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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 청년 ‘인생설계 학교’ 9개 시군 순회 운영

경북도가 청년들이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현장형 교육 프로그램을 도내 전역으로 확대 운영한다. 경북도는 28일 칠곡을 시작으로 포항, 김천, 영천, 상주, 문경, 의성, 영덕, 예천 등 9개 시군에서 ‘2026 청년발전소-청년 인생설계 학교’를 순차적으로 운영한다. 청년들이 모이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 자기 탐구와 실생활 중심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지역 정착 기반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올해 프로그램은 금융·재무 분야 비중을 크게 늘린 것이 특징이다. 청년층 사이에서 경제 지식이 취업 이후 생존과 직결되는 역량으로 인식되면서 관련 교육 수요가 꾸준히 증가한 데 따른 조치다. 실제 만족도 조사에서도 경제 강의 확대 요구가 높게 나타났다. 교육 과정은 주제별 선택형으로 운영된다. 청년 금융 분야에서는 주식 모의투자와 통장·연금저축 활용법을, 청년 경제 과정에서는 연말정산 절세와 보험 보장 분석 등을 다룬다. 청년 자립 분야에서는 청약 전략과 부동산 계약서 이해, 디지털 행정 서비스 활용 교육이 포함된다. 단순 강의에 그치지 않고 청년 간 교류를 확대하는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된다. 청년 CEO 공감 토크와 지역봉사, 버스킹 공연 등을 통해 참여자 간 네트워크 형성과 커뮤니티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 신청과 세부 일정은 경북 청년발전소 인스타그램과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상수 경북도 지방시대정책국장은 “청년들이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데 의미가 있다”며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도훈기자 ld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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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만두를 좋아하나요

고기만두 김치만두도 고르기 힘든데, 군만두를 시키면 찜만두를 빼놓긴 아쉽다. 짜장면을 먹으려면 얼큰한 짬뽕 국물이 아쉽고, 찍먹이냐 부먹이냐 다툴 시간에 탕수육 한 점 더 먹자는 실속파도 있다. 그렇게 늘 선택해야 할 때면 어떤 선택이 가장 옳은 일일지 고민하게 된다. 메뉴는 열 가지도 넘는데 두세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으니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오늘은 늘 배달시켜 먹다가 직접 가서 보글보글 끓여 먹는 전골이 땡겨서 가게로 갔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갈 거리에 있다. 오래전부터 장사를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자세히 살피니 벽에 1996년부터라고 적혔다. 와아···. 30년을 손만두를 빚으셨구나. 가게 안쪽에서 열심히 빚는 모습이 보였다. 대식가인 남편과 아들이 함께라 먹고 싶은 메뉴 다 시켜도 되니 좋았다. 자리에 앉아서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계산까지 한다. 일단 만두전골(전골은 기본 2인분이다.)을 누르고 난 후 손가락이 멈췄다. 나에게 어떤 만두가 제일 맛있느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군만두이다. 특히 코끼리만두의 군만두는 피가 얇아 기름에 구워도 딱딱하기보다 포삭한 느낌이라 입천장이 긁히진 않는다. 군만두도 시키고 싶지만, 비빔만두에 채소 무침이 함께 나오니까 칼칼한 쫄면도 빼고 비빔만두 하나만 시켰다. 이제 고기만두와 김치만두 중에 어떤 것을 고를까요 알아맞춰봅시다 딩동댕동! 김치만두로 정했다. 더 시키려는 남편을 만류하며 전골에 공기밥도 먹어야 하고, 마지막에 후식으로 볶음밥도 먹으려면 참아야 한다고 아들이 강조했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시키자며 씨익 웃었다. 계산을 내가 한다고 하니 이참에 더 시키고픈 얼굴이다. 남편만 매장 방문이 처음이다. 가까운 곳에 이런 맛집이 있었느냐고 놀란다. 코끼리만두의 한 가지 단점은 주차장이 없다는 것. 그래서 멀리서 방문하는 사람들은 포항 북부 바닷가 영일대해수욕장에 자리한 공영주차장을 이용하고 걸어오면 된다. 걸어오기에 멀다 싶으면 근처 골목길에 눈치껏 대야한다. 들어가며 간판을 보니 빛이 바랬다. 붓글씨로 쓴 듯한 ‘코끼리만두’는 만두에 진심이라는 듯 점잖다. 밑에 ‘직접 빚은 만두전문점’이라고 작게 설명이 붙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가게는 자리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전골이 끓기 기다리는 동안 배달주문이 끊임없이 울렸다. 고기와 버섯을 먼저 먹고 만두 하나씩 앞접시에 덜어와 후후 불어서 맛보았다. 속도 알차다. 원산지 표시를 보니 만두소에 들어간 돼지고기와 배추와 고춧가루까지 모두 국내산이다. 사이드로 나오는 반찬까지 모두 국산이다. 전골의 맨 위 소고기도 한우였다. 십여 년 전 시댁에서 어머님을 위한 만두를 만들었다. 고기는 닭도 돼지도 오리도 못 드시고 소고기만 드셔서 소고기를 구워 먹을 만큼 샀다. 부추만 넣는 간단한 만두 레시피였다. 만두소에 두부, 신김치 같은 채소를 잔뜩 넣으면 고기가 기본만 들어가도 양이 그득하지만, 부재료가 부추가 다였으니 고깃값이 많이 들었다. 만두피를 반죽해서 얇게 밀어야 하는데 홍두깨가 없어 보온병으로 밀고, 동그랗게 찍어낼 때는 주전자 뚜껑으로 눌렀다. 만두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소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잘게 썰고 뒤섞느라 어깨가 아프지만 피를 얇게 밀면 빚다가, 또 국물 속에서 익다가 터지기 일쑤라 적당히 두꺼워야 한다. 작게 빚어야 하니 빚는 시간도 만만찮아 가족이 다 모여서 큰일 치르듯 해야 한다. 그러니 자주 해 먹기 힘들어 맛집 리스트를 작성한다. 리스트 중에 우리 집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이 코끼리만두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십이령 봉화 상무사 유적 ‘조령성황사의 가치와 보존’

