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랜 지인의 부고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됐다. 고인은 몇 년 간 지속된 암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뜻밖의 소식에 슬픔도 잠시, 고인의 마지막 게시글에 시선이 멈췄다. 그동안 잘 버텼고 이제는 잘 정리하겠다는 말.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 말이다. 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나의 죽음 앞에 다른 무엇이 우선시 될 수 있겠냐마는 남겨진 가족이 먼저 눈에 밟히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없는 동안 가족에게 전하고픈 것들과 그러한 목록들을 실행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처가 필요할 것이다. 보유한 자산을 가족에게 잘 전하는 일도 그중 하나다. 은행계좌를 비롯해 부동산, 주식, 보험 등 내 금융정보를 잘 정리해 둘 필요가 있겠다. 보통 고인의 금융계좌는 사망신고 후에 상속인이나 가족에게 인계된다. 하지만 온라인 거래가 보편화된 요즘 금융기관을 통해 조회되지 않는 디지털 자산들도 있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금융기관에서 조회되지 않는 자산이다. 가상자산은 별도로 관련 정보를 남겨두지 않으면 가족에게 전달하기 어렵다. 가상자산 거래소에 예치되어 있는 자산은 상속자산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별도의 접근 조치가 필요하다. 여러 곳의 거래소를 이용한 경우 이들에 대한 계정정보를 일일이 정리해 둘 필요도 있다. 개인지갑에 가상자산을 예치한 경우 관리가 더 까다롭다. 특히 개인지갑의 비밀번호에 해당하는 개인키(Private key)를 잊어버리면 보관된 자산을 영구히 찾을 수 없다. 개인지갑은 거래소와 달리 관리 주체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인키를 잃어버리거나 불의의 사고로 소유자의 비트코인을 영영 찾을 수 없게 된 사례가 종종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개인키 분실로 유실된 비트코인이 수백만 개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분산원장이라 불리는 비트코인은 개인 간 거래(Peer to Peer)를 목적으로 설계된 만큼 자산 관리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개인에게 있다. 개인지갑은 복잡한 암호키 생성을 통해 보안 위험을 줄였지만, 관리상의 어려움이 뒤따른다. 편의상 거래소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과적인 방책일 수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익숙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였다. 하지만 거래소를 이용한다는 것은 개인지갑을 대신해 거래소 지갑을 이용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관리 편의성을 높일 수 있지만 그만큼 보안 위험이 상존한다는 의미다. 비트코인 등의 가상자산이 보편화될수록 관리 측면의 이슈는 더 부각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가상자산 또는 개인키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관해 주는 서비스가 각광받을 것이다. 정부 차원의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이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고인과 유족 모두에게 필요한 조처다. 기술 발전에 따라 가까운 미래에 분실한 비트코인을 찾아주는 서비스가 유행할지도 모를 일이다. 고인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부고는 가족 중 한 명이 올린 것이다. 고인께서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가족에게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정보를 미리 알렸을 것이다. 이 외에도 여러 사후 조치들에 대해 언급했을 것이다. 잘 정리하겠다는 고인의 말은 산자들에 대한 배려에 다름아니다. 고인의 마음 씀씀이가 사뭇 경외롭게 느껴지는 하루다. (현)두코미디어 전략기획 이사 전 씨엘모빌리티 전략기획부 책임
2025-01-21
최진승 가상화폐 전문가 발디딜 틈 없는 인파 속에서도 시민들은 질서를 잃지 않았다. 마주 오는 이들을 향해 격려의 인사를 건넸고, 통행이 막히는 곳에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천천히”를 외쳤다. 유모차를 끌고 온 이 옆에서는 “유모차”를 외치며 함께 길을 터주기도 했다. 거대한 용광로 같은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은 스스로 질서있게 입장하고 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시민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한겨울 눈발 속에서도 행렬은 멈출 기미가 없다. 비상계엄 여파는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적 염원을 멈춰 세우진 못했다. 지난 한 달 간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은 아득히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비상계엄이라는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이를 극복해 가는 시민들의 모습 역시 극적이여서 그렇다. 마치 우리 국민 모두가 한순간에 이세계로 소환되어 허무맹랑한 마법을 풀어가는 만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우린 동료를 얻기도 하고 때론 적들과 마주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한다. 우리 국민들이 또 한 번 레벨업을 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지금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최근 우리의 정치 상황은 비트코인의 역사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강렬한 내러티브를 만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비트코인은 시가총액 기준 전세계 자산 순위 7위에 올랐다. 은의 시가총액(9위)을 넘어선 수준이다. 1위인 금의 시가총액에는 여전히 못미치지만 비트코인 탄생 15년 만에 이룬 성과 치고는 괄목할 만한 것이다. 짧은 역사 속에서 비트코인 역시 갈등과 경쟁을 반복해 왔다. 비트코인이 특별한 이유는 은행과 같은 중앙기관에 의해 관리되는 것이 아닌 네트워크 참여자들에 의해 유지된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은 거래내역을 담은 블록들이 네트워크 상에서 연결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참여자들은 경쟁적으로 블록을 생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대가로 비트코인을 얻는다. 이러한 구조는 특정 운영 주체가 없기 때문에 분산원장이라 불린다. 분산원장이라고 해서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네트워크 참여자들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정해진 규칙(Protocol)을 따라야 한다. 이 규칙을 둘러싼 갈등과 경쟁도 있어 왔다. 규칙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참여자들의 동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그룹들이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해 경쟁과 분열의 과정을 거쳤다. 민의(民意)를 반영하기 위해 정당 간 경쟁하는 민주주의 절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트코인에서 경쟁적으로 블록을 생성하고 연결할 때 작동하는 중요한 규칙이 하나 있다. 가장 긴 체인(Longest chain)을 유효한 것으로 채택하는 규칙이다. 이는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 가장 긴 체인을 통해 표현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장 긴 체인은 가장 많은 에너지가 소모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쟁적 에너지 소비야말로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 참여자들의 ‘선의’를 가리는 유일한 기준이다. 이를 ‘작업증명’(Proof of Work)이라 부른다. 민주주의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각자 다를 것이다. 다만 서로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비트코인의 작동 원리는 토론과 경쟁을 통해 민의를 반영하는 민주주의 원리와 상통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비트코인은 프로그램 된 규칙을 통해 작동한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에 없고 민주주의에 꼭 필요한 것은 바로 가장 긴 체인을 인정할 줄 아는 용기일 것이다. -(현)두코미디어 전략기획 이사 -전 씨엘모빌리티 전략기획부 책임
2025-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