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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종합특검, 한동훈 ‘출국금지’...법무장관 때 쌍방울 대북송금 수사 개입 의혹

3대 특검의 남은 의혹을 수사중인 2차 종합특검(특별검사 권창영)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출국금지했다. 대통령실 수원지검 수사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고발장이 접수됐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부산 북구갑 보궐 선거에 출마한 한 전 대표는 “정치 특검들이 쇼만 거듭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2차 종합특검팀은 5일 언론 공지를 내고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출국금지를 한 사실이 있다. 대통령실 수원지검 수사개입 의혹사건‘과 관련해 피고발인으로 고발장이 접수됐기 때문인데, 구체적 사항은 말씀드릴 수 없다”고 했다. 특검팀은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이 수원지검의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앞서 시민단체는 대통령실과 검찰 등이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을 조작했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 전 대표, 이원석 전 검찰총장과 당시 수사 검사 등 7명을 직권남용 및 모해위증 교사 혐의로 특검에 고발했다. 부산 북구갑 보궐선거 출마를 준비중인 한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재명 정권의 이른바 2차 종합특검이 저를 출국 금지했다”며 “작년 채상병 특검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저를 출국금지하고는 조사 한 번 못 하고 종결하는 식의 정치 수사를 했는데 이번 특검도 똑같이 무리수를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전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를 위한 국정조사에 민주당이 저를 증인으로 부르라 해도 못 부르더니 민주당과 정치 특검들이 쇼만 거듭하고 있다”며 “이번에도 똑같이 ‘할 테면 해 보라’는 말씀을 드린다. 단 선거 개입은 안 된다”고 했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

안동서 어린이 백일장·사생대회 열려…가족과 함께한 창작 시간

경북매일신문과 안동청년회의소, 대만 남투청년상회가 공동주최하고 안동시가 후원한 ‘2026 안동 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가 지난 4일 한국문화테마파크 남문광장에서 열렸다. 행사장에는 참가 어린이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모였고, 나무 그늘과 돗자리 위에는 원고지와 도화지를 펼쳐든 어린이들이 자리를 잡고 작품 구상에 집중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접수를 마친 뒤 준비해 온 색연필과 크레파스를 꺼내 밑그림을 그리거나, 원고지에 문장을 적어 내려가며 자신이 표현할 내용을 정리했다. 일부 어린이들은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주제를 떠올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대회는 ‘행복한 우리 가족’, ‘나의 꿈’, ‘미래의 나의 모습’ 등을 주제로 운영됐다. 어린이들은 가족과의 기억이나 앞으로의 희망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며 각기 다른 시선을 드러냈다. 연필을 쥔 채 한 글자씩 써 내려가거나 색을 덧입히는 장면이 이어지며 행사장은 전반적으로 차분한 집중 분위기를 보였다. 완성된 작품을 부모에게 보여주거나 표현 방법을 상의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접수 부스 주변에는 작품 제출을 기다리는 참가자들이 모였고, 마지막까지 그림을 수정하거나 글을 다듬으며 완성도를 높이려는 모습이 이어졌다. 행사는 어린이날을 맞아 열린 ‘안동 어린이 한마당’과 연계돼 체험 프로그램과 공연이 함께 운영됐다. 대회를 마친 어린이들은 체험 부스와 공연 무대를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가족 단위 방문객의 발걸음도 꾸준히 이어졌다. 부모들은 아이들 곁에서 준비물을 챙기거나 창작 과정을 지켜보며 참여를 도왔고, 작품을 마친 뒤에는 결과물을 함께 살폈다. 이날 행사는 어린이들이 글과 그림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체험 중심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며 어린이날 연휴 분위기를 더했다. /이도훈기자 ld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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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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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단상)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들

