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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도시 포항의 그늘···도심 곳곳 ‘고물상 난립’, 폐기물 환경법 위반 소지 곳곳

철강도시 포항의 또 다른 풍경은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고물상이다. 산업단지와 철강공장이 밀집한 도시 특성상 고철과 재활용 자원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이를 수거·유통하는 고물상 역시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그러나 최근 지역 곳곳에서 고물상과 관련된 환경 민원과 안전 문제가 잇따르면서 관리 체계의 허점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역 업계와 관련 기관 자료를 종합하면 포항지역에서 영업 중인 고물상은 대략 120~160곳 안팎으로 추정된다. 철강 산업 기반 도시라는 특성 때문에 전국 평균보다 훨씬 많은 규모다. 문제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소규모 개인 사업장 형태로 운영되면서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현행 제도에서 고물상은 두 가지 법 체계로 관리된다. 하나는 경찰이 관할하는 ‘고물영업 허가’이고, 다른 하나는 지자체가 관리하는 폐기물 재활용 관련 신고다. 그러나 일정 규모 이하 사업장은 폐기물 처리 신고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는 사실상 관리 밖에서 운영되는 사업장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도심 주변의 소규모 고물상들은 경찰의 영업 허가만 받은 채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폐기물 보관 방식이나 처리 과정에 대한 지자체의 환경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특히 일부 고물상에서는 고철과 폐전선, 폐플라스틱 등 각종 재활용 자재가 분리되지 않은 채 장기간 야적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잔재 폐기물이나 오염물질은 폐기물관리법 등 환경 관련 법 위반 소지가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실제로 고물상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은 단순 고철만이 아니다. 폐전선 피복, 플라스틱 잔재, 오염된 포장재 등 다양한 폐기물이 함께 발생한다. 이를 적절히 분리·보관·처리하지 않을 경우 명백한 폐기물 처리 기준 위반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 여부를 상시적으로 점검하는 체계는 사실상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환경 관리 기준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확인하기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포항 남구 오천읍과 연일읍, 북구 흥해읍 등 철강공단 주변에는 고철과 비철 금속을 취급하는 중소 고물상들이 밀집해 있다. 공장 폐자재와 철강 스크랩을 수거하는 업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든 결과다. 여기에 도심 골목형 고물상까지 포함하면 주거지 인근에서도 쉽게 고철 야적장을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환경은 주민 생활과 직결된 문제로 이어진다. 고철 절단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 폐기물 적치로 인한 악취, 비산 먼지 등 생활환경 민원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폐전선이나 플라스틱 잔재 등이 뒤섞여 보관될 경우 화재 위험도 높아 주민 불안 요인으로 지목된다. 전국적으로도 고물상 화재는 반복적으로 발생해 왔다. 대부분 고철과 폐기물, 가연성 재료가 뒤섞여 적치된 환경에서 발생하며 한 번 불이 나면 대형 화재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좁은 골목이나 도심형 사업장의 경우 소방차 접근이 어려운 곳도 많아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또 다른 문제는 고철 도난과 불법 유통 가능성이다. 철강 가격이 상승할 경우 공사장 자재나 공공시설물 등이 도난되는 사례가 전국적으로 발생해 왔다. 고물상은 거래 기록과 신분 확인 의무가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철저히 지켜지는지는 별도의 점검이 필요한 상황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관리 부재다. 경찰은 고물영업 허가를 관리하고, 지자체는 폐기물 관련 신고를 담당하지만 두 제도 사이의 틈에서 상당수 사업장이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포항시가 지역 고물상 전체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공식적으로 공개된 전수 자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업계 추정치만 떠도는 실정이다. 철강 산업이 유지되는 한 고철과 재활용 산업은 도시 경제의 한 축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산업이 주민 생활환경과 안전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방치된다면 이는 명백한 행정의 관리 문제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포항시가 고물상 실태에 대한 전면적인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찰의 고물영업 허가 자료와 지자체의 폐기물 관련 신고 자료를 통합해 지역 내 모든 사업장의 위치와 규모, 운영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폐기물 보관 상태와 처리 과정, 환경 관리 기준 준수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해 폐기물관리법 등 환경 법령 위반 가능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철강도시 포항의 또 다른 산업인 재활용 시장. 그러나 관리되지 않은 고물상 난립은 언제든 환경 문제와 안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포항시는 지역 고물상 전수조사를 즉각 실시하고, 폐기물 처리와 환경 관리 기준을 강도 높게 점검해야 한다. 도심 곳곳에 쌓여가는 고철 더미와 폐기물. 이 문제가 더 큰 환경 재난으로 이어지기 전에 행정의 철저한 대응과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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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화 50년, 향촌동에 꽃 피운 ‘편아지오’

