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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지’ 대구서 정책 행보 넓히는 김부겸, 주말·연휴에도 민생 아우르는 광폭 행보 펼쳐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대구시장 예비후보가 휴일에도 쉼 없는 행보를 이어가며 대구 바닥 민심 훑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 후보는 5월 첫 주말 동안 대구 지역의 문화예술계와 보육 현장을 잇달아 방문하며 강도 높은 정책 간담회 일정을 소화했다. 보수 성향이 짙은 대구에서 구체적인 지역 현안 해결 능력을 앞세운 ‘행정가 김부겸’의 실용주의적 이미지를 각인시키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 후보는 지난 4일 오전 ‘다시 일어서자! 대구’라는 슬로건 아래 5차 공약인 보훈·복지 정책을 발표했다. 핵심은 대구시의 오랜 숙원사업인 ‘독립기념관 분원’ 유치와 ‘24시간 긴급 어린이집 운영센터’의 시 전역 확대다. 특히 독립기념관 분원은 현재 국회에 상정된 법안 통과를 전제로 정부·여당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는 독립유공자 손자녀 위문금을 50만 원까지 확대하고, 공공형 어르신 일자리를 현 4만4000개에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안을 내놓았다. 세부 내용으로는 △우리아이자립펀드 도입 △조부모 돌봄을 지원하는 온가족 돌봄 확대 △경계선 지능 아동을 위한 창의발달지원센터 설치 △어르신 AI 건강관리 시스템 도입 △응급안전안심서비스 확대 △대구안심케어주택 조성 △장애인 이동권 및 의료 접근성 강화 등이 제시됐다. 이는 ‘애국애족 도시’라는 대구의 정체성을 공략하는 동시에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을 강조함으로써 보수층의 거부감을 완화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김 후보는 같은 날 오후 대구 달서구 선거캠프에서 대구예총(대구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을 시작으로 대구합창연합회, 대구경북서예가협회 관계자들과 잇달아 만나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의 위기를 진단했다. 현장 예술인들은 “8년 전 20억 원 규모였던 예산이 현재 4억 원대로 급감했다”며 “이는 축소가 아니라 생태계 붕괴 수준”이라고 성토했다. 예술인들이 생계를 위해 배달 아르바이트에 나서야 하고, 청년 예술가들이 고향을 등지는 ‘탈(脫)대구’ 현상이 심각하다는 점도 제기됐다. 이에 김 후보는 “문화예술은 소모되는 비용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산업”이라며 예산의 단계적 정상화와 예술인 권익 보호 체계 구축을 약속했다. 그는 합창을 통한 대화합 프로젝트와 영남권 서예진흥원 설립 등 현장의 구체적인 제안들을 수렴하며, “문화예술 예산부터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시켜 대구의 브랜드 가치를 되살리겠다”고 화답했다. 같은 날 김 후보는 대구 남구 대명동의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해 보육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했다. 간담회에서는 대구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10호봉 임금 상한제’와 하루 1000원도 안 되는 열악한 프로그램 운영비 구조가 도마 위에 올랐다. 또 20년 이상 된 노후 시설의 석면 제거 등 아이들의 안전 문제도 시급한 과제로 제시됐다. 김 후보는 운영 구조 현실화와 시설 안전 개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정치의 책임’으로 규정하며 실질적인 예산 반영을 약속했다. 그는 “종사자가 처우 문제로 떠나면 결국 아이들이 갈 곳을 잃게 된다”며 “지역아동센터는 단순 복지시설이 아니라 대구의 미래를 지키는 핵심 인프라”라고 강조했다. 김 후보는 어린이날인 5일 대구 어린이회관에서 열린 ‘104회 어린이 큰잔치’에 참석한 후, 대구박물관 어린이 축제 현장도 찾아 시민들과 소통했다. 이날 김 후보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행사장을 함께 둘러보며,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과 대구의 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대구를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로 반드시 바꾸겠다”며 “진심을 다해 시민께 다가가겠다. 대구의 미래와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한 번 바꿔보자”고 호소했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경북도청서 어린이 백일장·사생대회 열려…글과 그림으로 일상 표현

