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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참전 압박하는 트럼프 “호르무즈 한국 화물선, 단독으로 움직이다 피격당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한국 HMM 화물선 나무호 폭발 사건과 관련해 “한국 화물선이 단독으로 움직이다가 이란의 공격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백악관의 한 행사에서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 43%를 조달한다고 언급한 뒤 “그들의 선박이 공격당했다. 그들은 선박 대열에 없었고 혼자 행동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의 선박은 어제 박살났다. 하지만 미국이 보호하던 선박들은 공격당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ABC방송과 전화 인터뷰에서도 “피격당한 건 혼자 운항하던 한국 선박이었다“며 “한국 선박을 겨냥해 다수 발포가 이뤄졌고 한국이 어떤 식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은 아직 피격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며, 미국 언론들조차 정보가 없어 한국 언론을 인용해 보도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미국의 대통령이 한국 선박이 단독으로 이동하다가 이란 공격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우방에 대한 예의를 넘어 무례하다는 지적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에 어떤 우방국도 나서지 않는 것에 짜증섞인 반응을 보여온 트럼프가 한국의 참전을 압박하기 위해 이 사고를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나무호에서 발생한 폭발·화재의 원인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아직도 “폭발의 원인은 알 수 없다. 피격인지 아닌지도 지금 분명치 않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트럼프는 한국의 호르무즈 해협 경색 해소 기여를 촉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은 ‘해방 프로젝트‘ 작전과 관련한 선박 이동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화물선 등 무관한 국가들을 향해 몇 차례 발포했다“며 “한국도 이 작전에 합류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밝혔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도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한국이 ‘프로젝트 프리덤‘에 동참할 징후가 있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전날 오후 8시 40분쯤 호르무즈 해협 아랍에미리트(UAE) 인근 해역에 정박하고 있던 나무호의 기관실 좌현에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했다. 한국 국적 선원 6명을 포함해 총 24명이 탑승해 있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최정암기자 am4890@kbmaeil.com

“해와 달의 설화 속으로” ···포항 귀비고, 어린이날 연휴 8000명 찾았다

포항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외곽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이 이번 어린이날 연휴 기간 포항을 대표하는 ‘가족 체험 중심지로의 입지’를 다시 한번 확고히 했다. 포항문화재단(대표이사 이상모)은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내 전시관 ‘귀비고’와 ‘신라마을’ 일원에서 진행한 특별 프로그램이 시민과 관광객들의 열띤 호응 속에 성황리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재단 측에 따르면 이번 연휴 기간 귀비고를 찾은 방문객은 8000명을 돌파했다. 이번 행사의 백미는 포항의 고대 설화인 연오랑세오녀 이야기를 체험형 콘텐츠로 풀어낸 점이다. 5일 진행된 ‘신라마을 어린이 놀이터’는 신라마을 곳곳에 숨겨진 해와 달의 빛을 찾는 미션으로 꾸며져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했다. 미션을 완수한 어린이들은 신라복과 금관을 직접 착용하며 설화 속 주인공이 돼보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으며, 포토존은 추억을 남기려는 가족들로 온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이 밖에도 초정(草亭)에서 즐기는 보드게임과 서예 가훈 쓰기 등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프로그램들이 활기를 더했다. 4일부터 이틀간 귀비고 전시관 내부에서 열린 ‘오늘은 내가 낙서왕’은 공간의 고정관념을 깬 시도로 주목받았다. 평소 손대기 어려운 전시관의 대형 유리창을 아이들의 도화지로 개방하자, 아이들은 각자의 꿈과 상상력을 담은 그림들로 창을 가득 채웠다. 딱딱한 관람 위주의 전시관이 아이들의 손길에 의해 하나의 거대한 현대미술 작품으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또한 2일부터 이어진 활동지 풀이와 컬러링 체험, 그리고 달의 다양한 모습을 예술적으로 조명한 기획전시 ‘달을 그리다’(정다운, 사공숙 작가 참여) 역시 단순한 휴식을 넘어 교육적 가치와 볼거리를 동시에 제공했다는 평이다. 가족과 함께 방문한 이모(40·포항시 북구)씨는 “도심과 거리는 있지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알찬 프로그램 덕분에 멀리서 온 보람이 있다”며 만족해했다. 미션에 참여한 어린이는 “신라 옷을 입어본 것이 가장 기억에 남고, 다음에 또 오고 싶다”며 즐거워했다. 박은숙 포항문화재단 사무국장은 “어린이들이 연오랑세오녀의 역사를 즐겁게 체험하는 계기가 됐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귀비고와 신라마을만의 특색을 살린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문화예술 경험을 선사하겠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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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단상)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들