“구두는 발이 편해야 한다.” 대구 향촌동 제화 골목의 역사는 우종필(64) 장인의 손끝에서 다시 쓰였다. 3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그는 쇠락해 가던 거리의 명맥을 살린 주역이다. 1976년, 축구선수의 꿈을 접고 열다섯 나이에 망치를 든 소년은 이제 200여 개의 표창장을 지닌 대한민국 신지식인 명장이자 지역 공동체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장인의 48년 외길은 순탄치 않았다. 8년의 수련 끝에 재봉틀 한 대로 시작한 작업장은 꼼꼼한 솜씨로 소문나면서 한때는 직원이 15명이나 되는 규모로 커졌다. 그렇지만 호황은 길지 않았다. 결재한 거래처의 수표가 줄줄이 부도나면서 납품 대금 회수 실패라는 가혹한 시련이 찾아왔다. 채무자를 찾아 전국을 헤매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픔뿐이었다. 하는 수없이 삼촌 공장에 다시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또 새로운 재기를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일을 했으나 이곳에서도 바이어들의 횡포로 몸만 겨우 빠져나오는 고생을 했다. 그러나 이것이 그를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2000년대 들어 제화 경기가 추락하며 향촌동 거리에 폐업 행렬이 이어질 때, 그는 전업 대신 ‘상생’을 택했다.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반대하는 동료들을 설득해 ‘대구 수제화 마을기업’을 탄생시킨 것이다. KBS ‘아침마당’ ‘다큐 3일’ 등 생방송의 조명을 받으며 전국에서 고객이 몰려들었고, 죽어가던 거리는 다시금 망치 소리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못다 한 학업을 위해 야간학교와 대학을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지인들의 추천으로 한때 대구 중구의원으로 진출해 지역 봉사에도 앞장섰다. 우 장인이 운영하는 (주)편아지오는 이름부터 남다르다. 외래어 대신 “발이 편안해지오”라는 우리말로 상호를 지었다. “아무리 가죽이 좋고 맵시가 있어도 발이 편하지 않으면 신지 않는다”는 그의 장인 정신과 철학이 담긴 상호다. KBS 생방송을 통해 그의 이름이 전국으로 알려지자 국경을 넘어 일본 교포한테서도 주문이 들어왔고, 뉴욕에서는 300mm 맞춤형 구두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석 달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는 ‘진품 수제화’의 명성은 이때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그의 곁에는 아들이 서 있다. 한때 자리를 비우기도 했던 아들이 돌아와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 모습은 이젠 장인에게 가장 큰 보람이다. 수백 개의 상패보다 마을기업 우수상이 더 자랑스럽다고 말한 그는 “이 길은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최선을 다한 뒤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그의 좌우명처럼, 우 장인은 오늘도 묵묵히 구두를 만든다. /유무근 시민기자

서각(書刻) 30년, 금곡 신동호 작가

금곡 신동호는 1948년생으로 78세다. 서각에 반 갑(甲)년을 보내고, 지난 2월 20일부터 3월 8일까지 대구 수성아트피아 전시실에서 ‘전통의 숨결을 새기다’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가졌다. 지금도 시간만 나면 공방으로 가서 하루에 5시간 이상 작품 활동을 한다. 또 오전에는 매일 대구 범물노인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할 정도로 건강도 좋다. 범물복지관에서 신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신 작가는 서각을 시작하게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모 방송국에서 퇴직한 후 운동을 위해 신천을 산책하다 한가히 놀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고 늙어가지만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서경을 공부하다 잡지에서 본 서각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서각은 “나무와 작가가 나눈 이야기를 표현하는 예술작품이라 생각한다”면서 “때로는 나무가 나에게 말을 걸고 어떤 때는 내가 나무에게 말을 거는 예술”이라 설명한다. 그 와중에 나무의 무늬가 이야기에 끼어들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칼을 잡고 작업을 하는 순간만은 번뇌와 망상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했다. “참선보다도 더 좋은 것 같다”며 서각의 매력을 이야기했다. 신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 32점을 전시했다. 작품이 팔려 수익이 생긴다면 전액을 이웃 돕기에 사용하고 남은 작품과 앞으로 만드는 작품도 원하는 공공 기관이나 복지관 등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의 작품 가격이 궁금해서 주변에 살짝 알아보았더니 주는 대로 받지만 ‘십장생’은 400만원에 팔렸다고 했고, 소품도 30만원 정도는 된다고 귀띔했다. 서각에는 나무가 가장 중요하다. 그는 무늬가 좋고 야문 느티나무를 주로 사용하며 은행나무, 호두나무, 먹감나무, 참죽나무 등도 사용한다고 했다. 나무가 좋으면 값이 비싸고 너무 싼 나무와 수입된 알마사카, 마디카 나무는 물러서 작품성이 떨어져 잘 사용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가장 아끼는 작품은 ‘마음을 다스리는 글’을 표현한 작품인데 느티나무를 사용했고 테두리는 참죽나무로 만들었다. 집 거실에 걸어 두면 좋다고 했다. 마음을 비우려 늘 노력한다는 그는 78세의 나이에도 현재 예목서각회 고문과 사단법인 한국각자협회 자문위원, 목산서각연구원 원장으로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또 대한민국 각자대전 초대작가, 운영위원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서각 전을 둘러보던 시인 김동원씨는 “신 작가는 먹물의 흐름에 따라 나무와 한 마음이 되어 칼로서 글을 썼다”며 ”그의 양각은 쪽빛 하늘 허공에 대고 무형각(無形刻)으로 봄바람이 매화 향기를 머금듯 도풍(道風)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안영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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