어린이날인 5일 경북도청 동락관 뒤 광장에서 어린이 백일장·사생대회가 열려 참가 어린이들의 창작 활동으로 현장이 채워졌다. 경북매일신문이 주최한 ‘2026 경북 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에는 참가 어린이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각종 체험활동으로 신나는 하루를 보냈다. 참가 어린이들은 접수를 마친 뒤 돗자리와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잡고 작품 구상에 나섰다. 색연필과 크레파스를 꺼내 밑그림을 그리거나 원고지에 문장을 적어 내려가며 각자 표현할 이야기를 정리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이날 대회는 ‘가족과 함께한 여행 이야기’, ‘나의 학교 생활 모습’, ‘현장 사생’ 등을 주제로 운영됐다. 어린이들은 여행의 기억이나 학교에서의 일상, 행사장에서 보이는 풍경 등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며 다양한 시선을 드러냈다. 현장에서는 나란히 앉은 어린이들이 서로의 그림을 보여주거나 글 내용을 이야기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일부 가족은 완성된 작품을 사진으로 남기며 참여 과정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환 어린이(꿈빛유치원)는 “여기 와서 그림 그리는 게 재밌었고 엄마랑 같이 있어서 더 좋았어요”라며 “색칠도 하고 제가 그리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그려서 재미있었어요. 다음에 또 오면 더 예쁘게 그리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가족 단위 방문객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부모들은 아이들 곁에서 준비물을 챙기거나 창작 과정을 지켜보며 참여를 도왔고, 작품을 마친 뒤에는 결과물을 함께 살펴보는 모습이 이어졌다. 행사장 주변에서는 체험 프로그램과 공연도 함께 운영됐다. 대회를 마친 어린이들이 체험 부스와 공연 무대를 오가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이어지며 어린이날 분위기를 더했다. /이도훈기자 ld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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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단상)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들

신라사에는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인물이 많다. 그러나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들은 사서 속에 이름과 삶의 자취가 남겨진 인물이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에는 보희, 문희, 정희 세 자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삼국유사 ‘태종 춘추공’ 조에 나오는 보희와 문희 자매의 일화는 이렇다. 어느 날 언니 보희가 꿈을 꾸었다. 선도산에 올라 소변을 보았더니 온 서라벌이 가득 찼다는 꿈이다. 왕후가 될 길몽으로 해석되었음에도 보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를 들은 동생 문희는 비단 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다. 한 번의 교환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얼마 뒤 정월 오기일, 김유신은 김춘추와 축국을 하다가 일부러 그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렸다. 그리고 집으로 데려와 여동생에게 꿰매게 했다. 처음에는 보희를 부르려 했으나 그녀가 사양하자, 문희가 나섰다. 단정히 차려입은 문희는 김춘추의 옷고름을 꿰맸고, 그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을 두게 된다. 이후 문희는 김춘추의 아이를 잉태한다. 김유신은 이 일을 빌미로 동생을 벌하겠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덕만공주가 남산으로 행차하는 때를 맞춰 뜰에 장작을 쌓고 불을 피우자, 공주는 연기의 까닭을 물었다. 곁에 있던 김춘추는 그 일이 자신과 관련된 것임을 깨닫고 급히 달려가 문희를 구했다. 마침내 문희는 김춘추와 혼례를 올렸다. 훗날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왕후, 문명왕후가 되어 7남 1녀를 두었다. 화랑세기에는 그 뒷이야기도 전한다. 꿈을 팔았던 보희는 문희가 왕후가 된 뒤 후회했으나 다른 사람과 혼인하지 않고 있다가 훗날 김춘추가 그녀를 후궁으로 맞으면서 ‘영창부인’이 된다. 보희도 두 아들을 두었다. 언니와 동생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왕실과 인연을 맺었다. 또 다른 여동생 정희도 신라 왕실과 깊은 관련을 맺었다. 그녀는 김달복과 혼인해 흠신, 흠운, 흠돌을 두었다. 딸 흠신은 보로전군에게 시집가 두 딸을 낳았고, 흠운은 요석공주의 첫 남편으로, 655년 백제 조천성을 공격하다 전사했다. 흠돌은 문무왕 때 장군으로 활약했으나 훗날 반란을 일으켜 목숨을 잃었다. 정희의 자녀들 역시 신라 정치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김유신의 세 여동생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았다. 문희는 왕후가 되었고, 보희는 후궁이 되었으며, 정희는 자녀를 통해 신라 왕실과 혈연을 이었다. 이들의 삶은 개인의 운명을 넘어 신라 왕실과 국가사의 흐름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오늘 우리는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심각한 현실 앞에 서 있다. 아이 울음소리가 줄어드는 시대에, 세 자매의 이야기는 가정과 후손, 그리고 사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가문과 나라를 생각하며 역사를 이어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신라가 천년 왕국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려운 시기다. 국민 각자가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다. /김성문 시민기자