봉화 상무사는 조선시대 봉화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보부상단을 일컫는 명칭이다. 조선의 보부상은 전국적으로 존재했던 행상인 집단으로, 각 지역 오일장을 기반으로 상권을 형성하고 유통 질서를 일정 부분 관리해 왔다. 보부상 조직은 시대에 따라 제도적으로 변화했다. 1866년 보부청을 비롯해 1883년 혜상공국, 상리국 등으로 명칭과 운영 체계가 바뀌며 중앙의 관리 아래 조직화됐다. 이후 대한제국 시기인 1899년에는 상무사가 설립되면서 봉화 지역 행상단은 봉화상무사로 명칭이 바뀌어 활동하게 된다. 상무사는 중앙에 사장을 두고, 각 도 관찰사가 분사장을 맡았으며, 군·현 단위에서는 군수와 현감이 분사무장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였다. 그 아래 공사원, 장무원 등이 임명됐고, 각 지역 임방에는 반수와 접장을 두는 등 비교적 체계적인 조직 운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04년 이후 일제의 식민지 경영이 본격화되면서 보부상단과 상무사는 점차 해체되었고, 시장 유통 구조에서도 배제되며 기능을 상실했다. 1920년 이후 일부 잔존 조직들이 조선총독부에 탄원하면서 충청도와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 명맥만 유지됐고, 현재는 문서, 인장, 현판, 비석 등으로 흔적이 남아 있다. 봉화상무사의 활동 흔적은 십이령(울진 두천리)과 봉화·울진을 잇는 고갯길 일대에 집중적으로 남아 있다. 특히 울진 두천리의 내성행상불망비 2기와 십이령 샛재의 조령성황사는 대표적 유적이다. 이곳에는 보부상합동위령비, 차정서, 토지 이관문서, 토지대장 등과 함께 16개의 현판이 남아 봉화상무사의 조직과 활동을 보여주는 핵심 사료로 평가된다. 내성행상단이 관할하던 시장 권역은 봉화군과 울진군 두 지역으로, 울진의 현내장·매야장·흥부장과 봉화의 내성장·장평장·춘양장·소천장·후평장 등을 포함했다. 이들은 울진의 해산물과 봉화의 곡물·특산물을 교환하는 상호 교역 구조를 형성했다. 십이령 열두 고개를 넘나들던 보부상 길목 중 하나인 샛재 조령성황사는 보부상들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고 선대 제사를 지내던 제소였다. 제단에는 ‘조령성황신위’ 위패가 모셔졌으며, 보부상들이 전용으로 사용한 성황당이었다. 조령성황사 내부에는 1868년 ‘중수기’를 비롯해 1878년 ‘개와시’ 등 현판이 남아 있으며, 반수·접장·공원 등 직책과 인명이 기록돼 조직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이 현판들은 봉화 보부상의 역사와 활동 시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다. 조령성황사에 남아 있는 16개 현판은 186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기록으로, 봉화 보부상단의 활동과 조직 변화를 보여주는 희귀 자료다. 그러나 상당수는 노후화가 진행돼 보존이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십이령 고갯길은 외씨버선길과 동서트레일, 울진 금강송 숲길과 연결되며 탐방객이 찾는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조령성황사 역시 개방되어 있으나, 출입과 이용 방식에서 본래 성격이 훼손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보부상은 한때 전국 8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던 평민 상인 조직으로 독자적인 규율과 윤리, 의례를 갖춘 상업 공동체였다. 그러나 현재는 그 문화와 풍속이 역사 기록 속에만 남아 점차 잊혀지고 있다. 십이령 보부상의 핵심 유산인 조령성황사와 관련 유물은 조선 후기 상업사와 민중 경제사의 중요한 증거로, 체계적인 보존과 문화재적 관리가 요구되며 관계 기관의 관심이 필요하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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