신라사에는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인물이 많다. 그러나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들은 사서 속에 이름과 삶의 자취가 남겨진 인물이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에는 보희, 문희, 정희 세 자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삼국유사 ‘태종 춘추공’ 조에 나오는 보희와 문희 자매의 일화는 이렇다. 어느 날 언니 보희가 꿈을 꾸었다. 선도산에 올라 소변을 보았더니 온 서라벌이 가득 찼다는 꿈이다. 왕후가 될 길몽으로 해석되었음에도 보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를 들은 동생 문희는 비단 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다. 한 번의 교환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얼마 뒤 정월 오기일, 김유신은 김춘추와 축국을 하다가 일부러 그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렸다. 그리고 집으로 데려와 여동생에게 꿰매게 했다. 처음에는 보희를 부르려 했으나 그녀가 사양하자, 문희가 나섰다. 단정히 차려입은 문희는 김춘추의 옷고름을 꿰맸고, 그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을 두게 된다. 이후 문희는 김춘추의 아이를 잉태한다. 김유신은 이 일을 빌미로 동생을 벌하겠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덕만공주가 남산으로 행차하는 때를 맞춰 뜰에 장작을 쌓고 불을 피우자, 공주는 연기의 까닭을 물었다. 곁에 있던 김춘추는 그 일이 자신과 관련된 것임을 깨닫고 급히 달려가 문희를 구했다. 마침내 문희는 김춘추와 혼례를 올렸다. 훗날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왕후, 문명왕후가 되어 7남 1녀를 두었다. 화랑세기에는 그 뒷이야기도 전한다. 꿈을 팔았던 보희는 문희가 왕후가 된 뒤 후회했으나 다른 사람과 혼인하지 않고 있다가 훗날 김춘추가 그녀를 후궁으로 맞으면서 ‘영창부인’이 된다. 보희도 두 아들을 두었다. 언니와 동생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왕실과 인연을 맺었다. 또 다른 여동생 정희도 신라 왕실과 깊은 관련을 맺었다. 그녀는 김달복과 혼인해 흠신, 흠운, 흠돌을 두었다. 딸 흠신은 보로전군에게 시집가 두 딸을 낳았고, 흠운은 요석공주의 첫 남편으로, 655년 백제 조천성을 공격하다 전사했다. 흠돌은 문무왕 때 장군으로 활약했으나 훗날 반란을 일으켜 목숨을 잃었다. 정희의 자녀들 역시 신라 정치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김유신의 세 여동생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았다. 문희는 왕후가 되었고, 보희는 후궁이 되었으며, 정희는 자녀를 통해 신라 왕실과 혈연을 이었다. 이들의 삶은 개인의 운명을 넘어 신라 왕실과 국가사의 흐름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오늘 우리는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심각한 현실 앞에 서 있다. 아이 울음소리가 줄어드는 시대에, 세 자매의 이야기는 가정과 후손, 그리고 사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가문과 나라를 생각하며 역사를 이어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신라가 천년 왕국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려운 시기다. 국민 각자가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다. /김성문 시민기자

(가정의달 특집) 군 제대와 공무원 시험 합격

대한민국의 한 아들로서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이제야 어머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크게 변해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도시와 해외로 떠났고, 나라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군 복무 동안 어머님께 효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불효자였습니다. 죄송한 마음을 안고 집안일을 돕던 중, 공직자를 공개경쟁 시험으로 선발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마침 영양군에서도 시험 공고가 나왔고, 저는 이것이 제 길이라 여겼습니다. 지역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삶이야말로 제가 가야 할 길이라 믿었습니다. 책을 구해 들고 마을 앞 솔밭 동산의 약천정에 올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남포등과 촛불을 밝히며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오직 한 길만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한 시간이었습니다. 합격자 발표 날, 면사무소 친구와 함께 숨죽여 기다리던 중 내무과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명단을 확인하니 제 이름이 또렷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 어머님께 알렸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제 손을 꼭 잡으시며 “그렇게 애쓰더니 해냈구나.”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그날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어머님께 기쁨을 드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어머님, 고맙습니다.” 그 한마디를 전하며 손을 꼭 잡았습니다. 임용을 앞두고 인연을 만나 청송 진보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첫딸이 태어나 기쁨이 더해졌습니다. 이후 대구시로 전출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님의 곁을 떠나는 아쉬움 속에서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맡은 바 책임을 다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행정사무관 승진 시험에 합격하였고, 가장 먼저 어머님께 달려가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어 아버님 묘소에 가서도 “둘째 아들이 사무관이 되었습니다.” 하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건강은 점차 나빠졌습니다. 더 잘 모시지 못한 마음에 조급함이 커졌습니다. 1993년에는 아버님의 뜻을 기려 약천정 뒤뜰에 예술추모비를 세웠고, 어머님께서도 불편한 몸으로 그 자리를 함께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님께서는 84세의 나이로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이제야 효도를 해보려 했건만 너무도 빨리 떠나신 어머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집니다. 어머님을 보내드린 뒤 저는 마음을 다잡고 공직에 더욱 매진했습니다. 감사과장과 도시정비과장, 수성구청 총무국장과 행정관리국장을 맡으며 책임을 다했습니다. 2003년에는 영양군 수비면 고향에 아버지의 뜻을 기리는 금경연화백예술기념관도 세웠습니다. 공직을 마친 뒤에는 지역의 권유로 구의회 의원에 출마하여 주민들의 지지로 당선되었고, 지역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탰습니다. 그 모든 길 위에는 언제나 어머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함께했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어려운 시절 저를 키워주신 어머님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지난날이 후회스럽습니다. 부디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글을 마무리하며 다시 말씀드립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훗날 저도 어머님 곁으로 가게 된다면 지난날의 모든 이야기를 다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주님 곁에서 평안히 계시기를 빕니다. 무술년 오월 불효자 막내 태남 올림 /정리=방종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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