(가정의달 특집) 군 제대와 공무원 시험 합격

대한민국의 한 아들로서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이제야 어머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크게 변해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도시와 해외로 떠났고, 나라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군 복무 동안 어머님께 효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불효자였습니다. 죄송한 마음을 안고 집안일을 돕던 중, 공직자를 공개경쟁 시험으로 선발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마침 영양군에서도 시험 공고가 나왔고, 저는 이것이 제 길이라 여겼습니다. 지역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삶이야말로 제가 가야 할 길이라 믿었습니다. 책을 구해 들고 마을 앞 솔밭 동산의 약천정에 올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남포등과 촛불을 밝히며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오직 한 길만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한 시간이었습니다. 합격자 발표 날, 면사무소 친구와 함께 숨죽여 기다리던 중 내무과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명단을 확인하니 제 이름이 또렷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 어머님께 알렸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제 손을 꼭 잡으시며 “그렇게 애쓰더니 해냈구나.”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그날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어머님께 기쁨을 드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어머님, 고맙습니다.” 그 한마디를 전하며 손을 꼭 잡았습니다. 임용을 앞두고 인연을 만나 청송 진보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첫딸이 태어나 기쁨이 더해졌습니다. 이후 대구시로 전출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님의 곁을 떠나는 아쉬움 속에서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맡은 바 책임을 다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행정사무관 승진 시험에 합격하였고, 가장 먼저 어머님께 달려가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어 아버님 묘소에 가서도 “둘째 아들이 사무관이 되었습니다.” 하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건강은 점차 나빠졌습니다. 더 잘 모시지 못한 마음에 조급함이 커졌습니다. 1993년에는 아버님의 뜻을 기려 약천정 뒤뜰에 예술추모비를 세웠고, 어머님께서도 불편한 몸으로 그 자리를 함께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님께서는 84세의 나이로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이제야 효도를 해보려 했건만 너무도 빨리 떠나신 어머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집니다. 어머님을 보내드린 뒤 저는 마음을 다잡고 공직에 더욱 매진했습니다. 감사과장과 도시정비과장, 수성구청 총무국장과 행정관리국장을 맡으며 책임을 다했습니다. 2003년에는 영양군 수비면 고향에 아버지의 뜻을 기리는 금경연화백예술기념관도 세웠습니다. 공직을 마친 뒤에는 지역의 권유로 구의회 의원에 출마하여 주민들의 지지로 당선되었고, 지역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탰습니다. 그 모든 길 위에는 언제나 어머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함께했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어려운 시절 저를 키워주신 어머님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지난날이 후회스럽습니다. 부디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글을 마무리하며 다시 말씀드립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훗날 저도 어머님 곁으로 가게 된다면 지난날의 모든 이야기를 다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주님 곁에서 평안히 계시기를 빕니다. 무술년 오월 불효자 막내 태남 올림 /정리=방종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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