신라사에는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인물이 많다. 그러나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들은 사서 속에 이름과 삶의 자취가 남겨진 인물이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에는 보희, 문희, 정희 세 자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삼국유사 ‘태종 춘추공’ 조에 나오는 보희와 문희 자매의 일화는 이렇다. 어느 날 언니 보희가 꿈을 꾸었다. 선도산에 올라 소변을 보았더니 온 서라벌이 가득 찼다는 꿈이다. 왕후가 될 길몽으로 해석되었음에도 보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를 들은 동생 문희는 비단 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다. 한 번의 교환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얼마 뒤 정월 오기일, 김유신은 김춘추와 축국을 하다가 일부러 그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렸다. 그리고 집으로 데려와 여동생에게 꿰매게 했다. 처음에는 보희를 부르려 했으나 그녀가 사양하자, 문희가 나섰다. 단정히 차려입은 문희는 김춘추의 옷고름을 꿰맸고, 그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을 두게 된다. 이후 문희는 김춘추의 아이를 잉태한다. 김유신은 이 일을 빌미로 동생을 벌하겠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덕만공주가 남산으로 행차하는 때를 맞춰 뜰에 장작을 쌓고 불을 피우자, 공주는 연기의 까닭을 물었다. 곁에 있던 김춘추는 그 일이 자신과 관련된 것임을 깨닫고 급히 달려가 문희를 구했다. 마침내 문희는 김춘추와 혼례를 올렸다. 훗날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왕후, 문명왕후가 되어 7남 1녀를 두었다. 화랑세기에는 그 뒷이야기도 전한다. 꿈을 팔았던 보희는 문희가 왕후가 된 뒤 후회했으나 다른 사람과 혼인하지 않고 있다가 훗날 김춘추가 그녀를 후궁으로 맞으면서 ‘영창부인’이 된다. 보희도 두 아들을 두었다. 언니와 동생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왕실과 인연을 맺었다. 또 다른 여동생 정희도 신라 왕실과 깊은 관련을 맺었다. 그녀는 김달복과 혼인해 흠신, 흠운, 흠돌을 두었다. 딸 흠신은 보로전군에게 시집가 두 딸을 낳았고, 흠운은 요석공주의 첫 남편으로, 655년 백제 조천성을 공격하다 전사했다. 흠돌은 문무왕 때 장군으로 활약했으나 훗날 반란을 일으켜 목숨을 잃었다. 정희의 자녀들 역시 신라 정치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김유신의 세 여동생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았다. 문희는 왕후가 되었고, 보희는 후궁이 되었으며, 정희는 자녀를 통해 신라 왕실과 혈연을 이었다. 이들의 삶은 개인의 운명을 넘어 신라 왕실과 국가사의 흐름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오늘 우리는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심각한 현실 앞에 서 있다. 아이 울음소리가 줄어드는 시대에, 세 자매의 이야기는 가정과 후손, 그리고 사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가문과 나라를 생각하며 역사를 이어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신라가 천년 왕국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려운 시기다. 국민 각자가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다. /김성문 시민기자

(가정의달 특집) 군 제대와 공무원 시험 합격

대한민국의 한 아들로서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이제야 어머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크게 변해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도시와 해외로 떠났고, 나라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군 복무 동안 어머님께 효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불효자였습니다. 죄송한 마음을 안고 집안일을 돕던 중, 공직자를 공개경쟁 시험으로 선발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마침 영양군에서도 시험 공고가 나왔고, 저는 이것이 제 길이라 여겼습니다. 지역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삶이야말로 제가 가야 할 길이라 믿었습니다. 책을 구해 들고 마을 앞 솔밭 동산의 약천정에 올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남포등과 촛불을 밝히며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오직 한 길만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한 시간이었습니다. 합격자 발표 날, 면사무소 친구와 함께 숨죽여 기다리던 중 내무과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명단을 확인하니 제 이름이 또렷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 어머님께 알렸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제 손을 꼭 잡으시며 “그렇게 애쓰더니 해냈구나.”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그날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어머님께 기쁨을 드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어머님, 고맙습니다.” 그 한마디를 전하며 손을 꼭 잡았습니다. 임용을 앞두고 인연을 만나 청송 진보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첫딸이 태어나 기쁨이 더해졌습니다. 이후 대구시로 전출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님의 곁을 떠나는 아쉬움 속에서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맡은 바 책임을 다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행정사무관 승진 시험에 합격하였고, 가장 먼저 어머님께 달려가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어 아버님 묘소에 가서도 “둘째 아들이 사무관이 되었습니다.” 하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건강은 점차 나빠졌습니다. 더 잘 모시지 못한 마음에 조급함이 커졌습니다. 1993년에는 아버님의 뜻을 기려 약천정 뒤뜰에 예술추모비를 세웠고, 어머님께서도 불편한 몸으로 그 자리를 함께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님께서는 84세의 나이로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이제야 효도를 해보려 했건만 너무도 빨리 떠나신 어머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집니다. 어머님을 보내드린 뒤 저는 마음을 다잡고 공직에 더욱 매진했습니다. 감사과장과 도시정비과장, 수성구청 총무국장과 행정관리국장을 맡으며 책임을 다했습니다. 2003년에는 영양군 수비면 고향에 아버지의 뜻을 기리는 금경연화백예술기념관도 세웠습니다. 공직을 마친 뒤에는 지역의 권유로 구의회 의원에 출마하여 주민들의 지지로 당선되었고, 지역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탰습니다. 그 모든 길 위에는 언제나 어머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함께했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어려운 시절 저를 키워주신 어머님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지난날이 후회스럽습니다. 부디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글을 마무리하며 다시 말씀드립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훗날 저도 어머님 곁으로 가게 된다면 지난날의 모든 이야기를 다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주님 곁에서 평안히 계시기를 빕니다. 무술년 오월 불효자 막내 태남 올림 /정리=방종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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