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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가담’ 이상민 전 장관, 항소심 징역 9년…1심보다 2년 늘어

12·3 비상계엄 당시 주요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등 내란 행위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항소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1심의 징역 7년 형보다 2년 늘어났다. 내란전담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민성철·이동현)는 12일 이 전 장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 항소심에서 이같이 선고했다. 2심은 1심과 같이 이 전 장관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고 죄책에 비해 1심형이 가볍다며 형량을 늘렸다. 내란전담재판부는 이 전 장관이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회 등 주요 기관 봉쇄와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를 받고 당시 소방청장에게 “(경찰에서) 연락이 가면 서로 협력해서 적절한 조처를 해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혐의(내란중요임무 종사)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단전·단수 지시가 담긴 문건을 받지 않았고, 소방청장에게 전화로 “단전·단수 요청이 있었느냐”고 물었을 뿐 직접 지시하진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상계엄이 위법했다거나 윤 전 대통령에게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음을 몰랐다는 주장도 배척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 비상계엄은 그 요건을 갖추지 못해 위법성이 명백했고, 이 전 장관도 이를 잘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더군다나 수사 기간부터 항소심까지 비상계엄을 용인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법적 책임에 눈 감고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언론사 단전·단수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는 불법성을 인식한 소방청장이 우회적으로 지시를 전달한 것에 따른 것으로, 이 전 장관의 의지가 반영된 게 아니라며 유리한 정상으로 반영하지 않았다. 단전·단수 협조 지시를 직접 했을 뿐 아니라 비상계엄의 위법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동일한 주장을 반복하는 등 범행 후 정황이 좋지 않은 것은 불리한 양형 사유로 고려했다. 2심은 양형 배경과 관련해 “피고인이 지시한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는 물리적으로 비상계엄에 비판적인 언론보도를 불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그곳에서 근무하는 국민의 생명 및 신체 안전에 중대한 위해를 가하는 것”이라며 “합법적인 비상계엄 상황에서도 허용될 수 없는 위법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최정암기자 am4890@kbmaeil.com

청송 주왕산 실종 초등생 숨진 채 발견

지난 10일 가족과 함께 찾은 청송군 주왕산국립공원에서 홀로 산행에 나섰다가 실종된 초등학생 A(11·초6)군이 사건 발생 사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실종 사흘째인 12일 오전 경찰·소방 등 인력 350여명과 헬기, 드론, 구조견 등을 대거 투입해 A군에 대한 수색작업을 이어갔다. 수색팀은 기암교에서부터 주봉(해발 720.6m)까지 이어지는 등산로 약 2.3㎞ 구간 주변에 있는 등산로와 비탈면 등지를 중점 수색했다. 수색에 나선 이날 오전 10시 13분쯤 주봉 인근 용연폭포방면 100m 지점에서 경찰특공대가 숨진 채 쓰러져 있는 A군을 발견했다. 당국은 현재 시신 수습 과정에 있으며, 현지 여건에 따라 헬기 이송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경찰은 A군이 실종 당일 홀로 산행에 나선 뒤 실족해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추가 조사를 통해 실종 및 사망 경위 등을 밝힐 예정이다. A군 실종 후 현장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아들이 살아 돌아오길 기다려온 부모는 A군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울음을 터뜨렸다. 앞서 A군은 지난 10일 부모와 주왕산국립공원 내 사찰을 함께 방문했다. A군은 당일 정오께 기암교에서 “조금만 산에 올라갔다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키 145㎝가량에 마른 편인 A군은 실종 당일 삼성라이온즈 유니폼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휴대전화는 갖고 있지 않았다. A군 부모는 아들이 산행에 나선 뒤 한참을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같은 날 오후 4시 10분쯤 국립공원공단에 이러한 사실을 알렸고, 오후 5시 53분쯤 119에 실종 신고를 했다. 이후 당국은 인력과 헬기, 장비 등을 대거 동원해 주야간 수색 작업을 벌여왔다. 주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폭이 좁고 가파른 데다가 중간중간 낭떠러지 구간도 있는 등 수색에 불리한 지형 여건으로 수색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김종철기자 kjc247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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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당익장 문인을 찾아서) 황인동 시인을 만나다

