정보자료로서 가치를 주장하게 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본격적으로 방언문학을 논의하게 된 단계에 이르러서 그 가치에 대한 결실이 맺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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