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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과 민주주의

등록일 2025-01-07 19:53 게재일 2025-01-0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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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승 가상화폐 전문가

발디딜 틈 없는 인파 속에서도 시민들은 질서를 잃지 않았다. 마주 오는 이들을 향해 격려의 인사를 건넸고, 통행이 막히는 곳에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천천히”를 외쳤다. 유모차를 끌고 온 이 옆에서는 “유모차”를 외치며 함께 길을 터주기도 했다. 거대한 용광로 같은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은 스스로 질서있게 입장하고 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시민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한겨울 눈발 속에서도 행렬은 멈출 기미가 없다. 비상계엄 여파는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적 염원을 멈춰 세우진 못했다.

지난 한 달 간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은 아득히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비상계엄이라는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이를 극복해 가는 시민들의 모습 역시 극적이여서 그렇다.

마치 우리 국민 모두가 한순간에 이세계로 소환되어 허무맹랑한 마법을 풀어가는 만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우린 동료를 얻기도 하고 때론 적들과 마주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한다. 우리 국민들이 또 한 번 레벨업을 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지금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최근 우리의 정치 상황은 비트코인의 역사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강렬한 내러티브를 만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비트코인은 시가총액 기준 전세계 자산 순위 7위에 올랐다. 은의 시가총액(9위)을 넘어선 수준이다. 1위인 금의 시가총액에는 여전히 못미치지만 비트코인 탄생 15년 만에 이룬 성과 치고는 괄목할 만한 것이다.

짧은 역사 속에서 비트코인 역시 갈등과 경쟁을 반복해 왔다. 비트코인이 특별한 이유는 은행과 같은 중앙기관에 의해 관리되는 것이 아닌 네트워크 참여자들에 의해 유지된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은 거래내역을 담은 블록들이 네트워크 상에서 연결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참여자들은 경쟁적으로 블록을 생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대가로 비트코인을 얻는다. 이러한 구조는 특정 운영 주체가 없기 때문에 분산원장이라 불린다.

분산원장이라고 해서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네트워크 참여자들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정해진 규칙(Protocol)을 따라야 한다. 이 규칙을 둘러싼 갈등과 경쟁도 있어 왔다. 규칙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참여자들의 동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그룹들이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해 경쟁과 분열의 과정을 거쳤다. 민의(民意)를 반영하기 위해 정당 간 경쟁하는 민주주의 절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트코인에서 경쟁적으로 블록을 생성하고 연결할 때 작동하는 중요한 규칙이 하나 있다. 가장 긴 체인(Longest chain)을 유효한 것으로 채택하는 규칙이다.

이는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 가장 긴 체인을 통해 표현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장 긴 체인은 가장 많은 에너지가 소모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쟁적 에너지 소비야말로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 참여자들의 ‘선의’를 가리는 유일한 기준이다. 이를 ‘작업증명’(Proof of Work)이라 부른다.

민주주의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각자 다를 것이다. 다만 서로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비트코인의 작동 원리는 토론과 경쟁을 통해 민의를 반영하는 민주주의 원리와 상통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비트코인은 프로그램 된 규칙을 통해 작동한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에 없고 민주주의에 꼭 필요한 것은 바로 가장 긴 체인을 인정할 줄 아는 용기일 것이다.

-(현)두코미디어 전략기획 이사

-전 씨엘모빌리티 전략기획부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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