“나이야 가라, 나는 아직 현역이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기개를 넘어, 한 인간이 걸어온 삶의 궤적을 응축한 선언에 가깝다. 황인동 시인은 지금도 삶의 현장을 떠나지 않는, 말 그대로 ‘현재 진행형’의 시인이다. 대구교육대학을 졸업한 그는 교단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아이들과 마주하던 그 시간은 그의 삶에 따뜻한 기초를 놓았다. 그러나 인생은 늘 예기치 않은 갈림길을 마련해 둔다.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다가 우연히 접한 공무원 시험 공고는 그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당히 합격 통보를 받았다. 제대를 앞두고 진로를 두고 깊이 고심하던 그는 주변의 권유로 다시 교단에 서기도 했으나 그의 삶은 거기에서 머물지 않았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한 어르신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대학까지 나왔으니 더 큰일을 해야지.” 이 짧은 한마디는 그의 내면에 오래 남아 있던 불씨를 일깨웠다. 결국 그는 공직의 길을 선택했고, 대구시를 거쳐 경상북도청으로 진출했다. 이후 문화예술과장을 역임하며 지역 문화행정의 기반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고, 청도 부군수로 재직하며 때로는 군수대행의 중책까지 맡아 지방 행정의 중심에서 묵묵히 역할을 수행했다. 퇴임 이후에도 지역 사회와의 인연을 이어가며 기업 경영을 맡는 등 그의 행보는 쉼 없이 이어졌다. 그의 삶을 지탱해온 또 하나의 축은 가정이었다. 초임 공무원 시절, 장래를 둘러싼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배우자는 “그는 결코 평범한 인물로 머물 사람이 아니다”라는 신념으로 결혼을 결심했다. 그 믿음은 긴 세월 동안 그의 곁에서 흔들림 없는 버팀목이 되었고,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든든한 뿌리가 되었다. 행정가로서의 길과 더불어, 그는 문학에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꾸준히 확장해왔다. 대구 문단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대구문인협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했고, 수많은 예술인들이 선망하는 대구예술대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공고히 했다. 그의 시는 삶의 굴곡을 통과하며 얻은 깊이와 온기를 동시에 품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었고, 그 선택들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졌다. 교사에서 공무원으로, 문화행정의 중심에서 지역을 이끄는 지도자로, 그리고 끝내 시의 길 위에 선 문인으로 이어진 여정. 그 모든 궤적은 ‘노당익장’이라는 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증명한다. 지금도 그는 변함없이 말한다. “나이야 가라, 나는 아직 현역이다.” 그의 삶은 아직도 쓰이는 중이다. 그리고 그 문장은 우리 모두의 내일을 향해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번져가고 있다. 그의 ‘소싸움’ 시 한편을 소개한다. "자 봐라! 수놈이면 뭐니뭐니 해도 힘인기라/돈이니 명예이니 해도 힘이 제일인기라/허벅지에 불끈거리는 힘 좀 봐라/뿔따구에 확 치솟는 수놈의 힘 좀 봐라/소싸움은 잔머리 대결이 아니라/오래 되새김질한 질긴 힘인기라/봐라, 저 싸움에 도취되어 출렁이는 파도를!/저 싸움 어디에 비겁함이 묻었느냐/저 싸움 어디에 학연지연이 있느냐/뿔따구가 확 치솟을 땐/나도 불의와 한 판 붙고 싶다" /방종현 시민기자

(시민기자 단상) 좋은 나라에 대한 자부심

불과 반세기 전, 보릿고개의 허기를 검정 고무신으로 버티던 우리나라가 이제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성장이 아니다. “잘살아 보세”라는 일념으로 피땀 흘린 세대가 빚어낸 기적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물질적 풍요를 넘어 사회시스템과 시민의식 전반에서 ‘격(格)’을 갖춘 국가로 진화했다. 국가적 위상을 가장 견고하게 뒷받침한 분야는 세계를 호령하는 우리 기업들이다. 특히 삼성의 반도체로 대표되는 초격차 기술력은 대한민국을 글로벌 경제의 핵심 축으로 올려놓았다. 황무지에서 꽃피운 첨단 산업의 승전보는 우리 국민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으며, 오늘날 전 세계가 한국의 기술과 제품에 의존하는 ‘기술 강국’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이러한 대기업들의 활약은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 일등 공신이다. 사회 내부의 온기 또한 눈부시다. 과거 병원비가 무서워 병을 숨기던 시절은 먼 옛날 이야기다. 이제 의료보험은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가 됐고, 노인기초연금과 아동수당 등 촘촘하게 엮인 사회안전망은 복지를 ‘시혜’가 아닌 국민의 당당한 ‘권리’로 격상시켰다. 국가가 국민을 살피고, 공동체가 약자를 보듬는 시스템이 정착된 것이다. 삶의 질과 환경 문화의 변화 또한 경이롭다. 세계가 감탄하는 청결한 공공시설과 성숙한 분리수거 문화는 단순한 미화(美化)를 넘어선다. 삶의 현장 곳곳에서 시민들이 취미와 봉사로 삶을 가꾸는 풍경은 대한민국이 ‘힐링’을 누리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하며,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행보는 국가적 품격의 완성을 의미한다. 지방자치제 정착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성취다. 국민은 이제 단순한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의 감시자이자 주체로 성장했다. 주민참여예산제 등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졌고, 이는 중앙집권적 국가에서 시민 중심의 국가로 체질 개선에 성공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런 성취 뒤에 깔린 짙은 그림자가 있음도 알아야 한다. 최근의 정국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편치 않다. 이념과 진영의 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가짜 뉴스와 여론 조작이 진실의 눈을 가리고 있다. 외교와 안보, 치안과 인권이라는 국가의 기본 틀이 정치적 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흔들리는 모습이다. 경제의 숨 고르기는 길어지고, 사회적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간다. ‘좋은 나라’는 국민이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안심하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나라여야 한다. 우리 부모 세대가 땀방울로 길을 닦았다면, 이제 우리는 그 길 위에 신뢰와 화합의 꽃을 피워야 할 책무가 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고백은 지난 고통을 이겨낸 자부심이자, 동시에 미래를 향한 준엄한 약속이어야 한다. 좋은 나라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믿고 연대하며 끊임없이 가꾸어야 할 현재 진행형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시 한번 마음을 모을 때,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자부심은 비로소 지속 가능할 것이다. /유무근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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